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1975.5.21.수후
일시: 1975.5.21수후
본문: 스2:1-2, 6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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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절 이상에 언급된 것은 바벨론에서 해방 받아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숫자다. 우리는 일장에서 일반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우리가 섬기는 G 한 분에 자유에 주권 되어 있는 것을 배웠다.
G께서 택한 사람들에게는 G과 같은 완전한 자와 거룩한 자와 깨끗한 자가 되게 하시려고 택자들과 G과의 관계는 언제든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시는 G이다. 신자와 G 사이는 언제나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이 말씀은-
우리 성도의 자유의사를 인정하셔서 의사에 자유를 주시고 G이 교훈 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이해케 하셔서 비로소 우리의 자유의사가 되도록 능동으로 G의 일을 찾고 G의 뜻을 인정해 따르도록 G이 이렇게 섭리한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의 마음은 그때그때마다 당신이 쓰시기에 필요한대로 강제로 움직여 쓴 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기적이 아니요 능동도 아니다. 피동 되어 마음이 움직이고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우리를 상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마음에 대하여서 단순히 그 사람에 마음과 행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행동은 우리 주님이 주관해서 주님의 뜻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심을 명심하여야 한다. 주님의 노가 그를 통해서 나타나고 주님이 욕하는 것이 그를 통해서 나타나고 알리라.
공연히 그가 나의 일을 방해하거나 돕고자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라. G이 하고자 하시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방해로 후대로 하는 것을 알라. 이 비밀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 굳게 잡아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직접 그 사람의 언행심사만 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여 그 사람으로 더불어 해결해 보려고 함은 불신자의 행위요 망령된 행위다. G을 무시한 무신론의 행위이다. 우리가 사물을 접할 때 사물 그것에 단독이 아니고 그 사람을 붙들고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악령이 있다. 또 그 악령을 붙들고 조정하시는 G이 계신다. 사람은 단독 행동을 못하고 성령이 붙들고 조정하든지 아니면 악령이 붙들고 조정하든지 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 단독은 아니다.
악령은 사람을 붙들고 조정하여 G의 뜻을 성취케 하시는 G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악령 제 마음대로는 못한다. G이 악령을 악한 일을 하도록 묵인하면 허락하면 악령은 사람을 붙들고 새사람 속에서 일하면 그 사람은 사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행사하여 온다. 만약 벌하는 것은 G이 직접 하면 우리에게 너무 가혹해서 우리가 감당을 못하니 G이 간접적으로 역사 하신다. 마치 나무에 비료를 줄 때 가까이 주면 나무가 썩어 죽으니 멀리 파고 주는 것이다. 의사가 치료를 할 때 독한 약을 써면 성한 부분이 상한다. 이와 같은 것이다.
G은 할 수 있으면 물질을 통해서 당신에 진노를 깨닫게 해주시고 그 물질에 손해나 변동을 보고도 안 듣고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안되도록 하여 G을 깨닫게 하시고 그래도 안 들으면 우리에 자유를 빼앗고, 그래도 못 깨달으면 이방인을 쳐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고치게 하시고 그래도 못 깨닫고 안 들으면 마지막은 그 사람에다가 손을 댄다. 그 사람은 천만 병이 들고 병신이 되도록 하신다.
그대로 깨닫지 아니하면 그 사람 뿐이라면 그래도 깨닫지 아니하면 그 사람 뿐이라면 끝까지 징계하여서 모진 고통 속에 넣어서 돌이키도록 하실 수 있으나 그 사람에게 속한 곁가지가 있으니 그 가지들을 보고 할 수 없이 징계에 선을 그어서 그냥 둔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것이 침상에 던지는 것이니 여생에 저희 신앙생활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고 간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듣지 아니하니 출애굽한 사람은 두 사람 밖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나머어는 다 광야에서 죽었다. 광야에서 난 새 사람 들만 들어갔다. 그때에 취급하는 법이나 지금이나 G은 꼭 같이 하신다.
