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5월 집회 요약지 - (창천교회)
89년 5월 집회 설교를 내용 파악에 도움되도록 문답으로 요약하며 정리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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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10/월밤/사2:12-4:1(800508/월밤) - 1 -
1. 집회에 참여하는 우리의 목적과 소망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하시고 난 뒤에는 우리가 변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변하신 일은 없었다. 우리가 변할 때 우리가 변한 그대로 하나님도 우리에게 변하셨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변하게 되면 변한 자에 대한 공의의 역사와 또 변질된 자에게 유익이 되는 구출의 역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성질의 역사를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변하게 역사하시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니까 지금 현 단계에서는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답)우리가 잘못 변해진 것을 찾아 고쳐서 바로 ( )되는 이 일이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급선무요 가장 ( )로운 일이다. 우리는 십 자가의 ( )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잘못된 것이라도 다시 회복을 하려면 할 수 있다. (보기: 대속, 지혜, 변화)
(교훈)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한 우리의 살 첩경을 알려 주셨다. 자기가 변하 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확고히 잡고 이 일에 주력하자!
2. 우리가 고칠 것 중에 하나를 말한다면 우리는 중생될 때에 하나님과 맺은 계약이 있다. 그 계약은 간단하게 말하면 그분이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써 설정하신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는 내 것이 되었고, 나는 그분의 것으로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되는 이것이 그 계약이다.
대속 받은 자로서 이에 합당치 아니한 생활과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은 다 변질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계약에 위배된 자체와 생활을 고쳐, 이 계약에 흠과 점과 티나 주름잡힘이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고쳐 하나라도 변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답)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그만치 새롭게 ( )되고, 하나님과의 관 계가 새로워지면 그만치 내 생애가 변하고 그에 따라 모든 행복은 증 진되고, ( )는 차차 줄어져서 자꾸 변화되는 것이고, 또 하늘나라의 ( )에 속한 영감도 진리의 깨달음도 의의 능력도 모두가 다 변 해진다.(보기: 구원, 화, 변화)
3.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이것을 제가 스스로 지혜 있고 능력이 있고 수단 있어서 잘된 것으로 여기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라고 하셨고, 교만한 자는 반드시 망한다.
자기의 가진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이 내게 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이치적으로 실감적으로 똑똑히 알고,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는 (첫째)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둘째)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이 기쁘시게 써야 하는데 잘못 쓸까 염려하여 바로 쓸려고 애써야 하고,
(셋째)그것이 모자라거나 없는 사람을 볼 때 멸시 천대하지 말고, 하나님이여 나도 주셔서 가진 것이지 다른 것 아니니 저 사람에게도 주셔서 가지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이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넷째)마지막으로 자기의 가진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자기가 가진 좋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가질 정상의 올바른 마음이요, 태도이다. 이러한 마음과 태도를 가지지 아니하고 제가 스스로 잘나서 가진 줄 아는 교만한 자는 어떻게 하겠다고 하셨는가?
(답)그 좋은 것을 다 무너뜨리고 ( )해버리시고, 꺾어 ( )겠다고 하 셨다. '( )한 사람은 망한다‘ 하신 것은 이것을 두고 하신 말씀 이요 이 법칙은 변할 수 없다. 교만한 것만치 꺾으신다. 깊이 새겨야 한다. (보기: 낮추, 자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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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 만군의 여호와'에 대하여
‘주' 할 때에는 한없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만군’의 하신 것은 그렇든 하나님이 이제는 진노해서 전적으로 싸우려고 달라 드시는 것을 가리킨다. ‘여호와’라 하신 것은 싸우려고 하시되 계약을 선포해 놓고 꼭 계약 그대로 지금 하겠다고 달라 드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지 이렇게 하신다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주’가 ‘만군’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진노를 하시는가?
(답)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다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 ) 하고 ( )하였기 때문이다.(보기 : 의뢰, 의지)
5. 외뢰라 말은 그것을 의지해 가지고 그 혜택을 입어서 살려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의뢰라고 하고, 또 의지는 혜택을 입지는 안했어도 그것을 든든히 힘으로 삼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야고보서4:4)에는 ‘음행하는 여인들이여 너희가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이 시기하기까지라는 말씀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렇게 하신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 앞에 다른 것을 의뢰하거나 의지하는 일은 진노를 쌓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귀하게 여길 수 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 줄 알고, 귀하게 여기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얼마든지 주신다. 그러나 고것을 의뢰하고 의지함으로 인해서 주님에게 차차 차차 멀어지고, 나중에는 배짱 나오고 요렇게 함으로 우리가 멸망하는 것이다. 멸망하는 것은 그러한 자는 하나님이 망쳐서 멸망하기도 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 자멸하게도 된다. 자멸의 길은 어떠한 것인가?
(답)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의뢰, 의지하게 되면 먼저 ( )한 사람이 되 고, 남을 ( )하는 사람이 되고, ( ) 없는 사람이 되고, 결국에 는 ( )하여 망하게 되고 만다. 이는 필연이다. 하나님만 의지, 의 뢰하는 사람은 그 반대가 되어 필연적으로 복되게 된다.
(보기 : 학대, 교만, 질서, 탈선)
(교훈)우리는 나는 무엇을 의뢰하고 의지하고 있는가? 스스로 살펴서 확정하여야 한다. 하나님외에 무엇이라도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다 버려야 한다. 다만 하나님만 의뢰하고 의지하고 그 분에게 모든 것 맡겨 놓고 그저 그분의 시키는 것이면 예예로만 순종하는 이 사람이 되어야 한다.
04/05/11/화새집회/사3:1-4:1(890509/화새집회) - 3 -
1. 구속받은 우리들은 우리가 변해서 하나님도 따라 변해져서 모두 다 완전 멸망에 빠졌던 자들이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신인양성일위인 예수님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완전을 이루어 복구하여 주셨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흠도 점도 티도 없는 영원 완전의 관계가 맺어졌다.
그 후 우리가 차차 차차 하나 변하고 둘 변하고 하니 하나님도 부득이 하나 변하고 둘 변하고 이렇게 우리 따라 변해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완전이시며 불변이신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변한다고 우리 따라 변해질까?
그것은
하나님이 불변자시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변함에 따라 그의 변치 않는 공의와 사랑으로 우리를 상대함이 변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정확한 도리를 받아 가지고 있으니 이 도리를 준하여 우리가 하나씩 둘씩 변한 것을 찾아서 우리 자체나 내적 생각이나 행동을 고쳐야 한다. 우리가 고치면 어떻게 되는가?
(답)하나님도 내게 대해서 변하신 것이 고쳐져서 우리의 모든 ( )과 처지가 고쳐지고, 그 결과 하나님에게는 ( )이 되고 우리는 세상의 ( )이 되는 이 결과가 맺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가능성과 ( )을 가지고 있다.(보기:자원, 빛, 영광, 형편)
2. 우리 믿는 사람은 단일교회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다. 단일교회는 수많은 성도들이 자존 하신 한분 하나님과 하나님을 나타내는 주님의 한 대속과 한 진리와 한 성령을 따라 단일의 본질과 본성을 이루었을 때 이를 가리켜 단일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다 이 단일교회에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온 세계교회가 모든 주위 환경이나 배경이 되는 피조물들을 따라서 타협하고 속화되어 나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된다.
우리가 소망하고 가르침 받고 인도 받아 따라갈 것은 신구약 성경과 그 안과 내 안에 계셔서 인도하시는 성령님, 또 주님의 대속뿐이요, 한말로 하면 누구만을 따라가야 하는가?
(답)오직 영원 자존자이신 ( )한 분만을 따라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깨닫고 믿는 교리와신조와 행정의 ( )이다(보기:둥치,하나님)
3. (1)(총공회 교인의 상식-간판에 관하여)
우리가 달고 있는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라고 하는 간판은 우리가 나아가는 노선의 이름이다. 교회 노선의 이름이란 그 노선이 지향하고 있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가장 간략히 나타내는 것이다. - 4 -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라는 이름은 많은 종교 중 예수교, 예수교중 장로회, 장로회중 한국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지향하고 있는 노선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우리의 이름이다.
특별히 노선의 이름을 간판에 밝히는 이유는 우리의 노선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대외에 대한 정당한 태도요, 또 우리의 신앙행위에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따르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의 옳고 틀림에 대한 책임의 주체를 똑똑히 선포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2)(총공회 교인의 상식-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의 노선의 이해)
(가)‘예수교’-온 세계의 많은 종교중에 우리는 예수교라는 그 교를 믿는다. 예수교라 말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을 위해 예정하시고, 예정대로 창조하시고 또 창조된 것을 보존하시고, 또 그것들을 활용, 섭리하셔서 하나님이 도성인신으로 사람 되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사 인생을 구속하신 것이 예수교이니, 우리는 이 도를 믿는다는 뜻이다.
(나)‘장로회’-예수교 가운데 또 많은 갈래길이 생겼으니 예를 들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루터교 등이 있는데 우리는 장로교라는 뜻이다. 이렇게 많은 갈래로 갈라진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주로 자기 양심에 옳다고 믿는 교리와 신조가 달랐고, 그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성경을 따랐기 때문이다.
(예)감리교와 장로교가 갈라진 것은 감리교는 사람과 하나님이 합동해 가지고 구원을 이룬다고 믿고, 장로교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게 된다고 믿는 이것이 제일 다르고, 하나 달라지니까 다른 달라진 것들이 많이 자꾸 생겨나서 갈라진 것이다.
또 성결교가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성결교는 '사람이 믿고 나서 중생이 된다. 중생되면 그는 하나님께로서 났고,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아니한다. 중생되면 완전이다' 이렇게 주장한다.
장로교는 '중생은 그 사람이 예수 믿은 후에 중생되는 것이 아니라 믿기 전에 중생이 먼저 되고, 중생된 (오랜)후에 예수님 믿게 된다. 중생된 사람도 범죄한다' 이것이 장로교 교리이다.
또 침례교는 일반은 물을 뿌려서 세례를 주는데 '그거는 틀렸다.물속에 잠갔다가 나와야 된다, 침례를 줘야 된다.' 하는 세례, 침례로 말미암아 갈라졌다
(다)‘총공회’-장로교도 또 기장, 예장, 고신측, 합동측, 통합측등등 갈래길이 많이 나왔는데, 이 중 고신측에 속해 있다가 갈라져 나온 것이 우리 총공회이다. - 5 -
(3)(총공회 교인의 상식-고신에서의 분리)
고신측에 속하여 신앙생활 하던 총공회가 고신에서 갈라지게 된 것은 행정 때문에 그 주동이 됐고, 그에 따라 교리문제들도 일어나게 되어 많은 마찰이 있다가 결국 나누어지게 되었다.
