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거짓말 또 거짓말 -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1. 마12:34
독사의 자식들아, 우리가 하나님 중심을 잊으면 우리는 누구나 다 독사의 자식들이 됩니다.
너희는 악하니, 우리가 우리 중심이 되면 그것을 성경은 악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선한 말을, 하나님이 원하는 바른 말 옳은 말 구원에 유익 된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마음에 가득한 것을, 이는 그 마음에 악이 들어 있으니 내뿜는 것이 다 거짓말 뿐입니다.
2. 마음에 가득한 악으로 말한 사례
남 목사님은 예배당 소송을 지지한 분이며 백 목사님은 예배당 소송을 반대한 분입니다.
백 목사님에게 잘못이 있으면 남 목사님은 고소 고발할 분이나 백 목사님은 그 반대입니다.
그래서 남 목사님은 마음대로 거짓말을 해도 밑져야 본전이지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남 목사님과 고신이 이 노선을 향해 온갖 거짓말을 일삼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백 목사님과 공회는 어떤 거짓말로 밟아도 소송을 하지 않을 것이니 뒤 탈을 걱정 말아라?
그 대신 합동이나 통합 측에 대하여 발언할 때는 사실 확인에 벌벌 떨고 조심을 합니다.
그 곳은 소송이나 세상식 대처의 방법과 정도가 고신이 비교 못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남 영환 목사님의 거짓말, 그 거짓말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한 고신의 무책임은
이런 교리적 신앙 노선적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표현은 일일이 사실 확인을 할 수 없거나 잘못이 있어도 허용 가능한 경우가 있으나
남 목사님의 위 글은 누가 읽어도 사실 여부에 따라 그 결과는 수용 가능 범위가 넘으므로
발행자는 남 목사님이 적은 글이라고 표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털어 내지 못합니다.
손을 씻었다 해도 우리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고백하는 정통 교파입니다.
3. "사위를 교장으로 세웠다가 교리에 차이가 있지 사위를 신학교에서 잘라 버릴 정도였다"
- 완전한 거짓말
남 목사님의 거짓말입니다. 착각이 아니고 고의로 왜곡하고 마음의 악을 뿜은 표현입니다.
백 목사님 사위는 최 목사님입니다. 남 목사님이 누구보다 잘 아는 연유가 있습니다.
- 거짓말이 실수가 아닌 이유
남 목사님은 백 목사님의 자녀들을 다 알았고 사위와 그 모친과 거창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최 목사님은 남 목사님이 그렇게 평생 긍지를 가지고 있는 고신의 진해 강좌 63명 동기이고
이 때 진해 강좌는 고신 역사의 첫 페이지에 늘 기록 되며 거창에서 함께 간 몇 명이었으며
최 목사님 모친은 남 목사님이 거창 지방의 전도사일 때 전도 부인으로 함께 활동했습니다.
최 목사님은 1961년 이래로 고신에서 교수로 있었고 후에 총장을 지낸 오 병세 목사님과
미국의 카브난트에서 함께 공부한 분이므로 남 목사님은 최 목사님의 이후를 잘 알았고
심지어 총공회에서 탈퇴한 신 도범 목사님이 거창 출신으로 서울 강남에서 함께 계셨으며
그 신 목사님의 여 동생이 잠실동 교회 사모님이고 남 동생이 총공회장까지 지낸 분이니
남 목사님은 총공회 소식을 돌아 가실 때까지 아주 잘 알고 계셨던 분입니다.
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에 남 목사님은 백 목사님과 만나서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위"라는 말로 비판하면, 읽는 사람의 인상에는 선입견과 잔상이 자극적으로 남습니다.
그래도 사실 관계라면 그렇게 비판을 받아도 일반적으로 친 인척 비리가 많기 때문에
사위를 교장으로 임명한 교단장은 남들의 일반적 지적을 들어야 할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위를 교장으로 임명한 사실이 전혀 없고 사위가 탈퇴한 적도 전혀 없을 뿐더러
그 목사님의 교리가 고신의 총장을 배출한 신학교 출신이므로 총공회와 다른 적이 없었고
1950 년 대에는 고신의 오 병세 총장님을 배출한 카브난트에서 그 사위는 함께 공부를 했고
1980 년 대까지 현지에 머물면서 한인 교회와 신학교의 관계를 제일 앞서 유지한 분이며
고신의 지도부를 포함하여 많은 인물들이 그 곳을 거쳐 갈 때 그 집에서 늘 안식을 했고
카브난트 교수들도 그 분 주선으로 현지 한인 교회를 적극 지원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 더욱 놀라운 것은
백 목사님과 교리가 맞지 않아서 탈퇴한 총공회의 신학교 교수는 송 용조 목사님이었는데
그는 1988 년에 탈퇴하자 바로 고신에 가입을 했습니다. 남 목사님 영향권인 서울입니다.
