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선 비판자들이 겪고 있는 고난
이 홈은 다음 글에 대하여 아무런 연관이나 평가를 별도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노선을 아무렇게나 비판했던 분들이 교계에서 당할 고생인지 당하지 않을 고생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고초 겪는 내용을 소개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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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rakwen.net/board/BoardView.asp?Seq=975
최삼경 목사 대해부(1)
2001-07-10 : 퍼옴
교회와신앙에서 가져옴
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 관련 주일신문기사 전문입니다(1).
1(366호-4월1일). 집중기획연재(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을 밝힌다1)
최 목사의 정죄 유해인가 유익인가
6년 동안에 무려 24명의 목회자와 교회 단체들을 이단사이비로 정죄했던 최삼경 목사. 그의 이단 정죄는 멈출 줄 모르고 윤석전 목사, 이광복 목사 등 한국 교회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목회자들을 계속하여 이단사이비로 정죄하며 한국 교회에 놀라움을 주는 한편 이슈화 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죄한 것만큼 최 목사의 신앙관을 의심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삼신론자, 이단 정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최 목사의 정통교리를 밝히라는 등 현재 한국 교회는 그의 이단 정죄에 염증을 느끼는 한편 그의 신앙관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본지에서는 이번호부터 교계 언론사 처음으로 이단감별사의 신앙관을 집중적으로 취재 기획 연재한다.
<관련기사 3면>
이단정죄 염증 느낀 한국 교회 최 목사의 신앙관 알고 싶어해
신론·신학적 성향·이단정죄 기준으로 삼은 정통교리 밝혀야
한국 교회의 이단 감별사, 이는 한국 교회 안에서 유달리 이단 정죄의 칼을 빼들고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중에 1990년부터 1996년까지 6년 동안 24명의 목회자와 교회 단체들을 이단 사이비로 정죄했던 최삼경 목사가 있다.
최 목사는 그 이후에도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를 이단 사이비로 규정하려다 한국 교회에 대혼란을 주었고, 얼마 전에는 목양교회의 이광복 목사를 이단 사이비로 규정하고 있어 또 한번 한국 교회의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다.
이런 최삼경 목사를 두고 한국 교회는 말이 많다. 최삼경 목사가 이단 정죄를 할만큼 그의 신학 배경과 신앙관, 한국 교회가 언제 최삼경 목사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느냐는 등 갖가지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몇년 전 최삼경 목사가 처음으로 자신의 신론을 밝힌 이후에는 삼신론자로 지적하는 교계 단체들과 목회자, 신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자신이 이단 정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정통교리를 밝혀보라는 교계의 질의에 한마디도 못하고 있어 교계는 그의 이단 정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의 신앙관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본지에서는 좀처럼 자신의 신앙관을 밝히지 않고 있는 최 목사의 신앙관과 자신이 이단 정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정통교리가 무엇인지 밝혀보고자 한다.
또한 그동안 계속 지적받고 있는 최 목사의 삼신론 주장에 대한 신학적 진단과 그의 행보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역사적인 입장에서 밝혀 보고자 한다.
교계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단감별사를 집중적으로 진단해 보는 연재기사로서 이번 기획 기사는 심층 취재 및 성경적, 신학적인 입장에서의 전문가들의 진단과 현장감을 주는 한편 내용의 진실을 그대로 알릴 수 있는 인터뷰 등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라며 의견이 있는 분들은 기획 기사가 진행되는 중 의견을 보내 주시기 바란다.<편집자주>
왜 밝혀야 하는가?
지난 3월 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총회 신학위원회에서는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과 성령론이 잘못 되어 있음을 알고 우려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최삼경 목사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북노회에서는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론에 이단성이 있는지 여부와 최 목사의 신학적 성향이 무엇인지, 최 목사가 발행인으로 있는 ‘교회와 신앙’지가 교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밝혀달라는 건의를 총회에 했었다.
최삼경 목사는 한국 교회에서 누구보다도 앞장서 이단 정죄의 칼을 빼고 휘두르고 있어 이단감별사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최삼경 목사에 의해 이단 정죄를 받은 목회자와 단체는 수없이 많다. 조용기 목사, 윤석전 목사, 이광복 목사까지 한국교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목회자라도 최삼경 목사의 논리에 들어가면 이단사이비로 정죄받고 나와 한국 교계는 놀라기도 했고, 그의 주장이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언론을 통해 발표 되면서 이슈가 되어 교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단 사이비로 몰린 목회자와 교회는 많은 마음의 상처와 한동안 목회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이런 사람이 예장 개혁신학위원회의 주장대로 삼신론자이며, 성령론에 문제가 있다면 이단사이비가 오히려 올바른 목회자와 교회를 이단 사이비로 몰아세운 경우가 됨으로 한국 교회를 위해서 최삼경 목사의 신론을 정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또한 최 목사가 속해 있는 교단의 노회에서까지 그의 신론과 신학적 성향에 대해 총회에 건의할 정도이기에 최 목사가 목회만 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이단감별사라는 점에서 그의 신앙관의 진실이 꼭 밝혀져 한국 교회 앞에 공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삼경 목사는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의 신학교인 총회신학교 학부와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다. 하지만 이단사이비대책 활동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향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 속하여 했다. 이런 점에서 교계는 그동안 그의 이단 정죄의 기준이 되었다는 교리에 대한 질문이 항상 있었다.
같은 대한예수교장로회에 통합, 합동만 다르니 별 차이가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두 교단의 주장과 신앙관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구분 지을 수 있을 만큼 차이가 있다. 한때 두 교단은 서로를 사이비화하며 강단 교류도 하지 않을 만큼 신앙관과 주장이 다른 교단이었다.
이런 점에서 최삼경 목사가 이단 정죄 규정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교리가 어떤 교리인지 밝히라는 질문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최삼경 목사는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역으로 ‘기침에 속해 있는 윤석전 목사는 이단이다, 예장 개혁의 이광복 목사는 이단이다’고 이단 정죄만 계속하고 있어 한국 교회는 현재 그의 이단 정죄에 염증을 느끼는 한편 그의 신앙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 교회를 위해 최 목사의 이단 정죄 행보가 한국 교회와 복음 전파에 유해한 것인지, 유익한 것인지를 역사적인 입장에서 밝힐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역사적으로 후대들에게도 큰 교훈을 주는 점이다.
최 목사와 함께 이단 감별사로 통하던 원세호, 원문호 형제의 행보가 한국 교회에 유해한 것임이 밝혀져 기독교한국침례회로부터 목사 제명을 당한 이상 같은 생각을 가지고 연장선상에서 활동했던 최 목사의 행보가 한국 교회와 주님의 복음 전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역사 앞에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최 목사의 이단정죄가 있은 후에는 교단간 대립 관계를 보이는 한편 분열을 심화시키는 현상들이 많았다.
조용기 목사의 이단사이비 정죄 과정에는 신현균 목사가 총재로 있던 한국복음주의총연합회와 예장 통합과의 불화가 있었고, 윤석전 목사의 이단사이비 정죄 과정에서는 기침과 예장 통합과의 항의성 질의와 변명이 오가는 대립을 보였고, 얼마전 이광복 목사의 경우도 예장 개혁 신학위원회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본지 제364호 3월 18일자 참조) 한국 교회에 혼란을 주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는 최목사의 신론과 신앙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효삼 기자>
2(367호-4월 8일). 집중기획연재(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을 밝힌다2)
최 목사 언론 앞에 자신의 신앙관 밝혀야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에 대해 본지에서는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동안 최삼경 목사는 자신의 신앙관은 뒤로 숨긴 채 자신이 이단 정죄를 한 목회자의 주장과 신학에서만 논쟁하고 정죄하는 일을 해왔다.
그런 최삼경 목사의 행보에 대해 이제 한국 교회는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오히려 최삼경 목사의 주장과 신학을 듣고 싶어하고 있다. 최삼경 목사는 어느 특정인을 정해서 이단 연구와 정죄하는 것에 대해 “여론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얼마 전 이광복 목사를 정죄할 때도 그 이유에 대해 “이광복 목사의 문제에 대하여 호소가 많기 때문이다”(교회와신앙 2월호)고 말했다.
이와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는 최 목사라면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 당연히 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최 목사의 신앙관을 알고 싶어하는 교계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싶어하는 것보다 더 크게 나오고 있는 소리는 삼신론 이단자라는 말이다.
최 목사는 본지의 인터뷰에 응함으로 자신의 신관과 이단 정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정통교리가 어떤 것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3면>
교계가 지적하는 삼신론의 정체와 이단정죄의 기준으로 삼은 교리 밝혀라
본지 최삼경 목사에게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
본지에서는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을 밝히기 위해 최 목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최 목사가 말한 내용을 지면에 그대로 실어주겠다고 밝혔다.
이런 인터뷰 요청에 대해 최 목사가 거부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 목사가 인터뷰에 응해 주기를 기대하며 최 목사의 신앙관을 한국 교회 앞에 밝히는 데 더욱 주력하겠다. 한편 의견이 있는 독자는 아래의 이 메일 주소로 연락해 주시기 바란다.
- 편집자 주 -
지난 호에도 밝혔지만 최삼경 목사는 한국 교회 안에서 유달리 이단 정죄의 칼을 빼들고 휘둘러 온 사람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이단사이비문제대책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20여 명의 목회자 또는 단체들을 이단으로 정죄했고, 현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지금도 그의 이단 연구와 정죄는 계속되고 있다.
최삼경 목사는 항상 이단 정죄를 하면서 자신의 정죄가 객관적이며 신사적인 입장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말하며 ‘반론권을 주겠다’ ‘정치와 감정과 무관한 것이다’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또한 어느 특정인을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얼마 전 이광복 목사(목양교회 담임목사)를 이단 정죄하면서 밝힌 이유이다.
“이광복 목사의 문제에 대하여 호소가 많기 때문이다. 이광복 목사는 지난번 자신의 반증 글에서 자신에게 이단성이 없다는 이유 중에 하나를 10년 동안 1만여 명의 목회자들이 자신의 세미나를 들었는데 아무도 문제를 들고 나온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 번 말하였다. 이 광복 목사는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는 증거로 이 점을 얼마나 크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편의 글에서 무려 이 말을 세 번이나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많은 목회자들이 이광복 목사에게는 단 한 사람도 제기한 일이 없는 이단성 문제를 왜 필자(최삼경 목사)에게는 많이 상담했는가 하는 점이다”(교회와신앙 2001년 2월호 121쪽)
최 목사의 특정인에 대한 이단 연구는 주변의 호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문제 제기를 해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최삼경 목사의 이단 연구와 정죄의 시작이 이런 논리 속에서 시작되었다면 작금의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을 밝히라는 한국 교회의 문제 제기에 최삼경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삼경 목사에게 찾아온 사람들이 개인이라면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에 문제 제기를 한 사람들은 공인된 단체들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측 총회장 장춘호 목사,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와 위원들은 “최삼경 목사가 주장하는 삼신론이나 성령론에 비성경적인 요소가 있다는 견해들을 알고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고, 기독교한국침례회 침례신학교 도한호 교수와 최봉기 교수, 수도침신의 근광현 교수는 국민일보를 통해 ‘최삼경 목사의 이단 정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예장통합 울산노회 박석대 목사는 ‘최삼경 목사의 오만 방자한 이단 정죄’에 대해 지적하는 한편 교계 신문에서는 최삼경 목사가 이단 정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정통교리가 무슨 교리인지 밝히라는 질의가 계속 있었다.
더불어 최 목사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북노회까지도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론에 이단성이 있는지 여부와 최 목사의 신학적 성향이 무엇인지, 최 목사가 발행인으로 있는 ‘교회와 신앙’지가 교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밝혀 달라는 건의를 했다.
여론을 수렴하여 이단 연구와 정죄를 하는 최 목사라면 자신에 대한 수많은 질의와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하게도 최 목사는 자신의 신앙관을 묻는 숱한 교계의 질의와 문제 제기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다른 목회자들을 정죄하는 데는 몇 년 안에 수십명의 이단을 만들어 낼 정도로 적극성을 띠고 있어 교계는 이제 그의 이단 정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의 신앙관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지에서는 한국 교회가 궁금해하고 있는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 중 이단 정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정통교리가 어떤 교리이며,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 달라는 인터뷰 요청을 정식으로 했다.
본지의 요청은 최 목사가 그동안 강단에서 자신이 가르쳐온 내용이요, 수많은 목회자들을 이단 정죄하는 것에 기준으로 삼은 교리이기에 최 목사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신앙고백만 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최 목사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교계의 문제 제기와 질의가 자신의 신앙관에 대한 오해였다면 이번 기회에 그 점은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한국 교회가 알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궁금증은 최 목사의 신관이다. 정통교리를 밝히라는 소리만큼 최 목사의 신관을 한국 교회는 알고 싶어한다. 최 목사는 현재 한국교회로부터 삼신론자로 지적받고 있다. 지적을 넘어 삼신론자로 취급받고 있는 시점이다.
최 목사는 자신의 신관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이시요, 아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영이시요(물론 아들 하나님은 육을 취하셨지만), 성령님도 한 인격으로 영이시다”(교회와 신앙 97년 8월호)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시요 성령님도 ‘한 영’이신데 어떻게 하나라 하는가?”(교회와 신앙 1996년 12월 136쪽)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각각 세 인격으로 세 영들이지만 본질에 있어서 영적인데 하나이다”(교회와신앙 1997년 8월호 157쪽)고 주장한다. 세
인격이신 하나님을 세 영의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는 최 목사의 신관은 세 인격이 하나의 영으로 계신다는 성경의 주장과는 다른 삼신론 이단자들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다.
이런 최 목사의 신관으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본다면 전부가 양태론자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최 목사가 한국 교회에서 신령하다고 인정받는 목회자들을 이단 정죄하면서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신다는 하나의 영에 대한 설명을 양태론자로 몰아세운 것이었다.
이단감별사 최 목사가 알고 있는 신관은 너무나 중요한 것으로 꼭 밝혀져 잘못을 수정해야 할 점이다. 이런 점에서 최 목사는 그동안 자신이 보여준 행동같이 피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관을 밝히든지 아니면 자신의 신관에 문제가 있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본지는 최 목사가 자신의 신관을 재검토하며 신관을 밝힐 기회를 주고자 ‘최 목사가 알고 있는 삼위일체’를 말하도록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최 목사는 이단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론 때문이라고 밝혔듯이 최 목사에 대한 여론을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을 것이니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 진실된 마음으로 응해야 할 것이다.
최 목사를 둘러싼 말들은 신앙관 외에도 윤리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도 있지만 본지에서는 한국 교회가 가장 궁금해하는 신앙관 만을 물어보고 밝히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또한 최 목사가 말한대로 지면을 통해 밝혀주고자 한다.
