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초안 10권 (1955년) 목록과 내용일부
<설교초안 10>
p.1 마6:19-24, 보물은 하늘에 쌓으라
p.9. 딤전1:12-17, 항상 은혜 안에 거하라
p.10 행7:57-, 그리스도의 은혜가 큼
p.19 엡4:17-24, 자신을 새롭게 하라
p.39 고전1:18-19, 십자가의 도
p.42 마5:1-12, 마음을 정(淨)하게 하라
p.46 시143:1-12,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p.50 시6:1-10, 회개의 눈물
p.53 삼상6:10-16, 법궤를 끌고가는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p.56 마7:19-29, 참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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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 10.4 새벽
본문: 마6:19-24
제목: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나니 이를 사랑하면 저를 경히 여기며 저를 사랑하면 이를 경히 여김이다.
우리 한 사람으로서 이 두가지 생활을 하지 못함을 가리켜 말함이라.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종은 주인의 소유가 되었으니 종이 주인을 자유하지 못한다. 주인은 종을 자유하나 이것은 비유다. 이것보다 비유하신 본작(本作)되신 근본은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며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는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산 자의.
물질은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로만 되어있는 것이니 사망과 죄악과 악세(惡勢)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을 말함이다 물질의 종된 것은 물질만 사랑하고 섬기는 그런 자는 물질의 소유권자란 말이다. 여기 섬기는 소유권자들만 두고 말한다.
여기는 소유권자가 아니요 피소유권자다.
그에게 소유되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사람의 주권자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든지 사람을 섬기든지 하면 종이 아니요 주인이다.
이것은 알미니안 주의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좌우가 인간에게 최0*사(最0師)도 된다 함이다.
감리교의 교리다. 장로교 교리는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인 되었든지 물질이 사람의 주인 되었든지 하나는 산 자요 하나는 죽은 자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산 자나 물질을 섬기는 자는 죽은 자라.
다른 것은 자유하나 죽고 싶다고 죽고 살고 싶다고 사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종이면 하나님의 종이요 물질의 종이면 물질의 종이지 바꾸어질 수도 없다. 우리는 어떤 때는 하나님의 종이 되고 어떤 때는 물질의 종이 된다. 나타난 생활이 바꾸어 질 때가 있다.
이 바뀌는 것이 정상적인 생활로 되느냐? 아니다. 다 같이 누웠는데 둘 다 사체(死 )인줄 알았더니 하나는 죽고 하나는 잔다. 생명있는 자는 자고 생명없는 자는 죽은 자라. 물과 성신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진리대로 사는 것이 정상적이다.
어떤 때는 정상적인 것을 입은 자가 어떤 때는 물질의 종된 때가 있다. 고로 자는 자여 깨어라.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성신께서 이루시는 큰 운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듭났다. 이렇게 큰 권, 큰 은총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없어질 물질을 위하여 사는 것은 이는 정상이 아니다. 이는 거듭난 자로서는 정상적이 아니요 변태(變態)요 정상이 아니요 자는 생활이다.
이는 가치있는 것으로 되어진 것이 가치없는 물질로 살려고 하지 아니하였고 이는 천부께서 물질을 적당하게 준비하여 주신다.
고로 그 물질주의로 살아나가는 그때는 외부의 사람 생활이요 속에는 딴사람이다.
외부에는 누웠으나 속깊은 속에는 고민이 온다.
깊은 진리 속의 사람은 아니다. 가치없는 일, 허무한 일 하였다 한다. 고로 우리들은 이두가지의 생활은 더불어 할 수 없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을 자유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두가지 생활은 도무지 할 수 없는데 진리 중심 떠나서 물질중심생활이 되어지느냐? 이것은 나의 생활이 아니요 어떤 세력에게 붙들려 함이지 내가 함이 아니다. 만일 생명있는 내가 피곤하여 넘어짐이든지 원수에게 붙들리는 생활이지 중생된 내가 하는 생활은 아니다. 부패성들이 나를 이끌어 감이다.
롬7:22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 악 함께 있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악이 함께 있다. 오호라 괴로운 자라 하였다.
아가1:6-내가 비록 검으나 흘겨보지 말라. 어미의 아들들이 사랑하여 포도원 주려고 지키나 하는 줄 알았더니 신랑에게 미움당하라고 검어지라고 한 것을 모르고 보냈으니 후회한다.
어미의 아들 = 세상주의인 인생관을 미워하여 한 것이다. 죽고 망하는 인생관이다.
