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백영희조직신학 정리서
글의 순서
1.서문
2.연구방법론
------------------------------------------------------------------------------------------
서문
조직신학은 2천년 기독교사를 통해 정통교리로 거의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동일한 내용이 표현과 순서만 약간 변동되어 새로운 저서로 발간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바, 책을 냈다는 한 사람의 만족감에 비하여 같은 책의 중복 출간으로 혼동하는 교회의 손실은 너무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폐단이 되지 않도록 본서는 기존 정통의 교리들은 간단하게 요약 소개하겠으며 백영희목사님을 통해 우리 시대에 소개된 특별한 부분을 주로 집중하겠습니다.
간단하게라도 소개하는 정통교리들은 전체 연결과 윤곽 파악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동시에 여기서 인용하는 기존 정통교리들은 사실 결론 차원에서 요약하고 있는 것이 신앙에 더욱 유익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확정된 교리를 찬반 토론으로 재반복하는 것은 학자들의 장난거리는 될지 몰라도 그렇게 접근하고 소개하는 자체가 신앙의 손실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집중하게 될 백영희 조직신학은 그 실체는 이미 정통 교리의 연장선에서 정리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교리들이지만 아직 교회사와 세계교회의 범위에서는 세워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론의 시각을 늘 염두에 두고 소개함을 분명히 합니다.
==========================================================================
교리연구의 방법론
1.아브라함을 통하여 본 교리연구의 방향
사람이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알려주시는 대로 따라가면 영원히 끝없이 알아지게 된다. 세상에서는 배우는 연습을 하늘에서는 영원히 하나님을 알아가는 본업을 하게 된다.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을 통해 우리가 교리연구의 중요한 방향을 배울 수 있다.
①세상 끝날까지 연구할 것
하나님의 약속인 가나안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그 가나안을 주신다고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직접 약속이며 확언이었고 수차례 반복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마지막 임종 때까지 주지 않았다. 이렇게 명확하고 단정적인 말씀도 인간은 거꾸로 듣고 정반대로 알 수 있다. 임종 때에야 약속한 가나안은 안식의 땅이며 안식할 곳은 천국임을 알았고 그 동안 그곳에서 그는 자기 가나안을 다 마련했으며 자기 뿐 아니라 자기 자손들에게도 그들이 마련할 영원한 안식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믿음이라는 안식제조의 유일한 실상을 아브라함이 만들었고 자손에게 물려 주었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주셨고 또 그 자손에게도 가나안을 주셨다. 이 가나안은 천국을 마련할 수 있는 땅 위에 유일한 곳, 하나님께서 꼭 하나를 짚어서 우리에게 주시며 이곳에서만 살고 이곳을 떠나서는 안식이란 없다며 각자에게 주신 생애처이다. 곧 현실이니 아담에게 에덴이었으며 구약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이었으며 오늘 신약 우리에게 자기 현실이다. 오늘 우리가 자기 현실보다는 가나안을, 가나안보다는 에덴을 더 사모하겠으나 그것은 이해 부족에서 온 착각이다. 아브라함은 임종 때 깨달았다. 따라서 세상 끝날 주님이 주시는 호흡의 기회가 있을 때까지 우리는 자라가야 하되, 배우고 깨닫는 데에도 그리해야 하니 곧 교리 연구는 세상 끝날까지 할 일이다.
②믿음으로만 연구할 것
세상에서 세상을 연구하는 일은 더듬어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천국을 연구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볼 수도 없고 실험도 할 수 없으며 유추도 불가능하다. 사람이 사람을 연구하는 일은 세상지식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연구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이다. 그러나 교리연구는 사람이 하나님을 세상에서 천국을 거짓된 우리가 영원한 진리를 연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이 불가능하다. 흔히 철학으로 기초를 닦고 원어로 방편을 삼으며 신학학설들을 참고하면 연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론은 원어연구에서 멀어지게 하는 작용만 있지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떤 각도로 어떤 정도로도 없다고 단정을 한다.
교리연구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성경이 진리말씀인지 천국이 있는지를 위에 말한 신학의 방법론으로 알 수가 있을까? 남들이 그렇게 알더라는 상식은 가지게 하여도 자기에게 필요한 자기 지식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따릅니다 라는 마음의 인정 그리고 몸의 실행만으로 알게 되고 또 가지게 되는 세계이다.
