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5장
단5장 1-31
새벽에는 다니엘 4장 공부했다. 그 4장에 기록된 대로 느부갓네살에게 무엇 무엇을 주권해 하였는가? 느부갓네살의 권세를 주고 빼앗았다. 왕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 또 마음이 명철하여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 마음 내 실력을 주관. 왕의 지위를 하나님이 주관, 왕의 처소를 하나님이 주권 하신다. 왕궁과 들에 거하게 했다. 6.25때 보니까 고귀한 사람들을 피난케 할 때 오만 곳에 다 다니게 했다. 마음의 평안과 고통, 영광과 비천, 행불행, 衣 食, 풀을 먹으면서 소처럼 지냈다. 일생 생애 기간 회개 하나님의 주권에 대우 문제 풍채 신체 추하고 깨끗한 것. 사람에게 흉하고 아름답게 되고 천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에게 주권 되어 있고 하나님과 연결이 떨어진 것은 교만하니까 떨어졌다.
교만은 스스로 된 줄 아는 데는 저주가 간다. 여기서 떨어지고 고통이 온다. 하나님으로 되었다고 하는데서 성공한다. 하나님으로 된다고 하는 자에게는 부를 준다. 촌에 불신자도 인심을 잃기 전에는 제물이 가는 법이 없다. 우리가 겸손할 때, 물질을 거두지 않는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고 하면 축복이 있다. 신불 신자 간에 겸손하면 부해질 수 있다. 신자는 겸손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고 하는 것을 알고 이것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알 때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지 아니한다. 자기를 위해서 있는 줄 아는 것이 사망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받아서 가는 것이 우리가 가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물이니 받아서 주는 사람이라. 그런고로 하나님을 끊어 놓으면 천해지고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 놓으면 하나님의 것이 내게 온다. 하나님의 것을 받아서 피조물에게 전해준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은 예수님의 신인양성을 깨기 전에는 우리 연결이 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는 연결이 되지 못했다. 이것을 지금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연결을 이루어가고 있다. 우리가 부활을 하고 난 다음에는 완전히 연결된다.
고전15 :42이하에 부활에 대한 영광의 차이를 말했다. 사람도 그 육체의 영광도 차이가 있다. 성도의 영광도 하늘나라에서 크게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하여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건설구원에 대하여 차이가 있다고 했다. 자기의 신덕의 덕행으로 권위로 점령한다. 권위로 점령. 권위는 주어야 된다. 은혜로, 그가 아니면 내가 못 살겠다고 하는 것 신덕으로, 점령하는 것.
밀림에는 가면 길을 잃고 죽는 수가 많고 바다에 있는 숲(0), 경치는 참 좋다. 만물을 새롭게 한다. 이 세계는 자유로 돌아다닌다. 이는 영광이 없어도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자유로 못 간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자기의 양심에 가리어져서 못 다닌다.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때 출입하지 못한다. 그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 이도 자기 마음에 가리어져서 못 들어간다.
내가 하나님과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자기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잘못한 죄인이로소이다 할 때 들어간다. ∴ 자기는 자기에게 죄인으로 무지무능자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줄 아는 자는 산다. 이 자리가 자기의 밀실이요 피란처요 진노 피하는 자리다. 온유는 밀실에 들어가니 온유하다. 밀실에 가면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안긴 것이다. 마귀는 느부갓네살을 제가 제일이라고 하는 자리로 끌고 갈라고 했다. 시몬이 성령을 저 위해서 받으려고 하다가 죽을 뻔했다. 베드로가 안수하니 병 나음으로 이것 보고 시몬도 성령을 저 위해서 받아쓰려고 하다가 이렇게 베드로에게 책망 받았다.
우리에게 시몬이 잘 들어온다. 자기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물같이 들어온다. 이것이 들어오면 절단이다. 둘이 말하고 있는 데에도 들어온다. 그런고로 이것은 죽는 날까지 싸워야 한다. 자기 부인하라 말은 자기를 주권자로 세우지 말고 자기를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지라는 것이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은 부인하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라는 것이다. 기독자는 자존심을 죽이고, 자존심을 가지지 말라. 예수님을 위해서는 자존심을 가지라. 이 자존심은 예수님 때문에 가지는 것이다. 이런 것은 존중이 여기고 아끼라.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위해서는 존중이 여기라. 이것은 내가 욕을 얻어먹으면 예수님이 욕 얻어먹게 되니 아니 된다. 우리가 예수님의 것은 회복을 시켜야 만족하지 그렇게 하기 전에는 만족이 없다. 이것을 기어코라도 회복시키라. 이 세상과 무궁 세계의 것은 이 짧은 토막에서 되니 같다. 이 세상은 영원의 기초이다. ∴요긴한 시기이다.
