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6장
다니엘 6:1-
사람들이 마귀에게 유혹을 많이 받는데 무엇이든지 믿음 지키면 된다고 하고 또 어떤 자는 믿음만 지키면 되나 한다. 이 말은 옳은 말이나 분석을 해야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 말은 모든 일을 옳게 바르게 참되게 해야 한다. 옳게 바르게 참되게 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 그 내용은 같다. 참된 방편은 하나가 있다. 무엇에든지 옳게 바르게 하는 것은 하나지 둘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옳게 바르게 참되게 하지 않을 것이 있느냐 이런 것이 전연 없다. 여기에 대하여 내가 바로 해야 할 관계를 사실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나 일이나 장소나 물건이 있느냐 하나도 없다. 만나는 전부는 나는 바로 하고 참되게 하고 옳게 해야 할 것들이다. 시장에도 부엌에도 농장에도 이것이 가득 찼다. ∴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다 죄라고 했다.
주의
주일 지키기 위해서 노는 것보다 일을 다 하는 것이 좋고
주일 지키기 위해 좀 피곤을 푸는 것이 좋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라 이것을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하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믿음은 범사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연구하여 바로 옳게 참되게 하는 것이 믿음으로 짓는 것이다. 믿음으로 농사짓는 것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옳게 바르게 참 되게 짓는 것이다. 농사도 바로 잘못 쳐서 잎사귀가 무성하고 열매는 나오지 않는다. 믿음으로 비료 하는 것은 바로 하는 것 3 요소를 구비하고 토질을 보아 적당한 시기에 쳐야한다.
∴ 예수님이 나는 길이라고 했다. 하늘나라 가는 방편은 예수님뿐이다. 모든 것에 그러하다. 겸손한 자가 되라 교만한 자는 사랑함으로 그 사람이 실력이 아무리 있어서도 시키지 아니한다.
사34:16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이 다 기록해 놓았다. 우리가 성경으로 윤곽을 짜놓고 생활하면 우리 안에 성신의 감동이 오는데 그대로 하면 된다. 우리가 물질의 이치를 알고 도덕의 이치를 알고 특별계시를 알고 자연계시를 알아야 한다. 믿는 사람이 예수님 믿는 생활을 하려면 성경을 많이 보아야 하고 양심을 써서 그대로 살아야 지능이 발달 되어 나간다. 우리 기독자는 지식을 잘 간직하여야 하게 한다. 지식은 어떤 것이 지식이냐 과거와 현재에 것이 다 합해서 지식이다. 지식은 3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신구약성경의 지식, 자연 세상지식, 자기지식.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것은 자기가 알아야 한다. 과거에 잘못된 것은 알므로 자기의 모자라는 것은 보충할 수 있다. 이것을 선용할 수 있어야 한다. 느부갓네살이 본 꿈에 나무가 둥치도 베어 버리고 끝 둥치만 쇠줄로 동여 놓았다.
예, 사울을 말하면 지위가 그대로 있는 것은 둥치요 잎이 없는 것은 그 영광과 존귀와 대우와 환영이 없는 것이다. 저 목사 쫓겨났으면 좋겠다. 죽으면 좋겠다. 싫어하는 것 이것이 다 둥치만 남아있지 위에 둥치는 달아났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직장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은 둥치가 끊어진 것이다.
6:1-38까지는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는 존귀한 지위를 맡기려고 한다. 다니엘이 원수가 없어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원수 많은 데서 바탕은 포로 되여 진데서 존귀하여 쓰이는 곳으로 나아간다. 존귀하게 쓰이는 방편은 다니엘이 자체 실력이 있게 하여 가지고 존귀하게 하셨다. 이는 자기의 자력으로 했다고 할만치 해가지고 그렇게 했다고 할만하다. 그는 초자연의 능력으로 보통 사람이 따라올 수 없도록 실력이 있어서 존귀하게 되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 사람도 실력이 있는데서 올라갔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자기보다 타인을 실력이 없도록 해가지고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실력이 있게 하는데서 자기가 실력 있는 자가 되여 올라가려고 해야 한다.