신 도범 송 용조 목사님이 서울 지방의 고신 교회들 중에서 역할과 활동이 있었습니다.
남 목사님은 1978 년 대 말부터 서울에 있었고 노년까지 서울 지역 고신의 제일 어른인데
"사위를 교장으로 앉히고 교리가 맞지 않아서 신학교 교장에서 잘라 버렸다."
이 정도로 자극인 표현을 동원하며 거짓말을 꾸며서 상대방을 모함한 것이 통하는 곳,
그런 책을 고신의 역사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붙여 출간하고 있는 곳이 고신입니다.
이 글이 아마 관계자들에게 읽혀 지게 된다면 해당 책을 자진해서 폐기하리라 믿습니다.
도서관에 이미 전시가 되었다 해도 수거해서 폐기하는 것이 세상 법적 처분일 것입니다.
이 노선은 소송 반대 노선이니 먼저 제기하지 않을 것이나 고신은 소송을 하는 곳이니
그들 기준에서 죄가 될 것이며 무거운 책임이 있을 것이므로 자진 처리하리라 기대합니다.
6-1. 거짓말 또 거짓말 - 안수 과정, 성경 말씀의 권위 등
1. "목사 안수 과정이 불명확하다는 표현은 이단이나 사이비를 모는 방법인데
이단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안수 과정이 불명확합니다.
그런 이유로 국내에서 이단이나 사이비라는 표현이 나오게 되면 안수 과정이 거론 됩니다.
단순히 백 목사님의 소속이나 안수 과정의 절차를 잘 모른 정도였다고 읽히게 해 놓고는
아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교계의 내용을 아는 일반 수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백 영희 목사님이 고신 출신이라 하는데 고신의 총회장까지 지낸 분이 안수 과정을 모른다,
이런 표현을 사용한 남 목사님, 그리고 그 표현이 갖는 입장을 아는 고신의 출간 책임자,
하나님 앞에 그 표현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하나님과 심판을 알기나 하는가!
안다면 오늘 고신이 오늘처럼 되어 있을 리가 없다는 말로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백 목사님의 안수 과정이 불명확하면 고신은 사이비 여부나 적격 여부를 확인하기까지는
호칭을 중립적 호칭이나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는 등 그 방법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위 글의 초기에 목사라는 호칭을 고신의 내부 목사님들과 꼭 같이 사용하다가
뒤에 사이비의 대표적 현상 중 하나인 안수 과정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박 윤선 목사님까지도 따랐던 김 현봉 목사님에 의한 안수인데 당시 기록을 위 글에서는
아주 소상하게 설명하면서 타지의 교회들 이름까지 줄줄 다 열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에서 가장 핵심인 안수 과정을 마치 모르는 듯 표현하면서 실제로는 안수 과정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악의로 남을 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양심을 버렸습니다.
2. 이 인재 목사님 관련 교회 개척과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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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재 목사는 대구 성남교회에 시무하고 있었다. 이인재 목사가 백영희를 가까이
하면서 이인재 목사는 성남교회에서 견디기 어려워져 성동교회로 분리하여 나왔다.
그리고 다시 성동교회를 또 분리하여 ○○교회를 설립하여 시무하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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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목사님은 마치 한국 교회사를 자기 머리에 다 담아 놓고 권위 있게 술회하는 듯 보이며
이런 구체적 교회 명칭과 역사를 쭈욱 설명해 버리면 듣는 이들에게는 과거사에 정통한 듯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데, 문제는 얼마나 열거 하느냐에 있지 않고 정확성에 있습니다.
성남 교회와 성동 교회는 한 교회인데 예배당 이전 때문에 이름을 바꾼 교회입니다.
대구 제일 교회에서 고신 노선에 따라 1952 년에 개척했고 1974 년에 이름을 바꾸었으니
성동 교회라는 이름은 개척한 교회도 아니고 이 인재 목사님과는 해당도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고신 내에서 있었던 일인데 이 정도로 기초 사실을 조작하고 글을 쓴다면
남 목사님의 글은 그 어떤 사실이라도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는 허위의 글일 뿐입니다.
1960 년에 이 인재 목사님은 서울 성산 교회를 개척하여 대구를 떠났던 시절이 있었는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시무한 교회와 개척 관계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적고 있습니다.
