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 관련 원칙들과 한자 사용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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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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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0 00:00
제목분류 : [~홈운영~]
내용분류 : [-홈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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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요약)
이곳은 보다 쉬운 언어사용이라는 신앙의 대원칙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적절한 선은 그 당시의 전반적 교육수준 등에 의하여 다르겠지만
최소한 이곳이 연구로 집중하는 백영희목사님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자 사용은 이 말씀을 접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고등학력자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을 접하는 분들은 기초 한자 정도는 편리하게 사용하는
분들이 급격하게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한자 사용도 조심스럽게 늘려가야
했으나 둔감하여 이 면에 대한 필요성을 잊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곳은 모든 면에서 변화가 필요할 때는 분명한 원칙과 이유가 있을
때를 먼저 확인하고 있으며 또한 전반적으로 신중을 기하는 점이 있어 이
문제를 두고 전면적으로 그리 하지는 못하겠으나, 그 필요성은 분명히 인
식하였으므로 앞으로 지적하신 방향에서 노력하겠습니다.
언어 사용에 있어 백영희신앙노선에는 다음과 같은 큰 원칙이 몇가지 있으
니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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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답변)
1.신앙생활에 관련된 '언어사용' 성향을 분류해 본다면
순복음교회의 언어는 청년들의 흥겨운 수련회입니다. 전통적 장로교는 학술회 세미나식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언어는, 신문 정도 읽을 줄 아는 어떤 농부가 논농사 밖에 모르는 이웃들에게 버섯재배라는 고속득 작물을 소개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한 목소리로 박자만 맞으면 흥겨운 것이 첫 번째 경우입니다. 어려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이 그냥 즐겁게 행복하게 흥겨운 모습입니다. 두 번째 경우는 무식한 사람에게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또 학위가 없으면 참석 자격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출신이 못났든 현재가 못났든 못난 사람이 앉을 자리는 못됩니다.
세 번째 경우는, 무식한 사람을 주로 상대하지만 필요한 몇몇 전문용어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얼른 보면 간단한 재배법 같지만 배경을 설명하자면 고도의 생화학 등 여러 전문분야의 이론이 완벽하게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현장과 이론이 함께 하는 곳이며 농사꾼들이 자기들 차원에서 이해가 되도록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답답한 면도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언어사용 원칙은 이런 점을 중심으로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2.백영희신앙노선에서 지향하는 언어사용법에 대한 몇 가지 원칙
①신학이론과 목회현장의 언어사용이 거의 통일되어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신학 전문 서적에서 가장 어렵게 다루고 있는 내용과 표현들을 목회 현장의 가장 말단으로 분류되는 주일학교 공과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내부용과 현장 사용용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학이론은 목회현장에서 그대로 사용될 것을 전제하고 또 그대로 사용되어져야만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영희신앙노선 상의 언어는 곳곳에 어려운 표현과 단어들이 항상 널려 있습니다. 주일설교나 새벽설교나 심방설교나 주일학교 공과에서나 처음 만난 사람을 전도하는 자리에서나 목사과정 신학강좌에서나 신앙에 관련된 말과 글은 그 사용하는 수준과 정도가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백목사님의 예배 설교는 목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신학대학원 신학강좌였고, 그분이 개인을 접촉하는 사석에서 몇 마디 하는 것도 전부가 설교였고 신학강좌였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이 특별히 성경신학에 해당하는 강의를 목회자 양성원에서 할 때에도 그 표현과 수준은 일반 예배 때 설교나 심지어 교회 행정을 의논하는 권찰회와도 같았습니다.
