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1975.5.22.목전
일시: 1975.5.22.목전
본문: 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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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2:14, 영혼의 실력은 자기의 육을 지배함이 영혼의 실력이다. 영이 통치하는 그 육을 유혹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그 영혼은 무능한 영이다. 영혼의 성장과 실력은 자기의 육을 통치하는 것이다. 그 육을 아무 것이나 유혹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영혼도 악령이 유혹했으나 유혹을 안 받았다. 끝까지 했으나 받지 아니하였다. 어린 영혼 굳세지 못한 영혼을 유혹하나 범죄 하는 것은 아니다. 장성한 영혼도 같다. 다만 통치력에 차이만 있다. 굳세지 못하다는 말은 그 육을 통치하는데 빈약하다는 말이다.
고후7:1 ‘영과 육에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기를 깨끗게 하자’ 밖에 있는 온갖 영과 육에 것들인데 이것을 자기 안에 것인 줄 알면 안 된다. 온갖 죄 가운데 있으나 너는 범죄 말라는 말이다.
시146장 ‘내 영혼을 고치소서 고치소서’ 내 영혼이란 내 마음이란 말이다. 내 영혼이라면 전체의 자기를 말하는 것이다. 또 성경에 내 영혼이라고 할 때 고쳐달라고 하는 주인 영혼이 있으니 이때 고쳐 달라는 고침은 자기의 마음이라야 한다.
롬8:6, 여기에 기록된 육신은 무엇으로 보느냐?
여기는 인간의 영육을 말한다. 생각할 수 있는 육은 마음에 작용 전부를 총칭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육신이라고 하면 마음이 주체요 고기 덩어리는 소유인 것이다. “여기 육신의 생각은” 영육이라 할 때에 육신을 말한다. 이 육은 부패성 육이 아니다 이 육신의 원어나 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원어나 같은 원어다.
갈5:16 육체의 소욕에 대하여
여기에는 육체가 소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육체에 소욕이란, 육이 영에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육 단독에 소욕을 가진 것을 말한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순전히 육에 사람으로 살았다. 그 사람에 최고의 통치력을 가진 것은 마음이다. 영은 육과 함께 있으나 기능적으로 죽은 것이었다. 이 영은 마귀도 죄도 사용하지 못하고 다만 영은 G만 사용 할 수 있는 특제품이다. G의 충만이 그로 통해 나타날 수 있고 G과 연결을 할 수 있는 특제품이다.
이러므로, 영이 육과 함께 있으나 영이 아무런 기능 작용을 할 수 없고 다만 마음과 고기 덩어리의 작용으로만 사는 것이다. 타락자의 전부다. 마음과 고기 덩어리는 한말로 물질인데 마음은 신비한 물질이요 몸은 하등 물질이다. 이것이 사형은 받았으나 영혼과 나뉠 그시간 까지는 약사해 가는 것이다.
창6장에서 사람이 육체가 됐다는 말은 영혼에 활동이 끊어졌다는 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영육 합동 시는 그것이 산 사람이요 참 사람이다. 그러나 이 새 사람도 당장에 변해 육체가 된다. 영육이 나뉘어 육 단독의 생각이 나올 때에 그것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육신에 생각은 어디서 나오느냐? 전부 마음에서 나온다. 그 생각은 마귀와 죄가 넣어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육에 속한 것을 알아 두라.
시편 주석가들이 영은 떼놓고 모르고 쓴 주석들은 다 들었다. 도덕과 윤리는 주석 할 수 있고 육에 속한 것은 바로 해석 할 수 있으나 영에 대한 주석은 다 틀렸다. 죽은 인간에 살려 놓은 이 새사람의 주체를 인정하면서 시편을 읽어 보라. 다 쉬운 것이다. 그러나 영을 보지 아니하고 보면 중요한 부분에는 다 실패다.
