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두 가지 생의 열매'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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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공과 '두 가지 생의 열매' 설명입니다. |
| 내용 | 원문:86.11.19.밤,23.새벽. 본문:갈라디아서 5장 16절∼26절 제목:두 가지 생의 열매 ------------------------------------------------------------------------------------- 공과요약 서론 1. 제목의 뜻 2. 정과 욕심이라는 표현 3. 서론의 설명 본론 1. 두 인도자의 노력과 선택의 자유 2. 두 인도의 세력으로 우리 구원이 지체 3. 결과를 보아서라도 인도자를 알자 ------------------------------------------------------------------------------------- 서론 1. 제목의 뜻 열매라는 말은 결과라는 뜻입니다. 결과는 시작과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두 가지 생의 열매'라는 제목의 뜻은 믿는 사람의 생애는 '두 가지의 원인과 과정'이 있고 그에 따른 '두 가지 결과'가 필연적으로 맺어진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말은 중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중생되지 않은 사람,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 주장하는 주인이 악령뿐이기 때문에 그 생애의 원인도 과정도 악령에게만 붙들려 사는 한 가지뿐이고, 따라서 그대로만 살고 끝난다면 그 결과도 한 가지뿐이니 곧 멸망의 열매뿐입니다. 그러나 중생된 사람은 중생되는 그 순간부터 그 속에 주인이 둘이 됩니다. 중생되기 이전에 주인이던 악령과 그 사람을 중생시킨 성령이십니다. 주인은 둘이지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주인은 하나이고, 따라서 중생 이전 주인이던 악령을 그대로 주인으로 삼아 살든지, 자기를 중생시킨 하나님이신 성령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든지 둘 중에 한 주인만 택할 수 있지 두 주인을 동시에 택하여 살 수는 없습니다. 또한 주인을 택하는 것도, 택하여 피동이 되는 것도 수시로, 순식간에라도 변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중생된 사람입니다. 2. 정과 욕심이라는 표현 공과에는, 중생되기 전에는 주장하는 주인을 '정과 욕심', 그리고 '성령'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는 알기 쉽고 실질적인 생활면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정과 욕심'은 마음의 한 부분들이고, 마음은 주인 없이 독행 할 수 없고 반드시 그 속에 주장하는 주인이 있어 그 주인에게 피동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따라서 정과 욕심이 주장한다는 말은 곧 악령이 주장하는 대로 정과 욕심이 피동되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과 욕심이 악령에게 붙들린 정과 욕심도 있지만 반대로 성령에게 붙들린 정과 욕심도 있습니다. 악령에게 붙들린 정과 욕심은 말 그대로 정과 욕심이고, 정과 욕심이 성령에게 붙들리면 영감에 충만한 성령의 소욕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정과 욕심만 말할 때는 대개 악령에게 붙들려 있을 때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공과에 그렇게 설명하신 것이고, 여기 설명에도 정과 욕심은 곧 악령에게 붙들린 정과 욕심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3. 서론의 설명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중생과 신앙 출발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이미 중생되어 믿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중생되기 이전에는 순전히 정과 욕심이 전생활을 주장합니다. 정이란 수많은 인인관계에 얽혀 있는 온갖 종류의 정들을 말합니다. 인정, 사정, 우정, 혈육의 정 등등입니다. 욕심의 종류도 수없이 많고 그 깊이는 무저갱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기 전에는 이런 수많은 종류의 정과 욕심에 붙들려 전 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정과 욕심으로만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공부도 직장도 사업도... 전부는 정과 욕심으로 사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생활이며 그 결과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중생된 이후부터 그 속에 주장하는 주인이 새로 생겼으니 곧 성령이십니다. 따라서 중생 이후부터는 과거 중생되기 전처럼 정과 욕심이 주장하는 대로 살 수도 있고, 이제는 정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신 성령이 주장하는 대로 살 수도 있으니 성령을 따라 살면 그 생애는 전부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에 앞서, 다시 말하면 모든 움직임에 앞서 먼저 자기를 움직이게 하는 주인, 주장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말과 행동 마음의 모든 요소, 생각 이 모든 심신의 요소들이 움직이기 전에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무엇이 그렇게 하게 하는지를 먼저 구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을 하면 그 말을 왜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면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왜 이런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되는지, 그것이 정과 욕심 때문인지,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성령의 역사인지 그것을 먼저 구별하고 움직이라는 말입니다. 움직임은 곧 행동이고 행동은 원인과 과정이며 그 뒤에는 반드시 결과인 열매가 맺어지니,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영생과 영원한 멸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정말 바로 알고 믿는다면 말 한 마디, 걸음걸이 하나, 심지어 눈동자 굴리는 것까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욥은 '침 삼킬 동안도 주께서 나를 놓아 주지 아니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했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심판도 영원도 모르기 때문에 정과 욕심으로만 살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 무궁을 아는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속에 어느 주장자에 따라서 사느냐가 영원한 생사의 분기점인 것을 명심하고 순간순간을 조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본론 대부분의 중요한 내용이 서론에서 설명되었기 때문에 본론은 공과 그대로 간단하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두 인도자의 노력과 선택의 자유 중생된 후 우리 안에 있는 두 주인은 우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살려 구원하시기 위해서, 악령은 정과 욕심을 통해서 우리를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해서 하는 역사입니다. 