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1975.5.19.월밤
일시: 79.5.19.월밤
본문: 눅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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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야에게 와서 G의 말씀을 전달할 때에 이 말씀과 G의 책임지신 말씀은 같이 이루 워 질 것인데, 만일 마리야가 인정치 아니하면 안 된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야의 승낙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리야 에게 가브리엘이 말하기를 G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으니 G이 네게 말씀 할 때에 너만 인정하면 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니 마리야가 천사에게 답하기를 예 믿겠습니다 고 하니 천사는 떠났고 그대로 됐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할 때 땅에게 명하기를 땅아 네가 각종 식물을 내라 할 때 땅이 거부치 아니하니 그대로 됐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말씀을 인간이 그 무한한 말씀을 성취시키는 것 아니다. G의 무한한 것을 인간의 힘으로 성취되는 것 아니다. 다만 인간이 믿을 때 인간이 인정할 때에 G이 단독으로 이루신다.
인정하는 증표가 무엇인가?
증표는 제가 힘 있는 데까지 G의 은혜를 입어 (전력을 기울일 때에) G 앞에 전력을 기울인다.
확실히 될 줄 알고. G이 나 좋아 하는 것, G이 이뤄 주시는데 자기가 힘쓰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런고로 사람이 G이 말씀하신 것을 인정하고 원할 때. 사람이 필연적으로 있는 힘 다 기울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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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워 지면 깨닫지 못한 자는 제가 힘써서 된 줄로 안다. 그러나 제가 힘 써는 것은 값이 되지 아니하는 값이다. 그러므로 값없어도 사라고 하였다. 인간에 노력으로 됐다면 인간의 노력에 대가다. 인간의 노력은 그 실상의 값이 안 된다. 추호의 대가도 안 된다. 그러나 사라고 했다. 대가가 없는데 무엇을 주고 사라고 했는가? 대가가 안 되는데 사라고 함은 대가 안 되는 것 가지고 사라고 했다. 안 되는 것 가지고 사라고 함은 G이 이렇게 하라고 되라고 할 때에 자기가 G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그것을 소원하고 보니까 필연적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노력지 아니 할 수 없다.
이것이 사람의 양심의 본능이다. 노력하니 이루어진다. 사람의 노력이 아무런 근거와 실력이 되지 못하는데 그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값없어도 사라고 말했다.
※
그러므로 G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대로 된다는 것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소원만 하면
신구약시대에 G이 나타나는 모양 차이점.
G이 단독 이 일을 이루어주신다.
인정하고 소원한다는 것이 거짓되기 쉬우니. 이 소원이 진실한 것 만치 노하게 된다. 자기가 힘쓴다는 것은 자기가 전적 인정하고 소원한다는 본능의 표시다. 그러면 이뤄진다.
그러기에. G이 바다에게 각종 생물들을 내라 고 했을 때 그 바다가 독자적 노력이 없었다. G이 내라 하실 때, 그들이 아무런 위엄(?)이나 노력이 없었으나 G이 하게 했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시발의 계시다. 제일 시발에 아주 쉽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G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네가 홍해바다 물 속에 들어가라. 요단강을 건너 가라할 때 G이 건너가라 건너가게 하시니 할 것이다 하고 걸을 때에 홍해와 요단강을 건넸다. 그들의 힘으로 건넌 것 아니라, 그들은 G의 것을 인정하고 소망한 것뿐이다. 인정하고 보니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힘이 아니다.
또 여리고 성을 13바퀴 돌아라 하니 돌았다. 그들이 돌았다고 그 성의 먼지 하나도 부순 것 아니다. 다만 인정하고 소망한 것뿐이다.
그후
신약시대에는 차차, 네가 일어서라 걸어가라 (38년병자 앉은뱅이에게) 또 문둥이가 깨끗해 져라 하는, 차차 사람들의 힘으로 G의 역사가 고금에 차이가 있는가? 없다.
예, 초대교회의 방언 - 어학공부
되는 것 같은 비슷한 것으로 역사했다. 이래서 초대교회는 어학을 공부하지 아니했으니 말을 서로 못 듣고 하나 복음을 전하고 싶었고 G이 전하라고 해서 전하니 언어가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나 듣고 이해를 했고 설교를 들었다. 그러나 이제 근대에 와서는 G이 그렇게 아니했다. 네가 어학을 공부해라 해서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니 되고 전하니 된다.