<이효삼 기자>
3(368호-4월 15일)-최목사의 신앙관은 오리무중(五里霧中)
왜 두려워하며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한국 교회 위해 꼭 밝혀야 한다
예장 통합 측 박정식 총회장은 지난 28일 오후 4시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최삼경 목사의 이단 정죄가 교단의 주장이 아닌 개인의 의견이요, 주장임을 분명히 밝히며 최 목사의 이단 정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면 교리를 기준으로 하여 이단 정죄를 했다는 최 목사의 교리는 무엇일까? 궁금증은 의문을 넘어 최 목사의 신앙관에 의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편집자 주>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은 무엇일까? 최삼경 목사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이하 예장 통합)에서까지 최삼경 목사의 주장은 개인 주장에 의한 이단 정죄이지 예장통합의 주장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 최 목사의 이단 정죄가 어느 교리에 기준을 두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한편 최 목사의 이단 정죄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최삼경 목사는 ‘아무리 윤리적으로 선하다고 하더라도 교리적으로 잘못되면 이단’이라고 말해오던 사람이다.
그런 최삼경 목사가 신학 공부는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예장 합동 측에서 했지만 소속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예장 통합 교단에 가입되어 있어 최 목사의 신앙관이 자신이 지금 속해 있는 통합의 신학을 추종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예장 통합 박정식 총회장이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 목사의 이단 정죄는 예장 통합 측의 주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인의 주장과 견해요, 정죄’라고 강력히 밝히고 있어 이단 감별사인 최 목사가 어떤 교리로 이단 정죄에 규정을 삼았는지 의문을 넘어 의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특히 최 목사는 교리를 박식하게 아는 신학자도 아닌 사람으로서 신학적 논쟁이 강한 이단 정죄에 나섬으로 그동안 교계로부터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을 받았는데, 이런 가운데 최 목사 자신이 속해 있는 교단에서까지 교단의 신앙적 입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받고 있어 도대체 최 목사의 신앙 정체는 무엇이며,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단 정죄를 계속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이다.
최 목사의 행보를 보면 확실히 예장 통합 교단의 주장과 다른 점이 많다.
예장 통합 교단은 현재 조용기 목사가 대표적인 지도자로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과 한국교회협의회에 함께 가입하여 연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는 신앙과 신학, 교리를 두 교단이 서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조용기 목사가 최삼경 목사에게는 아직도 사이비이다. 이 점은 최삼경 목사가 발행인으로 있는 ‘교회와 신앙’ 잡지 홈페이지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교회와 신앙 홈페이지 이단사이비 코너에 들어가면 ‘본 내용은 한국교회의 사이비 이단 및 불건전 사상(현상)을 종합한 것입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목사라는 호칭도 없이 조용기(여의도순복음교회)라는 이름이 뜬다. 조용기 이름 앞으로는 정명석(JMS)의 이름이 있고 뒤쪽으로는 문선명의 이름이 나온다.
조용기라는 이름을 클릭해 보면 조용기 목사에 대해 교회와 신앙 잡지에서 기재한 글들의 목록이 나온다. 여기에 최삼경 목사가 조용기 목사를 비판한 글은 열 개나 된다.
‘조용기 목사를 지켜본다’ ‘조상숭배는 절대로 우상이 아닌가’ 등 최 목사에게 있어 조용기 목사는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사이비다. 또한
최삼경 목사 대해부(6)
2001-07-10 : 퍼옴
13(378호-6월 24일). 집중기획연재(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을 밝힌다13)
통합, 최 목사 탈퇴 종용 세력 확산되고 있어
본지에 더욱 세부적으로 밝혀 달라 부탁
“나는 이단 규정을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정통교리에 의해 합니다”라고 밝혀온 최삼경 목사가 “정통교리의 내용을 밝혀달라”고 하면 정체를 감춰버리고 있어 교계는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있다.
현재 예장 통합 교단에서는 최 목사의 교단 탈퇴를 종용하는 세력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최 목사의 신앙관을 의심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본지의 집중기획연재 기사가 나가는 동안 최 목사 문제에 대해 더욱 세부적으로 밝혀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2, 3년 안에 최삼경 목사의 이단 감별 평가가 예장 통합 교단 안에서부터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삼경 목사는 이번 본지의 집중기획연재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 이단 감별사의 활동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이광복 목사를 이단으로 몰려던 최 목사의 정죄가 본지의 기획연재 기사가 나가면서 휴면 상태에 들어가 있다.
그동안 최 목사에게 이단 정죄를 당한 목회자들의 한결같은 호소는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끌어 맞추기 위해 억지로 논리를 전개하는 이단 정죄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본지는 한국 교회 최초로 최삼경식 이단정죄의 내막을 밝힌다.
<관련기자 3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시작하는 최삼경식 감별은 ‘사이비’였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감별의 내막을 밝힌다 <1>
무분별한 이단 정죄의 잔인성은 자칭 감별사들이 자신들의 잘못이 밝혀졌는데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 있는 교단들도 감별사의 무분별한 보복이 두려워 말을 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이런 점을 감안, 본지는 이번 호부터 2회에 걸쳐 자칭 이단 감별사 최삼경식 이단 정죄의 내막을 밝히는 한편 그의 사이비성을 한국 교회와 후대들이 알 수 있도록 알리고자 한다.(편집자 주)
기독교 안에서 이단이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말이다. 무분별한 이단으로 규정을 당한 목회자들이 겪는 아픔은 이만 저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단 정죄를 당한 목회자의 고통은 자신만이 당하는 것이 아닌 가족과 교회가 다 같이 당한다. 이단의 꼬리표는 자녀들에게도 붙어 다녀 신앙생활과 인격 형성에 많은 지장을 준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담임하며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준 조용기 목사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길을 잇는 것을 거부하고 여러 가지 문제의 시비가 계속 일어나는 것도 어릴 적에 겪은 아버지의 이단 시비 문제로 입은 한국 교회에 대한 상처가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최삼경 목사에게 이단 정죄를 당해 법적 소송까지 했던 경기도 ㅅ 교회 서 목사는 최삼경 목사의 무분별한 이단 정죄에 사모가 충격을 받아 병으로 앓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와 부인을 잃어버린 서 목사의 가정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고, 사모를 갑자기 잃어버린 목회는 큰 타격을 입어 현재 교회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분별한 이단 정죄의 결과가 이렇게 심각하고 큰 문제라는 것을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이단을 만들어낸 자칭 이단 감별사 최삼경 목사는 알고 있을까?
목사를 떠나 신앙인으로, 아니 양심을 가진 한 사람으로 무분별한 이단 정죄를 당한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정통교리를 밝혀달라”는 본지를 향해 자신이 이단으로 정죄한 목회자와 단체를 익명으로 처리했기에 정통교리를 밝히지 않겠다는 유치한 트집을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정말 정통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조용기, 김기동, 윤석전, 예태해, 이광복 목사를 비롯한 많은 신령한 목회자들을 이단으로 정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 목사가 정통교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의 이단정죄에 사용된 진정한 교리는 가다밥 신학과 교리이다.
가다밥 신학은 기독 언론인 박계점 씨가 최삼경 목사의 이단 정죄 신학을 지적한 말로서 가다밥이란 틀에 넣어 찍어낸 밥 덩어리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이는 최삼경 목사의 이단 정죄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끌어 맞추기 위해 억지로 논리를 전개하여 이단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최삼경식 가다밥 신학에 교리와 같이 사용된 논리의 내막을 알아보면 이렇다.
‘우기면 지지는 않는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는 먼저 ‘상주보고 제삿날 다툰다’는 무조건 고집대로 우겨보자는 속담의 논리가 적용된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 94년에 걸린 조용기 목사는 시한부 종말론자로 이단 정죄를 당했다.
조용기 목사는 ‘나는 세대주의 종말론자이다’고 말했지만 최삼경식 가다밥 정죄에서는 ‘시한부종말론자’로 만들어졌다.
세대주의 종말론과 시한부종말론은 서로 종말론을 말함으로 비슷한 것 같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7년 대환란과 전천년설을 주장한다. 또한 인류의 역사를 약 6천년으로보고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예수부터 현재까지 세대별로 구분하여 재림의 때의 긴박함을 강조하지만 예수 재림의 때와 시기를 예고하지는 않고 현실 도피주의적이거나 반사회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이 비판을 받을 여지는 있지만 이단 또는 사이비로 정죄할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시한부 종말론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도 모르는 재림의 날짜와 시간을 못박고 성경을 통한 계시의 보편성보다 개인의 주관적인 계시에 더 권위를 두고 강조하는 자들이다. 시한부 종말론은 개인의 주관적인 계시를 성경보다 위에 두기에 이단 사이비로 정죄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 최삼경식 가다밥 정죄에 걸려든 조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 되기 위해서는 세대주의 종말론자가 아닌 시한부 종말론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시한부 종말론자 이단 대표격인 이장림파에 속해져야만 확실한 이단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최 목사는 조 목사의 첫 비판의 글의 제목을 ‘조용기 목사의 시한부 종말론을 밝힌다’로 달고 조용기 목사를 예수의 재림이 92년 아니면 98년에 임한다고 말한 이장림 파에 속한 이단으로 분류 했다.
“조용기 씨의 종말론은 이단자 이장림 씨의 시한부 종말론과 다를 바가 없다. … 조 씨의 시한부 종말성은 3가지에 의해 확실하게 나타났다. 첫째 유럽경제공동체의 정치적 통일이 공중휴거 즉 예수님의 공중재림 시기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인류 역사는 6천년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구약 4천년을 빼면 신약 2천년이 되어 어차피 2천년 안에 세상이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끝으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한 것을 보고 한 세대인 50년을 더한 1998년에 종말이 온다는 주장이다”(교회와 신앙 94년 1월호)
이에 대해 조용기 목사 측은 교회와 신앙 94년 2월호에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교회와 신앙 측(최 목사)에서 시한부 종말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때에 언제나 이장림 씨의 시한부 종말론과 연결지어 사용하고 있는데 … 이 같은 의미로 연계지어 사용하려고 할 때에는 조용기 목사를 이장림과 같은 시한부종말론자로 못박는 것이다. 이는 그 시작부터 억지요 무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조 목사는 그 어느 때에도 그 때와 그 시를 못박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조 목사 측은 조 목사와 이장림 씨를 확실히 구분시키는 조 목사의 1990년 10월 10일자 설교 내용을 제시했다.
“어떤 사람(이장림 씨 편집자주)이 몇 월 몇 칠 날 예수님이 온다고 그렇게 계시를 받았다고 전하고 다니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 그 날과 그 시를 안다는 사람이 있거들랑 다 거짓말인 줄 아세요.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것이고 인간에게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이장림 씨로 연계시키는데 실패한 최삼경식 가다밥 정죄는 사과하기 보다 몇 달간 교계 눈치를 보다가 교회와 신앙 94년 6월호에 다시 “조 목사에게 가장 아픈 부분은 시한부 종말론 문제일 것이다. 이장림 씨도 한 때 여의도순복음교회들이 가장 많이 휴거 된다고 그들을 칭찬하고 다닌 일이 있다”며 이제는 이단의 근거를 이단자인 이장림 씨가 말한 것에서 찾아내는 웃지못할 억지를 펼쳤다. 이단이라고 우기고 보자는 이단 감별이 최삼경식 가다밥 정죄인 것이다.
말 바꾸면 누구나 이단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서 사용되는 또 하나의 논리는 말 바꿔 사용하기이다. 말 바꿔 사용하기에 걸려들어 이단으로 정죄 되어 큰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목회자는 윤석전 목사이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 말 바꾸기는 이렇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는 지탄을 받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배후에는 마귀가 있는데 본인은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만류한 베드로를 보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마귀의 술수입니다”(제천 연합 성회에서의 윤석전 목사 설교)
죄를 짓는 것이 마귀에 속은 것임을 중점으로 한 윤 목사의 설교에 대해 최 목사는 그 본래의 의미를 끌어내지 않고 단장취의(斷章取義)식으로 그 말의 뜻을 왜곡시키기 위해 말 바꾸기를 사용했다.
“윤석전 목사는 죄와 마귀를 연결시킨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의 일을 멸하러 나타나셨다는 말은 요한일서 3장 8절의 말씀으로서 귀신파 계열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핵심 성구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가 지탄을 받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에 유의하여야 한다. 마귀가 시켜서 한 일이기 때문에 죄를 짓은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고 마귀에게 있다는 말이다. … 분명히 윤석전 목사는 죄에 대한 책임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짓게 한 마귀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윤석전 목사의 구원관에 이단성이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를 이루기 위해 ‘배후’라는 단어를 ‘책임’으로 바꾸어 놓았다.
‘죄를 짓는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는 말을 ‘죄를 짓는 책임이 마귀에게 있다’로 바뀌자 윤 목사는 구원관에 잘못이 있는 이단으로 몰려갔다.
“분명히 윤 목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죄를 지어도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마귀의 사주에 의하여 지은 것으로 그 책임이 마귀에게 있는 것이다. 잘못에 잘못을 더하는 것은 회개관이다. 윤 목사의 회개관은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면 우리가 져야 할 죄에 대한 책임이 마귀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결국 마귀의 잘못을 우리가 대신 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한 곳이 없다. … 넓은 의미에서 죄 뒤에는 마귀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만 그러나 윤 목사의 말처럼 그 죄의 책임이 마귀에게 있다고 하면 달라지는 것이 바로 구원관이다. 분명히 마귀 문제에 있어서 윤 목사의 구원관에 문제가 있다. … 결론을 맺는다. 윤 목사 교회가 부흥되기에 이단 시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이단시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볼 때 이단성이 있다는 말이다”(교회와 신앙 97년 9월호 ‘윤석전 목사의 구원관에 이단성이 있다’)
‘배후’를 ‘책임’으로 말을 바꿔 이단을 만드는 것이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정죄인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사이비 감별사가 한국교회에서 24명을 이단 정죄하며 활보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점은 사이비 감별사를 이단 감별사로 키워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에 물어볼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14(379호-7월 1일). 집중기획연재(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의 신앙관을 밝힌다14)
‘최삼경목사 정통교리에 대해 공개토론 하자’ 심상용 목사 공식요청
최 목사 그동안 ‘공청회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호언, 성사여부에 관심
‘자신의 이단 연구에 대해 누구든지 공청회를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최삼경 목사에게 월드크리스챤신학연구소 소장 심상용 목사가 정식으로 공청회를 요구, 최삼경 목사가 응할 것인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크리스챤신문 6월 25일자를 통해 최삼경 목사에게 공식적으로 공개토론회를 요청한 심상용 목사는 “그동안 타 목회자들의 신앙을 계속 판단해오면서 자신의 신앙관을 묻는 것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공개토론회를 통해 정당한 인정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심상용 목사는 “누구든지 공청회를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해 놓고 실천치 않는다면 위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은 잘 알 것이다”며 “공개 토론회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며 한국 교회를 우롱하는 처사이다”고 지적했다.
