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공회의 속고 산 허망한 기록들, 1997년과 2015년
다음 자료는 현재 노곡동 기도원 철폐 사태의 내막을 담고 있다. 부산공회 30년의 외부와 내면까지 포함하고 있다. 광우병 소동에 전국이 광풍에 휩싸인 소동이 부공2와 대구공회를 더 이상 흔들 지 않기를 바란다. 1997년과 2015년의 기록을 우선 제공한다. 반론이 들어 오면 더 명확한 자료를 공개하겠다. 이만기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불러 주는 대로 적는다. 이 곳의 자료와 글을 공개 반론하는 이는 없다. 가끔 있으면 주변에 잘 아는 분들이 얼른 말린다.
<1997년 5월 집회 준비 자료>
5월 집회는 3월에 세부 계획이 나온다. 지도부가 결정하는 줄 안다. 실은 커튼 뒤의 1인이 결정했다.
이 겉봉은 행정실장이 쥐고 있는 교역자회 통과용 원본을 담고 있다. 회의는 해봐야 무조건 통과다.


<봉투 뒷면의 노곡동 회계 담당>
백 목사님 생전의 교회 돈은 3인에게 나눠 맡겼다. 횡령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회계 3인의 이름이 집회 공식 조직에는 왜 기록 되지 않았을까. 이미 이 기록에는 문제가 보인다. 송종섭 목사가 회계 부정을 막아 보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도 윗선에서 내려 준 범위를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집회의 전체 조직도와 비교하면 바로 보인다. 보이는가?


<97년 집회 조직도 - 1>
이 것만 일반 목사들이 본다. 이 것을 전부인 줄 안다. 각자 자기 임무에 충성한다. 그 뒤에 돌아 가는 것은 참담한 사실은 모두 하나님께 맡긴다고 핑계를 댄다. 떠들면 부공3처럼 처형된다. 이 조직도에는 부공2의 현재 실세들의 이름이 있다. 여기 없는 부공2 이름은 신세대다.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른다.


<97년 집회 조직도 - 2>
이 이름 중에 '이진헌, 김응도, 김삼암, 이재순, 서영호' 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주로 예배의 사회나 강사로 예상 되어 일단 보류한 것이다.


<조직도 이면지 기록>
이 곳에 무엇이 보이는가? 이 곳에 공회의 모든 내면이 보이는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부공1은 적극 동참한 죄, 부공2는 공범, 부공3은 외치다가 밀려 났다. 지금은 부공3이 로마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 모든 기록을 읽으며 아는 사람이 몇일까? 각 공회 별로 한두 사람일 듯하다. 그들은 자기 공회의 현재 교권을 쥐는 상황이니 판을 깨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대로 대충 넘어 가는 것이 나을 듯하다. 부공2 삐라의 말처럼 '예,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곳은 한 마디를 더하고자 한다. '예, 교회도 그렇게 하면 세상처럼 얻는 것이 많습니다.'라고
<2015년 '노곡동과 백순희' - 류정현 목사 발표문>
대구 노곡동 집회의 평소 조직도에 '백순희 총무'를 정식으로 올려, 부산공회가 공식적으로 '백순희 책임자가 배후의 실질적 책임자가 아니라 모든 목사들이 순종하고 따를 공식적 직함을 주자는 발표문

<2015년 '백순희 지도 체계의 명문화'는 성경적이다! - 류정현 목사 논문>
류정현 목사는 1986년부터 5년간 미국의 카브난트에서 신학을 정식으로 밟고 학위까지 보유한 부공1에 유일한 학자다. 참고로 부공3 이영인 목사는 2년간 청강만 했고 학위도 없다. 그런데 공회는 류정현 목사처럼 이 성경을 이렇게 읽고 이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이런 식은 공회 바깥 방식이다.

류정현 목사는 백순희 사모의 사돈이다. 그렇다고 인정에 끌려 이렇게 말한 인물은 아니라 한다. 어쨌든 이 성경 해석은 공회 입장은 아니다. 그가 배운 카브난트의 논리가 이런 식이다. 공회 내에서 이런 언급과 인용은 참으로 곤란하다. 류 목사는 오로지 공회만이 전부라고 걸어 왔다는 점에서 그답지 않은 이런 성경 해석은 사돈을 위해 너무 무리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할 듯하다.
<2015년 '백순희 지도 체계의 명문화'는 공회적이다! - 류정현 목사 교리>
설교록 10만 페이지 속에서 이렇게 뽑아서 사용하면 류 목사의 영안은 이미 너무 흐려 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아무리 옳아도 사돈 입장에서 담을 말은 아니다. 다른 사람 이름으로 했으면 더 좋았겠다. 백순희 사모의 역할은 류정현과 이영인 둘은 알고 있다. 백영희 목사님은 물론 최재현 목사님과 온 형제들조차 극히 부정적이었다고. 도리를 따라 잘 모시는 것은 찬성이다. 그러나 잘못 나갈 때는 평소 충성한 그 모든 분량을 쏟아 막고 나서야 한다. 류정현과 이영인의 차이는 여기 있다고 본다. 류정현 목사는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좋겠다. 백순희 사모를 혼자 막아 나서라. 늦어 지면 돌아 설 회개의 기회도 없다.