우리의 육은 이렇게 구속은 입지 못했으나 영혼은 완전이 구속을 입고 영생을 받았다. 그 속에 영생이 있는 자는 내가 다시 살리리라고 했다. 영원히 살리리라. 육체가 하는 모든 일은 영혼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 중생된 사람도 죽는 날까지 양이 줄어지나 허물과 실수가 있다. 죄짓지 아니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자연 인이 아니고 원죄가 없다. 이것을 바로 알지 못하면 20세기의 문화 과학에게 밟힌다. ∴ 육의 관한 것은 발달 될 대로 되였다. 과학은 물질이 신비롭게 되여 있는 이면을 연구하여 고도로 발달되고 있는데 기독교는 300년 전에 것을 가지고 날뛰고 기독교 신비 적은 영에 문제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고 있는 세상에게 밟히고 있는 것이다. 교리와 신조가 중요하고 간판이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으로 세우는 교리가 중요하다.
중생된 영혼이 범죄 한다 하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보느냐 영 마음 이성 전부를 말하는 줄 안다. 육체의 정욕은 영혼에게 속한 외에 것은 다 육체에게 속했다.
◎
①중생된 자로서 범죄되지 않은 자가 하나도 없다.
②중생된 영혼은 영원토록 범죄하지 않는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세계의 학자들에게 넘어지지 않는다.
2가지 난제
①중생된 사람의 범죄한 죄는 누가 책임지느냐.
②범죄를 책임지는 영이 어떻게 영생 할 수 있느냐?
죄 있는 자는 영생 못 얻고 죄만 없어도 영생 못 얻고 의가 있어야 영생하는 생명을 얻는다. 영원한 의가 있는 자가 되여야 한다. 의가 있으려면 유죄에서 무죄로 무죄에서 의로 의에서 영원한 의로 나가야 영생 얻는다. 이는 완전한 의다. 이 완전한 의를 가진 자에게 새 생명 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택자의 영원히 지을 것 담보 죄의 형을 다 담보한 것이다. 이것은 나지도 아니한 자를 이렇게 했다. 이는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것은 계산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지을 범죄를 영에게 책임지우고 영이 이것을 책임짐으로 죽은 것을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예수님이 단번에 사죄시키고 단번에 살리셨다. 단번에 부담시키고 죽는 시간까지 이것을 부담시키고 책임진 이것을 예수님이 단번 사죄 칭의를 입히고 이 영혼을 진리와 영감이 붙들었다.
∴ 영혼은 진리와 영감에게만 피동 된다. 중생된 사람이 범죄 했는데 범죄는 육이 했다. 그러나 주격이 영이니 책임을 영이 져야 된다. 책임지면 책임적인 범죄이다. 육체를 죄짓도록 두었으니 연대 책임을 져야 된다. 그러면 죄지은 자는 육이다.
