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1975.5.21.수전
일시: 1975.5.21.수전
본문: 에스라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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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사람의 이름인데 이 사람은 바벨론으로 포로 됐다가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온 아론의 자손이다. 이 분이 본서를 기록하였다. 대하32:16-31, 이스라엘이 앗수르 군대에게 패망케 될 때에 히스기야 왕이 저희 국력으로 모든 대적들을 대항해 보았다. 그러나 대전에서 패전을 거듭하였다. 이제는 예루살렘 조그만한 성만 남아 있었다. 그때에 히스기야 왕이 깨닫고 G의 백성이 G 의지하지 아니하고 다른 것들을 의지해서 이웃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도움을 받아서 앗수르 군대로 더불어 싸우려 하여도 패전하게 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 이 죄를 회개하였다.
G의 백성이 G만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에게 도움을 입는 것을 부인하고 망녕되이 한 것을 회개하고 남은 이스라엘 백성과 성직자들이 일제히 회개 운동을 하였다. 밥을 굶고 재를 쓰고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서 회개했다. 그 회개하는 것이 G보시기에 인정할 만큼 회개 했든 것이다.
그때에 G이 이스라엘을 도와서 G의 종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회개했으니 G이 너를 도와서 원수가 다 없어질 것이요 내일 아침에는 먹을 것이 풍부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듣기에 이치에 부당했으나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지키시는 G께서 그날 밤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전부 시체가 되도록 하였다.
그들이 아끼던 군량은 이스라엘 것이 됐는 고로 오랫동안 굶주리든 이스라엘은 밤사이에 식량문제가 해결이 됐다. 18만 5천명을 이스라엘이 손 데지 아니하고 멸한 것은 G이 하신 것이요 이스라엘이 한 것이 아니다. G이 이렇게 했다.
G앞에 옳지 못한 행동 입술 욕심이 모든 잘못을 철저히 회개 할 때 그들의 군비가 없어도 승리했다. 이것이 G의 백성들이 살 법이다. 이 법이 G의 교회의 전법이요 애국이요. 교회로서 나라를 돕는 애국이다. 구국이다. 오늘날 구국운동으로 새마을 사업에 교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기도나 하는 것은 낭패이다. 이들이 있으니 남침이 있을까 우려된다. 똑똑히 기억하라. 이스라엘인 우리들은 전쟁도 구국도 독립운동도 세상이 하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는 것을 알라. G의 백성들에게만 주신 특별한 법칙이 있다. 마치 새와 물고기의 사는 법이 다르다. 고기가 새의 법을 쓰면 죽는다. 새가 어찌 물에서 살겠느냐. 이와 같은 것이다.
불신자로서 인간에 생의법칙 투쟁에 법칙 구국 출세 임신 양면의 법이 우리 기독자들의 법과는 아주 딴판이다. 오늘 기독자가 이와 같은 생의법칙을 쓰니 그런 자는 천대를 받는다. 옳은 것을 소망하고 성도에 소망을 가져도 그 방편이 세상적이면 실패다. 또 아무리 방편이 성경적이라도 소망이 세상적이면 실패다. 동기와 방편도 목적도 G의 백성에게는 상이 모르는 구별한 생의법칙이 있다. 신자가 불신자와 같은 교묘한 법칙을 쓸려고 하면 자기의 꾀에 빠진다. 신자가 검검 절약하면 된다고 하는 것도 불신자로 살 때는 됐으나 지금은 안 된다. 절약 열심 수단 능란한 운동으로는 안 된다. 일찍 안 망하면 늦게 망한다. 늦게 망하면 더 큰 저주다.
G의 백성은 자기에게 대한 모든 것은 전부가 G에게 매여 있기에 그분이 내게 있는 모든 화복을 정해주고 모든 면에 축복해주시도록 그분에게 맺고 끊어야 한다. 달리 방편을 쓰면 G께서는 그 방편은 실패한다는 것을 보고 듣는 모든 사람에게 실패자로서의 구경거리가 된다.
