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인간론 - 본론1 (메시아인)
본 론
Ⅰ. 영(πνευμα) 과 혼(ψυχη) 이라는 용어
영(πνευμα) 이라는 용어는 매우 광범하게 사용( 혹자 가 살펴 보기를 원한다면 kittle의 신
학사전 TDNT 의 πνευμα 항목을 살펴보면 도움을 얻을 것이다. )되는 것이다. 여기서 는
혼잡을 피 하고자 사람 에게 있어서 의 구속(救贖)적용 과정 에의 경우 만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다. 곧 인간론 에 대한 것으로 한정된 범위에서 용어를 살폈음을 유념 하라.
“ 영(루하, πνευμα) 과 혼(네페쉬 하이, ψυχη) 은 무형 의 실존 임에는 같으나 , 성령
( 루하, αγιον πνευμα, Holy Spirit) 곧, 창조주 이시며 대속주 이시며 구원속죄 적용주
이신 삼위일체( Trinity)하나님 의 제 삼위 의 신격 이 주도 하시는 사역을 전적 수용하는 주격
자체( The Nominotive) 인 영( 루하,πνευμα, Spirit) 은 ‘그리스도 의 영’ 의 임재 처소
이면서 한 개인에 있어서 구원 속죄 적용 의 첫번 째 역사를 이루는 능 수동적 인 복합 성격을
지닌다.” 하나님 의 영 의 임재는 성령 의 인침으로 알수있고 이는 거룩한 영 으로서 ‘임마
누엘’하심 이랄수 있다. 또한 혼(네페쉬, ψυχη,soul)은 피조시 지음받은 다른 생물 과는 구
별되이 지음 받음을 또 하나 의 실존 으로서 , ‘자유성’을 지닌 전가된 자유 의지 능력( free
will agency ) 을 보유하며, 또한 능동성 을 지닌 하나 의 주체( subjec, main consitituent )이다.
작용 활동 은 주격 의 활동을 따른 능동적 주체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견해 는 헨드릭슨 의 견해( 헨드릭슨 성경 주석 p.203. 아가페 출판사 발행 1985.2 4판 ) 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듯 하다. 그러나 델리취 의 경우 에 있어서 는 실체 (substance)로는 판이
하나 본질 실재 (essence)는 판이하지 않다고 하며 (박형룡 박사 저작전집 Ⅲ p.52 참고 한국 기
독교 교육 연구원 발행. 1981 년 판 ) 헨드릭슨 과 는 약간 다른듯 하다.
실재(ουσια , essence )란 “ 시 공간 을 점유하는 물질 로 구성되는 물체성 ” 이라 할
수 있고
이 물체성 결과 는 “ 구성 형식 이랄수 있는 ” 실체 ( υποστασισ , substance )에
있어서
구분 되는( distinct )것 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장 46절, 47절 의 말씀 을 살
펴보면 (이 외의 참고 성구 는 창 41:8 의 요셉 과 바로 의 경우 , 단 2:2,3 의 다니엘 과 느부갓
네살 의 경우, 요 13:21, 12:27 의 예수님 의 경우 를 들수있다.) 동정녀 마리아 의 고백에서
“ 내 영혼(soul)이 주를 찬양하며 , 내 마음(spirit)이 내 하나님 내 구주 를 기뻐 하였음 은 ”
에서 영 과 혼 ( πνευμα 에 관한 바울 의 구별 그리고 다른 성경 저자들 의 πνευμα
와 ψυχη 에 관한 구별 ‘약 3:15,유 1:19’ 등 은 두 가지 의 비 물질적 인 부분들 사이 에는
단순히 기능적 인 차이가 아닌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력히 증거 해주고 있다. :; Hibert p.
252 ; Schweizer TDNT, 6:436 ; Light foot p. 80 )은 흔히 논란 의 대상 이 되는 πνευμ
α 와 ψυχη 가 근접 해 있는(눅 1:46) 여기서, 각기 시제 에 있어서 차이를 드러냄 으로 서 ,
동일한 실체 의 두 이름 이 아닌 것을 알려준다. 두 실체( 영혼,ψυχη는 사물 의 구성 형식상
곧, 실체 상 잠재 의식 과 각성 의식 으로 나눌수 있다. 하지만 영,πνευμα 은 잠재 각성
의식 도 아닌 실읾 에 있어서 사람 의 지성 과 감성 과 의지 와 는 별개 의 것이다. 실체 는 실
유 라고도 하며 지각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의 성질, 상태, 적용 의 근저 에 있으면서 그것들 을
제약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근세 에 있어서 데카르트 는 실체 를 그 스스로 가 존재하고
이를테면 정신 과 물체 는 무한 실체 인 신 에 의한 두 개 의 유한 실체 로서 서로 명확히 구별
시켜 전자 에는 사유 후자 에는 연장 이 그 특성 이라 하였다. 세계 백과 대사전, 학원 출판사
Ⅴ. 1983 년 판)의 개별 적 이름 으로 보여주고 있다.
και ειπεν μαριαμ Μεγαλυγει η ψυχη μου τον
and said mary magnifies the soul of me the
κυριον και ηγαλλιασεν το πνευμα μου επι τω
Lord and exulted the spirit of me in -
θεω τω σωτηρι μου
God the saviour of me
혼 이 찬양( Μεγαλυγει)함 은 현재 능동( 3인칭 .단수. 현재 μεγαλυω 의 직설
능동) 이며, 마음(πνευμα) 의 기뻐 하였음(ηγαλλιασεν) 은 과거 시제( 3 인칭 단
수. 제일 부정 과거. αγαλλιαω 의 직설법 ) 로서 영 이 시간적 으로 먼저 기뻐함 이
후에 혼 이 이후에 찬양케 됨을 본다.
사람 일 개인 에 있어서 도 영 에 성령(αγιου πνευματοσ) 이 감동 케 하심으로 (
구약 성경에서 는 혼 , 네페쉬 를 나파흐 하다. 곧, 불어 넣었다 함.) 영 에 비춰지는, 맺혀지는,
영감되는 직관 의 온전함 가운데 하나님 을 기뻐했고 , 이러한 피동적 인 기쁨 의 영상, 앎 은 구
체적 인 의지 의 ‘자유성’ 을 가지고 의도적 으로 영혼에서 찬양하는 ‘신앙 의지’로 몸 밖
으로 발산 되는 것을 알수 있다.
