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박윤선의 중생 교리의 극단적 변화와 문제점
1."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可能性)도 없다. - 1956년
성경주석(히브리서/공동서신)
1956년 9월 20일 발행
P.522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죄를 짓지 아니함”은 상습적범죄(常習的犯罪)가 없다는 것이고 절대적(絶對的)으로 성결(聖潔)하여 하나님처럼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씨”는 기독 신자에게 있는 중생(重生)된 생명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벧전 1:23, 요3:6,7), “조더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것은 헬라 원문에서 직역(直譯)하면, “그가 범죄할 수 없음은 그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해야 된다. 이 말씀은 위의 상반문(上半文)의 뜻을 좀 더 강화(强化)한 것이다(Greijdanus). 이것은 거듭난 속 사람을 염두(念頭)에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 신자의 인격(人格)은 성경의 말씀 대로 보아 두가지 요소(要所)를 가지고 이씨으니 lrhe 예 사람과 새 사람이다(엡4:22-24).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可能性)도 없다. 기독 신자라도 혹시 불행히 범죄하게 되는 것은 “옛 사람”의 요소(要所)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2.거듭난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불행하게도 범죄하는 일이 있다.
성경주석(공동서신-요한일서 주석)
1989년 8월 20일 발행
p268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함은 상습적으로 범죄치 않는다는 것이고, 절대적으로 성결하여 하나님처럼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씨”는 그리스도 신자에게 있는 중생된 생명(성령에게 붙들리운 범위내의 영적 생명)을 의미하고, 거듭난 자의 영혼 자체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 3:6-7;벧전1:23)
특주
★ 거듭난 자의 영혼이 범죄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요리 문답 제 37문답이 잘 해답한다. 요리 문답은 장로교회의 교리로서 역사적으로 성경적 교리로 믿어오는 공동 고백문이다. 제 37문답은 다음과 같다.
문:“신자가 죽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며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쉬느니라.”
여기서 취급하고자 하는 것은,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며” (The souls of believers are at their death made perfect in holiness)란 문구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깨닫는 것이 있다. 곧, 누가 묻기를, “거듭난 자의 영환이 이 세상에서 범죄 할 수 있는가?” 라고 할 때에 우리는 요리 문답 제 37문의 답에 의하여 말하기를, “거듭난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불행하게도 범죄하는 일이 있다” 고 할 것이다.
1. 명백한 성경 구절로 대답함
사람이 거듭난 후에야 하나님을 참으로 알기도 하고 믿기도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구약시대 사람들이나 신약시대 사람들이나 그 영혼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섬긴 귀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삼하 23:2;행 4:5참조) 말하기를,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시 41:4) 라고 했으며, 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시 42:5)라고 하였다. “낙망”은 불신앙의 죄악이다. 선지자 미가는 말하기를,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7)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권면하기를,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영”은 영혼과 일체된 부분으로서, 아직 완전히 성결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은 신자들의 “영”도 깨끗케 되기를 원하였다.
2. 해석하기 어려운 성경 구절로 대답함.
요일 3:9에 말하기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라고 한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함은 세 가지 해석을 가진다.
(1) 여기 이른 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란 말은 헬라 원문(?μαρτ?αν ο? ποιε?)으로 보아서 현재 동사이므로 상습적으로 범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가 상습적으로 범죄하지 않는 원인은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씨”란 것은 하나님 말씀의 생명있는 역사 (눅 8:11; 벧전 1 :23), 혹은 달리 말하면, 우리를 성화(成化) 시키시는 성령의 사역의 사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씨”를 가리켜, 사람의 영혼 속에 주입(注入)된 하나님의 본질(本質)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오직 하나님께만 독점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만 계시고 사람을 하나님 되게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피조물 급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바 있으나, 그것은 창조로 된 것이요 하나님의 체내(體內)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소질과 관계된 것이고, 사람이 신성(神性)으로 화(化)했다는 것은 아니다.
(2) 거듭난 자는 “성령의 인치심” (“기업에 보증”, 엡 1:13-14)을 지니고 있는 것인 만큼, 마침내 별세할 때에 완전히 성결해질 자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현재에도 그를 가리켜 “범죄하지 않는 자”라고 한다. 미래에 확실히 이루실 것을 가리켜 현재에 벌써 이룬 것처럼 표현하는 어투는 구약의 선지서(先知書)에도 많이 있다. 비유컨대, 어린 아기가 두 발로 서지 못하고 기어 다니며 아직 사람 구실을 못하지만, 누구든지 그 아이를 장성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귀히 여기며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한다.
(3) “하나님께로서 난 자” (‘거듭난 영혼’이란 표현과 다름)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으로 지켜주시는 분량만큼의 새 사람을 가리킨다(5:18).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육신에서나 영혼에서나 성령이 지켜주시는 분량만큼은 범죄하지 않는다.
