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성탄절, 불우이웃돕기가 성탄의 의미인 줄 알던 당시 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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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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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9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교회행사~성탄절~]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교회행사-성탄절-]/[-설교록-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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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영희목사님의 서부교회 '주일학교 공과'
①세상학교를 본떠 만든 주일학교를, 행정과 교훈면에서 원상회복 시킨 '주교의 종교개혁'
이곳을 찾는 일반인을 위해 질문 내용에서 말씀하신 '구주탄생'이라는 주일학교 공과를 잠깐 소개합니다. 이곳의 신앙연구가 집중적으로 참고하고 있는 분이 '백영희'목사님입니다. 1952-1989년 기간 부산서부교회를 목회하는 중, 주일학교를 행정과 교훈면으로 개편운영하게 됩니다.
우선 행정면으로는, 세상 학교식 편제처럼 매년 담임과 학년의 변동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의 주일학교를 개편하게 됩니다. 반사로 하여금 개척하여 목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와 같이 주일학교를 맡도록 모든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교훈면으로는, 아동심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계단식 공과로 되어 있는 세상 학교식 교과 체제를 개편하여, 매주일 예배 설교를 예배 후 바로 요약하여 학생들에게 그 다음 주일에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세상학교식 학습을 교회식 예배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②'구주탄생'이라는 제목의 주일학교 공과
백목사님은 주일오전 오후 설교가 끝나고 나면 예배당을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그날 설교 내용을 요약하여 다음 시간 주일학생 공과로 작성하게 됩니다. 1983년 12월 25일은 성탄절인데 마침 주일이었고 그 주일 설교 내용이 바로 '구주탄생'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예배 마치고 그날 설교를 공과로 요약한 뒤 그 자리에서 반사회를 하였고 반사들은 그날 예배 때 받은 말씀과 반사회에서 요약해 준 내용으로 그다음 주일 오전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성탄절과 신년첫날은 항상 같은 요일이 됩니다. 83년 12월 25일이 주일이었기 때문에 그다음 주일은 1984년 1월 1일이었습니다. 새해 첫날 주일학교에서는 그 앞 주일 성탄절 설교로 새해 첫 공과를 가르쳤습니다.
③'구주탄생'이라는 공과는 여러 성탄공과 중에서도 좀 특별한 공과였습니다.
백목사님 설교치고 은혜롭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마다 그 말씀에 붙들리지 않은 것이 없어 나름대로 특별하게 기억하는 설교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좀 객관적으로 본다면, 1983년 성탄절은 사회적으로도 불우이웃돕기를 눈에 띄게 벌이던 때였습니다.
우연히 TV 뉴스에서 백목사님은 성탄절이라는 교회 행사에 세상까지 나서서 불우이웃돕기를 전면적으로 하는 것을 보며, 세상이 알고 있는 성탄절과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성탄절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참 성탄절의 의미 등에 대하여 그해 성탄절 설교를 통해 두루 가르치게 됩니다. 물론 주일학교 공과는 최소한으로 요약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도 어렵고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기는 더욱 어려운 편입니다.
2.'구주탄생'이라는 공과
①우선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공과 내용을 모르는 분들은 /초기화면/활용자료/주교공과/'1984-1-1'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공과의 전체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파악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3가지 희생을 당했습니다.
둘째, 인생은 자기의 5가지 삶을 살면서 지금과 영원을 3가지 멸망으로 멸망당합니다.
셋째, 인생 멸망의 원인은 죄요, 해결은 예수님 대속뿐입니다. 이웃돕기는 전도의 방편입니다.
②약간 내용을 더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고대사회는 예수님이라는 이름과 그 흔적조차 없애려고 노력했으나 현대사회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인정하는 대신 그 속에 하나님을 없애려고 발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성탄절이 세계명절이 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성탄절을 축하해도, 우리는 귀신의 이 장난 저 장난일 뿐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첫 걸음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 내어놓으셨으니 입은 옷 한벌로 평생 사시는 '가난', 마굿간까지 '낮아짐', 그 평생과 죽음이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시지만 이 지극하신 희생을 다 당하고 해결하신 것이 바로, 우리가 멸망 고통 중에서 살고 있는 원인인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우리는 멸망 중에 있었습니다.
