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선교 시대'가 우리 현실입니다.

문의답변      


이제 '선교 시대'가 우리 현실입니다.

분류
yilee 0
1. 선교 시대의 시작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인 이 곳 여수의 바다 가 마을에도 외국에서 결혼해 오신 분들이 평범하게 보이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시내 마트를 나가면 여러 명이 몰려 다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나가야 선교였는데 이제는 이 안에서 심각하게 선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동안 외국으로 나가는 선교에 대해서는 늘 우려스러웠습니다. NTM처럼 정말 선교를 하는 곳도 있는데 그 숫자는 너무 적어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고, 우리 주변과 언론에 드러 나는 대부분 선교는 해외 탐방이거나 아니면 그 이름을 홍보용으로 상표처럼 사용을 하는 것이고 그 내용은 해외 도피나 해외 모험이라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국내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거창하게 선교 이름을 오용한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2. 선교사의 사명으로 대하실 것


그런데 이런 문제로 고민할 것도 없이 어느 덧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국교회가 생각하지 못했던 선교 현실을 한국의 모든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외국으로 나가는 선교는, 선교에 앞 서 과연 이 것이 선교가 맞는지 그 뜻을 찾기가 참으로 어려웠는데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 오는 분들의 숫자가 지나 가는 나그네나 찾아 오는 손님 정도가 아니라 우리 속에 거주민이 되어 급속하게 접촉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현실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전체에게 선교의 현실을 시대적으로 주셨으니 이제 한국교회는 '선교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답변자 교회에도 외국에서 결혼하여 오신 분이 4 가정이나 전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계가 사용하는 선교라는 말이나 사회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이라는 개념도 없었는데 이렇게 지역적으로 멀고 또 교회 분위기적으로도 그런 면에 가장 어둡고 먼 교회에까지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발생했다면 전국 다른 지역과 다른 교회들은 더 깊숙하게 이 현실을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 가정의 해외 출신 분들은

그 어떤 신분에서 이 곳에 있든지 내용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그들을 나그네와 이방인으로 상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 역시 실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리적 인종적 구성 여건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단일 민족 흐름이 강하고, 역사적으로 유교 문화에서 양반 개념과 텃세라는 인식 등으로 외국인을 생활 속에 자연스런 이웃을 맞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현실을 바꾸어 주신다면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결정이며 인도이므로 무조건 나와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말씀 순종일 것입니다. 그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 정신입니다. 일반 전도나 교인 인도 차원에서 접근하려면 분명히 그 분들이 보이지 않는 유리 장벽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백인 교회나 백인 상류 사회가 오늘 세계적 분위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전혀 인종 차별이나 그들끼리의 모임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차단벽이 있어 더 접근할 수 없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에 들어 온 그 분들을 만일 백인 사회가 우리에게 하듯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그들을 돕고 잘 지원한다 해도 부자의 거지 동냥 주기일 뿐입니다. 값 싼 동정에 지나지 않으며 부자들의 사회 기여 활동의 대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해외 선교를 제대로 하는 분들을 염두에 둔다면 선교사들이 그들 사회에 가장 자연스런 이웃이 되어야 진정 교회가 세워 지고 전도가 되기 때문에 소위 현지화가 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고향의 가정 직장 모든 생활 환경 전부를 다 포기하고 비행기를 타고 그 나라까지 가서라도 선교를 해야 할 우리들이 비록 신앙의 원칙 때문에 그 동안 자기 현실에서 충실하다 보니까 선교 현실을 갖지 못하여 선교에 충성하지 못했다면, 이제 그들을 이 곳으로 불러서 선교하게 하시는 시기를 갖게 되었으니 진성의 해외 선교사가 기울이는 노력 100 분의 1만 기울여도 아마 선교의 효과는 클 것 같습니다.


3. 선교 환경에서는


말과 글과 생활과 사고 방식까지 다 다른데다 신앙으로는 불신자를 전도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해서 안 된다고 금지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치료도 해 주고 먹여도 주고 글을 가르 쳐 주기도 하고 그들을 우리 사회 정착에 필요하도록 안내하고 상담하는 등의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전도의 목적이라 해도 물질로 돕고 봉사하면 제대로 된 신앙이 잘 들지 않게 됩니다.

