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1975.5.20.화후
일시: 1975.5.20.화후
본문: 고전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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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의 뜻은 진리이다. G의 뜻은 참된 이치이다. 이치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꼭 같다. 그런고로 옛날에 G과 사람과 악령과 진리와 불법이 지금과 꼭 같다. 그때에 그 중에 싸여있는 사람들에 행동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 모든 행동에 대해서 G께서 어떻게 처리하신 것이 그 중에 하나씩 성경에 기록했고 또 모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는 좋은 참고가 된다. 인간에 이런 행위에는 G이 어떻게 보응하시고 또 저런 행위에는 G이 저렇게 보응하신 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이뿐 아니라 그때에 당한 모든 일과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당한다. 과거에 사람들이 자기의 당면한 일에서 어떻게 하니 G의 긍휼을 입었고 또 어떻게 하니 진노를 받았다 하는 것이 우리에게 참고가 된다. 어떤 실제의 것을 기록해 준 것은 자기를 깨닫게 해 주셨으니 거울로 주셨다고 했다. 우리가 어떠한 혹독하고 맹렬한 분위기 속에 싸인다고 할지라도 그런 일이 옛날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를 때마다 G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구원이 된 것과 G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니 실패가 된 것을 성경역사와 교회역사에서 볼 수 있다. 또 그런 일을 만날 때 생명과 승리가 되는 그런 길을 걷지 못하게 되는 원인을 볼 수 있다.
대개는 미혹을 받고 궤휼에 빠져서 시대 풍조에 피동 되어서 실패했든 것이다. 대게는 이런 것들이었고 가장 실패케 했든 주체성은 어떤 것들 이었든가? 그것은 이제까지 여러 시간 말한 자기 아닌 자기 안에 원수였든 것이다. 이것으로 실패하니 곧 내 사욕 욕심이다. 이놈은 과도기와 비상시만 실패를 주는 것이 아니고 오늘 평상시에도 모든 생활이 이것들 때문에 실패한다. 이놈은 밤낮 우리 안에서 실패케 한다. 이것이 자기 아닌 자기다. 중간에 들어와 내 안에서 주인노릇 한다. 이것은 마귀에게서 온 것이다. 죄악에서 온 것이다. 마귀와 죄에게 공연히 충동받아 움직이는 어리석은 심신에 육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은 적을 발견치 못하고 싸우는 허공을 치는 것 같은 그런 싸움은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제일 큰 적을 똑똑히 발견하고 일생을 싸웠다. 그자는 곧 자기라고 표시했다. 이 자기를 처서 복종 시킨다고 했다.
13절에서,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아니하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 했다.
시험은 어려움인데 잘하면 살고 못하면 죽는다. 잘되면 올라가고 못하면 내려온다. 잘하면 이전보다 낳고 못하면 이전보담 못하다. 이것을 가르쳐 시험이라고 했다. 인간이 유익이 되는 시험은 그것으로 더욱 존귀해지고 평안해지고 더욱 자신이 가치 있게 되는 것 외에는 G이 주신 것이 없다고 했다. 감당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 G이 주시는 시험은 인간에 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인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다.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진실 되고 아무리 열정 있고 담대한 사람이라도 인간으로는 감당 못한다. 그런데 사람이 어찌 감당 할 수 있다고 했는가? 이유를 밑에 말했다.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은 -
G이 깨닫게 해주신 표어다. G은 사람이 시험을 당할 때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이 계약을 이 약속을 금번 집회에 표어로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첫 시간부터 G께서 시험을 이기는 방편을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이다. 크메르(캄보디아)와 월남이 멸망한 길이 있고 세계가 한반도에 전쟁을 말하고 있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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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피란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금 덩어리 가지고 강대국 속으로 가봐야 죽는다. 죽음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 G의 노를 풀어야 하지 그분을 피해 어디로 가겠는가? 광선에 속도로 가도 안 된다. 너희가 애급으로 내가 기근과 질병과 칼을 보내겠고 너희 보담 먼저 가서 기다리게 하겠다고 하였다(시139, 렘42). 당황하고 겁내지 말고 금 덩어리 의지하지 말라. 한국에 지혜 있는 목사들은 어디로인지 다 빠져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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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길이 있다. 피란처는 G이 주신다. 우리는 어떤 멸망 중에도 영육에 구원 얻는 형편이 없는 때가 없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에 멸망 중에도 G이 피란 시킨 자들은 잘 피란했고 큰 역사를 보았다. 영국에 청교도를 숙청할 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케 하였다. G이 이끌어 주셨으니 세계에 부강한 나라가 됐다. 사드락 메삭 셋 친구와 전국에 G 섬기는 자들은 죽이려 했어도 G이 구해 냈다.
