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부흥사에 나타난 부산 서부교회 주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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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부흥사에 나타난 부산 서부교회 주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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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주일학교 부흥사에 나타난 부산 서부교회 주일학교
내용일학교에 보내지게 되어지니까 교사들은 임명만 받고 그다음 인사조처에 따라서 반을 맡기만 하면 기본 숫자는 이미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년 성별이 한 학년으로 몰리는 경우에는 집사님 자녀로만 10여명이 넘어버리니까 도무지 힘쓸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전도해서 자기 반을 창설하고 유지해야 되는 이 주일학교의 개념은 교사들로 하여금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초기 20여명의 교사들은 교회에서 인정받은 신앙있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통합반으로 바뀌게 되니까 뛰지 않을 수 없고 또 뛰게 되니까 실력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백목사님은 다시 한번 대부흥에 이르는 전혀 생각 못한 개념, 그러나 알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문제에 이르게 된다. 교사는 정원에 맞추어 교회에서 몇명만 뽑아서 시킬 것인가 아니면 실력이 있어 할 만한 사람이거나 또는 본인이 원하는 사람들까지도 확대를 할 것인가? 기존의 제도는 유입되는 학생수를 기본으로 하여 학년별로 나누고 다시 반별정원에 따라 필요한 갯수의 반을 만든다. 그래서 산출된 학급 수만큼 교사를 담임에 임명하는 것이 기존의 개념이었는데 통합반으로 바뀌어지니까 자연적으로 주일학교 반 숫자 혹은 교사 숫자의 정원제라는 개념이 달라지고 있었다. 기독교가 국교화된 나라에서는 중앙에서 지방교회에 목회자를 배분하여 파견하는 개념에 반하여 미개한 나라에서는 선교사가 들어가 힘껏 전도해서 교회를 세워나가는 개념이 있는데 이와같이 바뀌게 된 것이다. 선교사가 많을수록 좋고 믿는 사람이 생겨지면 그 중에서 목회자를 키워 담당시켜 다음 지역으로 옮겨가는 기독교의 역동적인 선교관, 개척관이 천주교의 중앙 관리식 파견관과 달랐고 따라서 기독교의 부흥은 천주교와는 그 부흥의 모습이 아주 다른 것과 같이 주일학교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었다. 통합반의 개념은 전도 대상에 학년 제한을 두지 말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반별학생 정원제로 선발되는 임명제 대신 실력만 있고 사명감만 있으면 스스로 반을 개척하여 창설하라는 창설반 개념으로 바뀌었다. 주일학교 교사의 시작이 지도부의 선발 임명에 수동적인 입장에서 이제는 자기가 스스로 반을 창설하여 세워가는 적극적인 개척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이미 선발되어 교사를 하던 이들이 통합반으로 5년을 내려오면서 활동과 결과가 이전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크게 부각되고 보니 교회내에서는 주일학교 교사로 부름을 받지 못하던 이들이 주일학교에 많은 관심과 부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또 통합반의 성공적인 활동을 보면서 하면 되겠다는 소망도 많았던 터에 정원제한을 두지 않고 연중 교사 등용을 계속하게 되니까 꾸준하게 교사 숫자가 늘고 있었다. 20여명 교사가 학생 350여명을 유지하면서 통합반이 주일학교의 기본편제로 자리를 잡았고, 그다음부터 개척 통합반으로 시작하는 교사들이 증가하면서 주일학교는 곧 500여명으로 부흥되었고 이후 교사등용의 숫자만큼 주일학교는 꾸준히 증가되었다. 아무 특별 행사없는 평범한 6월 2번째 주일 예배 출석으로 예를 들어 연도별 통계를 다음과 같이 비교하여 보았다. <표 Ⅰ-1> 6월 2째주 주일 오전예배 출석 수 이미 대부흥을 위해서 시대 여건을 만들어 놓고 하나씩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환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6․25 전후와 후진국이라는 등의 시대 여건이 가구당 4~5명, 많은 집은 7~8명의 아이들을 낳게 하였고 이들이 60년에서 8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전도만 하면 되는 아동이 가득차 있는 객관 상황이 형성되고 있었고 주일학교는 통합반으로 또 교사정원제를 없앰으로 전도의 문을 활짝 열고 내부 여건이 형성되고 있었다. 