시편 기자가 나는 완전자다. 나에게 잘못이 없다. 대개의 기자가 이래 말했다. 어떤 자는 이 말을 이것은 대게 주석은 인간 쳐놓고는 그렇다고 한다. 이 말은 천하에 악인 보다 제가 의롭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 자랑은 자기 자랑이 아니고 G 자랑이다. 내 영혼은 흠이 없으니 구속은 다음에 올 예수 그리스도가 깨끗이 했으니 이것이 완전자라고 고백했다. 사람을 삼분하면 영 마음 고기 덩어리다. 성경은 사람을 영 육 둘로만 나누웠으니 영은 영혼이요 육은 마음과 몸이다. 사람의 육을 고기 덩어리로만 보는 사람들은 이분설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삼분설로 해석하니 다 틀렸다. 짐승은 영혼이 없다. 사람은 영혼이 있고 죽을 때 영혼이 그 마음을 입고 가는 것이다. 고기 덩어리만 두고 가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 마음 생각 뜻 욕심 영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빼보았다. 이 설이 오다가다 나온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이 교리를 잡으면 전진할 수 있고 이 교리를 버리면 육신 테두리 를 벗어나지 못한다. 육신이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자들은 전진한다. 갓난아이에게 아무리 너희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른다. 먹여 키워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혼도 진리를 먹이고 말씀을 먹여서 기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에스라 3장
2장에서는 G이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그 나라에 극한 보배가 되는 포로 이스라엘을 해방케 되었고 많은 후대를 하여 해방 시켰다. 그들이 해방에 자유와 왕에 허락을 받고 기뻐서 출발 하려고 할 때 왕이 많은 국경을 거쳐서 가는 너희들이 무기를 가지고 가지 못하는 너희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니 군대가 필요한 대로 요청하라. 그러면 얼마든지 제공하겠다고 할 때 이스라엘이 말하기를 우리 G은 천지의 주재시요 모든 것에 능한 분이니 당신만 의지하고 바라고 따르는 자에게는 전능에 손으로 보호해 주시고, G을 멀리하는 G의 백성에게는 진노해서 남에 손에 붙인다고 하였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G이 무능하여서가 아니고 우리의 범죄 때문인데 우리가 또 이분을 노엽게 하려고 어찌 군대를 요구하리까? G이면 넉넉합니다 넉넉합니다 하였다. 이것을 이스라엘 족장들과 두목들이 고백하였다. 에스라 8장 9장에 그들이 전에 그렇게 말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해방 시키라고 시키라고 성공한 G이 이스라엘을 시험하니 이스라엘이 G에게 대한 정상적인 심의를 가지고 있기에 무사히 예루살렘까지 오게 했다. 그 거리는 보행으로 4개월이 걸려야 올 수 있는 거리다. 이들은 무사히 왔다. 3장에 보면 그들이 돌아와서 한 두 달 걸쳐서 사는 가운데 성전 지대를 쌓았다. 성전기초를 정했다. 또 그들이 매일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 그랬는데 성전지대를 놓으려고 지대 딱는 것 보고 어떤 이는 기뻐 감사하여 찬송으로 진동하고 어떤 이는 옛날 기초에 비해 너무 규모가 적어 통곡하는 이도 있어 먼 데서도 들리도록 왁신왁신 했다. 이것이 3장에 기록된 내용이다.
스4:1-6
사고가 났다. 성전 지으려고 시작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도 같이 짓겠다고 요청했다. 그때에 많은 무리가 분규했던 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이 성전 짓고 우리 G을 저희 G으로 삼겠다고 안 하느냐? 비용도 용역도 같이 하겠다고 한 것 아니냐?
무엇 때문에 꼭딱스럽게 제사장 두목들이 이일을 반대하느냐고 논쟁했다. 이때 사마리야 사람들이 저희들을 같이 짓도록 요청하다가 거부 당하니 방해하여 14년에 중단 됐다. 고레스 왕에게 고소하여 중단 시킬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언제는 고레스 왕이 성전 짓고 그 비용은 자기가 당하겠다고 하더니 그 방백들로 그들이 협조하더니 이 왕이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성전 짓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묵인했다. 이래서 사마리야 사람들이 방해하니 중단했다.
