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본문3-6.25로 한국교회의 정통성이 백영희로 이어지는 내부적 과정
III.6.25로 한국교회의 정통성이 백영희로 이어지는 내부적 과정
1.사건이 아니라 시대적 환란으로서 가지는 신사참배의 의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사참배 환란은 훗날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지 않았던 단순한 환란이었는데 하나님은 한국교회사의 중심에 이 사건을 두고 외형적 교회사와 내면적 교회사를 따로 진행시키고 계셨다. 이 과정에서 고신의 의미, 그리고 주남선의 경건, 백영희로 이어지는 한국교회의 진리 노선을 살펴보았다.
신사참배가 한국교회의 정통성을 옮기거나 혹은 정통교회에서 배제될 교회를 나눌 정도의 환란이었다는 것이 이 글의 시각이며 이런 전제 하에서 고신과 백영희로 이어지는 한국교회사를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사참배라는 단일 사안에 대하여 지나치게 확대해석 또는 포화상태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은 쉽게 제기 될 수가 있겠다. 한국교회가 100여년을 지나면서 왜 굳이 신사참배라는 단일 환란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져야 하겠는가 라는 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자기에게 유리한 환란은 대환란으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불리한 환란은 헤프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관계를 계산하기 전 신앙본질적으로 그렇게 규정치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6.25라는 사건은 신사참배라는 문제가 일반적으로 흔히 있는 사건과는 달리 교회사를 획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마련된 사건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6.25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를 보며, 우리는 그 환란의 성격을 확연하게 규정할 수 있고 그 규정에 따라 교회사적 의미를 줄 수가 있다.
2.신사참배에 이어 6.25에서도 패할 수밖에 없는 한국교회
①환란에 대한 성경적 의미
환란이란, 현실을 어렵게 느끼는 개인의 감정을 기준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환란을 본질적으로 접근한다면 시련을 통한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불순물을 불로 태워 없애며 순금을 뽑아내듯 인간적 요소를 태워 없애도록 하나님은 현실이란 용광로를 주시고 마침내 순전한 믿음만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환란의 성질이다. 그리고 이런 연단의 기회는 기간이 주어지고 또 그 기간이 끝나면 연단을 바로 했는지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키 위해 다른 환란이 주어진다. 이런 환란을 시험이라고 하며 이 시험으로 개인은 개인 신앙 판정을 받게 되고 교회는 교회의 신앙 판정을 받게 된다.
신사참배라는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사건은 5년 뒤 6.25라는 환란에 의하여 그 성격이 더욱 분명해지게 된다. 6.25는 신사참배와 함께 고난의 강도, 5년이란 시차 등의 외부 모습만 달랐을 뿐 그 환란들의 내용과 성격은 꼭 같았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신사참배로 확정된 한국교회사의 정통성을 6.25가 한번 더 확인해 주고 확정시켜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환란은 그 성격과 내용을 이런 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파악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보충적 또는 후속적 환란이라는 연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살피는 주안점이다.
②신사참배와 6.25 두 환란에서 드러난 한국교회의 세상주의
신사참배는 2계명을 지키느냐는 문제였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을 붙들겠느냐 진리를 붙들겠느냐는 문제였다. 6.25도 마찬가지였다. 선교 50여년을 안팎으로 하여 하나님은 한국교회에 그동안 충분히 배웠던 신앙노선을 시험했던 것이다. 교회라는 간판 속에 진정한 교인이 되었는가, 교회라는 간판만 가지고 외형만 잡았을 뿐 속은 여전히 세상인가 라는 시험이었다. 이 두 시험을 통해 한국교회는 두 번씩이나 세상을 잡았고 말씀을 버렸다. 신사참배에서 승리했던 이들도 다시 만난 환란 속에서는 패전하여 신사참배 승리가 한 때의 승리였을 뿐 그들 속에 진정 세상을 버리고 말씀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아님을 보이게 되었다.
즉, 어느 시대 교회나 마찬가지지만 아주 간단한 시험문제로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모시고 계속 자라나갈 교회냐 아니면 하나님을 모시고 자라 나오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 교회냐 하는 갈림길에서 세상을 택했다. 교회가 평소에는 하나님을 따르다가 마지막은 인간을 따르고 교회가 평소에는 말씀대로 사는 것 같지만 다급하면 세상을 챙기는 이것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확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100여년 역사 속에서 그 중반부에 두 가지 환란이 겹치면서 확실하게 한번 정통성의 소재를 확인하게 된다. 한국교회 전체 속에서 고신이라는 이름으로 정통성은 한번 확인이 되었고 이것이 6.25를 통해 다시 고신 속에서도 백영희목사님으로 신앙의 정통성이 확인된다는 의미가 된다. 역으로 말한다면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신사참배나 6.25전란에서 승리치 못했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이런 환란에서 드러났고 그 문제점은 바로 세상이 중심이지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③한국교회의 실상이 세상주의였으니 신앙실패는 당연한 것이었다.