도표에서 보듯이 1961년 150명이 1980년 8000명까지 20년간 성장해가는 하나의 중요한 진행이 있게 된다. 건전한 교회발전, 확대생산 확대투자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는 그간 10여년 계속된 주일학교의 전도와 부흥이 장년반의 부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많은 주일학생들이 중고등, 청년기를 거치면서 차례로 장년반에 편입되었고 이들 중에서 제일 신앙있는 청년들이 주일학교 교사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고 이들은 교사 제한, 교사 정원제에 걸리지 않으니까 실력있는 대로 개인 형편에 따라 연중 계속 교사로 등용이 되면서 2000여명 주일학교가 이제는 3천, 4천, 5천, 6천, 7천, 8천명까지 올라가면서 1980년에 이른 것이다. 5. 20년만에 알려진 소식은 생각못한 홍보 이렇게까지 가파른, 세계교회사에 일대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도 서부교회의 신앙 특성상 홍보 선전은 전혀 없었다. 백목사님의 신앙시작이 원래 덕유산 골짝이었고 사람을 만날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전도를 하라는 간단한 원칙, 그리고 제자랑 제무덤 파는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원칙을 너무도 확실히 보수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주보 한장 없이, 벽보에 포스타 하나 붙여본 적도 없이 내려온 수십년이었고 교계의 모든 공식행사에 단 한차례도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숨은 전도자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교권투쟁을 복음운동의 내부적인 일대 적으로 간주하여 고신교단에서 제명된 이후 개교회주의로만 나왔기 때문에 교계에서도 완전히 잊혀진 교회와 교역자가 되었다. 간간이 교계에 들리는 소식이라면 숨어지낸다는 이유로 이단이라는 오해를 받고 지내는 정도였다. 1979년,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매주일 10명에서 20명 정도로 미아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6개월간 해결되지 않은 미아 사건이 있었고 이 미아 발생 문제를 접했던 지방일간지의 한 기자가 기독교계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도하기 위해 교회를 취재하게 되었다. 주일 아침 일찍부터 교회 맞은편에서 주일학교의 아침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는 일반 대형교회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 즉 화려한 예배당, 선전, 물량공세 등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부산 최대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개척교회와 같은 소박함, 사무실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찾을 수 없는 절약, 오직 복음을 위해 한 교사 교사가 엎고 보듬고 볼을 비비며 오는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아 버렸다.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취재한 결과 주일학교의 현황은 대형 기사거리가 될 만했고 기자의 직감으로 교계에 조회해 본 결과 기자의 현장조사는 교계도 모르고 있던 세계 최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음날 일간지에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소식은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기독교계의 언론들은 세상 일간지의 보도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고 향후 10여년 단골 취재 대상이 되었으며 교계에는 큰 파장을 주고 있었다. 한국교회사에 끼친 영향 알려지는 것은 괴로운 짐이었다. 장년반과 달리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주일학교였다. 대부분이 불신자 가정에서 어렵게 한 사람씩 교회로 불러오는 중인데 견학, 방문, 탐방 등의 순서가 이어지면서 교사들의 현장 활동을 보고 싶어하는 타교단 타교회의 교사들이 심방하는 학생집까지 동행케 되었다. 동행하는 심방은 학생들의 불신 부모들에게는 하나의 조사대상 또는 견학대상이 된다고 느껴 자랑이 아니라 한번 더 화날 일이었다. 