유죄보다 무죄가 깨끗하고 무죄보다 의가 깨끗하고 의보다 새 생명은 더 깨끗하다. 영원한 새 생명을 받는 데는 영원무궁토록 무죄를 받고 영원한 의를 가져야 새 생명을 받게 된다. 영원무궁토록 의를 가진다 말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결합을 가진다는 것이요 영원한 의를 가진다 말은 하나님과 영원한 가리어짐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새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영혼의 진리와 영감에 피동 되는 것이다. 중생된 영은 내 육체가 죽는 날까지 범죄 할 것을 책임지고 정죄 받았다. 정죄된 것과 정죄되지 아니한 본죄까지도 다 끌어다가 짊어지고 죽었다. 이것을 예수님이 단번에 단번에 책임지고 죽었다. 그럼으로 영은 살아났다. 영은 육의 범죄한 것을 한번 책임졌기 때문에 두 번 질 수 없다.∴영은 지금 영은 성령과 함께 성화와 회개시키는 운동을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대항하는 자에게 벌을 주는데 벌은 무슨 벌이냐 옳은 진리 대하면 이것을 대항하기 위하여 모든 성경을 연구하게 된다. 이것하나를 대항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교리를 세워 옳은 것을 틀렸다고 하게 되고 틀린 것을 옳다고 하는 자가 되고 만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구주인 줄 알면서도 대항하니 결국 예수님을 팔았다. 위험한 것은 진리를 자기보다 앞세우는 사람은 적다. 진리위해서 생명을 바치기는 하나 진리를 자기보다 밑에 둔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원수이면 그 사람이 옳은 진리를 말하면 받아드리지 아니한다. 그런대 자기가 이때까지 닦아 둔 이력보다 진리를 앞세우기는 힘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늙어죽도록 닦아 둔 학이 진리에 맞지 않을 때는 내어 놓고 진리를 받아드려야 되겠다. 칼빈은 이성을 영혼으로 보았다. 육은 순전히 고기덩이로 보았고 육의 신비로운 것은 영혼으로 본다. 육의 범죄를 영이 진다는 것은 다 공통이다. 그런데 이것을 당겨서 졌느냐. 이것을 그때 그때 지느냐. 하게 된다. 사망에 이르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않은 죄, 택자에 이르는 죄는 예수님에게도 몸 영 신성
단5:25
3장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속에 들어간 것이 기록 되어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사람의 힘으로 당할 수 없다. 불속에 들어갔다. 이때 이 사람과 대립된 사람들은 기뻐했고 이 3인 인은 불행이나 이것이 구원이 되어졌다.
이 우상을 가르쳐 세상이라고 했다. 세상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으면 그 다음 세계는 불미 불속에 들어가야 될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중대한 교훈이다.
이 3인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왕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끝까지 고집하면 이 불 속에서 너희들의 하나님이 건져낼 수 있겠느냐 했다. 그때 그들이 우리를 불 가운데서 구원하여 내겠고 왕의 손에서 구원할 수 있겠다. 또 하나님은 여기서 건저내지 아니한다고 해도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 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서 구원했다. 3장에 우상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절하라고 한 것은 우상 정책이다. 왕이나 관원이 다 우상 섬기는 일하고 있다. 바벨론은 우리에게 말하면 그것이 곧 세상이다. 온 세상은 우상숭배를 하게하고 있는 이 세상이다. 이 우상 숭배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그것이 4인에게만 어려움이 되였다. 악기를 울리고 절하라 할 때 다른 사람은 도리어 좋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믿음 지키려고 하는 자에게만 두려움이 되였다.
바벨론 온 천지에 우상 경배 운동에 하나님의 사람에게만 어려움이 있었다. 어려움이 되되 어디까지 당했느냐.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그 자리까지 어려움을 당했다. 인간도 자기의 시킨 대로 했을 때 책임지고 살리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의 시킨 대로 했을 때 그것을 얼마나 책임을 단단히 지겠는가? 옷 고의도 변하지 않고 불 냄새도 나지 아니한다. 하나님이 일을 철저히 맡아서 하여주신다.
그때 3인에게 세상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않으면 너는 절단 나고 죽는다. 능히 이 불 가운데서 구원하여 낼 신이 있는 줄 아느냐. 고 했다. 네가 신앙 신앙하고 이 돈을 사랑치 않으면 살 줄 아느냐. 할 때 3청년은 왕의 손에서 불 밑 속에서도 구원하여 낼 수 있는 줄 압니다고 했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 우리가 불구덩이 같은 어려움에 빠진다고 해도 능히 구원하여 낼 수 있다고 해야 한다. 또 큰 소리 한 것은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해도 그것을 소원하지 않고 내가 계명만 지키면 만족합니다. 해야 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주님만 위하여 계명을 지키면 되겠습니다고 해야 한다. 나는 이것 지키면 구원할 수 있는 줄 압니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나는 계명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우리가 애를 써서 믿음을 지키다가 어려움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데 여러 가지로 당할 때 믿음 받고 나가기 쉽다. 하나님 때문에 고난 받으면 나중까지 견디면 하나님이 힘 있게 높여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보일 것이다. 하나님이 아직까지 어린 신앙에는 계명 지킬 때 어려움이 와도 불 가운데 왕에게서 건저주실 것입니다 할 때 축복하여 어린 자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성한 자는 환란 중에도 나는 하나님의 계명지킴으로 만족한 것을 살아야 한다. 이것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지니 불미 불이 꺼져서 이 사람들에게 오지 못했다. 또 이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입장주실 줄 알고 이것은 전체가 상급인 줄 알고 믿는 자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신다. 하나님이 힘 드는 것을 시킬 때 따라오지 않은 것이 있으면 제일 힘 든다. 이것은 따라 오지 않으니 복을 받지 못한다.
