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가는 것만 문제라면, 교회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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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가는 것만 문제라면, 교회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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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죽어 천국 가는 문제까지만을 두고 말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죄 지은 인간은, 영이 즉시 죽었고 몸과 마음은 일생이라는 시간을 통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몸과 마음이 아니라 영이기 때문에 이 영이 죽는 즉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지옥갈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인간이 세상을 사는 것은 그 영이 아니라 그 몸과 마음으로만 살고 있습니다. 짐승도 몸과 마음으로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두고 성경은 안 믿는 인간들을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살아 있는데도 마음 안에 있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영이 죽었지만 동물들처럼 사냥을 하고 짝짓기를 하고 웃고 우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천국을 두고는, 우리의 영이 죽었기 때문에 인간은 천국을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완전히 단절된 이 면을 두고 완전히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몸과 마음만을 가지고 '고등' 동물로 살다가 전부 지옥으로 가는 길, 한 길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 지옥가는 길에서 돌이켜 천국을 향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영이 죽은 인간으로는 전혀 불가능입니다. 절대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죽은 존재를 두고는 외부에서 다른 존재가 개입하게 되면 몰라도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죽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2.죽은 우리를 살리는 일은, 전적 외부에 계신 하나님만이 하는 일입니다.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영이 죽어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진 우리는, 우리 인간이 먼저 노력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더듬다가 돌을 붙든 불교도 있고 더듬다가 더듬을 것이 없어 도덕을 붙든 유교도 있습니다. 또 수준이 낮아 뒷산 느티나무를 붙든 분도 있고, 어떤 이는 혹 스스로 찾아서 교회를 다니는 분도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이 종교를 부인하고 살든, 다른 종교를 붙들고 살든, 혹 예수믿는 사람들과 같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든 그 사람의 행동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나 그 사람 마음에 진심으로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은 인간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혹 그런 마음이 생겼다면 하나님이 믿게 해 주어서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어 있는 송장을 살릴 수 있는 특별 조처를 취하여 하나님이 살리면 살아나게 되고 살아나게 되면 하나님을 찾고 이전처럼 천국을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하나님께서 해 주시기 전까지는 인간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관한 것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할 수 없고 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연의 일치로 그 행동이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괜히 소용없는 헛수고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려놓아서 살아났다면 이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비로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도 하고 또 그런 마음도 생겨지게 되고, 또 그런 마음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3.믿어보려고 별별 노력을 다하다가, 마침내 믿는 사람이 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동안 믿어보려고 했던 자기 노력 때문에 그 노력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 믿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도록 정해놓은 때에 하나님께서 믿어지도록 만드니까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믿어지도록 할 때, 혹 거부를 하면? 거부하고 말고는 자기 '마음'의 결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 속에 믿어지게 하는 힘이 나타날 때는 이미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영은 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영이 살아났다면 그 마음은 거부를 하든 말든 상관이 없이 그 사람 자체를 이미 살려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몸으로 더불어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영을 일방적으로 살려놓은 것입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니까, 이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표시가 바로 자기 마음 속에 믿고자 하는 이상한 움직임이 있든지, 아니면 한쪽에서는 믿고 싶고 다른 마음에서는 아직까지 머뭇거리는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믿는 마음이 진정으로 자기 속에서 감지가 된다면, 그 양이 아무리 적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 마음 속에 죽었던 영을 하나님께서 살려놓았다는 증표가 됩니다. 굴뚝에서 연기가 보였다고 한다면 그 연기의 색깔이나 양에 상관없이 일단 아궁이에서는 무엇인가 불을 지폈다는 뜻입니다.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질문하신 표현과 관련하여 하나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영을 살릴 때 살리는 그 치료약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이 대속한 값을 그 죽은 영에게 적용시키면 그 영은 그 영을 죽인 죄값에서 해독이 되어 살아나게 됩니다.