교역자는 어디든지 자기보다 낫게 가르치는데 가서 배우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남보다 낫게 만들어지기 위해서 하면 시온산으로 올라가지 못하니 내려와야 한다. 다니엘은 자기 실력이 다른 사람이 낮아짐으로 올라가려고 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올라가기를 좋아하면서 저의 지혜를 올라간 것이다. 타인보다 나은 것은 인간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상으로 되어지는 하나님의 것으로 되어졌다. 여기서는 스스로 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도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전적 되었는 고로 하나님게만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할 만큼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계시가 생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을 주어서 인간의 탁월한 행위와 이력을 일으켰다. 이는 나타난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다. 이것을 시험 받으면 적적 하나님에게 여광 돌리기 힘든다. 이는 무형의 존재로 나타나서 계시는 고로 영광 돌리는 데는 자기가 했다고 할 만 하다. 이것에게 유혹을 받지 않이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이력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그 사람이 한 것같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이런 방편 쓰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도움은 보이지 않고 그 힘을 받아 권위 있게 하게 하는 것은 그 밑에 사람은 그 일을 한 자에게 밑에 있는 자가 존귀하게 여기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고 이것은 영원이 자기 능력이 된다. 이것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가 커간다. 그 능력을 받아 50년 커졌으면 50년 후에는 도우지 아니해도 할 수 있겠느냐. 한번 받은 능력은 제 것이 된다. 하나님에게 나온 그 능력인데 그것이 점점 많이 나온다. 이러니 물이 커지니 내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장성하니 다니엘이 장성하여 진다. 5가지 중 신앙 양심이 제일 잘 크졌나?
다니엘이 이렇게 커졌으니 이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오래 동안 연결 되어 장성했었는데 하나님이 끊어지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절단난다. 인생의 근본 행복은 하나님에게서 건너와야 된다. 우리는 여기서 영광스러워진다. 이빛은 우리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 내입으로 몸으로 지식으로 나온다. 미화도 지혜 거룩이 나온다. 이것이 내 것이냐 내 것이 아니냐 이것은 중대하고 세계의 난제라 하나님의 은혜가 부절이 나를 통해서 하신다. 설교를 하는 데는 하나님이 내 속에서 가치 있는 말을 계속하게 하신다. 이것에 계속 쓰이면 예수님의 지체가 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신 것이다.
요14:10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이 그 입을 통해서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만물에 나타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우리를 무한한 것으로 교훈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구원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이 기독자의 신앙생활이다.
이 다니엘 6장에서나 기독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의 것 가지고 천국에 뛰어나게 할 수 있다. 기독자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법리를 잘 지키면 세상에서 뛰어날 것을 말했다. 안팎.
말씀대로 살면 좋은 형편 모든 것이 아니고 나쁘게도 된다. 요셉을 보아라. 다리오가 통치하고 있는 그 나라는 다니엘에게 맡기려고 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리를 지킴으로 자기를 (00)이 비천해질 때 자기 내부에서 시험이 들어 스스로 시험이 든다. 또 외부에 시험이 들어와서 절단나기 쉽다. 말씀대로 살 때 육적으로 존귀해질 때는 영적으로는 존귀하여 지지 않고 영적으로 존귀할 때는 육적으로 곤비할 때다. 육적으로 존귀해진 것이 존귀해진 것이 시험을 받는데 통과하여지면 제 것 된다.
∴ 하나님 말씀으로 육적으로 곤비할 때 영적으로 수입이 있는 때니 이때가 지나가면 반드시 육적으로 축복이 온다. 말씀 지킬 때 영적으로 존귀해지고 육적으로는 몸에 병이 들지 직장이 떨어지든지 하면 얼마 아니 가서 육적 축복이 온다. 또 육적의 비천해져 있는 것이 계속될 수 있다. 육적 존귀해 진 것이 시험이 있을 때 잘 통과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어느 것이 올런지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면 축복이 온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아니 된다. 믿음 지키면 육적 축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 알면 신령한 축복을 주신다. 이제는 이 믿음을 계속하면 육적 축복은 다시 계속하고 영적 축복은 계속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알고 그대로 따라가는 자는 육적 축복은 곤고해도 영적 축복으로 계속해야 한다.
다니엘서 6장은 1장 2장 3장 4장 5장의 결론이다.
실지 생활을 하는 경고 말씀이다.
단6:11
다니엘 6장은 지상에 있는 교회는 어떤 방편으로 건설을 하여 나가느냐 교회의 표준을 말하고 있다. ∴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표준적 인물이다. 세상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는 교회의 표준적인 형편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생활 방편이 각각 다르나 그 표준적 생활은 같다. 다니엘은 신앙의 표준 인물이다.