그런고로 복 있는 자는
유복자는 모든 것이 G의 음성이요, 모든 것이 G의 사랑이요 모든 것이 G의 구원에 섭리인 이 사실을 믿고 인정하고 산다. 보이는 것에는 G의 교훈 G의 뜻 G의 사랑 G의 구원 섭리가 없는 것이 없다. G의 뜻 G의 구원 섭리가 이것이 보이고 들리는 것마다 접촉하는 것마다 이것이 내포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없다. 간접으로든지 간간접으로든지 다 G의 구원 섭리와 G의 뜻이 있는 이것을 믿고 모든 것에서 깨닫고 고치고고치고 느껴서 G의 사랑과 섭리를 입으려는 것이 기독자이다.
그러면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생활이 복잡하면 마지막에는 정신병자가 안 되겠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G의 섭리를 인정하고 그 사랑과 섭리를 접하는 자마다 자기의 언행심사에 걸음이 육지에 대로보다 더욱 명확해 보이고 든든해진다. 그러기에 실수가 적고, 후회가 적고, 세상에 삣쭉삣쭉 돌발적으로 돌출되어 나오는 것에는 놀래지 않는다. 왜, 그것 이상에서 모든 것을 견해하고 비판하고 확정해서 살기 때문에다. 아무리 큰 어떤 두려움에도 놀래지 않는 자가 사라의 딸이요 아브라함에 아들들이다. 믿음에 계대자가 된다. 이런고로 말하기를 그리스도사람의 구원성을 영에 생활을 하는 새사람은 안 밖에 눈이 가득 찼다고 했다. 이 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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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에 눈이 가득한 시력?
안 밖에 눈이 가득하다고 하는 말은 인간이 볼 수 없는 모든 면도 빠짐없이 다 볼 수 있고 세상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이면에 것까지 보고 여기서 판단된 것을 보는 것이 기독자이다.그러므로 안 밖에 눈이 가득 찼다.
우리가 사람을 접촉해 보면 고기 덩어리의 눈으로 사는 사람, 일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 이것을 초월한 영감에 눈에 시력이 어느 정도 높고 광대하고 깊고 원대히 보고 사는 사람 인지 그의 시력을 보고 알 수 있다. 자기가 자기보다 앞선 사람은 보지 못하나 자기 뒤에 사람은 정확히 보인다.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영감에 눈이 뜨였다. 이 사람은 앵무새 같으나 실상은 소경이구나. 다 역력히 판단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시력 以上이상은 못 본다. 못 보는 것을 자기에 생활에 참고하거나 효력 있게 이용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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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벧후5:5 -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 절제 - 인내를 - 형제 우애 .. 이런 자는 원시하여서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고 하였다. 넓게 깊게 높이 멀리 보아서 침륜에 빠지지 아니한다. 우리도 현재와 세상만 볼 것이 아니다. 죽음을 보고 살아야 할 것이요. 죽음 넘어 G의 심판을 보고 영원까지 한눈에 보아 오늘의 고생도 내일 영원에 영광으로 보이니 참고 세상보다 G을 보니 세상이 두렵지 아니할 것이다. 큰 두려움이 있으니 작은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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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약에 성경, 계3: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자야 네 가련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눈이 근시 자야 이것이 안 보이느냐? 옳소. 값 비싼 옷을 입고 있으나 그에 정체가 가련해 보이지만은 저는 모르고 행복하다고 뽐낸다. 의지 할 것이 없는 힘없는 것을 의지하고 있으면서 든든하다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고 탄식이다. 이런데 눈이 멀어서 못 본다.
우리는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고 G의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가르치고 계신다. 또 G은 만물을 통해서 가르치고 계신다. 이 두 가지 교과서로서 우리의 지혜를 기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사람이다. 이것이 인간의 가치다. 만물의 영광의 가치다.
일생동안 돈만 보고 사는 소경 일생동안 제 욕심만 달성 코 저 하는 소경 이것이 본다고 하나 죄가 그저 있느니라 하는 소경이다.