이때에 이스라엘이 고레스 왕에게 이 방해를 저지해달라고 요청해보아야 대답이 없었다. 사람이 가면 말하기를 가서 의논하여 잘 지어라 하고 또 사마리아 사람들이 와서는 말하기를 그놈들이 찾아왔지요. 방해자들이 찾아오니 너희 마음대로 방해해라하고 왕도 방해하고 왔다. 이리하여 다리오 왕 2년까지 성전 못 짓고 있었다. G이 고레스 왕에 마음을 감동 시켜놓고 성전을 다 짓도록 하지 아니하고 왜 계속케 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하는가?
반대자들은 말하기를 공연히 G이 해 주셨다. G이 해 주셨다고 하더니 지금은 G이 왜 못 짓게 했느냐 하고, 이스라엘의 다대수는 예수아와 스룹바벨 이런 사람들을 마구 대적하였다. 억지로 G을 끌어다가 붙이지 말라. 사마리야인들이 같이 짓자고 할 때 구별 구별하더니 성전 못 짓고 있으니 꼴좋다 하는 무리가 많았다. 반드시 G의 뜻에는 반대자들이 왔다. G이 어떻게 왕에게 감동했는지? 또 어떻게 방해해서 성전이 중단 됐는지? 공연히 구별 구별하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을 배척했기 때문에 성전 못 짓게 했기에 배척이 일어났다.
처음부터 고레스 왕을 G이 감동해서 된 것이 아니고 그 왕에 주관행사였지 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구별해야 한다. 성전 중단이 선지자들과 두목들이 사마리야 사람들을 가입 시키지 아니하여서 그런지? G의 감동이 없었는지? 어떤지?
우리나라에 대한 형편을 살펴보자!
36년 동안 일본인에 식민지로 있었던 우리가 죽어도 신사참배는 할 수 없다고 하여 확정이 되니 G이 긍휼을 베푸셔서 G이 이 한국에 해방과 독립을 주셨다. 38 이북은 공산이 덮어 오늘날까지 내려오나 이남은 자유를 주셨다. 해방 후에는 G이 신,불신자가 다 우리 G을 높이고. G을 고귀하다 영하는 기독교 전성기를 당했던 것이다. 이런데 교회가 이정권에 속해서 G을 떠나서 신불신간이 완전히 대립이 되어져서 G이 처음 배푸셨던 은총이 다 떠나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또 G 의 종들이 살아있어 교회에 경성을 외쳤던 것이다.
교회 안에는 교권싸움이 날로 더해가고 분열하였고 교회를 이용하여 가정이 살고 제가 출세 하려고 하고. 이 교회를 또 뭉쳐서 이용해보려는 무리가 더해 가고 있었다.
지금은 김일성이가 밀고 내려와서 다 죽이고 적화통일을 시키려고 중공을 다녀오고, 중공이 탱크와 많은 전쟁 물자를 제공하려 하고 무기 공장은 많은 전쟁 물자를 제공하려 하고 무기 공장은 24시간 가동하고 38선 부근에다 무기를 실어다 놓고 남침준비를 완료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도피할 수 있는 목사들은 조국은 적화가 될 것이라고 해 외국에 피란 이민을 갔다고 한다. 왜 이런 조마조마한 이런 현실을 만났느냐? 왜 성전이 건축 중단이 됐느냐?
그 원인이나 우리 원인이 꼭 같다. 반대자들은 말하기를 G이 감동은 무슨 감동 공연히 G에게 영광을 돌리지 하고 또 사마리야 사람들이 왔거든 같이 성전을 지을 일이지 무슨 신본 신본 구별 구별 하고 정치니 인본이니 하고 까다롭게 하고 있느냐 그러니 성전 못 짓고 그러니 교회가 외롭지 아니하냐 했다. 이래서 성전 짓다가 중단된 원 인을 각각 다르게 하였든 것이다. 화평을 취하지 아니 했기 때문이다. G이 감동 시켜 줘 봤자 사마리야 사람들이 돈 갖다 주는 것만 못하다 하는 자들이 있었다. 왜 성전 짓다가 중단 되였느냐, 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와 나 개인도 사는 것이다.