요일 3:6, 5:18에서도 우리는 위의 해석들 중 어느 하나를 취해야 한다. 롬 8:5-10에 말하기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 나온 “육신”이란 말(σ?ρζ)은 모두 생리적 신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부패성을 의미한다. 부패성 혹은 죄성(罪性)은 거듭난 자의 영혼 속에도 있다(롬 7:20). 그리고 여기 “영”은 이 부분에 있어서 기록되고 의롭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롬 8:5-10) 영혼과 다른 것이니,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9절에서 “영”에 대한 위의 모든 말씀을 받아 가지고 하는 말씀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보면, 그 위에 나오는 “영”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 것이 분명하다.
3. 칼빈주의 교리로 대답함.
교리란 것은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고, 옛날부터 교회가 그것을 성경적인 것으로 알고 공동적으로 고백하여 온 것이다.
(1)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 제 13장 2절은 성화론(聖化論)에 있어서 말하기를, “신자의 성화가 전 인격에 관계되어 있으나 모든 부분 (영혼에도)에 부패가 남아 있으며, 따라서 계속적으로 부조화(不調和)의 전쟁 곧, 영과 육(전 인격에 있는 부패한 성질)의 충돌이 일어난다”라고 하였다.
(2) 대요리문답 제 78문에 대한 대답도 이와 유사하니 곧, “신자의 성화(聖化)가 불완전한 이유는, 그 사람(신자)의 각 부분에 (영혼에도) 있는 죄악의 잔재(殘滓)들····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도 종종 시험에 빠지며 많은 죄에 떨어지며 영적 봉사에 지장을 받으며 그들의 가장 선한 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더럽다”라고 하였고, 제 149문에 대한 대답을 보면,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든지 그 받은 은혜의 힘으로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키지 못한다. 그는 날마다 말과 생각과 행실로 계명을 어긴다”라고 하였다.
(3) 소요리문답 제 37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으니 곧, “신자가 죽을 때에 영혼이 완전히 거루케 되며”라고 하였다.
4. 칼빈주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말로 대답함.
(1) 하지(A.A.Hodge)는 그의 저서 신학개론 (Outline of Theology 1882 A. D.)에서 중생의 성질에 대하여 말하기를, “중생의 수반 현상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음이다”라고 하였다.
(2) 유명한 조직신학자 벌코프 (Louis Berkhof)는 그의 조직신학(p.468)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사람의 전 성품의 완전한 변화도 아니지만, 어떤 한 부분의 완전한 변화도 아니다(그것이 비록 원리적으로는 그 인격의 전체에 영향을 주지만). 재세례파 (再洗禮派)와 광신주의자(狂信主義者)들은 중생으로 인하여 성품이 전적으로 변화 받아 범죄 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못 말한다”라고 하였다.
(3) 삼대 칼빈주의 학자 중 한사람인 워펄드 (B.B.Warfild)는 그의 저서 완전주의(perfectionism, p.580)에서, 인격의 중생한 부분을 샘물 근원으로 비유하여 말하기를, “성경은 이 샘물 근원이 이 세상에서 단번에 완전히 변화함을 약속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p.299
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여기 이른바, “하나님게로서 난 자”는 중생된 자를 가리킨다. 3:9, 5:1, 4 참조. 이 문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전혀 범죄하는 일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상습적으로 기탄없이 범죄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저를 지키시매.” 그리스도께서 그 신자들을 지키심에 대하여는 성경의 다른 구절들도 말한다(눅 22:31-32; 요 6:39, 10:28, 17:11-12; 롬 8:37).
약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약한 자”는 마귀를 가리킨다. “저를 만지지도 못”함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지켜 주시는 한도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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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자료
참고1 - /초기화면/연구실/자료/"73번", 00.7.4./
[교리]중생된 사람의 범죄 (박윤선 주석. 요일5:18)
박윤선의 신약주석 공동서신에서 발췌 소개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
16절: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죄를 가리키고 (민15:30-31), 신약에서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 혹은 배교죄(마12:31, 히6:4-6, 10:26-31)를 가리킨다. 이 몇가지 죄들은 다 그 섬기던 하나님을 배반하는 악행인 점에 있어서 서로 유사하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의미한 것은 2:19에서 이미 말씀한 것과 같이 배교죄를 가리킨다(Greidanus). 사도 요한은 여기서 배교자들을 위하여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런 죄에까지 이르지 않은 자를 위해서는 기도하라고 한다.
곧, 기도자가 그 범죄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들이 생명의 은혜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불신자라면 사망 중에 있어 이 본문이 해당되지 않는다.
