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인간론 - 본론2 (메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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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인간론 - 본론2 (메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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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영 ( πνευμα ) 과 온전함 (ολοτελεισ )



영(το πνευμα) 은 범죄 할수 있다, 없다 를 논 하는 것은 논제 자체 가 잘못된 것이다.

비단 여러 학자들 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알수 있는 것은 영 이란 주체(main, consitituent ) 가

아니요 , 자율성 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 이 흠이 있는 상태에 있다 또는 흠 이 없

다 (blamelessly, αμεμπτωσ)는 것은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온전함(ολοκληρον,

약 1: 4절 참조 이와 유사한 형용사 들 이 질적 양적 영적 인 진보를 묘사한다 . τελειοι

는 질 에 대해, ολοκληροι 는 양 에 대해 , ολοτελεισ 는 메시아 인 의 성품

이 궁극적 으로 성숙됨 을 말한다. )에 있어서 는 충분히 논할 근거 가 되는데 여기서 는 혼(ψυ

χη) 의 자의적 인 순종 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 을 창조하신 신 께서 다른 생물 과 달리

구별 되는 모양 과 형상으로 지으신 가운데 ‘전가 시켜주신 자유 의지 능력(free will agency ,

본인 이 의도 하고자 하는 바 는 자존자 와 의 동등한 능력 을 의미 하고자 함 이 아닌 자존

자 께서 허락하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인격력 의미 하고자 함으로 결코 펠라기안 적 사상 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 에드윈 팔머 지음 . 박일민 옮김 57, 100쪽 참조 )’을

지닌 혼 을 인도하는 주격(the nominotive) 의 ‘고유 기능’에 관계 된 문제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유 기능 ’ 에 관계함 은 본질( ουσια ,essence )의 구분을 불가피 케 한

다. 또한 온전 이란 (ολοτελεισ) 서론에서 논의 하여 본바 있다. 또한 영 을 온전히

보존 한다 는 것은 사람 의지 와 는 별개 의 것 임을 이분설 을 논할 때 주지 시킨바 있다.



1. 피조된 사람



우리 는 먼저 영 의 온전 을 논 하기에 앞서서 창조 시 의 모습 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볼 필

요가 있겠다. 하나님 은 천지 를 조성 하실 뿐 아니라 사람 도 지으셨다. (창 1장 26절, 창 2장

7절 ) 그것 도 하나님 의 모양 과 형상 으로서 말이다.

“ 여호와 하나님 이 흙으로 사람 을 지으시고 생기 를 그 코 에 부어 넣으시니 사람 이 생령 이

된 지라”

사람 에게 고유 로 부여된 것 이라면 유형 이든 무형 이든 지체 로 여겨 야 할 것이다. 본문

은 생령(창 2: 7절 , 고전 15: 45절 은 산영 으로 개역 성경 은 번역하고 있다. ) 으로 표기 된 살

아있는 생명체 의 생성됨 을 알게한다. 또 생기 가 들어가자 살아있는 영혼 이 됨 을 밝혀 주체

가 형성됨 을 알린다. 이 주체 의 능동 곧, 영혼 의 능동성 은 주입된 생기( 네쉬마흐) 에 의한

부여된 능동 인 것을 알수 있다.

사람 도 그 외의 동 식물 도 하나님 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임 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헌데

‘사람 의 시조’ 인 아담 창조 이야기 를 보면 한줌 의 붉은 흙으로 된 유약하고 허무한 피조

물 이기는 하나 피조된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지닌 존엄한 존재 임을 보여준

다. (구약 신학 논고. 김희보 저 . 기독교 문서 선교회 . 1975년 초판. 48쪽 )

생령 이란 살아있는 혼 ( living soul,네페쉬 하이 )이라는 뜻 이다.

και επλασεν ο θεοσ τον ανθρωπον , χουν απο τησ

γησ`



και ενεφυσησεν εισ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πνοην ζω

ησ,



και εγενετο ο ανθρωποσ εισ ψυχην ζωσαν.



(The Septuagint version : GREEK AND ENGLISH of THE OLD TESTAMENT regency

reference library Zondervan Edition 1970. ISBN 0 -310-20420-8 )



(ψυχην ζωσαν)살아있는 혼 이 된 것은 사람 의 육신 이 ‘하나님 의 영(루하)’을 받

았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는 고전 15장 45절 에 한글 개역 에는 ‘산영’ 으로 표현 되었으나 원

어 에 보면 ‘푸수케엔 조싼 ’ 으로 첫 사람 아담 을 표기 하고 있는 것을 본다.

동물 도 혼( 네페쉬 곧, 숨) 이 있고 호흡(루하) 이 불어진 상태( 전 3장 19, 21절) 일 찌라도 동

물 창조 는 사람 을 제외한 다른 모든 무 생물 과 다를바 없다. 여자 의 경우 에 있어서 는 고

전 11장 8절 에 "" 남자 에게서 났다"" 고 증거 하며 하와 의 혼 은 아담 의 혼 에 포함 되어 있

는 것을 알수 있다. 또한 이후 인류 의 개 개인에 있어서 , 사람 각자 에 새롭게 생기를 불어 넣

어 혼 을 창조 한다 는 것은 있을수 없다. 하나님 의 모든 창조 는 이미 완료 되었기 때문이

다.(L. Berkhof , Systematic Theology , Grand Rapid,

Wm. B. Eerdman Co ., pp 198 )

