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에게는 단정하고 필요치 않습니다. 어린 사람의 착각에 일부 필요한 경우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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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에게는 단정하고 필요치 않습니다. 어린 사람의 착각에 일부 필요한 경우는 있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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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목회자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해 볼 주제를 주신 것 같습니다.


발표용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가 자기 내면에서 진정으로 확정하고 나가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사색을 요구하시는 질문이라고 보았으며 또한 일반 질문과는 달리

하루 이틀의 시간을 재촉하실 사안이 아니라고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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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926번으로 질문하신 내용이 본 질문의 보충질문이었기 때문에 양쪽 내용을 함께 묶어 답변드립니다.


학문이 사역자에게 필요없다는 것은 단정하고 확정해 두고 왔습니다. 물론 어린 사람들이 착각으로 그 학문 때문에 좀 더 관심을 집중하는 경우는 있지만 결국 사역이란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역사에는 신학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인간지식 인간학문도 전혀 필요없고 상관없는 길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이러하고, 좀더 자세하게 설명을 드린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목회자에게 학문이 필요한가 라는 문제는, 항상 확정해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학문과 목회 관계를 질문하신 것은 처음입니다만, 신학이나 원어 등에 대한 질문은 있었습니다. 목회자에게 학문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신학을 말하는 것이고 신학의 가장 중심은 원어에 있기 때문에 비록 '학문'이라는 표현은 없었으나 '신학' 또는 '원어'와 관련하여 모든 면으로 명백하게 입장을 정리했던 다음 답변을 우선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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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번 (답변2.) '원어 등 신학 사용에 대한 백목사님의 입장은'


257번 '②원어는 대단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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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역시 이 세대에도 숨겨놓은 7천의 의인들은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부 인가를 배제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면 너무도 반가운 일입니다. 미국에서도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하는 곳이 1980년대까지도 있음을 그 당시 알고 있었습니다. 학문이라는 인간지식, 그리고 학위라는 사회간판에게 포로된 교계에서 몇몇 숨은 종들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분들과 백목사님 신앙노선이 동일한 것은 세상정부의 통제와 지휘를 받아가며 하나님의 사람을 양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신학 자체를 얼마나 위험하게 보며 신학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느냐에 대한 시각은 아마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즉 그분들은 필수는 아니지만 목회를 위해 또 성경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원어와 신학은 가능하다면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일 것이고, 백목사님의 경우는 원어와 신학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겼는지 동물원 구경하듯이 박물관의 전시품 관람하듯이 보는 정도면 족하고 만일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구경이나 관람조차도 필요없다는 입장입니다.


확실히 알고 있는 분 중에 김현봉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신학에 대하여는 백목사님과 같은 입장이었고 그 외에도 없지는 않겠지만 신앙노선적 체계를 가지고 근본적으로 신학과 원어에 대하여 선을 긋고 있는 경우는 아마 없을 듯 합니다.


3.문제는, 질문자께서 이런 입장을 스스로 확정하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학교가 왜 정부의 통제와 지휘를 받으면 안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마땅히 알고 있고 또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만, 인가를 받게 될 때 가지게 되는 혜택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결국 눈 딱 감고 인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신사참배 문제나 모든 교권투쟁 문제에는 이런 이권문제가 본질적으로 깔려있습니다. 세상사람이 이해관계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듯이 교회도 목회자도 남는 장사냐 손해보는 장사냐 라는 기준에 따라 가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학문으로 화장을 하고 나서는 이유도 꼭같은 이유입니다.


원어와 신학이라는 문제로 위에 안내드렸던 글에서 단정하고 있지만, 원어와 신학도 바로 사용하면 도움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것을 필요하게 사용한 사람은 없었다고 단정을 해야 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없음으로 신앙에 유익본 사람은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그것을 가진 사람이 바로 사용하여 덕을 본 경우가 실제로는 없었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가질 노력도 가질 필요도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자 답변자의 오랜기간 살펴본 결론입니다. 지금은 그분이 없는 상황이지만 답변자는 자기 확신에서 분명히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곳에서 이런 주장을 소리높혀 외치고 있습니다.