(예)신사참배 때문에 교인들이 분열되어 예배당 소송 문제가 생겨졌을 때에, 형제끼리 예배당 차지하려고 불신 법정에 가서 재판하는 것은 성경(고전6장)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소송을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견해가 나누어졌고,
그 다음에 고려신학교의 정치학 교수로 불신자를 임명하는 문제, 또 교계의 복음전파 잡지인 파수꾼지 폐간 문제, 고신이 실상 반공단체라 할 수 있는 I·C·C·C 에 가담하는 문제, 교회 이름으로 유엔군 철수 반대운동 하는 문제등으로 계속 마찰이 있다가,
마지막에는 총공회를 설립한 백영희 목사에게 서부교회를 이동하라는 상회의 명령이 있었고,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불의의 교권행사였기 때문에 이동치 아니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상회불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제명되게 되었다. 이것으로 고신과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4)(총공회 교인의 상식-총공회 교리신조행정의 둥치)
총공회는 신앙 사상과 행위를 가짐에 있어 그 첫째의 가치를 하나님에게 두고, 둘째의 가치는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킨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두고, 셋째는 성령에 가치를 두고, 넷째는 문서 계시인 성경, 다섯째는 하늘나라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근본으로, 위주로 하여 모든 것을 논리하고 행정해 나가는 것이 성경을 따른 총공회 교리신조의 둥치이다. 총공회의 여러 독특한 교리신조는 다 여기에서 자라 나오는 가지들이다.
(5)(총공회 교인의 상식-총공회 행정의 일부)
(가)총공회 행정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교회의 모든 의사결정이 종다수 가결이 아니고 진리대로의 전원일치라는 점이다. 이는 '아무리 다수가 말해도 진리가 아니면 따를 수가 없고, 비록 소수가 말해도 진리면 따른다. 결국 소수도 다수도 버리고 진리만을 따라간다'는 성경적 사상에서 취하고 있는 제도이다.
진리대로 전원일치가 안 될 때는 교회적 결의는 뒤로 미루고 일치될 때가지 기도하고 토론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그 동안의 실행은 각자 양심에 따라 행한다. 역사적으로 옳게 깨닫는 자는 소수이기 쉬운 점을 생각하면 이는 교회의 타락을 막는 아주 귀한 성경적 행정이다. - 6 -
(나) 성경은 하나님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주의임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주의다. 민주주의라 말은 종다수주의라는 말이니 그 방편이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주의라 말은 하나님 독재를 말하는 것이니 즉 영원 자존하신 한 분 그분에게 독재당하여 따라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그분이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면에 완전하신 주권자이시니 독재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우리는 그분에게 독재당하여야 하고,
그 독재 당하는 것으로 만물에게 독재하는 것이 기독교 정치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분의 뜻인 성경대로 모든 것은 결정을 하라는 말이다.
(예)
예수님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되시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이 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고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렸는데 예수님이 그렇게 존귀하게 성공한 것은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독재를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죽어도 ( )로 순종하고, 또 그 대로 남에게도 이행하여야 하지, 양보나 ( )을 용납하면 안 된 다. 이것이 독재주의이다. (보기: 타협, 그대로)
4. 교리와 신조 행정으로 인하여 계속되는 교회의 분열의 역사를 접하면서 우리가 새롭게 각오하고 힘쓸 일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올바른 성경을 가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성경이 잘못되면 올바른 교리신조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올바른 성경이라도 그 깨달음인 교리와 신조는 틀릴 수 있으니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갖는 것에 둘째의 가치를 두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기울여 힘써야 하고, 셋째, 올바른 행정을 찾아 그에 속하기 위해서 전부를 다 기울여서 힘써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과 더불어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자기 육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답)믿는 사람이라면 으례히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자기가 옳다고 믿는 교리와 신조에 ( ) 살게 된다. 그러기에 자기가 믿고 사 는 교리와 신조가 옳다면 그 모든 것은 다 ( )화 되는 것이고, 잘못 된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은 다 영원한 ( )이기 때문이 다.(보기 : 멸망, 영생, 바쳐)
04/05/11/화전집회/사3:1-4(890509/화전집회) - 7 -
1. (1)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세상에서 핍박 받고 외로움 당하는 일이다. 그러함에도 이 기독교를 믿는 것은 이종교들과 달리 기독교는 영원 자존하신 그분으로 인하여 시발된 것인데,
모든 존재가 있기 전에 이 기독교의 씨인 목적이 나타났고, 이 하나님의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모든 것이 예정되고 창조되었고, 보존되고, 섭리해 오시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섭리로 그의 목적의 대상인 우리가 세상에 창조되었고 때가 되매 믿게 된 것이다.
믿고 보니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이 사실과 알고 모르는 모든 존재가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이 비밀과 모든 나타나는 이 역사들이 다 우리 구원을 위하여 예정되어 있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또 우리들이 친히 측량 못 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과 자기가 이 하나님 안에 있어 하나님과 자기가 동거동행을 하고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말씀대로 해 주심으로 인하여 여러 표적과 기적을 체험하고 경험함으로써 세상의 핍박을 불구하고 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자들이 되는 것이다.
(2)총공회 교인이 되는 것은
기독자가 되어 보니 예수교라 하는 것은 꽉 찼는데, 예수교에서 모든 예수교와 하나 되지 안하고 모든 예수교에게 미움과 핍박을 당하는 장로교 교리가 가장 옳기 때문에 장로교인이 됐고,
또 장로교에서 머물면 좋을 터이나 장로교와 다른 깨달음이 있고 다른 행정이 있는데 그 교리신조행정대로 주장하고 실제 그대로 행동을 하다보니 부득불 일반 장로교와 합해질 수 없어 총공회로 나누어지게 됐고, 그것이 옳고 복되다고 믿기 때문에 총공회 교인이 되는 것이다.
이래서 이 교리와 신조를 믿음으로 세상은 물론 일반 교계로부터 정죄와 박해를 많이 받아 누구든지 총공회에 있는 사람은 핍박도 외로움도 있고, 활동하는 데에 불편하고 불리한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 외부에서 오는 것들이요, 이것보다 총공회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따라 살므로 얻는 구원의 유익은 영원하여 더 크고, 또 이 교리 신조를 타협이나 양보하지 않고 이대로 고수하고 보면 그 속에서 나오는 능력과 기쁨이
밖에서 다르다고 오는 모든 어려움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것으로 밖에서 오는 어려움을 감당하고, 소화해서 영양으로 삼고 총공회 교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총공회 교인 중에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받는 복음의 독특함과 그대로 살므로 이루어지는 영원한 구원의 영광을 생각해 보고,
또 자기가 배운 총공회의 그 교리와 신조를 타협하지 안하고 그대로 지켜서 나가 보는 실험을 해보면, 그런 가운데서 자신이 변화가 있을 것이고, 얻어지는 그 증거의 체험과 경험이 있을 것이고, 이것을 가져본 사람들은 천인 만인이 말해도 이 교리와 신조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요, 요동치 않을 것이다. - 8 -
(3)총공회 교인에게 필요한 노력-우리는 이 복음을 배워 지켜 행하면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답)먼저 자기가 배우는 교리와 신조 행정이 일반교회와 ( ) 것을 구별해서 알아야 하고, 다르면 자기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거기에 바쳐 살아야 하고,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것의 영원히 죽고 사는 것이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 다른 교리신조가 과연 생명을 바칠 만치 ( )은 것인지, 복된 것인지, 구별해서 생명을 바칠 교리로 깨달아야 한다. 비록 행하지는 못해도 옳다고 깨달으면 된다. 깨달으면 언젠가는 행하게 된다.(보기: 다른, 옳)
(4)일반교회와 다른 교리신조행정의 몇 가지를 말해 보시오!
(가)구원을 기본구원 ( )구원의 둘로 나누어 깨달은 것.
(나)하늘나라에도 영광의 ( )가 심하다는 것
(다)예수님의 인성은 ( )이라고 하는 것.
(라)종다수 가결은 안 되고 ( )전원일치 가결이어야 한다는 것.
(마)교리신조는 그 무엇 때문에도 양보나 ( )누리 못한다는 것
(아)주권 ( )섭리를 믿는 것
(자)전적 ( )을 믿는 것(보기: 차이, 피조물,에, 개별, 진리, 건설,예정)
2. 우리가 주님 외에 딴것을 의뢰하고 의지하면
첫째는 필연적으로 스스로 망하는 길을 걸어서 망하게 된다. 첫째로 교만,월권, 방탕할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 멸시 학대하고, 남용과 사치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음란하고 더러워져서 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쳐서 망케 하시니 비참해진다. ‘주’가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나 역사하시니 심히 비참해진다. 우리는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면 비참하게 된다는 것을 뼈저리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의지하기로 확정해야 한다.
의뢰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그분이 주셔서 있는 것이요, 앞으로도 가질 것은 그분이 주셔서 가질 것뿐이라고 믿는 것을 말하고, 의지는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외를 상대함에 자기 힘과 배경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이렇게 고쳐 보면 무엇이 나오는가?
(답)( )과( )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람이 ( ) 하게 되고, 조심하고, 다른 사람 동정하여 그를 위해 구하고, ( )주기를 힘쓰는 사람이 되어 점점 깨끗하고 복이 넘치는 사람 이 되어진다.(보기: 나눠, 겸손, 경험, 체험)
04/05/11/화후 집회/히11:1-3(890509/화후집회) - 9 -
1. 믿음은 알고 인정하고 그만 그대로 살면 된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 안에는 참 사람이 상상도 못 할 지극히 크심이 내재해 있다. 그 이유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과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과의 이 사이에 믿음이면 하나님의 그 무한이 유한한 우리들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우리만으로는 허무하고 미약한 존재이며 또 아주 추접한 것들이다. 그런데 믿음만 딱 붙여 놓으면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완전하고 영원하다. 피조물이면서 전능자 같이 되고 전지자 같이 되고 완전자 같이 된다. 그러기에 믿음 가진 것보다 더 위대하고 부강한 사람은 없다.
믿음은 돈이나 아무 자원이 들지 않는다. 다만 자기를 부인하고 전적 거게 소속하고 피동 되면 된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큰 능력이다. 왜 그러한가?
(답)세계를 다 점령한 ( )이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것을 동원하여 전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 진 자는 이 마귀를 이기고, 마귀에게 속한 모든 ( )세력을 다 이 기고 난 후에 가진 것이 것이기 때문에, 믿음은 아무 자본 안 드는 것 이나,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진 실력인 것이다.(보기: 세상, 악령)
2. 하나님을 의뢰하면 좋아지고, 반대로 하나님외에 땅위의 어떤 것이라도 의뢰하면 그는 다 절단난다. 절단 나되 서서히 절단이 남으로써 다시 고칠 희망 없이 절단나 버리고 만다 하는 것을 이사야 3장에 내리 말씀했다.
