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정에서 자녀와 부모가 가질 근본 자세 (88.6.5.주후)
일시: 88.6.5.주후
본문: 엡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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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말은 이 제도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에 이것이 안 된 것은 지금 가정 교회가 새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위에서 벌써 부모가 가정 교회가 돼 가지고 있으면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속에 알맹이 역사는 곧 하나님의 역사, 진리 역사요 영감 역사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역사가 그 속에서는 역사하고 껍데기는 사람입니다. 껍데기는 아버지 어머니지만 그 속에는 곧 진리요 영감이요 예수님의 대속이 그 속에 역사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 말은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되 부모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을 주 안에서 순종하라, 위에 계통적으로 내려오는 너희 아버지 어머니 속에 있는 그 능력에게 순종하고 그 올바른 진리에게 순종하고 그 깨끗인 그리스도의 대속에게 순종하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부모네들이 이거 온전한 교회를 이루어 갈 때에 그 밑에 자녀들은 그 부모에게서 뻗쳐 나오는 지교회가 돼 가지고 그것이 또 지교회와 지교회끼리 합합니다. 그런 자녀하고 그런 자녀하고 모이면 이 집 지교회하고 저 집 지교회하고 두 지교회가 합해 가지고 또 단일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이래 가지고서 우주의 교회는 하나인 단일 교회가 이루어지는 이 역사가 있는데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이것은 그 순종을 할 때에 위에서 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 줄기, 부모 속에 역사하는 그 영감 그 진리 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순종하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진리에게 순종하는 것이요 대속과 영감에게 순종하는 것인데, 만일 그 부모가 이렇게 되지를 못하고 비진리를, 비영감을, 악령의 감화를 또 악령의 이치 그 불법을 가지고서 명령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은 여게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 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이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그 순종이 안 되니까 아이는 그 순종을 하려고 애를 쓰는데도 부모는 엉뚱한 것을 명령한다고 하면 그 아이가 신앙에 앞섰습니다. 그 아이가 앞섰기 때문에 그 아이의 할 일은 부모에게 순종할 일보다도 그 부모로 하여금 바른 명령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그 제가 책임을 져야 되니까 껍데기로는 하나는 자식이요 하나는 부모지만 알맹이 실상 이 교회를 이루는 데에는 자식이 부모요 부모가 자식으로서 지금 거꾸로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표준삼아 가지고서 네가 하고 만일 그리 되면은 그 가운데 있겠습니다.
부모가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뜻은 동으로 가라 하는데 부모는 서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그걸 모르면 서로 가 버립니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고 그 아이가 벌써 먼저 도를 받아 가지고서 ‘동으로 가야 되는데 부모가 서로 가라고 하니까 이거는 틀린 것이니 순종할 수가 없다’ 할 때에 그때에 어떻게 되느냐? 그때에 그 아이의 할 노릇이 뭐인가? 거역하는 것이 할 노릇인가 또 순종하는 게 할 노릇인가? 그 순종할 수도 없고 그 부모로 하여금 옳은 명령을 할 수 있는 그 부모가 되도록 그것을 목표로 삼아 가지고서 노력을 해야 되니까, 노력을 해야 되니까 그 순종하는데 순종을 안 하는 그것이 그 부모가 자기와 같이 그 하나님의 뜻대로 자녀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는 노력해야 되니까 그때 순종을 하든지 거역을 하든지 그것을 목표로 삼아 가지고서, 혹 바울이 말하기를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는 것같이 하고 또 그 야만에게는 야만인 것같이 하는 것처럼 이래 가지고서 부모의 그 명령에 틀린 것을 자기가, 틀린 것을, 순종하는 그것이 겉어머리는 순종하는 척 하고서 속으로는 순종 안 하고 속으로는 그 부모가 옳은 자리로 돌아와 가지고서 옳은 명령을 할 수 있는 성화 운동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라면 그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그 일을 이룹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 안 믿는 윗사람들이 틀린 일을 말할 때에 틀린 지도를 할 때에 틀린 지도를 받아도 죄, 또 틀린 지도를 안 받아도 죄, 죄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랬는데, 부모를 공경하라 했는데 그 틀린 지도를 하니까 순종해도 하나님 앞에 죄 또 불순종해도 하나님 법도에 또 죄.