구원 속죄 란 분명 전적인 하나님 의 시은(施恩) 사역 이나 각자 개인 의 의지 의 ‘자유성’ 으
로 기쁨을 맞게 하실 뿐 아니라 구속 적용 하심을 촉발(促發) 케 하시어 모든 것은 다 하나님 이
이루셔도 주 예수 그리스도 의 구속(救贖) 의 공로 와 그 공력 을 믿음으로 취 하도록 하시는 좋
으신 하나님 이시다.
이처럼 영 과 혼 은 같은 선 상에서 놓고 볼수 없는 것이다.(사람 에게 영 과 혼 의 관계 를 강
과 바다 는 본질상 하나 임 과 같이 영 과 혼 은 하나 라는 유출설 적 인 표현 은 합당치 않다.)
작용 면에서 는 앞에서 정의 한 것을 포용 하지만 선후 를 논할수 있는 성격 의 것이기 때문이
다.
결코 영 이 혼 과 동질(Homoousios)이 될수 없는것 은 명확하다. 예를 들면 성령 이 영 에 임
재하여 주도하듯 혼 은 몸 을 주도하여 영 에 머무는 성령 (내주 하시는 성령) 의 소욕을 따르던
지 아니면 무시 하던지 하는 ‘주체’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성에서 영 과 혼 이 피조된 면
에서 는 동일한 것 같다.
전술 한것 과 같이 실재(ουσια) 란 ‘공간 을 점유하는 물질 로 구성된 물체성’이라 면 ,
자의 로 변할 수 없는 실재 와 자의 로 변할수 있는 실재 가 이질(homoiousios)됨 을 쉽게 알수
있다. 곧 영 과 혼 은 본질에서 도 다르다.
우리가 쉽게 오해 하는 것은 영 도 우리 신앙 의지 즉 혼 과 같이 주체 인 것으로 착각하기 때
문이다.(창 26:35, 열상 21:5, 민 9:14, 학 1:14) 사람 에게 는 보이지 않는 실체 가운데 영 인
주체 와 혼 인 주체 가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영(πνευμα) 인 주격(여기서 주격 이란 수용적 주격, 곧 상징적 옥좌 라 할수 있다.
성도 의 머리 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이다.) 과 혼(ψυχη) 인 주체 가 있을 뿐이
다.
영 과 혼 이 동질 이 아니라 는 것은 영 도 주체 이고 혼 도 주체 가 될수 없다는 의미 이다( 고
전 15:45 은 산 영 ,ψυχην ζωσαν - 70십인 역 창2:7 과 표기 같음, 과 살리는 영,πνε
υμα ζωοπιουν 으로 매우 대조적 이면서 도 중요한 근거 를 성경은 말하고 있다.) 상호
교대적 사용 이란 두 주체 가 있음 을 시인하는 오류 가 되는 것이다.
A. 치우쳤던 지난날 의 견해
수십 세기 에 걸쳐 성경 주석 학자 , 혹은 교의 신학자 간에 있어서 이분 .삼분 두 가지 로 양분
된 듯한 경향을 지니고 있는데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이분 했다 고 ‘다 옳고’, 삼분 했다
하여서 ‘다 그르다.’ 할수 없으니 이분 한다고 신 플라톤 주의 적, 영지 주의 사상 이 용납될
수 없고 삼분 법 이라 해서 아폴리 나리우스 의 이견 을 옹호 할 수 없는 문재 이다.(기독 교회
사 1. 손두환 저 . 총신 대학 출판부 1983년판 p. 103 참고)
정통 신학 의 견해 라 여겨진 학자들 간 에는 주 로 이분설 을 옹호 하였으니 어거스틴 이하 라
틴 교회에서 중세 후반 까지 의 일반적 견해 이다. 역사상 이분설 과 쌍벽을 이룬 삼분설 은 헬
라 철학 에 근거를 둠 또한 부인할 수 없다. (plato. Timaeus 30. νουν μεν εν ψυχ
ην δε εν σωματι...,
Stoicsnare Amton ⅲ 16. σωματοσ αισζησεισ, ψυχησ αρμαι, νομ δ
ογματα... )
또한 초대 교부 중 크리소트톰 이나 아다나시우스 데오도레 등 을 예외로 한 교부들 의 견해 들
(Irenaeus, Here Ⅴ6)과 초대 교부를 계승한 헬라 교부 및 알렉산드리아 교회 의 교부들(Clement
of Alexander, Orign, Gregory of Nyssa)에 의해 옹호되어 후대 에 독일 .영국 계 학자들 에 의해
계승된 것으로 알려진다.
B. 이분 으로 보는 견해
이는 신학에서 사람 은 그 의 실유 에 신체 와 혼 의 두 근본적 인 부분들 을 가진다 고 주장하
는 인생관에 적용된다. (Dichctomous theory 이분 으로 보는 견해 는 헨드릭슨 성경주석 데살로
니가 전서 5장 23절 의 주 를 통해서 보다 자세히 살필수 있거나 기초 교의 신학 하문호 저. 삼
영 서관 과 박형룡 저작 전집 3 을 통해 알수 있다.)
잘못된 경우 의 진술을 살펴 보면,
이분설 역시 철학 의 논제 로 되어 왔음을 알수 있는데 (기독교 교리사 루이스 벌콥 저 신복윤
역 p.144-145) 플라톤 의 경우 에 있어서 “ 신체 는 죽은 물질 이었으나 혼 은 천계 에 순수한
형식 혹은 관념 으로 존재 하다가 사람 의 신체 에 화신 되었다. 그러므로 혼 은 창조 되지 아니
하였고 불사적 이어서 신격 의 한 부분 이었다.” “ 신체 는 혼 의 감옥 이니 혼 이 신체 에
갇혀 있기를 굴(otster)이 그 껍데기 에 폐쇄되어 있듯이 한다. 죽을 때 에 혼 은 몸을 떠나 천계
로 올라 가거나 다른 어떤 몸으로 재 화신된다” 는 것이다. 아리스토틀 은 플라톤 에 적응하
되 혼 을 동물적 국면 과 이성적 인 국면으로 나누었고 이 견해가 토마스 아퀴나스 를 통하여 ‘
로마교’ 교리 로 발전 되었으니 그는 가르치기를 혼 은 하늘에서 창조되어 형성되는 신체 에
배치 되었는데 어머니 뱃속에 ‘되 살아날’ 때에 그렇게 된다고 하였다.