그 원인은 3절에 있다. 바사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우리 G의 전을 건축한다고 한 것이 큰 잘못이다. 3:7 어디서도 써 먹는 것이 고레스 왕을 내 세웠다. 이것을 G이 심히 섭섭해 하셨다. 고레스왕이 짓게 했는데 고레스 왕이 또 못 짓게 했다. 외부는 사마리야 사람들이 못 짓게 한 것 같으나 실은 고레스 왕이 못 짓게 했던 것이다. 사마리야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적이다. 왜 이들이 여기에 뛰어 들었느냐?
3:3, 무리가 열국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 위에 쌓고, 이것이 원인이다. 그들이 포로에서 해방을 받을 당시는 그들은 우리가 G 한 분으로 우리의 전부를 삼지 아니하다가 잡혔으나 이제는 회개하자 하여 포로 중에서는 남편만 보고 사는 정절부인처럼 몇 10년 살고나 G의 노가 다 풀리었던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매로 때린 후에는 마음이 아프니 혼자 가서 우는 것이 부모 마음인데 이와 같이 G이 하신 것이다. 자녀가 돌이키면 그 부모의 감정이 노가 다 없어짐같이 G도 이러하신데, 히스기야가 G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한 것을 회개하니 앗수르 군대를 절단 냈으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실수하여 그것이 이 상태로 가다가는 얼마 후에는 포로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포로가 됐다.
다음은 포로 당해 간 자들이 G을 의지하기로 하여 뜻을 정하여 사니 G이 구원에 해방을 주셨다. 그때에 이들이 해방에 기쁨으로 들떠서 또 동요될까봐 왕에 마음을 감동해서 군대를 주겠다고 하니 이들은 이것을 거절하였다. 이때에 G은 너희가 해방에 기쁨에도 네 마음들 이 들떠지 아니하였구나 하고 기뻐하시고 그들의 목적지에 무사히 가게 하셨다.
이런데 해방을 받아 본국에 돌아와서는 겁이 나서 성전 아닌 곳에 산당에서 제사지내면 죄 인데, 성전 짓지 아니하고는 제사 지낼 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G이 두려워서 제사 지낸 것 아니고 열국이 두려워서 G이 보호해 달라고 제사를 드렸다. 이것이 사람 중심의 제사다.邦이방을 두려워 했다.
모든 죄는 G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함에서 범죄했던 것이다. 그런고로 두려워하는 자는 성밖에 있다고 계21:8에 말씀했다.
이들은 바벨론에 있을 때는 사자 굴에 넣어도 두려워하지 아니 하였었다. 이런데 이곳에서 와서는 열국을 두려워하였다. 성전을 지을 일이지.
우리는 현재 어떤가?
굶어 죽을까봐 신앙을 팔고. 공산주의 침략 당할까봐. 금 덩어리 모으는 것이나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목장에 양떼를 버리는 일이며. 상전 비위 털어지면 직장에서 쫓겨 날까봐 가족 비위 털어지면 살림 못살까봐. 이런 것이 다 두려움에 종이 된 것이다. 온갖 죄를 범하는데에는 왜 죄에 종이 되느냐? 이것은 두려워함에서 죄를 범한다고 하였다.
예수 믿는 자가 G 비위 거슬리는 것이 두렵지 무엇이 두려운가? 이것이 망할 일이다. 교회가 유엔군 철수 반대 메세지 낸 것이 큰 죄악이다. 이것이 신사참배 보다 더욱 두려운 죄이다. 억간이 아니라 화간이다.
본국에 돌아온 이스라엘이 G을 두려워함 보다 열국을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당 장. 나를 돕든 자가 나를 해하는 자로. 나를 높이든 자가 낮추는 자로 오며 위함 받고 귀함 받든 자가 정반대로 뒤엎어지는 것이다. 이러니 그들에 입에서 나온 것이 무엇이겠는가? 날마다 써먹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레스 왕이 성전 지어라 했다고 말마다 이것을 꺼냈다. 이것이 약 4:4의 간부 행실이다.
