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3장
단3장
우리가 하나님의 예비한 은혜를 받는 데는 크게 강령적으로 말하면 5가지니 이것에 어느 것이라도 치우치면 아니 된다. 우리가 착한 양심으로 힘을 쓰면 외부 몸으로 하는 것이 약하기 쉽고 몸으로 힘쓰는 것만 힘쓰면 내부가 약해지니 이 양면을 힘쓰야 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생활을 잘 해야 그 외에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다. ∴특별히 정한 예배 생활을 실패하면 (주일 삼일예배 특별집회) 모든 일반 생활을 실패한다. 또 광범위적으로 말하면 전체가 예배하는 생활이다. 예배는 찬송 도고 간구 감사가 있는 것이 예배다. 사람이 얼굴이 전체가 잘 생겨도 하나가 잘못 생기면 그 사람은 병신이다. 이와 같이 마귀는 우리의 생활을 어느 것에든지 실패케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예배할 때는 이 5가지를 바로 써야 한다. 이 5가지를 바로 하여 놓으면 다른 것이 바로 된다. 주일 예배를 바로 하는 것이 모든 날 가운데 바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 면을 등한히 하면 감정 면이 희박해서 절단 난다. 한국 교회가 4, 50년 전에는 조선 교회인데. 감정으로 나갔다. 또 외정말 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은밀히 주님과 관계 맺는 사람들이 승리했다. ∴이제는 하나님의 진리를 배워야겠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진리 배우는데 힘썼고 감정 면에도 충격을 받았다. ∴해방 후는 이 5가지를 바로 조절해서 나온 시기였다. 해방 직전에는 이렇게 살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잘못된 것을 고치는 이것에만 주력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미약했다. 그런대 마귀는 앞으로 끌고 나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사업 주의로 기울어지게 했다. 신앙은 자기의 앞길을 정신 차리지 못할 만치 나가는 것인데 여기서 사업 주의로 나가게 되였다. 이런 것이 되니 지위 명예를 돌아보는 생활이 되였다. 이러니 외부뿐이요 내부 생활은 없어졌다. 이것으로 사업 주의로 나갔다. 이는 에배소 두아디라 교회를 말해 주었다. ∴기독교는 사업주의가 되였다. 신령한 생활은 없어지고 사업 생활이 되었다. 처음에는 개적으로 이렇게 나갔는데 후에는 단체로 이렇게 하여 나갔다. 이것을 함으로 영의 생활은 다 어두워졌다. 이렇게 하다가 보니 영이 갈급해서 못 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파주의는 정죄 받을 만큼 되였다. 당파 주의 사업 주의를 하다가 보니 갈급해서 못 살겠다 하여, 신앙생활로 돌아 설라고 할 때 마귀는 감정 주의로 흘러가게 하셨다.
감정으로 치우쳐 불을 받는 것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옳은 신앙이 아니다. 그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 바로 하는 것이다. 했다. 이것이 한국 뿐 만이 아니고 세계가 이러하다. ∴우리가 신앙 생활한다고 해도 아니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삼위일체와 성경이 말하는 성도와 자연계를 찾아보아야 한다. 성경에 있는 자연계를 찾아보면 이 세상을 알 수 있다. ∴ 겔1장에 안 밖에 눈이 가득 찼다고 한 것과 같이 모든 면을 바로 하여 나가야 신앙이라 한다. ∴우리가 어느 집회나 교회에 가면 이 집회는 어느 면은 많고 어느 면은 약하고 어느 면은 너무 많다고 할만치 알아야 한다. ∴개인을 알면 교회를 알고 교회를 알면 개인을 안다. 개인은 그 교회가 끌고 간다. 개인이 그 교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끌러간다. ∴벗어나면 싸움이 생긴다. ∴개 교회는 그 교회의 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에게 큰 기도의 제목은 그 시대에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 시대를 끌고 갈 수 있는 선지자를 달라고 하는 기도가 큰 기도다.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선지자를 주지 않았다. 이때 유대인들의 학대는 말할 수 없었고 그 후에 세례요한이 났을 때 받아 드리지 않음으로 예수님을 받아 드리지 않았다. 그럼으로 학살을 당했다.∴우리는 예언을 할 수 있다. 개인과 교회와 교파 교계를 예언할 수 있다. 이 예언으로 이 감찰로 자기를 감찰하라고 했다. 대외 보다 대내를 감찰하라 대외에 티끌만치 감찰하면 대내에 크게 비판 받는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자기를 감찰하고 비판하여야 남에게 비판받을 것이 없도록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내가 떤다고 했다. 어떤 교파는 어떤 면에만 기울어지고 어떤 면은 없어지니 어떤 면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것은 착한 양심으로 기울어지니 저것은 도덕주의로 흘러 나가겠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망각성이 빠르면 기독자의 생활은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 5섯 가지로 후회하고 뉘우칠 때 은혜 베푸는데 지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는 밑천이다.