같은 구절 에 " 여자 로 말미암아 " 라는 표현 을 살피면 유전(遺傳)으로 혼(ψυχη) 과 몸(σ

ωμα)은 함께 주어지며 , 호흡 (πνευμα, 루하 ) 하지만 중생(重生) 은 예택(豫擇) 의 여부

에 의한 개별적 영 의 회복 임을 알게 된다. ; 사람 이 ‘ 살아있는 생명체 ’ 가 된 것은 사람

의 육신 (바살, flesh )이 ‘ 하나님 의 신 (바살)’ 곧, ‘ 생기 ’를 수용(受容)케 되자 (불어넣

으시니 ,나파흐, 숨 을 내쉬다에서 근원 ) 생령 ( 네페쉬 하이하 )이 된 것을 알았다. 불어 넣으

시니에서 ‘ 생기 (네솨마트 하임 ) ’란 ‘ 하나님 의 신 ’ 자체 가 아닌 것을 알수있다. 곧,

‘ 생명 의 기운’ 이 되는 의미를 가지거나 생명 을 의미 하기도 한다. ( 왕 상 17장 17절 , 욥

27장 3절 , 사 2장 22절 ) 이것 은 동물 들 에게도 사용될 수 있으나 (창 7장 22절) 보통 사람 에

게 적용 시킨 단어 로 ‘ 나소얌 (불어 버리다. 파괴하다.)’에서 유래하며 ‘ 바람 ’ 생명 의

‘ 호흡 ’ , 신적 ‘ 영감 ’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의 신(루하) 이 생명 의 근원 을 말한다 하면 , 생기 (네솨마트) 는 이 근원 으로부터

유래한 생명 을 말한다. 보통 영 은 생명 의 근원 을 말한다 해도 , 의사를 표현하고 활동하는

이성적 인 존재 에게 만 사용된다. 하나님 과 ‘ 하나님 의 형상’ 이 영적 이라 하지만 그 주

권적 형상 의 표현 은 사람 의 몸에서 도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창 9장 6절)

사람 의 육신 을 표현하는 구약 원어 바살 은 사람 의 뼈, 살 을 포함한 육신(body) 전체 를

말하는 때가 많이 있으며 ( 민 8장 7절, 욥 4장 15절, 잠 4장 22절, 시 84편 3절, 시 119편 120절,

왕하 6장 30절 참고 ) 영적 기갈 이나 기능 보다 오히려 더 많이 육적 정욕 으로 기울어 짐을

본다.

구약 성경에서 는 신약에서 와 같이 육(σαρξ) 과 몸( σωμα )을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육, 육체 즉 엄격하게 동물 의 고기, 또 영혼 과 관계되는 것으로 나 외적 상징 으로 인 몸, 함축

적 으로 는 육체, 도덕적 으로 연약성 을 지닌 사람-flesh. 육신 , 몸 은 구원하다, 보호하다, 고

치다, 보존하다, 완전하게 만들다 의 뜻 을 지닌 단어에서 유래 하는 것으로 건강한 총체 로서 의

신체, 또는 육적 으로 몸, 종 을 의미하다. 성경 성구사전 Ⅶ 아가페 출판사 간 ) 주로 외형적 표

면(face, surface ) 또는 피부 (skin )라는 뜻 을 표현하며(B. D. B Lexicon pp 142 ) 또한 에스겔

23장 20절 에 비추어 보면 정욕적 편향(偏向) 이 강하기에 이는 종종 사람 의 범죄성 을 표현

하는데 적용 되거나 , 사람 의 일시성(허무성)을 포함하고 있다.( 사 40장 6절, 시 78편 39절)

또한 유의해야 할 점 은 사람 은 ‘하나님 의 모양 과 형상’대로 창조되어 동물 들 과 달리

구별된다. 하지만 동물 도 ‘보이지 않는 혼’이 있음 을 부인할 수 없다.(욥 12장 1절) 전도서

3장 19절에서 ‘인생 에게 임하는 일 이 짐승 에게도 임 하나니 이 들에게 임 하는 일 이 일반이

라. 다 동일한 호흡(루하)이 있어서 이 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 이 짐승 보다 뛰어남 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 이로라.’ 그러나 죽은 후 처소 가 다름 을 본다.( 전 3장 21절 ) 한글

성경에서 는 ‘혼’ 으로 표기 했으나 이는 ‘생기’ 로 봄이 어울리는데 왜냐하면 인생 의 혼

(루하) 은 위 로 올라가고, 짐승 의 혼(루하) 은 아래 곧 ,땅 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 3

장 21절)에서 이 구절 은 짐승에게 요소적 인 영(루하, 푸뉴마)이 있음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 3장 19절 말씀 에 비추어 볼 때 호흡, 생명( 루하 ) 을 가리키는 것 임을 알게된다. 전 12장

7절에서 는 ‘육신(바살) 은 죽어 땅으로 돌아가고 영(루하)은 하나님 께 돌아간다’ 하였음 을

참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짐승 과 비슷한 듯 하면서 도 다른 사람 의 ‘하나님 모양 과 형상’

은 사람 의 타락 후 에도 계 자취 는 지님을 본다.( 창 9장 6절 ) ‘하나님 의 형상’은 사

람 의 불순종(창 3장) 으로 훼손 되었어도 아담 후손 들에게 전하여 졌다.(창 5장 1-3절) 하나

님 은 영( 루하, 푸뉴마) 이시니 그 의 형상 으로 지음 받은 사람 에게서 ‘영’ 의 형상을 찾을

수 있음 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하나님 의 형상’ 은 영원히( 아롤람, 영원히 ,무 시간적 인 초월성 이 아닌 한

없는 시간 의 계속, 생각 밖 의 과거 미래 등 의 시간, 실제적 으로 영원, 부사 로 항상, 늘 끊임

없이 , 오래 영구한 언제 든지 ) ‘하나님 의 신’이 사람 과 함께 하지 않으므로 (창 6장 3절)

형상 은 훼손 되었고 기능 또한 온전할 수 가 없게 되었다.

