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교회 기초와 천국 열쇠'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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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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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8 00:00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제목: 교회 기초와 천국 열쇠
원문: 없음
(요약)
1.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1)교회의 정의
2)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는 영감
3)영감은 신앙양심을 통해서
2. 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1)사탄이 된 베드로
2)베드로를 물리치신 이유
3)고난을 피하면 십자가의 원수
4)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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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과는 1975년도 공과이므로 원문 설교가 남아 있지 않고, 설교록의 일반적인 내용을 토대로 삼아 공과를 설명하였습니다.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1.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1)교회의 정의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 받은 성도의 삼합(三合)입니다. 교회를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공과에 나와 있는 대로 교회는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참사람 건설된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구속 받은 성도 곧 ‘사람’이 교회이니, 온전한 행위는 온전한 참사람에게서 나오고, 온전한 참사람은 온전한 행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공과에서 말하는 교회는 이 면을 설명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회는 사람의 행위가 온전해지고 사람이 참사람으로 만들어진 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이며 동시에 이것이 지상교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신앙생활은 이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는 영감
모든 것은 기초가 튼튼해야 되듯이 교회 역시 그러합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교회가 튼튼한 것이고 기초가 약하면 교회는 약한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를 반석으로 삼았을 때 그 교회는 튼튼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반세반석이라야 합니다.
반석은 건물의 기초가 되는 아주 큰 돌을 말합니다. 모든 건물은 다 반석 같은 콘크리트의 튼튼한 기초 위에 건설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교회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과에서 ‘교회는 반석 위에 서 진다’고 하신 말씀은 교회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인 ‘사람’과 ‘교회인 사람들의 단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 구속 받은 성도인 ‘사람’이 온전한 행위를 이루고 온전한 사람이 건설되는 이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 교회가 바로 건설되는 것은 반석 위에서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반석은 만세반석입니다.
성경 본문과 공과에 ‘반석’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상징이며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믿기 전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드로에게 주님이 베드로 곧 반석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이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교회의 기초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 열쇠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이 이름을 주신 배경은 베드로가 구주 예수님에 대해서 주변 많은 사람들의 말에, 여론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자기 속에 자기 신앙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그 영감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정확하게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은 원래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드로라는 그 ‘사람’이 교회 기초인 반석이라는 말이 아니고, 베드로 속에서 베드로를 붙들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감동이신 ‘영감’이 교회의 기초 곧 반석이며, 천국 열쇠 또한 영감에 있다는 뜻입니다. 즉 베드로라는 사람이 ‘영감에 붙들려’ 말하고 행할 때 그 순간 베드로를 붙든 그 ‘영감’이 곧 반석이니 교회의 기초이며, 그것이 곧 천국 열쇠라는 말씀입니다. 이 베드로는 오늘로 말하면 바로 우리들이며, 우리도 영감에 붙들리면 베드로와 같이 교회의 기초가 되고 천국 열쇠를 가질 수 있으니 우리가 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3)영감은 신앙양심을 통해서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는 영감에 있습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지만 대개 교회는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두 사람, 혹은 몇 사람의 신앙으로 유지되고 성장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의 기초이며 천국 열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기초가 빠지면 집이 무너지듯이 그 교회에 그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신앙의 사람, 그 교회와 교인들의 영육의 모든 복이, 모든 구원의 성패가 그의 교훈에, 기도에, 지도에 달려 있는 천국 열쇠를 가진 신앙의 사람, 이런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영감이 아니면 교회 기초도 될 수 없고 천국 열쇠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감동인데, 하나님의 감동인 영감은 우리 속에 신앙양심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영감을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속에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공과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이며, 신앙양심이란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이 신앙양심이므로,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을 아는 만큼 그 양심은 신앙양심이 됩니다. 