< 전체적으로>>
1997년에는 그래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부공1에 붙었던 절대 다수의 모든 목회자들이 부공2로 몰려 갔다. 그렇다면 뭔가 말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전국 불신자들 앞에서까지 각목을 들고 난리를 해놓고. 1997년에만 해도 부공1이 절대 다수의 힘으로 공회를 운영하고, 부공2는 김 목사 몇 사람만 서영호 박사를 결사옹위하자고 나설 뿐 대부분은 부공1에 눈치를 보며 부공2를 박해할 때다. 그들이 지금은 부공2로 옮겨 갔다.
1997년에도 이렇게 부산공회 내부의 목사들조차 모두 속고 산 기록을 봤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며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들 입장이 난처하니 서로 먼산만 보며 못본 척했다. 바로 이런 토양과 분위기 때문에 2019년의 노곡동 철폐가 가능했다. 공회를 안다는 이들은 공표용 자료만 안다. 정말 속고만 살았든, 속은 척 했든, 알 수 있는데도 속는 듯이 애매하게 따르며 속으로는 잇속을 챙겼든 3 가지 중의 하나일 듯하다. 정말 속은 사람이면 이 문건 때문에 폭동이 일어 나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회의 오랜 역사와 교회사가 그렇다. 평양이 저렇게 유지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말 한 마디에 전국이 광우병 인민재판의 광풍 쇼를 연출했듯이, 2019년 부공1과 2는 대구의 북구청이 단속한다더라고 거짓말 한 마디를 돌리니 50년의 기도원 역사를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지웠다. 여기 1997년 5월의 노곡동 집회를 준비하는 자료와 훗날의 설명을 함께 제공한다. 각 공회에 한두 사람만 알 듯하고, 나머지는 원래 좌파 광풍에 완장 차고 설칠 사람이니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주변에 알 만한 분들께 물어 보시기 바란다. 부산공회의 겉과 그 속이다. 과거와 현재다.
<1997년 5월 집회 준비 자료>
5월 집회는 3월에 세부 계획이 나온다. 지도부가 결정하는 줄 안다. 실은 커튼 뒤의 1인이 결정했다.
이 겉봉은 행정실장이 쥐고 있는 교역자회 통과용 원본을 담고 있다. 회의는 해봐야 무조건 통과다.


<봉투 뒷면의 노곡동 회계 담당>
백 목사님 생전의 교회 돈은 3인에게 나눠 맡겼다. 횡령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회계 3인의 이름이 집회 공식 조직에는 왜 기록 되지 않았을까. 이미 이 기록에는 문제가 보인다. 송종섭 목사가 회계 부정을 막아 보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도 윗선에서 내려 준 범위를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집회의 전체 조직도와 비교하면 바로 보인다. 보이는가?


<97년 집회 조직도 - 1>
이 것만 일반 목사들이 본다. 이 것을 전부인 줄 안다. 각자 자기 임무에 충성한다. 그 뒤에 돌아 가는 것은 참담한 사실은 모두 하나님께 맡긴다고 핑계를 댄다. 떠들면 부공3처럼 처형된다. 이 조직도에는 부공2의 현재 실세들의 이름이 있다. 여기 없는 부공2 이름은 신세대다.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른다.


<97년 집회 조직도 - 2>
이 이름 중에 '이진헌, 김응도, 김삼암, 이재순, 서영호' 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주로 예배의 사회나 강사로 예상 되어 일단 보류한 것이다.