히스기야 왕은 회개로 G의 백성에 방편을 바로 취해서 G의 도우심을 입었다. 그는 말하기를 해산할 기약이 됐으나 해산할 힘이 없다고 했다. 이제까지 불신한 일에 죄를 회개하고 G께 신망(信望)만 가지면 되겠으나 G의 응원이 있을 만큼 회개 할 힘이 없습니다 하는 말이다. 그런고로 재를 무릅쓰고 회개했고 G이 인정하는 회개를 할 때 그 밤에 소리도 없이 구원했다. 이렇게 하시는 G이 우리를 돌보아 주실 수 있도록 하여 야 하는 것이다.
그때에 세계에 강대국들이 히스기야 왕을 찾아왔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들으니 앗수르를 하루 밤에 멸망 시킨 강국이니 이 나라와 화친하려고 찾아 온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조상이 될 히스기야 왕이 실수했다. 강국에 사절들이 묻기를 당신들은 어떻게 세계가 올릴 승리를 했습니까? 하였을 때 히스기야 왕이 교만해서 국고를 보였다. 보물고와 군기고를 보였다. 군대를 보였다. 가증스러운 행위를 했다. 저희들 에 부요로 앗수르를 이겼느냐? 왜 저희가 회개하니 G이 도우신 것을 자랑치 못했느냐? 이것이 망령이다. 망할 죄다.
이러니 G이 대사들의 마음을 돌리니 이 창고와 군기고는 저희 나라에 써다가 남은 것만 못하고 시골창고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칠 마음을 먹고 그들이 돌아갔다. G의 선지 이사야 가 G을 찾아가 만나니 G이 이사야 에게 말하시기를 이스라엘을 바벨론이 찾아와 멸해갈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이 성경이다.
인간이 불쌍하고 가련해서 제 신세가 비참하게 된 자들이 한줄기 G의 말씀을 붙잡고 . G의 종들을 붙잡고 회개하면 나도 희망이 있습니까? 하고 울면서 제 잘못을 낱낱이 회개할 때 다급해서 회개하니 G이 보시기에 축복할 회개이다. G이 그에게 축복해 주니 이스라엘이 승전한 것같이 모든 일이 잘 되어진다. 몰려서 죽을 지경에 빠진 자가 경제가 해결되고 출세가 된다.
그리고 난 다음 세계승리에서 히스기야 왕에게 찾아오듯이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있다. 여보시요 어찌 그런 사업을 착수 했소, 어찌하여 地位지위가 올라갑니까? 하고 칭찬을 하니 - 떡 말하기를 내가 돈벌이 될 것을 둘러보고 했고. 내가 공부도 잘했어 하고 말했다가 - 다음 다른 사람이 또 칭찬하면 제 말을 제가 인정하고 간이 커진다.
이러니 사업 때문에 새벽기도 빠지고 예배시간 빠지고 하더니 심방 가서 권면하니 처음에는 듣겠다고 하더니 다음에는 듣기 싫다고 하더니 다음에 또 가니 나는 예수 믿어도 G, G. 하고 그렇게 믿는 것은 싫습니다. 하더니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반발을 한다. 반발을 하니 부 득이 이 예언을 한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하고 말하니 이제는 듣기가 싫다고 하다가 망하는 것이 한국교회다. 제까짓 것이 G의 진노를 막겠는가?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모르는 격이다.
회개하고 G의 축복 받고 나면 후에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칭찬하러 오는 자들이 있으니 이것이 저주의 시발이 되기 쉽다. 얼마나 군기가 있소 군대는 얼마나 강하다 할 때 아닙니다. 우리가 예루살렘 하나만 남았을 때 회개하니 우리는 전쟁에 하나도 안나갔으나 G이 18만 5천명을 하루 밤에 죽였습니다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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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얼마나 좋았겠느냐? 히스기야 왕이 제가 무슨 정치를 잘했다고 무슨 무기가 많다고 자랑했느냐 저와 백성이 이 죄 때문에 멸망하였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자들이 있다. 회개도 잘됐는데 이제는 제 주장 세워 영광 다 따 먹고 있다. 이런 자는 강권치 아니하고 속히 망하고 돌아오게 내버려둔다. 영 육이 참혹하게 망하여 공명이 다 없어진 자들이 있다. 망해도 일찍이 망한 것이 좋다. 기독자가 G의 법칙을 떠나면 일찍 망한다는 것을 변 개 못할 G의 법이다.