거기서 죄 되지 않는 길은 어떤 길이냐? 그거는 아니니까 순종을 안 해야 되지만 그 부모를 성화 시켜 바른 길로 돌아오기 위해서 바른 길로 돌아오는 그 목적을 가지고 그 방편으로 순종한 듯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달리 두고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을 하나의 방편으로 써서 이렇게 하면 사람 보기에는 순종하는 것같이도 보여지지만 하나님 보기에는 그거 순종하지 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 부모를 돌이켜서 순종케 하는 역사가 되어지는 그게 되기 때문에 이 성화 운동, 회개 운동 그것이 그 속에 중심이 있어 가지고서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러면 이렇게 부모에게 순종할 수 있는 이런 부모를 가진 사람은 참 복입니다. 가진 사람은 복이요 그 사람은 이제 그 남은 실력을 딴 데다가 퍼쳐서 역사해야 되겠습니다.
순종할 수 없는 부모가 되어 있을 때에는 어떻게 내가 거역하느냐? 거역을 해도 죄 순종해도 죄입니다. 그거 이해가 됩니까? 삐뚤어진 데 순종해도 죄, 또 거역하라 하니까 부모를 공경하라 했는데 또 죄가 됩니다. 이래도 죄 저래도 죄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죄가 되지 않는 길은 무슨 길이냐? 거기서 자기가 깨달았으니까 깨닫지 못하는 그 부모를 옳은 데로 돌아오기 위해서 이런 저런 방편의 노력을 하는 그런 것은 그것이 제일 하나님 앞에 죄가 되지 않는 그런 옳은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요 말씀에서 안 믿는 부모들이 교회 나가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면 안 나가도 죄 또 나가도 죄입니다. 안 나가면 하나님께 죄, 나가지 말라 하는데 교회 나가니까 나가면 하나님께는 바로 되지만 부모에게 죄, 또 안 나가면 부모에게는 또 괜찮지만 또 그 하나님에게 죄가 되는 것, 이렇게 죄가 되니까 요것은 이래도 저래도 죄가 되는데 죄 되지 않은 방편은 무슨 방편이냐? 속에 중심은, 속에 중심은 부모가 옳은 데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 틀렸으니까 속으로는 틀린 것을 반대하고 그것을 뿌리뽑아서 부모에게 그것이 없도록 하려는 그 목적을 가진 중심을 가지고 껍데기만 부모에게 순종하는 듯 해서 겉사람으로서는 죄의 법을 순종하고 속으로는 하나님법을 순종한다 하는 거와 같은 요런 그 방편을 써 가지고서 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도 하고 부모에게도 순종도 하고 두 가지 순종이 되어지는 것으로써 좋은 결과를 맺게 됩니다.
엡6:2,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5계명인데, 왜 여기는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 했는가? 5계명인데 첫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거기 순종하는 것은 5계명이면서 제1계명입니다. 그것은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신 그분을 공경하고 그분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을 공경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그것이 내려와서 자기로서는 부모에게 나서 부모가 지금 자기로서는 제일 근원이 되기 때문에 거기 순종하는 것은 1계명 순종이 되어지는 것이고 1계명 하나님 공경하는 것이 되어지는 이 깊은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우리가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하는 것은 혹 5계명은 인간과 인간 계명에 첫계명이라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녜, 인간끼리의 계명으로서는 오계명이 첫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 하는 이 첫계명이라는 데에는 인인 관계에 첫계명이라는 거기에 뿌리를 두지 안하고서 신인 관계에 첫계명인 제1계명에 뿌리를 둡니다. 1계명에 뿌리를 두는 것은 왜?
그 부모에게 전달돼 내려오는 것이 혹 부모가 그것이 아직까지 성화되지 안했어도 내려 오기는 저 위에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께서부터 당신이 목적하신 목적을 계획 세워 가지고서 내려오는 그 계통이기 때문에 여기 5계명 순종이 곧 자존하신 그 하나님 그분에게 순종이요 그분의 뜻을 달성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명은 통틀어 말하면 하나님의 계명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계명은 자존하신 그분을 공경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공경한다 말은 무슨 자존하신 분을 우리가 뭘로 공경합니까? 우리에게 있는 것이 다 그분의 것인데 뭐 우리 것 가지고 공경할 게 뭐 있습니까?