피란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임시 피란, 또 하나는 영원한 피란이다. 다니엘은 임시 피 란을 하였고 아벨은 영원한 피란을 하였다. 임시 승리는 임시 통치요 영원 승리는 영원한 통치를 받을 수 있다. 6.25때에도 손목사님은 영원한 피란을 했다.
임시 피란은 다시 환란을 받을 수 있다. 영원 피란은 고귀하다. 영원한 승리를 부를 수 있다. 임시 피란은 해도 기쁘지 아니하다. 또 어찌 될런지 모르니 두려움에 구름이 걷히지 아니한다.
전능하신 G 이 우리의 피란처요 그 외에는 없다. 사술 복술. 금 덩어리 의지하는 것은 다
헛되다. G이 주신 외에는 피란처가 절대로 없다. 시험이 오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할 것 없다. 나 할 일만 하면 된다. 믿음 지키면 된다. G의 진노를 풀게 할 것 뿐이다. 우리의 피란 할 길을 첫 시간부터 말했다.
우리의 피란 길은 ?
첫 시간에 주신 말씀이 일차적인 피란길이다. G이 내게 말씀하신 것은 나만 인정하고 소망하고 노력하기까지만 하면 모든 선포한 약속을 당신이 이룰 것이다. 홍해물이 깊으냐 얕으냐 하는 것은 제어 볼 필요 없다. 넓고 좁은 것도 계산할 필요 없다. 가라고 하신 분이 가게 하겠다고 하신 그의 말씀을 믿고, 당장 홍해로 들어갈 것 뿐이다. 홍해강물이 많던지 적던지 깊던지 얕던지 갈라트림이 힘이 들든지 안 들든지 비용이 얼마 들던지 우리가 계산할 것 없다. 내가 할 일은 뛰어 들어 갈 것 뿐이다.
그들이 뛰어 들어 가니 G 당신이 할 일을 착착하였다. 홍해가 육지가 됐다. 신신학자들은 천지 이변이 있어 홍해가 갈라진 것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신신학을 배격하는 것이 구국운동이다. 이것을 구국운동으로 아는 자들이 누가 있느냐? 이런 구국운동을 안하고 교회가 다른 구국운동을 하면 G의 노를 격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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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구국운동을 하는 것은 ?
교회는 G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민족을 구하고 국가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는 복되게 사는 것이다. 교회로서 하는 일은 다르다. 이방인이 취하는 방편을 교회서 써면 안 된다. 3.1 운동을 예배당에서 한 것은 잘못이다. 죄를 지은 것이다. 개인 자격으로는 독립운동과 순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운동으로는 할 수 없다.
교회에 운동은 G의 영감 진리운동으로 G이 오셔서 그 보답으로 G이 내 가정을 사회와 국가를 G이 직접 오셔서 함이 교회에서 하는 방편이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모두가 G을 향하여 G의 노를 푸는 것과 G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다. 이런고로 사람의 행위가 G의 노를 풀고 G을 기쁘시게 할 때 이런 사람이 될 때 구원은 G이 오셔서 직접 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는 것은 이 길이다. 전능자의 능력으로 만세 반석 같은 길이 있는데 이것을 취하지 아니하고 조국은 적화될 것이니 수단 방법 찾지 아니 하고 피란 가는 것은 안 된다. 저 혼자 살겠다고 피란 가는 것은 0(?) 조국 용납 못한다. 육은 육이니 국가가 소개 시키면 갈 수 있다. G이 피할 길을 주셨는데 이 길을 사용 치 아니하면 죄다.
피란은 두 가지다. 임시 피란과 영원한 피란, 렘5:1- 예루살렘이 멸망 직전에 공의와 진리를 구하는 한사람도 있어도 멸하지 아니하고 구원해주시겠다 하였다. 아브라함도 소돔성에 10인의 의인을 찾으면 구해주시겠다고 했다.
G이 영감으로 지시를 했을 때는 당신이 이루시겠다고 한 것이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겠다고 했을 때는 모세에 기도로 G이 그 뜻을 얻으려고 오신 것이다. 기도는 G의 보좌를 움직인다는 잘못 알고 쓰면 안 된다. G이 하시려고 착수하신 것이 영감으로 온 때다. 그러나 얍복강에 야곱같이 항복하지 아니하다가 멸망했을 뿐이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거역하다가 망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 이스라엘이다.