내가 온 것은 보지 못하는 자들로 보게 하려고 왔다. G이 가르치는 지식으로 모든 것을 바로 알리려고 왔다. 자기가 세상적인 지식이나 지혜를 가졌다고 해도 하나의 미래도 모른다. 과학자나 지질학자가 미래를 알겠는가? 일시에 위로만 받았지. 이것이 꾕꼬리 철학이다. 세상에 통계가 맞는 것이 어디 있는가? 세상 지식은 일관성이 없다. 50년 전에는 사람은 원숭이 새끼라고 했다. 그때 공부한자들은 다 원숭이 새끼가 아닌 자들이 없었다. 어려도 지혜 있는 학생들은 이 학설을 이겼다. 부인했다. 이 설을 낸 자들은 관심만 됐 존귀한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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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자는 성경을 제일의 권위로 인정한다. 성경은 태초나 지금이나 일관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참되다고 인정할 때에 인간의 지혜와 눈은 뜨인다. 이것이 내 안에 안약을 사서 보게 하는 것이다. 안약이란 특별계시와 자연계시로 영감을 받는 것이다. 이 도리로서 자기를 만들어 동광을 바로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G의 지혜와 영감이기에 그러하다. 이런고로 성경은 못난 자가 무시한다. 못난 자가 성경을 무시하지 인정하는 자는 지혜자다. 잘 난자들은 성경을 제일의 권위로 인정한다. 잘난 자들은 인간 속에 만들어진다. 책상 위에서 인간을 다 계산해 본다. 모든 인간은 가치가 없다. 모두가 다 풋 장단만 하였지 모든 것이 헛되다. 허무하다. 그런고로 한마디로 무가치한 것이니 다 집어 던지고 전심전력을 기울려 G의 말씀으로 자기를 깨끗 게하고 지혜를 기르고 자기를 고치고 고치고. 좁은 자기를 크게 만들고 G의 말씀에서 광대한 소망과 모든 존재에 전체에게서 오는 호소. 거기서 부르짖는 소원을 들어야한다. 만물의 탄식함을 우리가 아니니 만물과 창조주의 부르짖는 여기까지 눈을 떠서 광대한 세계에서 광대한 시야에서 여기에 맞 추워 사니 저 하고 싶은 대로 못하고
꾸물거리는 당신 같으나 마지막에는 보니 전체에 기울인 자유에 율법에 기울려 사니 이 면에나 저 면에는 볼 것이 없었지만은 거두고 거둬보니 모든 면을 보고 확신으로 걷는 기자 의 걸음은 못 막음 면적이 워낙 넓으니 거두고 거둔 것을 보니 불신자의 전부보다 큰 자가 된다. 일시만 보고 심판을 안보면 G을 안보면 이렇게 하겠는데 그 전부를 보니 못하겠고, 주여 내가 어찌 하오리까. 내 지능으로는 맞지 아니하오니 알려 주시옵소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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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이 자기에게 깨닫게 해 주실 때에 이면 저 면에 나타나도 오점이 없는 자가 된다. G이나 인간에게나 만物에나 다 맞추어 보아도 맞으니 아멘 하고 내여 미는 것이다. 심사숙고하여서 걸어가는 걸음이니 어느 인간이 시국이 피조물이 막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방해들은 다 눈에 둔다. 기독교는 평가에 도다. 명랑하고 똑똑한 확실한 비판에서 초롱초롱한 정신에서 결정 지워 걷는 걸음이다. 이것이 G의 인도다.
배워야 알지 해보아야 알지 손바닥만한 제 지식에 안 맞으니 거부하는 것은 불쌍한 거짓된 인간에 지식에 인간에 마음과는 반대인 참에서 나온 G의 지식이 인정이 되겠는가?
※ 자기를 부인치 아니하고는 이 도가 안 보인다.
G의 지혜는 그의 도움으로 이뤄 놓은 것이 천국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다 G이 주권하시니 인간 단독이 아니다. 그 배후에는 G이 하시니 그 사람은 마귀가 붙들고 하더라도 최후에 조정자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사실을 인정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한 지혜를 배웠다. 모든 만물은 G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왜 우리가 G의 뜻 대로 살 때에 이용된 만물은 속량을 받기에 그렇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여기는 좀 세월 동록 도적 G의 심판이 있으리라. 천국에는 이런 것이 해치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에 이용된 것은 永生 영생으로 속량을 받는다. 이러한 존귀에서 사는데 무엇이 겁날 것인가? 그 원수에 손에 총도 내가 G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그 사람도 주님이 써는 시험 물이고 내가 만족하게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맞지 아니하는 특수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오는 것이니 두려울 것이 없다.