데카르트 이후 에는 신체 와 혼 의 독립적 인 기원을 긍정하고 그것들 의 인생 인격에서 의 외
관적 통일 은 두 시계 추들 이 함께 흔들림 같이 잠시 상합하는 상호 관계 에 의한 것 이라고
추측 하였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 는 통상적 으로 앞서 제시한 견해를 기각하고 ‘사람 이 생령이 된지라
(창 2장7절)한 히브리 사람 의 사상 에 개진된 몸 과 혼 의 통일을 믿는다 고 주장한다.
* 주장 근거 는 *
성경에 있어 빈도 높은 인성 의 묘사 는 분명히 이분설 로 두 부분 으로 구성된 것으로 제시한
다. (욥 27:3, 32:8, 34:4) 또 사람 의 영 또는 혼 이 그 출처가 되는 하나님 의 영 과 한편으로
거처가 되는 몸 으로부터 구별됨 을 말하는 성구(민 16:22, 슥 12:1, 고전 2:11, 히 12:9) 와 사람
의 영 또는 혼 이 그 거처가 되는 몸 으로부터 구분 됨을 말해주고 있는 성구( 창 35:18, 왕상
17:21, 전 12:7, 약 2:26)들 과 영 과 혼 이라는 용어 의 교대적 사용을 보며( 창 41:8, 시 42:6, 요
12:27, 13:31, 마 20:28, 27:50) 또 전인을 함께 구성하는 요소 로서 의 몸 과 영 또는 혼을 말하는
성구에서 (마 10:28, 고전 5:3, 요 3서 1:2) 와 혼 이 동물 과 하나님 에게도 용어적 으로 같은 단
어 가 사용된 점 (전 3:21, 민 16:22, 사 42:1, 렘 9:9 )을 들수있다.
* 주장 근거 에 대한 변론 또는 유의할 점 은 *
혼 은 구약 일반적 의미 로는 생명 (출 21:23, 4:19, 왕상 19:2, 욥 2:6) 이다. 하지만 혼을 사람 의
구조상 하나 의 보이지 않는 깊은 기관으로 생각 했는데(시 69:1) 살아있는 생명체(생령)를 의미
하는 것과 인성 요소 로서 의 혼 은 차이가 있음을 유념 해야한다.( 창 2:7, 살전 5:23 비교)
또한 혼 을 모든 지 , 정, 의 의 좌소 로 곧, 전 인격 으로 보기도 하며 마음으로 , 뜻으로 욕
심 으로(민 21:4, 신 16:16, 창 23:8,9, 왕하 9:15, 시 105:22, 신 21:14 ) 번역 되었는데 이러한 혼
의 욕구 가 하나님 의 뜻 에 어긋나게 될 때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 했으며( 겔 18:4) 이 죽음에
서 사는 길 (레 17:11, 히 9:11-14) 과 소생하는 힘( 시 19:7 ) 을 밝혔는데 이때 의 죽음이란 본
질에 있어서 표기 로서 의 ‘하나님 의 영’의 떠남을 의미하지 육신 과 혼 의 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더욱이 혼 은 의식하고 감득(感得) 하는 주체 로서 의 사람 자체를 지칭키도 하는데
(창 14:21, 46:18, 렘 43:6, 겔 33:6, 욥 30:25) 우리가 주의할 것은 사람 의 영 은 사람 자체를 대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의 영’의 임재 처소 로서 의 구성 형식상 존재하는 실체 임을 잊어서
는 안된다.(G.F Oehler는 사람 은 영 을 부여받은 존재 이나 사람 자체 가 영 은 아니요 혼 이라
하였다. Theology of the O.T p.150 . J.P Pane은 ‘사람 은 영을 갖고 있으나 그 사람 자체 는
혼 이다. 사람 은 그의 영 으로서 사고하나 그 사고(思考)자 는 혼 이다.’ 곧 전가된 자유 의지
의 능동자 는 혼 이라 하였다. Theology of the O.T p.225)
성경에서 는 영(πνευμα)을 좀더 근본적 인 지.정.의 의 좌소 로 보기도 한다.(창 26:35, 왕상
21:5, 민 5:14, 학 1:14, 역하 36:22, 겔 11:5, 18:31, 20:32) 이것이 당연함 은 하나님 의 뜻을 비춰
주는 구별된 실재 이기 때문이다. ‘영 의 작용 은 사람 의 능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도록 강한
것’이기에 이를(루하) 다스림 은(어떤 경우에는 영, 마음, 바람 등으로 루하 가 표기 된 것을 먼
저 유념 해야겠다.)견고한 성을 빼았는 것 보다 낫다고 증거한다.(잠 16:32)(구약 신학 논고 기독
교 문서 선교회 김희보 저 1975.10 초판발행 p.57) 사실상 사람 은 자력 만으로 자신 의 영(루
하, 프뉴마)의 상태를 회복할 수 없으나 , 사람이 자기 의 영 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사망 에 이
르게 되는데 (겔 18:31, 요 3:35, 사 57:15, 시 34:1) 이는 또한 사람 의 더러워 지고 상한 영(더러
워 지고 상한 것과 지배 에 의해 범죄함 은 별개 의 것 임에 유의해야 한다.) 이라도 (시 51:17,
57:15, 34:19)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 임을 알려준다.(시 34:18) 타락 이후 처한 영(루하πνευ
μα) 의 상태에서, 사람이 구속(救贖)될수 있는 것은 새 마음 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며 (겔
11:19,36:26, 레26:41, 신10:16,30:6, 렘4:4, 9:25, 겔 44:7-9) 새 마음을 받아 중생(重生)한 자는 더욱
믿음으로 방편삼아 마음(καρδια)에 ‘신앙 의지(혼,ψυχη)’를 중생한 ‘신앙 양심(영π
νευμα)’을 쫓아 적용하는 과정으로 성화(聖化)에 이른다.(시 51:10, 고전 15:45)
성경 에서는 사람 의 성질을 통일체(unity)로 보고 이원체(duality)로 두 상이한 요소들 이 평행
선 으로 움직이고 그것이 연합하여 단일 유기체 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지않고 , 복합적 성질을
인정 하지만 사람 안에 이중 주체를 결과 하는 것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사람의 행동마다 그의
전체 의 행동이니 혼 이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범죄하며 , 몸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는다 고 본다. 헌데 이분설 이라 해서 억지로 ‘영 과 혼 은 두 말을 교대적 으로 사용 하였으
니 두 말은 동일한 실체 의 두 이름 뿐이다.’정의함( 기초 교의 신학 Ⅲ. 하문호 저. 삼영서관 .