우리는 자기를 살펴 자기는 조물주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얼마며, 하나님 외에 피조물을 의뢰하는 것이 무엇 무엇이며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 찾았으면 즉시 그것을 고쳐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답)그것이 바로 자기 멸망의 ( )이기 때문이다.(보기 : 원인, 결과)
3.(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하는 것은 믿음은 모든 소망하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든다는 말이요, 이 말의 알맹이는 믿음은 곧 실상이라는 말이다.
믿음은 실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하신 그 말씀은 이미 실상이 되어 있는것이요, 알고 인정하면 벌써 실상을 잡은 것이요, 먹으라 할 때 먹으면 먹어지고, 물 위에라도 걸어가라 할 때 걸어가면 걸어가지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은 정확히 말하면 무슨 말씀인가?
(답)믿으면 무엇이 새로 ( )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 )이요 믿으면 그 실상이 ( )진다는 것이다.
(보기 : 누려, 만들, 실상) - 10 -
(2)‘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신 것은 신구약 성경에 발표해 놓은 기이한 것들이 많은데, 이 기이한 것을 암만 볼라 해야 볼 수가 없고, 인간지식으로써는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기 이 세상을 보고 떨고, 또 모든 일에 대해서 안 가질 염려들을 많이 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한 소망이나 또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해 놓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똑똑히 볼 수만 있다면 너무 굉장해서, 완전히 믿음생활에 미치다시피 할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이런데 사실을 못 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
성경에는 이렇게 보지 못한 것들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셨으니 믿음은 보배가 아닐 수 없다.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올바른 방편이 나오는 데 어떻게 하는 것인가?
(답)(요한8:31)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면 자신이 ( )가 되어지고, 진리를 알게 되는데, 그렇게 안 진리는 똑똑히 ( )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를 ( )케 하는 능력의 진리 가 된다.(보기: 본, 자유, 변화)
(교훈) 우리가 진리를 받으면 처음에는 진리를 버리자니 가책되고 행하자니 싫어서 기막히고 하는 갈등 속에 고통을 갖게 된다. 이러한 갈등 중에 어떤 사람은 그 고통스러운 생활이 싫어서 진리를 던져 버리는 사람도 있 지만,
고통스러우나 하나님의 말씀이니 안 행할 수 없다 해서 이 진리대로 행하는 사람은 그 진리대로 되는 경험 체험을 하게 되므로 그 다음부터는 그 진리가 자기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즉 기뻐서 즐거워서 평안한 마음으로 그 진리대로 하게 된다는 말이다.
4.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곧 실상이다. 이 말씀을 알고 인정하면 그 실상을 잡은 것이고 행하는 것은 그 실상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믿음은 실상이라 하는 것임을 배웠다. 하나님 말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기에 믿음은 곧 실상이라고 하는 것인가?
(답)말씀이면 곧 ( )이다. 진리는 독자적으로 창조의 능력을 가지 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 )이 계신다. 하나님에게 는 전능의 능력과 우리에게 필요한 온갖 ( )가 충만히 있다. 그러기에 믿음은 곧 실상이다.(보기: 은혜, 진리,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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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이 믿음은 꼭 현실에서만 그 실효를 나타낸다. 현실에서 그 현실에 해당된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행해야만 그 실효가 나타나지 그렇지 아니하면 나타나지 못한다.
어떠한 현실에서도 이 세 가지만 하면 전능이요 만능이다. 무엇이든 믿음으로만 하면 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진리와 하나님과 전능과 하나님의 충만이 나와 하나 되어서 움직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
우리의 성공과 승리, 우리의 영광과 존귀와 행복은 믿음에만 있다. 다른데 있지 않다. 문제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찾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답)첫째, 몸으로 ( )를 드려야 하고, 둘째, 이 ( )를 본 받지 말아야 하고, 셋째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 )를 받아야 한다.
산제사는 자기를 전적 주님을 위한 ( )로 바쳐 놓고 사는 것을 말하고, 세대를 본 받지 않는 것은 세상 안 따라가는 것, 현실에 ( ) 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고, 마음이 변화를 받도록 하는 것은 힘써서 일 편단심 하나님의 ( )만을 찾아 행하려는 요 마음 하나만 가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보기: 제물, 세대, 변화, 피동, 산제사, 뜻)
6. 우리가 찾는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하나님중심 하나님 위주의 뜻이요, 하나님이 기뻐 만족히 여기시는 뜻이요, 시간적으로, 존재적으로, 결과적으로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온전한 뜻이다. 이것을 가리켜 본문에 무슨 뜻이라고 했는가?
(답)하나님의 ( )하시고, 기뻐하시고, ( )하신 뜻을 분별하라고 하 셨다.(보기 : 온전, 선)
04/05/12/수새 집회/히11:1-3(890510/수새집회) - 12 -
1. 믿음은 기초적인 믿음과 그 기초 위에 건설되는 건설적인 믿음이 있다. 기초 신앙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나 그 분이 크신 분임‘을 믿는 것, ’신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것과 같이 일반적 신앙을 말하고,
이는 신앙의 기본으로서 아주 좋은 신앙이다. 그러나 이것만이면 그 신앙생활은 실패이고, 그 위에 건설믿음이 있어야 한다. 건설믿음이라 하는 것은 기초신앙 위에 현실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가리킨다.
(예)(창4: )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을 섬겨 제사 드렸는데 가인이나 아벨이나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또 그를 섬기는 그런 기초 믿음은 다 같이 가졌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기 물질을 드려 하나님께 제사하는 그 건설 믿음에 있어서 아벨은 성공했고, 가인은 실패했다.
그것은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을 믿되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믿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하나님 섬기는 모든 생활이 다 자기의 주관적이었지 하나님을 중심하고 말씀을 따라 섬기는 참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치 아니했고,
아벨은 같이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섬겼는데, 그는 현실에서 제 맘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안하고,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섬겼으므로 아벨의 신앙은 하나님이 인정을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가인과 아벨 이후의 성경역사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도 다 이 두 종류의 믿음 중에 기초 믿음에 머무르므로 실패한 사람과 건설 믿음을 가지므로 성공한 사람의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믿는 기초 믿음에 그치는 사람들은 그렇게 믿다가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지, 섬기는지 시험하시는 현실에 가 가지고는 그만 하나님 배반해 버리는 것이다. 배반하는 것은 다 자기중심의 자기 때문이다.
믿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은 기초믿음 위에 현실에서 건설하는 이 믿음을 두고 말한다. 우리가 기초 믿음위에 건설 믿음을 성공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답)현실에서 자기중심의 자기를 ( )해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 분의 ( )을 따라 행하는 객관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보 기: 사랑, 부인, 뜻)
2. 우리가 구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두 가지 있다. 기본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받은 것이요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기본구원은 행함으로가 아니고 순전히 은혜라 하는 것은 그 구원의 가치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 13 -
그 구원은 너무 완전하고 인간의 행위는 아무리 잘해봤자 참 때 묻은 옷과 같기 때문에, 아무리 성자의 행위라도 우리 기본구원에 그걸 붙이면 더러워져서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기본구원도 우리 행함이 조그마치라도 들어야 된다고 주장하나 잘못된 것이다.
기본구원은 순전히 주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 대부활의 대속의 은혜로만 얻는 것이지 들어가는 것이지 인간 행위는 거기에 참가할 수가 없다.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을 얻은 자들이 기본구원을 얼마나 확실히 인정하고 그 구원을 힘입느냐, 또 그 구원을 얼마나 성의 있게 모시고 간직하느냐, 또 그것을 얼마나 감사하며 거기에 순종하느냐 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건설구원이다.
믿는 사람으로서 기본구원의 실패자는 없다. 기본구원은 예수님이 완성해 놓은 구원이기 때문에 실패를 할라 해도 피조물의 능력으로는 실패를 시키지를 못하는 절대성을 가졌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누구나 꼭 같다.
기본구원 터 위에다가 이루는 건설구원은 참으로 그 차이가 많다. (고전l5: 39이하)에 보면 건설구원의 차이를 설명할 때 우주에는 수많은 존재가 제각각의 형체가 있고, 그 형체에 따라 일일이 그 영광이 다른 것처럼 부활의 영광, 곧 건설구원은 이렇게 그 차이가 많다고 말씀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을 둘로 나누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건설구원에 관한 성구를 기본구원에 관한 것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평생을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진정한 평강이 없는 자로 살게 되고,
기본구원에 관한 성구만을 구원에 관한 성구로 보니 한번 뿐인 건설구원의 기회를 다 허비하고 건설구원을 다 절단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을 둘로 나누어 깨달은 교리의 귀중성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의 기울일 노력은 무엇인가?
(답)기본구원을 얻으려고 힘쓸 것은 없고, 다만 이에 대하여 갈수록 더욱 깊고 넓게 ( )달아 감사하고, 이를 힘입어 살므로 ( )구원을 이루는 일이 우리의 기울일 노력이다(보기: 건설, 깨)
3. 현실 속에 담겨 있는 건설믿음이 전능이요 만능이 되는 것은, 믿음은 아는 것, 인정하는 것, 행하는 것 3가지이다. 아는 것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요, - 14 -
하나님의 뜻은 그의 명령이요, 요구요, 교훈이요, 인도라 할 수 있는데, 그 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들어 있다. 또 그 안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에게는 전능의 능력이 있고, 무궁의 충만을 갖고 계신다.
말씀 안에 이 넷이 들어 있는 것은 육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생각해 보고, 행해보므로 알게 된다. 말씀에 나타난 예수님의 피를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해 보면
그 배후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보이고, 또 생각하고 보면 그분의 능력이 보이고, 또 생각해 보면 그분의 사랑이나 모든 충만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 지극히 큰 것들을 보고 나니
자기 밖의 세상 것은 그 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고, 그런 것들에게 피동 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현실에서 이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건설믿음의 행위는 이 넷과 하나되어 움직이는 것이요, 이 넷이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전능이요 만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 안에는 대속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충만한 모든 선포해 놓은 약속의 실상들이 다 거게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알고 내가 인정하고 그만 누리면 되는 것인데, 이것을 가리켜 본문성경에는 뭐라고 하셨는가?
(답)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셨다. (예)밥으로 말하면 아는 것 은 밥을 ( ) 것이요, 인정하는 것은 밥을 씹는 것이요, 또 행하 는 것은 ( ) 소화시키는 것이다(보기: 만난, 삼켜)
04/05/12/수전집회/눅17:5-10(890510/수전집회) - 15 -
1. 말세지 말이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별별 사람 병에 걸려 가지고 있다. 사람병 중에 제일 독하고 치료하기 어려운 병은 악이다. 자기중심 자기 위주 그것이 제일 독한 병이요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다. 그 외에 믿음 병, 소망병, 힘 병, 희로애락 병, 마음의 요소 병, 생활계획 병 등이 있다.