③모순은 하나님중심에서 선을 그을 것
주신다는 가나안, 그 가나안은 분명히 아브라함이 밟고 살았던 팔레스타인 지방을 말했다. 좌우를 둘러보라 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곳을 주리라고 했다. 그런데 임종 때까지 주지 않았다. 손주 야곱 때까지도 불과 70여명으로 블레셋 족속이 살던 가나안 땅에서 그들은 한 모퉁이 나그네로 살았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분명한 모순이 있어 그 땅을 가나안으로 말했다면 하나님은 약속을 어긴 것이 되고, 천국을 가나안으로 말했다면 하나님이 약속을 잘못했다는 모순이 나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지막까지 주지 않자 자기에게 주실 다른 가나안을 찾기 시작했고 영원한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말씀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선입관이 엉뚱하게 가나안을 착각하고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교리 연구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람이 천국을 소경이 세밀하고 저 먼 것을 다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서툴음과 조잡함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라가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이고 믿음의 방편이 있어 오히려 쉽게 해결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인간선입견을 제거해 버리면 너무도 간단한 교리들을 인간이 들어서 이해 못할 난맥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2.지식에 그치면 화가 될 교리연구
모든 연구는 그 사람에게 지식을 더하게 된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힘으로 삼게 되는데 힘으로 사는 세상에서는 이 보다 더 보배가 없다고 생각하여 지식제일주의로 나아왔다. 우리는 약육강식의 힘만 통하는 세상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살 영원한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항상 먼저이며 이런 점에서 아는 것보다 무엇을 아는가, 많이 아는 것보다 바로 알았는가를 살피게 된다. 잘못 안 것의 피해, 모를 것을 알게 된 피해를 먼저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면에서 조심하는 것보다는 옳은 것 알기를 노력하고 그 옳은 것을 보다 많이 알도록 노력해서 참 지식으로 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교리연구에 있어 지식의 조심을 여기에서 한번 더 강조하는 것은 실은 옳은 지식 바른 지식에 대하여 또 하나 극히 조심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른 지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복된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바른 지식 진리 지식을 가지고 사용할 때 어디에 사용해야겠는가 라는 문제이다. 남은 살리고 자기는 죽이는 지식으로 사용하면 연구한 지식이 크게 유익하여 그 이상이 없는 보화요 진주이지만 그 지식이 자기를 고치는데 사용되지 않으면 즉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곳으로 사용된다.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은 없다. 따라서 교리연구가 연구 중 가장 값진 연구이지만 이 연구로 알게 된 것은 자신을 죽이고 또 고치고 또 살리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일, 즉 행함에 사용치 않을 지식이면 교만하여 하나님 자리에 앉고 비판 정죄함으로 심판주의 자리에 서고 멸망할 자신은 방치하게 된다.
교리가 신학교 안에만 거주하고 바른 지식이 신학서적 안에 투옥이 되어 있어 오늘의 교회가 교리와 다른 집단이 되고 성도가 독사의 새끼들이 되고 있다. 교리 연구에서 찾은 것을 책으로 출간할 일이며, 그 책 안에 있는 진리가 읽는 사람에게 자유롭게 출입을 해야 하고 그 신앙노선이 교회와 이 시대를 원래대로 돌려 놓아야 한다. 즉 교회와 목회자가 신앙노선에 옳은 곳을 찾아 들어와야 하며, 성도들이 배운 진리로 자신을 돌려 세워야 하고, 교리연구는 지식에서만 그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3.행함으로 깨닫는 교리연구의 방법
교리연구의 방법론에 대하여도 그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백영희를 통해 우리가 확실하게 자
신하는 것은 바로 행함으로 깨닫는 성경의 가르침을 취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리고 무지하여도 알려주신 지극히 작은 것 하나만 가지고라도 행하는 사람은 그다음 조금 더 큰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신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면 지극히 큰 인물과 지혜로운 이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갈 수 있다. 이렇게 행함으로 깨닫게 하시는 방법을 내신 것은,
첫째, 지식만을 쌓아 남을 정죄하는 불행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주시며 영원 주권
주이신 주님만 심판자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목적 대상인 우리는 하나님이 앉으시는 심판의
자리에 앉을 우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죄를 위한 지식만으로 쌓아갈 필요가 없다.
둘째,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교회의 가치는 생명에 있고 이 생명은 자라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은 완성품으로 만드셨으나 우리 속에 인격은 완성품이 아니라 기본형태만 만들어놓고 세상
에서 유기적인 관계로 하나님을 따라 자라가는 연습을 하게 했다. 이것이 천국으로 옮겨지면
하나님을 향해 영원히 자라가게 되는 것이니 완전자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영원하며 이것
이 우리의 영생이기 때문이다.
표시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