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6.교회의 홍보원칙 - 교회간판은
교회 간판 - 홍보문제에 대하여
1.교회 이름
1)서부교회로 예를 든다면
서부교회라는 이름이 원래 개척 당시였던 1949년 "서부 제일 교회"라는 이름으로 재직회에서 의논을 했었는데 "제일"이라는 이름은 너무 자기 자랑으로 보이는 면이 많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서부교회"로 짓게 되었습니다. "제일"의 교회가 되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가 "제일"이라고 이름에 올려놓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또 제일의 교회가 되었다고 해도 이름까지 "제일"로 올려 놓으면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자만할 위험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늘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의 자리를 갖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일 것입니다.
2)성경은 지역명
참고로 성경의 교회 이름은 지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지명으로 교회 이름을 짓고 있습니다. 창동교회는 거창의 동쪽, 남천교회는 제천의 남쪽, 사직동교회는 동 이름 등입니다.
2.공회의 교회 간판은?
1)공회 공통 간판 제작
1987년 12월 교역자회의에서 총공회 명칭 문제와 함께 간판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총공회 전체적으로 만들 간판을 의논했었는데 백목사님의 취지 설명은 그러했습니다. 밖이 큰 것보다 안이 큰 것이 낫고 안 보이는 땅 밑에 박힌 뿌리가 크고 밖에 나온 둥치가 작으면 바람에 든든하지만 땅 밑의 뿌리보다 밖에 나온 둥치가 크면 바람에 뿌리가 뽑히는 자연계시였습니다. 예를 들면서 경찰서나 연구소 기관같이 무게 있고 권위있는 기관일수록 간판이 손바닥만하게 작고 묵직하게 만드는데 우리 총공회도 그렇게 했으면 제안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표준이 넓이 11cm 높이 62cm 주물로 된 쇠 간판이었습니다. 이것은 공통적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붙이고 자세한 것은 교회별로 알아서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이렇게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2)대형글자 등장
1988년, 총공회 이름 때문에 이단 시비가 있다며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있게 당당히 간판 걸고 나설 교역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때 서성교회(최재현), 광안동교회(서영준), 신풍교회(천석배) 등 몇 분이 예배당 전면이 글자로 뒤덮일 정도로 "총공회" 글자를 달았던 적이 있습니다. 총공회 간판에 움츠려 드는 면 때문에 말씀하셨던 것이지 모든 면에서 간판 글자는 적게하는 것이 목사님의 지도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목사님의 말씀 한마디에 크다랗게 간판을 달 수 있었던 분들의 진실성 담대성은 오늘도 우리가 본받을 것이라 보며 이런 과정 없이 장성함에 이르는 경우는 없다는 면을 특별히 새깁니다.
3)교회 간판은 홍보가 아닌 장소표시라야
현 예배당의 표시를 좀더 적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여러 형태의 간판들이 있어 왔습니다. 결국 세상 간판의 발달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일선에 돌출 간판 네온싸인 간판 등의 형태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노선은 예배당임을 표시하는 정도에서 만족하려 합니다. 간판을 홍보와 위치 표시라는 점에서 본다면 교회간판은 표식이지 홍보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다는 것이 공회신앙의 흐름입니다. 그 기준을 딱히 정하기 어려운 대목이기 때문에 단정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튀김보다는 곰국으로 먹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은 건강에 대한 상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별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자기의 내적 연결에서 결판이 이니 난 것이며 그 내적 실체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필연입니다. 하나님과 내적 연결이 소홀한 상태에서 홍보와 광고로 이를 대체한다는 것은 신앙세계에서만큼은 금해져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주장들이 많습니다만 사람이 한번에 두 가지를 능숙하게 잘 하도록 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홍보와 외부 사람들이 보는 시선에 신경을 쓰는 것은 골방에 계신 하나님을 뵈옵는 것을 주로 해야 하는 신앙에 있어서는 절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공회의 신앙노선입니다. 현재 대구공회 서울공회쪽은 거의 돌출간판으로 나가는 추세이며 부산공회쪽은 하지 않는 교회가 더러 있습니다. 이 간판문제는 주보와도 바로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며 달력에 교역자 이름을 적어 넣거나 교인 대문에 교회 명패를 붙이는 것 등에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3.서부교회
1)교회의 간판
-서부교회는 5층 전면 상단부에 부착형 글자를 따로 붙였습니다. 워낙 대형 건물이었기 때문에 공회적으로 함께 마련했던 소형 주물간판 외에도 필요했었습니다. 그래도 예배당에 비하여 너무도 그 간판이 작았기 때문에 서부교회를 찾는 이들마다 교회 담을 끼고 돌면서도 건물을 찾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권위가 워낙 컸기 때문에 어떻게 하던지 상관이 없었었지요. 요는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또는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하게 외부를 유지하려는 목사님의 뜻이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불편 문제가 있었습니다. 찾지 못할 정도로 만들 것은 없으나 찾기 쉽도록 일부러 만들 것까지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목사님의 방향이었습니다.