인간 병을 치료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한 진리와 성령과 하나님의 대속의 능력뿐이다. 이 외에는 치료하는 능이 없다. 사람 병 고치는 것을 주님도 소원하시고 우리들도 그러하다.
기독자가 죄를 짓고 그 뒤에 어떤 병이 들었으면 죄 값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성경이 아니다. 기독자에게 죄 값은 없다. 우리가 어떤 죄를 범해도 그 죄는 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간 것이요, 예수님이 그 죄를 부담하사 정죄 받아 대가를 치루시고 우리를 그 죄에서 해방시켜 사죄를 주신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어떤 잘못된 행동이 있고, 그 뒤에 무슨 어려움이 올지라도 그것을 죄 값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부인하는 것이 되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그 어려움은 무엇인가?
그것은 죄 값이 아니라 그런 죄를 범한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역사로 그런 방편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다. 그것을 말해서 형벌과 비슷하나 형이 아닌 징계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범죄 하여 징계 받았을 때 그 현실에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답)(1)그 죄를 대형해주신 주님의 대속의 ( )을 깨닫고, 자기는 주 님에게 그런 형벌을 부담시켰으니까, 그만큼 자기는 주님의 ( )이 되고, 주를 위해 ( ) 받아야 할 자가 되어, 자기 십자가를 찾 아 지고 가야 한다(보기: 고난, 것, 사랑)
(2)또 그 현실은 분명히 자기를 고쳐 ( )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임을 깨닫고, 거기에 해당된 고칠 부분을 찾아 ( )야 한다. 고치면 징계는 없어진다(보기: 구원, 고쳐)
2. (1)사람병을 고치면 육신의 병은 따라서 고쳐진다. 우리가 고쳐야 할 것 중에 첫째로 배운 것은 하나님 외에 딴것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고쳐 하나님만 의뢰하고 의지하라는 것이다.
이는 올바른 존재관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올바른 존재관이 무엇인가?
(답)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시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 )하게 됐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분 ( ) 분으로 말미암아 동하고 정하고 망하고 흥하는 것이니, 하나님만 소망하여 그분만을 ( )하고 의지하라는 것이다(보기:의뢰, 존재, 한)
(2)두 번째 배운 것은 믿음에 관해서이다. 간단하게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셨으니, 성경에 허락되어 있는 소망은 믿음이면 다 제 실상이 된다는 것이요,
또 성경에는 인간이 상상도 못 한 것을 많이 말씀해 놨기 때문에 다 부정하나 그걸 보도록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다. 어디서 믿어야 하는가?
(답)(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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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경해석에 관하여
성경 해석은 성경 깨달음인데 성경 깨달음에는 여러 층어리가 있다. 우선 성경 깨달음 중에는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성경 해석이 있다. 그것은 외부적이요 아주 초보적이다. 그러한 성경 깨달음은 가져봤자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
그보다 조금 나은 것이 과학적 해석이다. 성경을 물리에 맞도록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람들은 성경해석이 물리와 같아야 되지 물리와 같지 안 하면 인정을 안 한다. 이는 과학이라는 그 선 아래에 있는 깨달음이지 그 이상은 될 수가 없다.
그 위에 나아가면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다만 성경적인 해석이 있다. 이는 성경에다가 맞추어 보면 맞지만, 다른 세상 어떤 지식에 맞추어 봐도 맞지 않는 해석이다. 그것이 비로소 올바른 해석의 초보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성령의 감화적인 성경해석이 있다. 성령의 감화적인 해석은 인간만으로 생각하는 생각과 정 반대이므로 사람들은 취하려 하지 않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해석이 가장 옳은 해석이다.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세상적인 해석이다. 그 해석이면 세상과 마찰될 것이 하나도 없다. 과학적인 해석을 하면은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 잘 알아듣고 잘한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성경대로의 해석을 하면 성경을 해석하는데 도로 성경을 가지고 한다고 하여 다 인정하지 안 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을 다른 성구대로 해석하는 것이 그것이 비로소 하늘 문에 들어가서 참 신앙의 초보를 걸어가려고 하는 고 사람이다. - 17 -
이제 거게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해석하는 것은 세상과는 아주 거리 멀고, 일반 그 교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여게서 낯설게 여기고, 일반교리화 되지 아니한 해석을 말할 때 이상하다 하여 박해를 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성경해석을 취하여야 하는가?
(답)( )대로의 해석에서 ( )의 감화대로의 해석으로 나아 가야 한다.(보기: 성령, 성경)
4. 본문의 말씀에 제자들이 믿음을 더해 달라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더해 주지는 않으시고, 믿음의 위력에 대한 말씀을 먼저 해 주셨다. 겨자씨 믿음이란 생명 있는 믿음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일반화 되어 있는 깨달음이다. 그러나 여기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영감을 따라 더 세밀히 해석하여 일반화 되어 있는 것을 꿰뚫고 나가므로 이대로 믿고 사는 생활은 세상이나 일반교계로부터의 마찰이 따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부분 독특한 총공회 교리신조이다.
그러나
이 교리신조대로 살면 그 마찰의 어려움보다 몇천 배도 더 되는 큰 유익이 있어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에 좋아서 더 이 교리신조행정대로의 신앙가가 되지만
이 독특한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자기가 지키지 않고 사용하지 안하면 자기는 이로 말미암아 오는 혜택은 하나도 없고 오는 바람만 맞으니까 그 사람은 도망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답)말씀을 들을 때 ( )적 해석에 안 맞은 것을 그냥 믿거나, 아 니면 ( )해 버리거나 하지 말고, 깊이 기도하고 궁구해 가지고 바로 ( )고 믿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러면 영감이 와서 밝 히 깨닫게 된다(보기: 배척, 일반, 깨닫)
5. 본문의 겨자씨 비유에서 겨자씨 믿음의 큰 능력 3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그 큰 뽕나무를 손도 대지 아니하고 뽑고 옮기고 심는 능력이다. 이는 초자연적인 그 뽑는 능력과 옮기는 능력과 심는 능력이라고 해석하지 안할 수가 없다. - 18 -
둘째는 겨자씨 믿음은 흙에게 먹히지 안하고 흙을 먹고 도로 겨자씨가 자랐다. 이는 겨자씨 믿음은 세상에게 져서 세상화 되지 않고, 세상을 양식으로 먹고 그 믿음이 도리어 점점 자라가는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또 하나의 능력이다.
겨자씨 믿음이 세상화 되지 않는 능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것은 아무리 커도 흙 속에 들어가면 ( )이 되고 만다. 생명은 하나님과 ( )이요, 이 연결 은 피와 성령과 진리, 하늘 소망으로 되는데, 하나로 말하면 ( ) 으로 된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 )대로 행할 때, 그것으로 하나님과 연결되 는 산 믿음이 되므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보기: 연결, 흙, 생명, 말씀)
6. 겨자씨 믿음의 3째 위력은 '뽕나무야 뽑혀서 바다에 심기우라‘하고 명하고 뽕나무가 이에 순응한 것이다. 즉 온 세상이 부인하는 비합리적이요 비역사적인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단행하고 피조물은 이에 응종하는 그것이 셋째 능력이다.
겨자씨 믿음은 현실에 있다. 현실에서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겨자씨 믿음인데 그 것이 산 믿음이 되어 세상을 이긴다고 했고, 이렇게 단행과 응종의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말씀 속을 생각으로 들여다보면 그 말씀 속에 예수님의 피가 들었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과 전지전능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말씀과 하나 되어 움직이니 겨자씨 믿음이 보기에는 시시해 보이나 세상에게 굴하거나 썩지 않는 것이고, 세상반대의 일을 단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좋은 모든 것은 어디에 들어 있는가?
(답)현실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 )에 다 들어 있다. 그 뜻 안에는 바로 피, 하나님, 전지전능, 무궁의 ( )와 축복이 들어 있기 때문이 다. 멸망은 그 ( )을 어기는데 다 들어 있다(보기: 뜻, 은혜)
04/05/12/수후집회/눅17:7-10(890510/수후집회) - 19 -
1.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지극히 큰 위력 세 가지를 배웠다.
(1)세상을 접하나 세상화 되지 아니하고 세상으로 더불어 싸워 세상을 이기는 극세의 믿음이 겨자씨 믿음이다.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첫째 위력이다.
(2)둘째 위력은 모든 세상이 부정하는 일이요 역사에 없는 일이라도 단행할 수 있는 것이다. '뽕나무야 뽑혀라 옮겨져라 바다에 심겨져라! 명하였을 것이요‘ 하는 것은 이를 말한다.
(3)셋째는 '그것들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얼토당토 안한 일이나 모든 피조물들이 응종하여 뽑고, 옮기고, 심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 셋째 위력이다.
겨자씨 믿음으로 사는 것이 세상이 보기에는 시시하게 보이지만 반드시 이세가지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3가지 위력이다. 겨자씨가 아주 조그마한 것인데 그 믿음이 그러한 위력이 있는 이유는 그 속에 무엇이 있기 때문인가?
(답)( )이 있기 때문이다. 겨자씨 믿음이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뜻은 ( )요, 그 안에는 피와 삼위 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전지( )과 모든 충만의 넷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산 믿 음으로 사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그 넷과 ( )되어 움직이는 것이므로 그러한 위력이 있는 것이다(보기: 진리, 전능, 생명, 결합)
2. 본문의 ( :7-10)에는 믿음이 자라가는 방편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다.
자라가는 방편을 말씀함에 있어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하셨다.