기독자들의 대세는 망한 것이 또 회개하고 다시 와서 더 망할 것이 없는 자가 다시 와서 믿는 자가 많다. 젊을 때 어릴 때 망해 가지고 회개하고 잘 믿는 자가 있다. 이러기에 회개하고 못 낫다고 하는 자들이 잘 믿는 자들이 많고 世上세상에서 들어 난 자들이 잘 믿기가 어렵다.
이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계속함으로 G의 축복이 계속되는 사람은 아주 귀중한 사람이다. 교회 안에 보내다 이런 사람들은 많지를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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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주전 700년에 바벨론에 포로 당해갔다. 포로로 간 백성들이 그들의 선조들이 G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G의 은혜를 감사치 아니한 교만한 죄를 회개하였다.
그들은 결심하기를 G을 노엽게 하고 멀리하면 망한다고 하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들의 어떤 형편에서라도 G만 의지하고 그의 긍휼을 입음으로만 살려고 하는 이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단합해서 이 생활을 계속하였다. G을 의지하고 배신치 아니하고 회개하려고 하니 안타깝고 어려운 사정이 많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해서 그들이 포로로 간 것을 책임지고 G을 기쁘시게 하고 G 의 노를 풀었다. 그들은 우리가 G을 섬겨도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바로 깨달 았다. 이들 중 다니엘 같은 이런 분들은 뜻을 정하고 살았다. 그는 바벨론에 부강한 나라에 영광이 눈앞에 어른거리도 상관치 아니했으며 다리오 왕 같은 이는 왕이 하루 종일 내가 너를 도와 주겠다고 해도 상관하지 아니하고 G의 법만 지키기로 하였다.
그런고로 그들은 해방을 받았다.
그들은 자기의 선조들이 G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G의 은혜를 받고 저거 잘 났다고 하고 G한 분이 우리의 전체도 되고 전쟁에 승리도 되고 G이면 모자라는 것이 없다고 이렇게 G을 대우치 아니하고 당장에 망령되게 군기 국고 군대를 보이고 나면 다른 사람이 떨 줄 알고 아직도 이 히스기야 왕은 보이는 군대만 보고 두려워하고 보이지 않는 G을 두려워함이 없다. 달아보니 가벼웠다.
오늘 기독자가 천지나 무엇을 보아도 내가 G만 크지 더 두려워해야지 하고 우리가 G을 알아서 대우를 하는 것이 이것이 모든 시험을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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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신다. - 이 말을 인정하고 한자리에서 듣고서 이 말씀을 써서 피란하는 자들은 이 한사람을 통해서 많은 국방도 되고 사회 개량도 되는 것이니 이런 분들이 이 자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을 인정치 아니 하므로 멸망하는 자들이 이 자리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없기를 바란다. 자기는 알 것이다. G이 G의 사람들에게 주실 때 언제든지 사전 예고로 주신다. 경고로 주신다. 여러분이 이 세대가 어찌 변해 갈런지 모르거든 각 교회에 신령한 종들에 설교를 들어 보라. 사람은 다르다. 영은 같은 한 영이니 같은 설교이다.
이스라엘이 이것을 회개할 때에 회개하면 G이 우리가 할 모든 것을 주시고 대신 해 주시고 우리가 G앞에 회개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혼자 담당해 주실 것을 포로 중에 있는 백성들이 믿었고 놓지 아니할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정권(00)을 위해 특별강좌를 만들어 놓고 교육 시켰으니 G 가운데 있는 청년들은 정권이 자기들 앞에 어른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기의 재능으로 왕의 공부와 진미와 영양이 인간에 게 배운 지식으로 자기는 자기의 미래의 행복을 도모하려 하지 아니 했다. 왜 G을 믿지 않던 저거들이 또 그 짓을 할 수 없기에다.