그러나 타지에서 찾아와서까지 보고자 하고 또 참고하고자 하는 순수한 뜻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알리지는 않았으나 참고하고자 하는 교회에 협조 거부를 할 수는 없었다. 오는 교회 보는 교회마다 여러가지 결과가 나타났다. 극소수의 교회들은 많은 제약 가운데서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대로 실행했고 결과는 비율로서 서부교회보다 대부분이 앞서는 재현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다음 두번째 경우는, 바꿔 보지는 못해도 주일학교에 대한 운영 방향에는 큰 감명과 도전을 받게 되어 기존의 학년제 하에서 이전보다 더욱 충성과 열심을 내는 경우가 있었다. 분명히 과거와는 비교 못할 정도의 부흥이 있게 되었다. 이런 두 가지 유형에 따라서 서부교회를 참고하여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과거와 다른 각도 다른 모양의 충성으로 주일학교의 부흥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진 교회들이 곳곳에 생기게 되었다. 또 이렇게 움직이는 교회들과 인접한 그 주변교회들이 경쟁과 자극을 받게 되어 같이 힘을 쓰게 되었다. 한국교계 전체적으로 70년대까지는 주일학교의 교회 내 위치가 방치된 부속기관 정도였다가 이제는 교단과 교회가 다르고 운영체제는 다를찌라도 주일학교에 힘을 써야 한다는 분위기와 관심이 촉발되고 경쟁체제가 되어졌다. 주일학교는 교회의 관심 기관으로 집중을 받게 되었고 이런 영향으로 전국적으로는 수십만의 주일학생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주일학교의 부흥은 80년대를 고비로 한국교회가 당면한 큰 문제 즉 고도성장의 물질 풍요 사회화 속에서 교인들의 노령화, 젊은층의 신앙 사각화 등으로 인한 침체현상이 10여년 이상 늦어지면서 한국교회를 90년대 이후 고도성장 사회 속에서도 보수화 중간연령층의 내실화 등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서부교회의 발전 장년반과 꼭같이 주일학교도 힘쓰자는 평범한 중심과 노력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가다 보니까 대형 주일학교가 되었고 중형교회가 대형 주일학교 덕분에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특이한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주일학교 개척반 경험은 교사들로 하여금 목회현장을 체험케 했고 학생들로 시작된 작은 목회의 체험이 교사들에게 큰 도전을 주며 목회자의 꿈을 주고 있었다. 이래서 개교회로 나가던 서부교회가 100여교회를 단독으로 개척, 지원, 육성시켜 비록 작으나 한 개의 교단이 되는 결과까지 이루게 된다. 대부분이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교사를 통과한 바로 그 경험이었다. 같은 교리나 같은 지역 또는 같은 성향, 같은 이해관계가 원인이 되어 수평적 연합이나 결합으로 모여진 교단이 아니다. 또는 야합의 흥정으로 된 교단이 아니다. 한 교회가 키워 자식과 부모의 입장 같은 이런 양육의 결과로 자리잡은 특수한 교단이 된 것이다. 서부교회는 극히 보수적인 교리와 원칙적인 운영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70년대 이후의 산업사회에서도 주일이나 기타 계명 문제를 50년대 이전의 교리와 운영으로 고수하면서는 부흥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교계의 지적이었다. 그래서 극히 보수적인 교단들도 사실상 주일이니 기타 신앙 원칙들을 하나의 희망사항과 설교 정도에서 그치지 실생활에 엄격한 훈련과 연단으로까지는 나가지 못하나 서부교회는 90년대까지도 이런 신앙을 유지하고 나오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부흥이 될 수 없는 조건들뿐이었다. 그러나 전도된 주일학생이 장년반으로 길러져 올라온 이면 때문에 순수한 신앙이 그대로 교회에 맞도록 자라왔고, 두번째는 전도로만 대형교회로 성장한 특이한 모범이 되고 있다. 제5장. 백영희목사님의 목회특색 1. 전도 철저한 불신자 전도 백목사님 설교는 듣는 이들의 인생을 세상에서 천국으로 완전히 전향시키는 폭발적인 감동으로 유명했다. 초기 고신의 제일가는 부흥사요 설교가였고 고신의 유명한 성도들이 서부교회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전도 원칙은 철저한 불신자 대상이었다. 물론 서부교회 부임초기는 전시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대거 밀려들었고 이들의 생활이 극히 불안정하여 교회의 전출입은 혼란스러웠다. 따라서 설교가 은혜로운 서부교회의 소문은 금새 퍼지게 되었고 교회로 전입하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피난민으로 생활 확정이 되지 않은 일부교인의 경우만 허락하였다. 중요한 것은 전도에 대한 교회의 분위기, 시종일관 교회의 전체 흐름에는 어느 교회도 따를 수 없는 철저한 불신자 전도였다. 