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교리]구원의 두 가지 적용에서 앞만 보면 그런 오해도 가능합니다.
"거듭(중생)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구원파식 교리:
"거듭(중생)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기본구원" 과 "건설 구원"을 나누는 것은 현재 [한국총공회]라는 교단에서 주장하는 교리로서 이미 고인이 된 백영희 목사의 주장을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필자는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연구할 것을 약속드리며, 본 호에서는 우선 위의 주장을 따르면 어떤 문제점들이 발생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구원을 얻는 방법은 몇 가지인가
1. 성경에는 "기본 구원"이나 "건설 구원"이란 말이 없으며, 그렇게 나누면 구원이 이원화되어 버립니다.
답변:
1.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기본구원 건설구원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성령"은 있어도 "성부"와 "성자"라는 말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구원"은 있어도 "건설"과 "기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성경에 알파벳의 집합적 모양으로는 "삼위일체" 단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단일성과 하나님의 3 인격 독자성을 가장 잘 요약한 교리적 표현이 "삼위일체"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3분화시켜 삼원화가 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하나님의 3인격을 녹여 혼합적 단일체를 만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교리요약이며 이런 교리요약은 "삼위일체"라는 요약된 표현 이면에 수많은 세월 속에 이런 용어가 도출되기까지 이 교리를 주장하던 분들의 수많은 표현들이 다 내포된 마지막의 결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배경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삼위일체"라는 단어만을 격리시켜 교리 주장의 배경 설명과 단절된 "삼위일체" 용어만을 해부실에서 분석을 한다면,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오히려 하나님을 "삼분화, 삼원화"시킨 말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오히려 하나님의 3인격을 녹여 그 독자성이 없어진 혼합물로 표현되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수많은 교리적 설명과 연구가 배경이 되고 최종적으로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도출되었을 때, 이 한 마디의 요약으로 교회는 400여년간 내려왔던 "하나님"에 대한 개념 혼동과 혼란을 깨끗이 정리하고 향후 1500년 이상을 "하나님"에 관한 개념만은 신비롭게 그리고도 은혜롭게 지켜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관"에 관련된 교리인 "삼위일체" 단어는 기독교 제일에 올려놓을 용어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는 "정확무오"의 말씀, "유기적 영감" "절대 주권" 등등이 있습니다.
2."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은 교리적 요약입니다.
성경에는 글자의 형태상으로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으로 모여진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단일성이고 그 구원의 적용 단계는 믿을 때와 믿고 난 이후에는 뚜렷하게 차원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단계로 적용이 되는, 또는 2차원으로 적용이 되는 한 구원의 두 모습을 요약한 교리가 "기본구원"입니다. "건설구원"이라는 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건설구원"이라는 교리입니다. "기본구원"이라는 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단일성, 따라서 "구원"이라는 용어는 빠질 수 없고 달리 표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 믿던 사람이 믿을 때는 루터나 칼빈의 주창대로 "전적 은혜"이며 "인간의 행위"는 완전히 배제가 됩니다. 처음 믿는 단계, 처음 믿는 이런 차원에서 만약 인간 노력도 있어야 된다고 한다면 바로 천주교식 구원론이 됩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면 ,전적 은혜로 믿는 사람이 된 것이며 전적 은혜로 우리는 천국 갈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난 이후의 성도, 예수 믿는 우리는 이미 받은 그 구원을 가지고 이제는 우리의 "믿는 노력, 말씀대로 살기 위한 충성"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을 때 다 같이 기본적으로 받은 대속 위에 얼마나 말씀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이루게 되었는가 라는 구원의 건설적인 면은, 손양원목사님과 오늘 물욕에 눈먼 우리 목사들과는 천국에서의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이나 오늘 죄로 범벅이 된 우리 목사들이나 자기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 대속으로 성령이 중생을 시키는 바람에 꼭같이, 전적 은혜로,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는 되었습니다만 예수 믿은 이후 평생을 손목사님같이 살아 간 종들과 오늘 우리같이 세상 물욕을 완전히 뒤집어 쓰고 살아가는 종들이 다른 점은 전혀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손목사님같은 성자와 우리같은 욕심쟁이 목사들이 같은 점은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천국은 같이 갈 것이고, 그 이유는 예수님의 대속일 것이고, 아무리 평생에 흠이 많든 적든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한번 믿어 중생된 사람은 천국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면에서는 모든 믿는 사람의 구원이 같으니 이를 기본구원이라 하고, 같은 구원으로 천국을 가게 되었으나 무엇이 달라도 다른 점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다른 점이 왜, 어떤 과정으로 다르게 되느냐는 것은 전 성경이 낱낱이 가르쳐 줄 것이지만 요약을 한다면 다른 점도 있으니 이것이 받은 기본 구원으로 평생 어떻게 믿었느냐는 그 평생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3."기본구원, 건설구원": 구원론이 집대성 되는 교리
