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백목사님
실패의 생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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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랴 죽으리고.
이별되는 것 위해
실패의 생활 하지 마라
앞서 간 대0은 소유권을
다 손 펴고 갔다.
번쩍거리는 세영(世榮)에
유혹되지 마라
불의의 재물에
충성치 않으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네게 맡기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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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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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발원(發源), 사랑으로 결성(結成), 결과 맺고
사랑으로 수취(受取), 사랑으로 누리는 것이다.
피로 해방해서 아들 되고, 피로 옷 씻어서 신부 되고
피로 계약해서 기업 되고, 사랑은 진리
심판적 진리(는) 노(怒), 건설적 진리는 사랑
아들은 믿음으로, 신부는 절개 지킴으로
기업은 찬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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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참고 설교)
시일: 1955. 11. 16. 삼일예배
본문: 눅22:1-34
제목: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한 것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새 언약을 주었노라)
예수님께서 택자 위하여 33년동안 복음을 여러 모양으로 증거하시고 마지막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전날밤에 된 사실이다. 그 때 분위기는 이스라엘 종교계에 지도인물로 있는 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 시기하여 죽일 방책 취할 때이고 모든 백성들은 무지하여 지도자에게 유혹받아 예수님 죽일 무조건 협동하고 관원들은 이들에게 매수당해 예수님 죽이려하고 삼년동안 예수님의 제자 이름가진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하여 구속하시려고 죽음을 앞에 두고 피와 땀 얽혀 다 쏟아 기도하시고 기진하여 엎어졌을 대 천사가 도와 남은 진액 뽑아 택자 그들과 우리 위하여 기도하였으나 무지한 제자는 주님 죽는 그것 이용하여 돈벌이하겠다고 하고 어떤 제자는 높은 지위 다툼하는 자도 있고 닭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하는 허무한 자가 순교하겠다는 장담하는 자가 있어 예수님은 땅의 만물이나 인간상대하면 낙심할 수 밖에 없다.
아무 동지나 위로할만한 일들이 전혀 없다. 땅에서는 완전한 고독이요 완전히 끊기어지는 때요, 아버지만 연결된 때다. 마지막 유월절 잡수시려 할 때 제자들이 "어디 예비하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시내 들어가면 물 이고 가는 여인만 따라가면 그 여인 예비하고 있으리라" 숨은 성도 있었다.
주님은 유월절 순서 중 포도즙잔 가지시고 축사하신 후 제자에게 나누어 주시며 "마시라. 내가 이 유월절을 같이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이 유월절은 다시는 없는 것 말한다. 내가 나라로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 마시지 않겠다 말씀하신 것은 마지막 유월절을 말한 것이다. 떡을 나누어 주시면서 "내 몸을 너희 위하여 찢어서 너희가 영원히 형벌 받을 것을 내 몸으로 받을 표로 주노니 먹으라" 또 잔을 가지시고 축사하시며 "이것은 곧 내 피니 새 언약"이라 하시며 주셨다.
이 유월절은 애굽 나라서부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사람이 함께 있을 때에 일어나는 큰 환난이 있고 환난중에 양의 피 곧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환난으로 더 행복되고 택자 아닌 사람 피 공로 입지 않은 사람은 멸망받을 것 예표로 보이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마지막 잡수시기 원하고 원하였다는 것은 두가지 뜻 가지고 있다.
1. 유월절 환난 통하여 세상 벗어나는 것 같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마지막 환난으로 구속 성공하시고 고난풍파없는 아버지집에 우리 있을 곳 예비하려 가시는 것을 즉 인간이 죽으면 지옥가나 예수님 사망권세 이기셨으니 감옥에서 해방 당하여 자기 집에 가는 것 같이, 일 마치고 성공하여 자기 집에 돌아가는 일이니 유월절 원하신 뜻 있고 또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택자 영원히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당신이 우리가 나기도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시어 뜻을 작정하시고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허물, 실수, 죄악, 무지, 연약을 영원히 담당하여 다시 해끼칠 모든 것이 없게 하여 당신 앞에 사랑하는 자로 영원히 붙들고 계시려하는 그 소원 이루기 위하여 우리 대신하여 속량하는 당신 우리 사랑하여 살리고자하는 사랑의 소원을 원하고 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소원하시던 시기가 왔는 고로 사랑하는 나 위하여 죽어줄 수 있는 그 사랑 나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기회 만났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무한히 크나(영원히 지옥 가보지 못하면 모른다) 이렇게 큰 고난 처음 당하는 것이다. 그 정도 모르심이 아니고 우리 사랑하는 사랑이 힘있고 뜨거워 우리 위하여 죽어주시기 원하고 원하였다. 잔으로 표 보여 마시라.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이는 이 잔은 내가 십자가에 죽는 고난의 잔을 표하는 것이니 여기 포도즙은 내가 너 위하여 십자가에서 혈관 찌름이 아니고 살찢어 온 몸이 피흘리게 한 너희에게 피 흘려 주는 것이니 먹으라. 너 위하여 죽을 것을 마치 육체가 양식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나 사랑하사 고난받은 그 고난을 생각하고 주님 사랑하고 사모하면서 그 사랑 감격하여 주의 당하신 고난을 주의 진리 위하여 희생당하는 일 아니면 인격이 살 수 없는 그런 자 되어지라는 말씀이다.