②가장 쉽고 평범한 언어사용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식한 뱃사람들을 주로 데리고 제자로 가르쳤습니다. 쉬운 말로 가르치면 배운 사람은 유식하니까 잘 알 것이고 무식한 사람도 함께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꼭 그 표현이 아니면 안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대로 쉬운 말, 평범한 말, 알기 쉬운 단어와 표현과 예를 드는 것이 신앙에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농경 목축 사회로 살았던 그들에게 양을 예로 들어 가르쳤고 포도나무로 가르쳤습니다. 혹 로마서와 같은 경우는 그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며 계시록은 인간의 표현으로 종잡을 수 없도록 혼동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이유가 있고 꼭 필요하여 그렇게 어렵게 적은 것인데 이런 경우도 역시 그 글을 읽고 들을 때에 그 글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알게 하였기 때문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우선 그 선호하는 계층이 막노동하는 사람이거나 보따리 장사하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아주 쉽게 전해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쉬운 말로 전하되 혹 성경 성구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과 정통 교리에서 이미 확정된 용어들 그리고 꼭 필요하여 사용해야 할 경우는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난해한 부분은 심지어 신학전문가들도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도록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만 그런 최고 난해한 설교를 집회하는 하루에 3-4시간씩 3회씩 강해만 하는데도 무식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은혜로워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으니 결국 어려운 표현이 어렵게 전달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 전하면서도 그 이해에 관하여는 말과 글에 있지 않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있다고 보았고 또 그리되도록 기도했기 때문에 자기 양심을 써서 듣는 이들은 금방 알아듣도록 쉬웠습니다.
③사투리나 생활에서 사용하는 평상 대화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자기가 성장했던 환경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어진 언어습관은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사용하거나 강조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들고 기를 때 환경으로 사용한 것을 굳이 피하거나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사투리 사용은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 언어에 익숙한 이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고 동시에 무식해 보이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이런 제약은 주신 현실에서 원하시는 충성을 다할 때 이런 인간적 제약을 넘어가며 은혜가 역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오늘 유대민족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원된 것이라 하여 우리가 인종적으로는 유대인인 예수님을 믿는데 아무런 선입관이 없고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문화와 풍습이 베어있는 성경이라 하여 하등 이질감으로 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인종과 문화와 지역이라는 요소를 선입관으로 강하게 깔고 이런 것 때문에 예수교 자체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국산으로 변형을 시켜야 한다는 쪽은 우습게도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강조하고 또 세계인이 하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장로교측, 민주화를 좋아하는 사회참여 목회자들에 의하여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에덴동산이니 이렇게 하나님이 조성하고 만들어 주신 현실에서 사용하는 가장 평범한 대화나 설명으로 기도하고 설교하며 또한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 백영희신앙노선이며 성경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④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투나 표현은 경박할 수 있어 하나님 앞에 경건과 두려움을 잊어버리는 망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에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되 우리의 근본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실감에서 나오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동시에 두려우신 지존자로 대하는 실재 실감을 가지게 된다면 비록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은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쉽고 평범하게 사용하는 것이라 해도 그 말을 사용하는 우리의 근본 인식과 자세가 경건과 두려움이 있다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주교와 같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 최고의 단어를 제작하여 하나님 면전 사용용도로 내놓고 있지만 그들 속에는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형식과 외식에만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죽은 조상 앞에 벌벌 떠는 불신자들이 제사의식을 조심스럽게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껍데기만 있지 속에 알맹이는 몽땅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애기 예수님아, 안녕!' 등의 표현으로 하나님을 가지고 놀고 예수님을 그냥 애완견 대하듯 하면서 우리 생활 속에 실감할 수 있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로 대한다는 것은, 그분의 차원을 그리스의 신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정도로 상대하는 것입니다.
3.질문하신 한자 사용 문제는 위에서 설명 드린 원칙상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①한자 사용은 일단 전체 교인 중에서 배운 분들에게 편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현실에서는 한자 사용이라는 것은 배운 분들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고급 문자입니다. 이곳 홈은 총공회 교단 외부를 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총공회 교단 내부를 주로 상대할 때와는 그 접촉하는 분들의 교육 정도가 높겠지만, 근본적으로 백영희신앙노선과 같은 성령에 붙들린 진리 운동이란 항상 무식한 사람 못난 사람 없는 사람이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한자 사용은 피하고 있는 것이 이곳의 성향이며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입니다.
그분은 한자를 비롯 언어에 대하여는 대단한 시야와 식견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비록 교육제도가 요구하는 과정을 두고는 무식했으나 언어사용 자체를 두고는 해당 학자 앞에 밀리지 않는 분입니다. 특히 한자에 대하여는 대단한 면이 있어 개인 기록은 거의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정도지만, 일단 그가 외부로 발표한 것은 한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단한 한글 전용가라고 평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공사석을 막론하고 한자의 우수성과 필요성은 대단히 강조한 분입니다.