이런 주장이 옳다면 "기본구원, 건설구원"은 성경에 없는 용어이기 때문에 교리사가 주목해야 할 "대단한 교리적 요약"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성경적 근거가 없다면 잘못된 교리 요약이며 따라서 자연적으로 도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교회의 역사와 연구의 축척에서 그 판단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2번에서 구원은 십자가 대속의 단일성이나 그 십자가 대속이 처음 믿는 사람에게 적용될 때와 이미 믿은 우리에게 적용될 때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요구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이런 설명에 대하여 백영희목사님이 잘못 깨달았다는 것을 설명하는 분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다만 성경에 그런 용어가 없었다든지, 아니면 전통으로 내려온 교리에 없었던 말이라는 등으로 틀렸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4.구원파식 교리는 구원의 단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신학이 원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 밖에 없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아무 노력도 행위도 할 것 없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일반 교회들이 비난할 때 "구원파"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그분들을 비난하는 이면에는 "예수를 믿고 나서도 죄를 짓고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지옥간다. 또는 예수를 믿고 나서 또 죄를 지으면 다시 구원을 받아야 된다"는 일반 교회의 구원적 혼란을 지적하여 소위 "구원파"가 그 범위를 넓혀 나왔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2. 위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우선 성경이 구원을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이라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용어도 없습니다. 용어가 없어도 사상이 있으면 그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용어를 만들어 쓸 수는 있습니다. 예컨대 삼위 일체란 말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본 구원"이나 "건설 구원"이란 용어는 성경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상도 없습니다.
답변:
1.구원의 적용이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은 명확히 성경적입니다.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이란 사상이 성경에 없다는 말은 대단히 성급한 판단입니다. 삼위일체의 사상을 성경에서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많은 세월 속에 겨우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여호와의 증인들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나서면서 단정하는 것이 성경에 그런 사상이 없고 그런 용어가 없다고 나섭니다. 이들에게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나설 교인, 목회자들이 희귀하여 그들은 한번 변론해 보자고 따라 다니고 그들과 변론해 본 사람들은 대단히 사상적으로 흔들리는 경우를 많이 체험하지 않습니까?
구원론만은 너무도 확실하여 이렇게 혼돈이 될 필요도 없는 정도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처음 믿을 때는 행위와 전혀 상관없이 전적 은혜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인간이 노력할 필요조차도 없고 노력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믿게 된 우리는 남은 평생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전적 받은 은혜의 구원으로 믿는 자 되었으니 믿는 자가 믿는 자답게 살아 보기 위해서 이제는 성경을 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까? 처음 믿을 때의 모습과 믿고 난 뒤의 모습이 "전적 은혜이니 인간 노력은 전혀 필요없다" "전적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는 두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혼돈하여 교회의 구원론은 구원파식 교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구원의 적용이 인간노력의 유무에 대하여 두 가지로 나타나고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적 은혜로 얻는 구원만으로 가르친 루터 칼빈의 주장대로 구원은 은혜로 받기 때문에 인간 노력이 필요없다고 하여 예수를 진정으로 믿은 사람은 죽는 날까지 죄를 안짓는다는 논리가 나오거나 아니면 예수 믿은 후 다시 죄를 짓고 회개를 못하면 지옥을 가게 된다는 논리가 목회 현장에서 교회를 어지럽게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소위 구원파로 불린 이들은 자신들의 독창적인 교리가 아니라 종교개혁 당시의 구원론을 바로 연구한다면 그리고 그 구원론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고 그대로 이어진다면 소위 구원파식 교리라는 논리는 필연적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구원파식 교리는 일반 교회가 예수를 믿고 나서도 죄를 짓는다고 가르치고 그 죄를 회개치 않고 죽으면 지옥간다고 가르친다며 그것이 틀렸다고 나선 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나면 죄를 절대 짓지 않게 되고 따라서 예수를 한번 믿은 사람은 꼭 천국을 간다는 주장입니다.
교회가 일반적으로 예수를 믿고 나서도 죄를 짓는데 이를 회개치 않으면 지옥간다고 말하는 논리 중에서 예수를 믿고 나서도 죄를 짓는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회개 하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주장은 칼빈 이후 정통교리를 통채로 뒤집는 것입니다. 자세한 백목사님의 구원론 설명은 위에서도 약간 했고 또 다른 곳에도 많이 설명이 되어 있으니 참고했으면 합니다.
백영희목사님의 구원론은 믿을 때의 전적 은혜, 믿는 사람이 된 이후의 행위로 길러가야 하는 것이 성화구원이며, 이것이 건설되어 가는 면으로 건설구원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 이는 구원파식 교리의 오해를 정통 칼빈의 교리에서 바로 설명하면서도 또한 칼빈 이후 교회가 건설구원의 또 한 면을 잊어 버렸던 것을 되찾은 것이니 전혀 이해의 문제일 뿐, 위험성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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