잠깐 생각 해야할 바 는 생물 들 의 혼 과 인생 들 의 영 이 다 여호와 의 손(욥 12장 10절)에

있는 것을 보아서 우리 는 식물 들 까지 호흡 에 대한 의미 를 살펴볼 수 있다. 식물 이 인격 을

지녔다 는 것은 아니며 근자 에 와서 는 과학 의 발달 로 탄소 동화 작용, 광합성 작용 등 이것

이 동물 들 에게 미치는 영향 을 객관적 으로 헤아려 볼수 있게 되었다.



2. 하나님 의 형상 이 상실(喪失) 된 사람



사람 에게 만이 특별히 부여된 ‘자유성’으로 ‘ 하나님 의 신 (루하) ’의 감화 와 인도 하심

에 순응 키 보다 는 은혜 를 저 버리고 ‘ 하나님 보다 더 좋은 듯 ’ 선악 을 알게하는 실과 를

먹은 사람.

사람 에게서 하나님 이 떠나신 것은 하나님 께서 변덕 스러운 분 이라서 가 아니다.( 지으셨

음 을 한탄 . 후회하심 이라 는 표현들 이 나오나 이는 하나님 의 변덕 스러움 을 의미함 이 아

니요 신인 동성 동형적 표현 으로 사람 의 상대적 인 실망 을 준 행위를 시사 한다. ) 사람 스스

로 가 하나님 보다 자기 가 좋아 보이는 듯 한 바를 선택 하였기에 하나님 은 사람 에게 주신 ‘

자유성’ 을 침해함 없이 떠나셨다.



여호와 께서 가라사대 나 의 신이 영원히 사람 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 이 육체가

됨이라.

(창 6장 3절) 이 구절에서 "나 의 신" 에 대하여 주경 학자들 의 견해를 보면 하나님 의 "영적

임재" 하심 의 떠남 을 알수 있다. 진노 곧, 하나님 의 곧은 공의(venema) 도 아니고 사람 에게

부여된 생명 이 있는 신성한 신 의 성품-육체적, 윤리적, 자연적, 영적 생활 의 이치 도 아니며,

성령 이시다. 창세기 1장 2절 에 나오는 루하 엘로힘 이시다. (풀핏 주석 참고)

영 은 구약 성서 의 주된 용법에서 처럼 은사, 즉 추가적 인 영 의 부여 가 아니라 사람 안에

내주하는 신체적 인 생명 의 잠재력 이다. (국제 성서 엣스포지스터 주석 참조)

일반적 으로 하나님 의 영 이요 능력 으로나 감화 로서 의 또는 신약적 의미에서 인격 으로서

의 성령 을 의미 할수 도 있다. 범죄 시 하나님 의 영 이 떠나는 예를 삼손 의 경우 (삿 16장 20

절 ) 와 사울 왕 의 경우( 삼상 15장 16장 14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 의 영 이 사람 으로 해석 되기도 하니 (시 104편 , 전 12장 )즉, 일반적 생명 으로 또는 "

루하" 를 "네페쉬" 나 또는 "푸수케" 로 취하는 것으로, 인성 삼분설 에 의하여 영(푸뉴마) 의 더

고상한 의미에서 (사람 에게 있는 더 고상한 , 또는 이성적 능력 , 그리고 더 하나님 과 동류됨

에 가까운) 감정, 또 감정 에 의하여 , 그리고 감정 을 위하여 , 단순히 귀납적 으로 알아서 판단

하지 않는 것 같은 이성이다. (랑게 주석 참조)



이렇듯이 " 나 의 신 " 이란 용어 에 대한 다양한 설명 이 주어 졌으나 분명한 것 은 처음 피조

된 상태 를 상실 하였다 는 것이다. " 살아있는 생명체 " 곧, 생령( 네페쉬 하이 ) 이 된 것은

" 하나님 의 신 " 곧, 생기 ( 네솨마트 하임 )를 수용 케 되었기 때문 이라 했는데 창 6장 3절 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을 알수 있다. 곧 살아있는 듯 하나 처음 과 는 달리 살아있지

못한 부분이 사람 의 지체 에 존재 한다 는 것을 시인케 한다. 이것 은 구약 성경 전체 에 흐르

는 것 이기도 하다.



상실 이란 온전 을 불능 케 하는데 곧, 생령 (네페쉬 하야) 이게끔 됨 상태 의 상실을 의미한다.

여기서 의 생령 이란 육체(바살) 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 의 고 차원 적 인 부분이 아니라, 그저

산 실유 를 가르치는 사람 전체 의 "생명체" 라는 사실 에 강조점 을 둔 것임 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 " 생명체 " 가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서 의 죽음 은 단계적 이라 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죽음 에 대한 정의 에 있어서 OUR REASONABLE FAITH pp.259 sin of death 항 참조

baker 1980 년 판 )





일차적 으로 하나님 의 신 이 떠나셨기에 ( 몸 , 즉 " 소마 " 의 실제 목적 은 성령 (Holy Spirit)

의 전 이 되는 것이다. 고전 6장 19절 . New Testament Theology. Donald Guthrie pp. 175.

