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개혁주의 교리학
저자: 박윤선
출간: 2003.6. 영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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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자의 영혼이 범죄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요리문답 제37문답이 잘 대답한다. 요리문답은 장로교회의 교리로서 역사적으로 성경적 교리로 믿어 오는 공동 고백문이다. 제37문답은 다음과 같다.
문) “신자가 죽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쉬느니라.”
여기서 취급하고자 하는 것은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원문대로 바로 번역된 것은 확실하다(The souls of believers are at their death made perfect in holiness). 여기에서 우리가 확실히 깨닫는 것이 있다. 곧 “거듭난 자의 영혼(세칭 거듭난 영혼)이 이 세상에서 범죄할 수 있느냐?”라고 물을 때에, 우리는 위의 요리문답 제37문답에 의하여 대답하기를 “거듭난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불행히 범죄하는 일이 있다.”고 할 것이다.
1. 명백한 성경 구절들
사람이 거듭나야만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고 또 믿게 된다. 이 원리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구약시대 사람들이나 신약시대 사람들이나 그 영혼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섬긴 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기를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시41:4)라고 하였으며, 또“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시42:5)라고 하였다. 낙망은 불신앙의 죄악이다. 선지자 미가는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6:7)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신자들을 권면하여 말하면서 “육과 영의 온갖 더루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영”은 영혼에 관계된 인격 부분으로서 그것이 아직 완전히 성결되지 못했으므로 바울은 “영의 더루운 것”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2. 하나님의 영을 영혼으로 오해하지 말 것
롬8:5-10에 말하기를 “육신을 좇는 자느 sdbrtls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육신”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모두 싸륵스( )니, 인간의 생리적 신체를 말함이 아니고 인간의 ‘부패성’을 의미한다. 부패성(腐敗性) 혹은 죄성(罪性)은 거듭난 자의 영혼 속에도 있다(롬7:20).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영”은 영혼이 아니다. 거룩되고 의롭다는 의미로 사용된 이 “영”은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다. 9절에서 앞 부분에 있는 “영”에 대한 모든 말씀을 받아서 말하기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보면 그 앞에 나오는 “영”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 것이 분명하다
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
요일 3:9에 말하기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라고 한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함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1) 여기 이른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라는 말은 헬라 원문으로 보아서 현재동사이므로 상습적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일시적인 실수까지(롬8:23)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가 상습적인 범죄를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 있는 역사(눅8:11; 벧전1:23)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씨”를 가리켜 하나님의 본질이 사람의 영혼 속에 주입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오직 하나님께만 독점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오직 한 분으로만 계시고 사람을 하나님 되게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피조물 급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바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로 된 것이요 하나님의 체내(體內)에서 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소질과 관계된 것이고 사람이 신성(神性)으로 화(化)한다는 뜻은 아니다.
2) 또 한가지 해석은 이렇다. 곧 거듭난 자는 “성령의 인치심”(“기업에 보증”: 엡1:13-14)을 지니고 있으므로 마침내 별세할 때에 완전히 성결해질 자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현재에도 그를 가리켜 “범죄하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미래에 확실히 이루실 것을 가리켜 현재에 이미 이룬 것처럼 말하는 어투는 선지서에도 많이 있다. 비유컨대 아직 걸음마도 못하고 기어다니는 어린아이를 보고 누가 그 아이를 짐승이라고 하겠는가? 비록 그 아이는 지금 유아이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부여된 인간의 존귀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요일3:6; 5:18에서도 우리는 위의 해석들 중 어느 하나를 취해야 한다. 거듭난 자의 영혼도 그 성결에 있어서는 완전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성령님께만 의존해야 된다.
4. 칼빈주의 교리
교리라는 것은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고 옛날부터 교회가 그것을 성경적인 것으로 알고 공동적으로 고백하여 온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3장 2절은 성화론(聖化論)에 관하여 말하기를 “신자의 성화가 전 인격에 관계되어 있으나 모든 부분에(영혼에도) 부패가 남아 있으며, 따라서 계속적으로 부조화의 전쟁, 곧 영과 육(전 인격에 있는 부패한 성질)의 충돌이 일어난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