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에서 본 백영희 신앙노선의 위치
I.서문: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사건과 총공회 신앙출발
백영희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총공회 신앙노선을 한국교회사적 입장에서 연구한다면 그 직접이고도 집중적인 시작은 신사참배 환란에 모아지게 된다. 백영희의 신앙시작은 1936년이며, 불과 3년간의 준비로 1939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신사참배환란을 맞닥뜨리게 되며, 1945년까지 6년간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모든 분들이 투옥되는 가운데 본인 개척의 개명교회 교인 전부를 이끌고 이 환란을 이기며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교회 전체가 신사참배 환란을 정면에서 거부하며 통과한 교회는 한국교회사를 통틀어 개명교회 뿐이었으며, 이는 장차 백영희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향해 보이고자 하는 신앙노선을 특별히 관리하고 계심을 보인다.
한국교회 전체가 해방과 더불어 신사참배를 찬성했던 절대다수와 반대했던 극소수로 양분된다. 평양 옥고를 6년간 치르고 나온 분들이 고려신학교(고신측)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회개를 요구하게 되고, 신사참배를 찬성했던 나머지 교회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만 고신측 주장대로 회개를 하게 되면 교권을 잃게 되므로 양측은 극단적으로 대립을 하며 1960년까지 갈등을 갖게 된다. 교세는 극히 미약해도 교회의 신앙정통이 고신에 있었다. 고신교단의 의미는 환란을 승리했다는 점이 특별했던 바, 고신 소속이었던 백영희라는 인물은 비록 보수교계 내부에만 묻혀 살게 되지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이후 한국교회사에서 그 신앙의 걸음을 주목받게 된다.
따라서 한국교회사에서 신사참배 환란이 갖는 의미를 폭넓게 살펴보되, 현재까지는 교회정치사적 입장에서 주로 다루어진 해방 후 고신의 의미를 "진리운동의 내부적 속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면 한다. 교회정치사적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한상동목사님을 중심으로 고신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총신과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이 신앙중심적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진리운동의 내면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주남선목사님을 중심으로 고신의 경건운동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를 외형변화를 좇는 정치사적 입장보다 하나님께 붙들려 움직이는 경건 중심의 진리운동으로 한국교회사와 총공회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연 주남선 중심의 고신 역사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주남선목사님의 신앙을 잇고 있는 유일한 경우가 백영희목사님이며 이런 점에서 백영희의 신앙노선의 시작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교회사 연구는 고신측이 세계기독교의 정통보수 신앙을 한국교회가 계대했으며 한국교회의 가장 중심에 고신측이 있다고 주장한다. 고신의 외형을 세운 이는 한상동목사님으로 대표되며 그 내면을 채워갔던 이는 주남선목사님으로 대표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주남선목사님의 사후 그 자리를 대신 맡았던 이가 백영희목사님이며, 그는 주남선목사님을 이어 고신의 내면 중심에 위치하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안주치 않고 오히려 그곳에서 출발하여 고신과 한국교회 나아가 세계교회가 역사세계 막바지를 향해 나아가는데 필요한 교리와 교회의 신앙노선 등 거의 모든 면으로 길을 개척한 인물이라는 시각이 이 글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