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질문1) 악습과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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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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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5 00:00
1. 악습은 기능을 염두에 둔 표현?
악행이라고 하지 않고 악습이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악행은 한번으로 끝나지만, 악습은 악행이 기능화 하여 내 속에 자리잡은 것이어서,
마치 나는 아니지만 내 속의 기능이 되어 남게 된 면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악습이라고
표현 하신 것 아닌가?
2. 악성도 기능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봐야 되나?
그렇다면, 악성도 기능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봐야 되나라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악성은 언뜻 기능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이라는 본성에 가까운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께서 평소에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나는 옛사람 자기로 마치 나 인것 같으나 나를 물들인 자기 아닌 자기라고 교훈 하신 것을 보면, 악성도 기능이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3. 성향과 습관이 기능의 두 요소라면?
기능의 두 요소로 성질과 습관을 든 것이라면, 이것 말고 다른 면을 빼 놓고 요약 하신 것은 없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4. 경향성과 기능의 연계?
그러는 와중에, 경향성이라는 용어를 청교도(존 오웬)가 중생된 영혼의 한 단면을 설명할때 사용했지만, 실제 그들은 명확히 밝혀 내지 못해 그런 것이지 성화의 과정 중에 죄의 병기로 사용될 수도 있고 의의 병기로 사용될 수 있는 어떤 요소의 결과(저희는 총공회는 심신의 기능)를 표현 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고, 실제 그들의 책에서도 경향성을 죄의 경향성과 의의 경향성으로 나누어 성화의 과정을 일부 설명한 글이 있는 것으로 확인 하였습니다. (출처 - 김남준 저 : 죄와 은혜의 지배,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자기 깨어짐, 마음지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존 오웬의 신학 등 )
물론, 그들은 분명히 이분설이고, 중생의 과정에서 경향성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지만(존 오웬의 경우는 성화의 과정에서도 사용하였으나 각 요소별 심판으로 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듯 함), 마음안에 자리 잡은 경향성이란 요소를 말하는 이 용어가 어쩌면 저희와 그들의 접합점(완전한 일치는 아니어도 최소한 신앙의 선배와 후배의 연결점 정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더불어, 최소한 저희가 심신의 기능구원을 설파할때, 저들도 성경에 없는 경향성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변호의 논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5. 추신
그렇다고, 제가 17세기 영어를 다시 공부하고, 라틴어를 공부하여 존 오웬의 책을 다 읽어서 우리와 공통점을 찾고, 중간에 개신교 후배 신학자들이 선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실제 청교도의 신앙과 신학의 본류는 저희 총공회로 이어져 발전한다는 것을 밝히고, 서양철학을 전공하여 기능의 존재 자체가 사람이라는 본질의 실체라는 것인지 여부를 파헤치기에는 실력과 시간이 너무도 부족하고 더불어 제 신앙에 도움도 안되기에 안하고는 있습니다. (제 개인 신앙만 생각한다면 성경과 설교록 읽기에도 모자란 인생입니다.) 또 그 길은 여러 가지 큰 위험성들이 산재해 있기에 멈추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윗글에도 언급 했듯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책으로 적었다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쩌면 총공회에서 신앙을 시작하였다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생각되는 아쉬움...,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세상 학문과 철학과 신학에 빠져서 그 안에서 진리를 찾고자 허송했던 잘못된 길을 답습하고 있는 청교도의 마지막 후예(우리와 너무도 비슷하지만 이런 면 만은 너무도 다른 그 사람, 그러나 이 교훈을 배웠더라면 우리가 쳐다 보지도 못할 경지에 올라갔을 것 같은 기본 자질을 가진 그 사람, 그랬다면 어쩌면 백목사님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드는 그 사람)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적어본 글이기도 했습니다.
그도 이 교훈을 배우고 총공회 안에서 나 처럼 자랐다면, 저렇게 소경이 더듬듯 몸부림 치지 않았을 텐데하는 안타까움과 그를 우리와 같은 이 길로 인도하기에는 저희가 너무도 이 교훈과 세상 학문에 부족하다란 자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구할 뿐이고 해결책은 그것 뿐이지만, 인간적으로 떨쳐버리고 싶은 책임감은 계속해서 남습니다.