공경한다 말은 그분의 지대하심을 인정하고 존대한다 말입니다. 그분의 지극히 크심을 인정하고 지극히 크심을 이렇게 숭배한다는 말이오. 지극히 크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알아서 높힌다는 말입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래서, 계명의 모든 전부는 자존하시고 유일하신 그분의 이 크심을 이렇게 존대하고 인정하고 바라보고 섬기고 높이고 하는 이것이 제일이고, 둘째는 그분을 따라서 피동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지극히 크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소망하고 ‘그분에게 모든 게 다 있다’ 그분에 전, 그분을 지극히 크신 분으로, 그분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행복의 근원이요 모든 성공의 근원이요 그분이 완전의 근본이시라 하는 것을 인정하고, 인정하고 소망하는 것이 그것이 공경하는 것이요 그다음에는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라 말은 부모를 존경하고 거기 순종하는 것을 가리켜서 공경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경하라는 것은 그분을 자기가 위대하게 크게 존대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라 하는 것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썼습니다. 공경하라는 말을 쓴 것은 부모를 왜 그렇게 공경해야 되느냐? 그것은 저 하나님에게서부터 줄기가 이 줄기가 쭉 내려오는데 그 부모에게는 하나님의 줄기가 거기 와 있기 때문에 부모를 높여 이렇게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은 곧 위에 자존하신 그 근본을, 근본의 줄기를 바라보고 거기서 소망을 가지고 거기 순종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 공경이요 하나님 공경하는 자는 그 부모에게 공경을 해야 그것이 연결돼서 계통 돼 내려온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엡6:3, "이는 네가 잘되고"
하나님의 목적은 교회, 빛, 진리, 인간을 진리화, 인간을 영감화, 인간을 죄에 대해서 완전하고 의에 대해서 완전하고 하나님과 완전되어서 공변된 공심판에도 완전자 이것을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네가 잘된다 말은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인 이것이 잘된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예정이 이것 위해서 예정했고 또 창조가 이것 위해서 했고 섭리가 이것 위해서 했기 때문에 이것이 잘된다는 말입니다.
잘된다 말을 사람들이 오해를 하여 육체가 잘되고 뭐 잘되고 그런 껍데기 아주 껍데기의 먼지 같은 그런 것이 잘된다고만 이래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이제 위에 쭉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분의 목적이 그 목적이 잘되고 그 목적대로 잘되고 그 이치대로 잘되니까 진리대로 잘되고 영감대로 잘되고 예수님의 대속대로 잘된다. 죄없는 것으로 잘되고 의로운 것으로 잘되고 또 하나님과 결합되는 것으로 잘된다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자녀가 부모를 볼 때에 부모만 볼 게 아니라 그 부모는 위에서 쭉 내려오는 그 계통이기 때문에 그 계통을 어기면 그 계통을 어기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고 그 계통을 받으면 잘되고 어기면 안 된다 하는 말입니다.
"땅에서 장수하리라"
땅에서 장수한다 말은 이것은 그에게 아무런 땅 위에 존재 기간에도 장애가 하나도 없고, 땅 위에 존재하는 그 기간에도 아무 장애가 없고 영원히 그에게는 장애가 없다. 왜? 원줄기에 붙었기 때문에, 원줄기에 붙었기 때문에. 「장수하리라」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노엽게 하지 말고 이 말은 그 자녀를 성내게 하지 말아라 하는 말인데 성내게 하지 말라 말은 얼마든지 자녀 좋도록 하라는 그 말이 아닙니다. 골로새서에는 자녀로 격노케 하지 말아라 그랬습니다.