이제는
점점 G이 하시고, G이 혼자 하는 것이 인간이 함으로, G과 인간이 합동해서 무엇이 되는 것 같이 그렇게 변화시켜 나오신다. 앞으로는 G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단독이 하는 것같이 이 목표를 향해서 기른다.
앞으로는 G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단독이 하는 것같이 이 목표를 향해서 기른다. 그러면 바다에 생물을 내라. 성을 돌라. 그러면 무너지리라 함과 이방인에게 전하라 방언이 되리라 네가 어학을 공부해서 전해지리라 함과 오늘에 G은 성경에만 말씀했고 눈에 안 보이는 영감만 있어 순전히 인간만이 보여 지는 모든 역사와 상고에 모든 역사와의 차이에 G의 역사에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상고 시나 지금은 G의 역사는 꼭 같다. G의 것을 인간이 선물로 받는 것은 꼭 같다. 왜? G이 이렇게 하시는가? 이유? 이 시대에는 인간 제가 하는 것 같은 방편을 쓰는 이유? 예수님같이 완전자 나타내는 투명체로 기르기 위해서.
하나님은 완전자이신데 완전자의 본질대로 완전자는 형상을 가질 수 없다. 완전은 제재를 받을 수 없다. 완전자가, 완전자의 자유로 모든 거리끼는 것을 헤치고 인간에게 완전이 자유하여 피조물에게 투명체와 같이 되어 G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 G의 목표다. 이것을 듣기는 어렵다.
예수님에게는 G이 이렇게 일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은 것을 살릴 때, G께 기도할 때. G이 살리실 것을 인정함을 표시하고, 모든 군중에게 알리고 살렸다. 이런 꼭닦스럽고 구질구질한 순서를 통과하고 이룬 것은 둘러선 너희 때문이지 나 때문에는 아니라고 했다. 예수 안에 아버지는 완전자이니 자유했다. G은 영체의 본질과 본성대로 예수 안에 나타나 역사 한다. 우리는 둔하고 어둡고 탁하니 G이 나타나기에 어렵다. 마치 유리에 흙이 묻은 것 같은 우리다. 이러기에 G이 나타나기가 어렵다.
그런고로, 어두운 자에게는 G이 나타나심이 뚜렷하고 밝은 자에게는 인간에 눈에 희미하게 보이고 더 밝은 자에게는 G이 나타나심이 뚜렷하지를 않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G이 나타나심이 다르다. 이 말씀은 G한 분에 지혜 G이 한 분이 하시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는 성장함.
역사 그의 목적이 모든 피조물에게 이룬다. 창조주 G단독의 역사뿐인데 다만 그 가운데 우리는 자라고 성장한다. 이렇게 생명과 능력의 분이 역사 하시는데 우리에게 인정시켜야 우리가 자라고 우리가 G의 것을 투명체 같이 나타낼 수 있어 G에게 거리끼지 아니하는 자 되게 하기 위해 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인정하고 노력하라고 하심은 당신이 모자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G 단독이 하신다.
그런고로
인정케 함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려함이요. 소망케 함은 우리를 온전케 하려함이요. 인정하고 소망의 발동으로 일이 어려움은 우리에게 G과 절연된 요소를 다 변질 변화 시키려 함이다.
그러므로, 결론으로
G이 말씀하신 것은 G이 단독으로 하신다. G이 말씀하신 것을 제 힘에 비교해 보고 이것은 내 힘으로 되겠다고 하는 것은 인정하고 제 힘에 벅찬 것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모든 어두움에 빠진 행동이다.
그러므로 G의 천사가 동정녀 마리야 에게 와서 네가 아들을 벤다 하였으나
G이 집회에 모은 소원 ?
마리야가 인정치 아니하니 다시 말하기를 G의 말씀은 능치 못한 것이 없다고 하니 마리야가 회개하고 그가 인정하고 믿을 때 아이를 베었다.