당신 나 사랑하여 나에게 유익이라면 행복이라면 당신 살찢고 피흘리는 것 개의치 않고 아픈 것도 영원한 지옥도 개의치 않고 나 사랑하는 힘이 강하여 피흘리는 것 잊어버리고 너 살려준 나니 너도 나 사랑하여 마치 육신은 먹지 않으면 못 사는 것같이 나 사랑하여 피 흘리는 고난에 있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랑에 붙들려 살아라.
나는 이 사랑이 기뻐하여 시기가오니 원하고 원하여 찢어주노라.
내 진리 위하여 나 사랑함으로 고난의 희생의 입장에 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자로 살라고 흘려주신 것이다.
이 사랑으로 맺어진 언약은 결과는 무엇이뇨? 새 언약이라 말씀하신 것은 에덴 동산에서 행위 계약으로나 죽은 것을 예수님이 은혜 계약으로 택자 위하여 구속하여 살리시는 것을 말함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 계약으로만 하신다.
당신이 인격이시오 우리를 인격으로 보여주시니 계약 맺어 놓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새 언약 = 택자 너희 나기 전에 사랑하여 뜻 정하고 만물 짓고 하늘나라 지어놨는데 너희들이 지옥가게 되었으니 너희 대표자로 하나님과 계약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여 완성시켜 구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선포해 주실 것이다.
이 피로 맺어진 결과는
계1:5 벧전1:18 에 보면 피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는 말씀이다. 이 피로써 세운 언약의 결과가 무엇이기 때문에 피를 흘렸겠느뇨?
1. 우리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아 아들되는 권세 주시기 위하여 피 흘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 내가 받는데는 요1:12에 모든 사람이 그를 대접지 아니하나 그 대접하는 믿는 자니 믿는 자는 권세 주어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 권세 이루어진다.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 권세 얻고 자격 얻는다.
내가 참으로 믿는지 안 믿는지 시험하여 이 큰 권세를 믿으면 권세 가지고 믿지 않으면 아들의 이름은 얻었으나 아들의 자격은 못 얻는다.
고후13:5 말씀과 같이 시험해야 하겠다. 그리하여 네 자신을 확정하라. 하나님의 성신은 말씀하신다. 헛되이 속으면 안된다. 우리가 시험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되었으면 그 관계의 밀접이 참으로 부자의 밀접 가졌느냐?
육신의 부자의 관계도 아버지의 권세 있는 대로는 내 지켜 주실 것 믿거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은 자는 땅위에 없는 것을 없는 것으로 갈급을 느끼지 않는다. 바울은 모든 것이 없으나 모든 것 가진 자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확실히 믿을진대 가난을 느끼지 않는다.
부자의 아들이 지금 주머니에 돈이 없다하여 가난을 느끼겠느냐?
고후8:9 너희로 부유케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되었으면 당위에 아무것도 없다해도 땅위에 부유 부러워하지 않고 네가 부자인 것을 믿어야 하나님의 아들답게 사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 권세자가 아버지니 두려움 없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는 것은 확실히 믿지 않는 증거이다. 진실로 믿는 자가 적다.
어찌하여 당의 것으로 갈급을 느끼느냐? 올바로 믿는 자는 땅의 것으로 갈급이 없다.
다음으로 아들되었으면 담대하다. 돈, 권세 없어도 온 세상이 집중으로 사격해도 담대하다. 손목사 , 이기선 목사, 주조사 월남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 맺은 연고다. 어서 가서 아버지 만나고자 함이니 염려 없다. 염려한다면 제삼자 위해 염려함이요 자기 위해서 염려없다.