p140 )은 옳지 못한 것이다. 영 과 혼을 구별하는 푸뉴마(πνευμα) 와 푸수케(ψυχη)는
사용이 분명 구별되어 있으므로 그것들을 서로 교환되어 사용되어 질 수 없다(Cremer p.
504-505. Theological Lexican of N.T.C ) 이분설 자 의 말대로 라면 교환하여 두 구절 의 뜻이
같아야 하나 마10장28절, 고전5장5절에서 소마(몸σωμα) 와 삭스(육σαρκοσ)는 동일한
의미가 아니며 될수없다.
* 바른 이분설
1. 영 과 혼 을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 과 구별 대상 으로서 육 을 놓아 구분한다
면 이는 이분설 로 옳다 여길수 있겠다.
육 이란 혼 과 몸 을 함께한 지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범죄한 혼 과 몸을 함께 지칭해서 육 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구약에서 는 이런 구분법 을 많이 사용한 듯 싶다.(민 16:22, 창 6:3) 범
죄 후에 떠난 것은 ‘하나님 의 신’(루하) 이셨으며 ‘사람 의 영’이 범죄 했다가 아니라 사람
이 범죄 했다고 했으며 사람 은 기계가 아니고 인격 의 주체 인 혼 이 존재하되 살아있는 혼 (생
령 네페쉬 하이) 으로서 이며, 혼 이 살기 위해서 는 ‘하나님 의 신’이 임재해야 하며 이는 영
에 이루어 지는 것이다.
2. 또 한가지 는 영(πνευμα)이나 혼(ψυχη)이 무형 의 실존(實存) 이라는 면 에서는 하
나요, 몸(σωμα)이 유형 의 실존(實存)에서 하나이나 이렇게 두 구분은 할수 있을 것으로 여겨
진다. 무형 과 유형 이라는 면의 이분, 즉 영 과 육(고전 7:1), 또는 영 과 혼 이라는 무형 의
실존 과 몸 이라는 유형 의 실존 ( 현재 한글 개역 성경. 대한 성서 공회 에 있어서 는 영, 혼, 영
혼 등을 좀더 바로 표기 해야할 필요성 을 남긴다. 또한 성령 과 인성적 인 영 의 표기 에 있어
서도 좀더 세심 하여야 겠다. * 로스 역 셩교 젼서 의 경우 령, 마암, 신체(살전 5장23절)로 역되
어 비교적 바른 것으로 된듯하나 마암에 있어서 혼(ψυχη) 와 마음(καρδια) 에 대한 구
별을 필요로 한다. 무형 의 실존 인 마음을 ‘카르디아’라 한다면, 그 안에 흔히 ‘푸수케’라는
마음이 있는것 으로 사려된다.
참고로 고전 5장5절 의 몸(το σωμα) 은 죽여도 혼(η ψυχην) 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육신(σαρκοσ) 은 멸하고 영(το πνευμα)은 ...에서 몸 은 구원하다 .보호하다. 완전
하게 만들다 의 뜻을 지닌 단어에서 유래한 것 으로서 건강한 총체 로서 의 신체를 지칭하며 ,
육체,육(σαρξ)은 엄격하게 는 ‘동물 의 고기’ 영혼 과 관계 되는 것으로서 다 사람 의 외적
상징 으로서 나 함축적 으로 인간성, 육체 나 도덕적 으로 연약성 을 지닌 사람을 지칭 하는데
사용된다.
C. 잘못된 삼분 의 주장
ㄱ. 피타고라스 와 아리스토틀 또한 그 후의 많은 헬라 로마 의 철학자 들 의 경우 이성적 인
영(rational spirit) 동물적 인 혼( animal soul) 신체 등 삼요소 로 구성된다 고 주장했다. (박형
룡 박사 저작전집 3. p. 50 한국 기독교 교육 연구원 발행 1981년 판)
ㄴ. 또한 그노시스 파는 주장 하기를 사람 안에 영(靈) 은 신적 본체 의 일부 이기에 범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ㄷ. 아폴리나리스 의 경우는 그리스도 는 인적 신체 와 혼(魂)만을 가지셨고 인적 영을 가지지
않으셨는데 로고스(λογοσ) 가 영(πνευμα)을 대신 하였다 는 이단적 사고를 제창 했는
데 , 아폴리 나리스 적으로 삼분을 함은 분명히 이단이다.(전인용서 p. 51 알게 모르게 삼분한
경우에 있어서 이 아폴리 나리스 의 사상이 비일비재 한 것으로 여겨진다. 욥 12:10 생물들 의
혼 과 인생들 의 영이 다 그 (여호와) 의 손에 있느니라. Ειμη εν χειρι αυτου
ψυχη παν των ζωντων,και πνευμα παντοσ ανθρωπου 참고)
ㄹ. 후대 의 반(半) 펠라기우스 파는 사람 안에 영 은 제외되고 몸 과 혼 만이 원죄 의 주체들
이라 가르쳤다.
ㅁ. 또 내세 멸절론 자들은 사람이 창조시 신적 영기(靈氣)의 불어넣음 을 받았다가 범죄로 인하
여 그것을 잃어 버렸는데 중생하여 그리스도 와 연합되면 그것을 회복하여 영생에 들어가고 그것
을 회복하지 못하면 실유 의 완전한 절멸(απολεσαι) 인 영사(永死)를 취한다 고 한다.