인생이 당하는 고통을 헤아리려면 한도 없이 많으나 이 공과에서는 3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세상에서도 지옥에서도 고난, 절망, 가난 셋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에서도 지옥에서도 우리 몸이 고통의 고난, 헤어날 수 없는 절망, 물 한방울의 자유도 없는 가난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도, 우리 영도, 우리 하는 일도, 우리 물질 소유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삶은 몸 뿐 아니라, 마음의 삶도 있고, 영의 삶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삶은 몸 뿐 아니라, 자기 해놓은 일과 물질을 통한 삶도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영, 마음, 몸, 일, 물질 등 5가지 차원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5가지가 각각 고난을 받고 절망에 빠지고 가난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었습니다.
셋째, 우리가 이 모든 고통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성탄절이라고 하여 세상까지 거들고 나서는 것을 두고 교회는 그것이 교회를 이해하고 도와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물품을 전달하는 것은 우리가 5가지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 중에 육체의 가난에 일부 일시 해결일 수 있습니다.
성탄절 이웃돕기로 떠들썩하다가 그 집에 라면 한 상자를 가지고 오면 그 몸은 우선 몇 일 배불리 먹고 일시 가난에서 벗어나는 듯 하지만 그 마음은 오히려 괴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못난 자신을 보고 또 도와 주러온 사람의 태도에서 시험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있고 영의 양식도 있으며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하는 일에서도 만족을 해야 하고 그가 가진 물질 소유까지도 그의 일부인데, 세상이 돕는다고 떠드는 것은 잘해봐야 외부에 있는 3가지, 즉 물질 일 육체나 좀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도움은 예수 밖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보다 더 잘 돕는 사회단체도 있습니다. 또 그것으로는 도와 봐야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이 3가지 멸망에서 고통받는 원인은, 죄 하나입니다. 죄 하나가 들어와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죄문제만 해결되면 바로 우리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지 하나를 해결치 못하고는 어떤 것으로도 해결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한 것이 예수님 대속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모르는 인생이 떡이 전부인 줄 알기 때문에 성탄절에 떡을 주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교회가 떡국을 끓이고 떡을 이웃에게 나누는 것은, 그 떡이 구원이고 해결이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떡이나 보지 그 떡을 전하는 교인의 마음 속에 가지고 온 구원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탄절이라는 이름에 핑게를 대고 우리는 떡을 나누면서 그 속에는 예수만이 해결이고 예수만을 전할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의 구원은 빼먹고, 떡을 주고 받고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저희들끼리 잔치를 벌이고 뛰고 구르고 있는 것이 오늘 세상이요 오늘 교회요 오늘 교인들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성탄절에 예수님은 빼놓고 인간 저희들끼리 잔치를 벌이고 있는 괴상망측한 현상이 눈에 보이시는지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온 이 기념이 성탄절인데, '하나님'이라는 알맹이는 빼놓고, '인간' 예수라는 면만 강조하는 오늘 교회를 탄식하고, 오늘날 잃어버린 예수 속에 하나님을 찾고, 죄를 구원하러 오신 희생을 찾고, 그 희생으로 주신 대속을 찾아, 죄를 멸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진정한 성탄절이 된다는 면을 가르친 공과입니다.
③물론, 성탄절의 행태만을 탄식한 공과는 아닙니다.
세상과 교계의 행태를 볼 때는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이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이 공과는 남들이야 이러든 저러든 '나는 어찌 믿고, 어찌 살아야 하겠는가?' '어떻게 믿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이것이 다급한 문제입니다. 남 욕하다가 날 고칠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고요히,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느껴 보시고
고요히, 주님 당하신 그 희생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종류로 헤아려 가며 실감해 보시고
고요히, 예수님 없이는 '나'라는 인생이 헤어날 수 없는 3가지 멸망의 실상을 느끼시되
고요히, 이 문제를 해결한 주님의 대속과 그 대속으로 어찌 살아야 할 나라는 것을 확정할 공과입니다.
3.백목사님의 설교는 따로 설명할 때마다 늘 부담이 많습니다.
세상 인간들끼리도 그 수준 차이가 많이 나게 되면, 설명하는 일에 부담이 많습니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신다면, 그 성의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정확성에는 문제가 아주 많게 됩니다. 차라리 그 그림 그대로를 보면서 느껴 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찌. 선생님 수준에서 설명을 해버리므로 아이들이 그 설명에 의하여 오히려 평생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신앙의 차원은 하나님을 모신 차원이기 때문에, 그 공과를 들으셨던 그때 은혜를 찾으시고, 또 답변자 역시 그때 은혜를 되새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사실 안전한 일입니다. 답변자가 한번 살펴 본 것은, 물론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면도 있다는 정도에서 그쳤으면 합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교회행사-성탄절-]/[-설교록-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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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영희목사님의 서부교회 '주일학교 공과'
①세상학교를 본떠 만든 주일학교를, 행정과 교훈면에서 원상회복 시킨 '주교의 종교개혁'
이곳을 찾는 일반인을 위해 질문 내용에서 말씀하신 '구주탄생'이라는 주일학교 공과를 잠깐 소개합니다. 이곳의 신앙연구가 집중적으로 참고하고 있는 분이 '백영희'목사님입니다. 1952-1989년 기간 부산서부교회를 목회하는 중, 주일학교를 행정과 교훈면으로 개편운영하게 됩니다.