그 말은 부모가 제일 주의할 것은 자녀가 아직까지 어려서 비판 못 한다 할지라도 자녀에게 제가 잘못 깨달아서 원망이나 불평이나 혹은 그뭐 시비나 그런 일을 한다 할지라도 너는 첫째가 자녀에게 실족하지 말아라, 자녀에게 실족하지 말아라. 자녀에게 말이나 행동이나 성질이나 마음이나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서 네가 자녀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해라. 자녀가 너를 훼방할 수 있는, 비웃을 수 있는, 업수이 볼 수 있는 그런 일이 네게 없도록 해라.
그러면, 자녀가 어렸을 때는 몰라서 혹 이해를 못 해도, 잠깐이면 자라서 다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가 얼마든지 존대하고 다 평가적으로 알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자녀에게 네가 조심 없이 거칠게 대해서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니까, 자녀가 너를 평가할 때에 과연 그들이 모를지라도 나중에 평가하면 ‘옳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부모의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하다 옳다 이렇게 존경할 수 있는 그런 호평을 받을 수 있는 네 행위가 있어야 되지 만일 정죄받을 수 있는, 업수이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해라 그것을 첫째는 말을 하고,
또, 둘째로는 자녀에게 대해서 그렇게 네가 급속히 속단적으로 뭣을 이렇게 과격하게 책망적으로 이렇게 하려고 하지 말고 어쨌든지 사랑과 화친을 가지고서 해라. 네가 사랑과 화친으로 가지고서 어쨌든지 부드럽게 유하게 대하는 방법을, 유하고 부드러운 방편을 취하도록 노력하고 그에게 평가적으로 잘못이 하나도 없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면, 부드럽게 하는 것은 우선 악령이 틈탈 기회를 주지 않아서, 부드럽게 하는 것은 그에게 오해나 혹은 일시에 마귀가 틈을 타 가지고서 잘못된 감정이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언제든지 부드럽게 그래 하고 아무리 부드럽게 해도 속에 알맹이에 네가 잘못이 없도록 그것을 해서 평가적으로는 네 행위가 옳아야 언젠가 자녀가 돌아오게 되고 바른 길을 인도함을 받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부드러워야 인도를 받는다, 부드러워야 인도를 받고 평가적으로 옳아야 그 인도받는 것이 뿌리가 깊어서 뒤에 요동하지 않는다.
이래서, 이 두 가지를 하면은 뒤에 가서 잘 자랄 수가 있다. 잘 자랄 수가 있고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그의 평가로써 되는 것이오. 그의 평가의 행위로써 되는 것이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은혜를 베풀 때에 그 은혜가 효력있게 건너가는 데에는 유하게 부드럽게 사랑으로 이래 하는 데에서 그것이 작용됩니다. 만일 그 유하게 하여 사랑하는 부드러움이 없으면 부모가 그에게 주는 그것이, 줘야 되고 그는 받아야 될 터인데 주는 그것이 잘 줘 지지 안하고 받아지지 않기 때문에 자라는 그 기회를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부드럽게 해서 주고 주고 이렇게 줬다 할지라도 뒤에 장래에 존경을 받고 봉양을 받는 일은 너 부드러움 가지고는 안 되고 네가 옳은 일이, 옳은 일을 하고 잘못됨이 없도록 평가적으로 네가 행위해야 그것으로써 뒤에 존대를 받는다는 것도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대우받는 것은 평가적이고 내가 자녀에게 주는 데는 부드러움의 방편을 가지고서 줘야 된다 하는 그것을 여기서 말씀합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의 교양이라 말은 주님이 가르치는 거 있다. 가르칠 교(敎)자 기를 양(養)자, 주님이 가르치고 기른다. 또, 「훈계로 양육하라」 양육이라 말한 것도 기를 양( 養)자 기를 육(育) 기를 양(養)자 기를 육(育) 자입니다. 그러면, 자녀를 기르는데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말은 주님이 그 자녀를 계통적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기르는 그 계통이니까 네가 그 계통에 이탈되지 않도록, 그 계통에 탈선되지 않도록, 그 계통에서 탈선이 되지 안하고 거기서 연결된 연결로 이렇게 하는데, 그 계통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는데 그 방편에서는 주님이 이렇게 저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런 교양 가지고서 해야 되지 그런 교양 가지지 안 하고 하면은 네가 그 계통을 가지고서 그 교통으로 자녀를 기르려고 아무리 애를 쓸지라도 네가 혹 사사로운 교훈이나 또 이 훈계, 사사로운 훈계로 이래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꼭 거기서 나오는 줄기로 훈계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그 교양 과목을 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은 교양 과목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 말씀하신 그 교양 과목을 가지고 그들에게 이렇게 훈계를 해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육신의 자손이든지 믿음의 자손이든지 기를 때에는 