삼분설 은 19 세기 에 루스 , 올스하우젠, 베크, 델리취, 오벌린, 웨너, 화잇 허드 ( Ross,
Olshausen, Beek, Delitsch, Aubelen, Oehler, WhiteHeard ) 같은 독일 과 영국 신학자 중 부흥
되었다.
델리취 의 경우 영 의 유출을 혼 으로 보았다. 즉 혼 이 영 보다 실체( substance)로는 판이하되
(실체 는 본질적 본성 ‘Essential nature’요 본체 ‘υποστασισ’ 는 사물 의 형식에
대하여 그 실질. 예) 히 11:1, 눅 15:13 이요 본질 은 사물 의 현상 뒤에 의 실재‘element’
L.essentia Gr. ουσια _ as equivalent to substance(substantia) )본질 로는 그렇지 않음이
마치 하나님 의 말씀이 하나님 보다 판이하되 하나님 이심 과 같다 는 것이다. 이는 탄소 와 다
이아몬드 가 본질 에서는 탄소(carbon)이되 구성 형식 인 실체에서 는 다르다 는 것이다. 또 베크
웨너 허드 (Beek, Oehler, Heard)는 신체 와 영 과 의 연합점 으로 생각했다.
D. 잘못된 견해 에 대한 바로 잡음
기본적 견해에서 삼분설 주장 근거를 ‘박형룡 박사 저작선집 3’에서 근거 했는데 만일 이대로
그들 이 주장함 이 사실 이라면 삼분설(Trichtomous Theory)은 바로 고쳐 잡아야 할 여지가 있
다.
먼저
ㄱ. 피타고라스 , 아리스토틀 의 주장 과 같은 것은 이같은 영향이 현재 알게 모르게 일부 의 바
르지 못한 삼분설 자 들에 의해 ‘ 영혼’‘각혼’‘몸’ 으로 표기하며 , 교회에 개념적 침투하
고 있음을 바로 알아야 겠다. 특히 고대 헬라에서 펼쳐짐 과 같이 , 헬레니즘 의 동방화 된 불교
에서 의 동화 (同化)로 말미암아 하나님 의 모양 과 형상으로 지음받은(창 1:26) 영광 을 썩어질
사람 과 금수 와 버러지 형상으로 우상화 한 경우(롬 1:23) 로서 혼란을 초래케 한 잔재들 인 것
이다.
ㄴ. 아폴리나리스 의 경우 는 성경 말씀을 파기(破棄)하는 것으로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의 ‘
예수 께서 신 포도주 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
가시니라 ’ 는 말씀에서 한글 성경 번역 은 영혼(πνευμα는 ψυχη 와 같을수 없음)이라
했으나 헬라어 성경 본 에서는 영(πνευμα)이 떠나시다. 라는 표현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다.
οτη ουν ελαβεν το οξοσ ο Ιησουσ ειπεν, τετελεστα
ι. και κλινοσ την κεφαλην παρεδακεν το πνευμα,
(Novum Testcomentum Graece Nestle-Aland 1979. 초판 DEUTSCHE BIBLGESELLSCHAFT
STUTTGART ISBN 3438051001) 아폴리나리스 는 영지주의 의 영향에 의하여 로고스(λογ
οσ) 란 개념을 채용 했을 것으로 여겨지나 , 사도 요한 의 말씀(λογοσ)의 개념 과는 다른
것을 알수 있게된다.( 요한복음 일장 을 헬라어 역본 문을 통해 참조 要.)
ㄷ. 반 펠라기안 주의자(칼빈주의 5대 교리 p. 100- 103 참조 에드윈 팔머 지음 . 박일민 옮
김. 성광 출판사 1982.5 초판 )의 경우 ‘ 사람 안에 영 은 제외되고 몸 과 혼 만이 원죄 의 주
체들’ 이라 가르쳤다 는 데 이는 재고해야 할 여지가 있음은 당연하다. 요일 4장 1절 로 3절
말씀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 마다 하나님 께 속한 것이 아니니 곧, 적 그리스도 의 영
이니라’ 는 말씀에 배치될 뿐 아니라 영 에 대한 주격성 을 부인하는 것이요 , 혼 의 ‘자유성
’ 을 전거됨 없는 창조주 의 것 과 동등시 하려는 우상화 가 되기도 한다. 혼 은 분명 전인 의
주체 로서 ‘자유성’이 보장되나 이는 주격인 영 을 통한 하나님 의 신(αγιον πνευμ
α) 의 ‘자유성’ 을 전가시켜 주심 때문 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 반 펠라기안 주의’ 주장 역시 불 완전한 것임 을 핑계 할 수 없다. 보통 원죄 라 불리는 것
은 전인(全人) 이 범죄 한 것이지 인성 구성 요소 의 세요소 라 여기는 중에서 의 두 요소 만이
했다면 바른 것이 될수 없다. 분명 인류 의 시조 아담이 범죄시 직전 까지는 ‘사람 의 수동 처
소’ 이며 주격 인 영 에 하나님 의 신 이 함께 한 것을 창세기 6장 3절 은 보충해 주고있다. 이
에 대해서 는 뒤에 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일단 중생된 물 과 성령 으로 거듭난 자 의 경우에
서 자범죄 를 논하는 경우라면 이는 고려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중생 은 사람 이 잘나서 ,
능력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 죽어 마땅한 상태에서 구원하여 주시어 ‘그리스도 의 영’이
임재 하시어 떠나지 아니 하시고 계시는 상태 요 , ‘그리스도 의 영’이 임재 하시는 ‘ 인생
의 영’은 처소적 기능 과 주격 기능이 “전능자 의 주권” 에 의해 회복, 보존된 상태 인 “토
대” 가 견고한 상태가 아닌가 !(고전 3:10, 11)
자범죄 의 경우에 있어서 는 원죄성 의 습성 과 습관 이 배어있는 육(σαρξ)이 영(πνευ
μα) 의 주격성 을 무시하고 , 육 의 (삭스, 바살 )소욕에 따라 (롬 8: 13), 사람 의 주체 인 혼
(ψυχη) 과 고기 덩어리 몸(σωμα)이 따른 것 이라면 가능한 표현 일 것이기 때문이다. (구
약 제사 규례에서 속죄제 와 속건제 의 규례를 살펴보면 유용할 듯 싶다. αμαρτιασ & π
λημμελειασ. 구약 신학 논고. 김희보 저. 기독교 문서 선교회 . 1975 년 초판 . p.
