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지식이란
1.정의
"지식"은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미래에 대하여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하므로 지식을 말할 때는 지혜와 비교해서 살펴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2.중요성
원자탄 만드는 방법을 먼저 알게 된 미국은 몇 십 만 명의 군인들이 전사할 것이 예상되던 일본 본토 점령을 주먹만한 폭탄 2개를 던져 깨끗이 항복을 받아냈다. 적국은 수 십 만 명이 죽고 자신들은 1명도 죽지 않고 끝내게 되었다. 경제, 과학, 역사, 법 등등 모든 인생살이에서 한 지식을 더 알고 모르는 데에서, 또 먼저 알고 뒤에 아는 데에서 상상 못할 결과가 따르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된 지금 모든 세계는 "지식 제일주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사람은 가진 지식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는 대로 행하게 되고 행한 대로 영원히 갚아지는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가르치는 "지식"이 잘못되어 있는데 그것이 옳은 줄 아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 지식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것이고 그러나 구원에는 완전히 실패할 것이다. 무신론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예 신앙 자체를 부인할 것이다. 또 믿음의 바른 지식을 가지면 비록 연약하여 넘어지고 혹 더딜지라도 결국은 자기가 가진 지식대로 신앙생활을 할 것이고 마침내 자기 지식의 범위와 정도에 따라 영생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3.성질 - 지행합일 (知行合一)
혹 신앙지식과 신앙생활이 일치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다루는 "지식"이란, 행위를 가져오게 하는 지행일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즉, 참된 지식이라는 것은 아는 그대로 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확정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듣고 접한 정도의 "인지(認知)"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한 것을 자신의 이성 비판이 여러 과정을 통하여 "수용(受容)"한 확정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지정도가 아닌 수용확정된 지식이라면 그 지식대로 심신이 움직이는 것은 필연의 일이다.
예를 들어, 화로 옆에 자기가 앉아 있는데 누가 자기를 불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면 자기의 행동이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슬슬 웃어가며 농담삼아 상대를 대하겠는가, 필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 쓰겠는가? 이 필사적인 반항이 바로 지행합일의 수용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학생시절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 불행해진다는 것을 아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이 학생은 공부해야할 줄은 알면서도 우선 노는 재미에 공부를 팽개친다. 이 학생이 공부에 대하여 아는 지식은 어떤 지식인가? 지행합일의 수용지식이 아니라, 듣고 접해 "인지"하는 정도의 지식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즉, 정말 알대로 다 안다면 그 지식에 관련된 범위와 원인 결과 등 모든 것을 안다면 지행은 합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는 것과 행함이 다르다는 것은 실은 아직 알지 못한 불완전한 지식, 인지지식 수준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불이나 공부에 대한 지식 2가지 예는 모든 사람이 평범하게 알 수 있는 지식이다. 그러나 신앙에 관련된 지식은 아무나 배운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또 자신이 노력한다고 알아지는 지식도 아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지식, 즉 "내세관"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자. 내세에 대한 지식은 누구나 들으면 기억하고 "인지"는 할 수 있다. 일반 지식은 물질세계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 단독의 범위에서 인지도 수용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이 지식은 물질계를 넘어선 영생에 대한 지식이므로 듣고 접하면 "인지"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고전12:3)
성령이 깨닫게 하면 "내세"에 대한 지식을 참으로 수용하게 되고 그 사람은 구원의 유일주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세상 철학자, 종교 학자들이 성경이 말하는 내세관을 잘 알아도 그가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인지" 지식이지 "수용지식"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입으로는 아무리 떠들어도 불이 정말 뜨거운 줄 모르기 때문에 불에 들어가고, 공부 안 하면 뒤에 고생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공부를 않는 것과 같이 내세를 안다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 믿는 것이다.
지식대로 살아가고 자신의 평생 산 그 대로 영원이 결정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때, 과연 지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무수한 지식에 파묻혀 사는 모든 사람들, 그러나 자신들의 일생 사는 행태를 끌고 가는 것이 실은 지식들인데 여기에 깊은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사니까 사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지식을 가지는 것은 자기지만 들어온 지식은 결국 자신을 그 지식대로 움직이게 하고 결국에는 자신이라는 사람도 그런 지식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을 깊이 생각할 때 비로소 바른 "지식관(知識觀)"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종류
지식 하나에 따라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국가의 흥망도 달려 있다는 지식의 중요성은 살펴보았으나 특히 믿는 사람은 자신의 영원을 결정짓는 것이니 지식이 곧 자신의 영원이라 단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의 중요성을 먼저 안 다음 살필 일은 지식의 종류이다. 지식에는 두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어 하나는 하나님지식이요, 하나는 인간지식이다. 하나님지식은 산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며, 인간지식은 그 자체가 죽은 지식이요 또 죽이는 지식이다. 그러나 인간지식이라 해도 그 지식을 사용하는 주체와 그 용도에 따라서 산지식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지식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식의 종류를 잘 알아 산지식, 살리는 하나님지식을 가지고 그다음 죽은 지식 죽이는 인간지식은 이 하나님지식에 이용물로 사용하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지식관이다.
그 종류에 따라 자기를 영원한 생명으로, 혹은 영원한 멸망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지식, 그 종류대로 하나씩 살펴 나가도록 한다. 단 하나님지식은 신관, 성경관, 성령관 등에서 특별히 많이 살펴 보는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하나님지식 자체에 대하여는 간단히 소개하고 대신 인간지식과의 관계면에서 주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