우리는 이런 가운데 자라가야 한다. 알면 넘어지지 아니한다. 미신이 아니고 억지로 끌려가는 것도 아니다. 평가하고 심사숙고하여 걸어가는 길이다. 천하가 아니라고 하여도 깨달음에 확정에서 가는 것이 신앙 걸음이다. 이것이 하나씩 둘씩 쉬운데서 시작해서 연습해서 자라가면 비판도 심사도 확정도 달성도 숙달해지니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 나도 안다. 잠잠하라. 너 보다 안다. 잠잠 하라. 늙은 자가 되면 어리석고 구식적인 또 노쇠하여 병적이니 젊은 사람들이 무시한다. 흥흥해놓고 우리대로 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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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을수록 기사는 총명해간다. 야곱과 같이 그러나 인간이 잘 늙으면 밝아진다. 야곱이 지팡이를 짚고 섰으나 요셉의 아들을 축복할 때 손을 어긋맞게 얹으니 요셉이 바로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요셉은 나도 안다. 나도 안다하고 축복하였는데 오랜 후에 보니 그대로였다. 야곱은 요셉이 못 본 수백 수천년 후대까지 바라보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고로 G앞에서는 늙어지는 것이 없다.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속사람이란 신령면이니 마음과 총명이 날로 새로워진다. 같은 늙은이가 총명이 없다고 하면 쥐어박고 싶다. 네가 대를 꺾고 소를 세우고 저를 위해 살았으니 이럴 수밖에 없다. 나는 작년 보다 금년이 나아진다. 날마다 새로워진다. 나는 100가지를 보고하는데 젊은이들은 몇 가지에도 생각이 안 돌아간다. 이로 보나 저로 보나 G이 시온에 대로를 주셨다. 무엇 때문에 세상에 것에다가 전력을 기울이겠는가?
이 말씀을 기억하라. 이 말씀만 기억하면 우리의 시력이 많이 치료 될 것이다. 공연히 날뛰면 엎드리면 사과할 것뿐이다. 여기에 말대로 G의 요구 명령 책망 충고로 알고 자기를 더듬어 자기를 고칠 때는 고칠 때는 심히 기쁘고 세상에 유가 없는 깨끗이 오고 얻은 명철에 기쁨이 오고 이런 상급을 맛보면 돈 때문에 어르렁 거리는 것 보고 부럽지 아니할 것이다. 에스라1장에서 이것을 굳게 잡고 에스라 2장에 나라에 정권자들이다. 일꾼을 쓰는 자는 안 빼앗기려고 하는 것이 주인이요 돈 안주고 부리는 종을 안 보내려고 하는 것이 상전이다. 미국에 흑인 노예 해방을 보았다.
정권자 고레스에게 이런 종들과 재물을 해방시켜달라고 호소한 자가 없어도 G이 그 마음을 감동시키시니 큰 해방의 운동이 일어났다.
8:21-23 - G이 고레스 왕을 감동 시켜 네가 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석방하라.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유를 가지고 가도록 하고 선물을 주라고 하였으니 이만해도 파사 나라가 푹 쭈그러진다. 거기다가 너희들이 가진 보물로 선물로 주라고 하였다. G이 감동하니 이에 해방을 축하하며 선물을 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전송했던 것이다.
이런 G이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인간끼리 싸우며 얻겠는가? 왜 우리가 평탄한 길을 걷지 아니하고 억설에 길을 걷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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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유주어서 출발 자유를 준다고 하였다. 우리도 이런 일을 많이 보았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상상외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전권(全權)의 대우를 받았다. 민의원에 목사를 세우려고 하였다. 이랬는데 철없이 해서 화를 만들었다. 그때 감투를 좋아했든 목사들이 왕창 망했다.
G이 왕에 마음을 감동하니 적국 길에 호위병까지 줄려고 했다. 군대를 호위하도록 청구해라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시험이다. G이 저울로 달아보는 것이다. 이때에 해방 받은 이들이 왕에게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가 길에서 도적을 만날는지 모릅니다 하였더라면 사고 였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를 요구하지 아니하고 거기 있던 다니엘 사드락 에스겔 모르드게 등 모든 충성 했던 종들이 말하기를 왕이여 왕이여 우리가 G 외에 다른 것을 의지 하였다가 범죄 하였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를 G 이 지키니 지키니 호위병이 필요 없습니다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너희들이 섬기는 G이 너희들을 도우실 것이라 하였다. 그러니 G이 만족하셨고 왕도 감동하였다. 왕은 무서운 무인지경에 국경을 넘어 갈 것인데 호위병이 없어서 되겠는가? 하였으나 예, G이 우리에게 계시니 됩니다 하였으니 G이 기뻐했고 G 이 도와 무사히 돌아왔던 것이다.
