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 지방성이 있습니다. 자꾸 노력을 해서 힘을 쓰지 않으면 처음에 나온 그 지방성 그대로, 또 그 지방 풍속 그대로, 또 그 사회 그대로, 그 나라 그 법대로, 그 유전대로 사람이 되어져버립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섬 사람의 지방성)
섬에 난 사람은 섬 지방성이 있습니다. 섬에 난 사람은 언제든지 섬적이라서 아주 그릇이 작고 자기네들만 압니다. 제주도 사람은 아무리 백 명 갖다 놔도 제주도 사람끼리만 똘똘 뭉칩니다. 남해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포부가 아주 적고 자기들끼리만 단합이 됩니다.
(8도의 지방성)
경상도 사람은 뚝뚝하고 미련합니다. 미련하고, 전라도 사람은 예민하고, 강원도 사람은 꾸준하고, 평안도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황해도 사람은 좀 원만하고, 함경도 사람은 계속성이 있습니다. 경기도 사람은 굉장히 민첩하고 사치스럽습니다. 충청도 사람들은 사람이 꾸준하여 꼭 소 힘줄 모양으로 땡글땡글합니다.
이전에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가 보면, 강원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애광양로원에도 없고 신망애양로원도 없고 또 다른 양로원에도 보면 강원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꼭 자기의 책임과 의무성이 있어서 자기 생활 자기가 하지 남에게 누를 끼쳐서 양로원으로 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방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평양 사람들을 말하기를 "산중출호(山中出虎)라" 산에서 나오는 범이기 때문에 왈칵 하지만 뒤가 없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어떻게 뚝뚝하고 미련하고 교만한지, 이래서 경상도 사람을 가리켜서 문둥이라고 합니다. 보기에 밉상이라 말이지요.
(자기 지방 단점을 알고 고쳐야 할 것)
경상도 사람은 교만하고 미련하고 뚝뚝한한 것을 고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자기가 경상도 사람이라면 평안도 사람을 닮아가고 전라도 사람을 닮아가고 또 강원도 사람을 닮아가고 경기도 사람을 닮아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경기도 사람은 굉장히 민첩하고 사치스럽습니다. 그 말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또 말뿐만 아니고 그 인품이 그렇습니다.
자기 지방성을 알아서 "나는 이 지방에서 났고 이 지방의 표준적인 지방성이 이러니까 나는 이 지방성을 기어코라도 벗어나고 이 지방성을 대항하여 이 지방성을 완전히 벗어야 되겠다" 이것을 애써야 합니다.
(백목사님의 자기 개선 노력)
나는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경상도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아마 경상도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도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 사람 고향이 평양도인가? 말씨를 들으면 아닌데"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또 "강원도 사람 같은데?" "전라도 사람 같은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왜 전라도 사람같다는 말이 나오는가? 내가 예민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은 뭐 간단 간단한 것 같은데 꾸준하여 꼭 소 힘줄 모양으로 땡글땡글한 것 보니까 충청도 사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 수십 년 같이 있는 권사님 장로님들이 저를 누군지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이런 사람이고 또 나중에 보면 딴 사람이고 또 저렇게 보면 저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꼬집은 사람들은 나중에 아주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태어난 지방의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서부교회의 지방 모임들)
1952년에 제가 처음 서부교회에 올 때 영남회라는 회가 있었습니다. 그 영남회에 가입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호남회가 있었습니다. 강단에서 교회 안의 지방성으로 모이는 영남회라 호남회라 꾸민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강하게 외쳤는데 얼마 후 영남회 호남회 충청회니 하는 이런 회들이 활기를 띠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니라는 그걸 한 강단에서 외치면 그게 나가서 전국에 외쳐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다 지금 제재돼 가지고 그거 주장한 일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 지방회가 들어서 제게 상당히 고통을 줬었습니다. 잘 믿던 집사님들도 그 회에 들어가서는 그만 다 낙심해서 지금 뭐 예수를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예수회, 영감과 진리회 외의 것은 전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요한복음 10장에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보다 먼저 온 사상, 뭐 윤리, 도덕, 또 습성, 사회성, 지방성 그런 것은 다 사람을 삼켜서 죽이는 것입니다. 모두들 그 지방성이라고 하면 그 지방으로 뭉치기 때문에 그 지방이 옭아가고 그 습관이 옭아가고, 그 문중이라면 그 문중, 그 문벌이 다 옭아가고 나니까 교회 안에는 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목회자들에게도 혈육주의 문벌주의를 벗어나라 하니까 삐꿔서 모두들 공회 정치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나간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여기서 나간 뒤에도 그런 것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예수주의에 들어가기는 참 어렵습니다.
(86102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