우리의 피란길은 G 한분만 두려워해야 한다. 그분에게 거리낌이 없이 하자. 그분이 책임 지는 사람과 행위가 되라.
죄를 이기는 것도 두려움에 있다. 죄를 범하는 것도 두려움이 있다. G을 두려워하면 범죄 할 수 없다. G을 두려워하면 의를 행치 않을 수 없다. G을 두려워하면 딴 것은 의지할 것이 없다. 두려워함은 나무이다. 나타난 것은 열매이다. 내가 G 거슬린 것은 열매이다. 뿌리는 두려워함이다. 이것은 하나에 큰 원인이다.
이 두려움이 있기에 G의 말씀을 지키고 G께 거리끼지 아니하려고 전심전력을 기울려 살아야 한다. 제가 잘못하면서 세상이 두려워 교회 속에 파고 들어오고 세상이 무엇을 줄려고 하니 교회를 뚤뚤 뭉쳐서 팔아먹고 있으니 이것이 가증스러운 죄악이다. 이 가증 서럽게 여기는 자에 동지가 되라.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와 같이 변질되지만 아니하면 고레스 왕을 들어 내여 말하는 것 보다 G을 내여 말할 것이다.
그러나 G을 들어 내어 말하지 아니하고 G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이방을 두려워하니 사마리야 사람이 개입했다. 마귀가 감동 시켜서 악하게 했다. 마귀에게 누가 시켰는가? G이시다. 아합왕 때 미가 선지자가 하늘에서 열린 회의를 보았다. G이 아합에 징계를 의논할 때 옆에서 마귀가 있다가 내가 가겠다고 했다. 이 아합은 욕심이 많은 자이니 이긴다고 하면 속을 것이니 거짓 선지자 입에 들어가서 속이겠다고 해서 가서 속일 때 참선지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가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 마귀는 G이 부리는 악신이라고 하였다. 사울을 괴롭힌 것이 이 악신이었다.
해방 받은 이스라엘이 나를 이렇게 일찍 배반하였으니 누가 벌하겠느냐 하니 악령이 와서 내가 기지요 하고 왔다. 우리 주님은 악령과 사람을 주관하신다. 악령이 와서 사마리야 인들에 마음에 들어가서 악해져서 성전건축을 방해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활동계도 사람에 심리계도 영계도 우주도 다 G이 주관하신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한다. 성경지식을 알아야 양심을 깨끗게 하여야 하고 행위가 깨끗하여야 자유할 수 있다. 행위를 정리치 못하면 아무 자유도 못한다. 자신이 깨끗해지면 G을 찾아갈 수가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인간들이 말해놓은 것을 99% 배우고 있다. 이러니 오늘도 설교준비는 주석보고 신문 잡지 예화를 보고 난 다음 설교준비를 해놓고 본문을 찾는다. 이것이 극도에 타락에 길이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해방을 받아서 와서 성전 짓다가 중단된 원인이 무엇인가? 거기 보니 그 들에게 처음에 군대를 주는 것도 거절하니 G이 도와 무사히 와놓고는 이제는 열국이 두려워서 번제를 드리면서 내가 다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다 바치겠습니다. 했으니 얼마나 간사한 제사였느냐? G은 사람의 마음과 뜻과 그의 행위를 보시는 G이시다. 장막절은 광야에서 지키던 절기인데 지킬 때도 아닌데 장막절을 지켜 헌신했다.
그들은 열국이 두려웠음으로 그 열국이 무서워하는 고레스 왕을 자꾸 내다 팔아먹었다. 그러나 .