신앙에서는 물질이 많이 움직일수록 세상 방편을 많이 활용할수록 참 신앙과는 멀어 지게 되므로 이 곳에 와서 처음 생활하는 분들에게 일반 생활 면에서는 우리 식구로 생각을 해서 최선을 다해도 교회와 신앙 문제를 두고는 순수하게 복음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즉, 교회가 이주민 한글학교나 결혼 다문화가정 무슨 탐방이나 그들만의 별도 예배 등으로 접근하는 일은 하지 않을수록 좋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신 전도하는 교인이 직장이나 이웃이나 가족으로 생활하는 평소에 자기가 그를 친근히 하고 나로 인해 믿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개인 차원에서 돕는 것은 지혜롭게 잘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로서 교회가 원래 하는 일만 하면 되고, 교인은 개인적으로 불법 체류자라면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선까지는 도울 수 있습니다. 직장 안내도 할 수 있습니다. 각종 우리 사회의 혜택을 안내 해 줄 수도 있습니다. 교회로서는 하루 밤 잠 잘 곳이 없어 들어 오는 사람이라면 그 교회의 건물 구조와 능력 범위에서 그렇게 해 줄 수는 있으나 교회가 불법체류자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등의 사회적 활동은 하지 않는 것이 결국은 좋을 것입니다.


4. 참고로


우리는 과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선교사들에게 선교의 대상이었고, 한국의 목회자나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살게 될 때 그들이 장래 한국 교회를 기른다는 입장에서 당시 극진하게 우리를 돌 본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미국 교회는 한국 교회를 오늘의 한국 교회로 기른 부모 노릇을 했습니다.


앞에서는 주로 원리 면에서 소개했는데, 우리는 그런 원리 면에 더하여 우리가 배고플 때 우리를 먹여 주면서 치료 시켰고 끝내 이 나라의 오늘 교회를 만든 시절을 오늘에 생생하게 기억해서 다른 나라 다른 사회보다는 하나 더 뜨거움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진심을 담아 성심을 다하게 되면 물질과 여러 가지 봉사 활동 면에서는 부족하다 해도 신앙 면에서는 꼭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1970년대 서울의 대형 교회들이 과거의 '전도회'를 어느 순간부터 '선교회'라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당시는 전도보다 선교가 거창하게 보여 명예심으로 모두 그리 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을 허명으로 허욕을 채우고 온 한국교회에 이제 하나님께서 그 동안 사용했던 이름 값을 정말 제대로 톡톡하게 받아 내겠다고 팔을 걷어 붙치셨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외국인 유입 과정은 서서히 진행 되는데 우리 나라는 세계 최고의 기록을 또 한 번 세워 가면서 외국인의 국내 거주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적인 측면은 우리에게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야 말로 전 한국교인의 선교사 임명장을 주고 계십니다. 제대로 된 현지 선교사의 자세만 가지면 바로 해결 될 문제입니다.


>> 궁금이 님이 쓰신 내용 <<

:

: 우리나라에 점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 여러 문제들도 생기고,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

: 이럴때,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 예를 들어, 주위에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있고, 그들의 여러가지 어려움등이 보인다면.

: 그리고, 그들은 불법체류자들이 대부분이라면....

: 교회는 어느 선까지 도와야 하는 지요?

:

: 물론 교회와 사회사업은 분리되야 하지만, 주위에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 교회의 마땅한 본분이고...

: 가만히 있다가, 교회를 찾아온 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뭔가 아닌것 같고...

:

: 현답을 부탁드립니다.
외국인 노동자 돕기
우리나라에 점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여러 문제들도 생기고,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럴때,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주위에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있고, 그들의 여러가지 어려움등이 보인다면.

그리고, 그들은 불법체류자들이 대부분이라면....

교회는 어느 선까지 도와야 하는 지요?


물론 교회와 사회사업은 분리되야 하지만, 주위에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교회의 마땅한 본분이고...

가만히 있다가, 교회를 찾아온 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뭔가 아닌것 같고...


현답을 부탁드립니다.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3934
    성도A
    2026.02.23월
  • 13933
    외부교인
    2026.02.20금
  • 13932
    교인
    2026.02.16월
  • 13931
    LA
    2026.02.15일
  • 13930
    재독
    2026.02.14토
  • 13929
    학생
    2026.02.12목
  • 13928
    성도A
    2026.02.11수
  • 13927
    도봉
    2026.02.10화
  • 13926
    교인
    2026.02.10화
  • 13925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4
    성도A
    2026.02.04수
  • 13923
    학생
    2026.02.02월
  • 13922
    성도A
    2026.02.02월
  • 13921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0
    학생
    2026.01.21수
  • 13919
    학생
    2026.01.16금
  • 13918
    반사
    2026.01.16금
  • 13917
    학생
    2026.01.15목
  • 13916
    반사
    2026.01.13화
  • 13915
    성도A
    2026.01.12월
  • 13914
    신학도
    2026.01.12월
  • 13913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2
    성도A
    2025.12.26금
  • 13911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0
    믿는 자
    2025.12.22월
State
  • 현재 접속자 196(1) 명
  • 오늘 방문자 6,461 명
  • 어제 방문자 6,972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54,143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