※
G이 금번에 우리를 모으시고 당신이 소원이 있어서 당신이 주실 것인데 그 말씀이 이렇게 하면 된다 하지 말라 안 된다 하라 하지 말라 되라 되지 말라 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오셔서 말씀 하시는 것을 어떤 자는, 아 - 내게는 너무도 거리가 먼말이요. 너무도 이루어지지 아니할 거리가 먼 상관없는 말이요 그것이 내게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자에게는 G이 거듭해서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하신 분이 되게 하시느니라. 네가 버릴 것이 아니라 하라고 하신 분이 하시니 그러므로 너는 인정하고 소원만 해라. 인정치 아니한 것이다. 인정치 아니하면 G이 하시는 것이 거게에서 막힌다.
※G이 말씀해 주실 것이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G과 더불어 씨름했다. G이 졌다. G은 네가 네 형 에서를 만나도 그가 너를 죽이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으나 야곱은 그 말이 인정이 안 되여 기어코 인정하라고 하여도 기어코 인정을 하지를 않았다. 환도뼈를 G이 쳐서 매를 맞고 난 다음에야, 아 - 그분이 G이시였구나. 뼈만 부러질 것이 아니라 죽지 아니한 것이 다행이였구나 할 때 G 이긴 것을 후회하고 회개하니 G이 그 자에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여 주셨다.
어떤 자들은 야곱은 기도로서 이루어졌다고 좋은 기도라고 말하나 밤새도록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죽을죄다. G이 인정하라고 하는데, 인정치 아니하는 것은 죽음을 받아야 한다고 깨닫는 그 요소가 이 00이다.
그런고로
※ 금번에 G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이든지 G이 주실 것이다. G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설교를 해주실 것이다. 오순절에는 유대인들이 말하는데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내들 나라 말로 들었다. 이것이 방언 역사다. 오늘에 방언 역사는 거짓이다. 오늘에 참 방언 역사는, 한 설교에서 많은 사람이 각각 제 말로 들여지는 것이 방언역사다.
良心(양심)의 귀로 들을 것
내가 양심의 귀를 가지고 들을 때 G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하시며,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시고. 어떤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시는가? 이것을 들으려고 애를 쓰면 G께서 분명 이 각자들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 말씀해 주실 때 인정하고 되기를 소원하고 인정하고 소원하는 본능적에 발동으로 표시로서 자기의 힘 있는 데까지 노력하는 자는 전능자로 역사하시는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왜냐? G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런고로
자기 힘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지 말아야 한다. 어떤 무능자라도 G이 능력자 되라고 해서 하신 것은 당신이 하시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무능하지만은 말씀하신 당신이 하실 것이기에 소망하고 기뻐하여 내가 주저앉을 수 없고 노력할 수밖에 없으니 노력 할 때에 G이 그에게 역사하여 G이 나타난다. 왜 G이 주시기로 했기에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실상이요(히1:1).
G의 말씀하신 것을 인정하고 소원할 때 이루어진다. 그런고로 믿음은 실상을 이루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받는 것이다.
양심에 귀로 들을 것
내가 양심의 귀를 가지고 들을 때 G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하시며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시고 어떤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시는가? 이것을 들으려고 애를 쓰면 G께서 분명이 각자들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 말씀해 주실 때 인정하고 되기를 소원하고 인정하고 소원하는 본능적에 발동으로 표시로서 자기의 힘 있는 데까지 노력하는 자는 전능자로 역사 하시는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왜냐? G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런고로 자기 힘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지 말아야 한다. 어떤 무능자라도 G이 능력자 되라고 해서 하신 것은 당신이 하시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무능하지만은 말씀하신 당신이 하실 것이기에 소망하고 기뻐하여 내가 주저앉을 수 없고 노력할 수밖에 없으니 노력할 때에 G이 그에게 역사하여 하나님이 나타난다. 왜 G이 주시기를 했기에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실상이요(히1:1) G의 말씀 하신 것을 인정하고 소원할 때 이루어진다. 그런고로 믿음은 실상을 이루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받는 것이다. 인정하면 형통과 인내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디 선생은 믿음보다 더 크게 수입하는 것이 없다. 아무리 큰 수입이라도 믿음만은 못하다고 했다. 내 힘으로는 수입이 될 수 없다. 없지만은 수입이 되라고 말씀하신 이분이 의인이 되게 한다. 당신이 말씀해 만들려 하시니 내가 기쁘다.
