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후 만물의 존재 형식과 활동은 아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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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후 만물의 존재 형식과 활동은 아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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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능의 분리


세상에서는

죄의 기능이나 의의 기능이나 우리가 꼭 같이 만들고 또 심신을 통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의의 기능도 그렇지만 소매치기 기능도 손을 떠나 따로 존재하거나 활동할 수 없습니다.

죄의 기능이든 의의 기능이든 심신을 통해 만들어지고 심신 속에서 죽는 날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 때가 되면

천국 갈 택자들에게는 세상에 없었고 세상에서는 불가능했던 분리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평생 만든 기능 중 죄의 기능은 그 기능이 심신이라는 형체로부터 분리가 되어 집니다.

그리고 형체를 떠날 수도 없고 형체 없이는 작용도 할 수 없었던 기능이라는 것이

'지옥'이라는 범위 내에서 '영원토록 죄로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 곳이 지옥입니다.


따라서 윗글 내용 중 '답변'으로 적은 글은

의의 기능에만 해당 되는 말이고 죄의 기능은 세상에서만 일시 해당되는 말입니다.

죄의 기능은 택자가 죽으면 그 후 영원토록 그 기능이 지옥에서 별도 존재하고 활동합니다.

눅16장의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는 영계의 모습이므로 세상 모습으로 봐서는 안 되겠지만

바로 이 모습이 죄 지은 택자의 기능의 영원한 모습을 적어주신 말씀입니다.


참고로 윗글 답변은 1989년까지 총공회 내의 수정노선 목회자들의 주장이며

지금 총공회 내 대구공회 서울공회 노선의 교리적 출발이라 할 정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2.지옥으로 분리된 죄의 기능의 신분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된 단일 인격체입니다.

사람의 내부 중심은 '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며 주격입니다.

몸과 마음은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지만 영을 모신 영의 수족일 뿐입니다.


소유격이지만 영이 심신 요소 하나하나를 두고 최선을 다하고 한 몸의 고통을 겪듯이

지금은 우리 심신이 둔탁하여 심신의 기능이나 몸 밖의 소유나 만물을 무심하게 대하지만

이 세상의 어두움을 다 벗고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보고 느끼고 알게 되는 천국에서는

내게 맡긴 모든 것이 다 넓은 의미의 '나'가 되어 희로애락까지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땅 위에서 생명과 사랑이 없는 법조문을 읽듯이 설명한다면

또는 여러 설명할 경황이 없어 간단하게 표현을 하다보면

심신의 기능이란 심신 자체가 아니니 '나'라는 존재와 상관 없다고 설명할 수도 있으나

지옥으로 가는 죄의 기능을 두고는, 믿는 우리가 아픈 가슴 말할 수 없을 정도라야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나의 영이 나입니다.

이 영이 가진 수족까지를 합하면 '나'는 영과 심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를 일반적으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죽은 영과 산 마음과 산 몸이 합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영은 죽었든 살았든 상관이 없고 몸과 마음만 살았으면 산 사람이라 합니다.

우리는 심신이 살았든 죽었든 영이 살았으면 산 사람 영이 죽었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만일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심신에 일부가 고장이 났다 해도 불편할 뿐이지

그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즉 사람이란 영이 사람이지 심신은 사람을 사람이라고 하는데 본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필 것은 '기능'입니다.

심신이라는 형체만 심신이며 사람의 일부인가?

심신이 심신 되는 것은 심신의 기능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로 직결됩니다.

구원론에 있어 건설과 멸망으로 나뉘는 것 때문에 심신 자체와 기능을 분리하는 것이지

실은 심신 자체만 있고 기능이 없는 인간의 그 심신 자체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 때의 상황과 신앙건설을 설명하기 위해 심신 자체와 기능을 구별하고 있지만

마치 영이 사람이지만 영과 심신을 구별하지 않고 합해서 인간이라 하듯이

심신 자체도 기능과 부활 때 나뉘는 면이 있어 구별은 하지만 기능은 남이 아닌 나입니다.