100-185 참조, 기독교 신학 개론. 루이스 벌콥 저 . 신복윤 역. 은성 문화사. 1980년 판 p.
125-138 참조 )
이는 종교 의 최고 수행 이 혼 (η ψυχη) 에 돌려진 이유를 밝히기 도 한다. 보유된 자유 의
지 능력(free will agence )의 순 불 순종 에 관계 하기에 이다. 롬 8장 말씀에서 거듭난 (γεν
νημενον) 자 에게 있어서 사람 의 영 은 살았으나 아직(법적 인 문제 가 아님) 몸(σωμ
α) 은 살아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기에 날마다 혼 의 범주 인 자의(自意) 로 옛 사람 의 성품
과 습관을 쳐 복종시켜 성령 의 소욕을 쫓음으로 죽을 몸 도 살려야 할 것을 알려준다.(롬 8:13)
ㄹ. 내세 멸절론 자들 의 경우는 그들 의 주장 근거 가 나름대로 있겠으나 옳지 못함은 신적 영
기(靈氣) 의 회복이란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 받음 이 창세 전 임(엡 1:3,4) 에 비춰볼때 불
온전한 주장 인 것을 알수있다. 신자 의 구원 은 자신 으로 부터가 아닌 은혜 일뿐 더러 , 한
번 받으면 영원한 것이지 도로 물리는 법 은 없기 때문이다. (돌트 신경 제 11장. 개혁주의 신앙
고백집 , 김의환 편역 . 생명 의 말씀사 刊. 1984. p. 266) 혹자 는 징계를 받아 사단 에게 내어 주
겠다 했는데 (고전 5:4,5 ) “ 주 예수 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 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
의 능력으로 이런자 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 은 멸 하고 영 은 주 예수 의 날에 구
원 얻게하려 함이라.”
παραδουναι τον τοιουτον τω σατανα εισ ολεθρ
ον
to deliver such a one to satan for destruction
τησ σαρκοσ , ινα το πνευμα σωθη εν τη ημερα
το
of the flesh that the spirit may be saved in the day of
κυριυ.
the Lord . 고전 5장5절 과 고후 7장1절 을 상치시켜 보면 여기서 육(flesh, σαρκοσ)
이란
단순히 신체 (body, σωμα) 를 말함 이 아님을 알수 있다. 육 은 음행함 으로 멸하게 내버려
둔다 하였으니 음행 이란 단순히 육체 의 부정한 관계 만 이 아닌 사람 의 의지 곧, 영혼 의 작
용이 포함된 것 임을 예수님 말씀( 마 5장28절 )을 통해서 알수있다. 여기서 내어준 자라 해도
구원 은 이루는 것을 본다.
하나님 의 무조건 선택, 불가항력 적 은혜, 제한적 속죄 가운데에서 존재 한다 는 것 은 전적 부
패에서 의 건져짐 을 보증하는 것이다. 전적 부패 되었던 것이 은혜 로 구원받은 사실을 알아
살지않고 육 의 소욕을 쫓아 옛 성품 과 습관을 따라 사는 자 의 형편 을 고전 5장5절 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속 적용에 있어서 은혜를 은혜 로 여기지 않고 살아 가므로 즉, 거듭난 영 의 주
격 성 을 무시함 으로 서 , 순종 에 따른 은혜 받음 의 대, 소 로 인한 영원한 상급에 대한 소멸
을 말 한다면 어느 정도 취할 분야 곧, ‘내세 멸절론’이라면 이는 잘못이나 ‘ 내세 상급 멸절
론 ’이라면 참고할 가치를 지닐 것이다.
이 세상 의 종말 의 심판 에 있어서 심판주 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께서 오실 때 빚어지는 ,
이미 선고 가 난 심판 의 결과를 집행 하는 것으로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신적 부름
과 요구 에 대한 사람 의 태도 와 성격 에 따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심판 의 최종적 구현 이기
도 하다.’ (W.F. Howard, "John" IB Ⅷ, 444. )
육 이 멸 해지거나 멸해지지 않는다 는 것은 중생한(γεννηενον) 영 의 주격을 쫓음
의 여부 에 달려 있음을 부인할 길 이 없다. 육 은 혼(ψυχη) 과 몸(σωυα)을 함께 말 한
다 는 것을 살펴본 일 이 있다. 은혜 가운데 서도 가장 큰 논점 을 일으키는 것은 신앙 의지 인
혼 의 ‘자유성’ 이라 할수 있다. 이것 을 허락 받았기에 “ 은혜 가운데 서 의 상급 ”을 운운
할수 있는 것( 신학지남. 총신 대학 출판부 215호 p 18 ~ 42. 209 호 p 25 ~ 52 권성수. 참고 요 )
으로 여긴다.
만일 ‘자유성’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상급’이란 주신 대속 의 공로 로 말미암은 구속 적
용 의 기회를 믿음 곧, 신뢰 와 순종 으로 선용한 결과 맺어진 열매 로 ‘자유성’ 으로 영광 돌
리는 ‘기능’ 에 관계 된 것이 아닌가 여긴다. 꼭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쉬운 예 로 .... .
* 영( 루하, ΤΟ ΠΝΕΥΜΑ) 의 개념 의 발전
단지 영 의 발전 은 구약 과 신약 의 중간 시대 의 저술들 가운데서 퓨뉴마 로 끝 맺었다 는
사실 이다.