2)차량의 표시
서부교회 차량에 아무 글자가 없어 이상하게 보인다고 하자 아주 작은 글씨로 "서교"라고 적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후 차량의 유괴 납치 사건이 잇따랐고 주일학교용 차량에 교회 표시가 없어 오해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비로소 "서부교회"이름을 차량에 붙이도록 허락을 했었습니다. 그때도 일반 교회가 커다랗게 적는 것과 달리 아주 작게 적어서 보는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즉, 교회 차량에 교회이름을 쓰느냐 마느냐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할 수 있으면 안 쓰는 것이고, 꼭 필요하다면 좀 적게 쓰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홍보를 하고 싶은 중심을 가진 사람이 최대한 홍보를 하기 위해 그 핑계를 찾는 것과, 내면 신앙에 힘쓰기 위해 최대한 숨고 싶은 사람이 주신 현실에서 더 이상 숨을 수 없어 표식을 하는 경우, 이런 보이지 않는 내적 중심에 따라 그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게 됩니다.
3)서부교회 분교, 개척교회의 간판
개척교회는 거의 전세로 시작했고 전세 건물에는 나무 간판으로 들어오는 입구, 창문에는 썬팅으로 교회 이름을 주로 새겼습니다. 혹시 지하실을 예배실로 사용할 때는 들어가는 입구 윗 부분을 간판으로 하던 곳이 있습니다.
4)교회를 될 수 있는 대로 숨기려고 하셨던 예
①예배당 모습:
부근 일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으나 예배당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고 세멘 가루로 예배당 외관을 마감했었습니다. 그후 구청에서 도시 미관 전체를 해한다고 강력한 항의가 있었고 엷은 미색으로 페인트 칠을 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색이 표준이었습니다.