그러니 뜻을 정했다. 공부하려면 영양 보충이 필연인데 그래하면 G이 섭섭할까 해서 못했다. 이와 같은 결심이 있는 것이 쓸모 있는 인재다. 고기 덩어리만 살이 쪄서 번들거려 대가리만 흔들고 다니면 무엇하랴?
포로로 갔든 이들은 바벨론에서 구원 받는 것이나 어떤 출세나 행복을 회개하는 것 외에 달리 찾지 아니하였다. 잘못하던 것을 고쳐 고쳐 실행하는 이것 하나만 방편으로 삼았다. 이러니 그 회개의 그릇이 찾을 때 고레스가 왕이 되던 해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하였으니 G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말 한대로 행하신다.
G은 우리에게 말씀해 놓으시고 한 말씀도 빠짐없이 이루신다. 오늘도 예언했다. 이것이 예언이다. 이 시간 증거가 G의 예언으로 주신 말씀이다. 거듭 거듭 인식시킨다. 성경만도 족했으나 동요하니 또 말했다. 시대적 국가적만 아니라 과거에 이 법칙을 지켜 응답 받은 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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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응했다. 성경을 본 자들은 이렇게 된다고 한 대로 그대로 된 것이다. G의 말씀에는 빠진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고로 성경을 본 자들은 세상을 다 본 자요. 성경을 안자는 세상을 다 안 자다. 성경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과 시간. 공간 종별을 초월한 광대한 말씀이다. 인간의 무책임한 말이 아니다. 획 하나가 우주보다 더욱 무거운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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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 百姓백성들이 풀무불이 있어도 사자굴이 닥쳐와도 50척 되는 나무에 달려 죽는 한이 있어도 G께 정한 뜻을 굽히지 아니하니 그들의 전부가 합심하여 회개하니 이 백성이 이렇게 할 때 G이 파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 시키며 왕이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하늘에 계신 G의 영광을 공포하며 말하기를 해방을 줄 것이니 성전을 지어라고 하였다. 성전을 지으려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물을 주라고 명하였다. 이것이 천만뜻밖에 일이다. G이 감동을 시키니 왕이 도우려고 했고 온 백성들이 힘을 다해 도왔다. 사람이 소 한 마리도 그저 안 주는데 소보다 더 소중히 부려먹을 수 있는 종 이스라엘을 본심으로 우대해서 보낸다는 일이 그리 쉽소? 이제까지 종으로 쓰든 자들을 소와 같이 요긴히 부리든 종들을 다 내여 놓는 것은 G이 감동치 아니하면 안 될 일이다. 이렇게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는 G이시다. 인간의 심리를 주장하시는 G이다. 나의 앞에 섰는 이 사람의 마음을 악하고 선하게 하는 것 이 주님에게 있는데 이 악하고 무능한 인간에게 살려달라고 손을 비는 것은 참 기독자가 못 낫다.
이웃이나 친척이 조금만 잘살면 가서 아부해서 도움을 받아 살려고 온갖 아양을 떠니 참 기독자가 못 낫다. 구호물자가 나오니 신학생들이 공부를 못했다고 한다. 어떤 분은 우리 아버지가 직접 주지 아니하면 내가 안 입겠다고 했다. 입을 것이 없어도 안 입겠다고 하는 자들은 지금 그들은 다 승부 해 져 있다. 심히 존귀해져 있다. 창자 없는 기독자가 참 못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자기의 마음에 맞는 식모 하나만도 빼앗아 갈려고 해도 안줄 것 인 데 그 많은 일꾼 보배로운 종들을 다 내여 보냈으니 보낼 뿐 아니라 환영하고 성전 짓는 데 예물을 바치게 바치게 했다. 이런 G이다. 이런 G을 모신 우리들인데 김일성 정일이 그 까짓자 들에 마음이 무슨 상관이 있나.
