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960.4.29.금새
본문:벧후1:1-11
基督敎는 믿는 道이기 때문에 믿음만 똑 바로 지키면 完成이다. 보배로운 믿음은 ①그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배이고 ②택함 받아 重生한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믿음이기에 보배이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은 行할수 있다는 말이다. 즉 내가 지킬 수 있으므로 보배로운 믿음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려고 끝까지 努力만 하면 다된다. 참으려고 기어코 달라 들면 참아진다. 이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고 믿으면 義人되고, 또한 믿는 대로 된다. 그러나 無條件 믿는다는 것은 속이는 것이다.
히6:1-2, 그리스도의 道의 初步를 버리고 죽은 行實을 悔改함의 하나님께 대한 信仰과 洗禮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永遠한 審判에 關한 敎訓은 信仰知識의 靈魂이다. 이 基本救援은 다 같으나 建設救援은 各各다르다. 그러므로 이 基本救援에 굳게 서서 行爲구원을 이루어 나가라. 이 구원은 自己가 자라야 榮光스럽게 되는 것이므로 各 靈 는 千態萬象 일게다. 이는 하나님의 無限하심을 나타낸다. 이처럼 自己 얼굴을 自身이 만들어야 하므로 他人이 만드는 方法으로는 못 만든다. 自己 만드는데는 하나님의 뜻의 命令과 나의 순종의 靈이 두 믿음으로 만든다.
믿음은 당신이 뜻을 命令하고 내가 몸 맘으로 順從하는 것이다. 그럼 順從이 크냐? 하나님의 뜻이 크나? 하나님의 뜻이 크다. 人間은 이것을 모르고 他人의 行爲만 보고 잘 믿고, 못 믿는 것을 판단한다. 하나님의 뜻을 自身만 알고 他人은 모른다. 聖經대로 산다고 하여도 한번도 하나님의 뜻에 안 맞는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行했는데 한사람은 탈 집을 지었고, 한 사람은 안 탈 집을 지었다. 머슴이 모를 심을 때 6月에 심어야 할 것을 10月에 심는다거나 主人의 논에 심지 않고 이웃 논에 심는다면 헛일이다. 이처럼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데도 時間과 場所가 따로 있다.
풀로 지은 집은 自己 眞理를 지키지 않은 자요 금으로 진자는 自己 뜻을 行한 자이다. 各各入場, 환경, 本性, 處致, 時期. 연령. 총명이 다 다르다. 人間의 行爲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권위 있다. 계3:10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키리라. 이는 내 뜻, 내 眞理를 順從했은즉 너를 지켜주리라 한 말이다. 우리께 한없는 榮光과 幸福과 成功의 길은 오직 단 하나 실같은 좁은 길 하나뿐이다. 이 길은 한 사람 앞에 한 길뿐이다. 고로 이 길은 人間은 못 찾는다. 하나님밖에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명령한 것 행하고 시키는 대로 하니까 完全한 自己幸福에 도달한다. 이는 내게 對한 하나님의 科學이다.
행5:32, 순종하는 자에게 성신 주신다. 맘대로 祈禱하고 聖經 본다고 順從하는 것은 아니다. 職分이 다 다르므로 順從하는대도 다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들어와서 하신다. 하나님의 혜택을 입혀주므로 하나님의 뜻이 重하다. 요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이 준행하고서 또 우리께 명령했다. 요4:32, "너희들이 모르는 永生의 양식은 보내신 이의 뜻 행하는 것이라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도 먹었음으로 靈이 점점 자라 十字架에 죽을 때는 完全히 자랐다. 양식은 예수의 뜻인데 각자 다르게 준다. 고로 남의 입장을 부러워 말고 自己에게 향한 뜻만 行하라. 靈의 양식은 뜻을 행하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靈이 자란다.