악행이라고 하지 않고 악습이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악행은 한번으로 끝나지만, 악습은 악행이 기능화 하여 내 속에 자리잡은 것이어서,
마치 나는 아니지만 내 속의 기능이 되어 남게 된 면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악습이라고
표현 하신 것 아닌가?
2. 악성도 기능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봐야 되나?
그렇다면, 악성도 기능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봐야 되나라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악성은 언뜻 기능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이라는 본성에 가까운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께서 평소에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나는 옛사람 자기로 마치 나 인것 같으나 나를 물들인 자기 아닌 자기라고 교훈 하신 것을 보면, 악성도 기능이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3. 성향과 습관이 기능의 두 요소라면?
기능의 두 요소로 성질과 습관을 든 것이라면, 이것 말고 다른 면을 빼 놓고 요약 하신 것은 없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4. 경향성과 기능의 연계?
그러는 와중에, 경향성이라는 용어를 청교도(존 오웬)가 중생된 영혼의 한 단면을 설명할때 사용했지만, 실제 그들은 명확히 밝혀 내지 못해 그런 것이지 성화의 과정 중에 죄의 병기로 사용될 수도 있고 의의 병기로 사용될 수 있는 어떤 요소의 결과(저희는 총공회는 심신의 기능)를 표현 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고, 실제 그들의 책에서도 경향성을 죄의 경향성과 의의 경향성으로 나누어 성화의 과정을 일부 설명한 글이 있는 것으로 확인 하였습니다. (출처 - 김남준 저 : 죄와 은혜의 지배,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자기 깨어짐, 마음지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존 오웬의 신학 등 )
물론, 그들은 분명히 이분설이고, 중생의 과정에서 경향성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지만(존 오웬의 경우는 성화의 과정에서도 사용하였으나 각 요소별 심판으로 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듯 함), 마음안에 자리 잡은 경향성이란 요소를 말하는 이 용어가 어쩌면 저희와 그들의 접합점(완전한 일치는 아니어도 최소한 신앙의 선배와 후배의 연결점 정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더불어, 최소한 저희가 심신의 기능구원을 설파할때, 저들도 성경에 없는 경향성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변호의 논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5. 추신
그렇다고, 제가 17세기 영어를 다시 공부하고, 라틴어를 공부하여 존 오웬의 책을 다 읽어서 우리와 공통점을 찾고, 중간에 개신교 후배 신학자들이 선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실제 청교도의 신앙과 신학의 본류는 저희 총공회로 이어져 발전한다는 것을 밝히고, 서양철학을 전공하여 기능의 존재 자체가 사람이라는 본질의 실체라는 것인지 여부를 파헤치기에는 실력과 시간이 너무도 부족하고 더불어 제 신앙에 도움도 안되기에 안하고는 있습니다. (제 개인 신앙만 생각한다면 성경과 설교록 읽기에도 모자란 인생입니다.) 또 그 길은 여러 가지 큰 위험성들이 산재해 있기에 멈추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윗글에도 언급 했듯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책으로 적었다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쩌면 총공회에서 신앙을 시작하였다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생각되는 아쉬움...,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세상 학문과 철학과 신학에 빠져서 그 안에서 진리를 찾고자 허송했던 잘못된 길을 답습하고 있는 청교도의 마지막 후예(우리와 너무도 비슷하지만 이런 면 만은 너무도 다른 그 사람, 그러나 이 교훈을 배웠더라면 우리가 쳐다 보지도 못할 경지에 올라갔을 것 같은 기본 자질을 가진 그 사람, 그랬다면 어쩌면 백목사님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드는 그 사람)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적어본 글이기도 했습니다.
그도 이 교훈을 배우고 총공회 안에서 나 처럼 자랐다면, 저렇게 소경이 더듬듯 몸부림 치지 않았을 텐데하는 안타까움과 그를 우리와 같은 이 길로 인도하기에는 저희가 너무도 이 교훈과 세상 학문에 부족하다란 자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구할 뿐이고 해결책은 그것 뿐이지만, 인간적으로 떨쳐버리고 싶은 책임감은 계속해서 남습니다.
