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주문과 감정 신앙 - 방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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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주문과 감정 신앙 - 방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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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불교의 주문과 감정 신앙 - 방언을 중심으로
내용1.불교를 예로 들면 중들이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외우고 있으면 그 소리는 아무 의미도 없고 효력도 없지만 우리가 일이 많고 걱정이 많으면 우리 마음이 그 생각 때문에 복잡하여 마음이 어지러운데 한 가지 주문을 계속 외우다 보면 그 소리를 반복하는 과정에 다른 생각이 다 없어집니다. 10가지 20가지 걱정과 생각이 있었는데 나무아미타불만 남게 되면 결국 한 가지만 남으니 전체적으로 그 사람은 생각이 맑아진 것이고 깨끗해 진 것이니 제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소리가 효험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마음이 한 가지 불심의 마음으로 정리가 되면 사람의 잠재력은 크기 때문에 제 정신을 차리고 자기와 현실 주변 세상을 차분히 내려보게 되면 새로운 눈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그 주변 환경이 만일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 세계와 멀리 있다면 그리고 자연만 있다면 그 자연은 단촐하게 자연 활동만 하기 때문에 정신이 맑아집니다. 그래서 절은 산 속에 있는 것이고 사람 출입을 제한 시켜 놓는 것입니다. 이런 절에서는 일반 사람이 알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인생 지도와 혜안이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절이 존재하고 불교가 오늘까지 버티고 있는 그 종교의 본질을 말한 것입니다. 따져 보면 종교가 아니고 인생의 지혜이며 자연 활용이며 하나의 철학일 뿐입니다. 그런데 심리와 환경만 강조하면 그 길을 걷는 사람의 심리 집중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설과 신화를 실제인 것처럼 적당히 버무려 사람을 제압해 버리면 집중에 도움이 되니 이것이 불교의 본질은 철학인데 마치 종교인 것처럼 포장해 놓은 배경입니다. 2.불교 때문에 신앙행위를 혼동하면 안 되겠지만 일단 성경에 기록 되고 명령을 했다면 우리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순종해야 합니다. 불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적으로 해석하면 그 끝이 다 파헤쳐지지만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완전히 다 비틀어집니다. 어떤 것은 해석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해석이 안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면 안 되는 줄 알아야 하는데 사람이 반대로 생각합니다. 성경의 연보나 기도를 인간 경제 운용이나 심리 작용으로 해석해서 몇 가지가 그럴 듯 하면 성경과 기독교를 마치 불교처럼 그렇다고 단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완전히 잘못 짚었습니다. 방언이 성경에 있다면 그 방언이 왜 기록되었고 어떻게 효력이 있는지 살필 것도 없이 무조건 그대로 하면 되고 순종을 하면서 모르는 것은 뒤에 깨달으면 되지만 현재 주변에서 말하는 방언은 그 방언이 성경이 말한 그 방언인지 아닌지가 문제입니다. 이 홈에서 안내하는 것은 한국교계가 말하는 그 방언은 성경의 방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그 방언은 왜 신앙에 효력이 있는가? 맞아 죽기 좋을 만한 말이지만, 불교 믿는 사람이 나무아미타불 소리로 덕을 보는 것처럼 남묘호랑게교를 믿는 사람들이 '남묘호랑게교'를 반복하여 큰 효력을 보고 좋아하는 것처럼 순복음교회에서 유행을 시켜 한국교회가 다 따르고 있는 방언도 같은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죄며 우상행위라고 정죄하는가? 만일 현재 말하는 그 방언을 성경의 방언이라고 단정을 한다면 그 말 때문에 틀렸습니다. 만일 현재 말하는 그 방언이 기도할 때 마음을 집중시키고 정신을 차리게 한다고 말한다면? 기도의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과 분위기와 자기 제어의 방법 중 하나일 수는 있습니다. 즉, 절을 지을 때 깊은 산 속에 지어놓으면 불도를 닦고 주문을 외우는데 좋듯이 우리도 집회장소나 기도원을 마련할 때 시내 아파트가 아니라 산속으로 가져가게 됩니다. 절은 환경이 좋지 않고 눈에 보이는 부처 같은 그림이 잘못되면 종교가 흔들어져 버리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상대하기 때문에 환경과 눈에 보이는 그림과 신앙은 전혀 관계 없으나 다만 부족한 내가 하나님을 찾는 과정에서는 조용한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언도 내가 기도에 깊이 들어갈 줄 모르고 말씀을 새기면 말씀으로 하나님 뜻을 찾는 것이 서투니 방언이라고들 말하는 그런 이상한 소리를 내어 내 정신을 모으고 기도의 열심을 더한 다음 실제 내가 하나님께 반복해서 구해야 할 것을 구하게 되면 훨씬 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그렇게 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내 마음을 짓누르고 얽어맨 모든 잡생각을 다 떨쳐 버리면 조용히 말씀으로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본 기도에 들어가기가 쉬울 것입니다. 3.마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바로 담배를 딱 끊어버리면 입이 심심해서 자기도 모르게 또 담배를 집어들게 되니까 사탕을 먹는다든지 껌을 씹는다든지 또는 입에 볼펜이라도 부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또 그런 것은 일시 효력만 있으니까 은단을 씹는다든지 담배 효력이 나는 약을 먹어서 담배를 끊는 것을 예를 든다면 은단이나 껌이 담배를 끊는 것은 아닌데도 결과적으로 담배를 끊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기도시간에 '어~~~' 소리를 내든지 '아 - - ' 소리를 내든지 해서 기도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소리 자체가 방언이거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니 그런 방법 그런 수단 그런 과정을 통해 기도에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방언이라는 소리를 통해 기도에 효력을 본다는 것은 우선 세상에서 쌓인 잡 생각 마음 부담 모든 스트레스를 다 날리는 대청소가 되기도 하는데 마치 비 맞은 개나 닭이 몸을 한번 털어버리면 온 털에 묻은 물이 다 날라가 버리듯이 인간이 감정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통해 모든 짐을 다 날려 버릴 수 있고 그런 소리를 통해 자기의 마음을 모을 수 있으면 자기 감정을 신앙으로 일깨울 수 있으니 모두들 그 방법 자체가 기도요 그 행위가 바로 성경의 방언이라고 갖다 붙여버리는데 그렇게 말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것은 아닙니다. 4.