성경 말씀을 바로, 정확하게, 세밀하게, 많이 아는 만큼 그의 신앙양심은 밝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하나님이 감동인 영감은 그를 통해서 역사할 수 있으며, 참된 교회 건설인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사람은 이로써 건설된다는 것을 공과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감이 아니면 온전한 행위와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고, 영감은 신앙양심을 통해서만 역사하므로 당장 우리가 가장 힘쓸 것은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일입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신앙양심은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이므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출발이며, 성경 말씀대로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하나씩 행해 나가는 것이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실제 생활이며, 이 생활이 바로 되고 계속될 때 영감은 그에게 역사하게 되고, 그 영감에 붙들려 하는 모든 생활은 바로 교회의 기초이며 천국 열쇠를 가진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영감은 내 주관이 아닌 객관의 역사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관을 영감으로 오판하거나 착각하는 것을 봅니다. 영감이 영감인지 주관인지 판단하는 일차 기준은 성경 말씀입니다. 아무리 영감이라고 주장해도 성경에 맞지 않으면 자기 주관일 뿐입니다. 다음으로는 객관이신 하나님의 역사가 실제 있는지 봐야 합니다. 영감은 객관이신 하나님의 감동이므로 반드시 그 영감에 대한 하나님의 객관 역사가 있습니다. 이 역사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합니다. 바른 영감 역사는 세월 속에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2. 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1)사탄이 된 베드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고 천국 열쇠를 받았던 베드로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음 순간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대 책망을 받고 예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기초나 천국 열쇠는 베드로라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영감에 붙들렸을 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보여 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대 책망을 받은 사탄이 된 이유는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 걸음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셔야 될 것을 그때 비로소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그 말씀을 듣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간곡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면서 대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2)베드로를 물리치신 이유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그리 마시라고 반대한 것은 제자된 도리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부모가 고난의 길을 가려 하면 자녀가 말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스승이 고난의 길을 가려 할 때 제자가 간곡하게 말리는 것은 당연한 제자의 도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 걸음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을 죄로 인한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 영생의 천국으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는 필수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이 걸음을 막은 것이 인간의 도리로 보면 마땅하나 그 인간의 도리가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막는 일이 되어졌을 때 베드로는 바로 사탄이 된 것입니다. 조금 전에는 영감에 붙들렸던 베드로가 바로 그 다음 순간 사탄에게 붙들려 주님의 걸음을 반대하고 막았고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3)고난을 피하면 십자가의 원수
공과에서 가르치는 말씀은, 신앙 걸음은 십자가의 걸음이며 십자가의 걸음이란 곧 고난의 걸음이니 고난을 두려워하고 피하면 주님을 이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고난이 아니면 구원 얻지 못한다는 고행주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고 천국을 건설하는 하나님의 뜻을 악령이 왕 되어 있는 악한 세상에서 이루어 가려고 하면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며 고난 없이는 될 수가 없는 길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걸음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고난을 싫어하고 피하면 이 걸음을 걸어갈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책망 받은 사탄이 된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다고 바로 이어 말씀하신 이유 또한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4)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베드로는 신앙양심을 통해 알려 주시는 영감에 붙들려 주님을 알고 믿어 교회의 기초가 되고 천국 열쇠를 받는 큰 복을 받았으나 바로 다음 순간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주님을 반대하고 가로막다가 사탄이 되는 큰 화를 받았으니 그 이유는 고난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일에 고난을 두려워하고 피하면 주님 가신 이 길은 갈 수 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유와 몸과 생명, 가정, 가족, 세상 모든 것이 다 희생되어도 하나님의 뜻만은 저버릴 수 없는 이 신앙이 되어야 끝까지 이 걸음은 걸어갈 수 있고 그럴 때에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의 구원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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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는 cylee 목사님으로, 과거 서부교회 특수반을 책임 졌고 1984년 1월의 100호 첫 설교록 출간부터 지금까지 설교록 거의 전부를 실무 편집한 분입니다. 앞으로는 cyl 이름으로 답변하게 하겠습니다. - 관리자