공개토론회의 일정과 장소에 대해서는 최 목사가 원하는 대로 “통합 측 총회회관이든지, 최삼경 목사가 시무하는 빛과 소금교회 본당이든지 아무 곳이나 상관없다”고 밝힌 심 목사는 “자신의 신앙관을 변호하기 위해 어느 누구도 같이 데리고 나와도 좋으니 비겁하게 피하지 말고 나오기만 하라”고 말했다.
그동안 최삼경 목사는 자신이 경영하는 ‘교회와 신앙’ 월간 잡지를 통해 “본인은 그동안 이단 연구를 하면서 누구든지 공개질의를 하거나 공청회를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았다”며 “논쟁의 최대의 의의는 객관적으로 진리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고 밝히는 등 공청회를 통한 진실 밝히기에 대해 높은 가치를 두었다.
심 목사의 공식적인 공청회 요청에 대해 최삼경 목사를 잘 아는 교계 관계자는 “그동안 최삼경 목사가 주일신문을 통해서 보여준 행동같이 정면에 나서지 않고 숨을 것이다”며 “최삼경 목사는 그동안 타 목회자들의 말꼬리를 잡아 말장난을 해온 사람이므로 자신이 호언했다고 해도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사람이기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최 목사가 의외로 공개토론회를 받아 들여 정면에 나설 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는 없다.
무지함의 극치와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최삼경식 감별은 ‘마귀의 작품’이었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감별의 내막을 밝힌다 <2>
무분별한 이단 정죄의 잔인성은 자칭 감별사들이 자신들의 잘못이 밝혀졌는데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 있는 교단들도 감별사의 무분별한 보복이 두려워 말을 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이런 점을 감안, 본지는 2회에 걸쳐 자칭 이단 감별사 최삼경식 이단 정죄의 내막을 밝히는 한편 그의 사이비성을 한국 교회와 후대들이 알 수 있도록 알리고자 한다.(편집자 주)
요즘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있는 삼일교회의 전병욱 목사는 “세상에서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골치 덩어리들은 책 한 권 읽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자들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 논리 중에 하나가 바로 책 한 권 읽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무식에서 비롯된 용기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논리에 걸려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김기동 목사이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서는 김기동 목사에 대해 90년도부터 이단 정죄 했다. 비판의 대상자가 된 김기동 목사와 비판자인 최삼경 목사를 비교해 볼 때 김기동 목사는 그동안 믿음을 얻게 하는 베뢰아신서 66권, 교회성장 가이드인 교회성장신서 13권, 성경강해서 15권, 수필집 12권 이외에 주제별시리즈, 베뢰아총서 등 160권의 책을 내놓은 목회자이며, 대학원 총장인 학자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국제펜클럽 회원이다.
이에 비해 90년도부터 지금까지 김기동 목사를 이단 정죄 하고 있는 최삼경 목사는 지금까지 남을 비판하는 책 두 권을 내놓았다. 그 중에 한권이 김기동 목사를 비판하기 위해 저술한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성 박사, 연세대 신대원 원장 김중기 박사, 장신대 김인수 박사 등 한국 교회의 신학자들은 이단 감별사의 자격을 지적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대학생들의 시험문제 답을 채점 할 수 없듯이, 비판자와 비판의 대상자간의 수준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원 총장(당시 학장)인 학자에 대해 기초적인 신학공부만 한 월간잡지 경영자의 비판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은 최삼경 목사가 저술한 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서는 먼저 김 목사의 계시론(성경론)을 이단시했다.
“김기동 씨는 마치 성경이란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옴같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그 능력과 역사 가운데서 지극히 적은 부분이 비추인 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김 씨는 자신의 체험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을 축소시킨 이단자다”(최삼경 베뢰아귀신론비판한다 41쪽)라고 정죄했다.
그러나 김기동 목사의 계시론(성경론)을 김목사의 책에서 찾아보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과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다”(설교실천론 36쪽), “성경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그것보다 더 크고 광대한 것이며 우주의 과학을 집필한 최고 최대의 이론보다도 더 우주적이고 광대한 논리가 적혀있는 하나님의 진리이다”(21세기교회선교와전망 129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교회성장을위한전략 62쪽), “성경은 예수 믿고 살라는 것이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죄를 사하시는 예수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라는 것이다. 예수는 나의 구주이심을 시인하라는 것이다”(성경으로돌아가자 143쪽) 이외에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하려고 주어진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다” 등 계시론에 대해 밝힌 곳은 160권 속에 수만 문장이다.
이 모두를 종합해 볼 때 “성경은 영감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무흠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도의 신앙과 생활이 본이 된다”는 것이다.
전체를 보지 않고 수만 문장 중 한 문장만 택하여 김기동 목사에 대해 성경의 권위보다 자신의 체험을 강조하는 이단으로 보는 것은 책 한 권 읽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외곬수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서 다음으로 이단시 한 것은 ‘김기동 목사의 삼위일체는 양태론이다’는 것이다. “그동안 필자(최삼경 목사 편집자 주)의 경험에 의하면 김 씨를 따르는 추종자들과 그를 옹호하는 자들은 삼위일체론 문제에 대단한 반발을 보였다. 워낙 김 씨가 삼위일체를 강조하고 삼위일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가 정통적인 삼위일체를 믿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김 씨(김기동 목사 편집자 주)가 강조하고 믿는 삼위일체는 이단으로 정죄된, 시벨리우스가 ‘동일한 본체인 세 형태’라고 주장하던 사역적 양태론인 것이다. 즉 세분 하나님은 세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이라는 것이다”(최삼경 베뢰아귀신론을비판한다 47쪽)
김 목사가 양태론자인지 김목사의 책에서 살펴보자.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일체이신 한 분을 말하는 것이다(베뢰아아카데미 9강),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이 인격이시요, 사람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로서의 인격이시다”(예수를 알자(상) 45쪽),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인격이시다”(예수를 알자(상) 38쪽), “성령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중 일위가 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시다”(예배성공하는지혜로운삶(상) 188쪽),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 영으로서 우리를 거듭나게도 하시고 감동케하시며 하나님과 우리가 교통케 하시며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영이시다”(요한복음강해)
이외에 김기동 목사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삼위가 되시며 일체가 되신 분임의 주장은 160권 전체의 책에 나와있는 중심 되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김기동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서울성락교회의 신앙고백서를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믿으며 또 삼위일체가 되신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최삼경 목사가 김기동 목사를 양태론으로 본 것은 교계의 지적과 같이 최 목사 자신이 삼신론자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삼신론자가 아니고는 김기동 목사를 양태론자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는 자신의 160권의 책을 한권 한권 내 놓을 때마다 제목에서부터 의미와 뜻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목회 실천 원리’라는 책에는 목회의 원리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설교 실천론, 마귀론 같은 ‘론’을 붙인 책은 어떤 주제를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논하는 것을 말한다. 또 ‘설교학’ ‘전도학’ 하듯이 ‘학’자를 쓰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이론을 과학화시킨 것을 말할 때 사용한다.
이러므로 김 목사의 귀신론이나 마귀론은 책의 내용이 확고부동한 진리로 고정시킨 것이 아니다. 마귀라는 영적 존재에 대해서 책 안의 내용으로 논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든지 다른 주장이 있으면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론’을 붙이는 것은 개인 이론이기에 얼마든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기에 ‘론’이 붙은 책을 무작정 비판하기보다는 반대한다면 자기의 다른 이론을 내놓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기동 목사는 마귀론 서문에 “나는 본 마귀론이 완전 무결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25년간 약 40여만 명의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축사하면서 성서적 신학적 현상적으로 마귀론을 정리해 놓은 것이 본서이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최삼경 목사는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을 비판한다면서 반박하는 이론은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론’을 가지고 비판을 넘어 이단으로까지 정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이 또 무슨 자랑이라고 책으로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최 목사의 행동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글쟁이들이 볼 때는 ‘나는 무식합니다’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는 행동이다.
거짓말을 만들라
억지 주장인 최삼경식 가다밥 정죄의 끝은 거짓말을 지어내서라도 이단으로 정죄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다밥 정죄가 타락의 끝까지 갔음을 보여 줌과 동시에 최삼경식 이단 정죄 배후에 더러운 영이 있음을 확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거짓말 논리에 걸려든 사람은 예태해 목사이다.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서 예태해 목사를 이단 정죄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은 ‘인간의 영은 인격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예태해 씨는 인간의 영은 인격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 인간의 영이 인격이 아니라고 할 때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가? 인간의 영이 인격이 아니라는 말은 하나님은 영이신데 하나님도 인격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 예 씨의 이단성 문제 중 하나는 하나님도 영이신데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인격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교회와신앙 96년 4월호)
하지만 예태해 목사는 ‘인간의 영은 인격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책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의 설교 테이프 어디를 들어보아도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이 말을 가지고 예태해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한 최삼경 목사 자신도 이 말의 근거를 예태해 목사 책 어디에, 테이프 어디에 있다고 제시한 적이 없다.
예태해 씨의 이단성을 밝힌다는 교회와신앙 월간잡지 96년 4월호에서도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속사람과 교통하시지 겉사람과 교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예태해 ‘속사람’ 19쪽), “성령은 이렇게 죄가 없는 속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영과 함께 하시며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일터입니다”(예태해 ‘속사람’ 34쪽) 등 예태해 목사의 말을 인용할 때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인간의 영은 인격이 아니다’는 말에는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태해 목사 측의 한 관계자는 “최삼경 목사 측에게 예태해 목사를 이단으로 몰고간 핵심 말인 ‘인간의 영은 인격이 아니다’는 말을 어느 책, 어느 테이프에서 발견했는지 밝혀주기를 요구했지만 최삼경 목사 측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삼경 목사는 이단 정죄를 하기 위해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최삼경 목사는 왜 거짓말까지 만들며 이단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일까? 최삼경 목사의 행보를 잘 아는 교계의 한 관계자는 “감정적인 측면으로 볼 때는 최 목사가 이단 정죄 한 목회자들이 다 자기보다 100배에서 최소한 10배 이상의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시기해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명예욕으로 볼 때는 어느 신학자도, 뛰어난 목회자도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했다는 자기만족, 자기 도취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영적으로 볼 때이다. 영적으로 볼 때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정죄 배후에는 거짓의 아비 마귀가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라는 말씀같이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어 욕심에서 나오는 중상모략과 거짓말을 만들어내면서 까지 이단 정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2천년 전 가룟 유다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육체와 명예를 죽인 마귀가 2천년 후 한국 땅에서는 최삼경을 이용하여 예수의 제자인 신령한 목회자들의 명예와 그들이 담임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에 피해를 입은 목회자들은 조용기, 김기동, 윤석전, 이광복, 예태해 목사를 비롯한 신령한 목회자들이다.
그러나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배후에 숨어있는 마귀를 몰라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를 만들어낸 최삼경 목사이다. 최삼경 목사가 자기 영혼이 입은 피해와 훗날에 받을 큰 형벌을 하루빨리 바라보고 최삼경식 가다밥 이단 정죄를 회개하고 철회하기를 기대한다.
http://blog.naver.com/givenzone?Redirect=Log&logNo=80021152421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이단성 비판 누가이단인가
2006/01/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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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이단성 비판
번호 : 1436 글쓴이 : paul
조회 : 7 스크랩 : 0 날짜 : 2006.01.21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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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이단성 비판
현재 한기총 이단상담소장으로 재직 중인 최삼경 목사는 삼위일체를 "세 영들의 하나님"로 주장함으로 삼신론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이단성은 2002년 그가 소속된 예장 통합 교단에 의해 정식으로 문제가 된바 있고, 이어서 합동교단 이단조사연구위원회(위원장:김창수 목사)도 총회의 위임을 받아 2005년 12월 이런 최 목사의 이단성을 조사하기 위한 전문위원을 위촉키로 결의했습니다. 따라서 최삼경 목사는 현 소속교단(통합)과 출신 신학교 교단(합동) 모두에서 삼신론 이단성을 의심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최삼경 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이 왜 삼신론 이단사상이 될 수 밖에 없는지를 밝히게 될 것입니다.
1. 최삼경 목사의 이단적인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 배경
1) "예장통합측 이대위 조사보고서" 중에서 발췌
“C(최삼경)목사는 지방교회 삼위일체 주장을 비판하면서 교회와 신앙 96년 12월호 136쪽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으로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이 되었다고 하는 말이 그렇다. 비록 그는 인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셋’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나 영을 말할 때는 ‘한’ 영 안에 삼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한’영이시요성령님도 ‘한’영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 그러므로 <위트니스리가 ‘한’영의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 바로 양태론적 삼위일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C(최삼경)목사는 <성부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요 성자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요 성령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영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한다”(교회와 신앙 96. 12월호).
2) 지방교회측의 최삼경 목사와의 공개토론 내용에서 발췌
“수 차례 논쟁의 쟁점이 된 위트니스 리의 책자 본문을 좀더 자세히 인용해 보겠다. <이 세 구절의 말씀(엡4:6, 고후13;5, 롬8:11)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영이 우리 안에 계심을 계시해 준다. 그러면 몇 가지 인격이 우리 안에 있는가? 셋인가 하나인가?...우리는 다만 삼일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일곱 가지 놀라운 성분을 포함한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이 놀라운 성령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공급되시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1987, 16쪽)....최삼경 목사의 거짓 주장처럼 위트니스 리는 결코 ‘한 인격의 삼위일체관’을 갖고 있지 않다.“ (http://www.forthetruth.or.kr/booklets15_7.htm )
2. 최삼경 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 취지 요약
위와 같은 전후 배경들을 감안해 볼 때 최 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 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성부도 영, 성자도 영, 성령도 영이심으로 삼위일체는 도합 세 영들로 존재한다.
2) 여기서 ‘영’이란 말은 ‘인격’과 동의어로 쓰였다.
3) 그러므로 <성부의 영=성자의 영=성령의 영>이란 말은 성립될 수 없다. 그것은 <성
부의 인격= 성자의 인격=성령의 인격>이 되어 결국 양태론이 되기 때문이다.
4) 위트니스 리처럼 "구별되긴 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으시는 세 인격들이 한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말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 안에 내주하는 <세 영들>은 (한 영
이 아니라) <각각 분리된 세 영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최 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주장이 삼신론 이단인 이유
네 가지 결정적인 이유를 먼저 밝히고, 이어서 최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의 부수적인 문제점 두 가지를 추가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이미 <교회 공의회>에서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된 사상이다.
최삼경 목사는 <영>을 <인격>과 동일시하여 삼위일체를 <세 영들의 하나님>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듯이 이런 주장은 853년 스와송(Soissons)에서 삼신론이단 사상으로 이미 정죄된 바 있는 이단교리입니다. “9세기에 이르러서, ‘위격’은 ‘영”(Spirit)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이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를 지시한다고 여겨졌다...(중략) 그리하여 고트사크는 853년에 스와송(Sissons)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 이 공의회는 단 하나의 신적 영의 소유자들로서 세 위격의 상호점유를 재 확인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위격‘과 ’영‘이 동의어라는 사상을 배격했다’(제럴드 브레이, 신론,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0년, 211-212쪽).