4.답변자의 솔직한 자기 확신을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 교훈 노선에 귀가 열릴 때부터, 학문이 필요없다는 것은 수도 없이 들었으나 늘 마음 속으로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 분이 저렇게까지 금할 때는 경험이 있어 그럴 것이니 학문이 우상되지 않도록 학문에 의지하여 하나님 섭섭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지 참으로 그것이 전혀 필요없다는 말씀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이후를 넘어서면서 수년간은 참으로 신학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있기는 있어야 하지만 너무 위험하니까 일반교인 전체를 상대로 설교할 때는 교훈차원에서 총론적으로 그리 말씀하시는 것일까 라는 숙제를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2년 10월 연구소 직원이 되었고 이후 몇 개월간 늘 말씀만 대할 기회가 오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는 단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83년 4월에 백목사님이 해외 신학공부를 명할 때, 자신있게 그리고 단호하게 목회와 신앙에는 전혀 필요없는 것을 왜 하라시느냐고 반문하고 감히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백목사님의 단정과 지도를 지금까지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학이 전혀 필요없고 오히려 그것으로 손해만 보지만, 일단 신학공부를 정식으로 하게 되면 그 이전에 깨달은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신중히 듣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자기 구원에 손해를 보면서 남을 위해 그런 위험한 일을 제가 하겠습니까 할때 목사님은 현재로 공회적으로 필요하여 가라는 것이고, 가서 할 일은 우리가 학문없이 깨달은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학문으로 깨달은 것을 비교하여 앞으로 우리의 이런 신앙노선을 요약하고 전할 때 학문으로 깨달은 것과 비교하며 전할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3년간 Covenant신학교에서 제가 배운 바는 전혀 없습니다. 배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참고한 것이 있다면 세계 신학계의 깨달음이 어떤가를 열람해 본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과연 신학이란 필요가 없다는 단정을 수도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을 갔다 옴으로 하나 도움된 것이 있다면, 신학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마음껏 소리높혀 외칠 수 있는 경험과 자료와 이유와 실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지도하고 있는 교인 중에 우수한 인재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해외 유학을 권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나 그때는 변치 않는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신학 없이도 성경을 깨닫고 배운 것으로 이미 신앙에 확실하게 선 사람으로서,

둘째, 신학을 통과하면서 그 신학에 피동되지 않을 사람이며

셋째, 신학의 경험이란 그 사람의 훗날에 그 사람의 신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학에 빠져 죽은 교계에서 신학에 빠져 죽지 않도록 하는 일에 사용될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이 서는 경우일 것입니다.


참고로, 총공회 내에서는 이런 주장이 옳은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총공회 내부를 의식해서 이런 이유로 신학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만 아직까지 그 중심과 그 결과를 인정할 정도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반드시 그런 사람이 소수라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지켜보고 기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남에게 발표용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그런 길을 걸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답변자는 어디에 해당될런지, 다른 분들이 보는 시각에 대하여 굳이 변론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제 드린 말씀이 질문자와 단둘이 무릎을 맞대로 드렸을 때 드릴 수 있는 바를 요약한 것입니다.
[목회] 사역과 학문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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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말로 목사님에게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땜장이 설교자였던 존 번연이나 청교도 신학자였던 존 오웬이나

모두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데는 동일한 힘이 나오지 않았나요?

박윤선 목사님이나 백목사님 설교에 어떤 학문적인 열등감이 있나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박사학위 받아야 제대로 설교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는 당장 짐싸가지고 미국에 가서 들통져가면서라도

박사공부한 후에 강단에 서겠습니다.

이 영인 목사님은 저보다 먼저 이같은 갈림길에서 선택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목사님. 답변좀 주시되 깊이 생각한 후에 마음에 있는 말씀좀 해주십시요.

이나라의 많은 젊은 사역자들의 진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설교보다는 창광교회 이 병규목사님 설교가 더 영감 있는 것 아닙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합정동교회 김효성 박사님 설교보다는 백목사님 동생분되신 설교가 더 힘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학문이 있는 사람들이 배운 지식으로 포장한 말씀이 왜 더 멋있어 보이고 세상은 왜 더 높여 보는 것입니까?

한가지만 더 묻고 싶습니다.

학문없이도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의 종으로 부르시고 세워서 능히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이런 방법은 위험하고 무식한 것이니 공부하러 미국가야 합니까?

솔직한 답변 이 나라에서 해외가서 신학박사받은 사람이 삼천명이 넘는데

갈곳 없어서 있다고 하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이 불러서 쓰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 말씀 가지고 장난하고 노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 구두 수선공 무디도 쓰시고 미국 웨스트 민스터에서 박사학위 받은 박형룡 박사님 보다도 손양원 목사님의 피맺히고 눈물 맺힌 설교가 왜 더 은혜로운 것입니까?

왜 백목사님은 설교하시면서 " 외로운 길도 있고 외로운 길도 있고" 하시면서 노인네가 왜 눈물을 삼키시면서 설교를 하신 연유는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은 주님에게 물어 봐야 겠지만 그래도 저보다는 이런 문제들을 놓고 더 싸움을 하시고 나아가신 분이라 믿고 다만 마음에 있는 솔직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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