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회개도 하는 법)
회개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 회개인데, 회개의 순서는 먼저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이 첫 순서고, 그다음에는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고쳐서 옳은 것으로 확립되는 것이 회개의 순서입니다.
따라서 진리 지식이 없으면 회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 지식이 있어 그 지식대로 하지 못한 것을 고쳐서 그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임종에라도, 아는 사람은 고함으로 회개)
못 걸어가도 아는 것이 유익된 것은?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회개할 시간도 없고 행할 수도 없는데, 이제 숨이 깔딱깔딱거리는 마지막 시간이지만 알고 있는 사람은 회개는 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은 ‘이거는 틀렸다. 이거는 잘못했습니다. 이거 내가 주님 앞에 고합니다.’ 알면 회개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회개도 할 수 없습니다.
이래서, 세상을 떠날 때에 모르는 회개는 못 합니다. 회개하면 사유함을 받을 터인데 사유함을 못 받으면 거기 관련되어 있는 그 모든 심신의 기능은 다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자기가 행하지 못했으니까 기능을 마련하지는 못해도 있는 기능이 저주받아 멸망하지는 안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두 사람이 지금 세상을 뜨는데 여유 시간이 없는데 한 사람은 예수 믿는 이치를 알기는 다 알고 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면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어찌 되겠느냐?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면 고하여 사유함을 받는데, 아는 사람은 사유함을 받으니까 거기 얽매이지 않고 멸망에서 벗어나올 수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고해서 사유함을 받지 못하니까 멸망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물론 멸망에서 나와 가지고 여유 시간이 있으면 의를 건설해 갈 수 있으니 그래서 또 아는 것이 좋을 것이지만 일단 회개하는 데에도 좋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 주시는 그때에 앎에 대해서는 스스로 제재하지 말고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건 파고, 얼마든지 좁은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찾고, 곧은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찾아야 그것이 자기를 구원하는 길입니다. ‘내가 이 이상 더 할 것 없고, 그 이상 더 좁을 필요도 없고, 더 깊게 알 필요도 없다.’ 이래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데 스스로 제재해 가지고 중단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