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과 악습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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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과 악습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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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행과 악습


'무명2'께서 말씀하신 대로 학습은 악행의 단순한 누적이 아니라 기능적 강화를 말합니다.

악행의 단순 누적은 '1 + 1 + 1 + 1 = 4'가 되지만

악습이라고 한 것은 '1 + 1 + 1 + 1 = 10'이 되거나 20이 되는 식으로 그 세력이 크집니다.

눈덩이가 굴러 가며 급속도로 덩치가 크지듯이 말하자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2. 악성의 경우는


기능이라는 면보다 모든 종류의 죄의 근본 성향, 근본 방향, 근본 구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이 모든 종류의 죄를 이해하고 대처하고 극복하고 점령하는 핵심일 것입니다.


죄의 근본 구조는 '자기 중심'이고 그 자기 중심이 갖가지 모양으로 나타난 모습이 죄이며

그 죄라는 것은 반복을 하게 되면 단순히 회수 누적이 아니라 엄청나게 강하게 자라게 되니

악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어떤 죄라도 그 죄의 기본 시작과 근본을 알고 상대하게 하므로

우리가 죄와 싸울 때 허공을 향해 싸우지 않고 싸울 방향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악습을 강조하는 것은 죄와 싸울 때는 초기가 중요하고 일찍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청교도 신학의 입장


청교도는 환경에 물들지 않고 생활에서까지 최대한 깨끗하게 살아 보려 노력했다는 것이지

그들이 깨달은 교리의 단계와 정확성은 그 시대에 비하여 높지 아니했습니다.


건설 구원이라는 확실한 이치가 열리지 않았으므로 안개 속에서 흐미하게 모든 것을 보았고

그래서 대충 보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교리는 어두웠고 어렸습니다.


더욱 혼탁해 진 지금 시기에서도 당시의 깨끗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오늘의 청교도를 대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만나는 기쁨과 기대와 반가움은 참으로 큽니다만

한 시대를 넘어 서야 하는 교리 언덕 이 편과 저 편의 간격 차이는 적지 않습니다.

마음 안에 나타나는 영의 흔적을 여러 면으로 감지하지만 영의 존재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그로 인해 건설의 세계에는 들어 갈 수도 없고 기능 면을 분석해 내는 것은 더욱 멉니다.


4. '5.추신'에 담으신 심정은


이 노선과 이 홈을 자주 찾는 우리 모두의 심정을 대신했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악에 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죄와 악을 배웠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삐뚫어진 것'이며,

악은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 자기위주'라고 배웠습니다.


1. 죄와 악의 존재적 순서에 관하여


죄가 먼저 입니까? 악이 먼저 입니까?


존재적으로 살피면, 타락한 천사의 악이 먼저인 듯 합니다.


(1) 죄가 먼저 인 듯한 성구들

그런데, 인류의 경우 하와의 경우도 악이 먼저인 듯 합니다만, 다음과 같은 성경의 진술이 그 사실과 반대되는 듯 합니다.


1)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창2:17)

2)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5)

3)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7)

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창3:22)


즉, 위 성구들을 보면 선악과를 먹은 범죄 후에 인류에게 악이 생긴 것 같습니다. 좀 더 성경의 표현과 정확히 말하면, 선악과를 먹는 범죄 후에 선과 악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인류에게는 죄가 먼저요, 악이 그 후 인 것 처럼 보입니다.


(2) 악이 먼저 인 듯한 성구들

그러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창3:6)"를 보면 또 다릅니다.


타락한 천사인 마귀가 하와에게 마귀의 악을 전염시켰고 하와는 자기를 위하는 '악'이 먼저 생기고 나서야 범죄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 후에 '죄'를 저지른 것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중에도 악이 죄보다 앞선 것으로 설명하시며, 우리가 범죄하는 동인을 '악'으로 보는 것이 전반적인 교훈이었던 것 같습니다.


(3) 요약

모순되는 성구들 간에 죄나 악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죄의 결과로서의 악인지? 악의 결과로서의 죄인지? 가 궁금합니다.


(4) 참고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의 확장이 있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 선악과를 먹은 후에 악이 생긴 것은 범죄로 인하여 악이 강화 되는 일반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인가?