∴양심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도시로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촌으로 소개하라고 한다. 신앙경험이 이렇다. 우리가 공부를 시키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아니 시키는 것도 좋다. 옷을 입고 아니 입고 하는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공부하여야 할 것이 있고 아니 해야 할 것이 있다. 일방적인 지식을 가지지 말라 다만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아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에게 대하여 믿음 지키면 자기에게 대하여 제일 좋은 길로 걸어갈 수 없다. 주를 바라 보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다윗은 산골에 있었으나 뽑아 썼다.
∴나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곳으로 따라가면 다한 것이다. 하나님은 능하신 고로 시킨 대로 다 하면 잘 된다. 자기의 분수를 넘으면 실패한다. 또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이것을 잘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사람은 물질보다 앞섰고 불신자보다 신자는 위에 있으니 꺼꾸로 되면 죽는다.
사람이라는 것은 창조하실 때
특별 회의를 모아서 창조했다. 사람을 어떻게 창조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일반 창조보다 특이하다.
그다음에는 만물을 지배하게 하라
세 번째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짓자고 했다. 이것이 특이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이다. 하나님은 물형은 없고 영이다. 영은 인격의 형상이 인격의 형상은 인격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었다 말이다. 그러면 사람은 신불신자 간에 이런 특수하게 지었으니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 고기덩이는 흙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었다. 육체는 짐승보다 탁월한 것뿐이다. 그리고 짐승에 신비는 본능이라 했다. 사람의 신비한 것은 이성이라 했다. 이것을 가지고 출생했다. 이것이 점점 발달하여 이성 적 육체가 되였다. 에덴동산에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니 사람이 되였다. 인격성을 가진 사람이 살 수 있는 생기를 불어넣다.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됐다 말인데 영이 살아낫다 말이다. 이영은 죽은 것이 아니고 지어 논 것이 생기를 불어 넣으니 살아났다고 했고 우리의 영혼은 중생이라고 했다. 이 氣 靈은 진리와 영감은 영을 살리는데 이는 외부적이고 변동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중생된 영은 내재적이고 영원적이다. 이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되었다. 너는 하나님의 전이라 했다. 그러나 생기를 불어 넣었다 했으니 내부적이다.
∴ 그때와 지금 다른 것은 그때는 외부 적이고 지금은 내부적이다. 변동 적인대 불변 적이고, 하나는 단 번이고 하나는 중복 적이다. 마귀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는 고로 그 속에 생명이 끊어졌다. 그 속에 빛이 있으니 그는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이 사는 것이 외부에 나타나면 빛이다. 영생은 진리대로 움직이는 것이요 그 움직임이 외부에 나타날 때 이것이 빛이다. 불신자에게 있는 영은 죽었다. 하나님의 진리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죽었다. 아담의 범죄는 전 인류와 계약한 대표자다. 대표자가 범죄 했으니 모든 인류가 계약 위약자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자다. 선악과 먹은 것은 능동이고 마귀에게 피동 되였으니 그는 죽은 자에게 피동 되었으니 그는 죽었다. 처음에 어긴 그 것이 원죄요 마귀와 죄가 왕 노릇 했으니 그것을 가르쳐 부패성이라고 한 것이다. 원죄는 아담이 범죄 할 때 인류가 부정모혈로 난 것은 원죄가 있는 고로 정죄 받고 원죄 동참자다.