자신의 설교록, 주일학교 공과, 행정 서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꼭 필요하여 사용되는 단어들은 그 한자의 뜻을 반드시 풀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도 최대한 한자 사용을 자제하고 있으며 이런 성향으로 수 십 년 지나오다 보니까 현재는 알던 한자도 잊어버리고 무디어져 불편을 느낄 정도입니다.
②한자 사용문제는 영어나 기타 전문용어의 원래 표기법도 함께 염두에 둘 문제입니다.
한글에 한자를 적절히 사용하면 도움되는 면이 있다는 점은, 한편으로 영어 단어도 부분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게 합니다. 물론 기타 전문 분야에 해당되는 몇몇 표기법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백목사님은 설교 중 '깜푸라찌'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한글로 적어두고 그냥 읽기는 너무도 괴로운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단어를 한글학자들의 한글맞춤법에 따라 표기하는 것도 괴롭고. 부득이 위에서 말씀드린 일반적 원칙에 의하여 그 단어가 원래 어떤 영어 알파벳인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알고 읽되 자신의 괴로운 시력은 다른 분들을 위해 참으시라는 뜻이며, 그 단어를 한글로 적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은 앞 뒤 문맥을 보아 그 단어의 의미나 느낌은 필요한 만큼은 알게 되어 있으니 그리 하시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1 + 1 = 2 라는 수학식을 설교 중에서 '일 더하기 일 이꼬르는 이'라고 하는데 '이꼴' '이콜' '이꼬르' 'equal'은 전부가 사용하기에 어느 한쪽 계층에게 괴로운 표현법입니다. 수학 기호은 '='를 사용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가장 글에 무식한 분들을 고려하되 약간 상향을 생각하는 정도에서 설교록을 편집하고 있었습니다.
4.결론은,
이 모든 문제는 사실 큰 원칙 몇 개는 세워 둘 수 있지만 그 이상 자세하게 다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 시대의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그 당시로서 가장 최상의 안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급변하는 현 시대의 언어환경과 그 사용자들의 표준을 그때그때 맞춘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큰 원칙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변화되는 여러 주변 환경을 참고하되 또 다른 백영희신앙노선의 한 원칙인 '좀 신중하게'라는 보수성의 입장에서 어떤 표현법이 어떻게 달라져야겠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그 외형까지도 꼭 지켜야한다는 것은 우리 신앙에서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라도 새로운 시도나 변형을 시도할 때는 좀 느려도 신중한 면을 강조하는 노선임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한자 사용 문제를 지적받으면서, 백영희신앙노선 관련 모든 출간과 발표를 담당하고 있는 이곳 운영자로서 느끼는 바는 한자 사용에 대하여 너무 오랫동안 그 변화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지내왔다는 무책임 무능력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적하신 분은 한 분이지만 여러 중요한 점 때문에 발언치 않은 분도 다수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말귀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그냥 상대를 하지 않는 경우도 계셨을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1989년 이전의 백목사님 시대와 2002년 오늘 이후의 시대는 글을 대하는 차원이 너무도 달라지고 있음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앞에서 장황하게 언어사용에 대한 설명을 드리는 것은, 이렇게 복잡한 원칙이 있음으로 한자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통고로 듣기 쉬우나 이곳은 모든 지적에 대하여 항상 그 변화가 필요한지를 분명히 살피는 곳임을 아셨으면 합니다. 백목사님보다 더 좋은 신앙길을 소개하는 분이 계실런지도 항상 이곳은 염두에 두고 있는 정도입니다. 최상과 최선과 최고의 길을 찾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현재에 대하여는 현재 이전까지에서 늘 확신에 있는 곳이며 동시에 현재 이후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은 어떻게 변하실런지를 살펴보기 때문입니다. 한자 사용과 영어 단어 사용까지 여러 면에서 이곳은 어떻게 되어야 더 좋을는지 꾸준히 지적하는 분들에 의하여 이곳은 그 미련함과 우둔함이 개선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용분류 : [-홈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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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요약)
이곳은 보다 쉬운 언어사용이라는 신앙의 대원칙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적절한 선은 그 당시의 전반적 교육수준 등에 의하여 다르겠지만
최소한 이곳이 연구로 집중하는 백영희목사님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자 사용은 이 말씀을 접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고등학력자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을 접하는 분들은 기초 한자 정도는 편리하게 사용하는
분들이 급격하게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한자 사용도 조심스럽게 늘려가야
했으나 둔감하여 이 면에 대한 필요성을 잊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곳은 모든 면에서 변화가 필요할 때는 분명한 원칙과 이유가 있을
때를 먼저 확인하고 있으며 또한 전반적으로 신중을 기하는 점이 있어 이
문제를 두고 전면적으로 그리 하지는 못하겠으나, 그 필요성은 분명히 인
식하였으므로 앞으로 지적하신 방향에서 노력하겠습니다.