눅1:37, 여호와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人間을 通해서 이룬다. 그 사람에게 대한 진리, 말씀, 뜻만 찾아 사람이 대들면 못 할 것이 없다. 自己와 自己 眞理가 단합할 때 막을 자 없다. 하나님의 뜻을 온 天下 人間이 거역할 수 없으되 오직 그 사람만 거역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이기에 보배이다. 고로 하나님의 뜻을 發見하는 것이 아주 重大한 問題이다. 이것 發見하는 것이 自己眞理인데 自己眞理의 發見은 聖神께만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와 사귀는데 사람이 끼이기를 싫어한다. 원리 원칙 인도는 사람을 통해서 즉 중매는 하지만 하나님과 연결은 本人이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직접 성신께 물어야 하며 그 뜻을 찾았으면 어떡하면 좋을까 라고 하나님의 종들에게 물을 수 있다. 성신께 물으려면 옳은 양심, 참되고, 곧고, 선하고, 깨끗한 양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가지면 正誤를 분별할 수 있다. 이것이 人間의 빛이다. 해보려는 것이 外部요, 이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 良心의 알맹이다.
良心은 一時에 變動되지 않으므로 오래도록 닦고 길러야 한다. 良心은 외식. 허영 갖고는 되지 않고 眞實해야 한다. 靈은 맘을 밝게 하여 良心으로 聖神을 만나 立志하여 몸으로 努力하게 하여 救援을 이룬다. 自己 버리면 모든 것 헛일이다. 自己버리고는 하나님의 뜻을 못 이룬다. 自己救援이 第一이다. 아들, 兄弟, 아내가 무슨 問題냐? 나를 만들자니 兄弟도, 가정, 이웃, 교회의 구원이 自己께 相觀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同族 救援 안 이루는 것이 自己救援 안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택자 全部가 예수 안에서 한 몸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自己救援 철저히 만들려는 것이다. 自己못만들면 牧師해도 헛일이다.
엡5:15-18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라. 세월을 아껴라. 主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술 취하지 말라- 世上 敎訓에 빠지지 말라. 世上 人生觀은 방탕자이다. 방탕이 무엇이냐? 눅21: 34 조심치 않는 것이 방탕이다. 조심은 自己마음을 自己 救援에 붙들어 매는 것이다. 여기서 이탈하면 방탕이다. 내 마음으로 내 구원을 보지 않고는 自己구원을 모른다. 世上 榮光불려는자는 天國서는 亡한자이다. 이렇게 방탕하면 뜻밖에 덫이 온다. 환난. 죽음.심판, 주의 날이 뜻밖에 온다. 오시면 自己 맘대로 산 것 온다. 깨진다. 또 하나님의 뜻은 시시로 變한다. 환경에 붙들려 歲月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注意하라. 歲月은 하늘나라의 無限한 보배의 代價이다. 이 시간에 무엇 할런지를 찾는 것이 聖經 안에 있는 自己의 뜻이다.
롬12:1-2,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적은 人間이 못 믿을 때 나타내 믿게 하는 것이다. 永生의 道理를 아는 자에겐 안 나타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데 人間의 行爲보다 하나님의 뜻이 권위가 있다. 聖經에 있는 말씀대로 해도 죄가 될 때도 있다. 요일2:27 롬8: 27 聖神만 하나님의 뜻을 알므로 기도한다. 聖神은 우리 안에 언제나 계시니 성신께 물어야 한다. 양심을 바로 써야 아는데 양심은 죄와 의를 구별할 수 있고 양심을 어기는 것이 죄이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면 많지만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니 그것만 맞추면 되므로 쉽느냐, 어렵냐? 쉽다. 하나님의 뜻만 발견하여 끝까지 나가면 天下가 못 막는다. 万物 中 第一 强한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 다음에 강하다. 이 믿음이 누르면 죄는 깨진다. 믿음을 삼키면 배가 터진다. 믿음은 하나님 다음 강하므로 하나님 다음 강한 자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