주님 죽으실 일 앞두고 내일 십자가에 죽으실 때 최후 극난 극단에 피흘렸으니 그 사랑이 의심나느냐? 어찌하여 아버지된 것 믿지 못하면서 땅위의 것으로 갈급하느냐? 두려워하느냐?
2. 계약 결과는
계7:14에 보면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인맞은 14만4천인은 어린 양의 피에 씻은 자, 그 자 들은
계 14:1-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4천인이 섰는데, 그 14만4천인은 정결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는대로 따라가는 자라. 언약의 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14만4천인 정절이 있는 자 예수님으로 절개 지킨 자,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그리스도의 신부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이는 비유적이 아니다. 육신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부부의 실체의 그림자와 같이 계시한 것이다.
(인간에게 알리기 위하여 보편계시로 인간에게 보여 주었다.) 육의 부부는 아담의 순간의 잠과 갈빗대로 아내 지었으나 둘째 아담 그리스도는 전부 쏟아 죽어서 신부 지으셨다. 남성도, 여성도 다 그리스도 신부 되어진다.
부부 관계 말하는 것은 우리의 허물과 실수를 당신이 담당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 말함이요 우리 당하는 고락이 당신 것 당신의 고락이 내 것되고 당신 소유 내 것 되고 내 소유 당신 것 되어 허물도 영광도 합작되어 당신 나 위하여 고난 받고 나는 영광받아 영원히 같이 사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부되는 것이다. 마치 한 몸에는 지체 합하여 한몸되니 눈이 손 아끼는 것처럼 성도 단결하여 한 몸되니 오늘은 시기로 시비도 있으나 이는 부패성의 까닭이요,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면 그의 영광이 내 영광되어 한몸되어 그리스도 신부 이를 수 있다.
이 신부자격 얻는데는 이것은 절제 지키는 것이다. 어린 양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라.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어떤 환난 와도 양보 않고 한 걸음 나가 주 위하여 희생하지 않고는 만족이 없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다. 받는 것보다 희생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므로 주님 나 위해 주는 것도 좋으나 나 위해 희생하는 것도 좋아하신다.
요17:1은 사랑의 호소다. 순 사랑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떠한 환난이 있어도 진리 내주는 것은 절개 파는 자로 알고 강하게 지켜야 한다. 열처녀 중 불은 절개 말한다.
사73:27 진리양보는 음녀요 멸하신다 하셨다.
3. (계약) 엡1:7-13에 기업이다. 우리는 당신의 기업이요 기업은 전생활을 거기다 붙여놓고 있다. 상점, 사원에 전생활을 붙여 놓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기업, 하나님은 우리 기업된단 말이니 이 말씀은 천군천사 있으나 나만 보고 살고 나에게는 모든 만물과 하나님은 내것되었다. 당신은 나만 보고 살고 나에게는 모든 것 다 주었다. 이것이 피 흘려준 셋째 계약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피흘리신 계약의 결과로 하나님은 나만 보고 살고 만물과 하나님은 내것이니 얼마나 축복이 크냐?
믿는대로 된다. 이 외에 땅위에 무엇 보겠느냐? 땅위에 어떠한 준수한 사람 사귄 것 부러워하겠느냐? 무엇 때문에 의심하겠느냐? 평소에 지내면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말로 떡하면 천하 다 먹는다는 것 같은 것 아니고 가장 최고 극단 절정 당하시고 피흘려주시고 십자가상에서 피나지 않은 살 깊은데서 찔려 피 흘려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안하시고 칠언은 다 나 위한 말이고 다 이루었다. 예언을 이루는 것이다.
요13:1 자기 사랑하는 자 끝까지 사랑하더라 말씀하셨다.
히10:29 그리스도의 피 부정하게 여긴 자 이 언약 만홀히 여긴다는 것이다.
히2:3 이같이 큰 구원 등한히 여기면 형벌 못 피한다 했고 추수 절은 이렇게 피흘려 계약 맺어주신 이 은총을 연연동안 구속에 관한 은총을 특수시기로 감사하는 것이 추수주일이다.
구원 소망 사랑 더 새롭게 가져서 내 생활 새롭게 하여 충성 질서 사랑 열심 있는 사람으로 주 앞에 대할 그 때 심각하게 생각하고 감사 표할 예물도 드려야겠다.
마지막 시간에 약속하심이니 말만이 아니고 직접 피흘려 계약한 것이다.
어찌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함은 악령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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