3:7-10에 보니 상관도 없는 그 부근 민족들이 일어나 당일에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여 이스라엘을 조져 됐으니 제가 견딜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 곱게 보이고 인정받는 것이 귀함
여기에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와서 뭉쳐 연명으로 상소했다. 11-24 꼼짝 못하고 당장 성전건축을 중단했다. 땅위에 사람들은 다 이권주의인데 이 이권을 들어 상소 하니 당장에 중단 시켰다. 우리는 땅에 있는 조건을 무시해야 한다. 이 말은 G과 비해 무시하라는 말이다. G다음으로 땅에 있는 일을 중히 여겨야 한다.
땅에 일은 이치에서 되고 또 지방 제도에서 정해진다. 이런 것이 중하고 힘이 있으나 절대에 것은 아니다. 그 사회에 제도는 그 사회에 개인보다 강하다. 과학에 이치가 눈에 보이는 물건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과학적인 사람이 되고 그 사회에 제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과학과 세상제도를 통치하시는 분이 있으니 그분에 앞에서는 그것이 나에게 절대에 것이 되지 못한다. 다만 G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과학에 사람과 현실에 제도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G 과 대립이 될 때는 그것을 버리고 G 을 따라 살아야 한다. G을 버리고서는 인간제도를 지상에 것으로 알고 살면 망한다. 김일성이는 과학 지상주의라 하나 실은 자기 지상주의이다. 공산 지상주의가 아니라 가장 지금은 군왕정치를 하고 있다. 이북에 40세이하는 동족이 아니다. 왜 사상 지식이 바뀌면 동족이 아니다. 정치가가 이것을 들어야 한다. 속은 이렇게 다른데 언어가 같으니 오히려 큰 유혹이다. 40세 이하는 다른 지식으로서 교육받은 것이 없다. 사람은 G과 떨어지면 몇 푼어치 안 된다. 끈 떨어진 두fp박이다. 시대에 조류와 풍조에 밀려다니지 아니할 수 없다. 제가 세게 날뛰면 제거 된다.
우리는 성경을 배워야 한다. 또 이 성경 안에는 우리에게 오신 영감이 내재해 계신다. 그러므로 말씀은 참되다고 인정하고 살면 나의 생활이 정리가 된다. 많고 적은 것을 조절해 주신다. 능한 솜씨로 조절해주신다. 살림이 가면 가는 것이 좋다. 올라 가면 가는 것이 좋다. 우리는 일방적인 지식이니 조절할 줄 모른다. 평안하면 좋은 줄 안다. 아니다. 어느 것이 좋을지 모른다. 모든 것은 적당해야 좋다. 지식으로 망하는 사람은 많으나 무식해서 망하는 사람은 적다. 우리는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좋을런지 모른다. 우리는 주님이 공부 시켜 주시는 대로 할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도 못 믿는 자가 영생을 어찌 믿겠는가? 우리는 어 디로 가야 좋을지 모른다. 죽임을 당한다고 불행인가? 죽음이 생명보다 낳은 것이 있다. 이세벨 같은 인간은 일찍 죽었더라면 영원히 비참치 않았을 것이다.
스5장
5장에 보면 성전 건축이 새로 시작이 된다. 성전 건축이 잘된다. 어떻게 5장에서는 성전건축이 잘되느냐 하는 것보고 찾는 것이 우리가 환 란 에서 살아나는 길이다. 4장에서는 어찌 중단이 됐으며, 5장에서는 어떻게 형통케 됐느냐? 여기에서 내가 흥하고 망하는 이치가 나오는 것이다.
인간은 모질다. 인생이 환 란 속에서도 모질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행복 중에 살면서도 기쁜 줄 모르고 징거 되고 사는 것이 시야가 좁은 연고다.
배울 것
①무엇 때문에 신세가 가련해졌느냐?
②무엇 때문에 세계에 으뜸이 됐는가?
③무엇 때문에 갑자기 포로가 됐는가?
④무엇 때문에 존귀해 졌는가?
⑤무엇 때문에 몰린 신세가 됐느냐.
⑥무엇 때문에 5장에 형통할 수 있었는가?
이렇게 자세히 가르쳤다. 수술은 아프다. 회개는 아프다. 그러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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