IVP. 1981 ) 사람 에 있어서 임재 처소 였던 영 이라 불리우는 지체 의 활동 이 정지 되었음 을

본다. 즉 자유 의지 능력 ( free will agency )을( 성서적 으로 볼때 자유 의지 능력 이라는 용어

는 신학상 사람 이 자기 원하는 바 를 행할수 있도록 자유함 을 가리키는데 사용 되었고 , 자유

의지 는 사람 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유 의 종류 즉 , 선 이나 악 또는 그리스도 를 믿거나 대적

하는 것 을 선택하는 능력, 또는 자유를 가리키는데 사용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의 자유 의지 능

력 은 " 자존자 와 동등한 능력 " 을 의미 함 이 아니라 " 자존자 께서 허락하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인격력 " 을 의미 하고자 한다.) 보유한 주체( subject )인 혼 (ψυχη) 과 이를 담고있

는 실체(substance) 인 몸(σωμα)을 인도하는 주격( the nominotive ) 의 고유 의 기능 이요,

삼위 일체 로 알려지신 하나님 의 신격 의 사역 을 수용 하는 수동적 면 을 띠우는 기능 의 정지

를 말한다. 이 사실 은 사람 의 다른 지체 에 까지 정지를 파생 케 됨 은 유기적 지체 에 있어

서 극히 자연 스럽다. 그러나 “ 하나님 의 신 ”이 사람 에게서 떠났어도 (창 6장 3절) 즉시

육신 (바살)에 사망 이 온 것이 아니라 몇 십년 이라는 유여 기간 이 있음 을 알수 있는데 , 사람

의 육신 (바살) 은 “ 하나님 의 신 ” 이 떠난 상태에서 도 물리적 인 생활 은 이루어 졌다. 하

지만 창조 시 다른 생물 과 달리 구별되는 ‘ 하나님 의 모양 과 형상 ’ 으로 지음 받아 ‘ 생

의 목적 ’을 가능케 해주는 자유 의지 능력 의 주체 인 혼 까지도 멈추는 , 일반 지각 (박윤선

주석 422쪽. 1977. 6. 12. 영음사 ) 의 불 온전 뿐 아니라 몸 까지도 결국 부패하여 죽게 됐다.

이는 단계적 으로 보여 지는데 성경 은 육체 의 죽음 을 혼 의 죽음 과 구별 하였다. (마 10

장 28절) 이는 온전한 사람 으로서 의 개인 을 가리키는 가운데 구별된 것으로 육체적 생명 의

종결, 혹은 상실( 눅 6장 9절, 요 12장 25절 ) 이라 말하며 또는 신체 와 혼 의 분리 라 말 하기

도 하였다.(전 12장 7절)



육체적 죽음 은 신체 와 혼 의 분리 로 말미암은 육체적 생명 의 종결 이라고 말 할수있다. 이

죽음 은 결코 멸절 이 아니요, 존재 의 종지(終止) 가 아니라 , 생 의 자연적 관계들 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 개론. 루이스 벌콥 저. 신복윤 역. 308쪽. 은성 문화사) 예

수님(눅 23장 46절) 과 스데반 순교(행 7장 59절)들을 예로 들어 볼수 있다.

어원적 으로 보면 혼 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 과 육체 라는 보이는 것 의 분리를 αποκτ

ειναι로 , 보이지 않는 무형 의 존재에서 영(πνευμα) 이라는 실체 와 혼(ψυχη) 이

라는 실체 의 분리 를 νεκροσ 로 구분하고 있기도 하다. 창 6장 3절 이후 사람 의 상태

는 다양하게 묘사 되었으나 사람 스스로 는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 으로부터 ‘ 불쌍히 여김 을

받는 ’ 것 외에는 딴 도리가 없었다. 이들 에게 는 언약( COVENANT )이 부단히 주어졌고 이

는 또한 시간 이 경과 함 에 따라 점점 더 확충되어 이루어 지게 되었다. (언약 에 대한 것 으로

는 계약 신학 과 그리스도. 팔머 로벗슨, 기독교 문서 선교회. 김의원 역, 1983., 우리 의 실제적

인 믿음. 헤르만 바빙크 저 , 베이커 출판사 1980. 260-279 쪽. 약속 의 언약. 티. 이. 메콤스키

저, 베이커 출판사. 1985. 참고) 창 3장 15절 은 죽음을 맞게된 사람 의 유일한 ‘ 긍휼 에 대한

기대 ’ 에 의 ‘ 소망 ’ 이 되었고 아담 , 노아 , 아브라함 , 다윗 , 예레미야 를 거치는 가운데

그리스도 의 나사렛에서 ‘ 강탄 ’ 하심 으로 성취를 맛 보게 되었다. 계약 사상 은 중요한 흐

름 이나 주제 와는 성격상 포괄 하기에 는 힘 겨웁기에 이에 대한 언급 은 피했음 을 공지 한다.



3. 그리스도 의 대속(代贖 )의 공로 에 의한 ‘ 하나님 형상 ’ 의 회복.



사도 바울 은 그리스도 예수님 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그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 의 형상 이요 ,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자니,

οσ εστιν εικων του θεου του αορατου,

who is(the) image of God the invisible





πρωτοτοκοσ πασησ κτισεωσ,

(the) first born of all creation.