그러니 내가 팔 장 끼고 앉았을 수 없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노력이 추호의 의도 이룰 수 없다. G이 하시는 것뿐이다. 이분이 해주시는 것은 다 그대로 된다. 정직한 사람도 사랑의 인도 속성도 절제도 충성도 희생도 다 이루어진다.
끊지 못할 것도 끊을 수 있고 가지 못할 높은 곳과 건너지 못할 것도 견넜다. 이것을 G이 해주신다고 하신다고 함을 믿고 인정하라. 이것은 비과학적이다. 비통계적이요 비역사적이다. 이것이 기독교다.
미련해 보이지만 양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장자 재앙을 면했다. 마라에서 쓴물에다가 나무 가지를 던지니 단물이 나왔다. G의 말씀은 전능하신 당신이 책임을 지고 제힘으로 비교해보고 된다 안 된다 말 것.
노아 양심에. 귀에 말씀하는 것이 감화(00)할 것 하신 말씀인데 인간 제가 제힘으로 비교, 해보고 된다 안 된다고 하니 어찌 되랴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유한자가 무한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믿어도 무엇이 다르냐? 정권을 잡았는가? 부자가 됬는가? 됐는가?
노아가 지위나 부나 권세 이런 것을 노린 것 아니다. 다만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얻으려는 것뿐이다. 인간이 모르는 신령한 것 생명에 것 무궁한 것 이것이 이루어지되.이것이 되어져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그런고로 G이 땅의 식물을 내라 하니 풀이 나왔다. G이 혼자 했다. 분명히 G이 했다. 이때는 그때다. 지금이 그때다. 독사 같은 시랑이 같은 큰 죄인에게 의인이 되라고 했으니 인정하고 소망할 때 된다. 내가 평생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라도 G이 이것을 버리라고 했으면 강사의 입에서는 말을 안 했으나 자기 양심에 들렸을 것이니 이 내 양심에 귀에 감화(00) 들여 주심이 곧 G이 땅에게 명하는 것이다. 앉은뱅이 에게 일어서라 한 것이요
방언
일어서라 한 분은 G이시다. 자기는 인정하고 소망만 하면 된다. 되는데 인간이 인정 안 하니 전능이 이루어지지를 않는다. 언제까지나 땅에 것에만 속하여 탐하고 마지막이 비참할 것인가? 우리가 다 여기서 방언하는 자 되어야 한다.
강단에 한 설교에서 각자에 양심에 깨달음을 받도록 설교하면 방언이요 또 전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체험을 했듯이 그에게 물어 보려고 들어갔으나 물어볼 것이 없이 묻기 전에 알려지는 것이 있다. 이것이 방언이다. 이것이 주님이 직접 말씀 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진정코 인정하면 된다. 소원하면 자기의 노력이 있을 것이요. 노력하면 G이 이루어주실 증표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릴 때는 G이 하라고 하는 것은 하면 된다고 하는 자가 된다. 이것이 000주의다.
그 다음은 이것은 자기를 부인해야 이뤄주신다. 그러므로 이번에 전능자가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왔는가? 나는 받으려고 주실 때 인정하고 소망하고 노력하면 나는 공짜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자유성이 있으니 내가 인정하고 원하는 본능의 표시로 노력이 나오는 것이다. 노력이 안나오면 인정이 안 된 것이다. 왜? 사람은 본능이 있다. 물에 빠진 자가 건져줄 자가 왔으면 이제는 건 저 주겠다고 확신할 것이요. 그 아이는 물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이 본능이다.
그러므로 근번에 당신이 각자에게 친히 하실 일을 말하실 때 G이 해 주실 것을 인정하고 소원해야 한다. 소원해서 당신이 되라고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래야 참이 있다. 이것을 여러 가지로 연구하면 소원이 된다. 소원하면 노력에 발동이 나오고 나오면 되는 것이다. 인정치 아니하고 소망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G의 말씀을 한 상식으로 이야기로 방편으로 듣는 사람은 하나의 중언부언에 인간의 말로 들었지 G의 말을 고기 어리로만 들었지 전능의 말씀으로는 못 본 자다. 어떻게 하려는가? 각자들에게 G이 직접 말하시는 것을 듣겠는가? 천만인의 사정을 한 설교로는 못하나 G은 빠짐없이 선포해주신다. 이것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귀가 열린다. 이 귀가 있어야 듣게 된다. 신령한 귀라고 하지 말고 이 귀는 양심의 귀다.