산 속에 가서 기도하니까 기도가 잘 되더라는 경험은 그 산이 구약의 성전 장소처럼 약속 된 장소여서가 아니라 그 산의 분위기가 나를 기도하는데 좋게 도와주는 환경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산에서만 기도가 되고 다른 곳에서는 기도가 안 되는 사람이 된다면? 신앙이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지만 신앙이 자라가면 환경에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좋은 환경이 기도하는데는 훨씬 좋지 않은가? 그것이 맞는 말이기는 한데 만일 꼭 환경에 지배를 받게 된다면 신앙 발전은 중단 됩니다. 이왕이면 환경까지 좋으면 더 좋고 만일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또 그대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어떨 때는 방언이라고 하는 그런 소리를 그런 방법으로 사용해서 해서 좋으면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거나 안 믿는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거나 하면 그 방법을 통하지 않고도 기도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기도에 걸음마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수학 시간에 숫자를 가지고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며 나가야 하는데 아이들이 정신 집중이 되지 않으니 사탕을 가지고 동전을 가지고 더하기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탕에만 관심이 있고 그 사탕으로 더하고 빼는 이치를 깨치치 않게 되면 사탕이나 동전으로 가르칠 수 있고 진도를 나갈 수 있는 수는 천이 넘을 수는 없습니다. 산 속의 기도원이라는 환경, 또는 조용하고 넓은 예배당, 또는 방 한 칸 기도실 환경이나 소리를 크게 내거나 웅얼거리거나 아니면 방언이라고 하는 그런 소리를 내는 방식을 통해 실제 기도에 들어가도록 처음에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신세를 질 수 있으며 또 신앙이 들어서도 그런 방법을 경우에 따라 사용하고 이용할 수가 있는데 만일 그런 방법 중에 한 방법에게 매여버리면 그래서 그 방법을 떠나서는 할 수 없다면 그때부터는 그 방법이 자기를 기도하지 못하게 얽어맨 자기의 구습이 되어 버립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말하는 방언이라는 것은 적절하게 사용하는 기도의 한 방법이나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기도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소리를 내는 그 소리가 기도가 되었는데 기도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어디서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상태에서도 바로 방언을 해버리고 그것이 최고의 기도이니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잊어버린 정도입니다. 5.결론적으로 어릴 때나 여러 복잡한 환경이나 자기 심리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는데 그런 방법은 기도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고 그런 방법이 기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만일 그런 방법 자체가 기도라고 생각하게 되면 중들의 주문 외우기와 같아져 버립니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무조건 죄가 되거나 금해야 하거나 잘못 된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 교계에서 일반화 되어 있는 방언과 그 방언에 대한 생각은 아주 틀렸습니다. 말하자면 찬송도 찬송을 손뼉을 치고 함께 큰 소리를 내고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맞춰주면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그렇게 찬송하는 것만 찬송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감정신앙에 치우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는 데 좋을 수 있고 어떤 예배 때는 어떤 설교 때는 그렇게 해야 할 상황도 있지만 찬송은 으례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좋다면 어리거나 삐뚤어진 경우입니다. 찬송은 내 속에 하나님께 무엇이 감사한지 왜 감사한지 자세하게 이유를 알고 깨닫고 그 깨달은 것 때문에 진정 마음이 움직이고 감사가 나오고 감탄이 나오면서 나와야 하는데 소리와 가사가 앞서 마음을 흔들어 그렇게 하도록 하여 마음과 찬송이 어우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마음이 먼저 말씀으로 그런 상태가 되고 그 마음이 찬송으로 나오기도 하니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저절로 찬송이 입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고 찬송을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말씀에 붙들리고 감사가 나와서 진정한 찬송도 되는 것인데 그만 찬송이라 하면 무조건 밴드가 분위기를 잡고 마이크에서 음으로 분위기를 선도하고 모든 사람이 움찔 움찔 같이 움직이거나 아니면 박수로 장단을 맞추어 쭉 달려가버리면 인간의 흥풀이에 찬송을 이용한 것인지 아니면 반복 학습으로 흥이 나도록 된 것인지... 전체적으로 신앙의 본질과 진리로 살아가야 하는 신앙 걸음의 단계가 교계에서 완전히 잊혀져 버리니까 별별 기술이나 분위기나 방법론만 남아서 교회 내를 횡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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