하나님 께서 는 사람 을 피조 하시기 전 창세 전 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 의 기쁘신 뜻

으로 구원 하실 자 를 예택 하셨다. (엡 1장 3, 4, 5절 ) 이는 사람 의 범죄 하기 이전 에 이루

어진 사실 이다. 사람 의 범죄 는 사망 을 낳았으나 하나님 은 주권 으로서 사람 의 범죄 이전

에 긍휼 과 진노 에 대한 그 영광 의 부요 와 관용 을 위한 택자 와 불 택자 를 예비 하셨을 것

을 성경 은 증거하고 있다. (롬 9장 22절) 만유 의 주 예수 그리스도(κυριοσ Ιησου

χριστω)는 참 하나님 이요, 참 사람, 참 빛 이시다.(θεον εκ Θεου, φωτοσ)

주 예수님 은 구약 성경에서 모형적 으로 여러 면에서 예표 되었었다. 주 (κυριοσ)란 그리

스도 를 하나님 과 동등한 위치에 둔다. 시편 110편 1절 은 다윗 이 썼고 메시야 를 가리킨다

는 것을 전제 하는데(신약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 시 110편 의 그 당시 사람 들 의 해석에 있

어서, 예수님 당시 이 사편 은 메시아 적으로 해석 되었을 것이 확실하지만 <Lⅹⅹ> 성경에 대

한 랍비들 의 연구에서 시 110편 이 메시야 구문으로 이해 되기는 3세기 후반 에 이르러서 였다.

이 시편 은 아브라함, 히스기야, 다윗, 후기 메시아 적 해석에 적용 되었다. 랍비 이스라엘<활동

연대 a.d 100-135> 이 시편 들 의 전통적 인 메시아 해석 은 ‘기독교 에 대한 적의 의 경향’

때문에 버리고 아브라함 에 적용 시켰다고 가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예수님 자신 은

그리스도 를 다윗 뿐 아니라 메시아 소망을 가졌던 다윗 의 후손 과 도 모형론 적 관계를 갖게한

다. 예수님 은 자신 을 다윗 과 솔로몬 에게 비교 시켰고 자신 의 행적 을 다윗 자손 에 관한 약

속들 의 모형론 적 성취 로 보셨다. “ 요나 보다 더 큰 의미가 여기 있다.”는 말 은 예언자 모

형론 을 명백히 표현한다. 또한 ‘솔로몬 보다 더 큰 이가 여기있다’(마 12장42절)는 다윗 의 자

손 모형론 을 언급하고 있다. 솔로몬 은 다윗 의 집에 주어진 메시아 약속에 미치지 못했다.(삼하

7장11절 이하) 또한 마태복음에서 는 예수님 께서 다윗 의 혈통에서 나신 사실 을 아주 강조하

고 있다.(마 1장2절 로 17절) 그리스도 에게 순종해야 한다 는 의미 로 예수 께서 단순한 ‘다윗

의 아들 이상’이란 것을 알린다.(마 1장16절, 18절 이하)

이처럼 연연히 흐르는 “약속”을 쫓아오신 그리스도 께서 이르시는 ‘하나님 형상’ 회복 은 대

속 에 의한 것 이었다. 이는 참 하나님 께서 참 사람 으로 오셔서 이루신 속죄 대헌 사역이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 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 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사랑 의 비밀 인 것이다.

주 그리스도 예수(χριστω Ιησου τω κυριω)는 십자가 에 달리신 하나님(이

는 몰트만 의 주요 논제 였는데, 그러나 ‘십자가 의 신학’을 비판적 신학으로 전개 시켰던 두

드러진 첫 사람을 몰트만 은 루터 로 보았다. “십자가 에 달린 그리스도 에게 참된 신학 과 하

나님 지식 이 있다.” Heidelberger Disputation, 1518 Luter Werke V388: W. Von Loewenich ,

Luters theologia crucis. 1954 참조. Karl Rahner 는 이 말을 그 의 명제 에 넣어서 "신학 자체

로 십자가 에 달린 신학 이며, 그러나 십자가 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 고 한다. ) 이러한 그리스

도 의 고난 의 참 의미 는 하나님 의 형상 회복 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선행 조건 이었다 할 수

있는 약속 의 성취 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에 달리신 분 은 단지 우리 와 똑같은 분 또는 무었인가 되려고 한 사람 일 뿐이 아니

라 그는 우리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되었었던 버림 받고 잃어지고 저주 아래 (사 53장)있은

사람 이라는 몰트만 의 말 은 음미할 가치가 있겠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 은 시편이

단지 예기적 인 방식 으로만 언급하는 결정적 인 하나님 과 의 분리를 경험 하셨다.(모형론 레온

하르트 고펠트 . 최종태 역 p.173)

이는 언약 에 있어서 자기 저주 를 통한 서약 의 견고성 을 보임 이다. 예수님 의 친구 들 이

십자가에서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 는 사실에서 누가 는 의로운 수난자 가 자기 의 가장 사람하

는 가까운 친구 들 과 분리되는 경험 을 하신 것을 또한 알려주고 있다. (눅 23장49절) 예수님

은 또한 창 3장 15절 의 약속적 언약 을 인치기 위해 (성취코자) 자신 을 죽이고 창 15장 17,18절

에 보인 언약 맺는 식 과 같이 하나님 과 의 분리됨 을 격고 지나갔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 은 하나님 께 버림 받았다 고 외치신 외침 은 ‘인자’가 마지막 으로 지