②도로변 건물 매입을 회피:
일반적으로 대로변으로 교회가 나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앞에 있었던 건물은 주차와 진입 문제로 제일 마지막으로 사들였습니다. 마지막에 사들인 건물은 큰 대로변의 유리 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들여서 빨리 교회를 대로변에서 보이도록 해야한다는 일부의 의견에 대하여,
"교회가 밖에서 보이도록 띄이는 것은 진정 믿을 사람에게는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교회를 여러 가지 사욕으로 이용할 사람들에게 잘 띄어져 여러 가지 문제 많은 교인을 교회 안으로 데려오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진정 교회를 다닐 사람은 죄지은 심정으로 쭈그러져서 오게 되어 있는데 들어오는 입구가 대로변이 되고 넓고 화려하게 되어 있으면 첫걸음이 주저하게 된다. 오히려 이면도로에 약간 어둡게 가려 있는 듯한 예배당이라야 죄인들, 망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남에 눈에 띄이지 않게 들어오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교회 와서 믿고 구원받고 복 받아 빛이 될 좋은 재목들이다. 아무 교회나 들어가서 왕노릇하려고 마음먹은 잘 난 사람 스스로 똑똑한 사람들은 겉보기 화려한 대로변의 좋은 교회를 찾는다. 이들이 교회를 망칠 사람들이며 분란케 할 사람이 많은 법이니 이 면을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4.어느 개척교회의 간판 부설에 대한 문의를 하나 실례로 든다면
1)창문 썬팅
개척교회로서 다른 건물 2-3층에 전세들어 있는 경우이므로 창문에 썬팅으로 간판을 대신하는 것은 좋을 것입니다. 물론 건물 들어오는 출입구 쪽에 나무 입간판을 단다든지 또는 출입문 옆 고정유리문에 썬팅으로 예배당 표시를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건물 자체가 예배당 건물이 아니고 또 한 건물에 여러 사무실이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식표식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교인 전체가 합의하여 간판을 의논하는 경우
돌출간판과 네온싸인 등 여러 형태 여러 디자인을 두고 개척교인들의 의논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교인 전부의 의견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간판에 대한 원칙은 분명하지만 그 원칙대로 실행하는 현장은 다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해당되는 교회 해당되는 교인들이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대로 간판의 정확한 방법 형태 등을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서부교회도 일반교회와 전혀 다른 형태로 예배당 5층에 달아 놓았습니다. 물론 그 형태가 너무 왜소하여 잘 확인도 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큰 것보다는 약간 적은 것, 화려한 것보다는 약간 수수한 것, 드러나는 것보다는 약간 숨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은 하나의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는 범위에서 생각할지라도 지역마다 골목과 건물의 상태별로 조금씩은 다른 것이니 이런 원칙과 취지를 생각해서 온 교인들의 의사가 통일된다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그러나 의견들이 약간 나뉘어진다면 안하는 쪽이 좋을 듯 합니다.
찾아오는 분들에게 주위의 건물들이 특별한 곳이 없어 길 안내 자체가 불편한 정도라면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혹시 옆 건물에 있는 침례교회가 돌출간판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길 안내는 그 교회 옆이라면 되고, 옆 건물 교회끼리 돌출간판이란 지나가는 손님에게 장사하는 주인이 서로 손을 내밀고 있는 듯한 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옆 교회 간판을 보고 가까이 왔다가 양쪽 교회를 본다면 다시 결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풍에서 순천을 개척할 때 마주 붙어 지은 두 건물에 각각 순복음 교회와 함께 동시에 입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란히 간판을 세운다고 볼 때 좋아 보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붙이지를 않았었습니다. 창문에 썬팅으로만 예배당 표시를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배당 위치를 잡을 때 어떤 교회가 주변에 있던지 상관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붙일 식구, 하나님이 역사할 부분은 따로 따로 있기 때문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5.하나 더 참고로 덧붙인다면
1)교회의 종:
옛날 시골에 교회마다 종이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 진영에도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들이 많아져서 교회마다 종을 치게 되고 한 집에서 여러 곳의 교회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다음부터 우리 진영은 종을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고 차임벨 같은 경우는 더욱이 달지 않았었습니다. 다른 진영은 종소리, 차임벨 소리로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고 총공회 교회는 그런 와중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의 종소리 차임벨 소리가 사회 문제가 되었고 경찰의 단속과 과당 경쟁으로 인해 스스로 보기에도 민망하도록 되어 사그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2)사회적 인식:
지금 돌출간판이 도시 미관문제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도 많은 교회 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필요한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히 해야될 정도가 아니라면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 방향이 좋지 않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6.참고로 목사님께서 공사석에서 종종하시는 말씀 중 다음같은 비유를 하십니다.
교회의 위치와 예배당의 모습은?