주일학교가 이렇게 대형화된 것도 첫째는 비록 어린 학생들이어서 오늘은 교회에 짐만 되는 심령일찌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꼭 같은 자녀로 상대하여 전도에 꾸준히 힘써온 결과였다. 어른들에게 쏟는 만큼 꼭같이 전도하자는 취지가 그 시작이었다. 이런 순수한 동기가 가져온 결과는 너무도 컸고 따라서 외부에서는 주일학교만 전문으로 키운 교회라고 말들이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런 평가는 서부교회의 구조 파악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서부교회는 백목사님의 설교가 유명하더라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경우는 대단히 많다. 또 듣고 난 평가는 과연 심령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참된 말씀이라고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 한마디는 빼놓는 사람이 없다. ꡒ말씀은 좋으나 교회 분위기가 수도원 같다. 이곳에서 예수 믿기는 너무도 어려워 적응치를 못하겠다.ꡓ는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다른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끌어온다는 분위기는 거의 상상할 수가 없었다. 대개 교회의 성장은 소형에서 중형으로 부흥되는 경우는 불신자 전도 위주가 많으나 중형에서 대형으로 나가는 교회들은 불신자 전도 유입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대신 부근 다른 교회를 다니는 기존교인들의 유입율이 급격히 많아진다. 이미 성공적으로 부흥 중인 교회의 분위기와 그런 실력 있는 교역자의 인기가 주위 교회 교인들을 흡인하고 흡인된 교인들의 가세로 교회의 교세는 더욱 부각되어 간다. 주위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급속히 전출이 생기면서 결국은 문제가 없어도 단순히 갈급한 심령들이 몰려들게 되어 대형화 되어가는 것이 대형교회화의 과정이다. 그러나 서부교회의 대형화에 있어서 특색은 바로 불신자 전도에 전념한다는 구원 유일주의의 순수성이 초기부터 전성기까지 계속이어지고 있었으며 그런 특성의 중심에 주일학교 운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은금보다 예수를 초대교회도 여러가지 물질을 동원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유익한 방편으로 사용하였다. 여기에 근거하여 전도는 물질제공이 봉사와 사랑의 동의어가 되어 있고 전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까지 인식되어 있는 것은 문제점이 있다. 다시 한번 성경을 자세히 비교 상고한다면, 먹어봐야 소용없는 물질임을 가르치기 위해서 떡을 먹이셨고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신 것은 그 안에 있는 신령한 병에 대하여 알기 쉽게 가르친 방편이었으며 대개는 아예 말씀만을 능력으로 전했지 물질제공이 전도에 효력이 있을 것으로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으로 형제를 사랑토록 한 것은 그것이 전도의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동정과 사랑이 있다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결과인 것이다. 오해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물질 제공이 예수를 믿게끔 하는 방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전도인이 가진 사랑의 표현일 뿐인 것이다. 그 물질 봉사가 그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는 것은 고등미끼라고 여겨질 수도 있고 오히려 전도에 손해가 될 때도 많이 보게 된다. 이와같이 우리는 전도할 때에 사은품 하나로 고객을 확보해 나가는 식의 세상이 깔아 놓는 수단과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물질이 상대방을 구제하는 것과는 그 내용과 방향이 아주 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새사람으로 새인생을 걸어가라고 외치는 것이다. 서부교회의 신앙성향이 이러함으로 전도를 두고는 어떤 사은품, 어떤 선물도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 철저한 원칙이다. 다만 우리 기독교의 기쁜날이라고 잔치하는 성탄절에 오는 사람들에게 빵이나 떡으로 선물하는 일도 교회의 기쁜날 기쁨을 나누는 표시에서 늘 절제가 되었었다. ?/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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