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96년 6월호 "교회와 신앙"에서 말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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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의 "거듭(중생)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구원파식 교리:
"거듭(중생)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기본구원" 과 "건설 구원"을 나누는 것은 현재 [한국총공회]라는 교단에서 주장하는 교리로서 이미 고인이 된 백영희 목사의 주장을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필자는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연구할 것을 약속드리며, 본 호에서는 우선 위의 주장을 따르면 어떤 문제점들이 발생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구원을 얻는 방법은 몇 가지인가
1. 성경에는 "기본 구원"이나 "건설 구원"이란 말이 없으며, 그렇게 나누면 구원이 이원화되어 버립니다.
2. 위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우선 성경이 구원을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이라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용어도 없습니다. 용어가 없어도 사상이 있으면 그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용어를 만들어 쓸 수는 있습니다. 예컨대 삼위 일체란 말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본 구원"이나 "건설 구원"이란 용어는 성경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상도 없습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구원이란 말은 사용할 때 두 가지로 사용함을 알아야 합니다. 넓은 의미로 말할 때의 구원이 있으며, 좁은 의미에서 구원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우리의 거듭남 내지는 중생을 말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거듭남과 성장을 다 포함시켜서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비유로 말하자면 인간은 태어나는 것과 자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고 자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또한 자라지 않는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못할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구원을 말할 때면 태어나는 것과 자라는 것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요. 좁은 의미에서 구원을 말할 때면 태어나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 이란 학자는 구원의 순서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말했습니다. 즉 소망,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성화, 성도의견인 그리고 영화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구원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지 구원을 따로 따로 떼어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성화 구원"이니 "영화구원"이니 하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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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1년 3월 7일 "교회와 신앙"에서 말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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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씨의 구원론을 본격적으로 비판해 보자.
1. 구원지상주의자 박씨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란 책은 1986년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부산 무공화회관(이사벨여자고등학교 대강당)에서 한 설교를 수록한 것으로 그가 집회시마다 주로 사용하는 설교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죄사함에 관한 방법을 다 찾아보았다고 한다(p.44). 물론 그의 주관적인 입장이요, 그의 잘못된 성경해석에 의한 주장들이었다. 한 마디로 박씨는 구원지상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구원은 중요하다. 그러나 구원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하나는 넓은 의미의 구원이요, 하나는 좁은 의미의 구원이다. 구원의 단계와 서정을 여러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크게 보면 중생 즉, 거듭남으로써의 구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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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따르는 성화의 구원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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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를 좁은 의미의 구원이라 할 수 있고, 후자까지 포함시켜 넓은 의미의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박씨는 이 좁은 의미의 구원에만 모든 관심을 다 모아 마치 기독교의 전부가 구원이요, 성경의 전부가 구원인 양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히 그 결과 성경이 억지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박씨는 죄사함과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매 페이지마다 이 죄사함이란 단어와 사상이 거의 빠진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