우선 행정면으로는, 세상 학교식 편제처럼 매년 담임과 학년의 변동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의 주일학교를 개편하게 됩니다. 반사로 하여금 개척하여 목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와 같이 주일학교를 맡도록 모든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교훈면으로는, 아동심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계단식 공과로 되어 있는 세상 학교식 교과 체제를 개편하여, 매주일 예배 설교를 예배 후 바로 요약하여 학생들에게 그 다음 주일에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세상학교식 학습을 교회식 예배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②'구주탄생'이라는 제목의 주일학교 공과
백목사님은 주일오전 오후 설교가 끝나고 나면 예배당을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그날 설교 내용을 요약하여 다음 시간 주일학생 공과로 작성하게 됩니다. 1983년 12월 25일은 성탄절인데 마침 주일이었고 그 주일 설교 내용이 바로 '구주탄생'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예배 마치고 그날 설교를 공과로 요약한 뒤 그 자리에서 반사회를 하였고 반사들은 그날 예배 때 받은 말씀과 반사회에서 요약해 준 내용으로 그다음 주일 오전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성탄절과 신년첫날은 항상 같은 요일이 됩니다. 83년 12월 25일이 주일이었기 때문에 그다음 주일은 1984년 1월 1일이었습니다. 새해 첫날 주일학교에서는 그 앞 주일 성탄절 설교로 새해 첫 공과를 가르쳤습니다.
③'구주탄생'이라는 공과는 여러 성탄공과 중에서도 좀 특별한 공과였습니다.
백목사님 설교치고 은혜롭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마다 그 말씀에 붙들리지 않은 것이 없어 나름대로 특별하게 기억하는 설교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좀 객관적으로 본다면, 1983년 성탄절은 사회적으로도 불우이웃돕기를 눈에 띄게 벌이던 때였습니다.
우연히 TV 뉴스에서 백목사님은 성탄절이라는 교회 행사에 세상까지 나서서 불우이웃돕기를 전면적으로 하는 것을 보며, 세상이 알고 있는 성탄절과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성탄절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참 성탄절의 의미 등에 대하여 그해 성탄절 설교를 통해 두루 가르치게 됩니다. 물론 주일학교 공과는 최소한으로 요약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도 어렵고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기는 더욱 어려운 편입니다.
2.'구주탄생'이라는 공과
①우선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공과 내용을 모르는 분들은 /초기화면/활용자료/주교공과/'1984-1-1'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공과의 전체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파악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3가지 희생을 당했습니다.
둘째, 인생은 자기의 5가지 삶을 살면서 지금과 영원을 3가지 멸망으로 멸망당합니다.
셋째, 인생 멸망의 원인은 죄요, 해결은 예수님 대속뿐입니다. 이웃돕기는 전도의 방편입니다.
②약간 내용을 더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고대사회는 예수님이라는 이름과 그 흔적조차 없애려고 노력했으나 현대사회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인정하는 대신 그 속에 하나님을 없애려고 발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성탄절이 세계명절이 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세상은 성탄절을 축하해도, 우리는 귀신의 이 장난 저 장난일 뿐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첫 걸음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 내어놓으셨으니 입은 옷 한벌로 평생 사시는 '가난', 마굿간까지 '낮아짐', 그 평생과 죽음이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시지만 이 지극하신 희생을 다 당하고 해결하신 것이 바로, 우리가 멸망 고통 중에서 살고 있는 원인인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우리는 멸망 중에 있었습니다.
인생이 당하는 고통을 헤아리려면 한도 없이 많으나 이 공과에서는 3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세상에서도 지옥에서도 고난, 절망, 가난 셋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에서도 지옥에서도 우리 몸이 고통의 고난, 헤어날 수 없는 절망, 물 한방울의 자유도 없는 가난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도, 우리 영도, 우리 하는 일도, 우리 물질 소유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삶은 몸 뿐 아니라, 마음의 삶도 있고, 영의 삶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삶은 몸 뿐 아니라, 자기 해놓은 일과 물질을 통한 삶도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영, 마음, 몸, 일, 물질 등 5가지 차원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5가지가 각각 고난을 받고 절망에 빠지고 가난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었습니다.
