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상황보다 그 상황의 실제 모습을 말씀하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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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상황보다 그 상황의 실제 모습을 말씀하신 듯 합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시무투표~]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시무투표-]/[-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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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본 답변은 신앙노선의 본질적인 문제를 살피고 있지만, 해당 교회의 내부 형편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답변내용을 파악하고 신앙에 참고하기에 어려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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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첫 질문과 답변은, 현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본 정도였습니다..


서부교회 시무투표 사건을 두고 나온 첫 질문은 주로 현장을 중심으로 물어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답변도 당시 누가 보더라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을 중심으로 설명했습니다. 답변 내용이 전반적으로 공회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질문은, 양측이 활동한 현장 이 면에 있었던 실체에 대한 해설을 부탁하신 것 같습니다.


첫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여러 수치와 사건 전개를 설명드린 것은 사실 '신앙의 본질'을 아시는 분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뿌리가 문제지 그 가지가 몇 개며 그 열매가 어떻게 얼마나 맺었느냐는 것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백영희신앙노선은 육안으로 볼 수 없으나 사람의 행동과 발언을 만들어내는 내면의 실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질문은, 서부교회 시무투표건에 대한 본질을 두고 주로 말씀하셨다고 이해하고 살펴보겠습니다.


2.서부교회 시무투표건으로 충돌했던 교회 내 두 신앙노선을 분석합니다.


①백목사님 생전부터 서부교회도 '교회일반론'에 따라 크게 3가지 성향


백목사님 신앙노선에 자기의 겉과 함께 속으로도 좋아서 따르는 보수측으로 이름붙일 교인들이 있었고, 겉으로는 활동하지 못했으나 내적으로는 반대하는 수정측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교인들은 보수측이나 수정측 한 곳으로 장차 소속을 정하겠지만 일단 관망 중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중간측교인들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이 중간측교인들 때문에 역사의 교회들이 그렇게 큰 시험에 빠지게 되어 있었고 서부교회 역시 모든 교회적 혼란과 혼동이 생기게 된다는 점을 이후 눈여겨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이렇게 관망에 있는 분들은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그 신앙성격상 수정노선에 서게 됩니다.


②교회 내 보수측과 수정측의 교인 분포와 담임목사님과의 관계


보수노선은 현재 중간반부장 백선생님을 대표로 하는 중간반 중심의 교인들이고 수정노선은 김권사님을 대표로 하는 그 구역 중심의 교인들입니다. 양측은 출석 교인 5백 여명 정도로 각각 10%정도의 교세를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거의 맞습니다. 문제는 중간 입장에 있는 나머지 교인들입니다. 서부교회 특성상 이 중간측 교인들은 백목사님 자체를 뚜렷하게 반대하지 않는다면 머뭇거리면서도 결국은 현 담임목회자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담임목사님을 보수나 수정 어느측이든 자기쪽에 있는 분으로 모시게 되면 모시는 측에서는 8-90%의 교세를 가지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교회는 전부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할 정도가 됩니다.


1989년 9월, 백목사님 사후 보수측은 보수측에 연결되어 있던 이재순목사님을 후임으로 모셨기 때문에 서부교회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그 당시 수정노선에 있던 10%의 핵심 수정노선교인들은 결국 남정교회로 분리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양측의 분포는 처음 90% : 10% 정도였고 그후 담임목사님의 실수로 10% 정도가 더 수정노선으로 넘어가면서 80% : 20% 정도로 대충 확정됩니다.


1990년 1월, 이재순목사님 후임으로 수정노선의 서영호목사님이 담임으로 확정되자, 원래 수정노선이지만 중간 입장에서 관망하던 김권사님이 수정노선을 전면에 내세우며 남정교회로 분리개척한 분들을 이어 약 10%의 수정노선 교인과 수정노선의 담임목회자를 통해 보수측 10%만 제외하고 나머지 서부교인 전체를 통괄하는 모습을 갖게 됩니다. 물론 1-2년이 흐르며 담임목사님의 실수로 1-20%내외의 교인을 지지에서 중간측으로 만들게 됩니다.