신사참배에서 또 6.25에서 신앙을 지키지 못한 것은 한국교회의 범죄 주범이 바로 세상주의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이런 주범이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신앙으로 표방하고 활동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기마다 생사를 나누는 환란으로 그 교회의 본질이 어느 것이었느냐는 것을 시험했고 그 뿌리가 세상에 있던 한국교회의 신앙실패는 당연했던 것이다.
3.6.25가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진정한 신앙모습
①공산정권하에서 보여준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모습
이미 교회의 정통성은 신사참배와 그후 회개운동을 통해서 고신교단으로 소재파악이 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교회가 구원이라는 천주교와 달리 성경대로 믿는 우리는 한번 정통성을 가졌다고 해도 다음 시험에서는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 있음을 안다. 6.25 공산치하는 신사참배를 실패했던 이들에게는 재확인을, 그리고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는 그 승리의 의미를 재분류 재분석하고 있었다.
신사참배 승리를 신사참배라는 사건에서 승리한 이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신사참배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닥친 6.25에서는 실패하게 된다. 신사참배 승리가 신사참배 승리로 끝나지 않고 어떤 세상주의라도 교회 안에서는 배제시키고 오직 말씀에만 붙들린 사람으로 신사참배를 이긴 이들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신사참배라는 모습과 고통을 가진 세상주의에게는 이겼으나 다른 고통 다른 모습의 세상주의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어떤 모습 어떤 종류의 세상주의라도 세상주의라는 자체가 교회에는 발을 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들이고 이들은 신사참배를 세상주의의 일종으로 보았고 그래서 세상주의를 이긴 신앙인들이었다. 전자의 경우 신사참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급박하고 현장즉결처분을 해버리는 공산주의 앞에서는 여지없이 실패하였다. 6.25전란은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세상주의 단절이 어떤 차원이며 어떤 의미라는 것을 분석해 보는 성격이 되었다.
②6.25이후 세상주의로 매진했던 고신지도부의 행적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진정한 실패시점은 해방시점이 아니라 6.25였다.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승리가 진정한 신앙승리의 본질을 가졌느냐는 것은 해방시점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6.25에서 확정되어졌다. 6.25전란이 신사참배 실패자들이 주도한 지역을 완전히 쓸고 가면서 아무리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신사참배 실패자들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한 것같이, 6.25이후 고신지도부의 행적은 불신자들도 비난하고 알 수 있도록 교권일편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신사참배의 승리가 세상주의를 본질적으로 승리했던 승리가 아니었음을 6.25를 통해 보이셨고, 6.25에서 나타난 고신의 실패는 6.25 이후 교권을 위해 무한 투쟁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고신의 주체도 역시 세상주의였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준 표시판이었다. 신사참배 승리로 한국교회의 정통성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은 임시 보관이었던 것이다.
③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6.25와 그후 신앙행적에서 확인되는 한국교회의 정통성
일본 식민지 탄압 속에서 생사를 넘나든 종류는 비단 교회뿐이 아니다. 독립을 위한 애국주의, 공산혁명을 전제로 한 빨치산 항일운동, 민족자긍심에 근거한 한민족제일주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고 움직인 정치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한 자연주의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이들도 일본 식민지 탄압을 같은 고통 속에서 견디고 또 죽기도 하였다. 비록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은 되었지만, 교회의 교권이 목적일 수도 있고 자신이 주장했던 설교의 언행일치 때문일 수도 있다. 진정한 모습은 훗날이 쉽게 알려준다. 6.25는 신사참배 승리자들에게도 넘어갈 수 없는 환란임을 보였고 그들의 한계점을 보여준 6.25는 신사참배의 본론일 수 있었다. 6.25는 승리자들의 등급을 분리하며 향후 한국교회의 촛대가 어디를 향할지 보여주고 있었다. 즉 끝나지 않았던 신사참배였으니 6.25는 다시 나타난 신사참배 환란이었다. 그러나 8.15해방으로서 신사참배가 끝나고 이때까지 승리한 이들은 다시는 패전없는 승리자인 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영원한 승리자로 자임하는 실수를 했었고, 그들에게 끝나지 않았던 후편 환란이 엄습하여 성급했던 이들까지 전부 신사참배의 실질적 실패자로 도장을 찍었던 사건이 바로 6.25라고 하겠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세상주의란 어떤 때 어떤 강도로 어떤 모습으로 닥쳐와도 초월했던 이들이 손양원, 주남선, 백영희였다. 손양원은 특수목회자로 그 신앙의 계통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엄밀하게 전달되는 계통이 있다면 애양원교회에서 분리 개척했던 손목사님의 사모님과 그를 따르는 몇몇 교인을 통해 현재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로 소속하여 있다. 주남선 역시 그 신앙의 계대는 오직 백영희 신앙노선 교회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법적으로 확인되는 정통성보다 교회사적으로 하나님이 세우는 촛대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추적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6.25를 통해 확인되는 모든 신앙주의의 흐름은 백영희로 집적되고 있다. 또한 백영희의 6.25 이후 40여년 여생의 걸음을 통해서 이는 확인되고 있다. 뿌리로 나무종류를 알기는 어려우나 맺힌 열매로 뿌리의 종류를 확인하기는 너무도 쉽다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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