제목: 교회 기초와 천국 열쇠
원문: 없음
(요약)
1.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1)교회의 정의
2)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는 영감
3)영감은 신앙양심을 통해서
2. 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1)사탄이 된 베드로
2)베드로를 물리치신 이유
3)고난을 피하면 십자가의 원수
4)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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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과는 1975년도 공과이므로 원문 설교가 남아 있지 않고, 설교록의 일반적인 내용을 토대로 삼아 공과를 설명하였습니다.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1.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1)교회의 정의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 받은 성도의 삼합(三合)입니다. 교회를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공과에 나와 있는 대로 교회는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참사람 건설된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구속 받은 성도 곧 ‘사람’이 교회이니, 온전한 행위는 온전한 참사람에게서 나오고, 온전한 참사람은 온전한 행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공과에서 말하는 교회는 이 면을 설명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회는 사람의 행위가 온전해지고 사람이 참사람으로 만들어진 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이며 동시에 이것이 지상교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신앙생활은 이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는 영감
모든 것은 기초가 튼튼해야 되듯이 교회 역시 그러합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교회가 튼튼한 것이고 기초가 약하면 교회는 약한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를 반석으로 삼았을 때 그 교회는 튼튼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반세반석이라야 합니다.
반석은 건물의 기초가 되는 아주 큰 돌을 말합니다. 모든 건물은 다 반석 같은 콘크리트의 튼튼한 기초 위에 건설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교회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과에서 ‘교회는 반석 위에 서 진다’고 하신 말씀은 교회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인 ‘사람’과 ‘교회인 사람들의 단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 구속 받은 성도인 ‘사람’이 온전한 행위를 이루고 온전한 사람이 건설되는 이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 교회가 바로 건설되는 것은 반석 위에서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반석은 만세반석입니다.
성경 본문과 공과에 ‘반석’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상징이며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믿기 전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드로에게 주님이 베드로 곧 반석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이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교회의 기초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 열쇠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이 이름을 주신 배경은 베드로가 구주 예수님에 대해서 주변 많은 사람들의 말에, 여론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자기 속에 자기 신앙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그 영감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정확하게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은 원래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드로라는 그 ‘사람’이 교회 기초인 반석이라는 말이 아니고, 베드로 속에서 베드로를 붙들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감동이신 ‘영감’이 교회의 기초 곧 반석이며, 천국 열쇠 또한 영감에 있다는 뜻입니다. 즉 베드로라는 사람이 ‘영감에 붙들려’ 말하고 행할 때 그 순간 베드로를 붙든 그 ‘영감’이 곧 반석이니 교회의 기초이며, 그것이 곧 천국 열쇠라는 말씀입니다. 이 베드로는 오늘로 말하면 바로 우리들이며, 우리도 영감에 붙들리면 베드로와 같이 교회의 기초가 되고 천국 열쇠를 가질 수 있으니 우리가 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3)영감은 신앙양심을 통해서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는 영감에 있습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지만 대개 교회는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두 사람, 혹은 몇 사람의 신앙으로 유지되고 성장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의 기초이며 천국 열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기초가 빠지면 집이 무너지듯이 그 교회에 그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신앙의 사람, 그 교회와 교인들의 영육의 모든 복이, 모든 구원의 성패가 그의 교훈에, 기도에, 지도에 달려 있는 천국 열쇠를 가진 신앙의 사람, 이런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영감이 아니면 교회 기초도 될 수 없고 천국 열쇠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감동인데, 하나님의 감동인 영감은 우리 속에 신앙양심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영감을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속에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공과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이며, 신앙양심이란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이 신앙양심이므로,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을 아는 만큼 그 양심은 신앙양심이 됩니다. 