3.수정노선의 담임목사님 체제에서 나타난 보수와 수정측 교인들의 입장


두번째 보충 질문을 하신 분이 지적하신 대로 서부교회의 시무투표건은 외부로 표시된 상황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첫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같습니다. 문제는, 상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교회 내 교인들의 신앙 실체가 명백하게 보수와 수정노선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 두 노선은 타협과 조율이 전혀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두 신앙노선의 실체가 그런 정도라면 길은 아주 간단하게 두 가지뿐입니다. 한쪽이 개척해 나가든가 아니면 힘으로 무한 투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보수노선이 서부교회와 담임목회자를 주도했던 1990년에는 그 반대측이었던 수정노선이 반 년 정도 내부투쟁을 해보다가 결국 분리 개척하여 끝이 났었습니다. 그러나 수정노선의 서목사님이 서부교회를 맡게 되면서 새로 수정노선의 중심이 된 김권사님과 그 지지교인의 경우는 남정교회로 나간 1차 수정노선 교인들과는 달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며 세상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자세로 무한투쟁에 들어갑니다.


물론 남정교인들도 그 당시 수정노선의 담임목사님을 모셨다면 중간측 교인을 거의 전부 수정노선에 세웠을 것이고 그리했다면 오늘 김권사님측과 같은 형태로 무한투쟁을 할 수 있는 요소를 다 갖추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보수측 교인들은 현 담임목사님이 수정노선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회자로 모시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수정노선에서는 서부교회 교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소수 교인들에게 어떤 희생과 투쟁을 통해서라도 교권을 그냥 돌려줄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이 양측 지도부의 확고한 결심이었으나, 일단 수정측은 담임목사님을 통해 교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강단의 설교나 행정조처 등을 통해 비교적 서서히 보수측을 압박하고 있었고 담임목회자와 행정교권 일체를 내어준 보수측은 2년만 있으며 시무투표가 있을 것이고, 그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상대편을 무력화시킨다는 목표로 1992년 11월의 시무투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4.이제 '시무투표제도'가 양측으로 갈라져 있는 서부교회에 적용된 문제입니다.


①두번째 질문자 말씀처럼, 그 시무투표는 담임목회자의 신임을 투표한 것이 아닙니다.


해결이 될 수 없는 양측이 시무투표라는 행사를 통해 힘껏 맞붙어 싸운 싸움이었습니다. 보통 시무투표의 의미를 말할 때, 새로온 목사님이 2년간 시무를 했으니 지난 2년의 시무를 놓고 볼 때 서부교인으로서 담임목회자의 유임과 이임을 두고 결정하라는 것이 시무투표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대로 담임목회자의 목회가 잘했든 못했든 지지측 교인은 지지할 것이고 반대측 교인은 투표에서 반대하게 되어 있으니 이는 '시무 신임' 여부를 투표한 것이 아니고 양측이 시무투표를 핑게로 하여 시무투표를 가지고 서로 싸운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분명히 지적할 바를 바로 지적하셨다고 동의합니다.


②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담임목회자가 한쪽에 섰다는 것입니다.


비록 교인이 보수와 수정노선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하더라고 담임목회자가 어느쪽에 소속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양심을 따라 하나님과 진리의 옳고 그른 것만을 찾아 나섰다고 가정 한다면, 그런데도 그 목회자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수정측을 유리하도록 했다는 이유로 그 보수측에서 시무 불신임을 시켰다고 한다면, 세상말로 양측 싸움에 목회자는 애매하게 희생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시무투표건은 새로 온 담임목회자가 수정측 대표이자 핵심 주도 세력인 김권사님이 수차례 청빙을 시도하여 성사시켰고, 그 청빙을 위해 구역이 조직적으로 투표운동을 했으며 또한 부임 후에는 목회자가 수정노선의 입장에 서서 보수측을 향해 천천히 그러면서도 그 해체를 목표로 하여 설교와 행정조처를 통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데 앞장을 섰던 사실이 있습니다. 또한 서부교회 소속이 아닌 외부 타 교회 목회자들도 서부교회 내부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즉 공회적으로는 부산공회 내에서 수정노선이 당시로서는 극소수였으나 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을 기회로 부산공회를 수정노선으로 대폭 변경시킬 절호의 기회로 이용했고 결국 그 뜻을 거의 이루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목사님은 서부교회 내의 보수측을 상대로 수정측의 최고책임자 자격으로 그 맡은 일을 다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니 그 반대측인 보수측에서는 시무투표에서 담임목사님의 시무 불신임을 위해 또한 있는 힘껏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쪽을 편들기 이전, 객관적으로 본다면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서부교회 내의 한쪽에 가담을 해서 목회자가 가신 설교권과 행정처리권 등을 통해 2년간 그 반대측을 없애기 위해 힘껏 노력했다는 말이 되고, 그 2년간의 목회권 행사가 종료되는 시점에 그 반대측 교인에게는 교인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목회자 선택권 행사를 통해 교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 밖에 없습니다.


