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또다른 약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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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또다른 약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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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삼 0 1
제목 : 칼빈주의의 약점 및 모순점.


정통칼빈주의는 2000년 기독교의 주류(바른 중심된 신학)신학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방향에서 모든 교리적 방향이 성경적으로 옳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순점이 크게 한 가지가 있습니다.


1. 칼빈주의 모순점 첫번째 내용


중생된 일체성의 영혼안에 죄된 경향성과 의의 경향성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청교도 신학자 윌리엄 쉐드는 이부분에 대해 언급하며,

영혼의 삼위일체 즉 영혼의 신비라고 이야기 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윌리엄 쉐드는 중생된 일체성의 영혼안에 죄된 경향성과 의의 경향성이 함께 공존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연구한 끝에, 마지막 결론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혼의 삼위일체 즉 하나님의 신비부분으로 생각한것 같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이분론으로만 계속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신비부분으로 생각할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칼빈주의의 약점(모순점) 한 가지가 더 있는것 같아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 질문을 올립니다.


2. 속죄부분 입니다.


이것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기쁜 소식 선교회(세칭 구원파)의 속죄론을 연구하다

나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기쁜 소식 선교회의 속죄론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빛이 1000억 있는데 누군가가 제 대신 돈을 갚아 주었다면 저는 다시는 그 빛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것을, 예수님이 나의 죄값을 모두 지불했으니 나는 완전히

죄 없는 자이며 죄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홍전(개혁주의 독립교단)목사님의 책을 읽어보니, 마약중독사범자가 있는데 이 사람이 국가에서 죄의 사면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죄의 중독성이 있다.며 그것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의 중독성 즉 죄의 세력이 있으므로, 성화 가운데 점점 그 죄의 세력을 줄어가야 한다고 하신것 같습니다.


결국 기쁜소식 선교회는 죄의 성질에 대해서 잘못 이해했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나면 죄의 중독성이 남아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쁜소식 선교회의 속죄론은 옳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칼빈주의는 속죄를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중독성 죄의 세력이 있으므로 이것을 줄여가야 한다. 결국 죄 죽이기(존 오웬 = 김남준)를 해야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목사님 교리는 (이치영목사님의 기능구원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대속 입은 우리는 어떤 죄를 지어도 죄값으로 지옥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믿는 사람이 짓는 죄는 어떻게 되는가? 죄값은 이미 예수님이 다 받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의 죄값은 예수님이 이미 다 감당했기 때문에 죄값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그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값은 받지 않지만 지은 죄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형체를 가진 독립존재가 아닙니다. 죄는 인간의 행위의 산물입니다. 행위가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사람의 행위는 한 번 하면 그 마음과 몸에 그대로 연습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많이 하면 그만큼 숙달이 되고 적게 하면 적게 숙달되는 차이는 있지만 논리적으로 말하면 한 번이라도 행동한 심신의 움직임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마음과 몸에 고스란히 익어져 있습니다. 연습된 것으로, 숙달된 것으로 익숙해진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즉 기능으로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죄의 행위를 했으면 죄의 기능이 그 심신에 남아 있습니다. 의의 행위를 했으면 의의 기능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님의 대속으로 죄값은 없지만 우리 심신의 행위로 우리 몸에 익어 있는 기능까지 대속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익어 있는, 연습되고 숙달되어 익숙해진 죄의 기능은 예수님의 대속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이치영목사님 기능구원에 대한 내용-


백목사님 교리는 요약적으로 말하면 죄의 중독성은 대속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죄의 중독성 세력이 속죄 되었다면 용서받았다면 그것가지고 싸워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제 빚을 모두 갚아 이제 빚이 어졌는데 그것가지고 고민하고 다시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싸우고 있는 죄(기능)는 결국 속죄되지 않은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칼빈주의의 약점 및 모순점이며 백목사님이 그 약점 미비점을 좀 더 옳게 깨달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칼빈주의는 죄를 짓고난 다음 죄의 중독성에 대해 죄죽이기를 말하지만 그것이 대속되고 대속되지 못한 것에 대해, 대속되지 못한 부분은 지옥가는것에 대해 이해를 많이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답변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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