성경에 주(主)의 인생관이 이렇게 살아라 할 때 그대로 하면 달고 후회없다. 세상적 인생관의 생활하여 보았던들 성도의 성(聖)만 더럽힐 것뿐이다.
그 포도원 지키다가 얼굴만 검어졌다. 그리스도 인생관의 인격만 낮아졌다 .평안하게 귀골 박사의 시체이다. 겉사람 무식의 시체는 같다.
시체는 같다. 만 남아있으니 이 술람미 여인은 이것을 말하니 주님이 귀하다고 말하였다.
두 생활을 할 수 없는데 어찌하느냐?
내가 하고자 해야 함이 아니요 내가 원치 않는데 끌려가서 쿨쿨 자고 있으니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요 변태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끌려가서 생활할 것이요 우리는 어떤 때 아주 남의 생활한다.
나는 산 자다. 산 자가 좋은 시체의 생활할 때 괴로워서 어찌 사노? 우리는 산 자인데 그의 영혼이 죽은 자로 살 때 괴롭기는 죽는 것만치 괴롭게 된다. 육신은 적은 짐도 무거운 줄 아나 영은 지구 땅덩어리같은 무거운 죄에 눌려도 무근성(成)이 없는 것은 생명이 빈약하거나 혹 죽은 증거이다.
2. 산 자로서 물질을 취급하는 방법.
너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한다. 하늘에 쌓아두면 좀과 동록을 도둑이 구멍을 뚫지 못한다.
일본에 오다라는 자는 주관적 경제 학자인데 자기의 수입, 자기의 지위, 명예, 권세, 영광, 자주의 몸과 이성
4. 자기의 쾌락을 말하였다. 이는 옳다. 오늘 우리의 보물은 주님의 피아래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이다. 주님 믿는 자가 가지고 있는 것과 믿지 않는 자가 억천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다.
손양원 목사님이 옥중에서 콩깻묵을 솔방울만치 받아지고 이것을 가지고 가치를 비교하니 온 세계에 주님 부인자가 먹는 것보다 이 콩깻묵의 가치가 더 크다. 세계의 물질은 불탈 것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구속받은 것으로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으로 옮기워지니 보배라 말이다.
내게 있는 수입되는 모든 물질되는 내게 있는 쾌락, 희로애락 이것은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보물이다. 구속함을 받은 산 자가 가지고 있으니 보물이다 .불신자가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다. 불신자의 것은 차(次)는 귀무(歸無)와 심을 수 없다.
1. 땅에 쌓아두면 좀먹는다. = 환경이 뒤섞여서 동록 슬어서 죽는다. 세상에 두면 광영한 죄악이 멸할 때 다 멸해진다. 좀먹는다 = 연세에 따라 세상의 것이 용권(用權)이 없어지니 멸해진다.
어린 아이 가진 것은 아무리 가져도 노인 만석군이라도 하지 못한다. 색저고리는 노인 만석군이 입을 수 있느냐 말이다. 땅위에 권세를 가지고 살 수 없고 별세시는 다 도적만나고 만다. 그러나 천국으로 옮기면 거기는 유한한 것을 심고 무한한 것을 거둔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살아라 하심이요, 복음사업 곧 교회에 바치란 말이다.
이것이 물질에 대한 한 취급의 방법이다.
2.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모든 것을 하늘나라 옮길 때, 내 심령이 하늘나라 옮길 때 내 마음이 하늘나라에 있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무리 섬기려고 하여도 마음으로 섬긴 것만큼 못 섬긴다.
우리 주님은 00이니 지식이 높고 안목이 높고 제일 높은 대접은 원하신다. 주님은 과부의 엽전 두푼보고 크다 함을 그 마음을 보고 말함이다.
우리가 아무리 길을 걸어도 하루에 100리밖에 못간다. 비행기라도 일일 이삼만리 더 못간다.
우리의 심령은 일분동안에 억천리로 갈 수 있다. 일분 동안에 가는 심령을 무엇이 따라갈 수 없다. 그 명철, 주밀 속도는 아무리 훌륭한 문학가가 그려내지 못하고 예술가가 표시하지 못한다.
이런 심령이 일분동안 죄를 지으면 무척 짓는다.
이 마음이 주님 앞을 향하면 무척 큰 영광을 돌린다. 이 칼을 잘 쓰면 유익하고 잘 쓰지 못하면 불리하고 이것 잘 이용하면 공로를 세운다. 인간의 최대의 봉헌은 심령을 주께 바침이다.