G이 인간 심리를 움직이니 5절. 전 국민이 마구 협조하여 예 물을 드렸다. 어떤 곳에서는 예배당 짓는데 불신자들을 동원 해준 일도 있다. 우리 앞에 악 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어떤 사람도 그 개인이 아니다. 주님이 다 그렇게 했다. 성도는 다 이러한 것이다. 사람보고 무시하지 않는다. 다윗은 시므이의 욕을 듣고 복수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였다. 그러니 긍휼을 입었다. 만일 그를 죽였다 하더라도 G은 못 죽였을 것이니 저만 망했을 것이다.
7-11절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와 히스기야가 망령을 부린 것을 회개치 아니하니 그들의 자 손이 그 죄악으로 관영하니 느붓갓네살을 감동 시켜 이스라엘을 붙잡고 성전을 헐고 성전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우상을 섬기는 전각에 두었다. 얼마나 모욕이다. 누가 이렇게 하였느냐. G 이 그렇게 하셨다. G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소련 중국 이북에 있는 성도들을 G이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두는 것 아니다. 핍박을 받도록 두는 것이 아니다. G이 이방의 마음을 감동해서 꺾어댄 G의 백성들을 치켜든 것이다. G이 미워서 성전에 쓰던 모든 기명을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 이러니 포로 중에 있는 자들이 어려 워도 G의 법을 계속 지키니 이제는 G의 성전에 것을 소제하고 그것을 바벨론 에 가지고 갔으나 잘 간수케 해 짓고 성전 제 자리에 두고 G을 섬기라고 이렇게 한 분이 우리 G이시다.
그런고로 G의 백성들이 이 G 한 분으로 전부를 삼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생활이다. 그분 한 분이면 모자라는 것이 없다. 그분이 물질에 부요케 할 수 있고 또 권세도 주실 수 있다. 그분은 없는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다. 지으신 분이 그 분이다. 그런데 지어놓으신 것을 이리 저리 옮기는 것이야 쉽지 않으랴 망령된 자가 있으니 교회는 답답하다. 천국의 근본이신 G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가 발꿈치에서 정수리까지 범죄 한 것 뿐이니 누가 보아도 망했다고 알 수 있고 천대하고 조롱할 수 있도록 망하게 한다.
이렇게 망한 자가 죄를 지여서 망한 줄 모르고 G을 섬겨도 망했다고 하니 탄식이다. 그렇게 섬겨도 안 망하게 하면 G이 아니다. G을 우상같이 망령되이 섬겼는데 안 망하면 G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에게 성경대로 보 응 하시는 G이다. G을 섬겨도 이렇게 되였다고 하는자 얼마나 망할려고 그러는지? 이런 어정 된 깨달음을 가지도록 하려고 얼마나 마귀가 일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다가 안 되니 업을 바꾸고 이사를 가고 직장은 죄를 지여도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더욱 가증스러운가?
우리는 이런 것이 필요 없다. 우리는 회개하면 교회에 대해서도 직장 가정 모든 것에서 이분이 잘해주니 전부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이분에게 나를 맡길 수 있는 이 사람이 되여야 한다.
그러면 G이 나의 마음도 감동시켜주시는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의 마음을 G이 감동 시키시며 나에게 할 것을 지시하여 주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주관과 나의 주관은 다 어리석다. 이 주관을 꺾어라. G은 이렇게 사는 자를 붙들고 잡고 만들고 계신다. 영원무궁이 이렇게 G 을 찾고 기다리는 자에게 G은 그를 통해 만물에까지 구제하시려는 것이 G의 뜻이다. 엡 2:23
그런고로 이 G을 내버려두고 회개할 줄 모르고 멸망에서 멸망으로 가니 업을 찾아서 장소를 찾아서 나라를 찾아서 어 데로 갈 것인가? 이 복음에 무대를 버리고 간 자들이 무엇이 되겠나? 피란 간 자들은 한국에 적화가 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되면 제가 잘했다고 할 것이 기대다. 그러니 죄를 범하고 나면 죄에 편에 사람이 더 된다. 그러므로 악한 자는 더욱 악해지고 선한 자는 더욱 선해진다.
이 에스라서에 모든 사람의 마음은 우리 주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강제다.