어떻게 팔십이 넘은 노인의 기억을 자기 교단 원로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사실 확인도 않고
자기 교파 내의 교회들의 홈 페이지만 열람하거나 전화 한 통이면 해결 될 기초 사실을
이렇게 막 써 내려가고 출간까지 하며 고신의 역사 이름을 붙여 배부를 하고 있을까?
참으로 탄식입니다.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3."백 영희 목사의 특색은 설교 시작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셨다고 강조하여"
남 목사님은 오늘까지 기록으로 남겨 진 역사도 마구 거짓말로 다 조작을 하시는 분이니
과거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이런 설교 표현은 증명조차 안 된다고 판단하셨는지 모르겠으나
백 목사님의 설교는 지금 1950 년 대부터 다 기록이 되고 현재까지 보존 되어 있습니다.
해방 전에도 설교 일자와 본문까지 기록 된 내용이 많고 1950 년대는 거의 보존되어 있는데
이 시기는 백 목사님이 고신 내에 있었고 고신 최고 강사로 전국을 다닌 기록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 시간 중에도 설교 내용에 틀린 것을 공개적으로 수정하고 바꾸는 분이며
성경에 대한 권위를 백 목사님만큼 평생 설교에서 외친 분이 없기 때문에
박 윤선 목사님이 총애를 했고 이런 사실을 남 목사님 스스로도 인정을 해 놓고도
고신 시절에 있었던 설교 내용의 한 줄을 집어 이단으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이 인재 목사님께 들은 말까지 인용하며 마치 객관적인 사실로 조작하는 것도 악의입니다.
오로지 미운 사람 하나를 찍어서 욕 보이려고 할 수 있는 거짓말을 다 동원하는 식입니다.
고신 시절 백 목사님은 기록이 증명하듯 고신 전체를 통해 설교를 가장 많이 한 분입니다.
고신의 그 때 분위기에서 남 목사님이 말한 이런 문제가 있었다면 그냥 넘어 갔겠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그렇게 설교했고 신학교 안에서도 그러 했으며 남 목사님 뿐 아니라
박 윤선 목사님과 고신의 지도부까지 참석하는 예배에서도 자주 설교하면서 그러 했습니다.
설교는 인간이 제 생각으로 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붙들고 전하는 대로 전해야 한다,
그 것보다, 그러면 남 목사님은 하나님께 붙들리지 않고 인간 제 멋대로 설교해야 옳은가?
그렇다면 남 목사님의 평생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 자기 주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한 것이니
이 것이 사실이라면 남 목사님이 평생 교인들에게 배척 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고신 내에서 최고의 은혜를 끼치는 설교로 정평이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제명은 이동에 대한 거부였지 설교를 성경과 혼동한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이단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교주의 말을 하나님 말씀과 혼동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성 범죄를 거론하며 서부 교회의 출발이 그런 범죄 집단으로 출발했다고 암시하고
목사 안수의 과정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부각 시켜 다시 한 번 사이비의 특징을 부각한 다음
이제는 백 목사님은 그 설교를 성경 말씀과 동일한 권위로 주장했다고 조작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백 목사님을 이단이나 사이비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백 목사님을 비판하다가 사과하고 회개하지 않은 경우가 없는 줄 아니까
뻔히 모든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에 있는 악으로 욕이라도 해 대는 글입니다.
꼭 당시에 그런 표현이 이단이었다면 남 목사님은 고신에 이 문제를 거론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변에 이런 말로 백 목사님을 헐려고 하자 지도부가 남 목사님을 책망했습니다.
이 인재 목사님은 남 목사님보다 한참 선배입니다. 이 목사님은 백 목사님 추종자였습니다.
백 목사님을 헐려는 남 목사님을 늘 이 목사님이 막았고 이 때문에 감정도 많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대구에서 백 목사님을 계속 따르지 못한 것을 훗날까지 후회 했던 분입니다.
6-2. 거짓말 또 거짓말 - 박 윤선 이 인재 이름을 팔면 진실인가?
1. 남 목사님은 박 목사님을 아는 분인가?
남 목사님도 인정했듯이 박 윤선 목사님은 백 목사님의 신앙과 실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남 목사님은 박 목사님과 정치 행정 면에서 업무상 오가는 수준 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남 목사님이 위 글에서 말한 대구에서 있었던 이 인재 박 윤선 목사님 사건들은
전부 이 인재 목사님과 박 윤선 목사님이 고신에서 탈퇴한 뒤의 일입니다.
깊은 내막은 알 수도 없는 위치였습니다. 알았다면 어느 교회로 갔다더라는 정도입니다.
