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송용조목사님에 대한 특별한 시각
송목사님의 요일5:16-18의 해석은 다른 책자보다 폭넓게 여러 견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양성원에서 강의를 하셨고, 또한 총공회의 주장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 수 있는 중심에 계셨던 관계로 일반 책자들이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이 본문을 대충 넘어 갈 수 없는 성구로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송목사님의 요일5:16-18 성구 해석
송목사님은 16, 17절의 사망에 이르는 죄를 "고의적인 죄를 계속 범하는 경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고의적인 죄를 계속 범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육신을 죽일 수 있고 하나님의 징계로 육신적 사망을 당할 수 있는 죄를 신자가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는 고전5:3-5 계모와 불륜의 죄, 고전11:30 성찬을 더럽힌 죄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목숨을 거두어 가시기로 결정하신 범죄자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본문을 해석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죄에 빠져 있는 형제들을 볼 때 누구를 위해서든지 기도해야 할 의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어 18절의 성구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는 해석에서는 중생된 그리스도인들이 전혀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범죄를 하는 일은 있어도 범죄에 안주하는 일은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 안에서 무한정 계속 지낼 수 없으며 그 근거로는 여기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본문의 동사가 요일3:9에서 처럼 현재 시제로 쓰였고, 헬라어에서 현재시제는 습관적이며 계속적인 행위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난 자마다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3.송목사님의 해석에 대한 반론
1)중생된 영은 범죄치 않으며, 중생된 사람의 마음은 죄를 짓는다는 백목사님의 주장
요일5:18의 본문은 백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총공회의 교리 입장에서 특별히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중생이란 마음이 아니고 영이며, 이 영은 완전 대속으로 중생되어 다시는 죄와 상관없는 존재이며 마음은 물질이며 몸과 함께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라고 단정하는 바, 가장 중요한 근거를 여기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죄를 짓지 않으며 죄 문제를 완전히 벗어버린 부분이 우리 안에는 있음을 말하고 특별히 롬8:1과 요일5:18 등에서 이런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죄를 벗어버린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확정하고 그 존재를 마음 안에 있는 영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즉, 본문은 영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중생된 사람의 마음과 몸으로 된 육에게 해당되는 성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신은 죄를 짓는 것이나 그 속에 있는 영은 완전 대속으로 중생이 되어 죄를 범할 수도 또 범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2)백목사님의 주장이 옳다면 반대 이론을 가진 분들은 요일5:18을 해석할 수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단순한 "난해절"의 시각으로 이 성구를 대했을 뿐이고, 이 성구 때문에 자신들이 생각지 않았던 교리를 찾아야 할 정도의 중심 성구라고는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송목사님은 이런 중요성을 가지고 이 본문을 살펴보았을 것이며, 그 역시 백목사님의 반대 입장에 있는 설명들 중에서 이 본문을 설명할 수 있는 입장을 찾지 못했다면 일반 교리들은 이 성구를 다시 살펴 기존의 교리 입장을 변경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송목사님은 이 본문 해석에서 다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는 요일5:18 말씀에 대하여 송목사님이 채택한 해석은 반복적이며 습관적으로 짓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이분설로는 이 성구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교리 입장이라는 것을 송목사님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을 부인하고 마음이 영이라고만 알고 있는 기존의 이분설로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죄를 짓지 않아야 되고, 그러나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 해석이란 어떻게 시도를 해도 결국 해석이 되지를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4.믿는 사람도 습관적으로 고의로 죄를 짓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분설의 입장에서는 결국 습관적으로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며 이 면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하는 이상의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명마저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전혀 수용될 수 없고 따라서 이분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1)"헬라어 동사의 현재 시제"가 반복적 습관적인 뜻을 포함하기 때문이라는 주장
헬라어 동사의 현재 시제는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포함하고 있는 동시에 일반적인 진리를 단순 서술하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헬라어 원어의 현재 시제가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행동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문법적 해석은 일차적 근거로 제시되어서는 안되며 다른 확실한 주장이 있을 때 그 간접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러나 헬라어 동사의 현재 시제가 반복과 습관적인 행동만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찌라도 역시 성경은 원어의 문법적 접근만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단어의 의미나 문법적 용례라는 언어적 속성은 성경의 원 의미를 그 언어적 의미 범위가 전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사용된 언어의 여러 가지 의미와 용례 중 성경 해당 본문에 사용된 것은 어느 것 하나인지 또는 어느 것 어느 것 두 개 인지 등을 문법책의 기준만으로는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해당되는 의미와 용례를 찾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성령의 조명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주가 되고 문법적 의미는 단순한 참고로 그쳐야 하는 것입니다.
2)신사참배 6년 교계 지도자들의 죄는 반복적이었고 습관적인 것이었습니다.
강제 때문에 원치 않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 끝까지 그 죄를 청산치 않고 대립과 투쟁을 계속하여 고신을 제거하였고 이후 이 문제가 원인이 되어 수없는 소송이 진행되었습니다. 대단히 고의적이었고 의도적이었으며 그 행습이 후임으로 인계가 되면서까지 진행이 되었고, 결국 고신측에서 반대측을 두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죄를 짓는 총회측을 중생되지 않은 가라지가 교회 안에 들어 온 경우라고까지 주장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세상 법정에 교회 내부 문제로 나가는 것이 고전6:1에 죄라고 인정을 하는 바, 그 송사를 장기간 같이 준비했고 수 많은 소송을 수 없이 반복하였던 고신 역시 해당되는 경우였습니다.
한국교회의 교단 분열, 교회 분열은 반복적이고 습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단이 출발되고 교회가 개척될 때마다 특별한 섭리를 강조하지만 수백개 교단으로 핵분열한 우리 교단들, 수없는 교회들이 거의 같은 과정을 통해 죄를 짓고 나가는 반복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계 언론, 교회 내의 여론, 어느 것 하나도 습관적이며 반복적이 아닌 것이 없어 교회가 썩을 대로 썩고 죽을 대로 죽었다는 탄식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3)교인이 보는 교역자, 교역자가 보는 교인, 그들의 반복적이며 습관적인 죄가 있습니다.
교인들이 지적하듯이 교역자의 죄는 상당기간 반복적이며 습관적인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역시 교역자들이 교인들, 특히 장로님들의 반복적이며 습관적인 죄를 지적하는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중생도 되지 않은 지옥갈 가라지라고만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1-20년씩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는 직장과 사업을 가진 교인들, 평생에 노름을 끊지 못한 교인들, 듣기도 속히 하고 말하기도 속히 하는 죄가 평생에 고쳐지지 않은 사람, 일일이 다 예를 들자면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