- '선악을 아는 것'과 '악에 전염된 것'은 다른 것인가?

- 넓은 의미에서 '악'은 하나님 중심을 하라하신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니 곧 '죄'가 아닌가? 백목사님께서도 '악성'을 '원죄'라 '악습과 악행'을 '본죄'라 하신 적이 있지 않은가?

- 죄의 반대가 의이고 악의 반대가 선인데, 의는 결과적 상태이고 선은 결과라기 보다는 동기나 과정이니 악이 죄보다 앞서는 것은 아닌가?

- 인류최초의 범죄와 그 후 우리들의 범죄는 순서가 다른 것인가? 인류최초에는 죄가 먼저이고 그렇게 해서 생긴 악이 우리들에게는 죄의 동인이 되는 것인가?


2. 죄와 악은 다른 것 입니까?


죄와 악은 본질상 같은 것이고, 그것이 현실에서 표출될 때 다른 것인가? 다른 각도의 표현인가?


백목사님이께서 악성을 원죄로, 악습을 본죄라고 표현 하신 것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3. 악행이라 하지 않으시고 왜 악습이라 하셨나?


왜, 악행이라 하지 않으시고 악습이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악행이 모이고 모여서 악습이 되지만 악행은 곧 죄인데 죄의 결과로서 굳어진 우리안에 굳어진 그 무엇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악습으로 표현 하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합니다.


일반 교계에서 중생을 정의할때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안에 심으시고 영혼의 주도적인 성향(경향성, 습관)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하는데 여기서 사용된 경향성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4. 악성과 악습을 구분 지으실 필요가 있었나?


악성과 악습은 악령과 같이 '나' 아닌 '나를 물들인 것'인데, '자기 아닌 자기'인데,


(1) 내 안에 들어와 나인 것 같은 존재인 악을 존재적으로 '성질'과 '습관'으로만 구분 지은 신 이유는 무엇인가?

(2) 성질과 습관(행위 포함)으로만 구분 지으면 자기중심인 악을 다 분류할수 있는 대분류가 되는 것인가?

(3) 다른 것들로는 더 구분 짓지 못하나? 빠진 것은 없나?

(4) 아니면, 둘로 구분 짓는 것 자체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구분 안지어도 되는 것 아닌가?


5. 교계와의 소통을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 일까?


이상과 같은 의문은 향후 교계와의 소통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반교계에서는 죄의 열매를 악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거의 모든 일반 신학이 철학의 배경들이 깔려 있는데, 악한 인간을 '성질'과 '습관'으로 분류할때는 성질과 습관이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해야 그들과 소통시 문제가 없을 듯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실제 그들의 철학에서는 어떻게 분류를 하는지는 잘 모르나, 언뜻 기억나기로는 '지정의'로 보는 것이 일반인 것 같습니다.


또 기억하는 것이, 조나단 에드워드가 중생으로 인해 생기는 영혼의 변화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힘들과 경향성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경향성이란 단어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 본성, 성격, 경향성)'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와 경향성'에서 언급한 희랍어'헥시스(실천에 의하여 이루어진 어떤 상태 혹은 항구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의 철학적 영향을 받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서양 철학사에는 존재론 이란 것이 있는데, 존재가 곧 무엇인지를 연구한 철학의 한 주제로 경향성이 존재의 특성이란 관점과 경향성 자체가 곧 존재의 본질이라는 관점등 다양한 것 으로 압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철학을 공부해서 알아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으신 백영희 목사님께서 '존재론'에서 도용한 '존재와 경향성들에 대한 개념'중 나중에 영어 Habit(습관)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이는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의 개념을 들어 악의 한 형태인 악습과 악성을 정의하신 것에 주목해야 될 것이라 보입니다.


우리가 무지, 무식해서 백영희 목사님의 신학세계를 가지고 세계철학과 신학의 핵심을 꿰뚫고 그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진리를 배우고도 그들이 뭔지도 모르고 난잡하게 이것 저것 주 대어 펼쳐 놓은 개념들을 백목사님의 신학으로 한가지 원리로 요약 할 수 있어서 그들도 설득시키고 이해시켜 이 길로 돌아 올수 있는 교리를 정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우둔함으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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