혼 이 신약에서 는 푸수케 로 명명 되어지고 있는데 이는 사람 내에서 존재하는 단독 의 실재
로는 결코 사용치 않으며 , 또한 이는 유대 배경을 반대하여 이해 되어졌던 ‘생명’ 으로 로마
서 11장 3절에서 사도 바울 은 엘리야 선지자 가 ‘내 목숨 도 찾나이다.’ 라고 불평(?) 하고 있
는 구약 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흔히 푸수케(ψυχη) 는 단지 육체적 인 생명을 넘어서서
사고하고 활동하며 지각하는 자로서 의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푸수케 와 퓨뉴마(πνευμα)
는 완전한 동격으로 교환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관점을 지닌 사람 의 내적 생명을 묘
사한다. 퓨뉴마(το πνευμα) 는 하나님 과 다른 사람 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관
찰 되어지는 사람 의 내적 자아 영역 이라면, 푸수케 (η ψυχη) 는 육체 (η σαρξ) 와
육신(το σωμα) 의 관점에서 관찰 되어진 사람 의 살아있는 존재, 인격 생명력 으로서 의
사람 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도 바울 은 혼(η ψυχη) 의 선재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듯 하다. 푸수케
(η ψυχη)는 특별하고 노력하고 의지하고 목적하는 자아 로서 의 사람 내에(inner) 원래부터
부여 되어있는 산 존재 의 사람 적 상태 이다.
1. 사도 바울 은 사람 을 혼 과 육체 로 나눔 에 있어 헬레니즘 적 인 개념 은 결코 사용치
않는다. 그런데 신약 의 다른 문서 들 은 바울 과 달리 혼(η ψυχη) 을 사람 에게 있어서
몸(το σωμα) 을 감시하며 , 다스리고 , 구원이 가능한 실체 로 간주하고 있다. 주 예수님
께서 는 육체(το σωμα) 의 죽음 과 혼 의 파멸을 비교 하셨다.(마 10:28) 또한 영혼 의 구
원(히 10:39)은 단순히 육체적 인 생명 이상 의 그 무엇 을 의미케 한다.( 약 1:21, 벧전 1:9)
2. 사도 요한 은 제단 아래 순교자 들 의 혼(η ψυχη)들 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며
(계 6장9절 죽임을 당한 영혼들 이 제단 아래 있어, τασ ψυχασ των εσφαγμ
ενων ) 그리스도 께서 심판주 로서 강림 시 에 그 순교자 들 의 혼들(ψυχασ) 이 부활
체 를 입을 것이다. 혼(η ψυχη)은 사람 의 자아 로 여겨지며 육체 (το σωμα)와 의
분리 후 에도 계속 존재함 을 나타낸다. 바울 과 구약 성경 사이에는 한가지 차이점 이 있다. 구
약 성경 과 신약 중간 시대 의 문헌에서, 그리고 유대 율법 학자 들이 사람 을 지칭할 때 사용하
고 있는 용어 는 네페쉬, 푸수케(ψυχη) 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 은 영 을 사용하여 영 의
개념 은 극적 인 진전을 반면 에 혼 은 극적 인 퇴보를 보이니 성령(αγιον πνευμα
του θεου) 에 대한 지식이 사도 바울 의 인류학 의 기초를 놓게한 바로 그 체험 에 기인
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영(το πνευμα)이 주도적 역할 을 전개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3. 사도 바울 에게 있어서 구약 의 영 과 같은 퓨뉴마(το πνευμα)를 가장 중요하게
사용할 때 는 ‘하나님 의 영’에 관하여(롬 8:14, 고전 2:11, 3:16, 고후 3:3) 성령 에 관하여 (살
전 4:8, 엡 1:13, 4:30) 그리스도 의 영 에 관하여 (롬 8:9, 갈 4: 6, 빌 1:19 ) 이야기 한다.
사도 바울 이 구원 역사 가운데 그리스도 와 영(πνευμα)을 동일시 하고 있다 는 사실을 이
해하고 있다. ( 고전 15:45 마지막 아담 은 살려주는 영 ζωοποιουν πνευμα 이 되
었다. 그 영 의 활동 범위는 사람 들 가운데 있으며 그 영 은 ‘하나님 의 영’이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 의 영’ 과 함께 활동한다. 이것은 구약에는 나타나지 않는 용법 이다. )그리스도 의
영 은 하나님 을 섬기는 자 의 영 과 함께 하신다. (롬 1:9) 영 으로서 의 사람 은 주 와 연합하
는 기쁨을 누릴수 있다. (고전 6:17)
기도(고전 14:14) 와 예언(고전 14:32)은 사람 의 영을 운용(exercises)하는 것이다. 하나님 에 의
하여 사람 에게 내려지는 은혜는 영 의 범위 안에 주어진다. (갈 6:18) 또한 사람 의 새롭게 됨
은 심령 가운데서 체험 되어진다.(엡 4:23) 또한 사람 에게 부여된 거룩한 생명은 몸 은 즉고 있
을 찌라도 영 의 영역 안에서 살게된다.( 롬 8:10) 또한 사람 의 새롭게 됨 은 심령(το πν
ευμα) 가운데서 체험 되어진다. (엡 4: 23) 부여된 거룩한 생명 은 몸 은 죽고 있을찌라도
영 의 영역 안에서 살게된다.(롬 8:10) 하나님 께서는 성령(αγιον πνευμα του
θεου)을 통하여 사람 에게 하나님 의 자녀 임을 증거해 주신다. (롬 8: 18)
4. 사도 바울 은 그리스도 예수 와 같이 하나님 의 영 이시니 (요 4: 24) 라고 명백히 주장
하지는 않으나 그 도 그렇게 말할수 있다 는 것을 거의 의심할 수 없다. 하나님 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하나님 과 함께 교제하며 하나님 의 축복을 받아 누릴수 있는 것은 사람 에게도 영 이
임재하기 때문이다. 좀더 중요한 영(το πνευμα)의 의미 는 외적 차원 과 비교하여 사
람 의 내적 차원으로서 영(το πνευμα) 이 그 의 몸(το σωμα)을 감시케 되는 상황
가운데서 이해되어 진다. 몸 과 혼 을 거룩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일은 절대적 으로 필요한 것이
다.( 고전 7: 34, 고후 7: 1)
5. 사람 의 내적 측면 과 외적 측면 의 명백한 차이 는 롬 8장 10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리스도 의 영’ 이 사람 안에 거하면 그 몸 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을 찌라도 그 의 영 은 의를 인
하여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이 세대에서 성령 은 단지 사람 의 영 에만 생명을 부여해 줌에
불과해도 주님 ‘ 예수’ 재림 이후 에는 죽음을 면치 못하는 몸 에도 생명을 부여해 줄 것이
다. (롬 8: 11) 더불어 이 세대 와 재림 사이 에 있어 성령(αγιον πνευμα του
θεου)은 부활체 인 몸 의 기능을 마련토록 역사 하신다. 불트만 은 롬 8장 11절 인용절 에
서 드러나고 있는 난점을 인식하여 영(το πνευμα)을 단지 그 자아, 그 사람 만을 가리
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인 이 종속하게 될 자아 가 된 거룩한 영 도 함께 가리키고 있는 것
으로 해석함 으로 난점을 풀어가고 있다. (R.Bultmann Theology of the N.T p 208 )
죽을수 밖에 없는 몸 과 혼 의 대조 는 사람 의 영 과 하나님 의 영 사이 의 대조 가 아니라 사
람 의 육체 적인 부분 과 비 육체 적, 혹은 영적 부분 사이 의 대조 인 것이다. 전자는 죽어가고
죽을수 밖에 없는 것이다. 후 에는 후자 와 함께 삶 을 입게 되는 것이다.