인간이 몇 번 징계를 받으면 부스러기 만 남는다. 한번 징계 받으면 몇 해 녹아진다. 몇 번 징계 받고 나면 일생이 지나가고 만다. G이 선포하신 것은 그대로 되어진다. G은 참되시다. 내가 그 일을 소원할 때 그 일이 될 수는 없으나 해보려고 심신이 움직이는 본능적 욕망이 있기까지에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피란길이다. 대적이 나보다 강하나 나에게 계약을 선포한 그 분보다는 약하다. 나는 그분 믿고 의지할 때 내가 그분을 배반치 아니하면 그분은 나보다 능력이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된 것이다. 과거 6.25를 지난 뒤에 보니 G을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주남선목사님을 모시고 모였는데 모두다 G을 만났던 것이다.
그때에 살아 있든 사람들은 주님의 도리를 잡았던 것으로서 살았던 것이다. 꾀 많고 지혜 있게 날뛰는 자들은 피란 가다가 다 죽었다. 낙동강 가다가 죽은 자들도 있다. 주를 위해 죽으려고 했는데 살아났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다. 거창에는 3명의 순교자뿐이었다. 그들은 평소 성자 노릇했다. 둘은 주일성수로 하나는 주님 안내어 놓으려고 하다가 죽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살았다. 이리 지방에서는 안 믿겠다고 하는 자들은 다 죽었다고 한다. 살고저 하는 자들은 죽고 죽고자 하는 자들은 살리라. 이것이 피란 방법이다. 이와 같이 G이 선포하신 계약을 꼭 믿었던 것이다. 우리 할 일은 믿는 것뿐이다.
세계 같은 강한 대적이 와도 양보가 없을 때 아무리 권해도 의심치 아니할 때 주여 나는 변함이 없겠습니다 하면 주님이 들어 나와 약속한대로 승리를 주신다. 우리는 이미 선포하신 계약에 말씀을 지킬 권리가 있다. G은 무엇을 귀중히 여기시느냐? G은 당신과에 연결을 귀중히 여기신다. 한 생명을 우주보다 크다고 했으니 G에게 떨어지지 아니하려는 것이 이것이 첫째 시간에 말한 첫째 피란길이다.
흉년이 들어도 상관이 없다. 엘리야는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날라다가 먹여 살았다. 시냇가에 먹을 것이 없어도 사렙다 과부 집에서 3년 동안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계시이다. 이것을 성경에 우리에게 계약으로 주신 것이다.
둘째 피란길을 주신 것은, G이 이르켜 주시는 피란길을 버리고. 도피로 방황으로 하여 모처럼 G이 주시는 것을 버리지 말고 G께서 주시는 계약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면 G이 책임지시겠다고 하였고 힘 드려 지킨 계약을 아깝게도 버리지 말고 천만 사람들이 엎드러져도 너만 계약을 지키면 너만은 대적이 한길로 처 들어와도 일곱 길로 도망가게 해 주시겠다고 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같이 G이 노아를 구원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화재가 나서 내 집만 타면 섭섭하고 여러 집이 타면 위로가 되나 성공은 여러 사람이 하면 실쭉하고 제 혼자 성공해야 좋아하고 이놈으로 더불어 싸워야 하겠다. 주님이 주시는 구원은 버리고 자아중심 위주 사욕에 동기와 목적에서 되는 것은 벗어나야 하겠다. 여기에서 G의 말씀을 지켜 멸망 받지 아니하게 함이 둘째 목적이다.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은 자기가 전부 책임져야 한다.
G은 당신이 책임질 때는 내 백성이라고 칭찬했으나 모세가 책임져야 할 때는 네 백성이라고 했다. 온 백성은 멸하고 너만 구원하여 가나안 땅을 주려고 할 때 모세는 체면이 있어 깜짝 놀라고 멸망을 줄려면 같이 주고 구원도 같이 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니 구원이 왔다.
만일 모세가 자기만 구원해준다고 하니 속으로는 기쁘면서 입으로 멸망도 구원도 같이 해달라고 하였더라면 G은 사울 왕 같이 버렸을 것이다.
G은 사랑하는 자에게 가장 공정을 기하신다. 당신은 당신을 가장 냉정하게 단속하시는 분이 다. 김일성이 같은 사욕적인 인간 밑에는 살고 싶지 아니하다. 그런고로 G 밑에서 살게 된 것이 행복하다.
