제목: 1975년 5월 집회
장소: 대구 대청곡 기도원
일시: 1975.5.19.-23.
설교: 백영희목사님
필기: 전성수조사님 노트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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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첫 페이지)
본문 내용
눅1:37- 자기만 인정하고 소원하고 본능적 노력이 있으면, 일하시는 이는 G이시다.
신28:1-17 개인주의로 잘못 깨닫지 말 것
마6:7- 우리가 되어야 한다.
에스라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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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월남전은 1964년 미국이 전면 참전하게 되고 한국도 즉각 참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1973년 1월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미국은 그해 8월 완전히 월남에서 손을 떼고 철수하게 됩니다. 이 평화조약 체결 때문에 월맹과 미국의 외무부 장관들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지만, 상을 받자 1975년 구정을 기하여 월맹은 미국이 없는 월남을 총공격하게 되고 1975년 4월에 사이공을 점령하게 됩니다.
전광석화처럼 월남을 점령한 것을 보고 김일성은 바로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하여 남한에 대한 무력침공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미 남한 사회는 6.25후 20년 넘게 남침위협을 대비하여 늘 비상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비상 대비를 위한 정부의 촉구가 오히려 국민들에게는 늘상 하는 식의 민방위훈련정도로 인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6.25사변이후 50년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가장 절박한 위험을 직면하고 있었는데, 정부 책임자들만 벌벌 떨고 있었고 그들 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하품만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때, 월남의 패망을 남다른 시각으로 시시각각 지켜보고 있던 백목사님은 미국이 월남의 패망을 그대로 내버려 둔 상태에서 그다음 순서는 바로 한반도 적화로 이어질 것을 보게 됩니다. 1975년 집회는 백목사님 평생 집회 중에서 가장 많이 준비하고 교인들에게도 가장 많이 독촉했던 집회입니다. 안 믿는 세상의 정세를 볼 때 전쟁은 단숨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문제는 목숨을 걸고 믿을 교회는 총공회 신앙노선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침 전쟁이 벌어지면 월남의 재판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도 도피하지 않고 또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킬 교회는, 임박한 순교 환란 앞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였습니다.
순교를 요구하시면 기쁜 마음으로 받겠으나, 아직은 준비의 때를 더 주셔야할 이유가 있으니 총공회 교회 전 교인들이 주님 앞에 두렵게 엎드려 한국교회를 어깨에 매고 기도하고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자는 집회였습니다.
당시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1970년의 1천명 주일예배 출석수에서 1980년 8천명의 주일예배 출석수를 향해 수직상승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골목에서 수십명의 학생들을 교회로 옮겨놓을 수 있는 때였습니다. 서부교회를 뒤따라 총공회 소속 교회들은 전국적으로 같은 현상에 있었고 이후 이 운동은 1990년대까지 이어가며 한국교회사에 주일학교 부흥기라고 기록될 특별한 때였습니다. 바로 이 자라나는 주일학생들, 특히 이 197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향후 30여년 한국의 미래 수십년 이상 한국교회의 소망이 될 수 있는 이들에게 아직은 환란보다 평화의 시기가 필요하다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집회의 주제는 "에스라"였습니다. 에스라가 의지하고 의뢰하며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회개시켰던 이 에스라서로 한국교회를 책임지고 당대 하나님의 종
백영희목사님은 외치게 됩니다. 이 에스라서를 증거하기 전, 준비에 필요한 본문들은 다른 곳을 보았으나 집회 전체를 통해서는 에스라서가 주제였습니다.
급박한 환란에서, 백목사님이 하나님께 받은 집회의 표어는 어것이었습니다.
"시험 당할 즈음에 미리 피할 길을 G이 주셔서 모든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
당시는, 녹음이 없었기 때문에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의 필기로 그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1979년 이전의 설교들은 필기로만 남아 있기 때문에 원래 설교 내용이 어느정도 복원되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필기노트를 모아야 합니다.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필기의 정확성이나 분량 등에서 2-3명의 필기자를 주목하고 그 분들의 노트부터 작업하고 있습니다.
1952-1979년의 필기시대 전체를 통해서 가장 필기노트가 잘 되어 있는 것은 박혜영집사님의 것이고, 필기 햇수는 적지만 한번 필기를 했다 하면 정확하게 필기하는 분으로는 신용인 전성수목사님의 노트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 분들 노트 외에도 몇몇 분들의 노트가 참고로 제시될 것이나, 30여년치 속필 필체를 번역하여 데이타로 작업을 하는 일이므로 당분간은 이곳 운영자의 관심이 있는 설교나 작업의 편리성 등을 고려해서 작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노트작업을 /초기화면/활용자료/노트본/ 자료로 꾸준하게 내용을 보강하지만, 특히 1975년 5월 집회는 이곳 홈을 방문하는 분들이 오늘의 환경에서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육체의 생명이 보존되고 또 오늘 신앙환경이 주어지도록 하나님 앞에 두렵게 떨고 기도하고 간청했던 집회였으므로 이곳 /자료실/에 따로 내용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