언어 사용에 있어 백영희신앙노선에는 다음과 같은 큰 원칙이 몇가지 있으
니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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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답변)
1.신앙생활에 관련된 '언어사용' 성향을 분류해 본다면
순복음교회의 언어는 청년들의 흥겨운 수련회입니다. 전통적 장로교는 학술회 세미나식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언어는, 신문 정도 읽을 줄 아는 어떤 농부가 논농사 밖에 모르는 이웃들에게 버섯재배라는 고속득 작물을 소개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한 목소리로 박자만 맞으면 흥겨운 것이 첫 번째 경우입니다. 어려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이 그냥 즐겁게 행복하게 흥겨운 모습입니다. 두 번째 경우는 무식한 사람에게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또 학위가 없으면 참석 자격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출신이 못났든 현재가 못났든 못난 사람이 앉을 자리는 못됩니다.
세 번째 경우는, 무식한 사람을 주로 상대하지만 필요한 몇몇 전문용어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얼른 보면 간단한 재배법 같지만 배경을 설명하자면 고도의 생화학 등 여러 전문분야의 이론이 완벽하게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현장과 이론이 함께 하는 곳이며 농사꾼들이 자기들 차원에서 이해가 되도록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답답한 면도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언어사용 원칙은 이런 점을 중심으로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2.백영희신앙노선에서 지향하는 언어사용법에 대한 몇 가지 원칙
①신학이론과 목회현장의 언어사용이 거의 통일되어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신학 전문 서적에서 가장 어렵게 다루고 있는 내용과 표현들을 목회 현장의 가장 말단으로 분류되는 주일학교 공과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내부용과 현장 사용용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학이론은 목회현장에서 그대로 사용될 것을 전제하고 또 그대로 사용되어져야만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영희신앙노선 상의 언어는 곳곳에 어려운 표현과 단어들이 항상 널려 있습니다. 주일설교나 새벽설교나 심방설교나 주일학교 공과에서나 처음 만난 사람을 전도하는 자리에서나 목사과정 신학강좌에서나 신앙에 관련된 말과 글은 그 사용하는 수준과 정도가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백목사님의 예배 설교는 목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신학대학원 신학강좌였고, 그분이 개인을 접촉하는 사석에서 몇 마디 하는 것도 전부가 설교였고 신학강좌였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이 특별히 성경신학에 해당하는 강의를 목회자 양성원에서 할 때에도 그 표현과 수준은 일반 예배 때 설교나 심지어 교회 행정을 의논하는 권찰회와도 같았습니다.
②가장 쉽고 평범한 언어사용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식한 뱃사람들을 주로 데리고 제자로 가르쳤습니다. 쉬운 말로 가르치면 배운 사람은 유식하니까 잘 알 것이고 무식한 사람도 함께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꼭 그 표현이 아니면 안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대로 쉬운 말, 평범한 말, 알기 쉬운 단어와 표현과 예를 드는 것이 신앙에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농경 목축 사회로 살았던 그들에게 양을 예로 들어 가르쳤고 포도나무로 가르쳤습니다. 혹 로마서와 같은 경우는 그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며 계시록은 인간의 표현으로 종잡을 수 없도록 혼동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이유가 있고 꼭 필요하여 그렇게 어렵게 적은 것인데 이런 경우도 역시 그 글을 읽고 들을 때에 그 글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알게 하였기 때문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우선 그 선호하는 계층이 막노동하는 사람이거나 보따리 장사하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아주 쉽게 전해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쉬운 말로 전하되 혹 성경 성구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과 정통 교리에서 이미 확정된 용어들 그리고 꼭 필요하여 사용해야 할 경우는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난해한 부분은 심지어 신학전문가들도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도록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만 그런 최고 난해한 설교를 집회하는 하루에 3-4시간씩 3회씩 강해만 하는데도 무식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은혜로워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으니 결국 어려운 표현이 어렵게 전달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 전하면서도 그 이해에 관하여는 말과 글에 있지 않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있다고 보았고 또 그리되도록 기도했기 때문에 자기 양심을 써서 듣는 이들은 금방 알아듣도록 쉬웠습니다.