<조직도 이면지 기록>
이 곳에 무엇이 보이는가? 이 곳에 공회의 모든 내면이 보이는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부공1은 적극 동참한 죄, 부공2는 공범, 부공3은 외치다가 밀려 났다. 지금은 부공3이 로마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 모든 기록을 읽으며 아는 사람이 몇일까? 각 공회 별로 한두 사람일 듯하다. 그들은 자기 공회의 현재 교권을 쥐는 상황이니 판을 깨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대로 대충 넘어 가는 것이 나을 듯하다. 부공2 삐라의 말처럼 '예,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곳은 한 마디를 더하고자 한다. '예, 교회도 그렇게 하면 세상처럼 얻는 것이 많습니다.'라고
<2015년 '노곡동과 백순희' - 류정현 목사 발표문>
대구 노곡동 집회의 평소 조직도에 '백순희 총무'를 정식으로 올려, 부산공회가 공식적으로 '백순희 책임자가 배후의 실질적 책임자가 아니라 모든 목사들이 순종하고 따를 공식적 직함을 주자는 발표문

<2015년 '백순희 지도 체계의 명문화'는 성경적이다! - 류정현 목사 논문>
류정현 목사는 1986년부터 5년간 미국의 카브난트에서 신학을 정식으로 밟고 학위까지 보유한 부공1에 유일한 학자다. 참고로 부공3 이영인 목사는 2년간 청강만 했고 학위도 없다. 그런데 공회는 류정현 목사처럼 이 성경을 이렇게 읽고 이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이런 식은 공회 바깥 방식이다.

류정현 목사는 백순희 사모의 사돈이다. 그렇다고 인정에 끌려 이렇게 말한 인물은 아니라 한다. 어쨌든 이 성경 해석은 공회 입장은 아니다. 그가 배운 카브난트의 논리가 이런 식이다. 공회 내에서 이런 언급과 인용은 참으로 곤란하다. 류 목사는 오로지 공회만이 전부라고 걸어 왔다는 점에서 그답지 않은 이런 성경 해석은 사돈을 위해 너무 무리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할 듯하다.
<2015년 '백순희 지도 체계의 명문화'는 공회적이다! - 류정현 목사 교리>
설교록 10만 페이지 속에서 이렇게 뽑아서 사용하면 류 목사의 영안은 이미 너무 흐려 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아무리 옳아도 사돈 입장에서 담을 말은 아니다. 다른 사람 이름으로 했으면 더 좋았겠다. 백순희 사모의 역할은 류정현과 이영인 둘은 알고 있다. 백영희 목사님은 물론 최재현 목사님과 온 형제들조차 극히 부정적이었다고. 도리를 따라 잘 모시는 것은 찬성이다. 그러나 잘못 나갈 때는 평소 충성한 그 모든 분량을 쏟아 막고 나서야 한다. 류정현과 이영인의 차이는 여기 있다고 본다. 류정현 목사는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좋겠다. 백순희 사모를 혼자 막아 나서라. 늦어 지면 돌아 설 회개의 기회도 없다.

< 전체적으로>>
1997년에는 그래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부공1에 붙었던 절대 다수의 모든 목회자들이 부공2로 몰려 갔다. 그렇다면 뭔가 말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전국 불신자들 앞에서까지 각목을 들고 난리를 해놓고. 1997년에만 해도 부공1이 절대 다수의 힘으로 공회를 운영하고, 부공2는 김 목사 몇 사람만 서영호 박사를 결사옹위하자고 나설 뿐 대부분은 부공1에 눈치를 보며 부공2를 박해할 때다. 그들이 지금은 부공2로 옮겨 갔다.
1997년에도 이렇게 부산공회 내부의 목사들조차 모두 속고 산 기록을 봤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며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들 입장이 난처하니 서로 먼산만 보며 못본 척했다. 바로 이런 토양과 분위기 때문에 2019년의 노곡동 철폐가 가능했다. 공회를 안다는 이들은 공표용 자료만 안다. 정말 속고만 살았든, 속은 척 했든, 알 수 있는데도 속는 듯이 애매하게 따르며 속으로는 잇속을 챙겼든 3 가지 중의 하나일 듯하다. 정말 속은 사람이면 이 문건 때문에 폭동이 일어 나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회의 오랜 역사와 교회사가 그렇다. 평양이 저렇게 유지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말 한 마디에 전국이 광우병 인민재판의 광풍 쇼를 연출했듯이, 2019년 부공1과 2는 대구의 북구청이 단속한다더라고 거짓말 한 마디를 돌리니 50년의 기도원 역사를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지웠다. 여기 1997년 5월의 노곡동 집회를 준비하는 자료와 훗날의 설명을 함께 제공한다. 각 공회에 한두 사람만 알 듯하고, 나머지는 원래 좌파 광풍에 완장 차고 설칠 사람이니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주변에 알 만한 분들께 물어 보시기 바란다. 부산공회의 겉과 그 속이다. 과거와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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