그 죄악이 유전하여 나옴으로 정죄된 것이 아니고 아담의 범죄로 동참된 것이니 아이가 어미 배속에 잉태될 때 마귀가 왕 노릇 한다. 그러나 중생된 자에게는 죄가 왕 노릇은 못하나 그러나 죄가 와서 이성은 건드릴 수 있다. 중생된 자에게 죄가 와서 왕 노릇 한다고 하면 그 죄가 왕 노릇 한다고 하는 것도 틀린 것이다. 원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범죄이다. 이것이 패잔병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마귀의 것이 남아 있으니 하나님도 마귀를 나가지 못하게 한다. 마귀를 내어놓는 것은 죄를 내어놓는 것이다. 정죄는 하나님과 끊어졌다는 것이고 죄는 하나님에게 피동 되지 않는 것이 죄다. 피동 되지 않으면 끊어진다. ∴ 죄는 끊는 것이다. 휘장은 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니 휘장 없어지고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 되었다.
아담이 범죄 할 때 어떻게 했느냐. 하와는 아담에게 소속한 것이고 아담은 계약주체자이다. 아담을 넘어트리기 위해서 아담이 들어왔다. 아담이 선악과를 육이 먹으니 영이 하나님과 절단되었다. 영이 그 감독을 하지 못해서 육이 범죄 했으니 영육이 사망했다. 불신자는 육과 영이 사망아래 있고 기독자는 영은 생명 안에 있고 영은 사망 아래 있다. 불신자들도 영이 있다. 영은 상부에 있다.
∴ 육은 죽어도 영은 죽지 않는다. 예수님에게 대해서 예수님은 사람은 사람이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 영도 우리와 같은 영과 같이 지음 받고 육도 우리와 같이 지음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마리아에게 났고 우리는 부정모혈로 났다. 우리는 원 죄가 있고 본 죄가 있고 예수님은 이 것이 없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절단된 적이 없고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합해서 일위가 되였다. 양성일위가 된 것이 다르다. 우리는 양성 양위로 있다. 영원토록 가도 양성 결합은 되여도 양성 일위는 아니 된다.
◎
조직신학은 제일 권위 있게 되어있고 박형룡 박사의 조직 신학은 많은 학자의 말한 것을 나열시켜 놓은 것 뿐이다. 참고에는 유력한 책이고 그러나 자기의 주장은 희박하다. 박윤선 목사님의 조직신학은 가장 간단 명료하게 되여 있고 이상근 목사님의 조직신학은 현대에 있는 조직 신학보다는 앞섰다.
예수님은 신성을 인성과 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 정리하고 나니 또 양성 혼합이라고 나왔다. 이것을 정리하고 나니 신성과 인성을 가진 양성양위가 나왔다고 한다. 그다음 양성일위라고 세워졌다. 교파는 세계적으로 400여개 된다. 이 이단은 창세기 2장에서부터 나온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문제를 가지고 나온다. 안식교는 삼위일체를 동일시 보지 않는다. 나타나기를 셋으로 나타났다. 오늘 지금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 영은 사람의 생기라 래메쉬는 일으킨다 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신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영혼이 있기는 있는데 경계를 마음과 영혼과 그사이에 경계를 마음과 영혼과 그 사이에 경계를 두는 것과 육과 이성과 심과 그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 있다. 이러니 중생된 자의 영이다. 범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은 죄 짓고 어느 부분은 범죄 한다고 한다. 이것은 박윤선 목사님이 말한다. 또 어떤 신학교(고신)은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하나 되여 있는 이 선봉장은 범죄하지 않는다. 육체는 마음과 이성 뜻 성질은 육체에 속했다. 영은 이것과 하나가 아니고 분리 되여 있다.
갈5:16.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육체의 소욕.
①음행. 더러운 것 우상 숭배 감정 양심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이단 이것이 성령을 거스리고 있다.
롬8:5- 육체의 소욕
밷전2:11- 영혼이 범죄한다는 사람이 주장하는 성구 고후7:1
다니엘 5장
이 5장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여기서는 5:7-에 보면 다니엘이 왕에게 말한 말이 있으니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왕은 대단히 주밀하고 담대한 사람이고 또 그 제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여 진다. 그 국내 있는 모든 관직자들과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일을 든든히 하려고 한다. 요사이는 돈 가지고 사람을 사서 일을 하려고 한다.