참 옳고 바르게 생각하여 금생과 내생과 죽음 인생 G 자기 또 자손도 전체를 생각하는 참된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문제다.
여기 말한 한 말에서 방언 역사가 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형편 처지에 따라 들여진다. 회개하라. 고치라는 그 말에서 어떤 자에게는 지금까지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말로도 들린다. 그러므로 예언도 책망도 칭찬도 각자에게 다르게 동시에 나온다. 한 입에서 한 말로 하나 각자에게 말해 주시는 성령님이 직접 말해 주시는 것이다. 분명히 G이 나에게 이것을 말하시는구나 예고하시는구나 하여 들릴 것이다. 할 때 인정하라. G은 능치 못함이 없다.
인본으로 낙망치 말고 인정하고 소망하여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라. 진정한 인정과 진정한 소원과 진정한 노력이 있으면 G이 가난한데서 부요케 어리석음 - 지혜, 사망 - 생명, 저주 - 축복으로 살게 하시는 G의 능력이 폭발될 것이다.
요 5:17.
38년 병자를 예수님이 고쳤다. 자리를 들고 일어서라. 걸어가라 하심을 듣고 걸어가니 나았다. 예수님이 낫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일하시니 내가 일한다. 아버지가 일하시나 인간 보기에 예수님이 했다. 자존자 한 분 이분 한 분에 움직임으로 된 것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나 어떤 공장에 큰 모터가 돌아가니까 전 공장이 돌아간다. 다른 기계들은 모터의 힘을 억제하는 일을 했지 돕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다. 전능자 한 분의 역사로 다 된다. 이런데 무생물에게 역사 하는 역사의 계급이 다르고 일반인에게 역사 하는 계급 이 다르고 영생하는 이에게도 다르니 G은 주가 되고 머리가 되고 우리는 몸 되고 이런 고급의 사람이 되도록 C로 이루신다. 이렇게 말함은
G이 우리에게 하시려고 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말이다. 루터는 사람이 막지만 아니하면 된다고 했다. 칼빈은 전적 G의 은혜로 된다고 했다. 루터는 제한적이니 틀린 것이다. 오늘밤에 말한 것과는 다른 말이다. 칼빈이 궁극으로 주권적으로 성취하는 이 사상과 꼭 같은 말이다. G이 하시려는 것 막지 말고 인정 소망하라는 방편에 역사다. 그러므로 인정하라. 소망하는 자가 슬기 있는 자이다. 아버지가 나를 지체로 쓰시며 외부적은 유기적 관계다. 궁극적은 주권 절대다.
※요14:13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함이라.
G의 사랑이 안 오면 감사가 없을 것이요. G의 능력이 없으면 찬양이 무엇이 있겠냐. G의 것이 모든 사람에게 충만해 지게 하려 함이다. G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일은 누가 하느냐? 사람들은 무엇을 하라고 했는가? 구하고 원하라고 하였다. 하시기는 예수님이 하신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하신 것은 이루어 것은 G 아버지가 했다고 했다.
사람은 구하나 예수님은 시행하시되 구하는 인간에게 시행하신다. 예수님께 누가 시행하는가? 아버지가 시행하신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자기를 참 인정하는데서 이루어진다. 십자가에 이루셨다. 자기 부인은 지식 바꿈이요, 십자가를 지심은 = 실체를 변질 변화 싴는 것이다.
이것을 변화 시켜야 살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번 기회는 어찌하든지, 성령이 각자에게, 무엇을 하실는지, 이 강단에서 설교를 받을 때 육체의 귀로 들어 양심을 쓰면 성령이 나에게 직접 들려주는 말씀이 있을 것이다. 깨닫게 하실 때 깨달음은 주님이 책임 진 것이니 인정하고 원하면 이룬다. 이것을 금번에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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