2) 통합교단 이대위가 이미 정통교리에서 벗어난 삼위일체론으로 정죄했다.
위 ‘통합측 이대위 조사보고서’는 <세 영들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최삼경 목사의 이단적인 삼위일체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한 바 있습니다. “ 또 <각각 한 영이라고 한 말은 셋에 속한 부분으로서 한 말이다> 고 주장한 것도 문제가 된다. <성부의 영, 성자의 영, 성령이 셋(삼위)에 속한 부분이다>라는 주장은 삼위일체론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삼위가 셋에 속한 부분>이라는 표현은 삼위 하나님은 셋이 합하여 온전한 하나가 되며 성삼위 각위가 독자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최삼경 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은 ‘셋이 합해야 온전한 하나’가 될 뿐 ‘성 삼위 각위가 독자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함으로 정통 삼위일체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3) 개혁신학 성령론 기준으로도 이단이다.
대표적인 개혁신학자 중 하나인 A.A. 하지는 그의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해설’(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년)에서 ‘성령은 한 위격으로서 항상 성부의 영과 성자의 영으로 불리운다’(82쪽)고 주장합니다. 성령을 성부의 영과 성자의 영과 동일시 하는 이러한 하지의 성령론은 개혁파 신학자들의 주장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됩니다. 즉 박형룡 박사(교의신학-신론, 229쪽), 통합교단 이단상담소장인 황승룡 박사(개혁교회와 성령, 성광문화사, 1985년, 24쪽), 차영배 박사(성령론, 도서출판 엠마오, 1997, 30쪽), 전 총신대 교수인 권성수 박사(로마서 강해, 도서출판 횃불, 1996, 405쪽)도 같은 주장을 하는 것에서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령을 성부의 영, 성자의 영과 동일시 하는 이러한 <개혁파 성령론>은 최삼경 목사의 눈에는 양태론 이단사상이 될 뿐입니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세 인격들을 세 영들로 정의하는 최 목사의 신관에 의하면 개혁파 성령론은 <성령(인격)=성부(인격)=성자(인격)>를 주장하는 것이 되고 말기 떄문입니다. 그렇다면 <개혁교단 성령론> 과 <세 영들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최삼경 목사의 삼위일체론> 은 결코 양립 할수 없게 되고 둘 중 하나는 이단론으로 정죄되어야 마땅합니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비 성경적일까요? 성령이 곧 하나님의 영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시라는 개혁파 성령론이 성경적이고, 이들을 각기 다른 인격들인 세 영들로 보는 최 삼경목사의 삼위일체관이 삼신론 이단사상임은 자명합니다.
4) 구원론 시각에서도 이단이다.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 모두를 포함한 온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람 안의 내주를 말하고 있습니다(롬8:9,8:11,8:9-10, 요14:16-17, 엡4:30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삼위가 사람 안에 내주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게 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위트니스 리와 최삼경 목사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습니다.
즉 통합측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하나의 영 안에 계신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세 인격들>로 사람 안에 내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양태론으로 정죄하는 최 삼경 목사는 하나님이 <각각 분리된 세 영들>로 내주하심을 암시합니다. 만일 이러한 최 목사의 주장을 따른다면 성도들은 한번에 한 영씩 도합 세 번 영접을 하여야 비로소 온전한 삼위일체 전체가 그들 안에 내주하실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최 목사는 한 영 안의 삼위의 내주를 정죄하고 각각 분리된 세 영들을 주장하고 있는 것임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영접 한 후에도 세 영들은 우리 안에서 <각각 분리된 세 영들>로 여기 저기 흩어져 존재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도 없고 성도들의 체험으로도 지지될 수 없는 그야말로 해괴망칙한 이단사설일 뿐입니다. 이와 달리 성경은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주님을 구주와 생명으로 참되게 "한번 영접하면" 그것으로 구원받고 "온전한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체험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요1:12, 3:6, 고전6:17. 롬8:9-11).
5) 성경에 그런 용례가 없다.
최삼경 목사처럼 성부, 성자, 성령을 각각 분리된 한 영씩으로 보아, <하나님은 도합 세 영들이시다> 라고 말하는 곳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일 최목사의 "세 영들" 주장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 을 지칭한 것이라면 이미 위에서 보았듯이 성령이 곧 하나님의 영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개혁파 신앙과 정면 배치 되고 맙니다. 즉 둘 중 하나는 이단론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처럼 최 목사가 성경근거도 없고 교회 역사상 오히려 삼신론 이단사상으로 이미 정죄받는 사상을 기준으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이단시하는 것은 매우 주제넘은 것입니다.
6) 최 목사의 세 인격들 분리사상은 오순절교단식의 성령세례론 지향적이다.
최삼경 목사는 자신이 소위 정통교회인 장로교단 소속 목사임을 밝히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가 소속된 개혁파는 성령세례에 있어서 예수 영접할 때 동시에 성령도 받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하지만 성부와 예수와 성령을 각각 분리된 세 영들로 보는 최 목사의 주장은 이러한 개혁파의 주장을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 영접과 성령 받음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오순절 교단의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로 차용될 수 있습니다. 최 목사의 신학사상에 있어서 교단의 정체성이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최삼경 목사는 역사적인 교회 공의회가 이미 삼신론으로 정죄한 내용과 정확히 똑같은 삼위일체론을 가진 삼신론 이단일 뿐 아니라 ‘성령론’ ‘구원론’에서 소속교단과도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심각한 이단사상 소유자입니다. 그러므로 최삼경 목사가 참되게 회개하고 정통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원한다면, 자신의 "세 영들의 하나님" 이단 사상을 한국교회들 앞에 공개적으로 철회하고, 더 이상 "세 영들의 하나님"이라는 이단 사상으로 남을 함부로 이단시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해야 할 것입니다.
http://blog.naver.com/ydkim0301?Redirect=Log&logNo=20032862540
최삼경 목사의 신론은 이단적이고 기독론은 비성경적이다 이단관련자료
2007/01/17 01:36
http://blog.naver.com/ydkim0301/20032862540
조동욱 외 1인 / 미국 캘리포니아 플러톤교회(지방교회) 담임
우리는 이번호에서 최삼경 목사가 쓰고 있는 ‘파란 안경‘(수건)이 무엇인가를 밝힌 다음 그의 이단적인 신론을 다시 한 번 지적할 것이다. 그 다음에 본론으로서 인간론과 교회론을 다루고자 한다.
I. 지난 호와 관련하여
1. 최삼경 목사가 쓰고 있는 ‘파란 안경‘은 무엇인가?
지난호에서 최목사는, “필자가 쓴 장로교의 안경이 어떤 것인지 밝혀주기 바란다“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하여 답변하겠다.
‘삼위일체‘에 관한 지금까지의 토론에서, 최삼경 목사는 ‘양태론‘이 틀렸고 ‘신인합일주의‘가 이단이라는 자기의 신학이론은 충실히 주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최목사는 자신의 주장이 어떤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인지 그리고 윗트니스 리의 주장이 성경의 어떤 부분에 비춰볼 때 틀렸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치 못했다. 이것은 최목사가 지금까지 말씀 자체가 아닌 자신의 신학지식에 근거하여 토론에 임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즉 ‘성경 말씀‘을 대치하는 최목사의 ‘신학지식의 틀‘이 바로 최목사가 쓰고 있는 파란 안경(수건)인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지방)교회측은 윗트니스 리가 가르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 분명한 성경적 근거와 역사적 근거를 가진 정통신앙임을 충분히 변증했다(96년 9월호, 161~162쪽 참조). 다시 한 번 성경적 근거를 보기로 하자. 우리는 죄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요 1:12-13, 3:5~6, 16)을 볼 수 있다. 특히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과 믿는 이들의 연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말씀(하나님)이 육신(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성육신‘ (요 1:14상)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은‘교회‘에 관한 말씀에서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교회는 그(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니‘ (엡 1:23)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님의 몸‘ 역시 하나님과 사람의 비밀스런 연합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로마서 12장 5절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관한 성경적 근거는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상 이 정도의 인용만으로도 독자들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진리가 성경에 기초한 것임을 충분히 이해했으리라고 믿는다.
역사적 근거로는,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인 클레멘트, 아리우스의 이단을 대항하여 정통교리를 수호한 아타나시우스, 폴리캅의 제자인 이레네우스 등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가르쳤다. 이외에도 마틴 루터, 존 캘빈, 존 번연, 마담 귀용, 허드슨 테일러, 존 넬슨 다비, 아돌프 사피어, 앤드류 머레이 등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가르쳤다.
특히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되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까지 했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말은 신격(Godhead)(골 2:9), 즉 경배받는 위치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와 몸이 동일한 사람의 생명과 사람의 본성을 가졌고 머리도 사람이요 몸도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몸=머리‘ 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과 같은 이치이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요일 5:11~12)과 하나님의 본성(벧후 1:4)과 하나님의 형상(고후 3:18)에 참여할 수는 있으나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행 14:11~15). 이것이 윗트니스 리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말하는 근거요 내용이요 이유이다.
이상의 성경적 근거와 역사적 근거를 통하여 우리는 윗트니스 리가 가르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 정통진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목사는 ‘장로교 신학지식의 틀‘이라는 파란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통진리가 ‘신인합일주의‘로 보인 것이다. (지방)교회측은 최목사의 이러한 잘못된 신론을 바로잡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자세한 설명을 하였다(96년 10월호, 97년 3월호). 다행히도 97년부터 최목사는 더 이상 ‘신인합일주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삼경 목사가 진심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양심적인 ‘이단 연구갖라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대한 윗트니스 리의 가르침의 어느 부분에 오류가 있는지를 성경에 근거하여 비판하든가 아니면 윗트니스 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우리의 지적은 최목사의 말처럼 자신이 장로교인으로서 장로교신학의 입장에 서 있으니 이제는 개신교의 보편적 ‘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신교‘ 내에서는 그것이 보편적인 교리일지 모르지만 ‘천주교‘나 ‘동방정교‘ 입장에서는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단적인 교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최목사가 ‘장로교 신학의 틀‘에서 나와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인 ‘성경 자체‘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최삼경 목사에게 권면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최목사는 자신의 신학적 관점만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을 인식하고 절대적인 성경적 관점을 취해야 할 것이다“(교회와신앙, 97년 7월호, 159쪽).
2. 최삼경 목사는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토론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최삼경 목사가 쓰고 있는 용어의 정의에 관한 것이다. 그 중에 일부가 ‘정통교회‘라는 말과 ‘이단‘이라는 말이다.
차례로 비판해 보자.
(1) ‘정통교회‘, ‘개신교회‘, ‘기성교회‘라는 표현에 대하여
최삼경 목사는 토론 초기에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를 ‘정통교회‘라고 표현했었다. 그래서 우리측이 그 ‘정통교회‘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밝히라고 요구하자 최근에는 ‘기성교회‘ 또는 ‘개신교회‘ 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최삼경 목사는 ‘개신교회‘가 ‘정통교회‘라는 말인가? 아니면 개신교회가 정통교회라는 주장을 바꾼 것인가? ‘정통교회‘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최목사가 그 단어를 사용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최목사는 반드시 소위 ‘정통교회‘의 정의를 내려주기 바란다. 우리는 97년 3월호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했으나 최목사는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 만일 할 수 있다면 천주교에 대한 최목사의 입장을 함께 밝혀주면 좋을 것이다. 아울러 교회사에 익숙치 않거나 윗트니스 리의 신앙적 배경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의 말을 하고자 한다
역사적 교회는 편의상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초대교회(사도시대교회), 천주교회(구교), 개신교회(신교) 등이다. 초대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의 원형이었으나 천주교회를 통해 교회는 그 원형에서 멀어졌다. 이에 반발하여 개혁을 외치고 별도의 교회형태를 갖게 된 것이 개신교이다. 그런데 이 개신교 내에서도 주장하는 개혁의 정도에 따라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s)로 분류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다만 구교로부터의 개혁에 만족치 않고 더 근본인 성경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유명한 종교문제 연구가인 고오든 맬튼 박사는 (지방)교회를 근본주의 범주로 분류하고 있음은 이미 밝힌 바 있다(교회와신앙, 96년 8월호). 고오든 맬튼 박사는 ‘근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해 보자.
“근본주의는 19세기 초에 개신교 안의 한 보수주의적인 운동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것은 사회학에서부터 진화론에 이르기까지 지적인 사상의 새로운 흐름의 다양성을 흡수해 온 소위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의문시 되어온 몇 가지 필수적인 그리스도인의 교리에 대하여, 성경적인 권위와 신실성을 확증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근본주의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교사이자 신학자인 존 넬슨 다비(1800~1882)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1820년대에 영국에서 시작한 그 운동은 초기의 청교도나 웨슬리파 운동보다도 더 철저한 원시 기독교의 부흥을 꾀한 것이었다. 청교도인이나 웨슬리파가 했던 것과는 달리, 이 새로운 운동은 다만 기존 교회를 정화하거나 부흥시키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사도시대 교회 재건을 추구했다. 사도적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주된 방식들은 성경에 집중함, 성경적인 생활방식, 성경적인 신학, 성경적인 교회론의 채택에 있었다“(J. Gordon Melton, Encyclopedia of American Religions, 5판,1996. Gale Research Inc. p. 107).
윗트니스 리는 그의 얼마간의 형제회 생활시 존 넬슨 다비와 형제회에 속한 뛰어난 성경교사들을 통해 주님이 밝혀 주신 진리의 풍성을 물려 받았다. 그 후 윗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와의 오랜 기간의 친밀한 동역을 통해 워치만 니를 통해 주님이 밝히신 성경 진리의 빛을 전수받았다. 워치만 니는 그 당시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술들을 포함하여 전세계에서 발간된 영적 서적 3천권 이상을 독파함으로 교회 역사상 밝혀지거나 논란이 되었던 진리와 실행에 정통해 있었다. 윗트니스 리는 이러한 유산 아래서 70년간의 성경 연구를 통해 이 빛을 더 풍성케 했다.
(2) ‘이단‘이라는 호칭에 대하여
이단을 판정한다는 사람 또는 단체마다 이단에 대한 정의가 가지각색이다. 다시 말하면, 이단판정의 기준 자체가 일률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이전에도 우리측이 언급했었지만 구교와 개신교의 경우를 다시 보기로 하자. 천주교는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확산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트랜트공의회(1545~1563)에서 루터, 캘빈, 쯔빙글리의 개신교 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반대로 개신교의 일부 신학자들은 성경과 고대 공의회(500년 이전)를 기준으로 천주교를 ‘실제적 이단‘으로 정죄했다(교회와신앙 94년 1월호, 108~109쪽).