∴잠언에는 장장이 지식을 가지라고 했다. 지식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있는 것이다. 지식 성경지식 세상지식-세상은 이제까지 쌓아나온 역사의 통계 또 하나는 자기지식, 자기가 이제까지 경험하고 체험하여 나온 것 이 지식을 가지라고 잠언서 말했다.
악을 기억지 말라 말은 악을 기억함으로 그 악을 다른 사람이 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악을 한 것을 내가 기억하여 이 악을 행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진정 안타깝게 여기고 기도해야 한다.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은 매일 기도해야 한다. 이 사람에게는 선을 행할 기회를 가지기를 원한다. 이러다가 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선을 베풀게 된다. 악을 기억하는 것은 삼대 지식 중 자기의 행동한 지식이다. 세상 지식보다 중하다. 첫째는 하나님의 지식을 기억하는 것이다. 마귀는 과거를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마귀의 하는 일이다. 선과 악은 함께 있는데 그 중량이 같다. 그 사람에게 주먹 만한 선행을 할 만한 사람이면 주먹 만한 악령의 역사가 있다.
∴취하는 것과 버리는 것을 함께 한다. 성령오시면 무엇하느냐 과거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과거와 현재를 알려준다. 나무는 가지가 뻗어나감으로, 위에가 벗어 나간다. 이 둘이 합해져야 생명이 있다. ∴과거 미래가 합한 현재가 되여야 생명의 운동이 일어난다. 악령은 이것을 악용하도록 한다. 성령이 네게 섭섭한 일을 하니 너가 섭섭하지 너도 남을 섭섭하게 하지 말라 하는 것이 성령의 깨달음이다. 마귀는 섭섭하게 하는 마음 가지고 있다. 선용하게 하는 것은 성령 악령은 오용하게 한다. 이것을 싸워 이기고 점령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4가지다. 악한 영과 정사 권세이다. 성령은 기억하게 한다. 예수님이 육체로 도성인신 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사랑의 본성을 일으키지 아니하는 것이 악령이요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의 사람이다. 성령의 사람은 까랑까랑하여진다. 이러니 하나님에게 두려움이 생겨진다. 하나님에게 두려우면 사람에게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 20에 미래 20년 앞을 내다보고 예언하면 거의 맞을 수 있다. 개인이 하는 일이나 교파 교계가 하는 일을 한 40년이 지나가면 다 나타난다. ∴이단은 긴 세월을 거쳐서 이단이 되어진다. 어느 일면을 치우쳐서 나가면 다른 면이 다 고장이 생겨서 해가 많다. 이 진리로서 양심을 어떻게 하느냐 양심으로 정성으로 감정으로 몸으로는 어떻게 관계를 맞을까 하는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신앙이다. 충격은 다른 무엇에게 충격 받지 말고 진리에게만 충격 받으라. 진리가 너를 움직이도록 해라 진리가 울리고 떨고 웃고 할 수 있도록 해라. 진리에게만 사로잡히고 진리에게만 충격받게 해라. 무슨 일에든지 진리가 충격 받게 해라 가장 강한 자는 진리를 가지고 모든 것 앞에 강하도록 하여라. 이것에게 지배 받으면 너가 강한 자라 이것이 신앙이다. 세상 문화를 밟고 있는 것이 진리다. 문화는 역사이다. 이 5가지의 균형이 같아야 한다.
