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17권
1 본문 눅18:1-17
제목 모든 것을 할 수 없고 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아
3 본문 눅18:9-14
제목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6 본문 눅18:1-8
제목 기도는 투쟁이다
9 본문 요11:17-44
제목 그리스도의 울음
14 본문 계3:7-13
제목 초자연의 지능 소유할자 누구뇨
20 본문 살전5:1-11
제목 성도는 자지 아니함
25 본문 마26:31-75
제목 자기를 부인하고 천력(天力)으로 살라
28 본문 마26:36-46
제목 예수님의 기도
====================================================
시일: 1956. 1. 21 새벽
본문: 눅18:1-17
제목: 할 수 없는 자아를 발견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기가 되라
이성이 없으면 계획이 없고 계획이 없으면 일관된 목적과 길이 없고 일관된 목적과 길이 없으면 마찰과 장해가 봉착되지 않는 것이다. 목적과 계획이 요동되는 자보다 없는 자에게는 마찰이 더욱 없고 목적과 계획이 요동치 않는 자보다 요동하는 자는 또 마찰이 적고 목적과 계획이 원대하고 견고할수록 마찰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땅위에 모든 인생관 중에는 기독자의 인생관이 가장 목적이 원대하며 계획이 일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위에 모든 인생관보다 기독교 인생관에게 마찰들이 가장 많이 봉착된다.
창세 이후로 오늘까지 기독교 인생관은 일관되어 있고 변동함이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박해의 종교라 하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만일 기독자에게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마찰을 봉착하여 스스로는 낙망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길이 아니라면 그는 참된 기독교가 아니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계획이 변하든지 시대를 따라 속화의 걸음을 걷는 외에 다른 이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관된 진리의 길을 걸으려 하면 반드시 여기에 비유된 과부와 같이 할 수 없는 과부인 자신의 입장을 발견할 것이다. 거기는 자연적으로 원한을 풀어 주옵소서 하는 기도가 필연적으로 있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눅18:7에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탄식을 하셨다. 이는 원한도 발견한 사람 도적일 뿐 아니라 도 원한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에게 부르짖는 사람은 심히 적을 것을 가리켜 말한다. 이것들이 없으면 믿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이렇게 일관된 걸음을 걷게 하시는 것은
1. 목적과 계획이 하나이니 이는 불가피의 일이요
2. 자기를 부인케 하시려 하는 것이요
3. 약속맺은 전능하신 이에게 부르짖어 밀접한 영교를 가지려 함이요
4.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아버지를 의지하고 바라보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확신하게 하여 피조물의 세력을 발 아래 두게 함이요
5. 자기의 비판을 부인하기까지 주님의 그 인도와 약속하심은 참되시며 행복된 것을 견고히 신앙하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관된 신앙을 걸어간 자만이 낙망과 소망을 가지게 되고 연약한 자아와 모든 것의 가능한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고난중에 평안과 허무 중에 진실함을 발견하여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1:18에 십자가의 도는 멸망할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고 구원 얻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안되게 하는 것이 되게 하고 의심하게 하는 것이 믿게 하고 울게 하던 것이 웃게 하고 약한 것이 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감추어 있던 비밀의 도이다. 오늘의 원한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믿음을 떠난 팔방미인과 같이 속화주의자같이 쉽다.
누구든지 신앙 걸음을 걸어가면서 양보하지 않는 자라야 어려움을 봉착하게 되고 여기서 부르짖은 자라야 하나님을 발견하고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타협주의와 양보주의는 아예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