보십시오. 5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출동했으니 얼마나 복잡했겠는가? 우리 G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길러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에게 거리낌이 없이 하려는 이런 G이시다. 그러므로 G은 이 우주보다 이렇게 연결을 가진 사람을 더욱 높이신다. 한사람의 생명은 우주보다 크다. 더욱 가치가 있다. 연결이 가치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이 주는 호위병을 거절할 때에 G이 이런 저런 노를 다 풀었다.
다니엘아 네가 영양제 안 먹으면 공부 못하고 공부 못하면 더구나 출세는 못한다. 했으나 아 - 우리가 G 의지 안 하다가 이곳에 왔는데 출세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G을 의지해야 하지 하고 G에게 대한 표시로 영양제 음식을 금하였고 그리고 그는 G이 주시는 것을 바랐으니 10 배나 나은 높은 지위를 얻었다. 풀무이 있어도 G 의지하는 것 버리지 아니했고 무인지경에 호위병이 필요했으나 G의지함으로 거절했으니 G께 이렇게 저렇게 하여 G의 노를 풀었다.
나라를 잊어버리고 36년간이나 일본인에 식민지로서 살 때에 인간들이 이래 저래 독립운동을 해도 안됐다. G의 사람들의 신앙운동으로 됐다. 해외에 나간 자들의 독립운동으로 해방된 것 아니다. G의 교회가 했다. 신사참배에 승리로 됐다. 거기서 됐다. 미국은 생각도 못한 원자탄이 손에 들어 와서 승리했다. 그것이 아니면 미국 본토까지 빼앗을 것이다.
지금도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했다. 이차대전은 청교도의 신앙으로 이겼고 일본은 한국의 신앙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못하고 일본이 지고 말았다. 신사참배의 승리자가 완전히 판정이 나고 나니 일본은 손을 들었다. 그때에 성도들은 45년에 일본이 질 것과 38선이 있을 것과 8월에 해방이 될 것을 G이 가르쳐 주신 것을 수첩에 기록해뒀던 것이다. 그리고 신앙에 동지들에게 알게 했다.
이렇게 G이 독립주고 해방 주셨는데 그후에 시험에 떨어졌다. 불과 2년이 못되어서 인본이 교회를 주장했고 패역을 부렸다. 신신학이 판을 쳤다. 그래도 남한은 역사에 없는 교회가 전성기가 됐다. 이러다가 G의 교회가 어찌 했는가? 속담에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세상맛을 보고 기독자들이 마구 세상으로 쓸려들어 갔다. 이정권은 구미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니 이제는 이 정권에 속한 교회가 됐다. 이박사 선거운동을 교회가 마구 하였던 것이다.
저도 덕유산에서 기도하다가 해방이란 전달을 받고 내려왔다. 면민이 모인 가운데 해방에 축하에 첫 강연을 했다. 이렇게 숨은 성도들의 신앙투쟁의 정조를 만족하시고 평화를 주시니 이것을 모르고 얼마나 세상화 됐든지 그때에 불신자들은 전체가 신자들 보기 싫다고 하였다. 불신자들은 이정권을 반대했고 신자들만 이 정권과 단합했든 것이다. 그때에 어떤 신학생은 말했다. 교회가 이 정권을 유지케 하려거든 교회가 손을 떼라고 했다. 그때 이 정권이 당선 됐으나 3.15의 부정 선거를 하였든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음란한 것이다.
이런 후 G이 유엔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했다. 이때에 그리스도가 또 반대운동하고 메세지를 냈던 것이다. 이때에 G의 종은 신사참배는 억간이라면 유엔군 철수반대 운동은 화간이다 라고 했다. 이 설교를 고려진영에서 있을 때 총회장과 진영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이 설교를 안하려고 했으나 부득이 했던 것이다. 그후 총회에서 이것은 죄라고 결의하려다가 못 말았다.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였다.