꼭 하나님이 우리를 교양하는 이 계통, 이 줄기 그 줄기로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르치는 그 줄기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그 줄기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 줄기의 힘으로 가지고서 하도록 하고, 줄기의 힘으로 하도록 하고 그 방편은 네 생각대로 네 감정대로 일시로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이미 교양 과목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주신 교양 과목 그 과목대로 자녀를 교양을 하고 훈계를 해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 기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고 창조하시고 대속하시고 내려온 그 줄기가 쭉 내려옵니다. 그 줄기가 쭉 내려오니까 그 줄기를 바라보면서 그 줄기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 줄기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그 줄기에 끊어져서 탈선되지 않도록, 그 줄기에 끊어지지 않도록 언제든지 그 줄기가 그 속에서 역사할 수 있도록 그것을 명심하고 그 줄기에 연결시켜서 교훈하는 데는 그분이 그 줄기에 연결시키는 방편을 우리에게 성경에 가르쳐 놨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으로 그래 하고서 네가 일시 감정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그런 실수하지 않도록 하라 하는 것을 여기 가르쳐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오전 오후 설교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가정이라 하는 것은 그 목적이 어디 있으며, 가정 성공은 어떤 게 가정 성공이며 가정의 존재 목적은 어데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 부부 결혼이라 하는 그 목적은 어디 있었는가? 또 이것이 지금 어떤 그 작용을 하는가? 육 속에 이제 신령한 이 능력이 역사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 이 역사가 있는 것이니까 언제든지 그 역사를 바라보면서 그분이 와서 일하도록 하라는 것을 쭉 배웠습니다.
그러면, 만일 자기가 ‘에이, 이거는 너무 층하가 많다!" "이거는 너무 무식하다" "이거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이렇게 불평하고 사람을 상대할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는 잘난 것, 못난 것, 유식한 것, 또 지혜로운 것, 악한 것, 선한 것 별별 종류가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분열시켜 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분열시켜놓고, 왜 너는 그런 자를 만났느냐? 그런 자를 만난 거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나게 해 놨다. 만나게 하는 건 당신의 광대한 목적에서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걸 다 만나게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것은 상관하지 말고 네가 볼 때는 이게 무슨 사람이 되겠나? 이까짓 게 무슨 일이 뭐이 되겠나? 너무 하나님의 교훈을 볼 때에는 하늘같이 높고 이제 자기네들은 개골창 속에 떨어져 있으니까 이게 뭐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그래도, 그 속에 역사하시는 이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너 할 일만 네가 하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네 할 일만 네가 하면 그분이 그 일을 담당해 가지고서 하셔서 마지막에는 흠없는 온전한 교회를 하나님이 이루셔서 단일 교회 속에 들어가도 자유되고 거침이 없는 단일 교회와 동질 동성의 그 교회, 동질 동성의 사람, 진리의 사람, 영감의 사람, 사죄, 칭의, 화친의 사람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흠없는 당신이 거처하실 수 있는 당신의 성전, 당신의 궁전, 당신의 지체, 당신의 몸, 당신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만드시기 때문에 네가 이 도리를 깨달아서, 방해하지 말고, 네가 인본적으로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네가 방해하지 말고 원대한 이 소망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라.
이 계통이 내려와 가지고서 자녀가 나오고 이 가정이 되어 나가는 그것이 성공이지 이 세상에서 마귀가 지금 범죄케 해 가지고 어둡게 해서 하는 이것은 아니라. 껍데기 속에 알맹이 부부가 되고, 껍데기 속에 알맹이 가정이 되고, 껍데기 속에 알맹이 성공을 해라. 그래서, 그 자녀가 유명해서 네피림이니 용사니 뭐 유명한 사람이니 그게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구원이 있기 때문에 요것을 목표로 하고 네가 해야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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