녀야 만 했던 절망 의 최저 의 심연 으로부터 터져나온 외침 이었다.( 요한복음 12장 27절, 13장

21절 의 경우 각 구절 의 주석을 참조해 보면 영 과 혼 의 정황 을 환히 알수 있게 된다. 요

12장 27절 은 히 5장 7절 의 그 의 육체 ‘ σαρκοσ ’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 과 눈물 로 간구 와 소원 을 올렸고 그의 마음 ‘ ψυχη ’속에서

뼈져리게 의지적 인 느낌을 나타내며 , 요 13장21절 은 ‘ 심령이 민망 하여 ’ 라 했는데 이는

죽음 을 앞둔 정적 인 동요 가 아니요 영적 인 동요 로 ‘ τω πνευματι ’ 는 번민

의 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의 슬픔 을 표현한 가장 강력한 표현중 하나 로서 몸

에서부터 혼 과 영 속에 스며드는 배신 과 버림 받음에서 오는 고뇌 뿐 아니라 그 의 사랑 과 한

사도 와 그 의 운명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조 에 의한 고뇌이다. - 랑게 . 풀핏 주석 참조)

και τη ενατη ωρα εβσησεν ο Ιησουσ φωνη μεγαλ

η

and the ninth hour cried - Jesus with a voice great



ελωι ελωι λεμα σαβαχθανι ;

Eloi Eloi Lama sabachthani



ο εστιν μεθερμηνευομενον ο Θεοσ μου ο Θεοσ μ

ου,

which is being translated, the God of Me, the God of Me ,



εισ τι εγκατελιπεσ με .

why Me did you forsake (막 15장 34절, 시 22편 1절 참조 )



시편 22편에서 ‘ 내 하나님 ’ 은 이스라엘 의 계약 의 하나님 이고 버림 받은 ‘ 나 ’는 계약

의 한쪽 편 이고 , 그 버림 받음 으로서 하나님 의 진실성 에 호소하여 불평하는 사람 은 의로운

사람 이었는데 예수님 에 있어서 ‘ 내 하나님 ’ 이란 부르짓음 은 하나님 나라 의 접근 에 대

한 예수님 의 선교 의 전 내용 과, 하나님 께 접근해 사는 예수님 의 ‘ 인자 ’ 로서 의 전 내

용 을 보유함 을 알수 있다. 또한 예수님 의 죽으실 때 의 부르짓음 에 나타난 저 땅이 꺼지는

경험 은 예수님 과 그 의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 으로서 , 이 아버지 와 그의 아들 사이에

서 일어난 사건 또 매우 역설적 으로 하나님 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 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 윌겐 몰트만 소망 의 신학 - 십자가 에 달리신 하나님 47쪽)

이는 대속(代贖) 의 절정 이었다. 대속이란 놀라운 것 이다.

주 하나님 은 피조된 것에서 찾아볼수 있듯 변화에 복종 하시는 분 이 아닌 절대 불변성 을 지니

시나 , 자유성 을 지니시기 에 피조물 이 변하는 것 같이 변화 하시지 는 않으나 , 자신 을 변하

게 할 자유를 지녀 자신을 타자 에 의하여 변하도록 하려는 의욕에서 자유롭기에 하나님 은 피조

물 과 같이 나눌수 는 없지만 그는 우리에게 자신 을 줄수 있으시도다. 즉 연구 의 대상 은 될

수 없으시며 , 불변하시다. 그러나 우리 혼 에 자유 의지 능력 을 주신 ‘ 자유 의 완전 ’을 지

니신 분이시다.

참 하나님 이시며 참 사람 이신 주 그리스도 예수 께서 는 십자가에서 , 하나님 의 독생자 이

시나 유일하신 참 아버지 에 의해서, 하나님 없이 살고 하나님 께 버림받은 사람 을 위하여 버림

받으셨으니 , 주권 과 순종 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 께 대한 공의 와 사람 에 대한 사랑 의 관

계를 통하여 , 하나님 없이 사는 자 를 구하고자 하나님 과 동행하사 하나님 없이 사는 상태에

이르신 사랑 을 보이셨다. ( 빌 2장1절 로 8절) 또한 유일하신 참 하나님 은 (요 17장3절) 자

신 이 보내신 독생자 ‘ 예수 그리스도 ’ 를 버리실 때 또한 자신을 버리셨고 , 그가 외 아들

을 희생 하실 때 그는 자신을 희생 하셨다. 그러나 이는 부신 수난설(Patripassianism) 은 아니

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으로부터 유기(遺棄, dereliction )를 맞보셨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 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의 죽음 을 그 의 사랑 의 무한한 고통에서 경

험 하셨고 , 분리를 아파 하셨다. 하나님 의 고통 은 ‘ 하나님 의 사랑 ’ 과 는 달리 하나님 의

사랑 을 버린 사람 들을 사랑하는 사랑 이며 , 그 속에 표현에 적극적 인 방도 로서 의 하나님

의 직접적 사랑 을 포함하고 있다.

십자가 의 대속(代贖)은 억지로나 인색함 등 ‘ 자유성 ’이 침해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 아니

다.

갈라디아 서 2장 20절에 나를 버리다( παραδοντοσ) 라는 형식이 그리스도를 주격으로

계시하여 비춘다. ‘ 나를 사랑하사 나를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 의 아들’ , 하나님 께

서 예수님을 내어주심 일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주신 것이었다. 이러한 ‘자유성’이

있기에 높여지신 것이다.(빌2장9-11절, 막14장6절) 이것을 바로 알게될 때 에야 우리는 마가복

음 15장34절이 절망 의 최저 의 심연 으로부터 터져나온 외침이라 해도 원망이 아닌 ‘사랑’의

극치인 것을 알아야 감화적 감동을 영원히 누릴수 있는 것이다. 제 구시에 예수 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 의 하나님 나 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 15장 34절)이다.