첫째, 세상은 기독자를 등용
겔16:12 욥 노아 다니엘 세 사람을 들어 말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것인가.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높이 들어서 지위를 맡기려고 했다. ∴ 이 세대는 이 신앙가들의 그 권위를 무시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귀하게 대우한다. 이 세상이 신앙가를 천대하지 않고 존경하고 찾고 있다. ∴ 우리가 어떤 멸시 핍박을 당할 때 이 세상을 적대시하고 악하게 보고 대하기 쉽다. 그러나 이 세상은 진실한 기독자 찾고 존경하고 등용 할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러기에 어떤 대적 핍박이 생길 때는 선입적 관념을 가지고 비판하지 말고 이 세상은 기독자를 등용하고 존경하고 써 줄려고 하니 세상이 멸시가 올 때는 자기를 찾아서 결함을 찾아야겠다. 그러나 핍박받을 것이 없으면, 그것은 상급이다. 그러나 대개는 세상을 들고 우리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친다. 사랑하는 자에게 이렇게 하신다.
둘째
둘째로 보이는 것은 기독자를 환경 존경 등용 혜택을 입으려고 하면서 세상은 성도를 시기하는 세상이다. ∴ 성도는 언제든지 자기를 노리고 있는 적이 있는 것을 기억하라. 적은 외부 적으로 볼 때는 악령이 믿는 사람을 대적 하는 것 같으나 실은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온전하게 하려는 것이다. 성도가 온전하다고 하면 박해가 없다. 의인이면 고난이 고난이 되지 않는다. 욥에게도 시험이 있던 것은 그 속에 쓴뿌리 그것을 뽑기 위해 환란이 있었고 그것은 처음에는 원망했으나 그것을 깨닫고 회개할 때 물질을 배나 주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역사를 하는 고로 참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이것을 위해 쉬지 않은 세상을 통해 고난 받게 한다. 세상이 등용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지 않을 때는 등용을 당해야한다. 이스라엘은 이방을 짐승과 같이 보았으나 이스라엘을 붙일 때 그곳에 가서 등용 되었다.
셋째, 표준적 인물이 처세.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되지 않을 때는 자기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충성되게 해야 한다. 교회에 전도 예배 보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충성하느냐 주께 하듯 하라 주께 하는 것으로 하라. ∴ 불신자에게 종업할 때는 그 일이 죄 되지 않으면 그 일에 충성하여 그 일이 신덕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 세째 표준으로 가르치는 것은 죄 되지 않은 일은 다할 수 있다. 그것은 주님에게 하는 것 같이 하라. 그 주인은 내 속을 모르나 주님은 다 아신다.∴주님은 눈가림으로 하지 말라 했다. 엡6:6여기 상전이라 말은 자기를 쓰고 있는 사람을 가르쳐 말하는 것이다. 장관은 차관의 상전이다. ∴ 단 마음으로 해라. 진실하고 성실한 충성을 하라.
넷째
방백들과 수령들과 관원들이 모여 다니엘을 송사하려고 흠을 찾고 있었다. 세상은 우리를 노려도 우리를 흠잡을 것이 없는가 하고 찾고 있다. 그때 다니엘은 흠잡으려고 해도 흠잡을 것이 없다고 했다. 이는 그가 충성되여 아무 그릇함과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기독자에게 대한 세상은 기독자에게 흠 잡고 고소할 건이 있는가 하는 것을 계속 했다. 이것이 교회에게 대한 표준적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니
다섯째
표준적 기독자는 자기의 맡은 일에 충성되게 행하고 그른 것과 허물이 없도록 사는 것이 기독자다. 자기의 직장 농장 이웃에게나 인인 교제에 있어서는
①충성
②잘못이 없고
③허물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표준이다.
22절에서 사자 굴에 넣으려고 했다. 사자는 무자비하고 잔인하고 모질고 독한 것이다. 이런 짐승 속에 들어갔으나 사자가 해치 못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충성 정직 화평 공의 결백 친절 면에 아무런 흠 잡은 것이 없도록 사는 것이 표준적 인물이다. 이것이 세상이요 기독자의 표준적 인물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사자 굴에 들어가도 사자가 해할 수 없는 권위 있는 사람 만들기 위함이다. 다니엘은 다른 방편을 쓰지 아니했다. 다니엘은 다른 방편을 쓰지 아니했다. 다니엘을 사자가 해치 못했느냐. 하나님이 왜 천사를 보내어 나를 온 전국이 사자 굴에 죽도록 집어넣었는데 막아 살게 했느냐. 그 이유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하오며. 사자굴은 무자비하고 악독한 세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으나 다니엘이 사자 굴에 있는 사자가 잡지 못하도록 천사를 보내어 막았다.
천사의 도움 받는 이유는 어디 있느냐, 이것을 내가 말한다.
