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1960.4.29.금전 "
시일: 1960.4.29.금전
본문: 벧후1:1-11
내 天國, 나를 믿음이 만든다. 하나님만큼 充滿하게 만든다. 무엇이 믿음이냐? 믿음은 겉은 사람의 行動이요 알맹이는 하나님의 뜻으로 되어 있다. 사람은 마음과 뜻이 분리되나 하나님은 單一性을 가져서 마음이 뜻이고, 사랑이 뜻이다. 왜? 마음이나 뜻이 各各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전하므로 모든 것이 다 온전하다. 完全한 사랑을 가진 자는 完全한 지혜를 가진 자이다.
第二能力을 가진 자는 第一 能力께 눌리므로 완전한 사랑이 못된다. 사랑이 없으면 지혜가 깨진다. 우리는 온전치 못하므로 마음과 뜻이 다르나 하나님은 온전하여 하나님의 뜻이 간에는 하나님의사랑, 지혜, 지식, 능력 등 모두가 떨어질 수 없다. 순종은 人間이, 뜻은 하나님이, 이 하나님과 人間이 단합하며 한 行動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强하다. 人間이 들었으므로 하나님과 같지 않고 다음 간다. 피조물 인간이 들었는데 어떻게 그처럼 강할까?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다. 이 믿음을 害할자 없다. 다만 人間이 하나님의 뜻을 안 행하는 것이 탈이다. 하면 된다. 굴곡이 많을수록 싸워 이기므로 靈은 자꾸 자란다. 對敵이 크야 좋다. 이것이 眞理이다.
"죽으면 산다"고 할 때 人間의 이치로는 맞지않는다. 그러나 순종해보니까 살게되었다. 이 사람속에 "죽으면 산다" 지혜가 없으니 이젠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갔다. 人間은 이런 지혜를 받기도 부인한다. 또한 죽어서 살아나니 能力이 되고 이 能力이 믿음이요, 의가 되고 열매가 된다. 이렇게 믿음은 보배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롬12:2, "너희는 이 世代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世上 보지 말고 天國 보고 살며 肉으로 살지 말고 靈으로 살라. 物質, 人本, 世上, 自我主義가 天國 볼 수 없다. 하나님을 앞잡이로 삼아라.
(長老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된다고 하는데 長老會서는 政治 長老 ,牧會 長老가 따로 있다. 悔改는 말씀 가르칠 때 第一 많이 된다. 韓國 敎會의 부패는 長老로 말미암는다. 왜? 聖經的 長老 아니므로, 사도들이 맛디아 뽑은 것은 失手이다. 基督敎는 自由 政治면서 主權政治이다. 투표는 그르다.)
聖經을 본받고 하나님을 본받아야 뜻을 찾는다. 良心에 물어라. 물어서 모르거든 良心을 동반해서 하나님께 물어라, 또 하나님의 뜻을 發見하고도 교권, 自己, 自己 家族 무서워 못 행하는 자들도 있다. 發見 했으면 못할 것 없다. 밀고 나가는 것 反對하다가는 다 깨진다. 우리는 能力者 혹은 無能者 되기가 쉽다. 하나님편에만 서면 能力者요 하나님만 떠나면 無能者이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살면 살수록 自己 불쌍하고 더 섭섭하다. 뜻 찾은 자는 갈수록 기쁘고 영화스럽고 죽어도 기쁘고, 죽고 나서 보니 더욱 좋다. 막을 자 없고, 칭찬, 욕해도 좋다. 예수의 기쁨은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다. 예수의 피로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生命길이 있다.
마6:19-23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눈이 밝을 것이며 땅을 상대하면 자꾸 어두워진다. 벧전3:19-22 良心은 天國을 相對하면 自然히 밝아지고 깨끗해진다. 눅21: 34 自己 救援에다 모든 것 다 붙들어매라. 그렇잖으면 이탈이다. 이탈은 방탕이다. 고로 마음은 구원의 마음하나만 가져라. 고전9:26 目的을 두지 않고는 勝利가 없고, 目的을 둘 두고도 승리 못한다. 하나님의 뜻 준행 해서 失敗한자 없다. 믿음만 지키면 靈肉間에 더 존귀해지고 남이 모르는 가치가 있다. 푯대는 自己救援이다.
빌3:11-16, "하나님께 잡힌바된-" 이는 하나님이 주시려고 가지고 있는 것, 이 賞을 바라보고 달려라. 一片丹心 自己救援에 全力을 다하라. 조금도 남겨서는 안되고 남은 것 있으면 悔改하라. 미3:9-12 末世 예언이다. 敎會를 완력으로, 人本主義로 세운다. 敎會가 미움덩어리, 돈을 위해 공의를 잃었고 ,제사장은 돈을 위해, 대접, 환영. 뇌물. 밥통을 위해, 달려 교훈한다. 선지자는 돈벌이 하는데 지혜다쓴다. 그래도 여호와를 의지한다니 얼마나 가증한가?
"시은은 밭이 갊을 당하고" -망하고 망한다. 즉 天國 기업이 자꾸 망한다.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山은 수풀언덕이 된다"→사람의 심령은 世上 재리와 염려로 가득하다. 믿음으로 지혜 받거든 靈肉 잘 살기 위해 살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서 나를 보태면 다 된다.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순종해 나가면 믿음이 만들어지고 오래 만에 된 순종은 더 굳세다. 약하여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서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한다. 일어설 줄 알면서 넘어지면 하나님은 미워한다. 넘어져도 本來 그런 자인 줄 알고, 이기면 하나님이고. 저면 나인 줄 알라. 全的 부패한 나인 줄 알라. 이것이 바로 안 것이요 겸손이다.