개척교회의 성공을 길목 좋은 곳에 좋아 보이는 예배당이 있어야 한다고 까지 되어 있습니다. 돈이 없어 그렇지 형편 되는대로는 무리를 해서라도 모두들 이 면에 대단한 중심들이 기우려져 있습니다. 떠다니는 철새들이 모여들어 오히려 교회 분위기를 흐려 놓는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요? 사실이 그러합니다. 변덕쟁이 외식쟁이 말쟁이 농간쟁이 등등의 위험스러운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것은 사실 대단히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교인들이 예배당 옆으로 이사 올 수 있기 좋은 곳, 먼 곳에서 오는 사람일지라도 찾기 편리하고 교통이 좋은 곳 등으로 정할 수는 있지만 마지막 예배당 장소, 예배당 모습을 결정하는 일에는 약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로 한 골목 정도 뒤로 빠진다든지... 대로라면 약간 가려주는 무엇이 있는 곳 등이 명답일 것입니다. 예배당 모습도 일반 주위 건물에 독특히 띄게 보이지 않는 정도면 더 좋을 것입니다. 예배당이 감상적이라 교인을 끌고 오는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오는 교인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그 교회 진로에는 암초가 놓여지는 사실을 동시에 기억합시다. 먹이가 있으면 결국 고기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 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간 감추어 두어도 가려 있어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 법입니다.
1)몹쓸 교회의 예:
멀리서 그렇게 좋게 보이는 예배당, 끌리는 마음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다가갑니다. 천성을 향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앞에 서고 보니 환상과 이상의 곳이라고 까지는 될 수 없었습니다. 마당 앞에는 쓰레기도 눈에 띄고 또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실망스런 교인들도 눈에 띄입니다. 약간 실망스러운 사찰의 태도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기대로 설레는 마음만은 남아 있고 여전히 저 본당 문을 열면 그곳은 이 더러운 세상과는 구별될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조심스럽게 결혼식장을 향하는 신부의 발걸음 같다고나 할까요?
본당 안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강단은 너무 호화로워 화장이 좀 지나친 것 같고, 주님의 눈이 두려워 보이는 경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좀 더 아쉬움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결국 교회 오는 목적은 말씀 은혜 아닌가! 예배 시작이 되면 말씀 은혜로 다 좋아지겠지.
대표기도가 실망스럽고 설교를 들으니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별이 안되고 광고시간에 모금운동하는 것을 듣고서야 속으로 "망할 놈의 교회" 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2)바른 교회의 예:
교회를 찾아도 잘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무슨 교회를 좀 교회답게 짓지...." 속으로 이상스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왕 나선 걸음이니 보고나 가자 싶어 다가갑니다. 그래도 예배당 문 앞으로 다가서니까 출입하는 교인들의 표정에서 생기들이 있어 보입니다. "멀리서 보기는 하꼬방 같더니 그래도 교회는 교회라 교인들 표정에 믿는 표시가 있구나 싶습니다. 딴 곳 찾으려니 시간도 없고 예배나 보자 하고 본당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저절로 마음이 엄숙해지며 전혀 새로운 공기에 얕보던 자세가 좀 부끄럽습니다. 묵도에 마음이 움직이고 대표기도에 벌써 놀라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려집니다. 마치고 돌아가는 마음속에서는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천사같이 목회자가 하늘같이 느껴진다. 이런 교회도 있었구나! 교회란 바로 이런 곳이 교회구나!
예배당이 멀리서 볼수록 예배당답고 좋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들어갈수록 세상이 가득 들어있어 실망하게 되는 교회가 있습니다. 반대로 예배당이 멀리서 볼수록 아주 허무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내부를 들여다볼수록 보이지 않던 천국이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앞에 것은 쉽게 말해 외식교회고 후자는 알곡인 교회입니다. 인간의 유한한 힘을 어디에다 쏟아 부을 것인가? 한쪽은 반드시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겉이냐 속이냐 문제입니다. 외부 치장에 쏟아 부으면 내부는 저절로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한하고 연약한 우리이기 때문이다. 내부에 쏟아 부으면 겉은 저절로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주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면 내가 그리스도의 종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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