그 첫째 이유가
그 앞에 내가 무죄함이 명백함이요 라고 했다. 산다싱이 그곳에 있는 인도 사장에 전도할 때 사자가 많은 곳인데 산다싱이 들어오니까 그를 쫓아내어 놓고 어떻게 죽었느냐 하고 그 굴에 가서 보려고 하여가니 군대가 많이 있는 것을 보았다. 산다싱은 보지 못했으나 그들은 보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6.25 때도 그랬다.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도울 때는 대적이 해하지 못했다.
둘째
또 나는 왕에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 하였나이다 했다. 다니엘은 왕의 등용으로 왕 大臣으로 있었는 고로 왕에 해를 입힐 수 있다. 이는 왕의 백성에게 조금도 해를 입히지 아니 했다고 했으니 이것이 둘째 이유다.
첫째 무죄하다 말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힘껏 충성했다 말이다. 둘째는 인류에게 해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심판 정죄 받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해친 것 책임진 것을 하지 않은 것 해친 것 베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고 해친 것 때문에 심판받는다.
이 둘이 합쳐서 하나다. 하나님에게 잘못한 것이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요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하나님에게 잘못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에게 대한 계약 이행을 사람에게 해야 한다. 하나님에게 대한 것을 사람에게 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 사랑에서 사람을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람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다가 보니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되였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으니 사람을 직접 사랑했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방편이 사람을 보고 직접 사랑하니 이것이 틀렸다. 이렇게 사랑하면 양이 제가 사랑할 무엇이 있는 줄 알아서 사랑하는 줄 안다. 교회에서 교역자보다 재직이 어른 되고 제직보다 평신도들이 어른이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 없이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방편을 잘못 써서 교인과 재직을 죽여 놓았다. 사람 사랑을 하나님에게 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마주 앉아서 그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만 한다. 사람과 마주 앉아 그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한다. 그가 삐꾸고 돌아가도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대해서 그랬으면 그것이 사람이 되고 인본주의로 했으면 정을 붙여 주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버리게 된다. 사랑하여 주지 아니 한다고 하여도 그에게 내가 꼭 계명 지키고 실수하지 아니하고 속으로 칼을 갈면 그것이 살아난다. 교회가 권위 없는 것은 교역자가 교인들의 소원대로 사랑하여 줄라고 따라가면 이렇게 된다. 교회는 교역자가 위에 있고 제직이 위에 있어야 한다. 교역자는 교인을 꼼짝 못하게 눌려서 순종하도록 해라 그러나 이 권위는 성령의 권위와 진리의 권위로만 해라. 진리와 영감의 권위의 권위는 제일 믿음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 제일 약한 것은 교역자다. 진리와 영감의 권위는 교역자가 강한 것이다. 교역자가 왕권을 부리려면 어느 권위를 써야 되느냐 진리와 영감의 권위를 써야 한다. 이것 아닌 다른 권위를 쓰면 매장 당한다. 수치와 밟힌다 하고 이것 가지고 쓸 때 듣지 아니하고(하나님의 권위다.)대항하면 그에게 대하여 금년만 참아 주옵소서 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매가 오기 때문이다. 이 권위 쓰면 좋아하겠느냐. 참 좋아한다. 이것을 쓰지 아니해서 그렇지 다 좋아한다. ∴ 사람을 사랑하고 싶을 때 그때 사람을 상대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얼굴을 돌리라. 그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을 때는 사람을 사랑하라. 사람 사랑에서 마음은 하나님에게 가서 있으니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까 할 때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할 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누워질 수 없다. 이것이 생명이요 진리이다.
부산에 있는 브니엘 고등학교를 백목사님이(나는) 좋아한다. 그 이유는 그 학교 교육 이념을 표하기를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대하여 주의해야 하고 하나님에게 대하여 주의할 것 사람을 하나 잃으면 하나님을 잃었다. 다니엘은 모든 세상들이 합세해서 사자굴에 집어넣을 때 그 사자굴 밑창에 들어가는 것이 교회에 표준 인 줄 알아라. 세상이 나를 뽈끈 묶고 사자굴에 집어넣는 것이 표준적 세상이요 빠지는 것이 표준적 교회다. 이렇게 하는 데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여기서 나올 자가 아무도 없다. 사자 굴에 집어넣고 돌로 막고 인봉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구원받는 것이니 기독자의 표준의 생활이다. 별스러운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시91편에는 성도가 온갖 재앙에서 구원 받을 것을 말하여 놓았다. 구원받는 방편은 전능자의 그늘아래 거하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것이라 했다. 이것이 곧 다니엘이 나의 무죄함을 명백함이라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이 곧 계명 안에 거했다 말이다.∴기독자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사자굴에 던짐 받는 것이 표준적 교인이다. 여기서 죽지 않고 초자연의 권능을 받아 살아나게 되는 것은 나의 생활에 죄가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사랑한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보니 나는 점점 작아지고 무능자 되고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된다. 이때 사람이 올 때 하나님을 보고 그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준다. 사람은 이것이 아니 되면 재미가 없다. 밀실에 가서 자기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보고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던지 생수의 근원을 잃으면 아니 된다. 자기가 은혜 받는 장소는 잊어지지 않는다. 사람으로 더불어 행복을 누리려고 하거든 자기의 행동은 하나님에게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내 마음이 사람에게 가서 있어야 한다. 사람 교제는 뒤로 해야 하고 앞면은 하나님에게 기울어야 한다. 실력 있는 성도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은 실력을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할 때 그 사람을 구원하는 방편이 구원 앞잡이로 멸망이 먼저 온다.