①이 집회 몸을 바칠 것이요 감정을 기울이고 정성을 기울이고 양심을 쓰고 착한 양심을 바쳐야 된다. 이 5가지가 바로 되면 바른 예배다. 한국에는 돈이 적으니 기초가 돈이 적게 든다. 그러나 기초나 건축이나 같이 들어야 한다. 기초가 든든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이것이 다른 모든 생활에 기초가 된다. 교회는 가서 보면 안다. 취할 것 버릴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는 외국 사람들이 와 보아야 유익 주고 가지 못하고 그들이 진주의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고 간다. 보수파가 가리워 이러하나 삭개오는 비상수단 써서 예수님을 만났다. 새로운 말을 나타내는 말이 구원에 유익한 말이면 상을 받고 해되는 말이면 저주 받는다. 내 구원 기본 구원은 얻어 놓았다고 오종덕 목사님이 말했다. 한국에서 성경대로 믿어야 된다는 것은 고려 파에서 나왔다. 이 5가지로 나가지 않으면 사업주의가 생긴다. 여기서 무대로 국제로 끌려간다. 기독교는 내부적으로 되어진다. 이종교는 밑에서 되어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기독교는 내부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 자기가 안 따라 갈라고 발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인정하고 따라간다. 신앙은 반항한다. 반항하는 시기가 있으니 이때 자기가 찍고 믿고 믿으면 사람이 바로 되어진다. 이것이 없을 수 없다. 라운몽 장로가 교리가 필요 없다고 할 때 교리의 중대성을 말해 주었고 성경을 한국에 결부시키어서 해석하는 고로 말을 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다가 기독교 정치주의로 삐끄러졌다. 방언은 5마디 깨달은 것보다 못하다. 예언은 감추워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말해 주는 것이고 이적은 아니 믿는 자를 위해서 있다고 했다. 아니 믿는 자에게 믿게 하기 위하여 있게 하고 믿는 자에게는 미혹시키기 위하여 있다. 계13:11이하에 기록되여 있다. 먼저 이런 저런 유혹에 미혹받지 아니해야 한다. 믿는 자에게는 아니 믿는 자 같이 이적이 없다. 자기가 순종하는 것만치 자기에게 일을 하여 주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줄 아는 자에게는 하나 순종하면 하나 고쳐주고 둘 순종하면 둘 고쳐준다. ∴내게 준 징계는 내가 하지 아니하는 것을 고치기 위해서 징계를 주니 이것을 고치면 다 치료하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나가면 다 낫게 된다. 믿는 사람의 이적은 설교 말씀을 들을 때 나타난다. 죄가 있어서 주는 고통도 있고 넘어질 것이기 때문에 주는 고통도 있고 하니 말씀을 되로 순종하려고 하는 노력만 하여야 한다.
단3:1-
신상을 금으로 만드는 것은 느부갓네살의 사욕을 나타낸다. 이것이 권세 자의 한 사욕의 발동이다. 이 신상 만든 것이 세상 만든 것이다. 나치스의 피 운동은 히틀러의 사욕 운동이다. 학생도 데모하는 것이 데모 팔아 먹는 자에게 이용당한다. 부정선거다. 이 야당에서 하는 운동도 느부갓네살이 하는 운동이다. 권세 있는 운동이다. 세상은 의가 없으니 무었을 하든지 실력주의로 하라 이 세상은 박첨지 노릇이다. 세상도 자기가 권력가진 것만치 권력 행사이다.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우상 만들었는데 이 우상에게 인생이 경배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물질은 인생이 만들었는데 이 물질에게 벌벌떤다.
1-6까지는 이 세상은 물질이라는 것을 말한다. 20세기의 문화는 물질 문화이다. 이 물질 문화에게 인생들이 다 벌벌 떤다. 이 물질에게 미소가 벌벌 떤다. 이것에게 복 받으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자유하지 못한다. 두려워 떤다. 英美가 다 물질 때문에 떨고 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나가 꿈꾸는 노름에서 나타나는 운동이다. 이일의 마지막 전투 상대라는 기독자다. 마지막에 불 밑 속에 집어넣는다. 여기에 들어가나 다니엘 노아 욥과 같은 믿음(5 가지)지키면 불 밑 속에 집어넣는 이 일을 통해서 존귀해진다. 이 5가지를 5가지 기구로 하면 된다.
우상을 만들어 놓고는 전국을 다 모은다. 이렇게 하니 얼마나 음란하냐. 위협 있다. 우리 한국만 해도 대통령 장관이 온다. 모아 놓고 이것 섬기지 않으면 죽인다 할 때 두려울 것이다. 이것이다. 기독자 위해 있다. 신상과 우상을 섬기고 절하지 않으면 불 밑 속에 집어 놓는다고 한 것이 나타났는데 여기에 무엇이 없으면 절단 나느냐 왕이여 왕의 조서를 내실 때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불 밑 속에 넣게 아니 했는가? 했다. 유대나라에 잡아온 몇 사람이 절하지 아니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여 왕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그러니 왕이 분이 생겼다. 그러니 사람이 다 모이고 나팔을 부니 상소 자가 있으니 불미 불을 달구니 왕이 권유하니 이런 것 다 세상이다. 듣고 보는 모든 세상이 다 세상이다. ∴ 신상은 로마 헬라 바벨론 메대 파사가 아니다. 세상이다. 다니엘이 우상 섬기면 어떻게 되느냐. 다니엘과 사드락 매삭은 중직을 지고 있고 4친구도 중직이다. 이들은 자연의 힘으로 면해본 일이 없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다. 그런데 숭배하면 천대받고 하나님과는 끊어진다. 세상 사람도 똑똑하다. 이들이 왕에게 해석할 수 없는 꿈이라고 항의했다.
