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음성은 신앙양심을 통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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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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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4 00:00
주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완전자십니다.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고 주님 음성을 듣는 것도 사람의 청각으로 들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 음성을 들었으면 주님을 만난 것이고, 주님 만났으면 주님 음성은 들리는 것입니다. 주님 음성 듣는 것과 주님 만나는 것은 달리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이치나 결과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은 반드시 성경 말씀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벗어나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주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 범위 안에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신앙양심을 통해서 듣는 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 음성을 듣는 것은 다시 말하면 자기에게 해당된, 혹은 그 현실에 해당된 주님의 뜻을 찾는 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첫째, 자기에게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주님 음성은 들을 수 없고 주님은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정리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죄를 다 정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죄가 있으면 주님 음성은 들을 수 없고 주님은 절대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 말씀대로 된 양심, 즉 신앙양심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자기 모든 면이 성경 말씀대로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의 동기나 목적이나 중심이 바로 되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은 들을 수 없습니다. 동기와 목적, 중심이 반드시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양심으로 판단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앙양심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을 다 정리하고,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입니다. 양심은 인적 요소로서는 가장 깨끗한 부분으로 주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양심이고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바로 양심입니다. 성경 말씀에 거리낌이 없고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중생된 영 속에 계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양심을 통해서 들리게 되는데 이것을 ‘세미한 음성’이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음성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하신 바로 그 주님의 음성입니다.
주의할 것은
주님의 음성은 내 속에서 내가 듣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지의 여부는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자기 주관과 주님의 음성을 혼동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실제 자기의 주관을 주님의 음성이라고 착각하고 오판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은 분명 객관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객관의 음성입니다. 자기 주관과는 분명히 구별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진정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객관이신 주님으로 인한, 주님의 역사로 인한, 주님의 음성으로 인한 자기라는 주관의 확신이 반드시 있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한 역사이며, 실제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고 주님을 만나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반드시 성경 말씀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벗어나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주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 범위 안에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신앙양심을 통해서 듣는 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 음성을 듣는 것은 다시 말하면 자기에게 해당된, 혹은 그 현실에 해당된 주님의 뜻을 찾는 것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첫째, 자기에게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주님 음성은 들을 수 없고 주님은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정리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죄를 다 정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죄가 있으면 주님 음성은 들을 수 없고 주님은 절대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 말씀대로 된 양심, 즉 신앙양심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자기 모든 면이 성경 말씀대로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의 동기나 목적이나 중심이 바로 되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은 들을 수 없습니다. 동기와 목적, 중심이 반드시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양심으로 판단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앙양심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성경 말씀에 거리끼는 것을 다 정리하고,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입니다. 양심은 인적 요소로서는 가장 깨끗한 부분으로 주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양심이고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바로 양심입니다. 성경 말씀에 거리낌이 없고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중생된 영 속에 계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양심을 통해서 들리게 되는데 이것을 ‘세미한 음성’이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음성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하신 바로 그 주님의 음성입니다.
주의할 것은
주님의 음성은 내 속에서 내가 듣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지의 여부는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자기 주관과 주님의 음성을 혼동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실제 자기의 주관을 주님의 음성이라고 착각하고 오판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은 분명 객관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객관의 음성입니다. 자기 주관과는 분명히 구별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진정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객관이신 주님으로 인한, 주님의 역사로 인한, 주님의 음성으로 인한 자기라는 주관의 확신이 반드시 있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한 역사이며, 실제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고 주님을 만나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음성
목사님 주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요. 그리고 어떻게 주님을 만날수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환신할수있는지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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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주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요. 그리고 어떻게 주님을 만날수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환신할수있는지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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