박 윤선 목사님이 예배당 문에 발을 들여 놓지 못했다고 표현한 것도 아주 거짓말입니다.
박 윤선 목사님이 동성로 교회에서 설교한 세월이 적지 않았고 당시 교인들과 있었던
중생 교리에 대한 논쟁을 두고 아직도 당시 현장을 그대로 술회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심지어 박 윤선 목사님이 동성로 교회를 떠나게 된 원인까지 남 목사님은 아는 듯 말하나
이 부분에 대한 남 목사님의 거짓말은 이 홈에서 반증을 하다가 박 목사님의 가슴 아픈
가정 문제가 이야기 거리로 던져지게 될까 하여 그만 두겠습니다.
박 목사님 스스로 가정 내에 있었던 불행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그래서 떠났습니다.
이상한 것은 모든 교회 이름들을 다 실명으로 거론하며 온갖 표현을 서슴치 않으신 분이
어떻게 하여 그 교회만 "00" 교회라고 했을까? 그 교회가 바로 동성로 교회입니다.
동성로 교회에는 고신이 자랑하는 학생신앙운동의 첫 창립 회원인 신 도관 장로님이 계시고
그 분은 대구의 제일 중심부에서 외과 의원을 예전부터 경영한 유명한 의료인입니다.
그 장인 우 동팔 장로님은 대구 지방 고신의 원로들이 다 아는 유지입니다.
그 분들께 명예 훼손으로 책임을 추궁 받을까 해서 그 교회 이름만 익명 처리하셨을까?
아니면 다른 관계로 배려하셨을까? 어떤 경우든 이 것 하나만 봐도 정당한 글이 아닙니다.
2. 남 목사님은 이 인재 목사님을 아는 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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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합동하였다가 환원한 뒤로 박윤선 목사와 이인재 목사의 적(籍)은
합동측에 있었지만 사실상 떠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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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에 상관 없이 고신은 박 윤선 목사님을 제거했고 박 목사님은 고신을 떠나 버렸습니다.
합동에 상관 없이 고신이 백 목사님을 제거하자 이 인재 목사님은 백 목사님을 따랐습니다.
다른 인물은 총신과 고신이 합동한 후 고신이 변절하고 돌아서자 소속이 어중간했을지라도
박 윤선과 이 인재는 고신과 총신의 합동에 상관 없이 최소한 고신과 결별한 분들입니다.
합동과 환원이라는 고신 최고의 치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 목사님 입에서 달리 말한다면
그 죄는 당시를 잘 모르는 일반 다른 사람의 말보다 고의성과 악의성이 훨씬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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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빙수속을 밟으려 했는데 이인재 목사 부인이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고 하여 시골에는
못 들어가겠다고 하여 거절하였다. 그리고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동생 이명재 목사에게
전화를 하였고, 1년 후에 이명재 목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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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이 인재 목사님 평생 목회 생활에서 가장 크게 그리고 한 번 실수한 대목입니다.
남 목사님은 백 목사님과 이 인재 목사님 사이의 여러 내막을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 인재 목사님이 동생 이 명재 목사님 때문에 백 목사님과 서울 교회에 실수를 했습니다.
역사 기록으로 명확하게 남아 있는 일이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 목사님은 남북 전쟁을 가지고도 반대로 설명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보입니다.
이 인재 목사님은 남 목사님 뿐 아니라 백 영희 목사님께도 아주 선배 되는 목사님입니다.
한 상동 주 남선 목사님과 함께 신사 참배를 반대했고 고신을 설립할 때 주도한 분입니다.
해방 직후 주 목사님을 통해 당시 집사님이던 백 목사님을 알게 된 이후부터 평생을 통해
이 인재 목사님이 가장 사모하고 따르고 좋아했던 분이 백 목사님입니다.
1960 년 대 초반 대구에서 이 목사님이 백 목사님과 나뉜 것은 잠시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그 사유도 이 목사님이 잘못 한 것인 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훗날 회개한 문제였습니다.
남 목사님은 이 목사님이 잠깐 흔들렸던 시기를 포착하고 그 때 분위기를 가지고
증명이 안 되는 말들을 만들어 내지만 증명이 되는 일까지 조작할 정도라면 남 목사님 말은
아무 말도 믿을 것이 없는 수준입니다.
이 인재 목사님에 관련 된 내용은 정말 쓸 것이 많으나 반대 측이 먼저 제의하지 않으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남 목사님은 교계의 원로요 고신의 설립 인물인 이 목사님이
백 목사님을 추종하는 수준에서 따르는 것에 늘 부럽고 시기를 가졌던 정도라는 내용으로
일단 글을 맺겠습니다.
표시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