네가 주께 00어라. 주님만 위하라. 주 중심 삼아라. 용모 인간이 기와요초보다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 아니요 모든 맹수도 우리보다 뛰어 이것은 큰 보배이다. 이의 00는 그 차는 문인, 화가, 예술가, 철학가들이 그려내지 못할만큼 보배이다.
나나 우리는 그들보다 심령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의 말로 00할 수 없는 보배가 일꾼이 이것을 자유로운 하늘나라에 가서 이용하여 일한다면 00이 크다. 일분동안 일하는 것에 일생동안 일한 것보다 클는지 모른다. 어떤 이가 땅위에서 일 많이 한 자냐? 수이덴 불커는 명산 많이 한 자가 천국서 제일 큰 봉사자더라고 하였다. 정확하다고 하기 어려우나 일리있다.
딤후1:4-디모데야 눈물 흘려 주야로 바울을 사모하는 디모데 재삼(再三) 뉘게 배운 것을 기억하라 함은 진리로 있거든 사닥다리를 기억케 함이라.
딤후4:14-네가 배움에 거하고 믿음(信)에 위하라. 유한한 것으로 하늘나라로 옮기어 무한한 곳으로 옮기니 이것이 큰 것만 아니라 네 심령이 그 곳으로 옮기어진다. 디모데야 네가 이 교훈을 지킴으로 네가 복되다.
오늘 우리는 우리 심령이 하늘나라를 끌려감을 말함이니 속사람이 장성하여갈수록 그의 심령이 하늘나라로 끌려가지 아니하면 안된다.
돈이 탐이 나느냐? 아름다운 옷입은 자냐?
네 심령이 하늘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니 이것 외에 더 큰 보배가 없다. 물건하는가 어떤 행사가 내 심령을 하늘나라로 옮기워진다면 나는 이 행사에 피할 수 없다. 어쨌든 내 심령을 하늘나라를 더두게 하는 그 순서와 수속이 있는 것을 말한다. 어디든지 내 심령이 하늘나라로 쏠리게 하는 물건 그 사람을 대하나 내 심령이 하늘나라에 있을 때는 즐거우나 거기서 나오면 갈급하다. 갈급할 때는 무엇을 보아도 갈급하다. 만일 불날 때 기름 부으면 더 큰 불나고 갈한데 염수 먹으면 더 갈급하다. 네 심령을 하늘나라로 옮기라. 그리하면 평안하다. 네 심령을 하늘나라로 옮기지 아니하고 날뛰면 날뛸수록 더 갈급하다. 네 심령이 하늘나라로 가서 집중할수 있도록 힘쓰라.
네가 어떤 매를 맞아서 집중되면 그곳을 찾고 골방을 찾아 그곳이 집중되거든 그곳을 찾아라.
이런 때는 00*산상과 같이 이곳서 살았으면 좋겠다하나 이곳을 떠나보면 고통이다 물질을 떠나지 못할 사이 노아배같이 이런 곳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이 둘째이다.
3. 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네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밝은 것 같이 우리의 심령이 하늘에만 가서 있으면 내 일생동안 생활은 눈뜬 자의 생활 영원히 가서 보아도 빛의 생활, 그리스도의 생활, 승리의 생활한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기업 삼갔다.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젊은 생활이 변하여 영영의 빛생활된다.
고전15: 빛의 생활 --- 유한의 것으로 심고
무한의 것으로 거두는 생활, 과거는 육체의 생활에 대하여는 죽는 생활하였으나 이제 내 포도원의 생활하라.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으로 바꾸라. 내 심령이 하늘에 있다면 땅에 빛의 생활한다. 눈뜬 자의 생활한다. 기특자의 경제의 생활하라. 0*자의 생활의 경제에 넘어진다.
물질에 인간을 파는 것 가치없고 물질에게 인간이 팔리는 것 가치없다. 속지마라. 찌꺼기 가지고 하면 소용없다. 보물 좋은 것 문을 위하고 아내 위하고 자식 위하고 그 다음 하나님 위하면 안된다. 적문*(的門)도 정성도 제일 깊은 것 하늘나라로 옮기라.
주님 믿는 것 부업적으로 믿는 것 주님은 속지 못한다.
일생동안 주님 믿고 하루도 발이지 못한 자가 있을 것이다.
은혜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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