∴ 돈이 사람보다 가치 있는 줄 알고 있는 고로 돈 있으면 정치 하고 사람 만드는 줄 안다. 느부갓네살 왕도 이렇다. 그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기생 음생 악기를 두고 놀 것이다. 이들은 불신자들이니 유대에서 잡혀온 사람들과는 항상 대립이다.
∴ 그때 보면 1장 대립, 2장에서 높아졌다. 3장 불 속에서 나왔는 고로 이스라엘을 주목했고 4장에서 시기 쟁투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전국이 대립되어 있다. 벌써 느부갓네살 왕 이하 왕인 벨사살 왕은 5대 왕이다. 이 세월이 지나가니 그들의 이름은 묻혔고 하나님의 사람은 모략을 당했다. 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공작을 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과 싸울 수 없었다. 이런 생활 방편을 가지고 장기간의 세월이 흘러갔다.∴그들은 많이 미움을 당하고 있었다. 요사이도 그렇다.∴정치가는 배우라고 했다. 배우는 그 백성들의 중심이 기울어지는 그 면을 주력한다. 정치가가 이렇게 대상의 심을 어떻게 해야 기울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고 그 면으로 일한다. 부정이 있는 것을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 때 이것을 들어 쳐버리고 하여 인심을 끌게 한다. ∴ 벨사살 왕이 백성들을 모아 잔치하는가? 이것은 높은 정치 수안이다. 요사이도 경로당 청년 사이비(0) 이런 것도 다 정치의 수완이다. 이것이 정치의 수완이 높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중수에 높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성이 없어질 때 그것이 패망당한 것이다. 그들이 모든 것을 준비하여 잔치했고 만족했으나 유대인들이 볼 때는 만족이 없다. 바벨론 왕은 밑과 옆이 잘 되여 물샐 틈이 없다. 모든 조건이 다 구비하다. 온 바벨론을 보니 다 구비하여 윤곽 조직이 구비하여 물 샐 틈이 없다. 그러나 한군데 고장 날 것이 있다. 한 시간 후에 무릎이 녹아지는 것이 올 줄 몰랐다. 바벨탑을 쌓을 때 그들의 의사 같으면서 바벨탑을 쌓지만은 한군데 탈이 났다. 벨사살 왕은 하나님에게 탈이 났다. 바벨탑을 어떻게 쌓든지 그것 쌓아서 홍수를 피할 줄 알고 쌓다가 그때 무슨 결과 맺었느냐. 구음은 혼잡 되고 사상이 갈라지고 나누워 졌다. 이때 갈라진 것이 지금까지 나온다. 느부갓네살이 나무로 보여 알게 했다. 그 나무가 커서 튼튼하다. 그러나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면 그것이 잘라진다. 다니엘 5장에 와서 다시 한번 다시 해석한다. 왕이여 들으시옵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다. 산골에서도 부자. 만들 수 있고 머리 좋게 할 수 있으니 이분을 관계 맺어야 하는데 하나님과 관계를 끊으니 네게 손가락이 나타나서 지적했다. 이것은 우리가 매우 범죄 하기 쉬운 것이다.
구멍가게를 차리는데
첫째 장소 사람 내왕 돈이 있는 것 이것을 본다. 이것 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장사하는 것이 뜻인지 아닌지 찾고. 하라고 하면 어떤 장사를 할 것인가. 양심껏 생각하면 나온다. 하나님 중심 사람들이 덕을 볼 것을 할 것 종별을 택하고 여기서 주의할 것이 무엇이냐. 행할 것이 무엇이냐. 하고 할 것을 하고 그 일의 책임이 하나님에게만 돌아가도록 하라. 그리만 하면 일이 된다.
①하나님이 이 방면으로 나가게 하는 것
②종류를 택하고
③주의할 것
④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 가리고
⑤구멍가게 장사하는 데서
⑥성패가 하나님에게 책임이 지워져야 한다.
⑦흥하면 하나님에게 영광, 패하면 하나님에게 수치가 돌아가도록 하면 된다.