이스라엘을 보라. 세상 것 다 준다고 해도 불구덩이 속도 사자 굴에 던져도 G을 안 버리니 이들에게 해방을 주셨다. 이 G은 안 죽고 지금도 살았다. 우리에게 나타난 G은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난 G이시다.
그들이 해방을 받아 귀국하여 성전 짓고 행복 누리려고 하여 가는 길에 이때에 호위병을 준다고 했으니 우리 한국교회 같으면 호위병을 거느리고 의젓하게 버젓이 갔을 것인데 그들은 말하기를 아닙니다. 우리가 그래할 수 없습니다 하고 걸어가니 이것이 G의 마음에 들었다.
이것이 인간의 실력이다. 이것을 가진 자가 실력 있는 자이다. 나는 역사에 없는 혹독한 고난 속에 넣어도 G을 배반치 않겠소 하여야 이것이 교회에 실력이다. 권위다. 이렇게 할 때에 G이 만족해하시고 보호하시니 아무도 상해하는 자가 없었다.
그런고로 2장에 수많은 사람과 소유들이 그 위험지를 간 것이 G의 도우심으로 온 것을 기억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피할 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와 같은 꼭 같은 시험이 있다. 언제 주일날 갑자기 금족령을 내리니 교회마다 수요일 예배를 못 보았고 그대로 보기를 한 교회들도 있었는데 그때 예배시간에 해제 됐다. 그래서 본 교회들은 다 잘 보았다. 이것이 G이 하시는 시험인줄 모르고 지나 갔다. 눈이 어두우니 못 보았다. 이때 낙제 승격이 결정 됐다. 낙제가 문제가 아니다. 悔개하여야 한다. 계3:10 온 세상을 시험할 때라고 하였다. 지조를 지킨 여인에 깨끗한 맛이 충절에 강한 박력이 어디 그에게 있겠소. 이것이 우리 속에 있으면 강한 힘이 된다. 막 바로 천국 갈 것이 된다.
이런고로 G은 우리가 회개할 때에 당신의 긍휼을 입혀주시고 또 반드시 은혜 입힌 다음은 시험하신다. G께 대한 그대로의 관계를 계속하고 있느냐 보는 것이니 왜냐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떨어지고 멸망치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자조 경고하고 계신다. 자기에게 온 일시적인 축복이든지 영원한 축복이든 반듯이 시험이 있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반드시 절단이 난다. G이 낸 절단은 눈에 안보이나 오랜 후에 사람이 보인다. 나타난다. G이 당장 절단을 낼 것이나 다윗 때문에 의인 때문에 못했다.
모세가 G이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할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생각하소서 했고 G이 이들을 생각하니 기뻐서 뜻을 돌이켰다. G은 인격의 근본이시오 우리의 감정을 창조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성도의 기도들을 연구 해 보라 -이 기도들은 G과 대화적이다. G이여 사정이 이렇고 저래서 인간이 이래해야 안되겠습니까 하고 꼭 감정을 가진 인간 같은 것을 알고 그 감정을 가진 G으로 상대한자들의 기도가 능했다. 일반인도 감정과 언어와 복수성이 강한 것이 문화인과 미개인이 다르다.
문화인과 성도의 감정이 또 다르다. 이와 같이 G과 우리의 감정이 다르다. 인간이 상상도 못하는 복수성과 신을 지키는 신빙성을 가진 G이시다. 목석이 아니다. 이 주님이 여기와 우리 안에 계신다. 제가 덮어 가두지 이 설교를 하게 한 이가 주님이다. 이 분이 주권자시다. 그러므로 ‘보다 G’, ‘보다’ ‘보다’.... 이것이 언제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갈대와 우르에서 떠날 때 G이 무슨 복을 주셨는가? 물질과 바로의 왕권으로도 더럽힐 수 없는 성결을 주셨다. 그다음 아브라함에게는 물질에 시험이 왔다. 물질인가, G이냐? 이때에 롯은 얻은 물질이 멸망에 원인이 됐고 아브라함은 얻은 물질보다 G을 섭섭하게 못할 줄 알고 물질을 버리고 G을 취했다.