어느 주인도 우리를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심신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성령을 주인으로 영접하면 성령이 우리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주장하시고, 그렇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악령에게 미혹되어 악령을 주인으로 삼으면 악령에게 붙들려 살게 됩니다. 악령을 주인으로 삼으면 성령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나가시게 됩니다. 강제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성령을 주인으로 모시면 악령도 쫓겨 나가야 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신앙양심을 통해서, 앞선 신앙의 종들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권면하고 인내하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성령을 주인으로 모셔 살도록 역사하시고, 악령은 미혹도 하고 협박도 해서 악령을 주인으로 삼게 하려 하지만 최종 선택은 우리 심신에게 그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를 선택하든지 심신에게 권리가 있고,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도 심신이 져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심판이며, 영원한 천국의 영광의 차이가 되는 건설구원, 기능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2. 두 인도의 세력으로 우리 구원이 지체 우리 속에 있는 두 주인은 곧 두 세력이라 할 수 있고, 이 두 세력이 우리 속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구원이 지체가 되고 있습니다. 구원이 지체되고 있다는 말은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할 시간과 심신의 정력과 소유가 허비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집안 식구들이 부부와 자녀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로 움직이면 무슨 일을 하든지 시간, 물질, 힘이 허비 없이 잘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집안 식구들의 생각이 목적이 욕망이 제각각 서로 달라서 삐그덕그리면 그만큼 시간도 물질도 노력도 허비되고 일도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 속에 두 세력이 있는데, 성령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에게 붙들려 사는 생활에 변동 없이 그대로만 전력해 나가면 세월도 물질도 정력도 허비 없이 이룰 구원을 잘 이루게 될 것인데, 성령을 주인으로 모셔 살다가도 악령의 미혹을 받아서 악령에게 붙들려 살고, 그러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거나 말씀의 은혜를 받거나 어떤 기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다시 성령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러다가 악령이 미혹하면 또 다시 성령을 버리고 악령에게 붙들려 살고... 이런 생활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은 구원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세월은 세월대로 다 지나가고, 심신은 늙어지고 소유는 소유대로 허비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믿는 사람의 실상이니 탄식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생활이 현실마다 수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데, 심신은 세월 속에 자꾸 늙어져 가고 주님 앞에 설 날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3. 결과를 보아서라도 인도자를 알자 나무를 모르면 열매를 보아 알라는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 인도를 우리가 바로 구별하지 못할 때는 외부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그 속의 인도자를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모르면 다른 사람을 보고 알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내 속에 두 인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자기가 정확하고도 세밀하게 알아서 악령의 인도인 정과 욕심을 배격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변동 없이 일평생 살면 가장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자기의 외부 행동을 스스로 살펴 자기 속의 인도자를 아는 것이 다음으로 좋겠고, 그렇게 안 되면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 속의 인도자를 판단하여 자기 속의 인도자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서도 모르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야 알 수 있게 되니, 그리 되면 많은 희생과 손해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를 보아 알 수 있는 두 인도의 모습은 공과 그대로 알면 될 것 같습니다. 정과 욕심의 인도는 ①음행 ②온갖 더러운 것 ③호색 ④우상 숭배 ⑤술수 ⑥원수 맺는 것 ⑦분쟁 ⑧시기 ⑨분냄 ⑩당짓는 것 ⑪분리 ⑫이단 ⑬투기 ⑭술취함 ⑮방탕한 것들입니다. 성령의 인도는 ①사랑 ②희락 ③화평 ④오래 참음 ⑤자비 ⑥양선 ⑦충성 ⑧온유 ⑨절제입니다. 자기 마음 속에서 자기 모든 행동의 원인인 인도자를 찾지 못했으면 외부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서라도 심각히 찾아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인도를 알고 행동을 조심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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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