죄와 악에 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죄와 악을 배웠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삐뚫어진 것'이며,
악은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 자기위주'라고 배웠습니다.
1. 죄와 악의 존재적 순서에 관하여
죄가 먼저 입니까? 악이 먼저 입니까?
존재적으로 살피면, 타락한 천사의 악이 먼저인 듯 합니다.
(1) 죄가 먼저 인 듯한 성구들
그런데, 인류의 경우 하와의 경우도 악이 먼저인 듯 합니다만, 다음과 같은 성경의 진술이 그 사실과 반대되는 듯 합니다.
1)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창2:17)
2)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5)
3)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7)
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창3:22)
즉, 위 성구들을 보면 선악과를 먹은 범죄 후에 인류에게 악이 생긴 것 같습니다. 좀 더 성경의 표현과 정확히 말하면, 선악과를 먹는 범죄 후에 선과 악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인류에게는 죄가 먼저요, 악이 그 후 인 것 처럼 보입니다.
(2) 악이 먼저 인 듯한 성구들
그러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창3:6)"를 보면 또 다릅니다.
타락한 천사인 마귀가 하와에게 마귀의 악을 전염시켰고 하와는 자기를 위하는 '악'이 먼저 생기고 나서야 범죄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 후에 '죄'를 저지른 것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중에도 악이 죄보다 앞선 것으로 설명하시며, 우리가 범죄하는 동인을 '악'으로 보는 것이 전반적인 교훈이었던 것 같습니다.
(3) 요약
모순되는 성구들 간에 죄나 악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죄의 결과로서의 악인지? 악의 결과로서의 죄인지? 가 궁금합니다.
(4) 참고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의 확장이 있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 선악과를 먹은 후에 악이 생긴 것은 범죄로 인하여 악이 강화 되는 일반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인가?
- '선악을 아는 것'과 '악에 전염된 것'은 다른 것인가?
- 넓은 의미에서 '악'은 하나님 중심을 하라하신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니 곧 '죄'가 아닌가? 백목사님께서도 '악성'을 '원죄'라 '악습과 악행'을 '본죄'라 하신 적이 있지 않은가?
- 죄의 반대가 의이고 악의 반대가 선인데, 의는 결과적 상태이고 선은 결과라기 보다는 동기나 과정이니 악이 죄보다 앞서는 것은 아닌가?
- 인류최초의 범죄와 그 후 우리들의 범죄는 순서가 다른 것인가? 인류최초에는 죄가 먼저이고 그렇게 해서 생긴 악이 우리들에게는 죄의 동인이 되는 것인가?
2. 죄와 악은 다른 것 입니까?
죄와 악은 본질상 같은 것이고, 그것이 현실에서 표출될 때 다른 것인가? 다른 각도의 표현인가?
백목사님이께서 악성을 원죄로, 악습을 본죄라고 표현 하신 것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3. 악행이라 하지 않으시고 왜 악습이라 하셨나?
왜, 악행이라 하지 않으시고 악습이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악행이 모이고 모여서 악습이 되지만 악행은 곧 죄인데 죄의 결과로서 굳어진 우리안에 굳어진 그 무엇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악습으로 표현 하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반 교계에서 중생을 정의할때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안에 심으시고 영혼의 주도적인 성향(경향성, 습관)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하는데 여기서 사용된 경향성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4. 악성과 악습을 구분 지으실 필요가 있었나?
악성과 악습은 악령과 같이 '나' 아닌 '나를 물들인 것'인데, '자기 아닌 자기'인데,
(1) 내 안에 들어와 나인 것 같은 존재인 악을 존재적으로 '성질'과 '습관'으로만 구분 지은 신 이유는 무엇인가?
(2) 성질과 습관(행위 포함)으로만 구분 지으면 자기중심인 악을 다 분류할수 있는 대분류가 되는 것인가?