이것을 보면 우상 섬기면 절단난다. 성도가 범죄하면 짓밟힌다. 소금이 맛 잃으면 한 것은 그 지조를 변개시키면 짓밟힌다. 진리는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보다 앞 세워야 그 진리가 자기를 살린다. 우리의 무시무시한 현장이 보이느냐 이것을 보아야 한다. 우상 숭배하면 다니엘이 살 길이 없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는 산다. 그러나 결과 적으로는 못 산다. 현장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니 불미 불이 왔다. 이 불 밑에는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 들어가면 죽는다. 그러나 초자연의 능력으로만 살아난다. 계시록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는 매매하지 못한다고 했다. 생활을 못한다. 이 불 밑을 무엇으로 가르쳤느냐? 이 세상 애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상에 절하지 않으니 애로 속에 집어넣는 것은 이 불 가운데서도 살려 낼 수 있기 때문에 집어넣는다. ∴ 혹독한 가운데 집어넣어도 또 살아나게 하기 때문에 집어넣는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새 사람을 불에 집어넣을 때 나타난 것이 무엇이냐? 용사들이 타서 죽었다. 그 가운데 타서 죽지 않은 3사람이 살았다. 이것은 마귀의 권세가 승리하고 난 후에 성도의 승리가 있었다. 이 불미에서 살고 나오니 전국이 항복했고 원수 죽고 왕국이 항복했다. 불미 속에 들어 넣지 않고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덕보고 유익보고 살리고 영광 받았다. 불신자 이용하여 우리가 구원 이루어진다. 이때 이 3인의 인기가 나타났다.
∴ 이런고로 주님위해서 천해지면 존귀해진다. 사람이 구할 수 없는 순서를 만나게 하여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한 사람이 더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내가 내 힘대로 고난 다 당하고 나면 그 다음은 고난이 없다. 내가 있는 충성 다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을 갔다 붙이니 주의 것이 되였으니 고난이 없다. 주의 구속이 완전히 연결 되면 나에게 고난이 없다. 하나님의 지공 법이 못 준다. 기독자들이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지 않으면 땅에서도 쓸 때 없다 했으니 세상에도 쓸 때 없다. 불 밑 속에 들어가야 구원이 나온다. 고로 우리 생활에 전체가 이것이니 다니엘서를 가지고 안경을 끼고 끼고 보아라.
마지막에 흙과 진흙을 쳤다. 오른 발도 왼 발도 예수님 재림 직전에는 이 세력이 갈라져서 싸우면 전 세계는 끝나간다. 요(계)17장 예수님 재림 직전에는 양대 국가가 하나가 된다. 그러나 하나가 되지 아니하고 서로 나누워져 있다. 그러나 하나 같이 되여 있다. 그런대 전부는 독립을 시킨다. 점점 문화가 발달되면 마음은 발달되면 독립을 시킨다. 이때가 주님의 재림의 직전인 것 같다. 민주주의의 하는 일이 재림 직전 일과 같다. 앞으로 환란은 정금 등대 -잘 믿는자 숙청 속화를 시키려고 해도 아니 되는 것 죽이고 속화된 것 죽이고, 즙 짜는 포도 틀에 넣고 짜서 죽인다고 했다. 이것이 지나면 천년 왕이 있고 그 다음 곡과 마곡이 있은 후 예수님이 전멸시키고 천국 건설한다. 예수님 믿다가 육체로 마치기 쉽다. 물질을 죽는 날까지 물질 없애지 말라. 이것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죽어라. 목회자는 이것을 돌아보지 말라. 목회자는 이렇게 하면 세상 돌아보게 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 대략 알겠다.
1장, 눈에 보이지 않은 은밀한 싸움
2장, 나타나 보이는 싸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
3장, 더 뚜렷하게 나타나서 싸우는 싸움 하나님으로 승리 보이지 않은데서 싸워 이기고 보이는 싸움 이기고 크게 나타나는 것을 이기고
1장 5가지
2장에 하나님의 것으로 살고
3장에도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것
1장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는데서 존귀
(삼하24장 처음 선포, 대상 삼하21장 집행적으로 선언한 것인데 다윗이 회개함으로 4년이 감해졌음)
표시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