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갈등의 심각성
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어려움을 한번이라도 당해 본 사람이라면, 교회 갈등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박하게 가질 것입니다. 깊은 속 진심만으로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번 생겨진 갈등은 겉으로는 혹 봉합이 될찌라도 더 깊은 속에서 해결되기는 어렵고 그렇다면 외부와 달리 내부 시험 내부 섭섭함이 교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 됩니다. 교인 입장에서 교회만큼은 참으로 하나님의 품 속과 같이 느껴져야 할 곳인데 이곳에서 발생되는 갈등은 그 교인이 앉을 최후의 보금자리까지 없애버리는 것이며 이처럼 참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역자로서도 자기 전부를 기우린 곳인데 한번의 갈등으로 그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혹 잘 수습이 되어진다 해도 마음 속에 감정은 끝까지 남아 있어 두고두고 매사에 불씨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갈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교역자의 주관 착각
문제는, 생명을 참으로 내놓고라도 양보할 수 없는 주님의 뜻이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대개의 교회 갈등은 교역자와 교인의 인간적 이해충돌이거나 아니면 인간적 취향의 차이로 발생되고 있습니다. 교역자 측에서는 교인과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하나님의 종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밀어붙이지만 훗날 생각해보면 교역자 속에 있는 교역자 자신의 주관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교역자가 충분히 먼저 양보하고 이해하고 또는 설득하여 진행시킬 수 있었던 일을 자만심 또는 주관착각으로 한번 충돌해버리고 나면 그후 교회는 진정 교역자와 교인이 하나되는 것은 기대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해결은 교역자에게 있고 그 해결은 인식 자체를 전환
그렇다면 이런 교회내 이해충돌이나 사소한 주관적 취향의 차이로 갈등이 생길 때, 또는 생기기 이전 그 해결은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말할 것 없이 교역자가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꺾어 해결해야 합니다. 진정 양보할 수 없는 진리문제나 신앙노선문제가 아니라면 그외 모든 평상사에 관한 것은 교역자가 양보해야 하고 아니면 교인을 설득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데 교역자로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몇가지 요약해 봅니다.
------------------------------------------------------------------------------------------
1.소명감:
교회에서 발생되는 모든 분규 모든 충돌은 무조건 우리 목회자의 책임입니다. 그 모든 갈등의 가장 첫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교역자의 사명감, 목회직을 보는 기본 시각입니다. 목회자가 본래의 사명감에 자신의 직책을 생각한다면 어떤 억울 어떤 고난도 감사로 통과할 수 있고, 반면 이것이 결여된다면 어떤 교회든 결국 투쟁과 갈등으로 치닫지 않을 교회가 없습니다. 우리 목회자가 가질 사명감, 목회자가 자기 직책에 대하여 가질 기본 시각 중에서 교회에서 발생되는 모든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각은.
천하 만민 중에 믿는 사람된 것만도 큰데, 천하 만 교회 중 이 복음, 이 노선에 세워 주신 은혜는 은혜 위에 은혜라 특별히 더욱 새길 일입니다. 일반 복음을 가지고도 감격하여 평생을 한 길에서 마치는 종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이 복음 받은 우리겠으며, 하물며 이 복음의 사역자로 세움 받은 우리겠습니까! 웬 말이며 웬 은혜인가! 죽는 날까지 새길 일이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자신이 되기까지 새길 일입니다.
이 자세 이 감사를 잊어버리게 되면, 모든 세상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섭섭함, 억울함, 원통함이 가지가지 생겨나게 되며 이런 주관적 섭섭함을 다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교회란 없습니다. 사실 제 부모인들 제 자식을 그렇게 다 만족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나아가 자기는 자기를 그렇게 다 만족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중심의 인간, 그 자기 중심을 죽이면 모든 사람이 그 교역자 한 사람으로 인해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 중심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해친 사람이 바로 우리 교역자들일 것입니다.