믿는 사람이라야 중생되었고, 중생한 사람이라야 "사망에 이르는 죄" 여부에 해당이 된다.
신약에서는 배도하는 죄를 두고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하는데, 문제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면 중생의 단번, 영원 확정의 교리와 정반대가 되어 버린다.
18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여기 이른 바,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된 자를 가리킨다. 3:9, 5:1, 4 참조. 이 문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전혀 범죄하는 일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상습적으로 기탄없이 범죄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뿐이다.
참고2 - /초기화면/연구실/자료/812번/04.3.13./
거듭난 자의 영혼이 범죄할 수 있는가? - 박윤선의 <개혁주의 교리학>
서명: 개혁주의 교리학
저자: 박윤선
출간: 2003.6. 영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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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자의 영혼이 범죄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요리문답 제37문답이 잘 대답한다. 요리문답은 장로교회의 교리로서 역사적으로 성경적 교리로 믿어 오는 공동 고백문이다. 제37문답은 다음과 같다.
문) “신자가 죽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쉬느니라.”
여기서 취급하고자 하는 것은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원문대로 바로 번역된 것은 확실하다(The souls of believers are at their death made perfect in holiness). 여기에서 우리가 확실히 깨닫는 것이 있다. 곧 “거듭난 자의 영혼(세칭 거듭난 영혼)이 이 세상에서 범죄할 수 있느냐?”라고 물을 때에, 우리는 위의 요리문답 제37문답에 의하여 대답하기를 “거듭난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불행히 범죄하는 일이 있다.”고 할 것이다.
1. 명백한 성경 구절들
사람이 거듭나야만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고 또 믿게 된다. 이 원리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구약시대 사람들이나 신약시대 사람들이나 그 영혼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섬긴 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기를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시41:4)라고 하였으며, 또“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시42:5)라고 하였다. 낙망은 불신앙의 죄악이다. 선지자 미가는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6:7)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신자들을 권면하여 말하면서 “육과 영의 온갖 더루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영”은 영혼에 관계된 인격 부분으로서 그것이 아직 완전히 성결되지 못했으므로 바울은 “영의 더루운 것”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2. 하나님의 영을 영혼으로 오해하지 말 것
롬8:5-10에 말하기를 “육신을 좇는 자느 sdbrtls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육신”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모두 싸륵스( )니, 인간의 생리적 신체를 말함이 아니고 인간의 ‘부패성’을 의미한다. 부패성(腐敗性) 혹은 죄성(罪性)은 거듭난 자의 영혼 속에도 있다(롬7:20).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영”은 영혼이 아니다. 거룩되고 의롭다는 의미로 사용된 이 “영”은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다. 9절에서 앞 부분에 있는 “영”에 대한 모든 말씀을 받아서 말하기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보면 그 앞에 나오는 “영”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 것이 분명하다
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
요일 3:9에 말하기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라고 한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함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1) 여기 이른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라는 말은 헬라 원문으로 보아서 현재동사이므로 상습적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일시적인 실수까지(롬8:23)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가 상습적인 범죄를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 있는 역사(눅8:11; 벧전1:23)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씨”를 가리켜 하나님의 본질이 사람의 영혼 속에 주입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오직 하나님께만 독점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오직 한 분으로만 계시고 사람을 하나님 되게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피조물 급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바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로 된 것이요 하나님의 체내(體內)에서 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소질과 관계된 것이고 사람이 신성(神性)으로 화(化)한다는 뜻은 아니다.
2) 또 한가지 해석은 이렇다. 곧 거듭난 자는 “성령의 인치심”(“기업에 보증”: 엡1:13-14)을 지니고 있으므로 마침내 별세할 때에 완전히 성결해질 자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현재에도 그를 가리켜 “범죄하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미래에 확실히 이루실 것을 가리켜 현재에 이미 이룬 것처럼 말하는 어투는 선지서에도 많이 있다. 비유컨대 아직 걸음마도 못하고 기어다니는 어린아이를 보고 누가 그 아이를 짐승이라고 하겠는가? 비록 그 아이는 지금 유아이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부여된 인간의 존귀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요일3:6; 5:18에서도 우리는 위의 해석들 중 어느 하나를 취해야 한다. 거듭난 자의 영혼도 그 성결에 있어서는 완전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성령님께만 의존해야 된다.
4. 칼빈주의 교리
교리라는 것은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고 옛날부터 교회가 그것을 성경적인 것으로 알고 공동적으로 고백하여 온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3장 2절은 성화론(聖化論)에 관하여 말하기를 “신자의 성화가 전 인격에 관계되어 있으나 모든 부분에(영혼에도) 부패가 남아 있으며, 따라서 계속적으로 부조화의 전쟁, 곧 영과 육(전 인격에 있는 부패한 성질)의 충돌이 일어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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