(3) 다른 것들로는 더 구분 짓지 못하나? 빠진 것은 없나?
(4) 아니면, 둘로 구분 짓는 것 자체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구분 안지어도 되는 것 아닌가?
5. 교계와의 소통을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 일까?
이상과 같은 의문은 향후 교계와의 소통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반교계에서는 죄의 열매를 악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거의 모든 일반 신학이 철학의 배경들이 깔려 있는데, 악한 인간을 '성질'과 '습관'으로 분류할때는 성질과 습관이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해야 그들과 소통시 문제가 없을 듯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실제 그들의 철학에서는 어떻게 분류를 하는지는 잘 모르나, 언뜻 기억나기로는 '지정의'로 보는 것이 일반인 것 같습니다.
또 기억하는 것이, 조나단 에드워드가 중생으로 인해 생기는 영혼의 변화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힘들과 경향성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경향성이란 단어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 본성, 성격, 경향성)'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와 경향성'에서 언급한 희랍어'헥시스(실천에 의하여 이루어진 어떤 상태 혹은 항구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의 철학적 영향을 받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서양 철학사에는 존재론 이란 것이 있는데, 존재가 곧 무엇인지를 연구한 철학의 한 주제로 경향성이 존재의 특성이란 관점과 경향성 자체가 곧 존재의 본질이라는 관점등 다양한 것 으로 압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철학을 공부해서 알아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으신 백영희 목사님께서 '존재론'에서 도용한 '존재와 경향성들에 대한 개념'중 나중에 영어 Habit(습관)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이는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의 개념을 들어 악의 한 형태인 악습과 악성을 정의하신 것에 주목해야 될 것이라 보입니다.
우리가 무지, 무식해서 백영희 목사님의 신학세계를 가지고 세계철학과 신학의 핵심을 꿰뚫고 그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진리를 배우고도 그들이 뭔지도 모르고 난잡하게 이것 저것 주 대어 펼쳐 놓은 개념들을 백목사님의 신학으로 한가지 원리로 요약 할 수 있어서 그들도 설득시키고 이해시켜 이 길로 돌아 올수 있는 교리를 정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우둔함으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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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음과 같이 죄와 악을 배웠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삐뚫어진 것'이며,
악은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 자기위주'라고 배웠습니다.
1. 죄와 악의 존재적 순서에 관하여
죄가 먼저 입니까? 악이 먼저 입니까?
존재적으로 살피면, 타락한 천사의 악이 먼저인 듯 합니다.
(1) 죄가 먼저 인 듯한 성구들
그런데, 인류의 경우 하와의 경우도 악이 먼저인 듯 합니다만, 다음과 같은 성경의 진술이 그 사실과 반대되는 듯 합니다.
1)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창2:17)
2)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5)
3)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7)
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창3:22)
즉, 위 성구들을 보면 선악과를 먹은 범죄 후에 인류에게 악이 생긴 것 같습니다. 좀 더 성경의 표현과 정확히 말하면, 선악과를 먹는 범죄 후에 선과 악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인류에게는 죄가 먼저요, 악이 그 후 인 것 처럼 보입니다.
(2) 악이 먼저 인 듯한 성구들
그러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창3:6)"를 보면 또 다릅니다.
타락한 천사인 마귀가 하와에게 마귀의 악을 전염시켰고 하와는 자기를 위하는 '악'이 먼저 생기고 나서야 범죄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 후에 '죄'를 저지른 것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중에도 악이 죄보다 앞선 것으로 설명하시며, 우리가 범죄하는 동인을 '악'으로 보는 것이 전반적인 교훈이었던 것 같습니다.
(3) 요약
모순되는 성구들 간에 죄나 악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죄의 결과로서의 악인지? 악의 결과로서의 죄인지? 가 궁금합니다.
(4) 참고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의 확장이 있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 선악과를 먹은 후에 악이 생긴 것은 범죄로 인하여 악이 강화 되는 일반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인가?
- '선악을 아는 것'과 '악에 전염된 것'은 다른 것인가?