이것은 이단판정의 기준자체가 지극히 상대적임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의 기준으로 보면 개신교가 이단이고, 개신교의 기준으로 보면 천주교가 이단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이단을 판정하는 기준은 지극히 단순한 면도 있다. 예를 들면 까운 입은 목사님이 안 계신다 하면 이단이고, 예배당에 강대상이 없거나 십자가가 없으면 이단이고, 예배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안 외우면 이단이라는 사람도 보았다. 이러한 지엽적인 문제가 이단판정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최목사는 지금까지의 토론에서 이단이라는 말을 그처럼 남발하면서도 무엇이 이단인지를 정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므로 최목사는, 지엽적인 문제나 상대적인 판정기준에 근거하지 않은 ‘성경에 근거한 이단의 정의‘를 밝혀주기 바란다.
참고로 밝히자면, (지방)교회측이 지난 7월호에 장로교단의 교리와 다른 타 교단의 교리에 관련하여 쓴 ‘이단(Heresy)‘이라는 말은 사도행전 24장 5절, 14절의 의미로 쓴 말이다. 즉 여기서 이단이란 말은 유대인이 볼 때 사도 바울은 자신들과 다른 교리를 믿고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즉 장로교단은 자신들만의 교리가 있고 기타 다른 교단들도 나름대로의 다른 교리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만일 최목사의 말대로 개신교파들이 서로 오고가며 예배를 드리고 교역자가 서로 사역지를 옮길 수 있다면, 구태어 ‘장로교회‘ 또는 ‘ㅇㅇ교회‘ 등 성경에도 없는 교회의 이름을 붙여가면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목사 자신만 해도 장로교 ‘합동측‘에서 신학과 신앙생활을 배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통합측‘으로 옮겨가서 목회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이 합동측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눈에 좋고 바람직한 일로 보일지, 아니면 자기의 이익을 따라 옮겨다니는 기회주의자로 비칠지는 속단할 수 없는 일 아닌가?
II. 최삼경 목사의 신론은 이단적이고 기독론은 비성경적이다
우리측은 반복된 질문을 통해 최목사의 삼위일체관을 밝혀줄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목사는 자신의 신론에 문제점이 있는 것을 깨달았는지 궁색한 변명으로 답변을 지금까지 보류하고 있다. 그러나 윗트니스 리의 신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나타난 그의 삼위일체관만 보아도 최목사는 충분히 삼신론자이고 그 기독론은 비성경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측이 최삼경 목사를 삼신론자라고 하자 최목사는 지난 호에서 ‘자신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4회에 걸쳐 그토록 담대하게 윗트니스 리를 신인합일주의자 또는 양태론자라고 정죄한 글은 누구의 사상을 빌어 온 것인가? 부디 최목사의 이런 말이 토론에서 불리해질 경우 빠져나갈 길을 염두에 둔 변명이 아니기를 바란다.
최목사의 또 다른 변명은, 윗트니스 리의 관점이 양태론인가 아닌가 하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그러나 최목사 자신이 삼신론자라는 것은 감추고 윗트니스 리가 양태론자인지 아닌지만을 밝히자는 최목사의 말은 형평성을 잃은 요구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토론과정에서 최목사의 삼신론적인 관점이 여기저기에서 ‘보자기를 뚫고 나오는 밤가시처럼‘ 삐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왜 최목사가 삼신론자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해 보겠다.
1. 최삼경 목사는 ‘세 영들‘이라는 말을 분리의 의미(세 인격들, 세 하나님들)로 반복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삼신론자이다
먼저 최삼경 목사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윗트니스 리는 비록 인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셋‘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영을 말할 때는 ‘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시요, 성령님도 한 영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교회와신앙, 96년 12월호, 136쪽), 이 말은 삼위일체 안에 두 본질(아버지 하나님이 한 본질, 성령 하나님은 또 다른 본질)이 있다는 말인데 이런 믿음은 정통신앙에 위배되는 명백한 삼신론적 관점이다.
“필자가 본지 96년 12월호에서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양태론적이라고 한 이유는 세가지다. 첫째는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을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라고 했다는 점이요…“(교회와신앙, 97년 6월호). 위 말은 최삼경 목사는 하나님을 ‘세 영들‘로 본다는 말이다. 최목사의 말을 하나 더 인용해 보자.
“필자가 각각 한 영이라고 한 말은 셋에 속한 부분으로서 한 말이다. 즉 아버지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이시요, 아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이시요(물론 아들 하나님만은 육을 취하셨지만), 성령님도 한 인격으로서 영이시다는 말이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이제는 최삼경 목사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세 영들‘이란 말이 왜 문제가 되는지 보자.
(1) 최삼경 목사는 ‘세 영들‘이라는 용어를 ‘분리된 세 인격들‘ 즉 세 하나님들의 의미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이 점은 최목사가 삼일 하나님의 상호내재(coinherence)를 부인하는 사실을 함께 놓고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우선 ‘용어‘의 사용에 대해 비판해 보자.
최삼경 목사가 문제를 제기한 용어들인 ‘인격‘이니 ‘격위‘니 또는 ‘페르소나‘니 하는 말들은 성경 용어가 아니다. 그것들은 신학자들이 편의상 지어낸 말들이다. 그리고, 인격과 위격 또는 격위는 모두 한 단어(헬라어의 페르소나(Persona), 영어의 펄슨(Person)를 번역한 것이다. 양태론으로 오해되기 쉬운 단어도 최목사가 지적한 ‘위격‘이란 단어가 아닌, ‘프로소폰(얼굴)‘ 또는 ‘존재의 양식‘이란 단어이다.
이종성 박사는, 페르소나(persona)를 최목사처럼, ‘인격‘으로 번역하면 원문의 뜻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했다(삼위일체론, 297쪽). 그런데, 최목사는 ‘인격‘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하면서 ‘위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지방)교회측을 정통교리에 무지하다고 비난했다. 어느 쪽이 무지한가는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차영배 박사는 최근의 책에서 ‘삼위일체‘대신 ‘한-세분‘이라는 훌륭한 표현을 쓰고 있다(성령론, 1997년, 7쪽). 최목사는 이러한 ‘한-세분‘이란 표현이 지금까지 소위 정통교회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므로 차영배 박사도 이단 또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겠는가?
그러나 ‘영‘이라는 단어는 상황이 다르다. ‘영‘은 성경 용어이며 그 사용법에 엄격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이 만든 용어인 ‘세 위격(또는 인격)‘도 분리의 의미로 쓰면 삼신론이 된다. 즉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세 하나님들‘이라고 하는 것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이 영이시다(요 4:24)‘고 한 곳은 있어도 최삼경 목사처럼 삼일 하나님을 가리켜 ‘세 영들‘이라고 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목사는 위 인용문들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각각‘ 한 영이므로 합해서 결국 세 영이라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삼신론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러나 같은 장로교 신학자인 칼빈은 결코 최목사처럼 말하지 않았다. 칼빈의 글을 다시 한 번 인용해 보자.
“성부는 성자와 함께 동시에 한 성령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으로서 본질적으로 성부 및 성자와 다른 신일 수 없다“(차영배, 개혁교의학, 229쪽).
결론적으로, 최삼경 목사는 ‘세 영들‘이라는 말을 분리된 세 본질의 의미로 사용하므로 삼신론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본질‘을 가리키기 때문이다(요 4:24). 만일 최목사의 변명처럼 ‘세 영들‘이 ‘세 인격‘의 의미라고 하더라도 다음에 보겠지만 최목사는 이것을 ‘분리의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역시 ‘삼신론‘의 이단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같은 장로교 신학자인 캘빈과도 다른 ‘이단교리‘를 갖고 있다.
(2) 최삼경 목사는 삼위일체의 상호내재를 부인하면서 ‘세 영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최목사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예를 들어보자. 한 하나님 속에 두 분 하나님이 들어 있다면 결국 서로 교제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 속에서도 얼마든지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 인격 예수님 하나님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들어 있다면 그래서 한 인격의 하나님이라면 결국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 속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기도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바로 양태론적인 삼위일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교회와신앙, 97년 6월호, 164~165쪽).
위 말은 무슨 뜻인가?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는 계시지만 지상에 계신 예수님 안에는 안 계시다는 말이다. 또는 인격이신 아버지는 하늘에 남아 계시고 본질로만 아들과 함께 한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아버지는 보내시는 분으로서 하늘에 남아 계시고 보내심 받은 아들만 아버지와 떨어져 땅으로 왔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점이 최목사가 삼신론자임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성경적 관점은 무엇인가?
성경은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영원히 구별되나 분리됨이 없이 서로 안에 계심을 계시한다. 즉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의 지상 사역시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아들 안에도 함께 계셨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히 구별되시나 분리됨이 없이 상호내재하시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세계 안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가능하며, 성경도 이것을 밝히 계시하고 있다. 위 사실을 증명하는 성경구절을 인용해 보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6:32~17:1).
위 말씀에서 보듯이 아버지는 하늘에도 계시고 예수님 안에도 계신다. 아버지의 어떤 부분만이 아니고 아버지 전체가 아들 안에 계신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은 여전히 ‘구별‘된 상태로 계신다. 이것이 성경의 균형잡힌 계시이다. 성경을 더 인용해 보자.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 8:16하).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9~11).
그러나 최삼경 목사는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최목사는 ‘한 하나님 속에 두 분 하나님이 들어 있다면 결국 서로 교제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교회와신앙, 97년 6월호, 164~165쪽)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최목사가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서 땅에 계신 아들 하나님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분리되신 두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최목사의 이러한 생각은 성경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이단 사상이다. 최삼경 목사 같은 삼신론적인 삼위일체관을 가지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더 보기로 하자.
1) 최목사의 삼신론적 관점에 의하면, 아버지와 믿는 이들은 서로 안에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 땅에 오신 적이 없고 믿는 이는 하늘에만 계신 아버지께로 뛰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와 예수님과 믿는 이들이 서로 안에 있다고 말한다. 성경을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아버지와 예수님이)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 14:23).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예수님이 오실 때 ‘구별된 상태로 상호내재하시는‘ 아버지도 함께 오시는 것이다.
이번에는 교회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을 보기로 하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which is in God the Father, and in the Lord Jesus Christ)“(살전 1:1).
위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한다. 최목사 믿음대로라면 땅에 있는 교회가 주님이나 성령 안에 있는 것은 가능하지만,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 믿음이 아님을 최목사는 알아야 할 것이다.
2) 최목사의 삼신론에 의하면,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니 하늘에는 보좌가 나란히 두 개가 있어야 맞다. 그러나 성경은 보좌가 두 개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서로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기로 하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계 22:1).
여기서 보좌는 원문에 단수 명사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두 분으로 구분했지만 ‘보좌‘는 하나만 말했다. 누구의 보좌인가? ‘상호내재하시는 삼일 하나님‘의 보좌인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어린양은 등으로 계신다(계 21:23; 요일 1:5). 최삼경 목사의 논리라면 두 분이 또는 세 분이 나란히 앉아 계시고 보좌도 둘 또는 셋이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은 오직 세 위격의 상호내재를 부인하는 삼신론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이단 사상인 것이다.
2. 최삼경 목사의 기독론은 비성경적이다
우리는 97년 7월호에서 부활 후 예수님의 인성에 어떠한 역사가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앤드류 머레이‘의 기독론을 소개한 바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네널란드의 ‘the Academy of Utrecht‘에서 신학을 배운 화란 개혁교회(the Dutch Reformed Church) 소속 목사요 신학자이다. 대체로 그는 정통신앙을 가진 신학자로 평가되며 그의 책이 한국에도 다수 소개되어 무리없이 읽혀지고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그의 책에서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는 말씀을 명쾌하게 해석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이 영광스럽게 된 것이며,‘성령‘이란 신인(하나님-사람)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마지막 아담‘ (육신 입은 예수님)은 부활 후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는 말씀(고전 15:45하)과 일치한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생명‘으로 영접할 때, 그것은 ‘생명 주는 영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앤드류 머레이가 ‘인성이 영광스럽게 되었다‘고 한 말이 최목사의 주장처럼 ‘예수님의 인성에 본질상의 변화가 있어서 제3의 어떤 것이 되었다‘는 말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몸이 부활하신 후에 ‘영광의 몸의 형체‘(빌 3:21), 또는 ‘신령한 몸‘(고전 15:44)이 되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여전히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셨지만 기이하게도 우리 속에 들어올 수 있는 분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가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며(롬 8:34), 동시에 그 분의 몸을 이룬 지체들 안에도 살아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롬 8:10; 갈 2:20).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리자(성령)만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우리 안에 오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믿는 이들 안에 계시는 근거를 ‘서신서‘의 도처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만큼 보편적인 진리인 것이다. 최삼경 목사는 이러한 지극히 성경적인 기독론을 ‘역사적 교회가 수용할 수 없는 이단적 삼위일체 교리‘라고 정죄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극히 성경적인 기독론을 거부하는 최삼경 목사의 기독론은 무엇인가? 최삼경 목사는 예수님은 ‘신성, 인성‘을 입고 부활하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고, 보혜사 성령님 (제3격 하나님)만 분리되어 이 땅에 오셔서 믿는 이에게 체험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1) 최삼경 목사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아니고 아들 하나님만 육신을 입었다고 말했었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그러므로 육신 입은 예수님은 부활 승천 후 하늘에 남아 계시고 성령 하나님만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령님(하나님)을 영접해도 여전히 아들이신 예수님(하나님-사람)은 영접치 못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될 때, 최목사 자신 안에는 ‘아들‘이 없으니 최목사는 영생도 없는 자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성경은 영생이 그 아들 안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요일 5: 11~12). 또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했다(고후 13:5). 이 말씀에 의하면 최목사 안에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니 최목사는 하나님의 눈 앞에 ‘버리운 자‘가 되고 만다.
(2) 최목사는 성령님을 영접하면 그것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제 삼격 하나님) 안에 인성이 있다고 할 수 없으니 그러한 예수님은 ‘인성‘은 벗어버린 예수님이 되고 만다. 즉 최삼경 목사는 보좌에 계신 예수님(하나님-사람)과 다른 예수님(하나님)을 영접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최목사가 위 둘 중 어느 것을 주장해도 그것은 비성경적이고 참으로 이단적인 기독론이 된다. 최삼경 목사가 이러한 사이비 이단적 기독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방)교회측의 수차에 걸친 요구에도 불구하고 최목사는 자신의 신앙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3. 최삼경 목사가 삼신론자이므로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이 양태론처럼 보이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윗트니스 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할 때 항상 셋의 방면을 하나의 방면과 함께 말하고 있으며, 세 위격의 영원한 구별과 상호내재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균형잡힌 삼위일체관이다.