③그렇다면, 시무투표란 원래 목표한 대로 좋은 취지로 사용되었다고 보겠습니다.


현재 시무투표 제도를 반대하거나 대폭적으로 그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거의 서부교회 사건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서부교회가 시무투표 때문에 양분이 되었고 조용한 교회가 통제 못할 분규에 휘말렸다고 보거나 아니면 교인간의 분규 때문에 공연히 목회자가 시무투표에서 어느 한쪽에 의하여 분풀이를 당하거나 아니면 간접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예로 든 경우처럼, 목회자가 어느 한 쪽에 서지 않았는데도 진정으로 억울하게 또 공연히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면, 이는 시무 2년간 목회자로서 교인들 사이에 존재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바로 시무 불신임을 당해야 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총공회는 어떤 교단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목회자의 목회 전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2년 후의 시무 투표는 그 전권만큼 그 책임을 묻되 목회 전반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인들 싸움에 목회자가 공연히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시무투표가 실시되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면이 있는지도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예로 든 경우처럼, 조용한 교회가 시무투표 때문에 양분되고 분규에 휩싸이게 되었다는 분들은, 서부교회의 내부를 전혀 모르고 단지 주일오전 예배의 방청인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④사실, 시무투표는 서부교회처럼 양분된 교회에는 더욱 더 필요한 제도입니다.


만일 시무투표가 없었더라면, 한번 모시는 목회자는 두번 다시 대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백목사님 사후 후임을 청빙하는 순간부터 무한 투쟁을 하게 됩니다. 백목사님 사후 즉시라는 분위기 때문에 서부교회는 전반적으로 일단 보수측에 속한 목사님을 모시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한번 모시게 되면 다시는 대체할 길이 없었다면 수정측은 청빙 자체를 두고 무한 투쟁을 벌렸을 것입니다. 2년 후 시무투표로 보낼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투쟁은 뒤로 미루고 지켜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남정교회로 개척해 나간 분들은 시무투표까지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조급했고 이후 후임문제가 다시 나온다 해도 보수측과 다시는 한 교회생활을 하지 못하겠다는 결심 때문에 자진해서 분리 개척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아있던 김권사님과 같은 수정측은 조용하게 2년을 기다렸고 2년 후에 수정노선 목사님을 모실 기회를 잡고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무투표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고 좋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를 모실 수 있도록 죄되지 않는 범위까지는 힘을 쓰고 그래도 안되면 하나님께서 앞날에 어떤 인도를 하실지 지켜보라는 뜻으로 알고 비록 반대 성향의 목회자가 오더라도 기다려 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모든 총공회 산하 전체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시무투표를 통해 목회자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 자기 나름대로는 이런 저런 불편 불만 고통이 있었더라도 이 시무투표 제도 때문에 2년을 참았고 또 2년을 참으며 기다리다 보니까 그 교역자에 대한 실상을 알게 되어 오해했던 것을 풀고 돌이키는 사람도 있는 등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1992년 서부교회 시무투표에서 수정측에 있는 김권사님과 서목사님만 자기 차례가 오자 그다음부터는 시무투표제도를 무효와 시키고 오늘까지 이 제도를 무력화하며 버티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입니다.


물론 현재 수정측은 그 하고 싶은 말이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속 좁은 식견에서 비롯됩니다. 어느 살인 흉악범이라 해도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고 분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과거 총공회 산하 전 교회와 교역자 어느 한 사람인들 현 서부교회 수정측만큼 할 말이 없어 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마음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상식 차원에서만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닌데 공연히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시무투표는 교회 내에 존재하는 반대파가 있을 때 그 반대파의 주장을 시무투표라는 '조용한 표현 방법'으로 그 표현을 열어주지 않으면 결국 발출할 수 없이 쌓여가는 불만은 한순간 교회를 공중분해 시킬 수 있는 폭발로 나타나는데 그럴 때에는 통제할 길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무투표는 이런 것까지도 방지할 수 있는데 그런 불만이 시무투표의 표결로 나타난 것을 두고 '목회자 배척운동'이라고 하거나 '시무투표제도 때문에' 교회 분란이 생겼다고 한다면 아직까지 총공회 시무투표제의 근본 성격과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5.기타 몇 가지 말씀에 대하여 따로 말씀드린다면


①사실 질문자께서는 말씀 마지막에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을 말씀하셨습니다.