윗글 이 문제 관련 설명은 너무 짧기 때문에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기능일 뿐'이라는 표현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참으로 많을 수 있어 설명을 더했습니다.


3.지옥에서 불타는 기능이 천국에 있는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가?


눅16장의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가 지옥의 불타는 기능과 천국의 성도와의 대화입니다.

심신을 다 갖추어야 온전한 인격이고 인격과 인격이라야 인격 상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총공회 내의 대구공회와 서울공회라는 수정노선이 이 노선 교리에 대하여 반론한 논리로

재독에서 인격대화 논리와 함께 교리적으로 기능의 분리 후 대화 대면은 불가하다는 것이니

윗글은 20년 전의 총공회 내에 있었던 총공회 반대 논리의 전형적인 주장입니다.

이미 공회 내에서는 다 논리가 되었고 정리까지 끝이 난 경우입니다.


삼백(백태영 백영침 백영익)이라는 별칭의 총공회 최고 지도층 목사님들이 주도했던 논리며

당시 총공회 내의 해외 유학 경험 학위 교수들과 중진 목회자 전체가 강력히 주장했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주장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 속에 지금은 다 인정하리라 생각하는데

의외로 또 이런 주장이 반복되어 어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몇 가지 성구를 인용했으나 그 성구들은 윗글이 비판한 글의 지지 성구가 되는 성구이며

윗글이 줒아하는 글을 지지하거나 근거가 되는 성구가 아닙니다. 성구 인용의 남용입니다.


4.천국에는 수치가 없는가?


건설구원을 모르던 시기에는

천국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 노선의 오랜 주장 끝에 지금은 다 받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만큼이 바로 수치입니다. 그 수치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이 서로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천국의 수치와 고통은 자기와 주님을 비교할 때 자기의 부족을 느끼는 양이니

천국의 수치와 고통은 천국의 영원한 감사와 기쁨의 재료요 원인입니다.


지옥의 수치와 고통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인한 것이니

이 절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치와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줍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우리가 세상에 살았던 시절의 모든 것을 다 알게 됩니다.

지옥에 간 자기의 기능이 왜 가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의로 살릴 수 있었는지를 압니다.

그리고 죄의 기능이 의의 기능이 될 수 있도록 주신 주님의 대속과 그 기회를 알게 되고

그런 기회를 받았는데도 그 기회를 버렸던 자기의 무지 불충 잘못을 더 깊게 알게 됩니다.


택자의 천국의 차이는

세상 기회를 얼마나 내버렸는지와 그 기회를 얼마나 잘 사용했는지의 차이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이것을 잘 알 수 있게 하겠는가?

성경이 구원 받고 천국에 간 이후의 상황을 세상에 있는 우리가 느끼기 쉽게 표현했으니

이것이 성경의 모든 건설구원 관련 표현들입니다.


오늘 땅 위에서의 수치와 고통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천국에 간 우리는 분명히 만물이 다 나의 지난 날을 알게 될 것이니 그때에

김익두목사님처럼 깨끗하게 회개한 과거의 죄에 대한 문제는 더욱 자랑스러울 수 있으나

그 김목사님이 회개 후에도 신앙으로 변절했던 그 변절을 두고는 자랑스럽기만 할까?

천국은 미래에 속한 소망교리 분야이므로 오늘에 증명은 곤란합니다만 알 수 있게 하셨으니

이런 면으로 폭넓게 살필 분야입니다.


사울이 마지막 자살을 하기까지 회개도 하지 못하고 계속 했던 그 행동을

지금 천국에서 어떻게 알고 대하고 있을까?

오늘 세상 표현대로 한다면 '후회' '수치' '고통'일 것입니다.

그곳이 천국이니 오늘 이 세상의 소망 없는 이들의 후회 수치 고통과는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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