문제는 최삼경 목사에게 있다. 우선 최목사는 지금까지의 토론에서 ‘양태론‘이 무엇인지 정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최삼경 목사가 과연 양태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나 하면서 윗트니스 리를 ‘양태론자‘라고 정죄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차영배 교수는 어떤 형태의 양태론이든지 ‘격위 사이의 영원한 구별‘을 무시하는 것이 양태론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양태론도 성부고난설, 성부속성설, 범신론적 계승설, 이원론적 가족설, 신지학적 양태설, 범신론적 과정설, 계시 양태설 등 다양하나 모두 격위 사이의 영원한 구별을 무시한다“(삼위일체론, 총신대학출판부, 1986, 74쪽).
위와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세 위격의 영원한 구별을 믿는 윗트니스 리는 결코 양태론자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의 전반적인 사상은 충분히 연구하지도 않은 채, 말꼬리 잡는 식의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즉, 최삼경 목사는 자신도 모르는 ‘양태론‘을 통해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비판해 보자.
(1)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라는 말씀을 해석한 것을 양태론으로 정죄했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분리된 세 인격이나 세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은 한 하나님, 한 실제, 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이름으로 지칭된다“는 말에서, 윗트니스 리가 ‘한 인격‘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변증해 보자.
우선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말하고 있는 단수로 쓰인 ‘이름‘이 누구의 이름인가를 보자. 성경에서 세례를 실제로 실행한 사례를 보면, 성도들은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준 것을 볼 수 있다(행 19:5; 갈 3:27; 롬 6:3). 그러므로 마태복음 28장 19절의 이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시고(마 1:18, 20), ‘아버지‘가 그 안에 계시며(요 14:10~11; 마 1:23), 아버지에 의해 보내신 바된 ‘아들‘이시다(갈 4:4; 요 1:18). 또한 처녀에게서 나신 ‘참 사람"이시다(마 1:23, 21).그렇다면 예수님이 분리된 네 인격(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 그리고 사람)이신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하나님-사람이시다(골 2:9). 윗트니스 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말한 것이다(윗트니스 리, 진리의 변호와 확증, 1996, 한국복음서원, 96~97쪽).
그런데 최삼경 목사는 이것을 양태론이라고 정죄했다. 이는 최삼경 목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분리된 하나님으로 믿는 ‘삼신론자‘이거나, 예수님 안에 신성과 인성이 조화된 한 인격이심을 부인하는 ‘네스토리안 이단‘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정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과 온전한 사람이 비밀한 방식으로 조화되신 ‘한 인격‘이시다.
(2) 윗트니스 리가 예로 든 ‘수박비유‘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이 모두 사람 안에 들어 오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좋은 비유이다.
글이라는 것은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글은 일부만 본문에서 떼어놓고 보면 저자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어린양이시다‘는 말을 성경에서 읽을 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네 발과 꼬리가 있는 양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대신 그러한 표현에서 어린양이 주는 ‘구속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의 책 중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윗트니스 리가 예수님을 ‘수박즙‘이라고 한다면서 ‘망령된 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미 지적했듯이 이러한 말꼬리를 잡거나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태도는 정직한 것이 아님을 최목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윗트니스 리는 어떤 의도로 ‘수박비유‘를 사용했는지 보기로 하자. 첫째,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그의 책에서 이 비유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누차 (지방)교회측이 지적했듯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 속에 들어오시는 ‘경륜적인 면‘의 비유이지, 하나님의 본질이 ‘수박‘이라는 말이 아니다. 최목사는 이 말을 잘 연구해 보기 바란다.
둘째, 윗트니스 리는 본문에서 ‘수박비유‘에 곧이어 요한복음에 있는 ‘말씀이 육신되신 것‘과 ‘육신되신 예수님이 부활 후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한 말‘을 설명하고 있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55쪽). 이러한 전체 문맥 안에서 윗트니스 리의 의도는 부활 후 예수님으로부터 나온‘성령‘이 다만 분리된 제3격만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이 구별되나 분리됨이 없이 함께하시는 완전한 하나님‘(성령)으로서 제자들에게 들어오신다는 것을 말해 주려는 것이다.
즉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나오시며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신다는 말이다. 이것은 지극히 정통적이고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이다. 그리고 ‘수박비유‘는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은 분리된 채로 하늘에 계시고, 성령 하나님(1/3하나님)만 사람 속에 들어오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의 잘못된 관념을 없애 주는 데 가장 합당한 비유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최목사의 믿음처럼 결코 분리된 하나님이 아니시다. 여전히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구별되시지만 서로 안에 거하심으로 분리되지 않는, 한 분 하나님이시다(교회와신앙, 96년 10월호, 164-165쪽).
III. 인간론에 대한 반박
최삼경 목사는 지난 8월호에서 윗트니스 리의 인간론을 장황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그 비판의 핵심과 통합측의 77차 보고서에서 윗트니스 리의 인간론에 대해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최삼경 목사가 자신의 가정 아래 논리를 전개한 부분과, 소위 윗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최목사가 주장하는 사람들에 관한 부분은 무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최목사의 가정과 전제는 윗트니스 리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최목사가 소위 윗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 토론에 있어서 제 삼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최목사는 자신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제 삼자들의 주장을 왜 윗트니스 리와의 토론에서 장황하게 거론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윗트니스 리의 인간론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없어 할 말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장황한 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윗트니스 리도 어쨌든지 이단이다‘ 라는 인상을 남기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어느 경우든 성실한 토론자가 할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제 삼자의 글을 연구하고 인용할 시간이나 지면이 있다면 우리측이 최목사에게 수차에 걸쳐 제기한 질문들에 답변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더 유익한 일이 아닌가?
1. 최삼경 목사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또한 자기의 주장을 스스로 부인했다
최삼경 목사가 지난 8월호에서 윗트니스 리의 인간론에 이단성이 있다고 한 근거와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최목사가 윗트니스 리의 인간관을 비판한 그의 글의 소제목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즉 ‘윗트니스 리는 혼만이 인격일 뿐, 영은 인격이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최목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윗트니스 리의 믿음이 김기동 씨, 이명범 씨 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 핵심 내용이라는 것이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비판해 보자.
(1) 윗트니스 리가 ‘혼만이 인격‘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가 이렇게 말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의 책을 더 연구해서 윗트니스 리가 ‘혼만이 인격이다‘ 라고 한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여 비판해야 할 것이다. 이 논쟁은 윗트니스 리와의 논쟁인 것이다. 최목사의 ‘비판 내용‘에 대해서도 반박할 부분이 많지만 근거를 제시하면 그 때 반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2) 윗트니스 리가 영이 인격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점도 길게 반박할 필요를 못 느낀다. 왜냐하면 최삼경 목사 스스로 자기가 한 말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최목사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제일 먼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인간의 혼이 인격이라면 영은 인격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워치만 니나 윗트니스 리가 영은 인격이 아니라고 단언하여 말한 곳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단지 혼이 인격이라고 하고 있고 영은 인격이라고 말한 일이 없을 뿐이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최목사는 제목에서는 ‘윗트니스 리가 영이 인격이 아니라고 했다‘고 하더니, 뒤이어 ‘윗트니스 리가 영은 인격이 아니라고 단언하여 말한 곳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개인 생각을 나열하며 무려 6쪽에 걸쳐 장황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이러한 토론 상대방과 ‘진리토론‘을 하고 있는 점에 대해 주님 앞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2. 윗트니스 리는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더 상세히 가르친다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의 인간론을 비판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최목사의 논리는 윗트니스 리가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하는 것이고 결국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제한하니 이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목사는 이러한 자기 말을 윗트니스 리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노라고 또 스스로 뒤집고 있다.
“물론 워치만 니나 윗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이 타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최목사의 고리처럼 연결된 논리는 시작부터 근거없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즉, 최목사는 ‘워치만 니나 윗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이 타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고 시인했다. 그렇다면 윗트니스 리는 ‘전인적인 타락‘을 주장하고 있음을 최목사 스스로 인정했으니 더 이상은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식이 있는 독자라면 스스로 모순에 빠진 최목사의 논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목사가 제 삼자의 말까지 동원하여 장황한 말을 한 의도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신학적인 틀에 윗트니스 리를 어떻게든지 집어넣어 윗트니스 리가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 점은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의 인간론에 대해 비판한 통합측 77차 총회 보고서 내용이 잘 증명하고 있다. 즉 “인간의 타락은 전인적인 것인데 비해 (윗트니스 리는) 그것을 육체적인 것으로만 봄으로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범죄하는 영은 죽을지라‘(겔 18:20)는 성경 말씀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독자들은 최목사가 작성한 77차 총회 보고서에도 스스로 모순에 빠진 최목사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짓내용을 담아 유포하는 이러한 보고서는 작성되고 발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최삼경 목사의 주장에 헛점이 많지만, 최목사가 ‘인간론‘에 있어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윗트니스 리가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윗트니스 리가 참으로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했다면 최목사가 옳은 것이고, 부인하지 않았다면 최삼경 목사는 거짓말로 남을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윗트니스 리는 사람의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가르치지도 않고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윗트니스 리의 말을 차례로 인용해 보자.
“사람의 피조된 영은 원래 하나님을 접촉하는 기관이었다. 사람은 그의 영을 통하여 그의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했다. 후에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영은 죄의 오염으로 인해 손상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고 죽은 영이 되었다. 영이 죽었음으로 낡았다.
우리가 거듭날 때 주 예수의 피가 우리 영이 입었던 오염을 깨끗케 하므로, 그 때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요소인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주입하고 우리의 영을 소생시킨다(골 2:13).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죽은 낡은 영이 새롭게 되고 살아있는 영이 되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생명의 인식, 1988년, 한국복음서원, 42쪽).
한 군데 더 인용해 보자.
“우리가 사람의 첫 번째 타락의 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결과를 안다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a. 혼이 부패됨 - 타락의 첫 번째 결과는 사람의 혼이 부패되고 오염되고 파괴된 것이다. 혼은 마귀의 생각과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염되었다(창 3:7절). b. 몸이 천연적인 몸으로 변함 - 그런 다음 몸은 지식나무의 요소, 곧 사탄의 요소를 가진 천연적인 몸으로 변하여 육체가 되었다. …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는 사탄의 죄로 완전히 점유되고 적셔졌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육체를 신뢰해서는 안 된다. c. 영이 죽음 - 타락한 결과 사람의 영은 죽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고립되었으며 하나님을 향하여 그 기능을 상실했다(8절, 10절).
사람의 세 부분-몸과 혼과 영-은 모두 타락의 영향을 받았다. 몸은 천연적인 몸으로 변했고 혼은 오염되었으며 영은 죽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씻음받았음을 인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지! 또한 우리의 영이 살아났고 혼이 새로움과 변화의 과정 아래 있으며 몸이 영의 지시 아래 있게 될 것임을 인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지!“(윗트니스 리, 창세기 강해(보급판)(1), 1993년, 한국복음서원, 257~271쪽).
한 군데만 더 인용해 보자.
“에베소서 2장 1절은 우리가 죄로 죽었었다(who were dead)고 말한다. 이것은(위 구절에서 ‘죽었었다‘는 의미는) 우리(타락한 사람)의 몸이 죽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생생하고 활동적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의지나 감정이 죽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혼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우리의 영이 타락으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윗트니스 리, 사람의 영, 1986년, 한국복음서원, 47쪽).
위 글에서 윗트니스 리가 ‘죽었었다‘는 것이 ‘사람의 영이 죽은 것‘이라고 했더니 그 말에 대해서 최삼경 목사는 ‘죽었었다(과거시제)‘는 것은 ‘혼과 육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결국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한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이런 엉터리 성경해석이 어디 있는가? 에베소서는 분명히 그 당시 육신적으로 살아 있었던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위 ‘죽었었다‘가 분명히 과거시제임을 최목사는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죽었었다‘ 라는 말은 타락으로 인해 그들의 영이 죽었었다(영의 기관은 있으나 기능이 죽은)는 것이지 그들의 영과 혼과 육이 다 죽었었다는 뜻이 아니다. 영과 혼과 몸이 죽은 사람은 무덤에 있어야지 어떻게 사도 바울의 서신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윗트니스 리가 타락의 결과로 영, 혼, 몸을 가진 사람 전체가 결국엔 죽게 된다는 것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니다. 또한 동일한 77차 보고서에서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가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범죄하는 영은 죽을찌라(겔 18:20)‘는 성경말씀과도 다르다고 비판했었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로 되어 있으나 최목사는 그 단어를 임의로 ‘영‘이라고 바꾸었다. 그 목적은 오직 윗트니스 리를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에스겔서 18장 20절의 원문을 보면 ‘범죄하는 영(spirit)‘이 아니고 ‘범죄하는 혼‘(soul, KJV, RSV 참조)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에스겔 18장 4절에도 있는데 거기서도 원문은 ‘범죄하는 영‘이 아니고 ‘범죄하는 그 혼(soul)이 죽으리라‘고 되어 있다. 미가서 6장 7절에서도 ‘내 혼(My soul)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을 말할 때는 분명히 ‘spirit‘라고 구분하여 쓰고 있다(슥 1:1, KJV 참조).
중요한 총회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성경원문도 안 찾아보고 거짓된 보고서를 작성하여 관계된 사람들을 속이고, 신실한 믿는 이들을 주님 앞에서 이단으로 정죄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위와 같이, 윗트니스 리가 ‘사람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범위를 제한하는 이단사상이라고 최삼경 목사가 쓴 총회보고서는, 근거도 없고, 잘못된 성경 해석을 통해 내려진 거짓되고 부당한 결론이었음을 독자들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3. 사람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사단이 죄(Sin, 단수)로서 사람의 육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윗트니스 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타락의 원인인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타락의 결과 사단의 본성인 죄(Sin)가 사람 속에 들어와 조성된 것도 믿는다. 만일 사람의 타락을 말할 때 다만 사람의 불순종만을 말한다면, 그 불순종의 결과 저주와 사망과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계시하는 것처럼, 어떻게 ‘죄‘가 우리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는지, 특히 불신자가 어떻게 ‘사탄의 자녀‘가 되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윗트니스 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윗트니스 리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우리는 이런 예화를 들 수 있다. 어떤 어머니가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독약이 든 병을 만지지 말라고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이는 병을 내려서 독을 마셨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금지함을 어겼지만 사실상 이것은 작은 일이다. 참으로 심각한 일은 독이 그 안에 들어간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지식나무를 먹은 날 악한 본질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만 범법의 문제가 아니라 독 있는 요소, 죄, 즉 악한 자의 본성이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온 문제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이 악한 요소가 여전히 우리의 육체 안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하거나 논쟁할 수 없다. 심지어 당신이 이 메시지를 읽고 있을 때에도 죄의 악한 본질이 당신의 몸에 거한다“(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위 책 268쪽).
위와 같은 윗트니스 리의 말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들에 의해 지지된다.
(1) 성경은 우리가 다만 ‘죄‘를 범한 자일 뿐 아니라 ‘죄로 조성된 자‘라고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 5장 19절에서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했다. 여기서 바울은 밖의 ‘죄의 행위‘가 아닌, 내적이고 본질적으로 조성된 ‘죄의 본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죄(Sin)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사람)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했다(롬 5:12상).