G의 사람들에 마음만 G이 제한된 자유를 주신다. 특대다. 아버지는 아들과 할 일을 의논한다. 그러나 소에게는 의논치 아니하고 몰고 간다. 모든 불신자의 마음은 G이 강제를 하신다. 그러나 택한 자들의 마음은 인격 대우를 하신다. G의 종들을 통해 권유와 교훈을 주신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섰으니 그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행위는 본받지 말라. 교훈을 받아라. 교역자면 다 교역자냐?
렘23:23
G의 선지자의 이름을 가진 자중에 G의 말씀을 의하지 아니하고 세상 앞잡이가 되고 이권을 삼으려고 사사로이 말하는 자들을 처하라고 했다. 이런 자들은 전쟁에서 다 죽이겠다고 했다. 이런 거짓된 선지자들을 용납하는 백성들도 전쟁 폭풍 가운데서 흩으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의 마음은 G이 강제로 이용해 G의 뜻을 이루시고 성도에게는 G의 말씀을 느끼고 깨달아서 G의 뜻을 바로 찾게 해주신다. 선지자가 자기 안에 G의 기름부음에 인도를 받도록 준비치 아니하는 자는 밭에도 교회 거름 에도 쓸 데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모든 사람에 마음을 자유자제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모든 사람의 행동을 자유자제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아부하고 의지하는가? 우리 신자는 모든 행동이 G에게서 나와야 한다. G의 것이 - 영혼으로 - G 의 뜻이 우리의 신앙 양심으로 - 우리에 지체로 - 우리의 활동무대로 퍼져 나와야 하는 것이다.
예, 논에 구멍이 났으면 밖에서 막지 말고 속에서 막으면 간단하게 막아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난 전부의 해결은 인간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주님과 해결을 지우면 된다. 이것은 회개로만 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자는 특수한 특재다. 사람은 만물 중에 특재다. 거기 보다 우리는 더욱 특재인 것이다. G은 우리에게 대한 취급과 대우와 또 삶과 행동이 다르다. 그러니 전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의 목적이다. 우리가 신자의 행위를 하면 성자가 된다. 불신자의 행위를 하면 불신자와 같이 되니 영광과 기능이 없다. 같은 벌이지만 사료를 달리 먹으면 동봉도 되고 왕봉도 된다. 이와 같은 이치다.
그런고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우리 주님이 주장하고 계심을 일장에서 굳게 잡아야 한다. 당신같이 목이 나쁘고 값이 싼 자리에서도 장사가 되니까 자리가 좋고 제가 상술이 좋은 줄로 알고 있으니 이자에게 G이 하실 일이 무엇이겠는가? G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자인 줄을 잊은 자이니 망할 자이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있으니 참 그런 줄 알고 있는 것은 목이 좋고 상술이 있다고 생각하는 G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잊은 자는 망할 자다.
그러나 복 받고 흥할 자는 누가 어떤 칭찬을 해도 G이 하셨다고 하니 언제 어디서나 어느 때나 G이 하셨다고 만 하니 이 자식은 뭐이라서 밤낮 G이 G 하더라 하고 비웃으니 이 사람은 참 정신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자라도 G이 우리에 마음이 어떤지 시험하신다. 나의 마음은 항상 나의 어떤 것에 있지 아니하고 G에게 있어야 한다. 모든 것보다 G이 G이 무거워야 그것을 G 이 유지 시켜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다 우리 주님이 유지시켜 주시니 주관하고 계신다.
인간의 마음은 다 우리 주님이 주관하고 계시니 이 G은 모든 것에 충만이 될 수 있는 G이시니 이분에 지공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잘못하면 교회의 G이 주실 수 없으니 이런 완전자에게 받고 이분을 상대해서 살려고 하니 제가 완전해지고 완전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분을 전부를 삼아 살자. 작정하라.
우리는 지금까지 인 본에 생활을 한 것이 죄였다. 내가 G에게 어떻게 하느냐 함에 따라 나 의 주변에 사람들에 마음을 일으키는 G이시다.
모든 문제는 우리 주님과 또 나의 마음에 대게 주권되어 있다. 그밖에 모든 것은 이용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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