(1)밭 간다는 말은 주님이 씨 뿌리는 비유에 우리 심신에는 옥토, 돌밭, 또 길바닥, 덤불밭이 있으니 쟁기로 옥토외의 밭을 갈아 ( )를 만드는 ( )의 역사를 말한다(보기: 성화, 옥토)
***길바닥은 세상에 시달려 사는 가운데 인간들의 심리나 인품이 땅과 같이 굳어져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나 아무 깨달음이 없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되고, 그 안에만 생명이 있는 줄 알고, 자기 전부는 말씀에 기울여 살겠다! 하는 이 옥토가 되도록 만드는 복음 역사를 가리켜 길가 밭을 간다고 말하는 것이고,
돌밭의 돌은 자기중심의 자기이다. 돌밭은 말씀대로 잘 해 나가다가 자기에게 걸리면 변동한다. 이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또 하나님 말씀 앞에서 죽고 사는 이 사람을 만들라고 힘들여 노력하는 것이 돌밭을 가는 것이다.- 20 -
덤불밭은 그 속에 세상이 가득 차 가지고, 몸은 교회 와 앉았어도 항상 세상만 생각하고, 이 세상 재리 염려가 사람의 마음이나 인격을 다 차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먹을 것이 없으니 말씀의 결실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런 것을 회개를 시켜서
하나님의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을 그대로 복종하는 사람을 만드는 이것을 가리켜서 밭 갈다가 온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2)'양을 치거나' 양을 먹이고 다스리고 치료하여 ( )하는 것을 총 칭해서 ‘양을 치거나’로 말한 것이다(보기: 관리)
(3)이래서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신 것은 신앙생활에 흠 없이 하나님이 만족할 수 있을 만치 충성되게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다가 돌아오면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주님이 (요한4: )에서 가르치신 것처럼 인격은 옳은 행위를 먹고 자라고 건강해진다. 그러기에 본문에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겠느냐‘ 하신 말씀은 하루 종일 충성되이 일했다고 해서 혼자 먹게 하겠느냐, 혼자 행하게 하겠느냐? 주인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 하나님 일하는 사람들은 그 밭을 갈든지 양을 치든지 하는 일에 얼마 충성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혼자 먹기 쉽다. 저 혼자 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믿음이 자라는 것의 반대로 믿음을 박살내는 방편이다. 다 이것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절단 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이 먼저 일하시고 그 다음에 자기는 거게 따라 피동으로 일하고, 언제나 자기가 하는 것은 껍데기요 하나님이 내부에서 일하시도록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가는 방편은 무엇인가?
(답)(가)아무리 죽도록 ( )을 하고, 권위 있게 목회를 해 왔어도, 거 기서 다시 하나님의 ( )을 찾아, 하나님이 동하면 ( )하고 정하면 정하는 이것으로 계속하는 것이 종의 할 일이요, 우리 기독자들의 모든 신앙생활이어야 한다(보기: 충성, 뜻, 동)
***여기
‘밭 갈고 양치고 돌아와서 주인 먹을 것을 예비하고 주인 먹는 동안에 수종들고 그 후에 먹으라’ 하신 주인 먹을 것 예비하는 것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 찾아 가지고 - 21 -
‘수종드는 것’은 자기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는데, 이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내대로 날뛰지 안하고, 내 요소가 하나도 안 나오도록 노력하고, 오직 그분의 지체로 동하고 정해 가지고, 그분 하는 일에 수종들고,
이제 ‘하나님이 다 먹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 일을 다 이루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내적역사를 다 하시고 난 다음에, 우리들이 그 일을 함으로 세상에서 발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믿음이 더해지는 첫째 방편이다.
(나)믿음이 더해지는 또 하나는 이렇게 하고도 ( )받을 줄로 생각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 )를 생각하니까, 자 기는 당신에게 너무 큰 값에 팔린 것이
너무 가치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마음에 고민을 가지고 마지막에 는 언제나 '( )한 종이라' 고백하는 이것이 믿음이 자라가는 방 법이라고 가르치셨다(보기: 대가, 칭찬, 무익)
04/05/13/목새집회/히11:1-3(890510/목새집회) - 22 -
1. 교회의 유래(1)
우리의 구원의 시발은 자존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영원 전에 당신의 의지 활동의 시작으로 목적을 정하셨으니 그것이 곧 우리 구원의 시발이다. 이 목적을 정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셨는데, 이를 그 뒤에 발표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고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그리스도는 누구신고 하니,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 중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을 가리킨다.
(창l: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니라’하실 때의 이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창조하신 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했는데 그때에 다니신 하나님은
영원 전 하나님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의 목적, 곧 택함을 맡으신 하나님을 가리키나니 그리스도라는 제이위 성자 하나님이 그때에 수면에 운행하셨던 것이다.
또 사람을 마지막 날에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그 사람을 관리하시기 위해 그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거기 머물게 하시고, 그때부터 사람으로 더불어 접선하신 하나님이 계셨고,
아담 해와가 선악과 먹고 난 다음에 숲 속에 숨었을 때에 아담을 찾아서 오신 하나님이 계셨으니 그 하나님이 곧 도성인신 하신 그리스도시다.
그 후에 아담의 자손에서 가인과 아벨이 나왔다. 그 아담과 해와는 최초의 교회이다. 그 첫 교회에서 원 줄기가 그대로 나와 가지고 된 것이 곧 아벨의 줄기요, 거기서 탈선되어 잘못되게 갈라져 나간 것이 가인이다.
그 후에
많은 사람들 중에 에녹이 그 아벨로 계통된 원줄기를 이었고, 노아 때에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 있었으나 다 탈선하고 노아만이 바른 계통의 줄기가 되었고, 그 아들 중 셈(야벳)이 올바른 계통으로, 함은 탈선 된 계통으로 삐끌어졌다.
그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세워 새로운 생명의 도를 가게 하셨고, 따르는 자들과 조카 롯을 데리고 가던 아브라함에게서 롯이 탈선되어 나가고 아브라함은 원줄기를 이어 나아갔다.
그 후에도 토막토막 이런 계통으로 계속 되다가 그 후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아, 이스라엘 종교말년에 선지자가 없는 어두움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암흑기간 중에도 둘로 나누어져 있었으니, 그것은 그 암흑기 끝에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 중에 주님을 영접하는 자와 배척하여 십자가에 죽인 자들로 나누어진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23 -
이래서 많은 세월 동안 육체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세상에게 짓밟히게 해서 유대인의 그 박해라는 것은 역사에 없는 그런 참사의 박해를 받았다. 인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모질고 독한 그 박해를 받았지마는 그 이스라엘의 유대인이라 하는 종자가 남아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킁 능력이요, 또 그분이 주권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보고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거게서 비로소 수백 년 후에 한 선지자 낸 것이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요, 신약 시대의 처음 시작한 선지자이다. 양쪽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중간에 중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세례요한이었다.
그래서 그가 소개한 예수님으로 인하여 교회는 완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역사적 유래를 살펴 볼 때 우리가 알고 주력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가?
(답)전 역사를 걸쳐 교회는 ( ) 갈래로 나누어지며 흘러가는 것임을 바 로 깨달아, 언제나 영원 전에 ( )에게로부터 내려오는 올 바른 ( )에 서려고 힘써야 한다(보기: 하나님, 계통, 두)
2.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나는 쇠해야 되고 그는 흥해야 된다는 선의의 이양 방법으로 자기 사명을 잘 감당했다. 그러나 그 때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였다. 그렇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과 예수님이 가르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과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주님에 대한 상반된 태도와 그 결과에서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 대하여 우리가 취할 바른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예)이 풀 포기를 봐도 처음에 났던 속잎이 자기 역할을 다 하고 나면 누렁잎이 된다. 누렁 잎이 노력한 것으로서 인해서 새움이 나온 것이다. 새움이 나오면
식물들은 그 새움을 해치지 않고, 고요히 마지막에 누런 겉잎이 될 때까지 자기에게 있는 영양을 다 기울여서 새움을 자라도록 보양하고 보양이 끝나면 그는 말라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미혹 받아 변질이 되어서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 문제다.
사람은 완전자가 없다. 자기가 어제 잘못 가르치고 오늘에 그것을 수정할 수 있고, 또 자기보다 더 나은 깨달음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의 역사는 자꾸 새로와지게 한다. 그것은 옛 것은 옛날시대를 감당했고, 또 오늘에는 새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새 것으로 자꾸 하나님이 이렇게 자라가게 하시기 때문이다. - 24 -
그러기에 과거에 그 깨달음이 그 시대를 완전히 감당했지만 후 세대가 볼 때에는 자기들이 깨달은 새로운 깨달음에 비해 아주 뒤떨어지고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조롱하는 것은 마치 식물의 새 움이 자기를 나게 한 첫 떡잎을 무시하는 것과 같이 배은하는 일이요 위험한 일이다.
그게 없었으면 제가 날 수도 없었고, 또한 자라지 못한다. 과거의 깨달음은 과거를 감당한 것이요, 새 깨달음의 둥치로서 언제든지 굳게 잡고 나가야 하지 그 둥치를 요동하면 안 된다.
그러나 그 둥치만으로서 계속하면 잎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그 원둥치에서 새로운 조그만한 움이 나 가지고 그게 자라야 잎도 피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그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 없어져도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다음 세대는 그다음 세대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교리와 신조도 보여 주시고 또 행정도 보여 주신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깨달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답)묵은 둥치를 새움의 깨달음이 ( )하면 자기를 멸살시키는 것이 되고, 또 묵은 둥치만 갖고 새움을 무시하면 거기에는 ( )이 없다. 묵은 둥치는 새움을 ( )해야 되고, 새움은 묵은 둥치의 혜택을 감사하고 그 ( )을 언제든지 입어야 된다(보기:희망, 무시, 양육, 혜택)
3. 교회의 유래(2)
(가)세례요한이 소개한 주님이 오셔서 대속을 완성하시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계기로 사도들이 신약 교회를 창설했다. 신약 교회를 창설한 것은 곧 구약 교회는 둥치요 신약 교회는 거게서 난 새움으로서 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생긴 사도 교회가 이리저리 자꾸 퍼져 가지고 넓어졌다.
그 이후 예수교가 바울 사도에 의해 로마로 전도가 되었다. 당시 로마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강대국이요 문화나 종교의 종합국이었지만, 복음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를 전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을 시켜서 능히 복음이 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 결과 그 로마에서 교회가 왕성하게 퍼져서 이제는 교회가 오히려 세상 국가를 다스리고 주도권을 가질 만치 그렇게 흥왕이 되게 되었다. 그 결과교회에서는 세상을 본 받아 교회의 황제를 세우게 되는 바 그것이 로마 카톨릭의 교황제도이다.
로마 나라에 이렇게 교세가 자꾸 왕성되어 세상나라의 황제가 이 교황에게 인정과 통치를 받아야 되는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한 때부터 교회는 급속히 부패가 시작되어 로마 교회는 차차 불의한 교권들이 생기기 시작해 가지고 차차 속화, 타락하게 되었다. - 25 -
그 후 자기네들 주장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못 보게, 또 제한적으로 보게 하고, 천주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중에는 속죄표라는 것을 만들어 돈 받고 파는 데까지 점점 더 타락하게 되었다. 사도들이 세운 거룩한 사도교회가 로마 카톨릭(천주교)으로 계속되는 가운데 차차 속화 타락되어 갔던 것이다.