예수님 의 인성 으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로서 감당케 하시는 감사와 그리스도 의 신

성 으로는 ‘기름 부음을 받은자’ 로서의 직책을 수행 성취 함에서 의 ‘하나님 과의 분리’ 에

서의 아픔의 외침을 보아야 한다.

‘자기 포기’라는 표현 형식이 아버지 에 관련 되서도 , 아들에 관련 되서도 사용된 것을 본

다는 사실은 명료하게 저 겟세마네 의 기도 일화에서 표현된 것과 같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 과

그 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의 서로 깊이 관련된 공동의 목표요, 두 위의 신격이 내적으로

일치된 그것은 서로 분리될 시점에서 나타나는데 , 십자가 의 형벌은 역사적 포기도 되고 종말론

적 굴복도 되기에 분리(分離) 에서의 통일 과 일치 에서의 분리는 십자가 의 형벌에서 하나로 되

어있다.( Muhlen, Die veranderlichkeit Gottes, pp 32 ) 여기서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는 전적으

로 하나님 의 독생자를 포기함 으로 분리되고 동시에 독생자 자신 의 ‘자기 포기’로 긴밀하게

일치를 이루었다.( 몰트만. 소망 의 신학 -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58쪽 ) 여기서 독생자 그리

스도 예수 의 ‘자기 포기’란 영혼(ψυχη)에 부여된 ‘전가된 자유 의지(free will agency )

’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밝히 알수 있다.( 히 5장 8,9절, 히4장 15절 )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 과 독생하신 하나님 사이에 하나님 의 영으로 일어난 사건이

다. 즉,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 이 하나님 때문에 죽는, “ 거기서 하나님 이 하나님 과 쟁투 하

신다 ”고 루터는 골고다 에 대해서 말 하였다. 하나님 은 이 죽음을 죽으셨으나 그러나 죽지

않으신다. 도리어 참 하나님 이요 참 사람 이신 예수님 의 죽으심 으로 , 또 그것을 통하여 하나

님 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이 되신다. (전인용서 59쪽) 십자가 대속물 로 자신을 주는 ‘자기

포기’ 로 인하여 자기를 포기 하시는 하나님 자신, 곧 완성 계시를 이루시는 분이 되신다.

“ 아버지 의 고통은 이 철저한 파괴에서 겪는 아들 의 죽음이요, 아들 은 아버지 로부터 버

림을 받은자 요, 스스로 자신을 자기 포기에 내어준 하나님 의 뜻에 순종한 자요, ‘ 아버지 와

아들 의 포기 ’라는 성령(聖靈)이 영원히 나오시사 창세 전에 예택(豫擇)은 됐으나 버림받은 자

에게로 와서 그들 의 생 의 미래를 열어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 께 독생하신 하나님 이 죽기까지

순종한 결과이다.

십자가 의 대속(代贖)은 사람이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 의 한 격의 고난 으로 볼수 없다. 삼

위일체 의 교리는 하나님 에 대한 사변, 혹 우리를 초월하는 신비(멜랑톤, 괴테 의 견해)만이 아

니라 그리스도 의 수난을 가장 간결하게 서술한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의 내용적 원칙은 ‘

십자가 ’요, 십자가 대속 의 형식적 원칙은 삼위일체 교리이다. 삼위일체 의 가장 짤막한 서술중

의 하나는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한 말(막 15장 34절)이며, 거기서 아버지 는

아들로 하여금 성령에 의하여 희생 하도록 하셨다.( 전인용서 54, 60쪽 )

이러한 십자가 의 대속( 자기 목숨 <ψυχη>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 로 주려함, 막20장28절

)은 ‘하나님 의 형상’의 회복을 가능케 했는데 이것은 ‘대속 의 공로’를 믿음으로 취하는 ,

믿음을 방편으로 주신 것이다. 영(永) 단번에 이루신 대속은 영 단번에 ‘하나님 의 형상’

을 회복하게 했다. 여기서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겠다. 그것은 개개인 에게는 구속(救贖)적용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인 데속의 결과는 죄 사함 받은 것,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 - 의롭다 하심이란 죄인 들

에게 거저 주는 하나님 의 은혜 행위 인데 하나님 이 그들의 모든 죄를 사 하시고 자기 목전에

그들을 의로운 자로 여기시고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이 행한 어떤 일로 인한 것 도 아니다. 오로지 그리스도 의 온전한 순종 과 완전한 대속을 보시

고 그리스도 의 의를 저희에게 전가 시키고 오직 믿음으로 만 받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 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두 위의 신격 으로부터 ‘영원히 나

오시는’ 보혜사(παρακλετοσ)성령 의 안보 하심 가운데 화친(和親)의 교통이 이루어 지

게 된 것이다. 즉 유일하신 참 하나님 으로부터 나오시되, 영원 전부터 존재, 독생자 예수 그리스

도 의 관계적 형태를 지니심 으로 이미 이루어진 사실 인데, 그러나 아직 구현되고 있는 중 이다.