셋째, 우리가 이 모든 고통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성탄절이라고 하여 세상까지 거들고 나서는 것을 두고 교회는 그것이 교회를 이해하고 도와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물품을 전달하는 것은 우리가 5가지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 중에 육체의 가난에 일부 일시 해결일 수 있습니다.
성탄절 이웃돕기로 떠들썩하다가 그 집에 라면 한 상자를 가지고 오면 그 몸은 우선 몇 일 배불리 먹고 일시 가난에서 벗어나는 듯 하지만 그 마음은 오히려 괴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못난 자신을 보고 또 도와 주러온 사람의 태도에서 시험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있고 영의 양식도 있으며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하는 일에서도 만족을 해야 하고 그가 가진 물질 소유까지도 그의 일부인데, 세상이 돕는다고 떠드는 것은 잘해봐야 외부에 있는 3가지, 즉 물질 일 육체나 좀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도움은 예수 밖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보다 더 잘 돕는 사회단체도 있습니다. 또 그것으로는 도와 봐야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이 3가지 멸망에서 고통받는 원인은, 죄 하나입니다. 죄 하나가 들어와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죄문제만 해결되면 바로 우리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지 하나를 해결치 못하고는 어떤 것으로도 해결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한 것이 예수님 대속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모르는 인생이 떡이 전부인 줄 알기 때문에 성탄절에 떡을 주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교회가 떡국을 끓이고 떡을 이웃에게 나누는 것은, 그 떡이 구원이고 해결이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떡이나 보지 그 떡을 전하는 교인의 마음 속에 가지고 온 구원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탄절이라는 이름에 핑게를 대고 우리는 떡을 나누면서 그 속에는 예수만이 해결이고 예수만을 전할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의 구원은 빼먹고, 떡을 주고 받고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저희들끼리 잔치를 벌이고 뛰고 구르고 있는 것이 오늘 세상이요 오늘 교회요 오늘 교인들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성탄절에 예수님은 빼놓고 인간 저희들끼리 잔치를 벌이고 있는 괴상망측한 현상이 눈에 보이시는지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온 이 기념이 성탄절인데, '하나님'이라는 알맹이는 빼놓고, '인간' 예수라는 면만 강조하는 오늘 교회를 탄식하고, 오늘날 잃어버린 예수 속에 하나님을 찾고, 죄를 구원하러 오신 희생을 찾고, 그 희생으로 주신 대속을 찾아, 죄를 멸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진정한 성탄절이 된다는 면을 가르친 공과입니다.
③물론, 성탄절의 행태만을 탄식한 공과는 아닙니다.
세상과 교계의 행태를 볼 때는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이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이 공과는 남들이야 이러든 저러든 '나는 어찌 믿고, 어찌 살아야 하겠는가?' '어떻게 믿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이것이 다급한 문제입니다. 남 욕하다가 날 고칠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고요히,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느껴 보시고
고요히, 주님 당하신 그 희생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종류로 헤아려 가며 실감해 보시고
고요히, 예수님 없이는 '나'라는 인생이 헤어날 수 없는 3가지 멸망의 실상을 느끼시되
고요히, 이 문제를 해결한 주님의 대속과 그 대속으로 어찌 살아야 할 나라는 것을 확정할 공과입니다.
3.백목사님의 설교는 따로 설명할 때마다 늘 부담이 많습니다.
세상 인간들끼리도 그 수준 차이가 많이 나게 되면, 설명하는 일에 부담이 많습니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신다면, 그 성의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정확성에는 문제가 아주 많게 됩니다. 차라리 그 그림 그대로를 보면서 느껴 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찌. 선생님 수준에서 설명을 해버리므로 아이들이 그 설명에 의하여 오히려 평생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신앙의 차원은 하나님을 모신 차원이기 때문에, 그 공과를 들으셨던 그때 은혜를 찾으시고, 또 답변자 역시 그때 은혜를 되새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사실 안전한 일입니다. 답변자가 한번 살펴 본 것은, 물론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면도 있다는 정도에서 그쳤으면 합니다.
[공과/성탄절] 질문입니다.. (구주탄생공과를 요약좀 해주세요--관리자)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교회행사~성탄절~]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교회행사-성탄절-]/[-설교록-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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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다음주면 성탄절입니다..
어렸을때 구주탄생이라는 공과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구주탄생공과를 요약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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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교회행사~성탄절~]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교회행사-성탄절-]/[-설교록-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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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다음주면 성탄절입니다..
어렸을때 구주탄생이라는 공과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구주탄생공과를 요약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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