성도가 승리한 다음에 패전을 준다. 패전 안 하면 넘어지는 자인 줄 모른다. 겸손은 바로 나타나는 것이다. 끝까지 견디고 나가라. 오래 만에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왜? 그후에 더욱 오랜 것 이루도록 연단 시킴이다. 天國 가서 몇千年만에 이루어질 것 이루도록. 이처럼 늦게 이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다. 뜻 속에서 全能하신 하나님이 들어 계신다. 고로 그 뜻을 하나님이 하고져 하며, 全能한 能力이 하고져 한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생기는 榮光과 結果를 볼 때 努力할 맘이 생긴다.
그다음에는 大敵을 본다. 아무리 大敵이 크도 하나님의 能力을 볼 때 努力할 맘이 생긴다. 그 다음에는 大敵을 본다. 아무리 大敵이 크도 하나님의 能力을 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 쉽게 여기고 달라 들라. 달라 들어 놓치지만 말고 견디라. 最后는 이긴다. 또 넘어져도 하나님의 뜻이다. 협박으로 떨어졌으면 다음 협박 올 때 이기도록 연단이다. 그러므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라붙으니 마귀간이 녹아 내린다. 넘어지는데도 回數가 다 있으므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설 맘으로 하면 큰일이다. 왜? 마지막 회수가 언제인지 모르므로 . 그러므로 우리에겐 이기나 져나 마찬가지다. 外部는 상급의 차이나, 속은 힘쓰면 자라므로 마찬가지다. 고로 힘만 다 쓰는 忠誠이 問題이다.
믿으면 무엇하나?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世上을 이기느니라. 世上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요일5:19, "온 世上은 악한 자 안에 對한 것이며" 世上은 마귀, 죄악으로 되어있는데 이들을 믿음만이 이긴다. 고로 마귀께 빼앗긴 내 福을 다시 찾는 것이 믿음이다. 聖神의 인도함을 따라서 가면 갈수록 내 所有이다. 그렇잖으면 다 잃고 만다. 성신의 뜻을 버리는 것은 자기, 보배를 버리는 것이다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生命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自己의 榮光과 德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신기한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 이 능력이 生命과 경건이 우리 것 되도록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의 뜻으로 불렀고 ,하나님의 無限한 사랑을 나타내는 덕으로 우리를 불렀다. 罪人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獨生子를 희생시켰고 당신은 고난받으시면서 원하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구원하시고, 구원한 것으로 유일의 기쁨이고 만족이었다. 원수를 사랑하기도 어렵거든, 또 自己 全部주기는 더 힘들고, 원해서 주시도 사랑이큰데, 또 희생 당한 것을 最高 榮光으로 삼으니 덕이 最高크다. 빚을 감해만 주도 덕이 있고, 있는 것까지 주면 더 크다. 준 것을 인해서 기쁘하고 기쁘하니 덕이 더크다. 우리를 택해 구속한데에 당신의 큰덕이 나타난다. 이 큰 덕으로 우리를 불렀다.
씨름동네, 도둑동네, 살인자들동네. 지혜人들 동네에는 어떤 것이 영광이냐? 당신의 영광으로 불렀는데 무슨 영광이냐? 사랑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만족하고져 불렀다. 무한한 사랑이 큰일을 해서 사랑 自 가 영광이 되었다. 신기한 능력은 그분을 알므로 온다.
안다는 말은 ①이해하고 ②그가 우리를 크게 대하심을 환영하여 받는다는 말이다. 즉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준다는 뜻이다. 큰 救援을 이루어 주었으니 배은망덕 안하고 이해하고 상대함으로 신기한 능력이 온다. (例) 아버지의 명예에 關係되는 問題를 맏아들은 모른다하고, 둘째아들이 관계해서 책임지면 누가 아버지를 안 자인가? 後者이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이해하고, 이런 하나님으로 상대하고 책임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책임지고 나타내야 한다. 아버지 위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이고, 主를 위한 것이 나를 아주 크게 위한 것이다. 自己 위하다가 自己망한다. 이런 영광을 손실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알라. 우리가 안 알고 누가 알아주랴? 그것 알고 사니 결과는 나 위하고 내 영광이다. 主 榮光 가룰까 조심하니 나중 보니 自己 榮光이다. 이렇게 하면 신기한 능력이 들어와 신기한 榮光을 만든다.
이런 장사 누가 할까? 알므로 생명, 경건에 속한 영광과 덕스러움을 다 준다. 本文이 過去詞인데 이는 받을것으로 作定되어 있으니. 계약적으로는 다 받은 것과 마찬가지므로 강조로 과거사를 썼다. 이 능력은 오직 알아줌을 通해서 온다. 또 옴으로 말미암아 안다. 앎으로 말미암아 온다. 이미 와 있으므로 알면 또온다. 우리는 지금 "알아야" 되는 데서 지체하고 있다. 各者 分量대로 와 있으니 알기만 알라. 알면 생명과 경건에 속한 영광과 덕을 준다. 榮光에는 自 가 다 들었고 덕에는 行動의 상급인 所有가 다 들었다. 하나님의 사랑의 영광과 부르신 덕을 위해 사니 내가 신기한 능력의 사람과 신기한 덕의 사람이 되었다.
自己 榮光 위하려면 자꾸 수치스러워진다. 우리의 큰 원수는 自己이다. 自己를 쳐 복종시키면 보배가 나온다. 신기한 능력이 들어와 나로 하여금 신기한 영광과 덕을 행위로 하게 한다. 그러면 自己 것 된다. 行爲가 榮光과 덕이요. 그 自 도 영광과 덕의 사람이 되었다. 이 신기한 능력은 人間이 가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不信者에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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