4.이제 다시 한번 순서를 생각해 보신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죄없는 사람이 없고, 죄 때문에 영이 다 죽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어질 수도 없고 그냥 예수님과는 상관없이 살고 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영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리게 되면, 그 영이 살아납니다. 살아난 영은 자기 마음에게 예수님을 믿고 살도록 지도를 하고 권면을 하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때가 믿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는 때입니다. 혹 남의 손에 끌려서 교회를 나갔다면, 억지로 나갔다고 생각하는 때이고 자기 양심으로는 아직도 망설이는 때입니다. 즉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이미 믿는 사람이 되었는데 자기 자아 의식은 아직도 안 믿었다고 생각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중생된 시점입니다. 다만 초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영의 활동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 그 사람은 어느날 믿어지는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설교를 듣는 중이나 성경을 읽는 중이나 혹은 길을 가는 중에라도 불현듯 자기 마음 속에서 신앙으로 달려가려는 움직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가 되어야 비로소 자기 입으로 자기 마음에서 솟아나는 고백을 더 이상 누를 수가 없어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합니다.'라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끝까지 그런 말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는 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고 믿어지는 자신을 막을 수 없는 때, 그때에야 '예수님을 내가 원해서 믿는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자기의 인식이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그 사람의 영은 이미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5.결론적으로


하나님과 천국을 향하여 자기 마음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이 살려놓은 영이 움직인 결과입니다. 이제 살아난 영은, 송장처럼 그냥 누워있지를 못합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게 됩니다. 영이 살아난 순간, 우리는 천국갈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 확정이 되어, 이후 영의 활동과 마음의 반응에 상관없이 무조건 천국은 갑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 전부에게 꼭같이 해당되는 '기본' 구원입니다.


그러나, 살아난 영이 자기 마음과 몸을 어떻게 잘 살려가느냐는 문제는 천국갈 우리끼리도 각각 다릅니다. 천국갈 사람들 사이에도 그 영의 활동과 결과 그 영의 평생 살아가는 방법에 따라 하나님을 닮은 양도 틀리고 복음 운동에 힘쓴 노력도 틀리고 또 신앙에 승리한 값도 제각각 다릅니다. 이것을 '건설' 구원이라고 합니다.


질문 내용을 중심으로, 직접 순서를 정리하자면


.하나님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 영을 죽은 상태에서 살려, 우리의 영이 살아나게 되면

.살아난 영은 자기 마음에게 예수님을 믿고 살도록 노력을 하게 되고

.마음이 예수님을 믿기로 확정을 하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믿었다고 느낍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 이제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알게 되고 또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실은 자기에게 믿는 마음을 주신 것은 전적 외부 하나님의 역사이고 인간 스스로는 그런 마음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것은 단 하나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질문 내용과 직접 관련된 내용의 마지막 부분과 관련하여,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목적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고 봅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잘 믿었는데 몇 년간 예수님 없이 세상으로 타락했던 사람의 경우는 다시 잘 믿어야 천국가게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게 된 것은 자기가 느끼지도 못할 때 '기본적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이후는 어떤 생활에도 상관없이 천국가는 것까지는 완전히 확정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갈 천국은 주신 말씀대로 어떻게 평생을 살았느냐에 따라 그 영원한 자기 모습과 실력과 영광과 활동이 각각 다를 것이기 때문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를 초보 신앙이라고 합니다.


조금 신앙이 자라게 되면, 자기의 천국 모습이 더 낫게 되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성경을 통해 명령한 명령 때문에 순종하게 됩니다. 천국 가기 위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천국은 가게 되었으나 나를 천국에 가도록 해 주신 그 예수님의 명령이요 부탁이기 때문에 열심히 말씀대로 살려고 해야 하는 단계가 신앙이 조금 더 자란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거쳐, 신앙이 쑥 자라버린 사람이 되면 이제는 예수님이 자기를 어떻게 희생하여 구원했는지를 생각할 때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내가 그를 위해 죽지 않을 수가 없고 그분의 그 사랑에 취하여 죽어 드리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으로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려면 당신이 말씀해 놓은 그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사람이 되어 그 말씀을 지키게 되고, 그분이 목숨바쳐 구원하려 한 당신의 양들을 구원하는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동참이 되려고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단언하건데, 천국을 가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오해입니다. 천국가는 것까지가 문제라고 한다면, 이미 믿게 된 우리는 어떤 죄를 골라서 지어도 천국은 갑니다. 지옥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도록 구원해 놓았습니다. 내 행동으로 그리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은 이후의 행위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 행한대로 계산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철이 든 정도에 따라 금방 말씀드린 몇 가지 단계가 있고 수준이 있습니다.
[교회] 구원받기위해 예수님믿습니까? 예수님믿으므로 구원받.. (교회 다니는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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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세요?

신앙생활한지얼마되지않습니다.

우리가 교회다녀야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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