거기에서 이는 성경이 아니고 틀렸다 하여 새로운 새 움이 돋아 나왔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개혁교라, 개신교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신교는 로마 카톨릭이 하나남에게서 나온 올바른 성경적 계통에서 탈선 되어 나가므로 그것을 꿰뚫고 그 올바른 계통을 이어간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개신교가 나와 가지고 또 거기서 교리와 신조가 달라서 갈라진 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걸로 말하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이 세 가지 교파가 들어왔고 다른 외국에는 그 외에도 많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데 성결교는 장로교와 순전히 교리 신조로 인해서 갈라졌고, 감리교는 교리 신조도 다른 동시에 행정이 달라서 그래 가지고 갈라져서 감리교라는 그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후 다른 교파도 들어와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그러면 총공회의 유래는 어떠한가?
(1)위에 말한 교회의 유래를 이어 받아 우리는 장로교 교리를 믿고 장로교에 속해 있었다. 장로교에서 또 기장이니 예장이니, 또 예장 중에도 고신이니 총신이니 나누어 졌는데, 우리는 고신측에 속해 있었다.
고신교측에 있을 때에 서로 다른 깨달음을 주장함으로 많은 마찰이 있었고, 마찰 끝에 제명하므로(제명을 하지 않았으면 나오지 아니하였을 것임) 고신에서 나와서
우리대로 가는 게 옳다 해 가지고 처음에 교회로는 서부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차차 차차 주일학교 반사가 목사 되고, 그 목사가 개척하고 해서 모아 이루어진 진 것이 총공회이다.
우리가 총공회라고 한 것은 처음부터 이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처음에 한 교회였던 것이 차차 차차 교회가 많아져 가니 복음운동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의논이 할 일이 있고, 또 교리 문제 나면은 서로 토론해 가지고 바른 것을 지켜야 되겠고 하기 때문에
(행전l5: )에 있는 예루살렘 공회를 본받아 함께 모여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 의논을 했는데, 그렇게 모인 그 모임의 이름을 뭐라 할 것이냐? 그것 예루살렘 공회처럼 같이 모였다는 뜻으로 공회라 하자! 한 것이다.
따라서
개 교회교인들이 모이면 개 공회가 되는 것이고, 지방교회끼리 모이면 지방공회가 되는 것이고, 전국에서 모이면 총공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외부를 상대하여 교단 이름으로 쓰고 있다. - 26 -
모여 가지고
사건이 있을 때는 사건 처리하고, 처리하고 나면 공회는 없어진다. 공회 할 때 사회를 위해 임시 공회장이 있으나 공회가 끝나면 공회장은 없게 되고, 다만 상시 행정을 위해 노소원을 둔다
우리가 대한 예수교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이유는 예수교는 대한이나 세계 에 속한 좁은 예수교가 아니고, 영원 전에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와서 전 우주와 영계에 충만해지는 도이기 때문이다.
총공회는 이렇게 하나님에게서부터 내려오는 성경대로의 올바른 계통에 속하여 그를 따라가려고 교리적으로 신조적으로 행정적으로 구별을 계속해 와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노선이다.
오늘날만큼 되는 데에는 그 이색짐으로 인하여 많은 핍박과 정죄가 있었다. 그러나 선배들의 기도와 많은 노력을 통해 차차차차 이해되어서 지금은 교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열심 있는 극보수의 독특한 교단 정도로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일반교리신조행정과 (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 )고 좋은 것인지, 하는 것을 바로 깨달아 그것을 계승 ( )시켜야 하고, ( )합력하여 총공회 복음운동에 주력하여 하나님과 ( )을 영광스럽게 하여야 한다. (보기 : 복음, 합심, 발전, 옳, 다른)
4.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의 사랑을 구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간단하게 사죄 칭의 화친 하늘의 소망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으로 중생되어 이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자라가야 된다.
하나님을 좋아하므로 그의 형상인 사람을 좋아하여 이 네 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다.
속에 이것 없이 온갖 좋은 것을 주는 것은 다 뱀의 사랑이기 때문에 속여서 망케 하는 것뿐이다. 뱀의 사랑은 처음에는 어떻게 달콤한지, 안 먹으면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사랑하고 나면은 뒤가 기쁘지 않고 그 결과는 다 오그라진다.
(답)하나님의 사랑은 좀 딱딱하고, 가시 모양으로 찌르는 것이 있지만 속에는 ( )이 있고, ( )가 기쁘고, 그 결과는 갈수록 ( )다 (보기: 뒤, 핀, 평강)
04/05/13/목전집회/골3:1-5(890511/목전집회) - 27 -
1. 존재관 복습
우리를 있게 하신 이도, 잘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것도 하나님이시요, 또 그 모든 안팎 행동에 대해서 관찰하시고 공평되게 심판하사 보응하시고 이리저리 합하고 나뉘어 역사하도록 섭리하시는 이도 하나님 한 분이시다.
이런데
사람이 악령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어두워져서 독존, 독립, 독행자처럼 생각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다 멸망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멸망에서 돌이켜서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움직이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도 소망도 그분에게만 두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의이다.
(예)(말3: )에서 명한 온전한 십일조는 자기의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셔서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하는 줄 알고, 그 표시로 그분의 명령을 따라 제일 먼저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십일조를 안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제 것으로 생각하는 소유권 도적질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하는 것을 제 마음대로 쓰는 용도 도적질이다. 이렇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겠다. 하시고 믿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까지 하셨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데 이는 그 가지 수를 빼지 않는 것도 해당되겠지만 그것은 껍데기이고, 그 알맹이는 무엇인가?
(답)하나님을 ( )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이 ( )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 )대로 써야 함을 아는 것이 그 알맹이 이다. 그렇게 아는 표시로 첫 ( )하는 것이 십일조이다
(보기 : 순종, 뜻, 주신, 의뢰)
2. 하나님께서 '알곡은 모아 하늘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고 하셨다. 알곡의 알맹이는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불멸성에 속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 온 것이다.
위의 말씀은 우리의 행동 하나, 소유 하나에도 알맹이가 있어야 멸망하지 않고,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는 다 멸망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물질이라도 알맹이가 있고 껍데기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라는 물질 그것은 껍데기요, 그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의 계약이다. 그것이 영원성 완전성을 가진 그 안에 있는 알맹이다. 그 알맹이인 진리가 뭐냐? - 28 -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내게 준, 그의 것이고, 또 그분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을 활용해야 된다는 진리이다. 이것이 그 물질의 알맹이이다. 그 돈이 속에 이 알맹이를 가지고 활용되면 그 돈은 살고, 없으면 다 멸망한다.
(답)우리는 우리의 행동이나 소유 속에 ( )가 있어야 그것이 멸 망하지 않는 줄 알고, 껍데기와 함께 알맹이를 ( ) 가져야 한다(보기: 갖추어, 알맹이)
3. 겨자씨 비유에 믿음이 자라가는 그 방편에 대해서 밭갈고 양치고 돌아온 종에게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이렇게 할 주인이 있겠느냐? 없다고 했다. 이 말씀은 인인관계의 법도로 보이지만 실은 주님과 구속받은 성도들과의 그 사이를 두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개운동, 구원 운동을 많이 해서 성공을 하다가 보면 어찌 되느냐? 하나님이야 어찌되든지 상관없이 저 혼자 날뛰기 쉬운데, 그것은 스스로 주권자인양, 獨行(독행)하는 일로써 믿음을 절단 내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경계하여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냐?
(답)자신의 신앙생활이 어디까지 ( )하고 ( )했다 할지라도 다시 주님의 뜻을 찾아 그분과 ( )으로 모든 신앙살이를 하라 는 말씀이다(보기: 충성, 성공, 동행)
4. 병 나은 보고에 관하여
구약에도 하나님 은혜로 병 나은 것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셨고, 예수님 당시에도 제사장에게 가 보여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통해 병 나은 자를 밝혀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당신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써 그 사람이 죄도 사함 받고, 육체도 완전히 나음을 받았다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증해 주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의 모든 부정적 인식에서 해방시켜 복되게 해 주시려는 은혜였다. 뿐만 아니라 보고 듣는 사람에게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병 나은 것을 보고하게 하는 것도 이러한 성경적 근거와 믿음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우리는 무슨 병원에 가서 치료해서 고쳤다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 은혜로 고쳤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나쁜 관념이 있다.
그것은 아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으로 하여금 병 낫는 표적을 거두어 가시게 하는 일이다. 모두 다 성경지식이 많고, 말도 잘하는 이 세대에는 인간병이나 육체의 병이 낫는 것으로 그 말씀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확증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 29 -
구약 이스라엘 말년에도 사람들은 주님에게 표적을 구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회개하고 하나님 은혜로 ( ) 낫기를 위하여 ( )하고, 힘써야 한다(보기: 기도, 병)
5.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뱀 사랑의 두 가지가 있는데 (고전 l3: )에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신 사랑은 하나님 사랑을 말한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 :13)에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제일 귀하게 여기고 있는데, 사랑은 이렇게 두 가지이기 때문에 인간을 멸망시키는 멸망의 독이 사랑에 제일 많이 들어 있고, 또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의 축복이 사랑 속에 제일 많이 들어 있다.
(예)인류 시조가 사랑으로 서로를 죽였으니 이는 뱀의 사랑이었기 때문이요, 둘째 아담은 사랑으로 죽어 우리를 영원히 살렸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 말로 말하면 예수님의 피, 성령, 진리, 하늘의 소망 이 네 가지이다. 이 4가지로 예수님이 우리를 살린 것이다. '사랑 안에 거하라' 하는 것은 바로 이 네 가지 안에 거하라 말이다. 이 4가지 외에는 사랑이 아니다. 이 4가지가 없는 사랑은 다 뱀의 사랑이다.
그러나 이것을 구별하지 않고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하는 말씀만 생각하고 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니까 교회에서 서로를 마구 죽이고 있다. 교회가 배암 사랑으로 죽어가는 걸 보고 마음 아피 여기고, 참 가슴을 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4가지가 없는 뱀 사랑으로는 멸망의 원인인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죽음 문제, 마귀 문제, 하나님의 진노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하나님의 심판 문제, 영생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사랑을 ( )해서 하나님 사랑으로 가족이나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한다. 좋아하고, 동정하고, ( )해주고, 관용하는 껍데기 속에 ( ), 성령, 진리, 하늘 소망이 들어 있어야 한다(보기: 위, 피, 구별) 이 사랑은 절대 실패 없다.
6. (골로새서3:1-6) - 30 -
(1)'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으로 중생되었으면 하는 말씀이다.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 멸망하지 안할 무궁세계의 것을 네가 찾으라, 무궁세계의 영원한 것만 네가 가치로 알고 그것만 ( )해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거게는 땅위에서 위엣 것만 찾고, 그것만 위해서 전심전력 기울인 주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하늘의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아버지에게 상속받아 가지고 이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말은
피조물인 예수님의 인성을 주로 두고 하신 말씀이다. 무궁세계는 위엣 것을 찾는 일에 주력한 예수님이 승리하셔서 피조물 중에 제일 ( )한 위치, 제일 승리한 위치,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위치에 앉아 계신다.