성경 말씀을 바로, 정확하게, 세밀하게, 많이 아는 만큼 그의 신앙양심은 밝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하나님이 감동인 영감은 그를 통해서 역사할 수 있으며, 참된 교회 건설인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사람은 이로써 건설된다는 것을 공과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감이 아니면 온전한 행위와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고, 영감은 신앙양심을 통해서만 역사하므로 당장 우리가 가장 힘쓸 것은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일입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신앙양심은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이므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출발이며, 성경 말씀대로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하나씩 행해 나가는 것이 신앙양심을 가꾸고 기르는 실제 생활이며, 이 생활이 바로 되고 계속될 때 영감은 그에게 역사하게 되고, 그 영감에 붙들려 하는 모든 생활은 바로 교회의 기초이며 천국 열쇠를 가진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영감은 내 주관이 아닌 객관의 역사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관을 영감으로 오판하거나 착각하는 것을 봅니다. 영감이 영감인지 주관인지 판단하는 일차 기준은 성경 말씀입니다. 아무리 영감이라고 주장해도 성경에 맞지 않으면 자기 주관일 뿐입니다. 다음으로는 객관이신 하나님의 역사가 실제 있는지 봐야 합니다. 영감은 객관이신 하나님의 감동이므로 반드시 그 영감에 대한 하나님의 객관 역사가 있습니다. 이 역사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합니다. 바른 영감 역사는 세월 속에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2. 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1)사탄이 된 베드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고 천국 열쇠를 받았던 베드로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음 순간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대 책망을 받고 예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기초나 천국 열쇠는 베드로라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영감에 붙들렸을 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보여 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대 책망을 받은 사탄이 된 이유는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 걸음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셔야 될 것을 그때 비로소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그 말씀을 듣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간곡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면서 대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2)베드로를 물리치신 이유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그리 마시라고 반대한 것은 제자된 도리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부모가 고난의 길을 가려 하면 자녀가 말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스승이 고난의 길을 가려 할 때 제자가 간곡하게 말리는 것은 당연한 제자의 도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 걸음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을 죄로 인한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 영생의 천국으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는 필수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이 걸음을 막은 것이 인간의 도리로 보면 마땅하나 그 인간의 도리가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막는 일이 되어졌을 때 베드로는 바로 사탄이 된 것입니다. 조금 전에는 영감에 붙들렸던 베드로가 바로 그 다음 순간 사탄에게 붙들려 주님의 걸음을 반대하고 막았고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3)고난을 피하면 십자가의 원수
공과에서 가르치는 말씀은, 신앙 걸음은 십자가의 걸음이며 십자가의 걸음이란 곧 고난의 걸음이니 고난을 두려워하고 피하면 주님을 이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고난이 아니면 구원 얻지 못한다는 고행주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고 천국을 건설하는 하나님의 뜻을 악령이 왕 되어 있는 악한 세상에서 이루어 가려고 하면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며 고난 없이는 될 수가 없는 길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걸음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고난을 싫어하고 피하면 이 걸음을 걸어갈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책망 받은 사탄이 된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다고 바로 이어 말씀하신 이유 또한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4)끝까지 이 길을 가려면
베드로는 신앙양심을 통해 알려 주시는 영감에 붙들려 주님을 알고 믿어 교회의 기초가 되고 천국 열쇠를 받는 큰 복을 받았으나 바로 다음 순간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주님을 반대하고 가로막다가 사탄이 되는 큰 화를 받았으니 그 이유는 고난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일에 고난을 두려워하고 피하면 주님 가신 이 길은 갈 수 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유와 몸과 생명, 가정, 가족, 세상 모든 것이 다 희생되어도 하나님의 뜻만은 저버릴 수 없는 이 신앙이 되어야 끝까지 이 걸음은 걸어갈 수 있고 그럴 때에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의 구원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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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는 cylee 목사님으로, 과거 서부교회 특수반을 책임 졌고 1984년 1월의 100호 첫 설교록 출간부터 지금까지 설교록 거의 전부를 실무 편집한 분입니다. 앞으로는 cyl 이름으로 답변하게 하겠습니다.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