교회마다 발생되는 모든 분규 갈등을 두고 교역자 말을 들으면 교역자가 옳습니다. 그러나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더라는 불신자들의 상식만 생각해 보더라도 교역자 자신이 자신 주장만으로 교회내에서 교인을 상대하게 된다면 결국 세상 여러 집단 중에 한 집단 밖에 되지 않게 됩니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종으로 진정 "종"이란 무엇이냐는 것에 매달리고 집중할 때 교인들과의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2.겸손:
오늘 교역자 되었다고 오늘부터 성자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대개는 교역자를 좋게 보았기 때문에 교역자를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자신이 교역자가 되는 즉시 남이 자기를 그렇게 봐 주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목회는 그냥 실패할 원인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역자가 되었다면 오늘부터 이제 교역자다운 교역자가 되어 보겠다는 출발일 뿐입니다. 어제까지 세상 생활하다가 오늘 교역자가 되었다고 갑자기 그 사람의 모든 언행심사는 전부 정확하고 옳은 것이 된다는 사고방식. 이 생각을 탈피한 사람을 찾기란 그렇게 어렵습니다. 교역자 자신도 그리 생각함으로 큰 폐단의 원인이 되는데, 더하여 교인까지도 새로 부임하는 목회자에게 사도바울의 기준으로 자기 목회자를 평가해 버리는 큰 잘못을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부임한 목회자는 사도 바울과 같은 훌륭한 교역자가 되려고 결심한 사람이며 걸음마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특히 우리 복음은 그 은혜의 강도가 능히 교역자가 되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말이 교인이지 실은 목회 나갈 형편이 되지 않은 교역자급 교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목회 나서는 내가 어제까지 그들과 같은 교인이었습니다. 이름이 달라졌다고 내 속에 신앙과 능력이 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모든 교회문제를 두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역자의 기본 시각이 조심하고 또 자신부터 배워가는 도중으로 생각하여 어떤 자존심이나 선입관념을 가지지 않는 것이 교역자로서도 또 교인의 한 사람으로서도 옳은 일일 것이며 또 한 이렇게 하는 것만이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경력:
세상 낙오 세상 낙제자들은 목회를 나온 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따라 다니는 것이 열등감입니다. 못났으니 주님밖에 없는 줄 알고 매진하면 정말 큰 은혜일 것이나 심성이 고운 사람에게는 악령이 마음 속에서 "너 세상에서 빌어 먹지 못해서 목회나 나온 것이 아니냐" 하면서 겸손이 지나쳐 열등감에 붙들리게 하고, 반대로 심성이 강한 사람은 "세상 잘난 것이 무슨 대수냐!" 하면서 소망을 부추겨 막가는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 공회 교역자는 이 면에서 확연히 두가지로 대별됩니다. 그래서 열등감에 비 맞은 개같이 쳐박힌 사람. 천하에 막가는 못 갎을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 성공, 세상 잘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평생에 초월키 어려운 것이 교만과 자신감입니다. "내가 그래도 목회 나오기 전에는 이러했는데..." 하는 이런 생각은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저절로 들고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생각이 깔리게 되면 하나님은 떠나고 인간만 남게 됩니다. 바로 사울왕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못난 사람은 못나서 망하고 잘난 사람은 잘나서 망한다는 것 꼭 명심할 일입니다.
4.사담:
교역자 자신의 개인 이야기, 개인 경험을 입에 담고 은혜로운 경우는 절대 없다고 단정을 합시다. 못난 사람이 못났다는 말도 속에 두고 느낄 일이지 밖으로 말하는 것은 유익이 절대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 잘났다는 말은 더욱 역겹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설교시간에 주의할 일입니다. 말씀만 증거하고 이치만 전할 일이지 사담이 섞이면 벌써 본인 입에서 나오는 말의 분위기부터 달라짐을 느낄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설교에 사담을 섞을 때는 이런 수준을 아득히 넘어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도 저런 사담은 피했으면 하는 교인들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는가! 하물며 목회 나온 처음이겠는가! 적어도 3년은, 좋게는 10년은 사담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면 득이 되지 실이 될 리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