일 개인 에 있어서 나 구속(救贖)사 에 있어서 나 이 사실이 나타난다. 일개인 에 있어서

사람의 두 부류 로 대별되는 가운데서 메시아인 의 경우 ‘보혜사(παρακλετοσ)성령’

의 임재 하는곳 이요, 사람 의 최 우선되는 주격 인 영(πνευμα)의 회복을 들수 있다. 이는

사람 의 의지가 관여할 수 없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다.

일개 의 메시아인 을 성전(聖殿, 고전3장16절) 이라 하였다. ‘보혜사 성령’의 사람 의 영(π

νευμα)에 임재 하심은 하나님 의 뜻을 바로 조명받게 되는 초석(礎石)이다. 이것은 이미

구속 적용이 성취된 영역이다. 이곳은 ‘혼미케 하는 영’의 접근을 하나님 은 허락지 않으셨다.

(요일 5장18절) 예수(Ιησου) 께서 그리스도(χριστω) 이심을 믿어 구주 로 영접한 자는

이미 천국 시민이다. 하나님 의 백성이다. 이 백성이 천국 에서의 영원한 영광 의 지위를 마련하

는 특권이 값없이 주어진 자이다. 또한 ‘동질(同質)의 영’과는 원활한 교제와 사귐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라 함은 영(πνευμα)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우선되는 혼 이

있으며 사실상 사람 의 주체는 혼(ψυχη) 인 것이다. 이것은 본질상 ‘ 전가된 자유의지 ’능

력이 주어진 ‘무형 의 존재’이다. 이것은 인격 이라는 지성 , 감성, 의지를 지녔으며 때로는

나눠 보기도 하는 ‘잠재의식’(많은 경우 에 있어서 영을 잠재 의식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는

심리학 에 의하여 영을 구원시킬수 있다 고 주장함 같은 착각과 같다. 잠재의식 은 심리학에서

주로 다루어 지는 것이다. 이는 유전에 의한 혼 에 대한 것이다. 또한 영 에 대한 다양한 용어 용

법에 의하여 흔히 지칭되는 것이 혼동을 빚는 경우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과 ‘각성 의식’ 차

원을 지닌다. 이것은 부정모혈 로 유전(遺傳) 되는 것이다. 이 혼이란 개성을 지닌‘얼’이라 명

명 되기도 한다.

이 혼 은 신자, 불 신자 모두에게 있어서 심판 근거가 된다. 또한 이 혼은 유형 의 그릇 이랄

수 있는 몸이 있다. 육체(σαρξ)라 함은 ‘혼 과 몸’ 의 복합된 상태 의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다. 원래 의 육체 는 하나님 의 보시기에 좋은 것 이었다 는 사실을 우리는 ‘창조 설화’를

통해 알수 있다. 그러나 육체가 하나님 의 말씀을 거역 함으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 하셨는데(창 1장3절) 하나님 의 말씀에 대한 거역 은 ‘창조 질서 에 대한

거역’ 이기도 하다.

창 6장 3절 이 밝히는 바 와 같이 사람 의 부패는 육체에 있게 되었으니 이는 혼 과 몸 의 부

패를 의미 하기도 한다. 사람 의 영 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오직 ‘하나님 의 영’ 만

이 임재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이상 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헌데 사람 의 육체 가 부패케 되자 사

람 의 영은 더러워 졌고 결과적 으로‘ 하나님 의 형상 ’을 근본적 으로 잃어 버리게 되었던 것

이다. 하지만 그리스도 즉 하나님 의 독생자 예수 님 의 ‘하나님 의 뜻’ 에 죽기까지 순종 하

심 은 대속(代贖)을 온전히 이루셨고 구속 적용 하신다. 사람 의 영 에 ‘하나님 의 영’이 영원

히 임재 하시기에 ‘ 하나님 의 형상 ’의 회복에 대한 구체적 인 적용이 육체 에 이루어지게 되

었으며 구체적 인 적용이 육체에 이루어 지게 되었으며 ‘보혜사 성령’은 이를 주도하고 계신

가운데 있다. 더욱 더 감사한 것은 매사에 모든 것이 신령 과 진정으로(요 4장24절) 거룩한

산 제사(롬12장 1절)를 몸으로 드려 매사 의 삶을 무의미 하게 보냄없이 주어진 현실을 다스릴수

있게 된 것이다. 전제적 인 구속사에서 볼때 사람 의 영 은 이미 구원 받은 가운데 있다. 사람

의 혼 은 구원받아 가는 가운데 놓여있고( 성결교에서 말하는 완전 성결이란 이미 대속 의 공로

를 입은 영 의 회복에 혼 에대한 구속 적용 의 온전한 순간 순간 상태로 이해 한다면 무리가 없

을 것이다. 사람 에 있어서 ‘성결 의 완전성’ 이란 주어진 은혜 에 대한 수납일 뿐이지 자신

스스로 득도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각에 의한 과정을 무시하지 않으나 이 자각이 다른 이

종교 와 전혀 다른 것은 예수 께서 그리스도 이시며, 육체로 오신 구주 로 믿고 받아 들인 이후

의 삶 이기 때문이다. ) 사람 의 몸 은 그리스도 의 심판날 신령한 몸 인 신령체 로 변화된 구원

을 얻을 것이다.

실현된, 실현 되어지는 , 실현될 종말론 이랄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의 형상 회복

’ 에 대한 한 일개인 또는 구속사에서 의 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습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

속 은 기독 예수 내에서 신인양성 일위 남여중보 일체 에 의한 자존자 중심 성속(聖俗)일치 에

의하여 성취된 사건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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