⑧그것이 망하면 교인도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되였다고 해야 된다. 그놈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할수도 있고 하나님 때문에 그랬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하실 일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주님과 그 말씀에 지도를 받는 것이 주의 일이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한 것이다. 하나님에게 제 짐을 지우는 것이 어떤 것이냐 내 짐을 주님에게 지우는 방편은 그 지도를 받는 것뿐이다. 당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성패를 하나님에게 맡기라 그리고 너는 시키는 대로 해라 내가 실패하면 당신이 시킨 대로 한 자에게 책임이 있다. 예수님을 믿어서 무엇이 되려고 할 때 그것이 되려고 할 때 마귀가 와서 살살 유혹한다. 잘 믿어서 잘 될라고 하는데 싹 문대 버리니 이것 보아라 잘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여 망하게 한다. 이 지식 없고 무지한 자에게 시키는 대로 하다가 한번 어기니 지도자가 한번 어긴 이것이 전에 한 것도 다 헛일 했다고 하니 다 잘 했는데 한번 어긴 이것으로 전에 한 것 손해 본다 말인가 하고 마귀는 조롱한다. 우리 믿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졸졸 하다가 한번 어기면 쌓은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큰 둑을 쌓으니 물이 점점 많이 쌓인다. 물이 쌓일수록 힘이 많이 밀린다. 여기에 적은 구멍 하나 뚫어지면 그 쌓아올린 것이 헛일 된다. 이런 일이 많이 있다. 시키지 않은 일 중에 하다가 망하는 것이 있다. 자기가 건축이 되어져 가고 위대하여 질수 있는 데는 한 가지 구멍으로 실패하고 떨어질 일이 많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골짜기에 못이 있는데 그 못 감독이 3일 아니 가는데 울이 구멍이 뚫어졌는데 그것이 밤새 뚫어진 것이 그저 못둑이러져서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손해 보았다.
밸사살 왕은 저울에 모자랐다 말은 하나님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없었다 말이다. 그런 왕은 하룻밤 사이에 왕권 빼앗기고 죽었다.
이것을 5장에서 가르친다. 인간이 모든 면에 조건이 좋아도 하나님과 관계가 되지 아니하면 다 실패한다. 어떤 것이 만들어 지는데 자기가 책임지는 것과 자연이 책임지는데 있어 어느 것이 책임이 많으냐? 공로의 부분이 자연의 것이 많다. 쌀 한 개를 만들어 내는 데는 공로의 부분이 피조물과 사람은 1/100이 사람이요 99는 하나님이다. 하나가 아무리 잘되어도 99가 응하지 않으면 그것이 잘못된다. 사람이 눈은 눈자리에 붙여야 된다. 이것은 위치를 말한다. 개명교회 있기를 정했으면 거기에 있어야 한다.
유,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않은 자에게 깜깜한 흑암에 유황불 구덩이에 몰아넣는다고 했다. 자기의 위치는 연령적인 위치 직분 적인 위치 이것이 있으니 그것을 알고 지켜야 한다. 우리의 신앙 아브라함에게 첫째보이는 것은 본토 친척을 떠나라고 한 것은 이제까지 살던 방편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거기 살아도 그것을 떠나라고 한 것이다. 물질이냐 하나님이냐 가족 친척 부모냐 하나님이냐 이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든 것보다 앞세울 때 그는 물질의 축복을 받았다. 어떤 교역자가 개척교회를 세워 놓고 그 자리에서 곤고함을 당한다. 그 자리에도 만여 명이 사는 곳이다. 그런대 원망을 파송한 사람에게 한다.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한다.
교역자의 자녀는 일을 하여야 한다. 자녀는 교역자가 아니다. 그것은 일을 시키고 안 해도 일을 시켜야 한다. 교역자가 아니니 교역자를 가장 가깝게 도와야한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도우고 위해야 한다. 목회자도 목회에 전심전력을 기울어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에게 한번 작정한 것이 하나님의 종이니 실력이 있어도 한 교회를 맡아보지 못하고 배척당해도 노방 전도로 생은 계속해도 거기서 늙어 죽어야 한다. 애급으로 내려가면 반드시 죽고 망한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충성 되게 하는 자는 먹여 살린다. 하나님은 몰래하지 않는다. 교역자는 마음 하나 풀면 다 풀린다.
∴ 마음에 허리동이고 죽도록 충성하라 이것만 되면 하나님이 다하신다. 벨사살 왕은 땅에 것은 물샐 틈이 없으나 하나님과 관계가 없으니 깨여졌다. 하나님은 보수하시고 상급을 베풀어주신다. 사3:1-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자는 깨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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