- 넓은 의미에서 '악'은 하나님 중심을 하라하신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니 곧 '죄'가 아닌가? 백목사님께서도 '악성'을 '원죄'라 '악습과 악행'을 '본죄'라 하신 적이 있지 않은가?
- 죄의 반대가 의이고 악의 반대가 선인데, 의는 결과적 상태이고 선은 결과라기 보다는 동기나 과정이니 악이 죄보다 앞서는 것은 아닌가?
- 인류최초의 범죄와 그 후 우리들의 범죄는 순서가 다른 것인가? 인류최초에는 죄가 먼저이고 그렇게 해서 생긴 악이 우리들에게는 죄의 동인이 되는 것인가?
2. 죄와 악은 다른 것 입니까?
죄와 악은 본질상 같은 것이고, 그것이 현실에서 표출될 때 다른 것인가? 다른 각도의 표현인가?
백목사님이께서 악성을 원죄로, 악습을 본죄라고 표현 하신 것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3. 악행이라 하지 않으시고 왜 악습이라 하셨나?
왜, 악행이라 하지 않으시고 악습이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악행이 모이고 모여서 악습이 되지만 악행은 곧 죄인데 죄의 결과로서 굳어진 우리안에 굳어진 그 무엇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악습으로 표현 하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반 교계에서 중생을 정의할때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안에 심으시고 영혼의 주도적인 성향(경향성, 습관)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하는데 여기서 사용된 경향성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4. 악성과 악습을 구분 지으실 필요가 있었나?
악성과 악습은 악령과 같이 '나' 아닌 '나를 물들인 것'인데, '자기 아닌 자기'인데,
(1) 내 안에 들어와 나인 것 같은 존재인 악을 존재적으로 '성질'과 '습관'으로만 구분 지은 신 이유는 무엇인가?
(2) 성질과 습관(행위 포함)으로만 구분 지으면 자기중심인 악을 다 분류할수 있는 대분류가 되는 것인가?
(3) 다른 것들로는 더 구분 짓지 못하나? 빠진 것은 없나?
(4) 아니면, 둘로 구분 짓는 것 자체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구분 안지어도 되는 것 아닌가?
5. 교계와의 소통을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 일까?
이상과 같은 의문은 향후 교계와의 소통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반교계에서는 죄의 열매를 악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거의 모든 일반 신학이 철학의 배경들이 깔려 있는데, 악한 인간을 '성질'과 '습관'으로 분류할때는 성질과 습관이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해야 그들과 소통시 문제가 없을 듯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실제 그들의 철학에서는 어떻게 분류를 하는지는 잘 모르나, 언뜻 기억나기로는 '지정의'로 보는 것이 일반인 것 같습니다.
또 기억하는 것이, 조나단 에드워드가 중생으로 인해 생기는 영혼의 변화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힘들과 경향성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경향성이란 단어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 본성, 성격, 경향성)'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와 경향성'에서 언급한 희랍어'헥시스(실천에 의하여 이루어진 어떤 상태 혹은 항구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의 철학적 영향을 받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서양 철학사에는 존재론 이란 것이 있는데, 존재가 곧 무엇인지를 연구한 철학의 한 주제로 경향성이 존재의 특성이란 관점과 경향성 자체가 곧 존재의 본질이라는 관점등 다양한 것 으로 압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철학을 공부해서 알아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으신 백영희 목사님께서 '존재론'에서 도용한 '존재와 경향성들에 대한 개념'중 나중에 영어 Habit(습관)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이는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의 개념을 들어 악의 한 형태인 악습과 악성을 정의하신 것에 주목해야 될 것이라 보입니다.
우리가 무지, 무식해서 백영희 목사님의 신학세계를 가지고 세계철학과 신학의 핵심을 꿰뚫고 그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진리를 배우고도 그들이 뭔지도 모르고 난잡하게 이것 저것 주 대어 펼쳐 놓은 개념들을 백목사님의 신학으로 한가지 원리로 요약 할 수 있어서 그들도 설득시키고 이해시켜 이 길로 돌아 올수 있는 교리를 정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우둔함으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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