※ 그런고로
G 앞에서 G 대해 행동할 때는 전체를 책임진 것이 내일이다. 전체는 나에게 책임이 있고 부담이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전체에 사람으로 행동치 아니하면 원죄다. 자기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요. 그리스도에 전체를 책임 맡은 지체요, 그리스도에 전체를 책임 맡은 지체다. 그리스도에 전체에 관련과 책임 맡은 지체다. 자기다. 이 자로 살지 아니하고 저만 제 가정만 생각하고 예수 믿기 전에 살던 사욕으로 살다가 예수 믿는 것까지 G의 것까지 사욕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자는 불신자 보다 더욱 악한 자라는 것을 구별 못하고 “우리와” “나를” 구별 못하고 우리로 사는 이 좋은 피란 방법을 못 취하고 헛일을 하는 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이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이다.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첫째 피란 방법은 G이 말하시는 것은 인정하고 소원하여 본능적 노력이 나오도록 할 것이요.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 것도 사욕적으로 자기 본위로 자기 위주로 배타적으로 이런 자체를 동기로 하고는 방편만 힘써 하는 자 되어 헛수고하고 멸망하는 자가 없게 하려는 것이다.
셋째 이런 능력이 빠짐없이 가득 차 있는 G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시34:16 여호와의 책들은 빠짐없이 다 있다.
셋째 피란 길
③모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이런 능력이 들어 있는 빠짐없이 기록해 주신 성경이다.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짐이 없고 라고 했다. 여호와의 책들은 G의 뜻들, 우리의 현실은 G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 주신 현실이다. 우리의 현실은 G이 세로 가로 측량하여 만들어 준 현실이다.
선포된 G의 말씀은 진리인데, 나를 진리에게 소속시키는 것이다. 진리는 나보다 크다. 세상지식은 인간 보다 낮은 것이다. 인간의 것이다. 진리는 나보다 크다. 우리는 진리에 속하면 산다. 얼마든지 구원에 구조선은 나의 현실마다 있으니 이 진리에 타면 산다. 이 진리에 못 타도록 막는 자는 제 욕심이다. 진리는 나보다 크다. 내가 거기 속하면 산다. 내 현실에 온 진리만 받으면 내 현실이나 내 전부는 산다. 이것이 세상이 모르는 구원이다. 이러기에 멸망을 피하고 나의 현실을 진리로 통과하여 구원받아라.
그런고로
신28장은 G이 인간에게 하실 것인데 인간은 언제든지 우리가 되어서 전체를 책임진 우리가 될 때에 산다. 영육 양식 은혜 사죄 성화 다 받는 것은 우리로 살 때다. 신28장에는 우리에게 쉬운 방편하나 가르쳐 준 것이다. 내가 10사람이나 한국 교회가 다 합해서 G의 노를 풀어야 하는데 G을 기쁘시게 해야 하겠으나 남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못하니 둘로 잘 안 된다. 나는 하려고 해도 아들도 안 해도 내 말을 잘 안 들으니 내 가정 한국교회가 다해야 하는데 못한다. 이것을 다하려면 네게 부담이 크니 너 하나만 잘하면 네게 관련된 것은 전부 주시겠다고 했다.
그러므로 전체가 다 되면 좋으나 다 안 된다. -낙심치 말고 . 나 하나의 제물을 천만인의 것으로 보시겠다고 하는 것이 신28장이다. 이것이 G의 계약이다.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했다.
우리는 전체를 책임지고 노력해라. 하다가 하다가 안되면 낙심치 말고 너 하나만이라도 해라 하면 너 하나가 한 것을 전체에 것으로 보시겠다는 말이다. 이런 뜻을 모르고 이 집회에 참석 못했다. 이것은 나의 사업 보다 크다.
그다음에 만약 너 하나가 직히지 아니하면 너 하나가 직히지 아니한 연고로 네게 속한 모든 것에게 화가 충만히 내리겠다고 하였다. 그런고로 나에게 매여 있다.
그리스도사람의 멸망도 우리 각자에게 매여 있다. 이것이 단일 직업 단일 영광이다. 하나만 되는 생명에 구원이다. 똑똑히 배워야 한다. 내가 구원도 전체를 책임 진 것이요. 나의 실수는 전체 멸망에 연관된 것이다. 자기의 잘못된 판단도 전체에 멸망에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체에 잘못은 나의 책임이다. 그 중에 하나 위로는 네가 하다가 하다가 안되면 너만이라도 잘하면 네가 한 것을 전부에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씀했다. 최종은 안 된다고 해도 전체의 것으로 간주해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망이다.
산자 편에 속한 자라도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다. 자기 단독으로 섰다고 하는 자란 말이다. 아무리 위대한 자라도 자기 개인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요나 가 니느웨 성을 회개 시켰으나 그 성에 회개 보고 기뻐하지 아니한 것은 그 의인은 불쌍한 의인이었다. 원죄로 돌아간 것이다. 탕자 동생이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한 큰아들의 충성이 소용이 없다. 전체를 책임지지 아니할 때 저도 죽었다. 자기의 과실을 전체에 멸망에 원인으로 계산치 못함은 원죄로 계산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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