시무투표를 하기 전에 양측이 분리되었어야 합니다. 담임목사님을 좋아하는 측으로서는 담임목사님을 진정 좋아하는데 시무투표에서 지게 되면 보내야 하는 것이 양심이니까 만일 꼭 모시고 싶다면 시무투표 전에 목사님을 모시고 분리 개척하면 됩니다. 아무 싸움도 아무 갈등도 없고 누가 말릴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밀어주겠지요? 잘 가라고. 투표에서 혹시 이길 확률이 있을지 모르면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진다면 그때 나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 투표를 해보고 그다음 이기면 좋고 지면 나가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길 것 같으니까 투표를 했다가, 예상치 않게 지고 나자 이 말 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부교회 시무투표건에 대한 담임목사님측의 실체입니다. 투표를 하고 그 결과가 불리하게 되자, 그제서야 원래 이 투표제도는 이런 저런 문제점이 있었고 투표권을 중간반에게까지 준 것도 문제였다는 식입니다. 투표당일 인원동원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확인서를 수도 없이 작성하여 총공회에 제출하였지만 이것도 투표결과를 부인하는 하나의 정치적 수단이요 명분축척일 뿐입니다. 세상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투표 당일에 평소 보지 못한 사람들이 보인다면, 투표를 할 것이 아니라 투표 자체를 보류 또는 연기하자고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총공회 투표제도는 투표인의 자격을 제한없이 자유로 해두고 있습니다. 그 제도를 알기 때문에 사전에 이의제기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불신임으로 결과가 나타나자 그때서야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정측은 자신들이 투표 전에 보인 모든 행동으로 자신들이 투표 후에 보이고 있는 모든 행동을 스스로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그때도 지금도, 또 교회역사적으로도 큰 일을 내는 것은 중간측입니다.


서로 양보없이 자기 길을 가겠다고 하는 측은 보수나 수정노선에 각각 500여명으로 생각되는 10%정도씩 되는 교인들입니다. 이분들은 자기들 소신에 따라 분리개척도 할 수 있고 또 여러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이 양측 핵심 교인들이 교회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일단 담임목회자와 교권을 확보하게 되면 반대측 10%정도를 제외한 8-90%가 자기측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 중간측에 있는 분들은 다시 분류하면 보수성향도 있고 수정성향도 있지만 체질적으로 대세를 엿보다가 그쪽으로 안주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부교회와 같은 초대형교회에서는 여간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분들은 그들의 표현을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측에 있는 분들은 나쁜말로 말하면 교권잡는 쪽에서 통째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이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교회같으면 어느 정도 해보다가 말 것이지만 서부교회에서는 그 밀고 나가는 기간이 10년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서부교회 대세를 확실히 잡고 있다고 말하는 담임목사님과 수정측교인들은 자기들을 지지하는 교인들이 절대 다수라고 하지만 바로 그분들이 현 담임목사님이 오기 전에는 보수측으로 똘똘 뭉쳐 남정교인들을 극한 투쟁을 통해 몰아냈던 바로 그 보수측교인들입니다. 이 정도로 분석을 하고 나면 사실 할 말이 적어집니다. 좀더 자세히 알고나면 사실 할 말이 거의 없어집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고 저 사람이 저렇게 하는 것입니다. 나 싫으면 말고 나 좋으면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논리를 자포자기라고 책하겠습니까?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양심자유'라고 합니다. 교회운영의 첫 원리라고 모든 장로교가 그 헌법 제일 앞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체제는 개교회주의인 총공회밖에 없고 시무투표는 바로 그 양심자유를 최대한 지원할 수 있도록 나온 가능한 최선의 길입니다.