내적 인 것 과 외적 인 것 의 차이는 영 과 몸 이 완전히 반대되는 한 가지 특성, 요소 를 가리
키고 있는 곳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영 으로 하나님 께 봉사(빌 3: 3)함 은 순전
히 육체적 으로만 드리는 봉사 와 정 반대 의 것이다. 영 안에서 의 할례는 표면적 인 육신 의
할례 와 는 정 반대 의 것이다. (롬 2: 28 이하) 방언을 논하는 가운데 사람 의 영 은 마음 과 도
구별 되어있다.(고전 14: 14) 즉 사람 의 영 이 하나님 의 영 과 교제를 즐길수 있는 영역, 마음
의 작용을 초월하는 영역, 이란 사람 의 인식 능력 에 모순되는 것 이 아니라 인식 능력을 초월
하는 ‘신비적 인 관계’ 안에서 하나님 과 의 직접적 인 교제를 즐길수 가 있다.
6. 불트만 은 고전 4장 14절 의 ‘ 나 의 영 ’은 하나님 께서 사람 에게 내려주신 ‘ 하나님
의 영 ’ 으로 이해를 시도하고 있어 사람 의 마음(human mind) 과 거룩한 영(divine spirit)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구절( 롬 1:9, 롬 8:16, 고전 16:18, 고후 2:13, 고후
7: 13, 빌 4: 13) 에 비춰보면 잘못된 것 임을 나타낸다.
불가피 고전 14장 14절 의 ‘ 나 의 영 ’ 은 기도 를 통하여 하나님 과 직접적 으로 교제를 나
눌수 있는 참된 내적 자아 라는 결론 에 도달할 수 밖에 없기에 불트만 의 그러한 견해 는 잘못
된 해석 으로 여겨진다.
7. 불트만 이 영(πνευμα) 에 대해 내린 결론 을 보면 영(πνευμα) 은 사람 의 참
된 내적 자아 이기에 영 은 자연적 으로 자아 를 인식하고 의지를 행사하는 자의식 이라 는 특유
한 표현으로 사람을 나타낼 때 사용되어 진다.
동일한 영 으로 행하는 것은(고후 12: 18) 동일한 태도 와 목적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
한 영 에 굳게 선다 는 것(빌 1: 27)은 동일한 시야 와 판단을 가진다는 것 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 뜻 의 방향 결정 이 공통 된다 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 이 영 의 휴식 이나 안정을 찾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고전 6: 18, 고후 2: 13, 7: 13)는 그가 내적 인 휴식 을 얻었다 는 것을
뜻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의 편안함 ( 고후 2: 13)과 - 내적 인 근심 걱정 에 강조, 육체 의 편
안함( 고후 7: 5) - 외적인 환란 도 포함, 이라는 대조를 유의해야 한다.
8. 모든 사람 이 다 영 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 의 영 (πνευμα του θ
εου)을 받은 덕분으로 그리스도 인 만이 특별히 소유하고 있는가 ...
고전 2장 11절에서 사람 의 사정을 사람 의 속 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에서 영 은 여기
서 자각(self-awareness), 자 의식 (self consciousness) 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울 은 비록 이러한
사실을 주장 하고 있지는 않으나 모든 사람 은 다 영 을 지니기에 논리적 으로 특수한 관계를 맺
을수 있다. 하나님 과 사람 이 관계를 맺을수 있는 것은 사람 이 영 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W.G. Kummel Man in the N.T 1963. p 44 , 큄멜 은 이 인용절 은 사람 이 하나님 과 특별히
가까운 위치에 서 있다 는 것 이 아니라 사람 은 영 이기 때문에 거룩한 영 을 받아 들일수 있으
며 그리하여 하나님 과 친밀한 산 교제를 맺을수 있게 된다 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고 주장함 )
하나님 역시 거룩한 영 이시기에 사람 의 영 은 ‘하나님 의 영’ 을 받아 들이는 기관(organ),
수단(vehicle) 이다.(bromiley 의 견해)
롬 8장 10절에서 사도 바울 은 너희 몸 은 죽은 즉, 죽을수 밖에 없고 , 죽어가고 있다 는 것으로
, 너희 영 들 은 의 로 인하여 산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룩한 영 은 사람 에게 생명 의 은혜
를 부여하며 이 생명 은 사람 의 영 수준에서 경험 되어지는 것 으로 나타난다.(W.Sanday . J.
Denny ; R.P Martin The New Bible Commentary 1970. p 103) 비록 바울 이 몸 의 사후 에
혼 이나 영 의 생존 에 대하여 결코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죽음 이란 스카시(W.D.
Stacy)가 제안하듯 (The Pauline View of Man p 126) 소멸 을 의미 하는 것 인지 아니면 사후
에 어느 정도 의 자아 의 생존을 바울이 믿고 있었는지 에 대한 의혹 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우리 는 일원론 적 견해 의 수정 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휘틀리 의 주장 에 동의해야 한
다.(D.E.H Whiteley the Theology of st. Paul 1964. p 38 , s. Laeuchli , Monism and Dualism
in the Pauline, Anthropology Biblical Re Search, 3 1958 p 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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