①첫째 이유는 다니엘의 실력이 완전히 충족하도록 자기가 멸망에 들어가는 때까지 해야 그 의가 소망과 실력이 완성하는 시기인 고로 다니엘은 완전케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다.
②이 사실을 듣고 본 성도들에게 큰 도를 주기 위함
③모든 사람이 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구원의 앞잡이로 멸망이 올 때 우리가 밟아야 할 순서가 무엇이냐.
①그 하나님의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인 두 가지를 버리지 아니하고 계속을 해야 한다. 이 원인 둘이 나온 그 원인을 버리지 아니해야 되지 이것을 버리면 깨여진다. 원인 둘은 하나님을 사람을 해치지 않은 것 이것에서 나온 원인은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한 것 이 기도 한 것이 무죄하고 왕을 해치지 아니한 것을 맺었고 이것이 천사의 도움을 받았다. 오늘도 이것이다. 이 생활이 어디든지 있다. 천사의 도움 받으려고 할 때는 두 가지 원인이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 의가 있어야 살아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의를 버리면 절단 난다. 이것을 버리라고 얼마나 다 잡아(0) 된다. 이 두 가지 원인 버리면 살려 주겠다 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것 버리면 살려준다 하고 나타나니 여기서 다 떨어진다.
※
하나님의 구원이 오기 전에 낭파가 먼저 온다. 이는 당하려면 당하고 아니 당할 수 있는 것이 온다. 주를 위한 고난이면 벗으려면 벗을 수 있는 고난이다. 벗으면 사느냐. 살았나가 죽는다. 말 한 마디면 다 된다. 바벨론 천지에서 다니엘 동지가 없다. 외로워질 때 자기의 동지는 귀하나 이때 동지는 괄시를 못 한다. 그때 일국에 왕이 그에게 동지가 되였다. 그때 한 백성만 동지가 되여도 좋을 것인데 왕이 동지가 되였으니 얼마나 좋겠느냐 얼마나 조심할까 위할까 했을 것이다. 이때 다리오 왕이 권면하는 것을 끊으려고 할 때 최종 적으로 동지와 나누워 지는 것이 어려웠다. 두 번 째는 최종 적인 어려움은 자기를 죽음에서 살려주려고 하는 진정한 애정과 동정의 구원이 나타났을 때 이것을 꺾으려고 할 때 이것이 최후에 싸움이다. 이 싸움은 빼놓고 마음이 놓고 기가 찬다. 산다싱이 그리스도에게 몸바쳐 헌신할 때. 자기가 자기의 아버지와 작별할 때 네가 종교야 개종하지 못할지언정 내가 주는 도시락은 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준 독약 든 도시락 먹고 선교사 집에 가서 누웠다. 그것을 고쳤다. 그러나 그가 어려운 시험 받는 것은 그 삼촌이 왕이면서 그에게 왕을 계대시킬 정이 들었는데 굴에 데리고 가서 무릎 꿇고 절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개종하라고 돌아서게 한 것이 그에게 최고 어려웠다. 다니엘이 왕의 간청과 그 동정을 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 동지의 유혹 애정의 유혹을 최종으로 해질 때까지 싸워 승리할 때 하나님은 기뻐했다. 그때 다니엘을 묶어서 사자굴에 집어 넣으면서 너희의 하나님이 살릴 줄 안다 할 때 시험은 사선의 시험이다. 이때도 다니엘은 하나님만 향해서 신앙지켰는 고로 여기서 사자굴에 던짐 받을 때 하나님의 도움이 나타나서 살림을 받았다. 이것이 표준 적인 세상이요 표준적인 기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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