③사투리나 생활에서 사용하는 평상 대화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자기가 성장했던 환경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어진 언어습관은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사용하거나 강조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들고 기를 때 환경으로 사용한 것을 굳이 피하거나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사투리 사용은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 언어에 익숙한 이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고 동시에 무식해 보이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이런 제약은 주신 현실에서 원하시는 충성을 다할 때 이런 인간적 제약을 넘어가며 은혜가 역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오늘 유대민족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원된 것이라 하여 우리가 인종적으로는 유대인인 예수님을 믿는데 아무런 선입관이 없고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문화와 풍습이 베어있는 성경이라 하여 하등 이질감으로 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인종과 문화와 지역이라는 요소를 선입관으로 강하게 깔고 이런 것 때문에 예수교 자체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국산으로 변형을 시켜야 한다는 쪽은 우습게도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강조하고 또 세계인이 하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장로교측, 민주화를 좋아하는 사회참여 목회자들에 의하여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에덴동산이니 이렇게 하나님이 조성하고 만들어 주신 현실에서 사용하는 가장 평범한 대화나 설명으로 기도하고 설교하며 또한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 백영희신앙노선이며 성경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④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투나 표현은 경박할 수 있어 하나님 앞에 경건과 두려움을 잊어버리는 망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에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되 우리의 근본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실감에서 나오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동시에 두려우신 지존자로 대하는 실재 실감을 가지게 된다면 비록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은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쉽고 평범하게 사용하는 것이라 해도 그 말을 사용하는 우리의 근본 인식과 자세가 경건과 두려움이 있다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주교와 같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 최고의 단어를 제작하여 하나님 면전 사용용도로 내놓고 있지만 그들 속에는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형식과 외식에만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죽은 조상 앞에 벌벌 떠는 불신자들이 제사의식을 조심스럽게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껍데기만 있지 속에 알맹이는 몽땅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애기 예수님아, 안녕!' 등의 표현으로 하나님을 가지고 놀고 예수님을 그냥 애완견 대하듯 하면서 우리 생활 속에 실감할 수 있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로 대한다는 것은, 그분의 차원을 그리스의 신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정도로 상대하는 것입니다.
3.질문하신 한자 사용 문제는 위에서 설명 드린 원칙상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①한자 사용은 일단 전체 교인 중에서 배운 분들에게 편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현실에서는 한자 사용이라는 것은 배운 분들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고급 문자입니다. 이곳 홈은 총공회 교단 외부를 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총공회 교단 내부를 주로 상대할 때와는 그 접촉하는 분들의 교육 정도가 높겠지만, 근본적으로 백영희신앙노선과 같은 성령에 붙들린 진리 운동이란 항상 무식한 사람 못난 사람 없는 사람이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한자 사용은 피하고 있는 것이 이곳의 성향이며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입니다.
그분은 한자를 비롯 언어에 대하여는 대단한 시야와 식견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비록 교육제도가 요구하는 과정을 두고는 무식했으나 언어사용 자체를 두고는 해당 학자 앞에 밀리지 않는 분입니다. 특히 한자에 대하여는 대단한 면이 있어 개인 기록은 거의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정도지만, 일단 그가 외부로 발표한 것은 한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단한 한글 전용가라고 평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공사석을 막론하고 한자의 우수성과 필요성은 대단히 강조한 분입니다.
자신의 설교록, 주일학교 공과, 행정 서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꼭 필요하여 사용되는 단어들은 그 한자의 뜻을 반드시 풀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도 최대한 한자 사용을 자제하고 있으며 이런 성향으로 수 십 년 지나오다 보니까 현재는 알던 한자도 잊어버리고 무디어져 불편을 느낄 정도입니다.