그러나 롯은 인간의 교리나 윤리나 G의 축복도 무시하고 옥토만 보고 갔다가 멸망했다. 아브라함은 가족이 불평하고 안 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G의 뜻을 맞추었다. 맞추었다. 롯은 G이 주신 물질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가족의 소원과 뜻에 맞춰서 소돔으로 갔으나 아브라함은 가족이 섭섭해 해도 얻은 물질에 손해가 있어도 양떼가 굶어 죽더라도 G만 모시기로 단정하고 롯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롯은 소돔과 그들 때문에 안 해가 소금 기둥이 됐고 두 딸은 아버지와 음행 했고 멸망에 조상이 됐다.
G은 오늘도 우리에게 꼭 이와 같은 문서들을 주신다. G보다 물질과 가족을 앞세우는 자가 롯의 걸음이다. G이 버린 자가 아니면 롯에 결과가 올 것이다. 물질 소금 기둥은 아니나 신자가 예수 믿는 정신이 없으면 이것이 소금기둥이다. 이 말씀에는 이런 소금기둥이 수억이나 있다.
아브라함은 그때에 시험을 이기니 거지가 돼서 죽을 것 같았는데 전능하신 G이 계시니 롯 보다 수십배 거부가 됐다. 자기의 재산을 지키는 수위가 318명이었다. 망하지 아니했다. 처자도 안 망했다. 여인에 축복에 표본은 사라와 같은 여인이 되게 해 달라고 한다. 아들은 이삭과 같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한다. 이 G이 우리 G이시다. 어리석지 말자. 신앙이야 어찌 됐든지 돈 따라 다니는 것이 롯의 걸음이다. 제가 예수 믿어도 영원에 투자된 것이 없으니 망했지 뭐냐? 아브라함에게는 일시에 축복과 영원에 축복이 왔다. 이 축복에 시험이 있었으나 이妻子 처자에 G의 축복이 왔다. 그러나 옥에 것은 또 시험이 왔다.
318명의 군대를 가지고 자기 조카 롯이 포로 됐다는 소식을 듣고 318명의 사람으로 9대 강국을 멸하고 사람과 재산을 다 찾아왔다. 이 싸움에 이기고 나니 또 시험이 왔다. 소돔 왕이 당신이 우리 사람과 재산을 다 찾아왔다. 이 싸움에 이기고 나니 또 시험이 왔다. 소돔 왕이 당신이 우리 사람과 재산을 다 찾아왔으니 구해왔으니 전부 당신의 것이지만 사람은 보 내주고 재물은 당신이 취하라고 했다. 그때 아브라함은 나는 하나님 한 분이 면 못할 것이 없는데 若만약 내가 이 재물을 취하면 G의 영광이 가리워질까 하여 나는 취할 수 없다고 하고 던져버리니 소돔 왕이 G에게 욕망을 가지고 떠났다.
왕이 떠나고 나니 G 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아브라함아! 네가 그렇게 많은 재물을 왜 차지하지 아니했는가? 내가 무엇인데 그 재물보다 나으냐? 하니 주여 당신 한 분이면 됐지 내가 무엇을 원 하리까? 하니 G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겠다고 하였다. 이 시험이기고 주를 위해 버리고 나니 G이 신령한 것으로 상급과 방패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영적으로는 상급과 방패 되여 주시고 육적으로는 이삭을 받았다.
G 을 차지한 것은 신령한 축복이다. 그후 또 시험이 왔다. G이 이삭을 제사드리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G의 요구이니 기뻐서 나무를 집에서 준비해서 제사 드리려고 갔다. 이삭을 제단에 드려 버리니 G이 기뻐서 이삭으로 천하 만민이 구원 얻고 이삭에 혈육에 자손이 나게 했다. 그 다음에 그들에 자손이 시험을 못 이겨서 세계에 흩어졌다. G은 이와 같이 철저 하신 분이다. 어찌나 철두철미 한지 너무나 심은 대로 거두게 해서 떨 것뿐이지 G을 의심 할 것 없다.
금번에 우리가 완전히 회개하고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반석 같은 피란처다. 이것을 잡자.. 똑똑히 단정을 지우자. 머뭇거리지 말자.
아직도 자기 아닌 자기 정욕 대로에 자기, 성령에 반대인 육에 자기가 일어나는지 여기서 완전히 죽이고 가자. 죽으면 살리라. 확정하라. 머뭇거리지 말라.
(새찬송가 3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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