또 아버지 우편이라는 것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동하고 정하지 이렇게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받았다고 해서 가지고 이제는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먼지만큼도 영원무궁토록 예수님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 )당하는 것이 아버지 우편의 위치이다. 하나님 밑 만물지상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땅위에서 이런 위치를 마련한 것도 (빌2: )의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이니라고 하셨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내가 그분에게 절대 복종하면 피조물은 나에게 절대 복종하고, 내가 그분을 배반하면 모든 피조물은 다 나에게 배반하도록 돼 가지고 있다. 그분과 나와의 관계( ) 모든 피조물과 나와의 관계는 되는 것이다(보기: 대로, 독재, 존귀, 마련)
(2)( :2)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그 말은 위엣 것만 ( )로 생각하고 땅엣 것을 가치로 생각지 말아라. 이러니까, 땅의 것이야 뭐 있으나 없으나, 천하에 제일이거나 말았거나 그까짓 거로 여기고, 하늘나라의 것은 조그만한 것이라도 그것만 가치로 삼아 가지고 살라는 말이다(보기: 가치)
(3)( :3)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너희가 죽었다 말은 첫째 아담의 자손이 죽었다는 말이다. 생명도 죽었고, 또 기능 활동의 자유도 죽었고, 왜?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은 것으로 믿는 그 믿음으로 죽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없이 살던 그 옛사람, 곧 첫째 아담에 속한 자기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완전히 죽어 버렸다. 곧 영육은 그대로 있지만 자기를 대신하여 죽은 주님이 전적 자기를 주관하지, 자기는 ( )도 자기를 주관 할 수 없는 자가 되었고 하는 말이다. - 31 -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감취었음이니라'-우리가 다시 둘째 아담에게 받은 이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 말은, 하나님의 절대 ( ) 안, 절대 주권 안, 절대 전지 전능 안에 감추어 있다.
거게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취었음이니라‘-그리스도 곧 근본인 제사장 선지자, 왕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 ) 만들고 선지자 만들고 왕 만들려고 우리와 함께 계시느라(보기: 제사장, 보호, 하나)
(4)( :4)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이제 우리의 생명인 그리스도가 영원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나타날 때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형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만들어진 우리들도 제사장, 선지자, 왕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리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므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육의 생명처럼 무형의 존재로 내안에 내 생명이 되어 계신다. 이러니까 그분이 내 힘 중에 힘이 돼 있고 내 지혜 중에 지혜가 돼 가지고 있고, 내 생명 중에 생명이 돼 가지고 있다. 내 중에 내가 돼 있다.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에 말씀 하셨다. ( ;4)의 말씀에서 특별히 우리가 유의할 점이 무엇인가?
(답)삼위일체 ( )이 우리 안에 계신다. 무형으로, ( )으 로 계시면서 완전으로, 능력으로, 전지로, 전능으로, 사랑으로 역사 하신다. 나중에 내가 되어 계신다. 이렇게 좋은 ( )이기 때문 에 땅위에 부러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보기 : 생명, 구원, 하나님)
04/05/13/목후집회/엡1:3-4(890511/목후집회) - 32 -
1. (1)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 한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구원이다. 삼의일체라는 것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세 격위를 가지신 분이신데 본체는 하나시라는 뜻이다.
격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에 맡은 지위가 각각 달리 분담되어 있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 분담된 구원 역사의 격위를 각각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이렇게 발표를 해 주셨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그 격위가 셋이지만 그 본체는 하나이다. 하나인데 성부도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셨고, 성자도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셨고, 성령도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셨다. 사람들 생각으로서는 그러면 본체도 셋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본체는 하나다.
결국 하나님은 격위가 삼위이시고, 삼위가 본체는 ( ) 본체인데, 또 삼위가 각각 본체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 )가 역사하는데 그 안에 성자 성령이 같이 계시고, 성자 안에도 같이 계시고, 성령 안에도 같이 계신다. 이것이 삼위일체이다. (보기: 성부, 한)
이것은 사람들의 지식으로 이렇게 명확히 분해하고 표현할 수 없다. 억지로 사람생각대로 나누어서 말하면 모순 되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우리는 그저 하나님은 삼위일체라 그렇게만 알고, 성경이 말한 대로 택하신 것은 성부가 역사하신 것이다!
또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하신 것은 성자가 하신 것이다! 또 우리에게 감동하는 역사하시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 믿으면 된다. 차차 신앙이 자라가면서 좀더 가까이 깨달을 수 있다
2. (엡1:3-4)해석
(1)(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라고 하셨다. ‘하나님’ 한 것은 ( ) 하나님을 가리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하신 것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신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하는 것은 곧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라는 단체의 주가 되신 분으로서, 우리의 모든 것을 ( ) 맡으사 대속으로 완료한 그 공로를 베푸시고, 대속 받은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의 실력자로 길러 가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이 아버지는 성자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면서 동시에 ( ) 아버지가 되신 아버지이시다.
이래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하는 이 말을 간단하게 간추려 말하면 우리를 이미 구원하셨고 우리 구원을 완전케 하시는 곧 주님의 아버지요 우리 아버지라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이 말은 대속 받은 자가 자기에게 기름 부음의 그 직책을 이루어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과정 안에서 하신 말이다. -33-
'하늘에 속한'-이 하늘에 속한이라는 것은 이 공간적으로 하늘이라는 이것을 말한 것도 아니고 또 영계를 가리켜 말한 것도 아니고, ( )에 속했다는 말이다. 이 모든 피조물의 차원이 아닌 피조물 차원을 초월한 그 차원에서 그 말이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신령이라고 하는 것은 피 조물성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그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하나님의 그 ( )과 같은 그런 성질, 그런 차원의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
(보기: 속성, 완전, 우리, 책임, 삼위일체)
2. ( :4)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뭐이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러면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 는데 그 복의 일호가 뭐이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 )했다는 것이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이 사랑 안에서라 말은 하나님이 완전 책임을 지시고 우리를 하나님처럼 완전케 하시는 그 계약 안이라 말이요, 또 ( )안이라 말이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여게는 거룩이라는 것은 ( )라는 말이다. 거룩이라는 것은 구별하여 보다 낫고, 보다 낫고, 해서 하나님 다음에 가는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보다는 못하고 모든 피조물 모든 존재보다는 나은 구원이다.
'흠이 없게 하시려고'-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조그만한 흠도 없는 ( )을 주신다. 그러니까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이다(보기: 구원, 보다, 구속, 예택)
3. (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 말은 하나님의 뜻 중에도 제일 ( )의 뜻이라 그 말이다.
'우리를 예정하사'- 그러면 우리구원이 하나님이 영원전 예정하신 그 계획 그대로 착착 착착 이루어 가는 것이지, 뭐 돌발적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인양성 일위의 대속과, 또 대속 받은 자를 제사장 선지 왕직의 실력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 )을 그리스도에게 지워 가지고,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 ( )하나님의 아들이 됐다 그 말이다. (보기 : 삼위일체, 책임, 최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아들된 것에 관하여***
우리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 중생 이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물론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난 이 중생도 사실이어서 이 첫째 아담의 자손이 다시 살아난 그 영육을 우리는 영원히 가지고 사는 것이다. - 34 -
이래서 첫째 아담의 자손인 이 영육이 둘째 아담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다시 영생하는 것으로 살아난 것도 중생이다.
그런데 살아난 것만이 중쟁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두 번 출생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요소가 실제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됐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이 첫째 아담의 자손이 있는 것처럼, 둘째 아담의 자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자손이 있는데, 둘째 아담의 자손 그것이 첫째 아담의 자손 속에 들어 있다.
이래서 이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이제 첫째 아담의 자손인 영도 살아나고 마음도 살아나고 몸도 살아나고 살아나 가지고 영원히 죽지 아니할 그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성경(벧전1:24, 약1:18)에 보면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 우리를 생산했다’ 이렇게 낳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또 (고전l5:44-50)에 보면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다음은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요거는 둘째 아담을 말한다.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 같고' 그러면 흙에 속한 자, 곧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첫째 아담과 같다 그 말이다. 우리가 꼭 같지 않은가?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란 말은 지금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은 그거는 따로 있고 그 외에 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우리가 입는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두 조상의 자손이다. 첫째 아담의 자손이요 둘째 아담의 자손이다. 첫째 아담의 자손의 형상은 이목구비 수족 있고 또 내장 있고 외부 있고 이렇게 영 혼 몸, 영 마음 몸, 이렇게 생겨진 것이 이것이 첫째 아담의 자손이오.
둘째 아담은 우리에게 뭘로 나타났느냐 하면 이제 대속하신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으로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 넷이 그분의 형상인데 그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라고 (요한일서 5:8)절에 말씀 하셨다.
결국 우리가 서로 보고 있는 대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늘에 속한 자, 곧 둘째 아담의 형상을 우리가 입은 것이다. - 35 -
이래서 우리는 둘째 아담의 이 형상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다. 진리, 성령, 대속, 하늘소망이 둘째 아담의 형상이다. 그 넷이 들어 죽은 우리의 첫째아담의 형상을 살리고, 첫째아담의 형상을 살린 둘째 아담의 형상은 그 안에 실존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계약적으로 법적으로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됐다 하니 그것도 족하기는 족하지만 섭섭한 것이 첫째 아담의 자손하고는 그 근본 종자가 같고
그 모든 요소가 내게 와서 내가 자손이 됐기 때문에 딱 들어붙고 좋은데 둘째 아담의 자손은 이거 뭐 제도만 그렇고 법으로만 그렇고 이제 약속으로만 아들이지 실제의 본체의 그 요소는 내게 온 게 없어 놓으니까 거리가 멀고 항상 섭섭함을 갖게 된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그게 아니라, 둘째 아담의 자손된 것도 성부의 요소가 왔고, 성자의 요소가 왔고, 상령의 요소가 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 그 말이다.
과연 성경을 보니까 '진리로 너희들을 낳았다' 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너희들이 다 알리라' 하셨고, 또 성경을 보니까 우리를 성전이라 하셨는데,
성전이라 말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고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그 말이요, 또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라 했는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지체니까 이거는 하나님이 나하고 머리와 몸으로 한 몸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요소가 작지만 내게 와 가지고 그것이 자라니까 아버지 닮았고 어머니 닮은 것처럼,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그 요소가 자라서 내가 후에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진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개새끼는 개, 돼지 새끼는 돼지, 사람 새끼는 사람인 것같이 하나님 새끼인 나는 하나님 된다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만 다른 법칙이 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은 첫째 아담의 요소가 분식으로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 요소가 작은 것이 떨어져 와 가지고 내가 됐으니까 이제 나오기는 부모에게서 나왔고 요소는 부모의 요소지만 부모와 사이가 떨어져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요소는 우리에게 와 있되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 본체와 붙어 있다. 붙어 있는 것이 떨어져 있는 것보다 더 좋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과 붙어 있는 것으로서 아들 된 것이다. - 36 -
그러니까 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요소가 내게 실제로 와 있는데, 이제 하나님과 나뉘어서 분식으로 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하나로 연결된 체 내게 와서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니까 내 속에 성부가 계시고, 성자가 계시고, 성령이 계신다.