(2)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마귀의 자녀들‘을 말한다.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마귀에게서 태어나는 것이며 마귀의 생명과 본성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심지어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 바리새인들에게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요 8:44)‘고 하셨다. 요한일서 3장 10절도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라고 했고, 8절에서도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마귀는 다른 이름이 옛뱀이요 큰 용이요 사탄이다(계 12:9).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했다(마 3:7). 주님도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하셨다. 심지어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상)고 하셨다. 이 모든 성경 구절들은 타락한 사람들이 다만 죄인일 뿐 아니라 사탄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한 사탄의 자녀임을 말하고 있다.
(3) 사탄은 죄(Sin)로서 사람의 육체 안에 거한다
원래 사람의 몸은 순수하고 좋게 창조되었다(창 1:31). 그러나 우리가 타락했을 때 사탄의 악한 본성인 죄가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을 육체로 변질시킨 것이다. 바울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 7:18상)‘ 라고 말한 다음 바로 이어서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20하)고 했다. 이것은 ‘죄‘가 육체 안에 거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죄(Sin)는 육체 안에 거하고(롬 7:20절), 왕노릇하고(6:12), 주관하고(6:14), 살아나고(7:9), 기회를 얻어 속이고 죽인다(7:11). 이러한 것은 다 ‘죄‘의 인격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윗트니스 리만의 해석이 아니다. William Sanday & Arthur C. Headlam도 이러한 구절들을 사탄의 악한 본성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해석했다(A Criti cal &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5thed, Edinburgh:T&T Clark, 1958, pp.145-146). Hermann Olshausen도 사탄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사람 밖의 객관적인 인격)이며 동시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타락한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과 사탄 자신이 함께 결합된 주관적인 총체)(엡 2:2)라고 했다(Bibl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vol 5, New York : Shedlon, Blakeman &Co., 1858 p.58).
H.A.W. Meyer도 그의 ‘에베소서 주해 핸드북‘에서 에베소서 2장 2절을 해석하면서, ‘타락한 사람은 그 안에 사탄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New York : Funk & Wagnalls Pub., 1884, pp. 361~362).
캘빈도 로마서 7장 14절~25절에서 바울이 묘사한 투쟁은 성령 받은 자에게서만 발견된다고 했다(박형룡, 구원론, 1988, 366쪽). 사단은 한편으로 공중 권세잡은 자로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 죄(Sin, 사단의 본성)로서 사람 안에 들어와 ‘죄와 사망의 법‘으로서 역사한다. 이러한 진리는 성경과 신실한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빛은 우리로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신 주님을 신뢰케 한다.
4. ‘윗트니스 리가 생명나무가 하나님이요 선악과는 사단이라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것이다‘라는 비판에 대하여
반박하기에 앞서 그렇다면 최삼경 목사는 ‘생명나무‘와 ‘선악 지식의 나무‘를 무엇으로 보는지 다음 호에 답변해 줄 것을 요청한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먹기를 원하셨던 것이고(창 2:9), 먹으면 영생하는 것이다(창 3:22). 또한 이것은 지나간 역사 기록이 아니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계 2:9, 22:2, 14, 19). 요한복음 6장은 주님만이 참된 음식이요 영생을 줄 수 있는 분임을 계시하고 있다(요 6:27, 32~58). 누가 영생을 줄 수 있는가? 주님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분이 생명나무이시다(요 1:4, 15:5).
상징적으로 볼 때, ‘생명나무‘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이고, ‘선악과 나무‘는 사망의 근원(히 2:14)인 사단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유명한 성경 주석가들인 Jamieson, Faussett, and Brown : Keil and Delitzsch; Patrick Fairbairn도 동의한다. Patrick Fairbairn은 선악과는 그 자체 안에 사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The Typology of Scripture vol 1, Zondervan Publishing House, n.d, p.209).
5. ‘주의 이름 부름‘을 비난함에 관하여
최삼경 목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방)교회 성도들의 ‘주님의 이름 부르는 실행‘을 못마땅한 듯이 비난하며, 주문처럼 부른다고 조롱했다. 이것은 사울(바울)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실을 생각나게 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의 부요함을 체험하는 믿는이들이 있는가 하면(롬 10:12),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것을 비난하고 핍박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실행을 성경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을 직접 인용해 보자.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좆는 사람을 만나면 잡아오려 함이라“(행 9:1~2),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13~14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21절).
위 말씀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었음을 보여준다. 교회 성도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는 근거를 다른 곳에서 더 보기로 하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 1:2).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고린도 교인들과 각처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향해 썼다. 믿는 이들을 나타내는 특징이 여러 가지 있을텐데도 성경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라고 지칭한 것은 초대교회 때 주의 이름 부르는 실행이 보편적인 실행이었다는 강한 증거가 아닌가? 주의 이름 부르는 것을 핍박했던 바울이 후반에 가서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
주의 이름은 예수(JESUS)이시다(마 1:21). 또한 ‘부르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외치다‘ ‘부르짖다‘의 뜻을, 헬라어는 ‘사람을 불러 일으키다‘,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는 뜻을 함축한다. 지면의 제한상,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한 성경의 사례를 더 알기 원하는 독자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자‘라는 소책자(윗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1984)를 참고할 것을 권한다. 최삼경 목사의 비아냥처럼, 그 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는‘ (지방)교인은 없다. 그 대신 필자를 포함해서 이러한 실행을 통해 사신 인격이신 주 예수님의 부요함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IV. 교회론에 대한 반박
최삼경 목사는 96년 12월호 그의 글 서두에서 윗트니스 리가 소위 ‘정통교회‘의 예배도 부정하고, 침례(세례)의 의미도 부정하며, 목사도 부정하고, 장로의 개념도 다르며, 심지어 ‘정통교회를 바벨론이요 음녀라고 저주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최목사의 표현은 기독교내 목회자와 성도들로 하여금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인들을 향해 적개심 또는 심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선동처럼 들린다. 윗트니스 리는 최삼경 목사가 묘사하듯 그렇게 무지막지하고 호전적인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비난이 두려워 진리를 왜곡시키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교회론‘에 관해서라면 누구 못지 않게 윗트니스 리나 필자들이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상, 우리는 제한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 앞에서 다른 믿는 이들에 대해 비난이 아니라 진리를 밝히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반박하고자 한다.
1. 정통교회를 바벨론이요 음녀라고 저주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이 점에 대해 <교회와신앙> 97년 3월호에서 충분히 말했다. 독자들은 위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 가지 재차 강조하는 것은 윗트니스 리는 ‘교회조직(교파)(System)‘과 ‘교회 성도들(Person)‘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후자는 성경에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둘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왜 그런지를 보기로 하자.
오순절 날 성령이 부어지므로 이 땅 위에 교회가 생겨났다.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에클레시아, 부르심 받아 나온 무리인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으므로 ‘예루살렘에 있는(살고 있는) 교회‘(the church which was at Jerusalem)(행 8:1)라고 불리웠다. 빌립보에 살고 있으면서 예루살렘 교회라고 불리운 것이 아니다. 살고 있는 그 지방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핍박으로 인해 흩어져 세운 교회인 안디옥 교회(원문은 the church that was at Antioch임)를 말하는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도 볼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우주 가운데 하나 뿐이다(엡 1:23, 4:4). 왜냐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개의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몸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으므로, 살고 있는 지방의 한계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안디옥(에 있는) 교회‘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이러한 사례는 성경 도처에서 발견된다. 즉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롬 1:7),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고전 1:2), 에베소서는 에베소에 사는 성도들에게(엡 1:1), 빌립보서는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에게(빌 1:1), 골로새서는 골로새에 사는 성도들에게(골 1:2) 보낸 편지이다.
이러한 지방의 한계 외에 ‘어떤 사람‘이나 ‘밝혀진 진리‘를 기준으로 ‘00 교회‘라고 부른 사례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하는 것을 ‘분쟁‘으로 보고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으로 보았다(고전 1:11~13).
그러나 요즘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 어떠한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것은 다 성경 말씀(원칙)에 뭔가가 더해진 결과가 아닌가? 윗트니스 리는 이러한 더해진 부분을 그것도 계시록의 말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지적했던 것이다. 윗트니스 리가 기독교계를 어떻게 보는지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교파의) 조직체가 그리스도에 속하지 아니했고 또 그(조직) 속에 그리스도가 없는 것도 알았다. 물론 그들 중에도 구원받은 신도들이 일부 있으며 이 구원받은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교파조직 속에는 그리스도가 안 계시며 그리스도께서 그들 조직체 안에 아무런 지위도 차지하고 있지를 못한 것이다. … 혹자는 묻기를 그러면 분열된 교회 안에는 구원받은 신도나 주님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경건한 성도들이 없느냐고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있다고 인정한다. … 환언하면 교파(조직)은 부인하되 그 교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은 인정하며 … 어느 교파 중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우리들의 형제됨을 인정한다“(윗트니스 리, 성경에 나타난 교회, 1986, 한국복음서원, 17, 50, 99, 103쪽).
위와 같은 윗트니스 리의 관점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균형잡힌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미 (지방)교회측이 자세히 밝힌 바 있다(교회와신앙, 96년 8월호, 135쪽). 즉, 윗트니스 리는 ‘교파의 조직‘은 거부하되, 교파 안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은 몸된 지체와 형제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가 교파안의 성도들을 저주하고 욕했다고 말했다. 이 어떠한 거짓말인가!
2. 최삼경 목사가 말하는 소위 "정통교회"의 목사와 장로의 개념은 무엇이며, 그것들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가 기성교회의 목사를 부정한다는 최삼경 목사의 말은 우선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들을 때 기분 좋은 말이 아니다. 바로 이 점을 최목사가 노리고 있는 줄은 안다. 그러나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러나 최삼경 목사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교회 인도 직분에 대한 (지방)교회측의 입장을 밝힌 다음, 기성교회의 목사 제도를 비판하겠다.
(1) (지방)교회에는 목사가 있는가?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지방)교회에는 목사가 없다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이 말은 한 면으로는 맞고 한 면으로는 틀린다. 권위주의적이고 계급적인 의미에서 말한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목사가 없다. 그러나 ‘영적 아비‘로서 교회를 감독하고, 지체들을 목양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양무리의 본이 되고, 이리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많다.
빌립보서 1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 하노니“라고 함으로 한 지방교회를 구성하는 요소는 감독들(장로들)과 집사들을 포함하는 모든 성도들임을 보여 주고 있다. 주의할 것은 원문에서 “to all the saints … at Philippi with the bishops and deacons.“라고 했다는 점이다. 이 구절에 사용된 접속사가 ‘and‘가 아니고 ‘with‘인 것은 집사나 장로도 같은 성도임을 보여준다.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등의 직분이 없는 사람만 ‘성도님‘이 아니고, 집사도 장로(개신교 안의 목사를 포함한)도 ‘성도‘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장로들(행 14:23; 딛 1:5)과 집사들(딤전 3:8-13)을 부인하지 않는다.
(2) ‘기성교회‘ 내의 계급적이 고 권위적인 ‘교회직분‘은 성경적이 아니다
사실 목회자의 긍정적인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이견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일부 목회자들의 부정적인 상태까지도 정당화하려는 데 있다. (지방)교회를 포함하여 ‘참된 주의 일꾼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계급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회직분이 비성경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기성교회에 편만한 성직자, 평신도 개념이 신약의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을 보기로 하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상).
위 말씀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을 우리는 현대식으로 표현하여 ‘성직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너희‘는 누구인가? 문맥에 의하면 ‘하나님의 소유된 모든 백성‘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모든 선민들(고전 6:20; 행 20:28)이 왕 같은 제사장(성직자)들이다.
에베소서 4장 11~12절도,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들이 하는 일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원문은 ‘사역‘임)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그들의 일이 세 가지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한 가지 일에 모아진다. 그런데 바로 다음 16절에서는,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소위 ‘은사있는 자들‘의 하는 일과 ‘지체들‘이 하는 일이 똑같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일임을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생명으로 전하여 주님의 양(믿는 이들)이 되게 하고, 그러한 양들에게 계속 생명을 공급하여 자라게 하는 동일한 일은 한다. 이 일이 ‘성직(거룩한 직업)‘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요 10:10)이라고 하셨다. 바울도 새 언약(신약)의 일꾼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영으로 분배(공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고후 3:6; 요 6:63). 즉 부활 후 주님이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셔서 성도들을 통해 자신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고 계신 것이다.
기성교회측은 ‘목사‘의 근거를 위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목사(혹은 목자)와 교사‘를 합친 것에서 찾는 것 같다(박형룡, 교회론, 1988, 138~139쪽). 그렇다면 자격이나 조건을 따지기 전에 묵묵히 그러나 실질적으로 ‘목양‘과 ‘가르침‘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눈 앞에서 성경 원문에 근거한 ‘목사‘가 아닌가?
‘목사‘라고 불리우지는 않지만 C.C.C.나 ‘네비게이토‘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 안에서, 그리고 (지방)교회들 안에서 이러한 목양과 가르침에 자신을 헌신한 귀한 ‘성도들‘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최 목사의 의견은 어떤가? 아울러 정규신학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고시에 합격해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야 ‘정식 목사‘가 된다는 성경근거를 다음 호에서 밝혀 주기 바란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 바란다.
최삼경 목사에게 하나 더 질문하고자 한다. 기성교회에서는 ‘목사‘도 원칙적으로는 ‘장로‘의 한 부류라고 했다(통합측 헌법 제24조 3항, 박형룡, 교회론, 137쪽). 그렇다면 같은 장로이면서 목사는 ‘성직자‘가 되고 ‘진짜 장로‘는 ‘평신도‘가 되는 성경근거는 무엇인가? 기성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최삼경 목사가 더 잘 알 것으로 본다.
끝으로, 최삼경 목사는 기성교회의 ‘목사제도‘에 계급적 또는 권위적인 요소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교회와신앙측>에 실린 한 목사님의 말을 인용함으로 그에 답하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발생되는 많은 사건과 문제는 90%가 목사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는 눈을 뜨고 찾아봐도 참 지도자를 만나보기가 힘들고, 철저한 이기주의 아니면 이기 집단들만이 눈에 쉽게 들어오고 있다. … 교회의 체질은 대부분이 목회자에 따라서 결정되어 지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한국교회 체질은 제사장적인 목회자들이 율법 중심의 목회를 함으로 교인들은 목사에게 맹종하는 것으로 잘 길들여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목회자와 교인과의 관계를 오히려 불편한 관계로 만들고 말았다. 권위주의 때문이다“(교회와신앙, 96년 6월호, 44, 48쪽, 새교회운동협의회 대표 목사 이평소).
3. 최삼경 목사가 말하는 ‘정통교회‘의 예배는 무엇이며 그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한국 기성교회들 안에서 그대로 실행되고 있는가?