③시무투표 제도의 보완 수정 등을 질문내용 곳곳에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시무투표 제도의 본질과 그 성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리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여러 모로 살핀 바와 같이 아직까지는 시무투표제도가 백목사님이 제안하고 시행했기 때문에 무작정 계속 밀고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 보고 또 그분 사후 혼란기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시행해 보아도 과연 옳고 좋은 제도라는 결과를 보기 때문에 또 이전에 이렇게 좋은 제도인지를 몰랐다가 점점 알아가기 때문에 이 제도를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무투표 제도의 본질적인 요소 즉 주일오전 참석 교인 일체에 주어지는 투표권, 25% 정도의 반대면 불신임되는 비율, 2년 정도 기간의 시행, 불신임으로 처리되는 그 결과 등에 대하여는 수정 보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으며 오히려 그런 면이 본질적인 요소로 더욱 확고히 지켜져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투표용지의 크기, 찬반의 표시방법, 시행주관 교역자 선정 등은 자유롭게 투표하는 분위기에 문제가 없는 한 시행방법을 변경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시무투표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음으로 이를 잘 알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④25%이상이 반대하면 불신임되는 소수결의 원칙도 이런 점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50%이상으로 불신임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25%이상으로 불신임이 되도록 한 것은, 교회에서 2년간 자기 목회자로 모시던 사람을 주일오전예배에 반대하여 보내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꼭 반대를 하겠다고 생각했다가도 막상 투표용지를 받아들게 되면 차마 그럴 수 없어 참는 것이 교인들의 주일 오전 예배 심리라는 것은 반대할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때릴 때는 실제 때리려고 했던 것을 많이 참고 참다가 한대 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반대표를 기어코 던질 정도의 교인이 25%라고 한다면 그 교회는 이미 50% 이상의 교인이 반대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목회자를 보낼 수 없어 속으로만 곪다가 이것이 한꺼번에 터질 때는 사회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한국교계 전체를 통해서 상식적인 일입니다.


따라서 25% 반대로 전체 반대를 삼는 것은 특히 한국 사람들의 실상을 고려하고 또한 주일 오전의 예배에서 시행되는 투표라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더구나 목회자는 한 사람의 반대를 열사람의 반대로 알고 교인의 지적보다 자신이 더 크게 더 많이 자진해서 조심하고 스스로를 꺾는 직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⑤시무투표의 결과를 두고 의와 죄로 나누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불신임을 받았다고 목회자가 죄인되는 것이 아니고 신임을 받았다고 의인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보내려고 마음먹은 분들이 표가 모자라 보내지 못했거나 표는 확보했으나 본인이 거부하여 보내지 못했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못 찾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속으로 믿는 마음이 없더라도 '믿어집니다' 하면 목사는 세례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믿는 사람인데 겸손하거나 세례 받는 것이 부담된다고 피하기 위해 '안 믿어집니다' 하면 세례를 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술을 끊지 않은 사람이 '끊었습니다.' 하면 목사가 자기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이상 말하는 사람의 발언을 믿고 세례를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의심된다고 거짓말 탐지기를 갖다 댈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그 모든 행정 처리에 있어서는 교회가 전체 교인을 상대로 생각하고 결정한 바를 정해놓고 맞으면 시행하고 맞지 않으면 거부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교회는 교회의 결정을 의나 죄로 보지 않습니다. 즉 세례 받았다고 해서 천주교처럼 천국을 예약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또한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지옥갈 사람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목사라 해도 하나님의 종으로 무조건 보지 않고 또 평교인이라 해도 그가 목사 이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끼리 집사 목사 장로 세례 등의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것은 부족한 인간들이 구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해 보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일반 교단은 성직을 성직으로 보고 백영희신앙노선은 성직을 말로만 성직이라고 하지 그 성직이 실제 성직인지는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시무투표를 시행한 결과 가게 되었다고 서부교회는 옳고 가게 된 목회자는 목회 실패자로 보지 않습니다. 신임을 받았다 하더라도 실상은 목회 실패자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충의 몇 가지 선을 정하고 시무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시무투표라는 제도가 목회자에게 보따리를 쌀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게으르지 말고 있는 힘껏 충성하고 노력하는 채찍'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틀림없이 효과가 있다는 확신에서 시행하는 것입니다.


6.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서부교회 문제는 양측이 꼭 양보할 수 없는 신앙노선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개척해서 나가면 일시에 무조건 끝이 나는 문제입니다. 적어도 복음운동의 덕과 성경에서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을 동원하는 문제를 두고는, 한쪽이 분리개척하면 그 순간으로 끝나게 되고 이기는 문제입니다. 양측이 그리 못하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운영문제를 두고는 둘 다 틀렸습니다.


서부교회 당사자가 아님으로 의견만 표시할 뿐입니다. 외부에서 권하거나 소개할 수는 있어도 결정은 서부교회 내부 교인들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고 스스로 행동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도 본인들이 메고 갈 문제이지 남들에게 떠넘긴다고 떠넘겨질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시무투표] 목사님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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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총공회 시무투표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나요..

2.서부교회 시무투표 사건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어느쪽이 옳은가요?


3.서부교회 중간반측(4층)은 어떻게 예배를 보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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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