이것은 그분은 완전자시요 불변자시기 때문에 쪼개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분은 내 안에 계시면서 동시에 수억억만 속에도 계시는데 꼭 같은 하나님으로 계시면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 )하나님은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신다고 하신 것이다. 다만 만물에게는 당신의 능력이 가서 계시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와 가지고 계시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지체라고 하셨다.
이래서 천명이 중생이 되었으면 그 천명 속에 하나님이 다 계신다. 계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한분이 각각의 중생된 사람 속에 쭉 뻗쳐서 계신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광대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구원이니 이질, 異性(이성), 이색된 것이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색진 게 용납되겠어. 그러기에 우리는 능력도, 지혜도, 생명도, 존귀 영광도 다 같이 하나다. 그러함에도 교회가 나뉘어져서 야단하는 것은 다 죄와 악 때문이지 예수 안에서는 하나이다.
***(찾아 연구할 성구)***
(1)(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출산했다는 말이다. 이는 물질의 것이 아니고, 물질에 제한을 받지 않는 완전한 신적 요소가 와서 내가 된 것이다.
(2) (요한일서2:27)'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 부음은 우리 중생된 것을 가리켜 말하는데 표준적으로 말하면 성령을 가리켜 말한다. 합니다. 이러니까 성령이 항상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시면서 가르쳐 준다는 말씀이다.**(마태l0: )참조 이는 성부, 성자도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씀이 된다. 우리를 성전이라고 하신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3)(요한l4: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니라' 예수님이 살았고 우리도 살겠음이라. 예수님의 산 그 삶이 우리 삶인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생명이다.
이러니까 ( :20)에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이랬다. 그러면 주님이, 주님이 우리들 각자 각자에게 계시는 것이다. 한 주님이 여럿에게 뻗쳐서 같이 계시는 것이다.
결론 - 37 -
1.우리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신다. 계셨다 안 계셨다 하는 것이 아니라 밤낮, 평안하고 어려울 모든 때에 ( ) 계신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다. 객관의 남이 아니고 바로 ( )로 계시는 것이다. 진리도 우리 안에 계신다. 온 천하보다 내 안에 계신 이분이 크다.
이 사실을 ( )어야 한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이루어 볼 수 있을 것이고, 의심하는 자에게는 아무 역사가 없이 저 혼자 있게 될 것이다. (보기: 믿, 나, 항상)
2. 주님이 우리 안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계시는 것은 우리 ( )안에 계시는 것을 말한다. 영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되었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한 영은 죄를 지을 수 없다.
다만,
우리 마음에는 계실 때도 있고, 안 계실 때도 있다. 우리가 ( )를 범하면 떠나시고, 예수님의 ( )을 힘입어 회개하면 즉시 들어오신다. 그러기에 우리 영 안에 계신 주님이 마음으로 들어오시려고 문을 두드린다고 하셨다. (보기: 죄, 영, 대속)
3. 우리 안에 나로 계신 이분이 우리의 생명이므로 이분으로 살면, 진리로 살면 사는 생애만큼 다 ( )이다. 육의 생명으로 살면 사는 만큼 다 죽는 것이다.
또 이분으로 살면 전능이요, 만능이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내 안에 계신 분이 ( )다. 아무 두려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 하늘과 땅에 이 분으로 살면 다 해결이고 다 ( )다.
(예)(마태16:15-20)에 베드로가 주님에 대하여 바로 아는 고백을 하였을 때, 주님께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네 안의 아버지시니라‘고 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그 위에다가 교회 세우고, 그 위에다가 열쇠 주노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다.
(보기: 그대로, 영생, 크)
04/05/14/금새집회/골3:1-5(890512/금새집회) - 38 -
1.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죄의 값으로 오는 병이나 불행은 하나도 없다. 예수님이 다 대속했기 때문이다. 죄 값으로 저런 불행이 온다고 보여질 만한 일이 있지만 그것은 그 사람에게서
그 범죄의 요소를 뽑아 가지고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 있는 참사람,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데에는 그와 같은 방편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시는 사랑의 역사지 절대로 잘못한 것에 대한 형벌로 오는 것은 아니다. 요것을 확정지워야 한다.
그러기에 무슨 불행을 당했어도 그 현실에서 감사하고 자기가 고칠점, 건설할 점만 찾아 고치고 행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믿지 아니하고 나는 죄를 지어서 이렇게 이리 벌 받았다 하면 어떻게 되는가?
(답)그것은 예수님의 완전 ( )을 믿지 않는 일이요, 그 결과 하나님과 ( )져 버리므로 능력을 잃고 사망 속에 살게 된다
(보기: 끊어, 대속)
2. 믿음은 무조건 '믿사옵나이다'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따져보면 하나님 믿는 게 아니라 자기 주장, 자기 욕심, 자기 뜻을 믿는 것이다.
이는 어떤 욕심이라도 내놓고 그 욕심을 이루어 주실 것만 확신하면 된다 고 하는 것이니까 결국 하나님은 만물보다 거짓된 그의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들의 그 생각을 따라 이루어 주시는 분이라면 결국은 하나님은 만물 중에 제일 거짓된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는 논리가 된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것은 다 헛일이다.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그 믿음은 어던 것을 말하는가?
(답)( )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기본 믿음위에 건설되는 ( )믿음이요, 이것이 바로 겨자씨 믿음, 산 믿음이다. 이 생활이 하나님과 ( )하는 생활이다
(보기: 동행, 건설, 현실)
3. 복습
(1)(사3:1-4:1)-존재관-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 제하여 멸망시킨다. 또 다른 걸 의뢰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자꾸 악화로 변해져 결국 비참하게 된다.
의뢰라 말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게서 내가 받았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받을 그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하는 그것을 의뢰라고 표시한 것이다. 의지는 대외를 상대함에 있어 하나님외의 다른 것을 배경을 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망칠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 멸시하게 되고, 모든 것을 남용하게 되고 방탕하게 되고, 사치하게 되고, 그 결과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망한다. - 39 -
결 론
1.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 )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온다. 그러기에 그것을 사용하는 데도 그분의 ( )에 맞게 사용하여야 한다. 이렇게 알고 모든 존재를 상대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 )이 주고 또 줘서 복 되게 되고, 또 스스로도 존재관이 바로 돼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얻는다고 믿으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사람 멸시하지 않고 동정할 수밖에 없고, 나누어주려 하고, 자꾸 사람이 복 받을 ( )이 되어 가는 것이다.
(보기: 사람, 뜻, 하나님, 왔)
(2) (히브리서11:1-3)-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라! 믿음에는 기본믿음과 건설믿음 두 종류가 있는데, 기본믿음은 ‘하나님이 계신다. 신구약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하는 것과 같이 기독교의 기본적인 것을 믿는 것을 말하고,
건설구원에 대한 건설믿음은 자기 현실에서 믿는 것을 말한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라야 건설이 된다. 이래서 건설믿음이라 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 건설믿음을 가리키는데, 현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뜻 속에는 예수님의 대속과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전지전능과 하나님이 내게 주시려고 들고 계신 모든 은혜가 들어 있다. 말씀이명 곧 실상이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 )한 것이요, 인정하면 벌써 내 것이 ( )것이요, 행하는 것은 내가 ( )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관이다. (보기: 누리, 된, 발견)
***그러기에 지혜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아름답기로나, 성공적으로나 우 리에게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다 들어 있다***
3. (골3:1-5)-생명과 영생
우리 육신은 생명 떠나면 썩는다. 생명 오면 그 모든 이목구비 수족이 제대로 제 구실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나는 살아 산 내 노릇을 할 수 있다.
손도 사는 노릇을 할 수 있고, 발도, 입도, 귀도 그러하다. 내 전부로 영생을 이루는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되어 있는 우리 영육은 둘째 아담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이 새사람이 우리 속에 주격이 돼 가지고 있어서, - 40 -
그 새 사람 속의 그리스도가 새 사람을 통하여 나를 주장하여 살 때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이 영육이 영생하는 산 노릇을 하고, 그 결과 이제 영원히 영광되어지고, 복 되게 되는 것이다.
(답)우리는 내 속의 생명이신 ( )를 잊지 말고 늘 생각하여, 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피. 성령, ( )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보기: 진리, 그리스도)
(4)(누가l7:5-10)-겨자씨 믿음
겨자씨 믿음의 위력 3 가지위력을 말했다.
하나는 썩지 않는 거, 세상 속에 있으나 ( )되지 않는 것이 첫째 위력이고, 둘째는 얼토당토 안 해도 ( )하는 것이 둘째 위력이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면 필연적으로 단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그 속에 피, 하나님, 전지 전능 지극히 큰 모든 하나님의 은총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고 보니 온 세상이 오와도 두렵지 않고, 천하를 준다 해도 부럽지 않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썩지도 않고, 필연적으로 단행하게 된다.
셋째 이제 위력은 만물이 다 ( )해서 뽑고, 옮기고, 심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단행하는 것은 하나님 명령 순종이니 누가 그걸 응하지 않겠는가? 거게는 만물이 응종해 수 밖에 없다. (보기: 응종, 단행, 세상화)
그 다음에 믿음이 자라는데 중요한 것이 '와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하는 것인데, 이는 혼자 먹으라 하겠느냐? 하나님 없이 저 혼자 ( )하라 하겠느냐?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시키시지 않는데 인생들이 밭 갈고 양 치고 해서 좀 성공하고 좀 능숙해지면 이제 하나님 뒤로 하고 저 혼자 (설교나 행)하는 그 짓을 해서 ( )을 절단 나게 하고 있으니 이 점을 주의 하라! (보기: 믿음, 행)
(5)(에베소서l:3)-하나님의 아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된 것은 첫째 아담의 자손인 우리 육이 첫째 아담의 요소가 와 가지고 된 것처럼,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도 하나님의 ( )가 ( )로 와 가지고 됬다는 것을 배웠다
다만 다른 것은 첫째 아담의 것은 그 요소가 ( )어져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되었고, 둘째 아담의 자손은 그분의 실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지만 나누어진 조각으로 와 있지 않고 그 하나님 본체와 ( ) 덩어리라는 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체가 우리 속에 다 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보다 둘째 아담의 자손이 부모 요소를 더 많이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요걸 믿어야 한다. (보기: 한, 나누, 실제,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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