②한자 사용문제는 영어나 기타 전문용어의 원래 표기법도 함께 염두에 둘 문제입니다.
한글에 한자를 적절히 사용하면 도움되는 면이 있다는 점은, 한편으로 영어 단어도 부분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게 합니다. 물론 기타 전문 분야에 해당되는 몇몇 표기법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백목사님은 설교 중 '깜푸라찌'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한글로 적어두고 그냥 읽기는 너무도 괴로운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단어를 한글학자들의 한글맞춤법에 따라 표기하는 것도 괴롭고. 부득이 위에서 말씀드린 일반적 원칙에 의하여 그 단어가 원래 어떤 영어 알파벳인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알고 읽되 자신의 괴로운 시력은 다른 분들을 위해 참으시라는 뜻이며, 그 단어를 한글로 적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은 앞 뒤 문맥을 보아 그 단어의 의미나 느낌은 필요한 만큼은 알게 되어 있으니 그리 하시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1 + 1 = 2 라는 수학식을 설교 중에서 '일 더하기 일 이꼬르는 이'라고 하는데 '이꼴' '이콜' '이꼬르' 'equal'은 전부가 사용하기에 어느 한쪽 계층에게 괴로운 표현법입니다. 수학 기호은 '='를 사용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가장 글에 무식한 분들을 고려하되 약간 상향을 생각하는 정도에서 설교록을 편집하고 있었습니다.
4.결론은,
이 모든 문제는 사실 큰 원칙 몇 개는 세워 둘 수 있지만 그 이상 자세하게 다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 시대의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그 당시로서 가장 최상의 안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급변하는 현 시대의 언어환경과 그 사용자들의 표준을 그때그때 맞춘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큰 원칙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변화되는 여러 주변 환경을 참고하되 또 다른 백영희신앙노선의 한 원칙인 '좀 신중하게'라는 보수성의 입장에서 어떤 표현법이 어떻게 달라져야겠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그 외형까지도 꼭 지켜야한다는 것은 우리 신앙에서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라도 새로운 시도나 변형을 시도할 때는 좀 느려도 신중한 면을 강조하는 노선임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한자 사용 문제를 지적받으면서, 백영희신앙노선 관련 모든 출간과 발표를 담당하고 있는 이곳 운영자로서 느끼는 바는 한자 사용에 대하여 너무 오랫동안 그 변화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지내왔다는 무책임 무능력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적하신 분은 한 분이지만 여러 중요한 점 때문에 발언치 않은 분도 다수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말귀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그냥 상대를 하지 않는 경우도 계셨을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1989년 이전의 백목사님 시대와 2002년 오늘 이후의 시대는 글을 대하는 차원이 너무도 달라지고 있음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앞에서 장황하게 언어사용에 대한 설명을 드리는 것은, 이렇게 복잡한 원칙이 있음으로 한자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통고로 듣기 쉬우나 이곳은 모든 지적에 대하여 항상 그 변화가 필요한지를 분명히 살피는 곳임을 아셨으면 합니다. 백목사님보다 더 좋은 신앙길을 소개하는 분이 계실런지도 항상 이곳은 염두에 두고 있는 정도입니다. 최상과 최선과 최고의 길을 찾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현재에 대하여는 현재 이전까지에서 늘 확신에 있는 곳이며 동시에 현재 이후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은 어떻게 변하실런지를 살펴보기 때문입니다. 한자 사용과 영어 단어 사용까지 여러 면에서 이곳은 어떻게 되어야 더 좋을는지 꾸준히 지적하는 분들에 의하여 이곳은 그 미련함과 우둔함이 개선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홈운영] 한자 사용에 관한 질문
제목분류 : [~홈운영~]
내용분류 : [-홈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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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자료들은 한자 표기가 거의 되지 않아 곳곳에 혼동되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한자사용을 일부러 피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한자 사용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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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홈운영~]
내용분류 : [-홈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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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자료들은 한자 표기가 거의 되지 않아 곳곳에 혼동되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한자사용을 일부러 피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한자 사용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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