최삼경 목사는 윗트니스 리가 소위 ‘정통교회‘의 예배도 부정한다고 정죄했다. 최목사는 다음 호의 글에서 윗트니스 리가 어느 책, 몇 쪽에서, 어떻게 ‘정통교회‘의 예배를 부정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기 바란다. 아울러 윗트니스 리가 침례의 의미를 부정했다는 근거도 제시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번 호에서 ‘예배‘에 대한 윗트니스 리의 관점을 간략히 소개하고 소위 ‘정통교회‘의 예배를 비판한 ‘기성교회‘ 목사님의 글을 소개하는 선에서 교회론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근거도 없는 최삼경 목사의 말을 길게 반박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1) 윗트니스 리의 예배관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예배‘를 언급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요한복음 4장이다. 말씀을 직접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in spirit and in truth) 예배할지니라“(요 4:21~24).
윗트니스 리는 위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이 말씀이 주어진 것은 영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도록 그녀의 영을 사용할 필요가 있음에 관해 그녀를 일깨워 주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영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생수를 마시는 것이요, 생수를 마시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이다. 예표론에서 하나님께 대한 경배는 (1) 하나님이 그분의 처소를 세우시려고 택한 장소이어야 하며(신 12:5, 11, 13~14, 18) (2) 제물이 있어야 한다(레 1장~6장). … 택한 장소는 ‘사람의 영‘을 예표한다. … 제물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그러므로 그녀가 특정한 장소 대신 그녀의 영 안에서, 제물들 대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 하나님을 접촉해야 함을 의미한다“(윗트니스 리, 요한복음 강해(1), 한국복음서원, 1994, 155~156쪽).
즉 윗트니스 리의 예배관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배하는 사람은 영 안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해야 한다는 것‘이다. 졸거나 딴 생각을 하지 않고, 경건하게 예배시간에 앉아 있다고 해도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말한 예배는 아닌 것이다. ‘예배‘라는 단어의 원문의 의미가 ‘가까이 가서 입맞추다‘라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2) 최삼경 목사가 말하는 ‘정통교회‘의 예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성경적인가?
우리는 위 질문에 대한 최목사의 답변을 기다리겠다. 우선 한 개신교 목회자가 평가한 ‘정통교회의 예배 현실‘을 인용해 보자.
“왜 한국 교회에 예배의 갱신이 필요하고 예배가 갱신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한국 교회 내의 예배 신학의 부재, 예배 개념에 대한 혼란, 예배 형식들의 무질서, 샤머니즘적 요소의 침투 등이 시급한 예배의 개혁을 요청하고 있다고 하겠다. … 예배는 성만찬을 곁들이거나 적어도 성만찬을 전제로 하는 주일 낮의 공중 예배를 말하는 것이며, 나머지 형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집회와 같은 것이다.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기독교 예배의 핵심은 ‘말씀과 성찬‘임을 생각할 때 … 적어도 한국 교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도 성만찬 예전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교회와신앙, 95년 7월호, 47~49쪽, 이현웅: 목원교회 목사이며 서울 장신 예배학 강사).
결론적으로, 본 토론의 목적은 단순한 말싸움 또는 특정인을 정죄함에 있지 않고,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참된 빛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본다. 최삼경 목사도 이 점에 동의하리라고 믿는다. 따라서 남은 토론을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상호간 겸손한 마음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기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벧전 5:5하).
(월간<교회와신앙> 1997년 9월호)
예수님이 마리아의 피를 받고 태어나셨다?(최삼경 목사 주장)
65year_enock 2005.09.03 11:05
답변 5 조회 631
한국교회 이단감별사로 유명한 최삼경 목사가 뉴스엔조이에 평강교회와 거기의 박 모 목사의 이단성을 밝힌다면서 뉴스엔조이에 기고한 글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뉴스엔조이를 보시면 됩니다)..아무리 봐도 심각하게 이상하네요..최삼경씨는 예수님이 마리아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고 주장하는건지? 마리아의 난자를 통해 임신되었다는 말인지? 이 글의 최삼경씨 말이 의학적으로 타당한 말인지..태아가 모체의 피를 직접 빨아먹고 삽니까?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지 요셉의 정자를 받은 것도 아니요 마리아의 난자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라 알고 있는데 (만일 마리아의 난자로 임신되셨다면 그야말로 예수님이 마리아의 진짜 아들이 되어버리는거 아닌가요? 마리아도 죄인인데 그럼 예수님도 죄인이 되어버려 구세주가 될수 없는데??) 최삼경씨의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심각한 이단사상으로 보여질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301&eid=qvOTfekQKUcmJ8W4ffJeVOKHJTVosikc&qb=w9a777DmILjxu+c=
<뉴스엔조이의 최삼경시 글 일부>
..<월경이란 인간의 피를 말하는 것이다. 월경이 있다는 말은 아이를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피로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임신을 하면 월경이 없어지는데 그 피가 아이에게 가는 것이다. 그 피로 아이를 기르는 것이다. 이들에게 혹 눈에 보이는 월경이 없었다고 하여도 월경 없이 태어났다는 말은 결국 이삭과 요한은 사라나 엘리사벳의 피를 받지 않고 태어났다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박씨의 성적 모티브가 없이는 이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역시 통일교 출신의 변찬린씨의 영향 때문에 나온 말이다.
3) 예수님도 월경 없이 태어났다는 말이 기독론적으로 맞는가?
이 말도 아주 이단적인 말이다. 예수님이 월경 없이 태어났다는 말 속에는 예수님의 인성이 부정되고 만다. 우선 마리아는 요셉의 정액에 의하여 임신하지 않았다는 말은 성경이 주장하는 사상이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의미가 그렇다. 그러나 월경 없이 태어났다는 말은 마리아의 육체를 빌리지 않고 태어났다는 말과도 같이 된다. 굳이 마리아의 몸에 들어가 10달이나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월경이 없어야 예수님의 무죄를 증명한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처럼 마리아의 몸을 빌리지 않고 그냥 오셨어야 한다.
앞의 이삭과 요한 두 사람은 어머니의 경도가 끊어졌을 때(엘리사벳에게는 그런 말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임신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런 말이 가능하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다르다. 마리아가 월경이 없었다는 말은 마리아의 피 없이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서 자랐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인성이 부정되는 결과를 가져오고도 남는다.
생각해 보자. 박씨의 말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상상이 가능하다. 마리아는 원래 월경이 없는 여자였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임신하기 전 어느 시점부터 미리 월경을 끊으시고 예수님을 임신하게 하였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임신하고도 계속해서 월경(하혈)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야 죄 없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젊은 나이에 월경이 없을 리가 없다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임신하고도 하혈의 월경은 계속했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왜 성경에 없는 이런 상상을 하고 그런 말을 변증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잘못된 타락관 때문이다. 이런 교리를 정통신학에 비춰 이상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박윤식 씨의 월경관이 옳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 어떤 학자와도 공청회를 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둔다. 어떻게 하여도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렸다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될 것이다. 월경에 의하여 예수님이 죄인이 되고 안되고 한다면 말이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301&eid=8czlokEYhl72PsJ2IHNdb0kxtdPU9+Rh&qb=w9a777DmILjxu+c=
최삼경 목사, 신뢰할 만한 분인가요?
arty04 2005.03.22 14:37
답변 2 조회 650
장로교에속한 최 삼경 목사님을 장로교의 시각에서는 어떻한가요?
장로교 안에서 신뢰할 만한 분으로 평가 받고 있나요?
모든 면에서 신실한 주의 종으로 평가 받나요?
아님 개인적으로 느끼시는 것은 어떻한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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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최삼경 목사, 삼신론 이단자다
iswork 답변채택률 29.7%
2005.03.22 15:34
답변드립니다.
출처는 2002년 9월 30일자 연합공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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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통합, 이단감별사 대거 이단성 정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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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목사-삼위일체론, 성령론 문제/
원 목사-창조론, 인간론, 삼위일체론 문제
한국교회 이단감별사계의 큰별(?)이 떨어졌다. 예장 통합 제87회 총회는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이단감별사로 활동해왔던 최삼경 목사와 원세호 목사의 주장이 비성경적이거나 이단성을 갖고 있다고 규정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로써 그동안 잘못된 신학관을 갖고 있는 이들로부터 이단정죄 및 조사를 받은 교계인사 및 단체에 대한 이단성문제를 재조사해야 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예장 통합의 이단정죄가 객관적이기보다는 다분히 사적이며 주관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예로 뜨레스디아스 영성훈련이 감리교나 여타 교단에서는 적극 도입돼 활용되고 있는데도 예장 통합은 "뜨레스디아스" 훈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금번 보고서에도 드러났다.
또한 예장 통합은 최 목사에 대해 같은 교단 인사라는 이유에서 그의 주장이 많은 이단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소양의 부족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규정했으나 이를 다시 "표현이 적절치 못한 것"으로 수정했다. 반면에 타교단 원세호 목사에 대해서는 "비성경적이며 이단적 주장임이 드러났다"며 그의 그릇된 가르침과 주장에 동조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다음은 한때 이단감별사로 활동했던 최삼경 목사와 원세호 목사의 신학적 문제를 정리했다.
* 최삼경 목사-삼위일체, 성령론
최삼경 목사에 대해 통합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는 총회 보고서에서 "삼위일체론" 뿐만 아니라 "성령론"에도 문제가 있다며 그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했다.
<삼위일체 문제>
지방교회와 이단논쟁에서 "성부의 영과 성령의 하나 되심을 부정하고 성부의 영과 성령이 각각 다른 영이라고 주장함으로 이신론, 혹은 삼신론의 오류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삼위 하나님을 세 영들(세 분)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삼신론적 주장으로 인식되기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성령론 문제>
윤석전 목사와 이단논쟁에서 "계시가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한다면 이적도 역시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최 목사의 주장은 성경적이기보다는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자 중 일부가 주장하는 "기적종료이론"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단대책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 이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며 비성경적 주장일 뿐만 아니라 통합 총회의 신앙과 결의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면서, 일부 신학자들의 이론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성경을 부정하는 "이단적 주장"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이단대책위는 최삼경 목사가 "자기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면 위트니스 리의 이단 정죄가 잘못 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신의 주장이 정통이요 이단 정죄의 잣대라고 말하는 것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진다.
* 원세호목사-창조, 인간, 삼위일체론
원 목사는 통합 총회를 "이단비호집단" 총회장 및 사이비이단대책위원장과 위원들을 "이단비호세력"으로 정죄하겠다는 주장이 괘씸죄(?)에 걸려 이단으로 정죄됐다.
<창조론>
구약 성경에서 "엘로힘"을 "위대하신 하나님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다신론적 주장으로 하나님을 많은 신들 중에 하나로 전락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악한 천사 또는 악령을 창조하셨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인간론>
영과 영혼을 구별하며 "영혼이 피가 있거나 혹은 영혼이 죽으면 영과 육으로 분리되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삼위일체론>
삼위일체론에서 위(격)를 "천국의 하나님 자리(보좌)"라고 말하는 것은 해괴한 주장이며 이교적인 발상으로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경고했다. (조승원기자)
출처 : 제498호 교회연합신문
제87회 통합측 총회가 결의한 "삼신론 주장에 대한 연구보고서"
최삼경목사의 삼위일체 주장 비판
*이 글은 예장통합측 제87회 총회가 결의한 최삼경목사의 삼위일체 삼신론에 대한 연구보고서의 주요부분이다. -편집자 주-
분명히 그는 "성부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요 성령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주장 하였다. 그의 주장에서 인격과 영은 동질이다. 그러므로 인격=영이다. 인격은 페르소나(persona)를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영도 페르소나이다. 그러므로 최목사의 주장은 "(하나님은) 세 (영)페르소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삼신론이 된다는 것이냐?"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을 영이시다"라고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본성)을 나타내는 극히 제한적 용어이다. 그러므로 최목사 자신도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이시다"라고 인정하였다. 이렇게 볼 때 영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숩스탄티아(substantia)-곧 본질(본성)을 나타내는 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목사의 주장대로 옮기면 "성부도 한 페르소나로 한 숩스탄티아 이시며 성자도 한 페르소나로 한 숩스탄티아 이시고 성령도 한 페르소나로 한 숩스탄티아 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숩스탄티아(본질)이다"
최목사는 분명 각각의 본질을 가진 "세 영들의 하나님", 곧 세 분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의 주장은 삼신론적임을 보이고 있다. "삼위일체론에서 "페르소나"를 "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신론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할 때는 언제나 영은 하나님의 속성 곧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 "영"이란 단어를 한 하나님 안에서 인격의 개체를 표현하는 의미로 쓸 수 있으나 그러한 삼위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은 삼위일체론에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시요 아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시며 성령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는 주장은 삼신론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결국 세 하나님이 되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상충된다.
최목사가 이렇게 무리가 따른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지방교회측을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 p16)이라는 지방교회측의 주장이 양태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세 인격이 하나의 영안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요 성령님도 한 영이신대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 반문하며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영이 아닌 세 영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교회와 신앙 96. 12월호).
지방교회측에서 ""영"은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본질(영)이 아닌 하나의 본질(영)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최목사의 주장은 삼신론이다"라고 공격하자 최목사는 "영이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면 (지방교회측의 주장)이 맞다. 그러나 한 인격으로서 성부 하나님도 한 영이시요 한 인격으로서 성자 하나님도 한 영이시요 성령도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고 분명히 "영"을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한 지방교회측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임을 단죄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굳이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아도 지방교회측의 신관은 양태론인데도 말이다.
최목사는 자신의 주장이 삼신론이라고 비판을 받자 "자신은 한 본질에 세 인격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분인가?"라는 주제아래 "칼빈도 하나님이 한 분이심도 강조하였지만 세 분 이심도 말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분 하나님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고 성령은 아들이 아니시다. 세 분은 독특한 특성에 의해 구분된다"(교회와신앙, 2001, 11월호)고 주장하며 칼빈도 세 분 하나님을 주장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최목사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분"이란 말은 "페르소나"란 말을 번역한 것으로 이것은 우리가 "위(격)으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말이다. 최목사는 ""분"이란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 원문에는 한국 말의 "분"이란 개념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칼빈도 하나님이 ... 세 분 이심도 말했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최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나 세계교회가 자칫 삼신론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이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세 분"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목사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의미는 "본질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것임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교회와신앙, 2001, 1월호 p.144) 이 글은 성삼위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인정한 말이다.
교회가 정통교리로 인정하는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하나님(신)을 본질적으로 한 분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최목사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본질의 단일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신을 세(세 영들)"으로 주장하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최목사의 주장대로 한다면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신들의 하나님이다"라고 해야한다. 그러나 분명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한 신만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이 성경구절이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할 수 있는 근거인양 왜곡하여 인용하고 있는 것은 최목사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최목사가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을 비판하면서 주장한 "하나님은 한 영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는 주장은 영이 하나님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으로 주장하고 있으므로 분명히 삼신론적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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