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1장
단1:8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했다. 왜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그가 먹지 않기로 뜻을 정했느냐?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이 이방에 포로 되여 성전과 기구와 사람이 포로 되었는데 이를 종교 국가적으로 멸시 당했다. 이 바벨론은 세계 강국이다. 이때 다니엘은 종교적으로 멸시받을 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면 멸시당하기 쉽고 하나님을 믿기 어려울 때 하나님을 믿기가 힘드는 때다. 믿음 소망 희망 효과 능력이 나타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환영했을 때는 믿고 싶고 환란이 있으면 믿기가 힘든다. 다니엘이 이런 때는 하나님은 믿기 힘든다. 이것은 다니엘을 시험하는 때요 이스라엘을 시험하는 때라 할 수 있다.
①그런고로 다니엘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느냐. 느부갓네살을 두려워하느냐. 느부갓네살은 세상에 폭군이요 강한 대왕이다(이는 세상 포악의 인물 대표). ∴ 다니엘에게 세상에 포악을 두려워하느냐, 하나님을 두려워하느냐 이것을 두고 싸웠다. 폭군이요 세계 대왕을 두려워 하느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느냐? 이것을 두고 시비했다.
②다니엘은 특별한 학생으로 공부시켜 왕궁에 쓰려고 한 일이었다. 이것은 다니엘의 소망을 어디 두느냐 하는 시험이다. 다니엘은 특별히 뽑아 쓰려고 하는 일에 뽑혔으니 소망을 어디 두겠느냐 하는 문제다.
③또 다니엘은 뽑았으니 어디 쓰이느냐 이것이 시험이었다. 세상은 줄 땅 그는 세상이다. 세상에 둘 땅 그는 일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돈이 끄느냐 권세가 끄느냐 일이 끌고 가느냐. 내가 지식을 끌고 가느냐. 지식은 생명에 속한 지식 사망에 속한 지식이 있다.
∴ 언제든지 끌려가느냐 끌고 오느냐 이것이 우리에게 있으니 이것을 구별하라. 느부갓네살 왕에게 쓰이나 하나님에게 쓰일 수도 있고 하나님에게 쓰이는 것과 같으면서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 이 시비는 아무도 모르는 양심에게 하고 있다.
④이 지식과 지혜에 온전을 이루는데 하나님에게 두느냐 느부갓네살에게 있느냐.
⑤물질에서 건강을 얻느냐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느냐. 이것을 다니엘은 아무도 모르는 그 속에서 다른 데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다니엘의 생활이다. 이것이 신비의 생활이다. 이 신비는 극단을 겪을 때 자기의 신경과 양심이 강하게 부닥칠 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 하나님을 감각이 부닥칠 때 많이 체험한다. 우리는 몸으로 산제사를 드린다고 한 것은 우리의 마음 신경 성질 마음 이것으로 부지런히 충성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 우리가 몸을 가지고 활동을 많이 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활동을 많이 할 때 그것을 기뻐하신다. 우리가 기본 구원은 우리가 피동이요 하나님은 능동이다. 그러나 건설구원은 우리가 능동이요 하나님은 피동이다.
∴ 한번 받은 은혜를 써먹지 않으면 나에게 피동 되지 않으신다. 내가 받은 바의 은혜를 사용할 때 하나님이 피동적으로 은혜를 주신다. 중생되면 벌써 성경 공부 깨닫는 것을 할 수 있는 씨를 주었고 밑천을 주었다. ∴내게 연구할 만한 은혜를 주었으니 그것 가지고 연구할 때 그 성경을 알 수 있게 하고 은혜 달라고 하면 아니 준다. 이제 중생된 자는 자기의 노력하는 것 만치 하나님은 피동 되어준다. 내가 성경을 땀 흘려 한 장 읽고 나면 그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이것이 없으면 주지 않는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찌니라.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을 내가 몸으로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하는 것은 몸으로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감정으로 하나님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 이것보다 감정과 정성보다 착한 양심으로(모든 것을 비판하여 바로 하는 것) 섬기는 것을 좋아하신다. 인간은 신비가 부른다. 이적이 따른다. 이적은 이제까지 자연에 없는 것이 올 때는 이적이다. 하나님의 초 자연 이적이다. 당신이 많은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는데 주는 이것이 이적이다. 신유라고 한다.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내게 오는 것은 무엇 통해서 오느냐 나와 당신과 접촉을 가질 때 온다. 당신과 접촉은 당신이 우리에게 준 법칙대로 할 때 접촉될 때 접촉은 내 몸 감정 마음 착한 양심으로다. 양심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 할 때 하는 것 착한 양심은 이것저것 비판하여 자기를 쓰는 제일 바로 하는 것이다. 접촉하는 방편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고
①고기덩이 감정 정정 양심 선한 양심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접촉이 되여야 오지 그렇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사람의 ①몸 ②감정 정성 양심 착한 양심이다. 구불고 뛰는 것은 끄트머리 은혜이고 가장 큰 은혜는 눈 감고 생각하고 눈뜨고 행하고 하는 데서 큰 능력이 나타난다. 다니엘은 이 착한 양심을 하나님 향한 것을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자기의 건강을 음식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둔다는 것이다. 밥도 채식이다. 지식도 하나님의 것으로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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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온갖 은혜를 구비하게 싸가지고 있다. 이것을 주는데 예수님의 피공로를 통해서 오게 되여 있다. 그런대 내게 오는 방편이 무엇이냐. 이 방편은 받을 수 있는 방편은 다 되었다. 이 신 구약 성경은 우리를 은혜주는 방편이다. 인간과 학문이다.
신구약 성경은 이 다섯 가지로 결합되는 것이 결합된다.
결합은 ①고기덩이 감정 정성 양심 착한 양심 이것이 가장 한 결합이다. 자기가 비판하여 안 것을 고기 덩어리에게 이행을 시키면 착한 양심 쓰는 것이다. 요사이 과학은 원자탄 수소탄을 만들어 내는데 기독교는 세상과 300년 동안 뒤 떨어져 있다. 주후17세기에 진보해 가던 것이 중단되어 그 후는 길을 열어 주지 않으니 사람들이 불이라 방언이라 하는 곳으로 넘어가서 운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지금 이적이니 복이니 하는 때가 아니고 기독교가 연구하여 나갈 때다. 예수 믿는 것은 믿는 법을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 자기의 지식이 하나뿐이니 하나 밖에 순종 못한다. 지식이 좁은 사람은 넓은 지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사는 생활을 하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몸을 구속하는 것이 문제이다. 롬8: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받은 우리까지도=성령으로 중생된 우리다. 이 5가지로 하나님에게 연결시키라 이것은 은밀한 참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